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가장 오래된 사찰 - 강화도 전등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

 

 그 동안 누차 미루어 놓았던 전등사를 이번에는 꼭 가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 항상 머리 속에 그려만 왔던 곳으로 마음을 먹은지가 어느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차를 타고 강화로 향했다.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는 강화도의 남쪽 끝 정족산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절로 고구려 소수림왕 11(서기 381)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은 절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대로라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짐과 함께 지어진 최초의 절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진종사(眞宗寺)’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고려 때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을 때 이 절이 크게 부흥했으며, 이후 고려 충렬왕 8(1282)에는 왕비가 이 절에 경전과 옥 등을 시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등사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몇 차례의 화재를 겪으며, 전각이 모두 소실됐고, 16212월에 옛 모습을 되찾아 지금에 이른다. 보물 제178호인 대웅전도 이때 지은 건물이다. 조선 숙종 때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면서 왕실의 보호를 받는 사찰로 발전했다.

 

 먼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을 먹기 위해서 전등사 입구에 있는 동문식당에 둘러서 해물파전과 막걸리를 곁들여 밥을 먹었다. 왜 동문식당이 유명한 지는 그 식당에서 보는 강화의 풍경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등사 대웅전

 

 

 

 

주차장에서 전등사로 사는 길

 

 

동문식당의 모습

 

 

 

 

동문식당에서 보는 강화의 풍경

 

 

 

먹음직한 해물파전과 막걸리

 

 

버섯전골

 

 

 

전등사 동문

 

 

동문에서 전등사로 가는 길에 곱게 단풍이 들고 있다.

 

 

 

지방문화재 양헌수 승전비각

 

 

멀리 보이는 전등사

 

 

 

단풍이 물든 모습

 

 

 

전등사 윤장대

 

 

 

 

보호수

 

 

전등사 본전 입구

 

 

 

 

전등사 대웅전

 

 전등사 대웅전은 익살을 담고 있다.

 

 보물 제178호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에는 특이한 조각상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전등사 대웅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일명 나부상이라고 불리는 조각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대웅전을 건축하던 도편수가 공사 기간 동안 절 아래 처자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녀가 도편수를 배반하고 야반도주하자, 그녀를 벌하기 위해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죄를 씻어주고자 조각상을 만들어 추녀 네 귀퉁이를 떠받들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추녀 4곳 중 2곳의 조각상은 두 손이 아닌 한 손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으로 꾀를 부리는 듯한 모습으로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신성하게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 나부를 조각해 놓았다는 사실을 믿거나 말거나....

 

 

 

 

 

두손으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부상

 

 

 

 

한손으로만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부상

 

 

 

 

 

 

전등사의 여러 모습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에 있었던 사고이다. 정족산사고가 설치된 계기는 마니산사고(摩尼山史庫)1653(효종 4) 11월 실록각(實錄閣)의 실화로 많은 사적들을 불태우게 되자 새로이 정족산성 안에 사고 건물을 짓고, 1660(현종 1) 12월에 남은 역대 실록들과 서책들을 옮겨 보관하게 되면서부터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 강화도를 일시 점거한 프랑스의 해병들에 의해 정족산사고의 서적들이 일부 약탈되기도 하였다. 이 사고에 봉안되었던 역대 실록 및 서적들은 서울로 가져가기도 하고, 일부는 약탈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춘추관(春秋館)의 관장 하에 관리되어왔다.

 

 현재 정족산사고본 실록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사고의 모습

 

사고를 돌아 내려 오면서 단풍이 든 전등사의 가을 풍경을 즐긴다.

 

 

 

 

 

전등사의 가을 풍경

 

 

전등사 팔배나무 안내판

 

 

 

절안의 장독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웅전 앞 마당

 

 

약수

 

 

 

전등사 범종

 

 

보호수 느티나무

 

 

법고와 범종 그리고 목어

 

 

 

 

 

대웅전앞 나부상과 대웅전 설명판

 

 

대웅전 전경

 

 

 

 

 

경내의 장독대

 

 

 

죽림다원의 모습

 

 

 

연꿀빵

 

죽림다원에서 차를 한잔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전등사를 내려 왔다. 강화도까지 와서 전등사만 보고 가기가 좀 부족하여 가는 길에 광성보에 둘러 잠시 구경을 하였다.

 

 

광성보 안내도

 

 

 

 

 

 

 

 

광성보의 여러 풍경

 

 

광성돈대 설명판

 

 

 

 

광성돈대의 풍경

 

 

 강화도는 우리 역사에서 여러 질곡을 겪은 곳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돌아보아야 하지만 이번에는 전등사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에 시간을 만들어 역사의 현장을 답사해 보기로 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울릉도 여행 - 먹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울릉도의 특색있는 먹거리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울릉도의 음식들은 무엇보다 신선한 식재료에서 나오는 음식 자체의 신선함을 으뜸으로 꼽는다. 험악한 자연환경에 맞서 살아온 섬사람들의 근면성과 검약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울릉도의 토속적인 음식들에는 식재료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손맛이 묻어난 소박함이 담겨져 있다. 울릉도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않았다면 울릉도를 제대로 구경한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그 중에서 산채비빔밥과 울릉약소 고기, 홍합밥, 오징어, 호박엿 등은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하여 울릉오미(鬱陵五味)라고 불린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명이(산마늘)나 작년에 미국대통령 트럼트가 방한하였을 때 국빈만찬에 나와 유명해진 독도새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울릉도는 해산물이 지천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산골의 산나물도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래서 풍부한 먹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육지와는 좀 색다른 먹거리가 많이 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들과 울릉도의 특미를 되도록 먹어 보자고 합의를 보았고, 그래서 매 끼니마다 다른 음식으로 식사를 하였다.

 

 * 독도새우

 독도새우는 2017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시 청와대 공식 국빈만찬 메뉴에 독도새우라는 이름으로 도화새우가 올라오면서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동해 전역에서 베링해까지 수심 150~300m에서 발견되며 독도 주변 해역에서 잡히는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 도화새우를 아울러 이르는 명칭이다. 도화새우는 세 종류 중에서 제일 크다. 이 새우들은 살이 단단하고 단맛이 뛰어나 미식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지만, 어획량이 많지 않아 고급 식재료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울릉도 현지에서도 가격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다.  독도 새우는 껍질을 제거하고 생살을 먹거나 소금 위에 구워서 먹는 것이 가장 맛을 이끌어내는 조리법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도야마 만에서 주로 잡히기 때문에 도야마 새우’(トヤマエビ)로 부른다.

 

 

 

 

수족관 속의 독도새우

 

 

독도새우 1kg

 

 

 

새우가 껍질이 단단하고 가시가 많고 뾰족하여 까기가 좀 힘들다.

 

 

 

 

 

 

 

생새우를 까 먹고 남은 새우와 머리를 소금구이로 먹었다.

 

*오징어 내장탕

 다음으로 육지에서는 부패하기가 쉬워 요리하지 않는 오징어 내장을 이용한 오징어 내장탕이 있다.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들 중에는 오징어 내장탕의 맛을 잊지 못하여 다시 들어온다고 할 정도로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오징어 내장탕

 

*울릉오미 - 산채비빔밥

 

산이 깊고 골이 험하다는 지역에서는 모두 자신들의 산에서 나는 산채요리를 자랑하지만 울릉도에서 나는 산채는 육지의 것과 매우 다르다. 울릉 지역 산채들은 이른바 약초라고 불리는 것으로, 울릉도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고, 소금기 섞인 해풍 등에 자연 건조되어 그 맛과 향에서 탁월한 차이가 난다. 울릉도의 많은 산나물 중에서도 대표적인 전호, 취나물, 부지갱이, 삼나물, 명이, 고비, 땅두릅 등은 육지의 것과는 구분되는 울릉도의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나리분지 산채정식집

 

 

 

수 많은 방송 출연 증거

 

 

 

산채만으로 한상 가득

 

 

감자전

 

 

더덕구이

 

 

 

 

 

 

 

 

산채정식 한상

 

*따개비밥

 홍합밥과 유사한 음식으로 따개비밥이 있다. 따개비는 주로 물에 잠기는 갯바위나 암초에 붙어사는 절지동물이다. 크기가 작고 맛에서도 별다른 특색이 없어 육지에서는 따개비를 요리 재료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울릉도 따개비는 몸통이 훨씬 크고 육질도 쫄깃하여, 조개류 가운데 가장 비싸고 귀한 전복보다 울릉도 따개비가 더 맛좋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따개비는 홍합밥처럼 밥에 넣어 먹거나, 또는 국물을 이용한 따개비국수를 해서 먹기도 한다.

 

 

 

 

 

도동에서 유명한 식당

 

 

호박 막걸리

 

 

 

 

 

역시 많은 나물이 나온다.

 

  

 

따개비밥

 

 

*울릉오미 - 홍합밥

 홍합은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 분포하며 요즈음은 양식을 하고 있지만, 울릉도의 홍합은 바닷물이 나갈 때 드러나는 바닷가 바위에서 따는 것이 아니라 수심 20m 이상의 깊은 바다에서 다이버나 해녀들이 잠수하여 손으로 채취하며 그 크기가 보통 어른 손바닥만 하다.

 울릉도에서 홍합밥을 먹게 된 역사적 배경은 알 수 없다. 다만 농지가 절대 부족한 울릉도에서 쌀밥은 제사 또는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쌀밥을 대신하여 다양한 해산물과 채소를 곁들인 음식을 주식으로 먹었으며, 홍합밥도 그중 하나이다.

 

 

 

 

홍합밥에 따라 나오는 반찬 - 정갈하고 맛있다.

 

 

 

 

홍합밥

 

*울릉오미 - 버릴 것 하나 없는 울릉도 오징어

 

 울릉도 오징어는 연근해나 원양에서 어획되는 오징어와는 달리 울릉도의 청정 지역에서 어획되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함유되어 있지 않고 깨끗하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 오징어보다 선도가 좋고 맛이 깔끔하며, 오징어의 풍부한 영양과 맛이 살아 있다고 한다. 울릉도 오징어 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시 회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오징어도 매우 귀하다. 예전에는 도동항 난장에서도 오징어 회를 팔았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징어회를 시키니 서비스로 내어 주는 먹거리가 더 좋아 보인다. 오징어 내장 삶은 것, 소라고동, 문어, 멍게  등등 육지의 횟집에서 주는 밑반찬과는 질이 다르다. 어느 하나도 손이 가지 아니한 것이 없이 맛있다. 아직은 음식인심이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징어회

 

 

함께 시킨 다른 회

 

생각보다 회값이 비싸지 않았다. 내가 부산에서 생활하기에 회를 자주 먹는데, 부산에서 저 정도를 먹으려면 적지 않은 값이 나온다. 그런데 울릉도에서는 내가 생각한 가격보다 싼 값에 많은 회를 먹을 수 있었다. 아들과 회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독도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울릉오미 -호박엿

 

육지에서 울릉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이 오징어와 호박엿이라고 할 수 있다.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한손에 호박엿 봉지를 들고 입으로는 연신 질겅질겅 씹고 다니는데, 이는 다른 먹을거리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맛 때문이다. 울릉도 호박엿은 재료에서 만드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육지의 것과는 구분된다.

 

 울릉도 호박은 육지 호박에 비해 과육이 두텁고 무겁다. 울릉도 호박엿은 호박이 30% 이상 들어가 너무 단단하거나 달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손으로 엿을 직접 뽑는다. 엿을 길게 늘였다가 반으로 접는 작업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엿 속에 공기구멍이 무수하게 생기게 하는데, 이 공기구멍이 많을수록 먹기에 좋고 이에 달라붙지도 않는다.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호박엿을 먹고 배를 타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호박엿

 

*개척민의 목숨을 연명케 한 명이

 

울릉 지역 식당에서 매끼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반찬이 있다. 울릉도 개척 당시 개척민들의 목숨을 부지시켜 주었다고 하는 명이이다. 초간장에 절이거나 김치로 담그는 명이는 울릉도에서는 빠지지 않는 밑반찬인데, 본래 이름은 산마늘이다. 울릉 지역 사람들은 절임이나 김치, 물김치 등으로 해서 김치 대용으로 즐기는데, 특히 고기를 먹을 때 명이절임을 함께 먹으면 명이의 독특한 향이 고기의 잡냄새를 없애고 맛을 북돋우어 준다고 한다.

 

 

 울릉도를 찾아 가는 사람들은 울릉도의 자연에서 건강한 호흡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울릉도만의 독특한 먹거리를 즐기는 것도 여행의 재미이다. 요즈음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어디에서나 각 지역의 특산물을 주문하여 먹을 수 있지만 여행지에서 그 지방의 톡특한 먹거리를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일 것이다.

 

울릉도 여행 셋째 날 - 독도전망대, 행남해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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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를 즐기는 아름다운 해안길 - 행남해안산책로

 

 어제는 날씨가 좋지 않아 비가 제법 많이 왔는데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햇살이 밝게 비추고 있다. 어제만 이렇게 날이 좋았으면 독도를 갈 수 있었는데 하늘의 날씨를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행은 항상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여정이다. 바로 우리 인생과 같다고 생각이 든다. 독도를 가지 못한 아쉬움을 독도전망대에 올라 다소라도 달래기로 하고 저동항으로 가서 도동항까지 연결되어 있는 해안길을 걸으려고 가니 해안길이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절벽에서 돌이 떨어져 사람이 죽은 뒤 길이 아직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도동항으로 가서 행남해안산책로를 걷기로 하고 도동항 버스를 타고 가서 먼저 독도전망대로 갔다.

 

 

행남해안산책로 전경

 

 

 

 

울릉도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오징어 건조

 

 

도동의 독도전망대 올라가는 곳

 

 

 

독도전망대 엘리베이터

 

 

 

독도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

 

 

 

망원경으로 보면 희미하게 독도가 보인다.

 

 

 

 

해안전망대에서 보는 도동항

 

 

 

 

비가 갠 뒤의 깨끗하고 맑은 하늘

 

 

도동항의 조형물

 

 행남해안산책로는 도동항에서 왼쪽 해안을 따라 행남 등대까지 갔다 돌아오는 코스를 따라 자연 동굴을 지나고 암벽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며 푸른 바다를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작아서 더 아름다운 행남등대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낙석사고가 있은 뒤 저동가지는 가지 못하게 길을 막아 놓아 안타깝다.

 

 

 

 

해안길로 가는 입구 다리

 

 

 

 

 

 

 

 

행남해안산책로 입구의 풍경

 

 

 

 

 

 

 

 

행남해안산책로 전망대에서 보는 도동항의 풍경

 

 

 

행남해안산책로 설명판

 

 

행남해안산책로의 전경

 

 

 

 

해식동굴

 

 

 

 

푸른색으로 말게 빛나는 울릉도 바다

 

 

 

 

 

 

짙푸른 빛으로 빛나는 동해

 

 

 

 

 

거북모양의 바위 -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모습이다.

 

 

 

 

 

 

 

 

 

 

 

 

 행남해안산책로를 한가하게 걷고 난 뒤 저동항으로 돌아가서 포항으로 나오는 배를 타고 짧고 아쉬운 울릉도여행을 마무리한다.

 비록 목표로 했던 독도는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성인봉을 올라갔다 왔다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독도에 다시 갈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울릉도 여행 둘째 날 - 성인봉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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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스러운 봉우리 성인봉

 

 울릉도 여행 둘째 날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독도를 가야 한다. 하지만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독도행 배가 출항을 하지 못한다느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아들과 의논한 끝에 성인봉을 올라가기로 하였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우리는 전국의 명산을 함께 등반한 경험이 있기에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비록 기상이 좋지 않아 다소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비가 제법 오지만 성인봉을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자고 결정하고 성인봉을 향해 출발했다.

 

 먼저 섬을 일주하는 버스를 타고 천부로 갔다. 사실 울릉도에서 버스를 잘 이용하면 교통편이 상당히 편하다. 택시가 많이 있지만 일부러 택시를 탈 필요는 없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수시로 버스가 다니고 있으니 시간을 잘 맞추면 상당히 편리하다. 덧붙이면 울릉도의 모든 버스는 도동항에서 시작하여 도동항에서 끝난다. 자기가 갈 곳을 정하고 버스 노선을 선택하여 타면 된다. 천부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리분지에 도착하니 비가 장난이 아니게 많이 온다.

 

 

성인봉

 

 

천부 버스 정류소

 

 

울릉도 교통수단 버스

 

 

 

천부 앞 바다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나리분지는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으로 면적 1.5~2.0이고, 동서길이 약 1.5km, 남북길이 약 2km이다. 그 안에 분출한 알봉(卵峰:611 m)과 알봉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다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되어, 북동쪽에 나리마을, 남서쪽에 알봉마을이 있다. 분지 주위는 외륜산(外輪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인봉은 외륜산의 최고봉이자 울릉도 최고봉이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겨울에는 3m 이상의 눈이 내리는 일이 자주 있다. 과거 나리분지의 가옥은 기후적 특성에 대비하기 위하여 우데기, 축담 등의 독특한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우데기는 눈이 많이 쌓일 때를 대비하여 처마를 따라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우고 새로 엮은 이엉을 둘러친 것이다. 축담은 우데기와 방 사이의 공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택 개량으로 인하여 우데기나 축담의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곳은 식당과 민박집이 들어서서 농촌 관광지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처음에는 작은 농가들이 넓은 분지 바닥에 띄엄띄엄 산재해 있었고, 주민이 사는 너와집도 볼 수 있었다. 나리분지는 논농사를 짓던 울릉도 유일의 평지였으나, 현재는 천궁과 같은 약초와 고추냉이를 재배함으로써 주민들은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나리분지의 모습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을 하였기에 늦었지만 아침을 먹으려고 나리촌으로 가서 울릉도의 산채정식을 한상 시켜 먹고(산채 정식은 울릉도 먹거리에서 보여 드리겠다.) 비가 많이 오지만 성인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 주인이 조금 근심을 하였으나 우리는 상관없이 성인봉으로 향했다. 만약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을 오를 수 없으면 하산하기로 아들과 사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나리촌 식당

 

 

 

 

 

나리촌 부근에 있는 옛날 울릉도 투막집

 

 본격적으로 비를 맞으며 성인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울릉도의 산림은 대개가 원시림 형태를 보여 준다. 사람이 가꾸거나 한 것이 아니라 자연상태에서 그냥 자란 나무들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어 다른 산에서 보는 풍경과는 색다른 모양을 볼 수 있다.

 

 

성인봉 가는 이정표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가는 길에 처음 만나는 원시림

 

 

 

 

 

 

나리동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군락지

 

 

 

 

 

성인봉 가는 도중의 풍경

 

 투막집은 울릉도 전통가옥의 하나로 둥근 나무를 우물 틀 모양으로 쌓아올려서 벽을 이룬 집으로 강원도 산간지대에서는 귀틀집’, 평안남도에서는 방틀집또는 목채집’, 평안북도와 강원도에서는 틀목집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설명은 지식백과를 참조하세요.

 

 

 

 

나리동 억새 투막집 외부 전경

 

 

 

 

 

투막집 내부의 모습

 

 

울릉 성인봉 원시림 설명

 

원시림지대를 걸어가니 아들녀석이 숲이 좋다고 감탄을 한다. 하지만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려 우장을 갖추고 걷기에는 좀 불편했다. 또 길을 올라가니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서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요즈음의 산에는 안전을 위해서 나무 계단을 많은 곳에 만들어 놓았는데 사실은 흙길이 제일 좋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서 생각하기를 이 계단을 설치하는 노고와 예산과 인력으로 흙길을 보수하고 흙을 밟고 다닐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항상 생각한다.

 

 

 

 

원시림지대와 나무 계단

 

 제법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길을 재촉하여 가니 알봉을 바라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울릉도는 또 다른 경치를 보여 준다. 잠시 쉬다가 비를 뚫고 성인봉으로 올라 가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도중에 도동항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을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우고 계속 성인봉을 향해갔다.

 

 

 

 

전망대에서 보는 알봉과 주변 경치

 

 

밑둥이 완전히 비어 있는 나무 - 위에는 생명이 있다.

 

계속 산을 올라가면 드디어 약수터를 만난다. 이제 성인봉을 거의 다 온 것이다. 한여름에 이 약수터엗 도착하여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마시면 온몸이 시원해지는 물이다. 성인봉을 올라 가는 도중에 있는 유일한 샘물이다. 샘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시니 속이 시원하다. 이 산위에 이렇게 샘이 있다는 것도 자연의 한 경이로움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라 생각하고 물을 마시고 또 길을 재촉했다.

 

 

 

약수터

 

 

성인봉을 가리키는 이정표

 

 

 

 

성인봉 가까이의 원시림 - 비가 오기에 비안개로 신비로운 모습을 보인다.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울릉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정상이 성인봉이다. 산행 시간이 제법 많이 소요되지만 울창한 원시림을 헤치고 트레킹을 즐기는 맛과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일품이다. 높이 984m로 울릉도의 최고봉으로 이 봉우리를 기점으로 뻗어나간 능선과 산을 기점으로 군의 행정구역이 구분되고 울릉도의 모든 하천의 시작이 이곳이라고 한다. 성인봉 북서쪽에는 나리분지 안에 솟은 중앙 화구구(火口丘)인 알봉[卵峰]이 있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많은 식물이 분포하는데, 이 가운데 특종식물이 40여 종이나 된다고 하니 매우 오랫동안 육지와는 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 등에는 중봉(中峰)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울릉도내도>에 성인봉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산의 모양이 성스럽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봉우리의 영험한 능력 때문에 성인봉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전설에는 울릉도에 오래 비가 오지 않자 사람들은 물이 귀해서 야단이 났다. 그래서 점쟁이에게 점을 치자 성인봉 꼭대기를 파 보라고 하였고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 한 길쯤 파 들어가자 연기가 솟았다. 사람들이 더 깊이 파 내려가자 사람의 시체가 나왔다. 사람들이 시체를 파내어 개울로 굴리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 뒤 울릉도에 이상한 일이 생기거나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성인봉 꼭대기를 파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대개 관이나 시체가 나왔다고 전한다. 이는 성인봉이 영험한 명산이라서 풍수설을 믿고 사람들이 남 몰래 묘를 썼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성인봉 표지석

 

 

 

 

성인봉에서 보는 저동항

 

 

 

성인봉에서 도동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보는 원시림

 

 

 

도동쪽으로 내려 오면서 보는 풍경

 

도동쪽으로 내려 오는 도중에 비가 거친다. 시야가 이제 좀 트인다. 휴게소용 정자가 있어 잠시 쉬면서 아들과 일기가 우리를 도와 주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성인봉을 올라갔다 왔다고 자위를 했다. 멀리 울릉도의 바다와 항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휴게소 정자에서 보는 울릉도 항구

 

 

 내려오는 길을 도동쪽으로 택하지 않고 저동쪽을 향했다. 결론을 말하면 성인봉을 등산하는 사람은 하산길을 저동쪽보다는 도동쪽을 택하는 것이 편하다. 저번에 성인봉을 올랐을 대는 도동쪽으로 내려오면서 편했는데 저동쪽은 거리도 멀고 불편하다.

 참고하시기를.....

 

 성인봉 등산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젖은 옷과 신발을 벗어 말리고 좀 쉬다가 울릉도의 명물로 꼽히는 오징어를 먹기 위해서 횟집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지천으로 있던 오징어가 지금은 귀하여 제법 비쌌다. 그래도 울릉도에 왔는데 먹지 않을 수는 없다.

울릉도 여행 첫째 날 - 봉래폭포, 저동, 도동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동해의 보물섬 울릉도

 

 지난 여름 나와 함께 여행을 잘 가던 막내 아들에게 울릉도 여행을 제안했을 때 아들녀석이 가고 싶지만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서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갑자기 전화로 울릉도를 여행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명절을 바로 앞에 두고 여행을 하기에는 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아들도 나름대로 무슨 일이 있어 갑자기 여행을 제안했으리라 생각하고 동의하고 여행을 나섰다. 아들과는 많은 여행을 같이 해 보았으므로 나름대로 서로가 여행의 방법을 알고 있으므로 편안하게 다녀 오기로 했다.

 

 포항에서 만나 울릉도를 3일간 여행하면서 울릉도에서 먹고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울릉도 각지를 구경하고 성인봉도 올라 갔다 왔으니 대략적인 울릉도는 보았다고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기상상태가 도움을 주지 않아 처음에 예정했던 독도를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야 그 곳을 다시 보기 위해서 또 여행을 올 것이기에 아쉬움은 감추기로 한다.

 

 울릉도는 육지와의 거리가 경상북도 포항에서 217km, 후포에서 159km, 강원도 묵호에서 161km, 강릉에서 178km이며, 면적 72.9km²에 최고봉인 성인봉은 높이가 986m, 인구가 1만 명이 채 안 되는 조그마한 섬이다. 울릉도는 우리나라 동해를 굳건히 지키며 외롭게 떠 있는 섬으로 여행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좀 부담스러운 곳이다. 동해의 험한 파도를 헤치고 배를 타는 것은 물론, 배를 타기 위하여 멀리 경북 포항과 후포, 강원도의 묵호, 강릉까지 가야 한다. 동해는 서, 남해와 달리 바람이 최고 12m만 불면 풍랑이 일어 배가 다니지 못하기에 울릉도 여행은 기상이 도와주어야 한다.

 

 울릉도는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보물섬으로 섬 전체가 화산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종상 화산으로 성인봉(984m) 정상에서 해안을 향해 달려가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전체를 둘러싼 일주도로는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고, 푸른 바다를 가장 가까이서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도동항에서 행남까지 이어진 해안 산책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 절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곳이다.

 

 포항에서 오전 8시 50분에 울릉도로 가는 선라이즈호를 타고 출항을 하는데 비가 온다. 기상이 좋아야 울릉도를 돌아보고 독도로 갈 수 있는데 기상이 도아주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저동항으로 들어 갔다. 울릉도에는 도동, 저동, 사동이 육지와 연결되는 배가 입항을 하는데 내가 탄 배는 저동으로 들어가는 배였다.

 

 

봉래폭포 전경

 

 

 

 

포항여객선터미널의 울릉도 가는 배편

 

 

 

저동항의 촛대바위

 

 

 

 

 

 

저동항의 여러 모습

 

 저동항에 내려 미리 예약을 해둔 숙소에 짐을 부리고 먼저 봉래폭포를 향해 갔다. 가는 도중에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폭포를 구경하고 오는 중간에 비가 제법 오기 시작했다. 벌써 내일 가기로 했던 독도는 배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내일 일정을 다시 짜야만 하는 여행이다.

 

 

 

 

 

 

 

 

울릉 8경이라는 봉래폭포 가는 길 간판

 

 

 

 

봉래폭포 입구 안내판

 

 

 

입구에서 올라가면서 만나는 원시림

 

 봉래폭포로 올라가는 길에 '풍혈'을 만난다. 땀이 날만한 거리를 걸어가니 자연의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컴컴한 구석에서 돌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천연에어콘이라는 명패를 붙여 놓았다.

 

 

 

 

 

 

 

풍혈설명판

 

 

이정표

 

 

 

 

 

 

 

 

 

 

 

 

 

 

봉래폭포 올라가는 길의 원시림

 

삼나무 원시림을 걸어올라가면 조그마한 댐을 만난다. 댐이라고 부르지만 그냥 물을 막아 놓은 돌더미에 지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섬에서 물이 흐르는 곳이 적은 곳에 물을 막아 놓았으니 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방댐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삼나무

 

 쭉쭉 하늘로 뻗어 올라간 원시림을 걸어 올라가면 봉래폭포를 만난다.

 

 봉래폭포는 낙차가 30m에 이르는 3단 폭포로서 울릉도의 도동과 저동을 비롯한 남부일대의 중요한 상수원이다. 이곳의 물은 북서쪽의 나리분지에 모인 강수가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에서 피압수가 되어 지표로 용출하는 것이다.지표로 솟은 다량의 물이 지형의 기복을 따라 흘러 내림으로서 폭포가 형성되었다. 1일 유량은 약 3,000톤 이상이 되며, 주변에는 연중 4의 바람이 나오는 풍혈, 투막집, 삼림욕장 등이 있다.

 

 

봉래폭포전망대 

 

 

 

 

 

 

 

 

 

 

봉래폭포의 여러 모습

 

 

울릉도 대중교통 버스

 

 봉래폭포를 구경하고 도동항으로 향했다.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인데 저번에 왔을 때에 바해서 많이 변해 있어 알아보기가 어렵다. 내가 울릉도를 온지도 어느새 20년이 된 것이다.

 

 

 

 

 

도동에 있는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전경

 

 

 

 

 

 

내부의 모습

 

 

 

 

 

 

 

도동항의 풍경

 

 도동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서 왼쪽으로는 행남해안도로가 있고, 오른쪽 정벽밑으로 해안길이 있다. 행남해안도로는 다음날 가기로 하고 왼쪽 해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은 모두들 행남해안도로로 가지 이곳으로는 오는 사람이 드문 곳인데 경치가 매우 좋았고 파도가 칠 때에는 해안길로 바닷물이 올라 와서 또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해안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면 파도가 쳐서 옷을 적시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고 조용한 해안 길을 걸으면서 막힘이 없는 아름다운 동해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파란 색의 맑은 바닷물은 너무 깨끗하고 파도가 치면서 바위에 부딪치며 만들어진 포말은 또 한 폭의 그림이다. 

 

 

밤에 보는 저동항 촛대바위

 

 도동에서 저녁을 먹고 저동으로 돌아와서 숙소에서 내일의 일정을 의논한다. 원래는 독도를 가야 하는데.....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배가 운행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어찌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들과 의논 끝에 일단 성인봉을 올라가기로 했다. 내가 저번에 왔을 때 나리분지에서 출발하여 성인봉을 등산하고 도동항으로 내려왔는데 4시간 정도 걸렸다니 아들녀석이 믿지 않는다. 안내도에 6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단다. 하여튼 내일 나리분지에 가서 기상상태에 따라 성인봉을 등반하든지 중간정도에를 구경만 하고 내려오든지를 결정하기로 하고 휴식을 취한다.

 

고대 원형극장 - 터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터키 유적지의 원형극장

 

 그리스의 원형극장보다 터키의 원형극장이 더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로마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터키의 유적에는 로마식 형극장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규모의 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웅장하고 거대하다. 인구도 얼마 되지 안았던 그 시대에 이렇게 거대한 극장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일개 필부에 지나지 않는 나의 무지라 생각하고 구경을 했다.

 

 

 * 라오디키아(파묵칼레)

 

 서쪽극장이라는 설명으로 보아 다른 쪽에도 극장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는데 한 도시안에 여러 개의 극장이 있을 정도라면 이 도시의 크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본 원형극장은 거의 완전하게 복원된 것이 많았는데 이 원형극장은 아직 복원하기에는 세월이 멀다. 설명에 의하면 약 8000석을 갖추고 있다 하는데 크기가 그 이상으로 보인다. 극장의 아래 부분은 거의 허물어져 있고, 상부만 온전히 보존되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 베르가마 아스클레피온

 

 아스클레피온은 병원의 도시이다. 그래서 치료의 한 방법으로 음악을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곳으로 환자들과 그 구성원들의 그장으로 규모가 대단하며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베르가마 아크로폴리스

 

 에우메네스 2세가 건립한 약 1만석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야외극장으로 약 80열의 관객석은 가파르게 경사가 진 것도 특징이다. 이 극장은 음향시성이 아주 뛰어나게 갖추어졌다고 한다. 무대에 선 배우가 보통의 목소리로 말해도 맨 위의 관객이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극장을 중심으로 여러 유적지를 쉽게 갈 수 있다. 또 막힘이 없이 앞이 탁 트이어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극장이 있어 관람을 하기에는 일품이었을 것이다.

 극장의 맨 위에는 극장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다. 나는 극장 아래에서 올라 왔기에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여러 신전에서 극장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극장 위에는 디오니소스 신전, 아테네신전, 제우스신전, 트라이아누스신전 등이 극장을 둥글게 싸고 있는 구조다.

 

 

 

 

 

 

 

 

 

 

 

 

 

 * 아프로디시아스

 

기원전 1세기경에 시작하여 기원전 27년에 완공하였다는 극장은 약 8000명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최전성기의 인구는 2만 명 정도라고 전한다. 원형극장에서는 오락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의식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와 상식을 공연하였다고 한다. 오이디푸스신화와 같은 교훈극이 당시의 연극이다. 그리스 비극은 시대를 넘어서 인간 모두에게 전해질 교훈이자 상식에 해당된다. 이 극장은 케난교수가 발굴을 결심햇을 때는 마을이 위에 있었다 한다. 1966년 이 마을을 이주시키고 본격적인 발굴을 하였는데, 마을이 있은 덕분에 원형이 거의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많은 조각과 비문들을 발견하였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많은 유물이 있어야 하나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화 하는 과정에서 아마 거의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원형극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석이 많다. 특별석이란 등받이를 갖춘 의자형 좌석으로 관람하기 편한 앞줄과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 에페소스 대극장

 

 문명의 쇠락과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피온의 언덕에 올라선다. 파나 유르산 언덕에 지어진 야외 대극장은 2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로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거의 완벽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고, 오늘날의 극장과 비교해도 현대의 극장이 따라가지 못한다. 극장은 기원전 3세기에 건설을 시작하여 여러 번의 개축을 거쳐 로마 초기인 41- 117년 사이에 대대적인 개축을 통해 로마식으로 바뀌어 지금 전한다. 중앙 무대정면 건물에는 부조와 조각들로 장식했다. 음향시설을 완벽하게 설계되어 지금도 에페소스 국제음악제가 여기에서 열린다 한다. 특히 이 극장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와 기독교의 갈등이 빗어진 곳이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우상숭배 철폐의 설교를 하다가 추방된 곳이다.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운 극장의 외형에 감탄하면서 잠시 객석에 앉아 지난 날의 영화를 회상하면서 지금은 묻혀버린 고대의 항만을 바라본다. 2,000년 전의 영화를 회상하며 시간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사라져 버린 인간의 모습을 흑백 필름처럼 가슴속에 떠 올려 본다.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유적지 에페소스의 신비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깊은 역사의 지혜를 깨우친다.

 

 

 

 

 

 

 

 

 

 

 

 

 

 

 

 

 

 * 에페소스 오데온

 

 남쪽 입구로 들어서면 바실리카 스토아(열주)들이 연이어 늘어선 거리 앞으로 소극장터인 오데온이 있다. 지붕이 있던 약 1500명을 수용하는 소극장으로 시낭송이나 음악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오데온 앞으로는 거대한 아고라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2세기에 지어진 바리우스의 욕장터가 3개의 아치와 함께 흔적만을 남기고 남아있다.

 

 오데온 소극장 정상에 올라 앉아 지나간 시대의 흔적을 느껴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본다. 지금도 이곳을 오고 가는 사람들, 과거에도 이곳을 지나갔던 사람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은 오늘도 어제에 이어 유유히 흘러간다.

 

 

 

 

 

 

 

 

 *트로이 오데온

 

 9기에 만들어진 로마 극장으로 거의 완전하게 복원되어 있다. 마지막 9기는 기원전 150년경부터 로마시대였던 서기 500년까지로 추정된다. 이곳은 로마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로마황제들의 관심이 많았던 곳이다. 이 오데온과 극장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한 때는 번창했으나 차츰 쇠퇴하다가 5세기 말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고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서기 60년에 남동쪽 언덕에 지은 극장으로 북문 근처에 있던 극장이 지진으로 인해 파괴되었는데 그 석재를 이용해서 이 극장을 지었다고 한다. 언덕위에 지은 극장으로 약 50열의 관람석에는 15,000명 정도를 수용하는 큰 규모이다. 여기서 출토된 아포론과 아르테미스, 디오니소스 등의 유물들은 박물관에 따로 전시실을 마련하여 전시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와 터키의 고대 문명의 유적을 탐방하면서 본 원형극장은 나에게 큰 감흥과 흥미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못 본 다른 극장도 많이 있겠지만 내 눈에 보인 극장만으로도 이미 마음속 깊이 원형극장이 각인되어 있다.

 

고대 원형극장 - 그리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원형야외극장(Amphitheater)

 

 암피(Amphi)는 그리스말로 사방팔방에서란 말로, 사방팔방에서 관람할 수 있는 원형 극장을 말한다. 원형 극장의 무대는 반원 형태로 관객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하늘을 향해 태양 광선처럼 설치되었다. 그리스시대와 로마의 시저 시대까지는 고위층의 좌석은 맨 아래층이었다.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유명한 원형 극장으로는, 디오니소스신이 춤을 추다 하늘로 향했다고 전해지는 아크로폴리스 신전 밑에 세워진 디오니소스 원형 극장과 기원 80년에 세워진 로마에 있는 5만명 수용의 타원형 형태의 콜로세움, 베로나 극장이 있다. 콜로세움은 극장 이외에 노예 투사와 맹수를, 노예 투사와 노예 투사를 결투시키는 투기장으로, 또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여 맹수에게 던져준 순교 장소의 역할을 했다. 베로나극장은 오늘날에도 유명한 오페라 극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고대 그리스문명을 구경하면서 각 도시의 유적마다 원형극장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술을 즐겼는지가 상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많은 유적들이 관심을 끌었지만 이 원형극장이 나의 시선을 더 끌었다. 그래서 내가 본 원형극장만 한번 사진으로 비교하여 보여 드리려고 한다

  

 * 델포이 원형극장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을 한참이나 보고 즐기고 다시 발걸음을 위로 향해 가면 고대원형극장이 나온다. 피티아제전에서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던 곳으로 보존 상태가 좋아 오늘날에도 여름에는 공연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에 신탁의 신성한 장소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델포이 원형극장 전경

 

 

 

 

 

 

 

 

델포이 원형극장 아래에 보이는 것이 아폴론신전이다.

 

 

 * 디오니소스 극장(Theater of Dionysus)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주변에 연극과 포도주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딴 유서 깊고 중요한 극장이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이곳은 우리가 서구 세계에서 알고 있는 개념의 '연극'의 개념이 탄생한 곳이라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극예술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극장을 반드시 방문해 보아야 한다.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절벽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은 돌로 지은 최초의 극장이었다. 최대 17천 명의 관객이 앉을 수 있었다는 엄청난 규모의 이 극장은 아테네에서 가장 중요한 연극 경연 대회였던 '디오니시아'를 개최하는 곳이었는데 4세기 중반까지는 나무로 된 벤치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앉았으나, 이후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돌로 된 관람석이 도입되었다.

 무대는 전통적인 그리스 방식에 따라 오케스트라, 즉 코러스가 공연되는 장소가 무대 앞에 있었다. 이 극장은 원형 극장으로, 열려 있는 무대는 점점 높아지는 타원형 구역 안에 위치했다. 매우 탁월한 음향 효과를 제공해 주었던 이러한 설계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생겨난 다른 극장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극장

 

 

 *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파르테논신전에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잠시 발길을 돌리면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있다. 이 움악당은 아티쿠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여 세운 극장인데 6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이었다 한다. 현재에도 객석과 무대를 복원해 야외 언형극장으로 재탄생시켜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연극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 객석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주 호화로운 극장이라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 아르고스극장

  

 아르고스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동부에 있는 아르골리스(Argolis) 지방의 중심 도시로 인구 2만 5000명 정도의 도시다. 미케네, 티린스와 함께 미케네문명의 중심도시로 페르세우스의 신화가 전해지는 도시다. 한 때는 스파르타와 계속 경쟁하던 막강한 나라로 티린스와 미케네도 암흑시대에는 아르고스의 신하가 되었다고 한다. 아르고스에는 멋진 아고라와 로마시대의 유적이 전해진다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고대 유적이 많은 도시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적이 그냥 방치되어 있다. 원형극장도 옜 흔적만 남아 있다

 

 

 

 

 

 

아르고스극장

 

그리스에서는 생각보다 원형극장이 많이 있지 않았다. 원형극장이 로마시대 이후에 주로 만들어져서 그 이전의 문명의 유적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원형극장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그 옛날에 이렇게 큰 극장을 짓기 위해서 얼마니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또 그 당시에 이렇게 큰 극장이 필요한 이유가 무억이었을까?

 

그리스에서 아쉬움은 터키에서 원형극장에 감탄을 한다.

 

상주 경천대 국민관광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 - 경천대(옛이름 자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상주는 영남지방에서 경주 다음으로 큰 고을이었다. 상주는 하얀 백미, 목화, 곶감 세 가지의 흰색으로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했다. 요즈음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곶감을 잘 말리면 하얀 분이 핀다. 최고의 곶감인 것이다. 예전에는 상주 곶감을 최고로 쳤다. 집집마다 겨울이면 곶감을 말리는데 그 수효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분량이었다. 그런 곳을 곶감이 맛있는 겨울도 아닌 늦여름에 상주를 들른 이유는 낙동강 제 1경이라는 경천대(擎天臺)를 보기 위함이다

 

 경천대는 낙동강을 굽어보는 절벽에 세워진 전망대가 있다. 경천대는 '국민관광지' 또는 '낙동강 제 1'이라는 명칭보다 원래 이곳의 이름과 그 뜻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원래 이름은 '자천대(自天臺)'이며 뜻은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로 풀이되는데, 사람들은 기암절벽, 낙동강, 소나무숲이 한데 어울려 절경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다가 이 터를 처음으로 닦은 채득기가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란 글을 새긴 뒤 경천대로 바꿔 불렀다.

 

 

경천대 전망대에서 보는 낙동강

 

 

 

경천대 표지석

 

 경천대 국민관광지 입구에는 대형조형물이 세워져 한눈에 알아보기 쉽다. 다섯 개의 유리 구조물은 하늘을 손으로 떠받드는 손가락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는 경천대의 뜻과 상통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시원한 인공폭포가 있고 옆으로 정기룡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널리 알려진 명장으로 바다에서는 이순신이라면 육지에서는 정기룡이라고 하여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정기룡장군은 이곳 경천대에서 젊었을 적 수련을 쌓았다고 한다. 동상 속 정기룡 장군이 타고 있는 말 역시 경천대 부근 '용소'에서 출연했다고 전해지는 신비의 대상이다.

 

 

 

 

 

입구의 구조물에 대한 건축가의 설명

 

 

 

정기룡장군 동상

 

 

 

 

경천대 주변 안내도

 

 입구를 통과하여 조금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원한 소나무향이 코에 스며들고 청량한 바람은 우리 마음조차 깨끗하게 만든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만나는 건물이 전망대이다.

 

 

경천대 안내도

 

 

 

 

 

전망대 올라가는 길 -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삼림욕장으로 알맞다.

 

 

전망대

 

 전망대에서 보는 낙동강은 포근한 어머니의 강이다. 조용하게 넓은 벌판을 감싸 안으며 유유하게 흐르는 강은 이 풍요로운 들에 젖을 주는 어머니와 같다.

 

 

 

 

 

 

전망대에서 보는 낙동강

 

 

 

 

전망대 안의 모습

 

 

 

전망대 주변의 돌탑

 

 

 전망대 바깥의 식수대

 

 

전망대 안내

 

 

 

 

 

경천대로 내려가면서 보는 낙동강

 

 무우정 가까이 경천대가 있다. 낙동강 주위를 조망하기 좋은 최적의 위치이다. 바위를 돌면서 오르자 낙동강 제1경이 펼쳐진다. 이와 동시에 자천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강의 한쪽은 논이 펼쳐져 있고, 한쪽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으니…... 한 여름 때약볕 아래에서 농사를 짓는 평민들은 강 건너 정자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양반들이 꽤나 아니꼬웠을 것이라 욕도 많이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떠올리며 내려다보는 낙동강이 이곳에서는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경천대 아래에서 흐르고 있던 낙동강은 이 모두 사실을 간직한 채 그저 조용히 흘렀을 것이고, 오늘도 모든 사실을 품고 조용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경천대에서 보는 낙동강

 

 무우정은 낙동강을 굽어보는 절벽에 세워진 정자다.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간 봉림대군을 따라가 고생을 했던 채득기 선생이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며 학문을 닦으며 마음을 다스린 곳이 절벽 위 정자 '무우정'이다. 사방이 막힌 곳이 없이 탁 트인 정자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완상하며 조용히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무우정 설명판

 

 

 

 

무우정

 

 

채득기 유적비

 

 

주변에 핀 여름꽃

 

 

멀리서 보는 무우정

 

 봉산곡(鳳山曲)은 조선 인조 때 채득기(蔡得沂)가 지은 가사로 천대별곡(天臺別曲)’이라고도 한다. 병자호란 때에 세자와 대군이 볼모가 되어 청나라의 심양(瀋陽)에 들어갈 때 작가가 왕자를 호종(扈從)하라는 명을 받고 대궐에 나아가 임금의 망극한 은혜를 읊은 시이다.

 

 

 경천대의 자연을 한가로이 구경하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경천대 이색조각공원이라는 안내도가 있다. 아주 익살맞은 모습으로 조각된 목각상들인데 불교적인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인간의 온갖 욕망과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여러 모습을 재미있게 돌아 볼 수 있는 조각품들이다.

 

 

 

 

복(오복)

 

 

참아라(인내)

 

 

분노

 

 

인연

 

 

 

낚시- 무엇을 낚는지.....

 

 

상념

 

 

 

만남

 

 

 

 

만족 - 중생들이 배부르게 먹으면 되는 것을.....

 

 

출발 -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안식

 

 

 

휴식 - 먼 길을 돌아 와서 얻는 달콤함

 

 

 

기도 -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모두들 자신의 바람을 기원한다.

 

 

기다림 -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조각공원의 전경

 

 짧은 시간이나마 경천대를 한바퀴 돌아 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한가로이 거닐며 산책하듯이 돌아 볼 수 있는 곳으로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도 드라마 촬영을 한 곳도 있다고 설명을 해 놓았으나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국민관광지로 꾸미기 위해 출렁다리도 만들어 놓았으나 그런 것도 대한민국 여러 곳에 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낙동강을 바라보는 자연과 이색조각공원은 다른 관광지와 차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좀더 부각시켰으면 한다.

 

 혹시나 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니 상주시청 관계자들은 참조하시기를......

 

 명색이 국민관광지인데 교통편이 너무 불편하다. 상주시에서 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하루에 몇편이 없고 마지막 버스가 너무 일찍 끊어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같은 경우에는 답답했다. 어쩔수 없이 왕복을 택시로 하였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 국민관광지면 이름에 걸맞게 대중교통편도 좀더 증설을 하여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내가 택시를 타고 기사하고 이야기를 하니 기사분들도 나의 생각에 동의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