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함안 고려동유적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 중에서 고려동 유적지가 항상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도 지나가는 날에 마지막 배롱나무를 볼 겸해서 함안 고려동유적지로 향했다.

 

 이름도 특이한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의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이곳을 택하여 담을 쌓고 거처로 정한 곳으로, 그 후 그의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으며,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또 이오는 나라 잃은 백성의 묘비에 무슨 말을 쓰겠는가. 내가 죽으면 할 수 없이 담장 밖에 장사할 것인즉 조선의 땅에 묘비를 세울 경우 내 이름은 물론이고 글자를 하나도 새기지 말라고 해 이오의 묘비는 글자가 하나도 없는 백비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오의 뜻을 이어받은 자손들은 이후 19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고,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재령 이씨 후손 30여 호가 모여 살면서 선조의 뜻을 기리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고려전답 9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 등이 있었으나, 이들 건물은 한국전쟁 동안에 대부분 소실되어 이후 복원되었다.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만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으나, 그마저 200여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고려동 입구 표지석

 

고려동 입구 배롱나무 길

 

 고려동입구의 배롱나무 길을 걸어 고려동유적지 마을로 들어가니 먼저 만나는 집의 문은 닫혀 있지만 편액은 '효의문'이라고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이제는 지기 시작하는 배롱나무가 아직은 아름답게 무리를 짓고 피어 있었다. 배롱나무가 우거진 옆의 벤치에는 한가롭게 50대로 보이는 두 여인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너무 한가롭고 평안하게 보였다.

 

효의문

 

고려동유적지 설명판과 배롱나무 숲

 

이오선생과 자미화 설명

 

 자미정은 고려동 담장 옆 배롱나무에서 피는 자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지어졌는데, 이는 자미화와 이오 선생이 얽힌 일화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밀양에 살던 이오 선생이 처가인 의령을 오갈 때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수풀 사이에 활짝 핀 자미화를 보고 그 모습에 반해 그곳 나무에 말을 매고 쉬다가 마침내 그곳에 터를 잡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곳이 지금의 고려동이 된 것이다. 자미화는 이후 이오의 단심을 보여주는 꽃이자 충절을 상징하는 꽃이 됐다. 이 고려동의 자미화는 이오가 세상을 떠나고 백여 년 뒤 말라 죽었으나, 30여 년 뒤 다시 고목의 밑동에서 싹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자미정

 

 율간은 고려동 이앞 들판을 지나는 하천이다. 이오의 손자인 이종현이 그 이름을 따서 정자를 짓고 거주한 곳이다.

 

율간정의 여러 모습

 

이오 경모비

 

 

 효산정은 조선 고종 때 부자지간의 도리를 논하는 상소를 올려 귀양을 갔던 효산 이수형이 10여 년 만에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수신과 학업에 열중하며 후배 양성에 힘쓴 곳이라고 한다. 효산이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흥선대원군과 그의 아들 이재면이 보낸 편지를 모아 필첩으로 만든 백운래홍첩에도 전해지는데, 편지 봉투에하늘의 흰 구름 사이를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와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기러기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효산정

 

고려동유적지 전경

 

 고려동유적지를 돌아보고 벼스를 타기 위해서 내려오는 길에 어느 집 대문에 예쁘게 핀 꽃이 보였다. 너무 아름답게 보여 한자의 사진으로 뵤여 준다.

 

어느 집 대문의 예쁜 꽃

 

 버스정류장에 가서 조금을 기다리닌 다행히 버스가 온다.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한낮에 걸어서 돌아다니니 아직은 생각보다 덥다. 날이 좀더 시원해져야 더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유산 탐방 12(가야 문명의 길 - 함안 말이산 고분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올해 여름은 너무 더웠다. 그러다가 9월이 되어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기온도 제법 떨어져 내가 올해에 계획했던 한국의 유산 탐방을 계속하기로 하고 가까운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향했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발산리에 있는  말이산 고분군 약 20년 전에 막내 아들이 고등학생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경시대회에 가야에 대한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서 답사를 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너무나 다르게 가꾸어져서 우리나라도 문화유산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리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말이산 고분군 앞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을 중심으로 함안박물관이 제법 크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함안박물관부터 구경하고 말이산 고분군을 둘러보는 여정을 짰다.

 

함안박물관 입구 표지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의 박물관 입구에 고인돌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 고인돌이 있는데 이곳에서 특이하게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고인돌도 있어 새로운 구경을 하고 박물관으로 갔다.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고인돌

 

고인돌공원의 모습

 

 박물관으로 들어가 전시실로 가기 전에 광장에 여러 천막이 쳐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에 그곳으로 가니 '2026 세계유산축제 - 가야고분군' 행사장이었디 그곳을 잠시 구경하고 전시실로 향했다.

 

박물관 전경

 

세계유산축전 행사장

 

아라가야의 별자리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박물관의 여러 전시물

 

 박물관을 나와 뒤에 있는 말이산 고분군으로 향했다.

 

 아라가야 통치자의 무덤으로 알려진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 末伊山 古墳群)함안평원 중심부 말산(末山), 또는 말이산(末伊山)이라 부르는 행정구역으로 도항리, 말산리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본래 함안도항리고분군(사적)과 함안말산리고분군(사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2011728일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여 같은 산자락에 걸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으로 재지정한 것이다. 현재의 함안군 가야읍 일대는 옛 안라국의 중심지로 유추되며 인근에 안라국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함안 가야리유적이 있고 이 중심지를 방어하는 산성들이 가야읍 주변으로 분포한다.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가야고분군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이다. 목관묘부터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등 묘제에 따라 크기가 거대해지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은 능선 중심부를 따라 대형 봉토분이 분포하고, 서편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서도 많은 고분이 있다. 능선 중심부의 대형 고분은 봉토가 잘 남아 있어 지산동 고분군과 함께 가야의 대표적인 고총 고분 유적을 이루고 있다.

 

 말이산 고분군은 1917년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조사를 시작된 이래 함안 지역의 대표적인 가야시대 고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능선의 정상부와 지류능선의 능선부를 따라서 직경 25m 이상인 대형 봉토분이 연이어서 자리잡고 있고, 봉토분의 주변에는 많은 소형 무덤과 파괴된 석곽들이 분포되어 있다. 이 고분군에서는 많은 널무덤(木棺墓)도 조사되어 가야의 성립기부터 이 부근이 지배층의 무덤군이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도항리 고분군의 조사를 진행하여 많은 성과를 낳았고, 특히 온전한 말 갑옷과 최대형급 목곽으로 주목받은 마갑총(馬甲塚)도 이 말이산고분군에서 발굴되었다. 다수의 토기 유물과 철기들이 이 고분군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이 고분군의 석곽은 벽내에 감실이 위치한 것도 있으며 아라가야 특유의 불꽃(火焰)무늬 투창이 달린 굽다리접시(高杯)들을 비롯하여 신라, 대가야, 금관가야와 관계있는 고고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20239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북특별자치도 등에 소재한 여러 가야계 고대 국가의 고분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말이산 고분군 표석

 

말이산 고분군의 여러 모습

 

말이산 8호분

 

말이산 고분군 설명 안내판

 

 가야의 고분군을 모두 둘러보려는 뜻을 가지고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말이산 고분군을 돌아보고 뿌듯한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가려니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니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다음의 여행지로 향한다.

한국의 유산 탐방 11(천년 정신의 길 - 경주 일대 -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 불국사, 석굴암)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올해 여름은 짧지 않게 살아온 나에게 가장 무더운 계절이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연일 폭염 경보로 프로야구 경기도 멈추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부산지역은 올해 유난히도 더웠다. 그래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날이 좀 시원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9월이 되니 좀 시원한 바람이 불고 기온도 내려가서 집안에만 머물기에 너무 아까워 경주로 향했다. 경주는 얼마나 자주 갔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고 2025년 1월과 2월에는 경주를 집중하여 다녀왔지만 한국의 유산 스탬프를 찍기 위한 목적도 있고 하여 다시 경주로 갔다. 

 

 경주의 한국의 유산에 설정된 유적은 예전에 자세한 설명을 하였기에 아래의 나의 블로그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https://lhg5412.tistory.com/677

 

경주1 - 대릉원주변 고분들

경주는 우리나라 최고이자 최대의 유적이 있는 도시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숱하게 많이 가 보았지만 최근에는 좀 드물어 이번 기회에 경주를 통괄하여 답사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경주시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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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hg5412.tistory.com/678

 

경주2 - 월성일대와 박물관

대릉원 주변의 고분군에서 길을 따라가면 첨성대가 나온다. 봄과 가을에는 첨성대 주변의 야생화단지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여 눈을 즐겁게 하지만 지금은 한겨울이라 꽃은 보지 못하고 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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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hg5412.tistory.com/679

 

경주3 - 계림과 교촌마을 오릉 일대

오늘은 대릉원 주변에서 저번에 가지 못한 반대방향을 돌아보기로 하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릉원 경내를 지나 먼저 간 곳이 숭혜전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신라왕을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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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hg5412.tistory.com/686

 

경주10 - 불국사, 석굴암

경주를 순례한 지가 벌써 이번 순례의 10번째지만 아직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가지 않았다. 물론 과거에는 수 차례 갔다왔지만 이번 순례에는 아직 다녀오지 않아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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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 도착하여 먼저 대릉원으로 향했다. 대릉원을 천천히 겄다가 사진도 찍으면서 천마총으로 갔다.

천마총 입구

 

천마총 내부

 

대릉원 일원

 

 대릉원을 벗어나 첨성대로 가는 길에는 많은 고분들이 있는 넓은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지난다. 첨성대에 도착하여 사진을 몇 장 찍고 옆에 있는 꽃밭으로 갔다.

 

첨성대

 

 첨성대 옆의 넓은 터에 여러 꽃들이 피어 있었다. 목수국과 황화 코스모스 그리고 여러 들꽃들이 만개해 있었고, 특히 해바라기가 군락을 이루어 피어 많은 사람들이 꽃속을 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첨성대 지역을 벗어나 바로 옆에 있는 월성과 계림으로 발을 옮겼다. 월성은 멀리서 보면서 사진을 찍고 계림으로 갔다. 계림을 한 바퀴 돌면서 한국의 유산 스탬프를 찾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걸어 경주향교쪽으로 가니 향교 옆에 스탬프가 있었다. 스탬프를 계림의 입구에 비치해 놓았으면 더 편할 것을 하는 마음도 들었다.

 

월성과 계림

 

 월성과 계림을 나와 시내 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 입구에서 내려 석굴암 올라가는 버스편을 확인하고 먼저 불국사로 들어갔다. 숱하게 많은 탐방을 했지만 불국사는 올 때마다 새롭다.

 

불국사 전경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면서 지나치니 저번에 왔을 때 수리한다고 가림막을 쳐 놓았던 대웅전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대웅전을 멀리서 가까이서 구경하면서 경내를 바라보았다.

 

대웅전

 

 

 

 경내에서 가만히 멈추어 탑을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 아주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부부가 있어 다보탑과 석가탑 중에 어느 탑이 마음에 드는지를 물어 보았다. 부인은 다보탑이 마음에 든다 하였고, 남편을 석가탑이 더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각자가 가진 탑을 보는 마음이 다를뿐이지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국사를 나와 버스를 기다려 타고 석굴엄으로 가는 버스에는 많은 외국인이 타고 있었다. 경주 시내를 돌아보면 외국인이 많이 보여 우리나라도 관광 대국으로 갈 수가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석굴암 주변 여러 풍경

 

 석굴암을 갈 때마다 가지는 불만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석조물인데 왜 이렇게 금지를 하는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박물괸이나 미술관을 들어가면 빛에 아주 민감한 회화도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찍는 것을 그렇게 금하지 않는데 석굴암은 석조물인데 왜 금지할까? 하는 의문이 항상 떠나지 않는다.

 

 석굴암을 내려와 경주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 오늘의 하루를 끝내었다.

 

한국의 유산 탐방 10(가야 문명의 길 - 김해 대성동 고분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김해 대성동 고분은 아주 먼 옛적 고등학생일 때 답사를 한 뒤는 가보지 않았다. 50년도 더 되는 과거의 고등학생일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김해의 여러 패총과 고분을 답사하였고 대성동 고분도 생소할 때 가 보았으니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가 상당히 궁금하였다. 그 궁금증을 가지고 대성동 고분군을 보는 즉시 '아 정말 잘 조성했구나!' 하는 감탄의 마음이 머리를 두드렸다. 예전의 민둥산과 같았던 언덕이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대성동 고분군 가는 길의 '허황옥상'

 

 금관가야의 지배자, 대성동(大成洞) 고분군은 가야 건국설화의 구지봉(龜旨峰)과 금관가야 교역과 정치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봉황대(鳳凰臺)에 인접한 얕은 구릉에 위치한다. 동편으로 수로왕릉(首露王陵)이 위치하고 예전의 김해만 항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근대화의 부작용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왜꼬지'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아직 많은 무덤이 남아 있다. 길이 약 300m, 높이 20m정도의 구릉 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1991 1 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4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차에 걸친 경성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한 결과, 이곳이 가야의 맹주로서 당시 국제 교역의 중심이었던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묻힌 곳임이 밝혀졌다.

그후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차례의 발굴조사로 확인된 무덤은 총 304기로 고인돌, 독무덤,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여러 시대 형식이 동시에 나왔다. 이후 주변 지역의 조사가 이어져 대규모 고분군으로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을 중심으로 한 26세기 금관가야의 집단 묘역으로 밝혀졌다.

 

입지 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 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계층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신분이 낮은 평민들의 무덤들이 형성되었다. 대성동고분군은 총 200여기가 넘는 목곽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유적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가야 지배층의 면모가 드러났을 뿐 아니라 당시 연안을 따라 교역한 한국 중국 일본 삼국간 문물 교류 상황을 밝히는 데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그동안의 발굴 성과를 정리하여 보여주는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대성동 고분군 표지

 

대성동 고분군의 여러 모습

 

멀리 보이는 박물관

 

대성동 고분군 주변을 가리키는 이정표

 

 경전철애서 대성동 고분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가야 왕도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가야라고 하면 뛰어난 철기문화를 가진 나라와 기마 문화를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기에 그 특징을 보여주는 조형물을 조성해 놓았다.

 

철기 기마상들

 

대성동 고분 박물관의 여러 가지

 

한국의 아름다운 길 표석

 

 잘 조성된 대성동 고분군을 보고 잠시 옛날의 추억속을 돌아다녔다. 50년도 훨씬 더 되는 옛적 고등학생 때에 이곳을 찾았던 시간여행을 떠나니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나 하는 감상에 잠시 빠졌던 시간이었다.

한국의 유산 탐방 9(가야 문명의 길 - 김해 수로왕릉, 국립김해박물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한국의 유산 탐방을 하면서 내가 거주하는 부산 가까이에 있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김해지역의 가야 문명의 길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김해 일원의 유적들은 대부분 여러 번을 갔다 온 곳이라서 흥미는 덜했으나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제법 더운 여름의 첫자락에 수로왕릉으로 향했다.

 

 * 김해 수로왕릉

 김해 수로왕릉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나의 블로그에 상세히 말하고 있으니 찹조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전에 다녀온 기록에서 덧붙일 것만을 첨가하겠다.

 

https://lhg5412.tistory.com/320

 

가야국 탄생신화 - 구지봉, 김수로왕릉, 수로왕비릉

고대 왕국 가야의 탄생신화의 현장 - 구지봉,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김해박물관을 필두로 하여 가락국의 역사와 건국신화가 서린 장소를 찾아 보았다. 벌써 이곳을 돌아 본지도 40년도 더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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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릉 입구

 

수로왕릉의 여러 모습

 

 왕릉을 한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담장에 능소화가 예쁘게 피어 있다. 능소화는 내가 여름이 되면 좋아하는 꽃 중에 하나이기에 너무 반가왔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이곳을 방문한 기억이 없으니 능소화를 본 기억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름이 시작하는 시기라 벌써 핀 능소화가 반갑게 맞아주니 너무나 기뻤다. 주 목적은 유산 탐방이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꽃을 보는 것이 이 탐방이 주는 보너스라 생각하고 즐겼다.

 

예쁘게 피어 고개를 내민 능소화

 

 수로왕릉에서 능소화를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국립 김해박물관으로 갔다.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에 대한 설명도 아래의 나의 블로그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박물관은 갈때마다 전시물도 달라지고 보는 눈도 바뀌기 때문에 박물관과 전체적인 설명은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새롭게 본 것을 제시한다.

 

https://lhg5412.tistory.com/319

 

김해국립박물관 - 가야의 역사

철의 왕국 가야를 간직한 국립김해박물관 1998. 07. 29에 개관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 문화권의 유물을 집대성하여 시대별 문화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가야 문화의 이해와 우수성을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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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경

 

 아래의 사진은 이번에 박물괸을 돌아보면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흥미가 가는 대로 찍은 것이다.

 

 

 박물관을 나와 경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정원의 형태로 꾸며 놓은 길에서 옆을 보면 큰 돌들을 이용하여 앉아 쉬기에 좋게 만들아 놓은 쉼터가 보인다. 여름의 따가운 햇빛을 피하여 잠시 쉬면서 물도 마시고 하늘을 보니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내 마음도 이렇개 여유로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생걱이 들었다. 

 

길가의 쉼터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김해라 경전철을 이용하여 편하게 와서 한가하게 소요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유적과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더구나 뜻밖의 능소화가 반겨주어 더 기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