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고려동유적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 중에서 고려동 유적지가 항상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도 지나가는 날에 마지막 배롱나무를 볼 겸해서 함안 고려동유적지로 향했다.
이름도 특이한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의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이곳을 택하여 담을 쌓고 거처로 정한 곳으로, 그 후 그의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으며,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또 이오는 “나라 잃은 백성의 묘비에 무슨 말을 쓰겠는가. 내가 죽으면 할 수 없이 담장 밖에 장사할 것인즉 조선의 땅에 묘비를 세울 경우 내 이름은 물론이고 글자를 하나도 새기지 말라”고 해 이오의 묘비는 글자가 하나도 없는 ‘백비’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오의 뜻을 이어받은 자손들은 이후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고,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재령 이씨 후손 30여 호가 모여 살면서 선조의 뜻을 기리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고려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 등이 있었으나, 이들 건물은 한국전쟁 동안에 대부분 소실되어 이후 복원되었다.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만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으나, 그마저 200여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고려동 입구 표지석


고려동 입구 배롱나무 길
고려동입구의 배롱나무 길을 걸어 고려동유적지 마을로 들어가니 먼저 만나는 집의 문은 닫혀 있지만 편액은 '효의문'이라고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이제는 지기 시작하는 배롱나무가 아직은 아름답게 무리를 짓고 피어 있었다. 배롱나무가 우거진 옆의 벤치에는 한가롭게 50대로 보이는 두 여인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너무 한가롭고 평안하게 보였다.

효의문




고려동유적지 설명판과 배롱나무 숲

이오선생과 자미화 설명
자미정은 고려동 담장 옆 배롱나무에서 피는 자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지어졌는데, 이는 자미화와 이오 선생이 얽힌 일화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밀양에 살던 이오 선생이 처가인 의령을 오갈 때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수풀 사이에 활짝 핀 자미화를 보고 그 모습에 반해 그곳 나무에 말을 매고 쉬다가 마침내 그곳에 터를 잡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곳이 지금의 ‘고려동’이 된 것이다. 자미화는 이후 이오의 단심을 보여주는 꽃이자 충절을 상징하는 꽃이 됐다. 이 고려동의 자미화는 이오가 세상을 떠나고 백여 년 뒤 말라 죽었으나, 30여 년 뒤 다시 고목의 밑동에서 싹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자미정
율간은 고려동 이앞 들판을 지나는 하천이다. 이오의 손자인 이종현이 그 이름을 따서 정자를 짓고 거주한 곳이다.


율간정의 여러 모습



이오 경모비

효산정은 조선 고종 때 ‘부자지간의 도리’를 논하는 상소를 올려 귀양을 갔던 효산 이수형이 10여 년 만에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수신과 학업에 열중하며 후배 양성에 힘쓴 곳이라고 한다. 효산이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흥선대원군과 그의 아들 이재면이 보낸 편지를 모아 필첩으로 만든 ‘백운래홍첩’에도 전해지는데, 편지 봉투에하늘의 흰 구름 사이를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와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기러기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효산정

고려동유적지 전경
고려동유적지를 돌아보고 벼스를 타기 위해서 내려오는 길에 어느 집 대문에 예쁘게 핀 꽃이 보였다. 너무 아름답게 보여 한자의 사진으로 뵤여 준다.

어느 집 대문의 예쁜 꽃
버스정류장에 가서 조금을 기다리닌 다행히 버스가 온다.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한낮에 걸어서 돌아다니니 아직은 생각보다 덥다. 날이 좀더 시원해져야 더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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