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유감
鶴의 주저리 주저리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유감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최근 어느 원로 법조인이 은퇴를 하고 대형 로펌에 가지 않고 아내의 조그마한 가게일을 도우며 지내다가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말로 언론에 보도된 말이다. 언론은 그 법조인의 깨끗함을 칭송하면서 이 제목을 달았지만 나는 이 말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말은 원래 《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 편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제(濟)나라 선왕(宣王)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자연히 열리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 그리고는 이어서 “어떻게 어진 임금이 백성들을 그물질할 수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항산무항심 [無恒産無恒心] (두산백과)
이 말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경구로 나도 항상 이말을 조금 변형하여 잘 사용하는 글귀이다. 나는 이 말을 ‘유항산(有恒産)이면 유항심(有恒心)이요, 유항심(有恒心)이면 유항산(有恒産)이다.’라고 말하면서 필부인 내가 그저 마음이 변하지 않을 정도의 재물을 얻기를 바라고, 또 변하지 않을 마음을 가지기를 항상 기대하고 살고 있다.
맹자에 따르면 뜻있는 선비는 ‘무항산(無恒産)이라도 유항심(有恒心)’이라야 한다. 일개 시정의 필부가 아니라면 항상 자신이 가지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위직을 지내고 존경받는 어른으로 알려진 분께서 자신의 소신을 버리고 필부와 같이 행동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며 현세에는 제대로 된 선비를 찾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재물을 가진다는 것이 욕되거나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다. 자신의 정당한 노력으로 떳떳하게 얻은 재물은 누구에게라도 찬사를 받을 일이다. 도덕적으로 아니 법률적으로라도 비난을 받지 않는 재물을 가지는 것을 누가 헐뜯고 욕할 것이랴? 누구든지 재물에 대한 욕심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지 못하는 재물이기에 많이 가진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도 또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질투심이라 이것 또한 욕할 것이 없다.
나는 일찍부터 재물을 모으는 일에는 소질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물에 대한 욕심은 일찍 버리고 내 마음이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부동산 투기에 미친 듯이 내달릴 때도 나는 오연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집이란 내가 거주하기에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기에 편한 곳에서 그저 오래 살아왔다. 내가 결혼한지가 30년이 넘었는데도 이사를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면 모두들 놀란다. 이 한 번도 자식들이 생기고 성장함에 집이 작아서 좀 큰집으로 이사를 한 것뿐이다. 집을 사고팔면서 재물을 더 가진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내의 생각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아내 역시 재물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이 편안히 자신의 삶을 살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아내에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안함도 가지고 있다.
나는 재물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내가 아무리 욕심을 내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그마한 재물에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었다. 내가 흔히 말하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가용을 탈 때 나는 택시라도 탈 수 있으면 만족하고, 다름 사람이 택시를 탈 때 나는 버스라도 탈 수 있으면 만족하고, 남이 버스를 탈 때 나는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으면 만족한다.” 그만큼 재물에 욕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늘이 내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재능을 주었으면 재물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으로 내가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으면 그도 족한 것이라 생각하고 평안하게 마음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재물을 모으기보다 자연을 즐기며 여러 곳을 여행하며 즐겁게 보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왔다.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르러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아도 후회는 없다.
이제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소박한 삶을 벗어나면서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을 하고 있음을 보고 나는 생각한다. 유항심(有恒心)이면 유항산(有恒産)이 아닐까? 굽히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 재물에 미혹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재물이 먼저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야 되지 않을까? 내가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재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물론 필부이니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물(남보다 더 잘 살고, 호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정도)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많은 생각이 든다. 공자님이 “나물밥 먹고 맹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자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옳지 못한 부나 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飯疎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고 말씀하셨다. 부니 귀니 하는 것은 떠가는 구름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비록 성인들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오늘도 성현의 말씀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수오재기’에서 말했듯이 나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아주 중요하다. 나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절에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 기사를 보고 다시 생각해 본다. 비록 필부고 세속에 찌든 인생이지만 나를 계속 지키고 마음을 바로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유항심(有恒心)이면 무항산(無恒産)이라도 좋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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