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국 탄생신화 - 구지봉, 김수로왕릉, 수로왕비릉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고대 왕국 가야의 탄생신화의 현장 - 구지봉,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김해박물관을 필두로 하여 가락국의 역사와 건국신화가 서린 장소를 찾아 보았다. 벌써 이곳을 돌아 본지도 40년도 더 지나 옛날의 자취를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이곳을 한번 답사해 본다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내어 김해 일대를 돌아다니며 가야의 옛 정취를 느껴 보았다.
먼저 김해박물관 뒷편에 있는 구지봉을 올라가니 그저 황량한 동산에 불과하다. 신라의 경주나 백제의 부여를 보다가 김해를 보면 아직 가야는 우리 역사에서 많이 잊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구지봉(龜旨峰)은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산으로 가야의 시조 가야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탄강(誕降)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높이 200m의 산으로 사적 제429호이다. 원래는 거북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구수봉(龜首峰)이라 하였는데, 지금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사적 74)이 있는 평탄한 위치가 거북의 몸체이고, 서쪽으로 쭉 내민 봉우리의 형상이 거북의 머리 모양 같다고 하여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가야의 건국설화인 「구지가(龜旨歌)」의 산실로 널리 알려져 역사적인 봉우리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가야 건국설화에 따르면, 가야 땅을 다스리던 아홉 추장이 구지봉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문득 하늘에서 알 여섯 개가 담긴 금합이 붉은 실에 매달려 내려왔다. 그 알 여섯 개가 차례로 깨어지며 아이가 하나씩 나왔다고 한다. 그 가운데 맨 먼저 나온 이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산봉우리 동쪽에는 수로왕비 허왕후릉(許王后陵)이 자리 잡고 있다. 구지봉 정상에는 1908년에 건립된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大駕洛國太祖王誕降之地)’라고 새겨진 비가 있다. 정상부에는 기원전 4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남방식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5∼6개의 짧은 받침돌 위에 지름 2.5m 정도 되는 덮개돌이 덮여 있고 그 위에 한호(韓濩)가 쓴 것이라 전해지는‘구지봉석(龜旨峰石)’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거북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고의적으로 도로를 개설하여 거북 모양의 원래 모습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수로왕릉
김해박물관 뒤의 구지봉가는 길 안내판
구지봉 고인돌 설명판
구지봉 고인돌
구지봉터와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 비석
황량한 구지봉을 뒤로 하고 박물관 반대쪽으로 내려오면 수로왕비릉을 만날 수 있다. 묘하게도 신라나 백제의 왕릉은 많이 있으나 왕비릉이라 밝혀진 것은 없는데 가야의 수로왕비릉은 따로 역사적 유적지로 남아 있다. 하나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도 있다.
수로왕비릉 입구의 구지봉 설명판
구지가(일명 영신군가) 비
수로왕비릉에서 보는 구지봉
* 김해 수로왕비릉(金海 首露王妃陵)
수로왕비릉은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龜山洞)에 있는 가야시대의 능묘로 사적 제74호다. 지정면적 3만 2,920㎡. 무덤의 지름 16m. 높이 약 5m로 왕비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라고 알려져 있다.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의 비로 허황후(許皇后)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ㆍ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로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공주를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하였다. 그녀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것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에 윤색된 것으로 보이며, 본래의 시조설화에는 왕후가 먼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형의 원형 토분이나 특별한 시설은 없다. 능의 전면에는 장대석(長大石)으로 축대를 쌓고 주위에는 범위를 넓게 잡아 얕은 돌담을 둘렀다. 능 앞에는 1647년(인조 25) 수축 때 세운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고 2행으로 각자(刻字)한 능비가 있다.
수로왕비릉 입구
수로왕비릉 안내도
수로왕비릉 전경
수로왕비릉 앞에 조그마한 비각이 있는데 이곳에는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역시 허황후의 설화가 서려 있는 석탑으로 파사석탑이라 한다.
* 파사석탑[ 婆娑石塔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의 수로왕비릉 구역에 있는 가야시대의 석탑으로, 수 천 년 전,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던 소녀가 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 꿈에 하늘의 상제가 나타나 배를 타고 동쪽 끝까지 올라가 닿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들은 딸은 부모의 말에 따라 배를 타고 고국을 떠났다. 하지만 거친 파도가 문제였다. 몇 번이나 항해에 실패하자 소녀의 아버지는 파도를 잠재우는 신령스러운 탑 ‘파사석탑’을 배에 실었다. 진풍탑인 파사석탑의 보호 아래, 소녀는 무사히 가락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설화이다. 소녀의 이름은 허황옥. 가야 김수로왕의 황후로 알려진 인물이다.
원래 호계사(虎溪寺)에 있었는데 폐사(廢寺)된 뒤 부사 정현석이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탑의 부재(部材) 5층만 남아 있는데 조각이 기이하고 돌에 붉은 빛이 도는 희미한 무늬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신농본초(神農本草)에 닭볏의 피를 찍어서 시험했다는 것이 바로 이 탑이어서 신비를 더하고 있다.
파사석탑 설명판
파사석탑
수로왕비릉 설명판
단순한 토분인 수로왕비릉
수로왕비릉을 뒤로 하고 수로왕릉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제법 걸어가면 웅장하게 보존되어 있는 왕릉이 나온다. 어느 시대의 왕릉보다 더 보존이 잘되어 있다. 큰 규모를 자랑하며 많은 부속 건물이 도열해 있어 하나의 왕릉으로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 김해수로왕릉[ 金海首露王陵 ]
수로왕릉(首露王陵)은 사적 제73호로, 가락국(駕洛國), 곧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納陵)이라고 부른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 (서상동)번지에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수로왕릉은 2011년 7월 28일에 ‘김해 수로왕릉’으로 공식명칭이 변경되었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삼국유사』「가락국기(駕洛國記)」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왕릉의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무덤의 높이는 약 5m이다. 봉분 이외에 아무런 시설도 없는 원형 토분이다. 1580년(선조 13) 영남관찰사 허엽(許曄)이 왕릉을 수축하여 상석 · 석단 · 능묘 등을 갖추었고, 1647년(인조 25)에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이라 새긴 능비가 있다.
왕릉의 경내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崇善殿)과 안향각(安香閣), 전사청(典祀廳)·제기고(祭器庫)·납릉정문(納陵正門)·숭재(崇齋)·동재(東齋)·서재(西齋)·신도비각(神道碑閣)·홍살문·숭화문(崇化門) 등의 건물이 있다. 아울러 신도비·문무인석(文武人石)·마양호석(馬羊虎石)·공적비 등의 석조물이 배치되어 있다.
무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580년(선조 13)에 당시 영남관찰사이며 수로왕의 후손인 김허수가 수로왕비릉(허왕후묘)와 더불어 대대적으로 개축한 뒤였다.
수로왕릉 하마비
수로왕릉 설명판
수로왕릉의 대문인 숭화문
입구에서 보는 수로왕릉 전경
납릉(수로왕릉) 정문
수로왕릉의 여러 모습
숭신각
신도비
연화대석
멀리서 보는 수로왕릉
숭정각
문을 열어 놓지 않아서 보이는 듬 사이로 찍은 존영
포덕문
숭안전
숭인문
숭선전 설명
숭선전
안향각 설명
안향각
숭안전
숭안전 설명
숭안전에 모신 8왕의 표지석
숭모전
숭경문
경모문
사적 73호 수로왕릉 표지석
구지봉과 수로왕비릉, 그리고 수로왕릉은 교육의 장소로 좋은 곳이다.
모두들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구지가'를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래에 얽힌 신화적 세계를 공부하였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가야국의 건국신화가 서려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그뿐 아니라 또 하나의 설화인 수로왕비의 이야기도 신화적인 이야기를 벗어나 동화적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 온다.
이 역사적인 장소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잘 가꾸어져 있다. 우리는 신라의 경주나 백제의 부여는 잘 찾아가지만 가야의 김해는 찾아가는 경우가 더물다. 왜 그럴까? 누군가는 말했다. 가야는 잊혀진 왕국이라고.....
하지만 가야는 엄연하게 우리 역사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가야의 찬란한 문화는 일찍부터 일본에 전하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대마도에 가면 일본 신화의 신사가 있는데 이 신사의 문은 정확히 우리나라 김해를 향하여 있다. 바로 가야가 그들의 고향이라는 이야기이다.
좀더 이 가야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일혀져 가는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되살려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로 가야의 역사적 출발인 이 김해를 많이 찾아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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