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양산 황산문화체육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줄여서 황산공원이라고 불리는 황산문화체육공원은 양산시 물금읍 낙동강 둔치에 자리 잡은 여가 선용 및 체육 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2014년 문화 체육 관광부의 육성 사업으로 선정되어 2015년까지 가꾸어 개장하였다. 약 2.52km²의 크기를 자랑하는 대규모 강변 공원으로 직접 방문해 보면 굉장히 넓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평지인 데다가 특별히 눈에 띄는 건축물이 없어 더더욱 엄청나게 넓게 느껴진다.

 

 주요 시설로 자전거길 8,876m, 산책로 10,340m, 축구장과 야구장 각 2면, 농구, 족구, 배드민턴장 각 3면, 화장실 파고라 21개 등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어린이 놀이터와 함께 미니 기차를 운행하고 있어 어린이와 함께 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시원한 강변으로 난 자전거길에는 강바람을 가르는 라이더들도 많고, 강을 따라 난 산책길은 여유를 가지고 걷기에도 좋아 도심 속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갈대와 억새가 많고, 녹지가 매우 잘 구성되어 있어 여름에는 습지에서 맹꽁이도 볼 수 있고, 겨울철에는 멸종위기 2급 겨울 철새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큰기러기와 멸종위기 1급 겨울 철새인 고니 등이 도래하는 철새도래지이다. 그 외에도 천연기념물 원앙, 새매 등도 관찰되었다.

 

 이곳에서는 각종 꽃이 사시 사철 피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봄의 벚꽃축제는 뒤에 있는 물금역 도로를 막아서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여름에는 유채꽃 축제를 개최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다양한 꽃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가는 방법은 자기 차를 가지고 가면 편리하지만,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는 양산시 시내버스를 타서 증산마을입구에서 하차(양산 버스 21, 23(심야), 양산 버스 137)하거나, 부산 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 하차 후 걸어서 가면 쉽다. 또 경부선 물금역 하차 후 버스를 타거나 걸어도 쉽게 갈 수 있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호포역에서 낙동강 수변공원의 정취를 느끼며 황산공원으로 걷는 것이다. 단순하게 황산공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낙동강 산책로도 걸으며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황산공원은 여러 번 갔으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소개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 가을에 다시 가보고 소개를 한다.

 

 부산 지하철 2호선 호포역에서 내려서 낙동강 둔치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황산공원으로 가는 산책로를 걸어 가는 방법을 택하여 지하철로 호포역까지 갔다.

 

호포역 앞 호포마을 가는 길의 먹거리 골목

 

멀리 보이는 낙동강 변의 부산

 

 호포마을 표석을 지나 도로 옆을 따라 조금 가면 강변의 풍경이 나온다. 사실 여기도 황산공원의 일부이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면 이 강변 풍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황산공원은 다소 인위적이지만 이 강변은 자연적이라 더 정감이 가는 길이다.

 

황산공원 안내도

 

물억새가 나부끼는 모습

 

옛 모래등마을의 설명과 당산나무

 

 강변의 공원지대를 지나 낙동강 가에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황산공원으로 올라간다. 시원한 바람과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걷는 길은 마음은 평화롭게 해 준다. 제법 먼 길을 주변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걷는다.

 

 

강변의 산책로와 주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선착장이 나오고 문화해설사가 있는 조그마한 건물이 나타난다. 해설사와 이야기를 나누니 요즈음에는 부산의 을숙도에서 배가 통행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저번에 내가 이 배를 타려고 을숙도 배편을 문의하니 을숙도에서는 주변만 돌고 물금까지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타지를 못한 기억도 있었다. 단순하게 눈으로 보는 것만 제시하지 멀고  이런 유람선 같은 것을 띄워 운행하는 것도 선전만 잘하면 좋은 테마가 될 수 있는데  무조건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습성이라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 해설사의 말로는 10명 이상이 신청하면 배를 운행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 문화해설사가 말하기를 이곳에서 삼랑진까지 배를 운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는데 언제 실현될는지가 의문이다.

 

물금선착장 주변

 

 산책로를 걸어 계속 올라가니 주위에 여러 운동장들이 보이고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보습도 보였다.

 체육 시설이 밀접한 곳을 지나니 비로소 꽃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댑싸리다. 아직은 푸른 빛을 자랑하고 있지만 곧 색이 변하면 더 좋게 보이는 것이다.

 댑싸리를 지나니 코스모스가 가득한 넓은 화원이 나타난다. 올해는 곳곳에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많이 가졌다.

 

댑싸리

 

코스모스 꽃밭의 여러 모습

 

바베나 피네스(버들마편초)의 여러 모습

 

꽃밭 옆의 어창

 

갔던 길을 내려오면서 보는 풍경

 

호포민물매운창마을의 간판

 

 호젓하게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도심의 공원을 찾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황산공원은 가는 길이 너무 멋이 있다. 조용히 강가에 나 있는 산책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풍경을 즐긴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일이다. 다시 가을이 깊어지면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창녕읍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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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울 탐방하려고 간 길에 창녕읍 일대의 여러 유적과 유물을 보는 기회가 있어 발걸음을 천천히 하면서 나의 특기를 살려 읍내 일대를 소요하면서 구경하였다.

 창녕 읍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소중한 유물들이 산재해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석빙고가 있어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살피니 알마되지 않아 석빙고 표시가 나타난다.

 

석빙고 길 표시

 

창녕 석빙고 설명판

 

석빙고 입구의 진흥왕 행차길 안내도

 

 석빙고는 오늘날과 같이 냉동기가 없던 옛날에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우리에게는 경주 석빙고가 잘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곳곳에 석빙고가 있다.

 

 창녕의 석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석에 의하면 빙고 ‘崇禎紀元後再壬戌二月初一日女四月初十日畢(숭정기원후재임술이월초일일여사월초십일필)’이라 새겨져 있으며 조선영조 18년(1742)에 현감 신서(申曙)등이 축조한 것으로 되어있다.

 창녕 석빙고는 봉토가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구축했다. 빙실의 입구는 남쪽에 설치했는데, 좌우에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두 곳 있다. 벽은 잡석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이 되게 표면을 치석했다. 이러한 구조 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경주, 안동의 석빙고와 같으며 규모에 있어서는 창녕 석빙고가 약간 작다.

 

창녕 석빙고는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창녕 석빙고의 여러 모습

 

 석빙고를 지나 조금 가니 만옥정공원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원은 엄청난 크기의 녹지공간이 있는 곳이지만 만옥정공원은 아주 조그마하다. 하지만 이 공원 안에는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는 도저히 없는 아주 소중한 우리의 국가 유산들이 있는 소중한 곳이다.

 

 만옥정공원은 창녕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공원으로 작은 공원이지만 봄철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250년 전에 만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봄마다 명창 대회와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국가유산이 즐비한 곳으로, 공원 뒤쪽 언덕 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국보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고,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인 창녕객사,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퇴천삼층석탑, 창녕 척화비 등의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만옥정 공원의 국가 유산 안내

 

한국전쟁 창녕지구 전승비

 

창녕현감 비군

 

 퇴천리 삼층석탑은 민가 안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 10월에 해체, 보수하여 만옥정 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탑이 있던 마을 주변에서 기와 조각과 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절 이름이나 역사를 전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탑은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기단 일부가 약간 파손되기는 했지만 통일신라의 석탑 변천 과정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다.

 

 

창년퇴천리삼층석탑

 

객사

 

창녕척화비

 

 공원의 이곳 저곳을 거닐며 여러 유물을 구경하면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척화비 바로 위에 전각이 보인다. 바로 진흥앙 순수비로 알려진 척경비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는 신라 제24대 임금 진흥왕이 재위 22년(561)에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로 지금까지 알려진 진흥왕 순수비 4기 중 하나이다. 당시 창녕군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에 신라에 병합되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군)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다른 순수비 3기와 달리 정식 명칭을 순수비가 아닌 척경비라 하는 이유는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제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읽으면 다른 순수비처럼 진흥왕이 직접 행차(=순수)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뿐더러 왕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을 직관, 직위, 소속 순서대로 나열하는 등 다른 순수비와 형식이 매우 비슷하므로, 창녕비도 이름만 '척경비'라고 할 뿐 '순수비'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옛날 내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창녕 진흥왕 순수비'라고 했는데, 현재는 척경비라고 명확히 구분한다.

 

 다른 순수비가 조선 후기에 다시 알려진 것과 달리 창녕 척경비는 존재와 위치가 완전히 잊혔다가 일제강점기던 1914년에야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500년 가까이 야외에서 풍화되다 보니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나, 후반부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바로 앞 안내판에 해석문이 있다. 다른 순수비의 내용을 참고할 때 대략 진흥왕이 빛벌가야를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과 왕의 통치이념, 포부 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후반부에 당시 왕을 수행하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당시 지방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 안에 모셔 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 그리고 원래 척경비 비석이 있었던 위치도 표지판으로 안내하고 있다.

 

 척경비는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완해줌으로써,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진흥왕 척경비

 

 만옥정공원을 지나 조금 가면 주의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창녕 진흥왕 척경비 원위치'라는 표시가 길가 위에 보인다. 원위치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여 골목 길을 들어가니 찾기가 쉽지 않다. 조금 헤매다가 마을 주민인듯한 중년의 남자에게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를 하여 주어 편하게 찾아갔다.

 

창녕 진흥왕 척경비 원위치

 

 길을 계속가니 길가의 담벽에 창녕을 소개하는 그림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그 중에서 만옥정공원과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두가 아는 산토끼 노래의 발상지라는 그림이 있어 보여 드린다.

 

 

 

 담벽의 벽화그림을 조금 지나가니 좀 이상한 건조물이 보인다. 무엇인가 궁금해서 올라가 보니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발굴된 순장소녀(일명 송현이)의 이야기를 서사로 꾸며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순장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소녀는 왜 순장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뒤에 창녕박물관을 방문하여 구경을 하니 이 송현이'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순장 소녀 송현이의 이야기

 

 우리가 아무리 잘 돌아다녀도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러니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곳에서 만족한 것을 보면 그 여행은 만족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보고 나면 다시 올 일이 없다. 그러니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한국의 유산 탐방 14(가야 문명의 길 - 창녕 송현동과 교동 고분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창녕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보이는 진한의 불사국(不斯國)으로 추정되는 곳으로(많은 학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비사벌(比斯伐)이라고도 불렸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고 많은 역사적 장소와 유물이 있는 고장이다. 그 중에서 오늘은 고분군을 중심으로 돌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녕의 중심부에 교동고분군이 있으며, 교동고분군은 인접하여 송현동고분군이 있다.  창녕고분군은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아주 멀기는 않기에 걸어가기로 하고 발길을 먼저 송현동 고분군으로 돌렸다.

 

 송현동 고분군 입구는 창녕의 유명한 화왕산 등산로 입구에 있다. 

 

화왕산 입구의 자하동천 표석

 

묘하게 생긴 바위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昌寧 校洞과 松峴洞 古墳群)은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타시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918년 일본인이 처음 발굴했으나 보고서가 남지 않고 출토 유물도 분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93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목마산 기슭에서 무덤 5기를 발굴 조사했으며, 모든 무덤은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특히 1호와 4호 무덤에서는 추가 매장 흔적이 확인되었고, 1호와 3호 무덤에서는 딸려묻기(순장) 흔적이 발견되었다 150여기 정도가 확인되는데, 출토유물과 구조양상을 볼 때 5~6세기가 중심연대가 되는 고분군으로 파악되고 있다.

 1963년 사적 제8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 인접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통합되어 사적 제 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교동고분군 주변에는 창녕박물관이 소재해 있어 창녕 고분군의 조성방법과 형태, 신석기시대부터 근래까지의 창녕군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창녕 송현동 고분군 입구 

 

송현동 고분군 입구의 마애불상

 

송현동 고분군 설명

 

송현동 고분군에서 멀리 보이는 교동 고분군

 

송현동 고분군의 여러 모습

 

 송현동 고분군을 돌아보고 교동 고분군이 멀지 않기에 창녕읍을 유람하듯이 걸으면서 여러 곳을 구경하면서 교동 고분군으로 갔다.

 

교동 고분군 간판

 

교동 고분군 전경

 

교동 고분군 설명

 

교동 고분군의 여러 모습

 

교동 고분군에서 멀리 보이는 송현동 고분군

 

교동 고분 절개 모습

 

 교동 고분군 입구에 창녕박물관이 있다.

 교동 고분군을 유람하듯이 돌아보고 창녕박물간으로 갔다. 여태까지 내가 본 박물관 가운데 가장 작은 박물관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화왕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하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내에 자리하고, 비화가야시대 유적인 무덤과 그 내부에 부장되었던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창녕박물관은 1996년 창녕지역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할 목적으로 창녕유물전시관으로 처음 개관했다. 이후 1997년 창녕박물관으로 등록·승격되었으며 2018년 박물관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하였다. 유물전시관일 때에는 복제품만을 전시했지만 2011년 국가귀속문화유산 보관관리기관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인수하여 직접 전시하고 있다. 가야와 신라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전시관 중앙홀에는 고총 고분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디오라마)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고대사회 고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창녕박물관 전경

 

순장 소녀(송현이)의 모습

 

진흥왕 척경비 복제품

 

창녕박물관 야외

 

 창녕박물관을 구경하고 창년읍을 쉬엄쉬엄 걸어서 창녕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하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아차'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창녕박물관에서 한국의 유산 탐방 스탬프를 찍지 않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시 가서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데 걸어갔다가 돌아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가서 스탬프를 찍고 돌아와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내가 좋아서 돌아다니는 길이기에 또 하나를 마쳤다는 뿌듯한 마음이 나를 즐겁게 하였다.

한국의 유산 탐방 13(가야 문명의 길 - 고성 송학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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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문명의 길 탐방을 계속하면서 오늘은 고성 송학동 고분군을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고성 근처를 지나갈 때 주변을 보니 예전에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지나갔던 거리가 많이 눈에 보여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송학동 고분군은 고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기에 버스를 내려 천천히 읍내를 걸어가니 약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고분의 모습이 보였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固城 松鶴洞 古墳群)은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으로 일명 무학산(舞鶴山) 또는 무기산(舞妓山)이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고성 소가야(小伽耶) 지배자 집단의 중심고분군이다. 원래 10여 기의 대형 봉토분이 제1 고분군과 제2 고분군으로 나눠 분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개간으로 인하여 훼손되어 원상태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고, 현재는 고성읍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무덤으로, 가장 높은 곳에 1호 무덤이 있고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6기의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무학산 정상부에 자리한 송학동1호분(松鶴洞1號墳)은 일명 무기산고분(舞妓山古墳)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봉분에 대한 등고선 실측 자료를 토대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고, 2개의 원분(圓墳)이 연결된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하나의 묘역으로 설정한다면 길이 66m에 달하는 규모가 큰 고분으로, 이 고분은 1914년 도리이(鳥居龍藏)에 의해 약식 조사된 바 있으나 조사 결과는 자세히 보고된 바 없다.

 그러다가 송학동 고분군에 대한 조사가 1999년과 2000∼2001년에 걸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어 고분의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먼저 고분군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던 제1호분이 일본의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아니라 3기의 원형고분이 중첩해서 연접된 것임이 밝혀졌다.

 

 송학동고분군은 규모나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소가야 또는 고자국으로 불리던 왕릉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송학동 고분군 전경

 

송학동 고분군 안내도

 

고분의 여러 모습

 

3기가 연접한 1호분

 

송학동 고분 설명

 

가야 고분군 설명

 

유네스코 세계유산

 

 송학동 고분군을 둘러보고 주변에 있는 고성박물관으로 갔다.

 

 고성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가야,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ㆍ전시하는 종합 역사문화공간이다.

 1999년과 2002년 이루어진 송학동 고분군 발굴조사가 성과를 거두면서 지난 2012년 5월 17일 개관한 고성박물관은 오랫동안 사라진 역사였던 소가야의 흔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학동 고분군 바로 옆에 자리해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역사를 소가야의 유적으로 되짚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소가야유물전시관으로 시작해 고성박물관으로 명칭을 하면서 고성 전반의 역사와 문화재를 알리고 있으며, 기획전시를 통해 고성의 역사 정보를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2022년 실감 기술이 고성문화유산과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한 고성박물관에서 유구한 역사의 도시인 고성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성박물관

 

새무늬청동기

 

송학동 1호분에 관한 설명

 

고구려 남정 기록

 

포상팔국 전쟁

 

고성박물관의 여러 전시물

 

고성박물관과 세계유산 표시

 

송학동 1호분 전경

 

 다른 가야시대의 고분군에 비하면 다소 작은 규모이지만 알차게 고분군과 고성박물관을 구경하며 즐겁고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올해의 목표를 한구의 유산 탐방으로 잡았는데 이렇게 다녀서 올해 안에 다 다닐수 있을는지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할 것도 없는 은퇴자가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으니 여유롭게 다니기를 마음 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2026년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예년에 비하여 너무나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항상 생각난다.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면 많은 곳에서 꽃 축제를 열어 우리를 유혹한다.

 이렇게 우리를 유혹하는 코스모스 축제 가운데 나는 잊지 못하는 곳이 경상남도 하동의 북천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꽃 축제라는 행사가 거의 없을 때 꽃 축제를 열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몇 년을 계속가다가 중단했는데 올해는 북천의 코스모스가 보고 싶었다. 북천을 가는 길은 무엇보다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멋있기에 날을 택하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내 머리속에 있는 북천역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북천역은 온통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심지어 철로 주변에도 코스모스가 피어 기차가 꽃 속을 달리는 듯한 광경을 빗어내는데 예전의 북천역과 철로를 벗어나 새로운 철로로 현대화된 북천역이 들어서 있었다.

 

새 북천역 전경

 

 예전에는 북천역에서 내려서 마을 길을 걷고 개천을 지나 코스모스와 메밀이 만발한 들판을 걸었는데 지금은 그런 멋이 없어지고 역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가면 축제장이 위치하고 있다.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축제장에 도착하니 입장료를 내고 입장권을 끊어라 한다. 조금은 어이가 없으나 어쩔 수 없이 입장권을 발급받아 코스모스와 메밀이 만발한 들판을 유람하듯이 구경했다.

 

 

제 20회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 안내도

 

지금부터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넓게 펼쳐진 들판 풍경을 그냥 즐기시기를 바란다.

 

꽃무릇

 

옛 철길 옆으로 핀 코스모스

 

 

 

 곳곳의 꽃들을 구경하다가 옛 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옛 철길을 따라 걸어갔다.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기에 철로를 따라 걸으며 옛날의 추억에 잠기는 것도 나에게는 큰 재미였다.

 

예전만은 못하나 철길 주변에 핀 코스모스

 

옛 북천역사

 

 옛 북천역사에서 다시 새 북천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기다려서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기억 속의 옛날의 아름다운 맛은 없었지만 오늘 하루도 참으로 멋진 하루를 보냈다.

 

참고로 옛날의 축제장을 기록한 나의 블로그를 보여드리니 한번 둘러 보세요,

 

https://lhg5412.tistory.com/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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