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평화의 길 5코스(고양종합운동장 - 심학산둘레길 - 파주출판도시 - 송촌교 - 통일동산/성동사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5코스는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을 출발하여 심학산둘레길을 돌아 파주출판도시를 가로질러 통일동산/성동사거리에 도착하는 20.7km의 평화의 길에서는 비교적 긴 거리다.

 

평화의 길 5코스 출발점의 안내판

 

 어제 대화역 주변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5코스의 출발점으로 왔다. 어제 저녁 때는 이 휴게공원의 인공암벽 등반장에 많은 사람이 보였는데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고요함만이 느껴진다. 코리아둘레길을 걸을 때는 항상 아침 일찍 출발하기에 인적이 없는 장소에서 조용하게 시작하는 재미도 있다.

 

출발점인 휴게공원의 인공암벽

 

이정표

 

 아직 인적이 드문 대로를 따라 걸으니 낮에는 소란스럽게 느껴지는 도시의 적막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고요한 길을 제법 걸어가니 가좌근린공원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일산서구 가좌마을 중앙부에 있는 가좌근린공원은 가좌마을 개발 전부터 보존되어온 낮은 동산을 활용해 20여 년 전 아파트 개발 시기에 맞춰 공원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가좌마을의 많은 지역행사가 이 공원 광장에서 이뤄지는 점을 반영하여 주민들이 축제를 관람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계단을 없애고 바닥을 평평하게 해 광장 공간을 넓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공원이다.

 

가좌근린공원

 

 가죄근린공원을 지나 대로를 따라가다가 심학산으로 접어 든다.

 

 심학산은 파주시 교하읍 서남단의 한강 하류 자유로 변에 위치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심악산으로 나오며, 조선 시대의 경기 5(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 중 하나이다.

 원래 명칭은 고려 시대 전까지만 해도 넓은 평야와 구릉지에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홍수 때 한강 물이 범람하여 내려오는 물을 막았다 하여 수막산(水幕山)’, 또는 물속으로 깊이 들어간 메뿌리라고 호칭하였다. 다른 명칭으로는 홍수가 일 때 산이 깊이 잠겼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심악산(深嶽山)’, 바위가 깊숙히 포진해 있다며 붙여진 심악산(深岳山)‘이 있다. 이외에도 거북의 등딱지를 닮아서 구봉산(龜峰山)’이라고 칭하였다. 현재 명칭은 조선 숙종 때 왕이 애지중지하던 학() 두 마리가 궁궐에서 도망쳤는데 이후 이곳에서 찾았다고 해서 학을 찾은 산, ‘심학(尋鶴)'으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 오는데, 대동여지도와 같은 일제강점기 이전 문헌에는 끊임없이 심악산(深岳山)’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는데, 1913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전설급동화(朝鮮傳說及童話)’에서 심학산(尋鶴山)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면서 대략 1910년대 사이에 해당 명칭으로 의도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심학산을 올라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에서 보는 탁 트인 풍경이 눈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심학산 산림공원은 심학산을 두르는 둘레길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심학산 둘레 코스는 배수지-약천사-수투바위-배밭정자-낙조전망대-솔향기쉼터로 6.8km이다. 산림욕을 즐기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쭉 뻗은 자유로와 한강, 김포, 관산반도를 조망할 수 있으며,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그야말로 일품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낮에 이곳을 지나간다.

 

심학산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휴식을 한 정자

 

 

 심학산을 둘러 내려오면 파주출판단지가 나온다. 파주출판도시는 파주시 문발동에 출판사 등이 모인 산업단지로 정식 명칭은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이다. 말 그대로 출판사 및 출판 관련 업체들로 이루어진 곳이며, 공식 산업단지로도 인가되어 있으며 한국의 웬만한 출판사와 출판인쇄소의 반 이상이 여기에 있다.

 단지 초입 좌측에 출판유통사 북센의 낮고 거대한 건물(종합유통센터)이 서 있고, 더 들어가면 각 출판 관련 회사들의 사옥과 창고, 공장, 상가 건물 등이 야트막하게 이어져 있다. 단지를 구성하는 각 회사의 사옥들을 보면 독특하고 멋있는 디자인의 건축물이 많다. 이는 애초에 헤이리 마을과 같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에 한정하여 허가해 내주었기 때문에 대부분 국내외 건축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하여 지은 건물들로, 경제적 효율성에 덜 연연하고 미적인 데 주안을 두고 지었다고 한다.

 

파주출판단지의 여러 모습

 

 파주출판단지근린공원은 출판과 문화의 중심지인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공원으로, 이 공원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제공한다.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야외 공연과 문화 행사들이 개최되어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는 곳이다.

 

 

파주출판단지를 지나 산길과 언덕길을 따라 걸으니 오른쪽에 큰 기와집이 보인다. 이 외진 곳에 무슨 건물인가 의아해서 주변에서 나물을 캐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무슨 박물관인가를 지었다고 하며 영 못마땅한 얼굴로 대답을 해 주었다. 무슨 용도로 지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별 특이한 곳도 아닌 것같아 그냥 지나쳤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어 제법 가니 큰 도로가 나타나고 바로 통일동산 입구다.

 

 통일동산(統一東山)은 동서화합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남북한 교류협력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가시적 사업추진이 요구됨에 따라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에서 제시된 '평화시 건설구상'의 일환으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법흥리 일원 약 300에 조성한 안보·관광단지이다.

주요 목적은 1천만 이산가족의 망향의 한을 달래는 만남의 장소이자 각계각층의 통일 의지를 일깨우는 통일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곳에는 이미 통일전망대를 비롯해 축구 국가대표팀 전용 트레이닝 센터 등이 마련되었고, 헤이리마을, 카트랜드, 프리미엄아울렛 등 여러 관광 콘텐츠가 있으며, 한반도 평화관광의 중심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통일동산/성동사거리

 

 이곳 주변에는 제법 도시의 번화가와 같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더 소중한데 찾기가 너무 어렵고 조금은 소홀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그냥 이 코스를 통과하여 조금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걸었다.

평화의 길 4코스(전류리포구 -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 일산대교 -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4코스는 전류리포구를 출발하여 한강 옆으로 난 큰길을 따라 걸어 운암사거리에서 계속 가서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을 지나 일산대교를 건너 고양시의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에서 끝이 나는 15.2km의 길이다.

 

평화의 길 4코스 안내판

 

전류리 표구 설명판

 

 4코스를 시작하여 조금 가니 자전거 길과 걷기 길이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걷기 길이 사유지라고 철망으로 보행을 막아 갈 수가 없었다. 코리아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곳이 곳곳에 보여 보일 때마다 두루누비에 전화로 알려주고 현장의 사진도 찍어 보내주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전화하여 알려주니 서울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길을 만들면서 사유지의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는지 아니며 무시하고 만들었는지를 모르겠으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하다. 사유지라고 막아 놓은 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돌아가야 하므로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가 도중에 언덕 위로 올라가 길을 따라가니 제법 걷고 나서 자전거 길과 걷는 길이 마주하였다. 그래서 이것도 두루누비에 전화를 걸어 알려주고 계속 길을 갔다.

 

사유지로 막아 놓은 철조망

 

도로를 따라 한강에 쳐진 철책선

 

 한강을 옆에 끼고 길을 계속 가니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 나온다.

 

 정식 명칭은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은 '생태공원', '에코파크'등으로 줄여 부르는, 탁 트인 한강 변에 펼쳐진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의 푸른 습지와 넓은 들판을 따라 걸으면 철새들의 힘찬 날갯짓 속에서 자연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생태체험과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산책길을 가진 이곳은 바로 수도권 최대의 생태공원이다. 엄청나게 널은 부지에 조성된 이곳은 철새들이 많이 찾는 반달형 농경지를 김포한강신도시 조성에 따라 야생조류의 생태와 서식환경 보존·관리를 위해 만들었다. 여러 종류의 기러기와 재두루미 등이 날아들어 다양한 철새를 관찰할 수 있으며, 물길 따라 걸으며 느끼는 한강의 정취와 아름다운 경관은 철새와 사람 모두가 쉬어가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한강신도시를 지을 당시 LH는 신도시를 3개의 지구로 나눠 개발하였고, 그중에서 A지구는 인공호수나 하천을 설치하지 않고 한강 하류 변에 위치한 점을 살려 기존의 습지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공원화하는 생태공원을 조성하였는데, 이것이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다. 자연 보존을 위해 만든 공원이라 기존 습지의 훼손은 최소화하였으며, 산책로와 자전거길, 벤치 등의 시설만 조성되었다. 따라서 공원 면적의 대부분이 갈대밭과 논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에서는 철책과 감시초소를 볼 수 있다.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의 여러 모습

 

DMZ 평화의 길 표시

 

 

 길을 따라 계속 가니 저 멀리에 고양의 일산대교가 보인다. 일산대교(一山大橋)는 길이 1,840m로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과 김포시 걸포동을 연결하는 한강의 33개 다리로 20038월 착공되어 20081월에 개통되었으며, 정식개통은 2008516일이다. 수도권의 대표적 철새 도래지인 장항습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친환경 공법을 도입하고 장식을 위한 시설은 배제하였다. 외벽 도색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연두색을 사용하였고, 겉모습도 평범하게 꾸몄으며, 야간에 교량을 돋보이도록 비추는 장식용 조명시설도 갖추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일산대교

 

일산대교를 건너며 보는 물새들의 모습

 

일산대교에서 보는 풍경

 

 일산대교를 건너 고양시에 들어선다. 고양은 새로운 도시답게 활기에 넘친다. 도로를 따라난 길을 걸으면서 시내를 구경하며 따라가니 고양종합운동장이 나타나고 계속가니 휴게공원이 나온다. 여기가 4코스 끝인 곳이다.

 

고양 시내 풍경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에 도착하니 이 부근에는 숙소를 구할 수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대화역 부근으로 갔다. 대화역 부근의 숙박업소에 들어가니 평소와 다르게 요금이 비싸다. 주인에게 요금이 비싸다고 하니 주말이고 오늘 BTS가 고양에 와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요금이 비싸졌다고 했다. 시내를 걸어오며 곳곳에 깃발을 보았는데 이날은 BTS 데뷔 12주년 기념 축제가 고양 킨텍스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숙소에서 가볍게 종일 걸으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평화의 길 3코스(애기봉입구 - 사암2리마을회관 - 전류리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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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3코스는 애기봉입구에서 시작하여 마근포리와 석탄리철새조망지를 거쳐 전류리포구까지 걷는 16.7km의 특별한 것이 없는 한적한 길이다.

 

애기봉 입구의 평화의 길 3코스 안내판

 

 3코스는 산에서 내려오면 도로 가에 3코스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북쪽으로는 애기봉으로 가는 도로가 뻗어 있고 도로를 건너 농촌의 마을 길을 따라 걷는다.

 

애기봉으로 가는 도로

 평화의 길은 애기봉으로 가지 않지만 애기봉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인 애기봉(愛妓峰)은 155m의 높이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이 봉우리에는 슬픈 사연이 전해진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으나 감사는 강 건너 개풍군에서 오랑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넜다. 홀로 남은 애기는 매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를 기다리다 병들어 죽어 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1966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恨)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 명명하고, 친필로 휘호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
정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1993년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망배단이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때는 북녘을 향해 대형 트리를 세우고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며 석가탄신일에는 법회가 열리는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

 

평화의 길 안내판

 

 마을 길을 가다가 왼쪽을 보니 박신의 묘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제법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사당이 보인다. 그리고는 아무 특징없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박신 묘역 안내

 

한강을 접하고 있는 쳘책선

 

 이 길에선 마을을 잇는 길과 시원스레 뻗은 농로를 걷는다. 전류리까지 여러 마을을 지나는 들판에는 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의 파릇파릇한 벼는 가을과는 다른 정감을 느끼게 한다.

 

아리수 낚시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아리수낚시터를 지나 길을 걷다가 보니 뜻밖의 집이 보인다. 너무 깨끗하고 단정한 집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 무슨 집인가 의아했는데 옆에 '초리화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조용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끽하며 예술을 즐기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그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하였다.

 

 

 농로를 걷다 지나는 석탄리 철새 조망지는 손꼽히는 포토존으로 알려져 있다. 김포평야가 맞닿아 먹이가 풍부해 많은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백로, 황로, 왜가리 등은 물론 겨울 철새인 재두루미도 날아오며 흑두루미가 찾기도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석탄리 철재조망지에서 보는 풍경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 가를 따라 걸으니 전류리포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 한강 하구에 자리한 유일한 포구인 전류리 포구는 한강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서해로 나가는 마지막 길목이자 최북단 어장으로, 어로 한계선과 그리 멀지 않아 사전에 허가를 받은 배들만이 바다로 나갈 수 있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이 긴 여행을 마치고 서해로 합류할 즈음, 민물과 짠물이 넘나드는 기수역인 풍요로운 강의 하구에 포구들이 들어선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전류리는 12시간 간격으로 바뀌는 물때는 물론 거센 조류의 흐름 파악하기가 아주 힘든 곳이다. 그래도 풍부한 어장 덕에 계절마다 민물고기며 바닷고기며 풍부하다.

 

전류리포구 간판

 

 이곳에서 평화의 길 3코스는 끝이 났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없기에 주변을 좀 둘러보다가 잠시 쉬고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평화의 길 2코스(문수산성 남문 - 문수산성전망대 - 김포 DMZ평화쉼터 - 애기봉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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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길 2코스는 문수산성 남문 부근에서 출발하여 멀리 한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산길을 걸어 김포 DMZ평화쉼터를 지나 애기봉 입구에서 끝이 나는 7.8km의 아주 짧은 거리지만 계속해서 야트막한 산을 넘어야 하므로 쉽지 않은 길이다.

 

2코스 시작점에 있는 여러 길 안내판

 

 평화의 길은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이 겹쳐 있는 구간이 많아서 3개의 길 안내판이 같은 곳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관계기관이 협조하면 하나로 정리하고 좀더 세밀한 안내판을 세울 수 있을 것인데 각 기관이 서로 자신만을 내세우는 것 같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통진읍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2코스 시작점에 와서 산으로 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산길을 올라가서 문수산을 둘러싸고 있는 문수산성 벽 주변을 걷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정상부에 있는 문수사를 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문수산성은 김포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문수산에 자리한 둘레 2.4km의 산성으로 1964년 사적 제139호로 지정됐다. 명칭은 신라 시대 때 산 정상에 창건된 문수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694년 숙종때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1812년 순조에 의해 고쳐 쌓았으며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산성이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위에서는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의 여장을 둘렀고, 성문은 취예류와 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가 침략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른 산성으로 조선군이 프랑스군 방어에 성공하였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졌고,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병인양요 때 북문, 서문, 남문이 소실됐다. 소실되었던 북문은 1995년에 남문은 2002년, 장대는 2017년 복원되었고, 2023년 4차 조사에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방어시설 여장, 공해루(서문)로 추정되는 성문지 기초 등이 발굴되었다.

 

문수산성 유적지

 

 

문수산성 전망대에서 보는 강화 앞 바다

 

문수산성 성벽 길

 

문수산성 설명판

 

홍예문 설명

 

 산성 벽을 따라 계속 가다가 정상으로 가지 않고 홍예문에서 성벽을 통과하여 아래로 내려간다. 산길을 따라가면 조강1리의 입구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 좀 가면 김포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가 나온다.

 

김포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

 

김포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안에 들어가 잠시 쉬면서 자료를 얻으려고 들어가니 근무하시는 분이 자리를 비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니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요즈음 어디에도 특별한 실내가 아니면 신을 벗는 곳이 드문데 이곳은 조금 별난 것 같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를 산보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대부분이 등산화를 신고 있다. 그래서 등산화 끈을 풀고 다시 묶는 일이 너무 번거롭다. 오랜 시간을 긴 길을 걷기에 사소한 조그마한 일도 피로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주변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갔다. 평화의 길 거점센터라면 길 걷는 사람에게 편리함을 제공해야 하는데 너무 근무자 위주로 만들어진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애기봉 입구의 길 표시

 

 평화의 길 거점센터를 지나 산길을 걸어 조강저수지를 지나서 조금 가면 애기봉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2코스는 끝이 난다. 별 특이한 것도 없이 다음 코스를 가리키는 말뚝이 서 있고 애기봉으로 가는 도로가 뻗어 있는 곳이다.

 

평화의 길 1코스(강화평화전망대 - 강화고려천도공원 - 연미정 - 문수산성 남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DMZ 평화의 길은 동··남해와 DMZ 접경지역을 하나로 연결한 약 4,500km의 코리아둘레길의 북쪽 길이다. 인천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까지 한반도의 마지막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총 34개 코스, 510km의 걷기 여행길로, DMZ 초입인 민간인통제선 인근에 자리한 최전방 마을, 전적지, 평야와 강, 산악 지형을 지나며 한반도 중부의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자유롭게 방문 가능한 횡단노선과 투어 예약 후 방문이 가능한 테마노선으로 나누어진다. '테마노선'은 민통선 이북의 생태·문화·역사자원을 통해 국민이 안보,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하도록 조성한 길로 각 테마길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접경지역에 서식하는 각종 야생 동식물의 보호와 참여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되 주요 구간에서는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참가자가 직접 철책 길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평화의 길 노선도(두루누비에서 가져 옴)

 

 어느새 코리아둘레길을 걷기 시작하여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을 다 걷고 마지막 남은 DMZ 평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국의 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만끽하고 즐기며 걸으니 알지 못하고 있던 여러 일도 알게 되었고 알게 모르게 건강한 몸도 가지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서해랑길 걷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여러 다른 일도 하면서 보내다가 다시 DMZ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부산 집에서 강화도 평화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너무 먼 길이고 몇 번을 대중교통편을 갈아타고 해서 평화전망대에 도착하니 아침 일찍이 부산을 출발했는데 벌써 오후다.

 

평화의 길 1코스는 인천 강화구간으로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출벌하여 고려천도공원 연미정을 거쳐 강화대교를 건너 문수산성 남문에서 끝이 나는 18.9km의 길이다. 이 길은 한강 하구의 철책을 옆에 두고 걷는 길이 대부분이라 도로를 단순하게 따라 걷는 길이 대부분이나 많은 구경거리가 있는 길이다.

 

1코스 시작점에 있는  'DMZ 평화의 길’ 종합안내도

 

멀리 보이는 북한 땅

 

이정표

 

왼쪽으로 한강 하구를 따라 이어진 철책선

 

 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걸으면 철산리검문소가 나타난다. 근무를 하는 군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물으니 찍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대로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걸으니 왼쪽으로는 철책이 가로막고 있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빤히 보이는 곳이 북한의 황해도 땅이 보인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은 철책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고 지나가는데 우리는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부산에서 살면서 이런 감정을 가지는 일도 드문네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걷는 길에서 얻는 소득이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고려천도공원이 나온다. 고려천도공원은 강화군 송해면 12에 민통선 안보 관광코스 조성사업의 하나로 2019년에 개장한 역사 테마공원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강화천도는 몽골에 항전하기 위해 고려 고종이 1232년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일이다. 이후 38년간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역사를 천도문을 시작으로 고종사적비까지 강화 해안가를 따라 돌아볼 수 있게 조성되었다. 천도문을 지나 천도문 광장에 들어서면, 고려 시대 대몽 항쟁을 위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외 팔만대장경과 상정고금예문 등에 대한 자료와 강화도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 유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 천도 길 설명

 

팔만대장경 비

 

고려천도공원 간판

 

 고려천도공원을 지나 철책선을 따라 난 길을 걸어가면 연미정이 나온다. 이 길에는 여러 돈대가 있지만 가 볼 수는 없고 표지만 보고 지나왔다.

 

 

 연미정 가까이에는 역시 검문소가 있다. 이곳이 최북단임을 증명하듯이 지나가는 차들을 모두 검문을 하지만.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나같은 사람은 그냥 지나가게 한다. 검문소를 지나 연미정에 올라갔다. 연미정에서 보는 북쪽과 동쪽은 탁 트여 있다. 북쪽으로는 멀리 황해도가 보였다.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위치한 연미정은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자다.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로,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1244년 왕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제(九齊)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면학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510년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하며, 1627정묘호란 때에는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정자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한강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성시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연미정 앞에 배가 머물던 곳이였고, 성곽과 성문을 복원한 것으로 보아 앞쪽으로 나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강화로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년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의 풍광과 정자 양쪽에 수백 년 된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연미정 올라가는 길

 

월곶돈대

 

연미정

 

연미정에서 보는 풍경

 

월곶진 안내판

 

 연미정을 내려오니 평화전망대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보지 못했던 슈퍼가 보인다. 날이 너무 더워 가게에 들어가 차가운 음료수를 사서 마시다가 바로 옆 검문소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줄 수가 있는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함부로 음식물을 주기도 조금은 의심스러워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엿다. 그래서 차가운 음료를 세 통을 구입해서 그들에게 주니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한다. 내 아들보다 더 어린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장을 보면 꼭 무엇이라도 하나를 주고 싶은 마음인데 조금은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슈퍼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간다. 길을 가다가 보니 강화도 와이너리를 선전하는 선전물이 곳곳에 붙어 있다.

 

외이너리 선전

 

 

 계속 철책 가로 난 길을 따라가니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나타난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공원인 곳으로 6.25 참전 유엔 16개국의 기념비가 있다.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입구

 

참전 16개국 기념비

 

 

 계속 길을 따라가니 강화대교 밑에 갑곶나루 선착장 표지석이 있고 그 옆으로 갑곶성지가 나타난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길만을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길 주변의 여러 역사적 현장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걷는 길의 즐거움이라 갑곶순교성지로 올라갔다.

 

 갑곶순교성지(甲串殉敎聖地)의 조성은 19세기의 천주교 박해에서 시작된다. 1866년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됐고 갑곶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또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진두(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 후에 천주교 인천 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렸다. 강화도 성지로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진무영(鎭武營) 순교성지, 관청리 형방이 있으며, 십자가의 길, 순교자 삼위비, 박순집 베드로 묘 등을 순례할 수 있다.

 

갑곶나루선착장 표석

 

순교선지 갑곶 표석

 

갑곶순교성지의 여러 모습

 

 갑곶순교성지를 나와 구 강화대교를 건너가면 이제 강화를 벗어나 김포도 들어간다. 강화대교(江華大橋)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까지 연결하는 연륙교로 1997에 개통되었다. 1970에 개통된 기존의 교량인 강화교가 노후화되어 새로 건설된 다리이다.

 

구 강화교

 

구 강화교에서 보는 강화대교

 

평화의 길 안내판

 강화교를 지나 길을 따라가니 비교적 최근에 복원한 문수산성 남문이 멀리 보이고 조금 더 가니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이 나타난다.

 

1코스의 마지막 지점 주변 안내판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리 찾아도 코스의 안내판이 없다.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에는 모두 각 코스의 안내판 크게 서 있어 다음 코스를 대강 알 수 있었는데 평화의 길에는 코스 안내판이 없다. 그리고 코스를 인증하는 두루누비의 인증 QR코드도 찾기가 상당히 불편하고 힘들다. 주변의 코스 말뚝이나 안내판 그리고 여러 곳을 잘 찾아야 한다. 

 

 또 이 주변에는 숙박을 할 곳도 없어 버스를 타고 통진읍으로 가야 숙박을 할 수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내가 코스 종점에 도착해 QR 코드를 찾으니 젊은 여인이 말뚝에 붙어 있다고 알려주어 코드를 찍고 나오다가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김포에 살면서 여러 길을 걷는다는 아직은 젊은 나이인 그 여자는 은퇴하면 여러 길을 걷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여 내가 걸은 여러 길을 이여기해 주고 나는 통진읍의 통진 성당에서 내려 숙소로 향했다.

 

서해랑길 103코스(창후항 - 별악봉 - 강화평화전망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의 103코스는 서해랑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창후항에서 출발하여 산길을 걸어 별악봉을 지나 강화평화전망대까지 가는 13.1km의 짧은 길이다. 이 길에는 아무런 특별한 곳도 없이 그냥 산길을 걸어 마지막 평화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103코스 안내판

 

창후항 엠블렘

 

창후항 풍경

 

 창후항에서 출발하니 오른쪽 언덕 위에 카페가 보였다. 커피나 한잔하고 잠시 쉬기로 하고 카페로 가니 손님은 아무도 없이 나이가 지긋한 주인 여인만 있었다. 커피를 한잔시키니 주인도 무료한지 옆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주인은 서울 방배동에서 갈다가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서 카페를 차려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길을 가다가 카페에 들어가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대부분이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과거의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쉬고 다시 길을 나서니 바로 옆에 무태돈대가 보인다.

 

 강화군 화도면 창후리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태돈대(無殆墩臺)1679(숙종 5)에 쌓은 48개의 중 하나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여러 돈대와 함께 무태돈대는 인화보의 관리 아래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 역할을 했다. 직사각형 형태인 무태돈대는 둘레 210m 성곽 폭은 2m이며 해안을 향해 포좌 4문을 설치했으나 동쪽과 서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남쪽 성벽은 하부만 남아있어 최근 새로 상부를 쌓았다.

 

무태돈대의 여러 모습

 

 무태돈대를 지나 바닷가 길을 따라가니 이곳이 최북단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해안에는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통행을 못하도록 하였고 길을 따라 걷게만 하였다.

 

바닷가의 철조망

 

평화전망대 이정표

 

 

 길을 가니 성덕산으로 올라가게 한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가 있는 바위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길을 따라 가면 이 바위들을 만나는데 조금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덕산 이정표

 

선녀바위의 설명

 

장군 바위 설명

 

두꺼비바위 설명

두꺼비 바위(모양이 상당히 닮았다.)

 

 두꺼비바위를 지나 마지막 구간인 별악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제 정말로 서해랑길 다 걸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산길을 걸어가니 산을 내려가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니 평화전망대에 도착한다.

 

평화전망대 이정표

 

강화평화전망대 입구 표시판

 

서해랑길 마지막 안내판

 

 서해랑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강화평화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조금 더 가야 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평화전망대에 가서 실제로는 가지는 못하는 북녘 땅을 눈으로라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평화전망대에 가서 여러 구경을 하였다.

 

 강화도 최북단 양사면 제적봉에 있는 강화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 이북 실향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한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통선북방지역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되어 200895일 개관하였다.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삼달리까지의 거리는 2.3km로 해안가를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평화전망대

 

평화전망대에서 보는 북녘 땅

 

 평화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쉬다가 다음에 걸을 평화의 길 1코스의 시작점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나와 같이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자기도 지금 서해랑길 완보를 마쳤다면 하기에 서로 하이 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그 사람은 평화의 길을 바로 시작한다며 함께 걷기를 청했으나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 돌아가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약 1,900km의 긴 길을 드디어 완보하였다. 처음 출발할 때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훨씬 많이 걸렸다. 지난해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느라고 걷기 좋은 계절을 모두 거기에 소비하였고 작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워서 걸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올 봄에 걷기를 다시 했으나 뜻하지 않은 무릎에 이상이 있어 두 달을 허비하였다. 그러다 보니 예상보다 일 년이 더 걸렸으나 완보를 하였다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길을 걷는 구간은 교통편을 단 1m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해남 땅끝에서 출발하려 강화도 평화전망대까지 오는 길에 참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경치를 즐겼다. 걷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으며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여정이었다.

 

서해랑길 102코스(외포항 - 계룡돈대 - 망월돈대 - 창후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102코스는 외포항에서 출발하여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경치를 즐기다 보면 여러 곳에서 돈대가 나오고 창후항에서 끝이 나는 10.9km의 아주 짧은 길이다.

 

102코스 안내판

 

외포항의 여러 모습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외포항을 떠나 걷기로 했다. 오늘 가야 할 길은 멀지는 않았지만 강화도 최북단에서 돌아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기에 되도록 빨리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의 외포항은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고요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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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청저수지로 가는 이정표

 

 황청저수지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나지막한 산으로 올라가니 유스 호스텔이 보이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게 한다. 유스 호스텔 옆의 공터에 풍물놀이를 하는 석상이 세워져 있어 잠시 보다가 길을 재촉하였다.

 

유스 호스텔

 

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길을 가다가 보니 수도원이 보인다. '예수의 성모수도원'이라는 현판을 보고 들어가서 경내를 구경하고, 성전에 들어가려니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하였다. 그래서 등산화를 벗기도 번거롭고 하여 바깥을 조금 구경하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나왔다.

 

예수의 성모수도원

 

황청저수지

 

 

 

 황청저수지를 지나 내려오니 바닷가의 방죽위로 길을 내어 걸어가게 한다. 제법 먼 길을 바다를 보면서 가니 계룡둔대가 나타난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1679(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고 한다. 특히 강화도에 있는 돈대들은 조선 인조 14(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 해안 경비를 튼튼히 하기 곳곳에 쌓아두도록 한 것이다.

 

바다를 보고 걷는 길

 

 망월평야 남서방향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계룡돈대(鷄龍墩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로 199531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현지 안내문에 의하면 계룡돈대(鷄龍墩臺)는 조선 숙종 5(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황청리 앞 들판 끝자락의 작은 동산에 서해를 바라보게 쌓은 작은 돈대이다. 장방형 화강암으로 길이 30m, 너비 20m, 석축높은 3~5m 규모로 쌓았는데, 바깥벽 동벽 석축 하단에 "강희 184월일 경상도 군위어영(康熙十八年四月日慶尙道軍威禦營)"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강화지역 53개 돈대 중 유일하게 그 쌓은 연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계룔돈대의 외부와 내부

 

 계룡돈대를 지나 바닷가 길을 따라가면 멀지 않은 곳에 망월돈대가 보인다.

 

 망월돈대및장성(望月墩臺長城)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돈대로 199531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11호 망월돈대 및 장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818일 현재의 명칭 망월돈대(望月墩臺)로 변경되었다.

 

 망월돈대는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대개 돈대들이 해안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망월돈대는 갯가 낮은 지대에 설치됐다.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경계초소로 부족함이 없었고, 남쪽으로 계룡돈대, 북쪽으로 무태돈대가 있다. 돈대와 함께 있는 이 장성은 고려 고종이 이곳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으로, 누각을 설치한 출입문이 6, 물길이 드나드는 문이 7곳 마련되어 있었다.

 

망월돈대의 여러 모습

 

 망월돈대를 지나 바다의 풍경을 즐기면서 길을 가면 작은 창후항이 나타난다. 바닷가에는 제법 큰 수산물센터가 있으나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론 내가 지나는 시간이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창후항에 도착하여 102코스는 끝이 났다. 시간이 아직 오전 10시도 되지 않았지만 이 주변에서 무엇을 보거나 즐길 것도 없어 바로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서해랑길 101코스(곤릉버스정류장 - 강화가릉 - 건평항 - 외포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101코스는 곤릉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고려시대의 여러 능을 지나고 건평항을 지나서 외포항에서 끝이 나는 비교적 쉽고 짧은 13.4km의 길이다.

 

길가에 있는 101코스 안내판

 

 강화 곤릉(江華 坤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2대 강종의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으로 강화 천도기(1232~1270)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이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1974년에는 봉분과 능역이 파괴된 것을 보수, 정비하였고,  2004년 발굴 조사를 통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1992310일 사적 제371호로 승격되었고, 2011년 곤릉에서 강화 곤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가는 길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어 가보지는 않았다.

 

 길가의 곤릉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고 101코스의 길을 떠나니 마을 이름이' 예쁜마을'인 자그마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이 나온다. 이름과 같이 예쁜마을로 정감이 깊은 마을이었다. 이름뿐이 아니라 그 미을을 지나며 보는 꽃들도 아름다웠다.

 

예쁜마을의 풍경

 

 마을을 지나 높지 않은 진강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아무도 다니지 않아 호젓하게 걸을 수 있었다. 높지 않은 산길을 걸어가니 석릉이 나온다.

 

진강산 길

 

 강화 석릉(江華 碩陵)은 진강산(441.3m) 동쪽 능선의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 제21대 희종이 안장된 왕릉이다. 수창궁 사변으로 폐위된 뒤 교동도에 유배되어 있던 희종은 1237810일 근처의 절인 법천정사에서 승하하였다. 이후 1237(고종 24) 1019일에 석릉(碩陵)에 장사를 지냈다.

석릉은 오랜 시간 동안 존재가 잊혔다가, 조선 현종 5(1664) 강화유수로 재직하던 조복양(趙復陽)이 현종의 명을 받아 보수하였다. 이후 관원들이 해마다 순찰을 돌며 능역을 관리하였고, 고종 4(1867) 위치가 확인된 고려왕릉 전체를 일시에 정비하면서 '고려희종석릉(高麗熙宗碩陵)'이라 적힌 표석이 세워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으나 2000년과 2001년에 발굴 조사를 통해 석실과 능역의 자세한 구조를 확인하였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전해오고 있다.

 

서해랑길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길에서 올라가니 곧 석릉이 나타났다. 석릉 주변에는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서너 명 모여서 휴식을 하고 있었다.

 

석릉과 안내판

 

 석릉을 지나 산길을 따라 조금 가면 강화 능내리 석실분과 거의 붙어 있는 강화 가릉이 연이어 나온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江華 陵內理 石室墳)은 고려시대의 왕릉급 무덤으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 있으며 199532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고분은 보존·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됨에 따라 발굴을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에 이르기까지 실시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소량이지만 다양하게 출토되었는데 특히 봉황머리를 나타낸 은제장식편의 경우 문양이 있는 곳에만 도금으로 처리하여 장식적 효과가 뛰어나도록 한 것이 특징적이다. 봉황문양은 전통적으로 왕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대몽항쟁기 강화에서 사망하였으나 능이 확인되지 않은 희종의 왕비인 성평왕후나 고종의 왕비인 안혜태후의 묘로 추정하고 있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

 

 강화 가릉(江華 嘉陵)은 고려 제24대 국왕 원종의 제1왕후 순경태후가 안장된 왕릉으로 1992년 사적 제370호로 지정됐다. 현재의 가릉은 1974년에 처음 보수한 이후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재정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고려 고종의 홍릉, 고려 희종의 석릉, 고려 강종 비 원덕태후의 곤릉과 함께 남한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고려왕릉 중 하나이다.

강화 가릉

 

 강화 가릉을 지나 산길을 따라 조금 가면 조선 후기 학자이자 강화학의 태두인 정제두(1649~1736)의 묘 나온다. 정제두 묘(鄭齊斗 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이다. 2007226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정제두의 묘

 

이정표

 

건평항

 

 아주 조그마한 건평항을 지나가니 뜻밖에 조그마한 공원이 있고  '천상병귀천공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 천상병을 이야기하지 않겠으나 이 공원이 왜 여기에 만들어졌는지는 이해가 필요하다. 강화군 건평항 근처에 위치한 천상병 귀천(歸天) 공원은 천상병의 대표 시 귀천의 시상을 떠올리게 한 건평 포구의 하늘을 구경할 수 있는 공원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자란 천상병은 마산의 바닷가를 그리워했지만, 대신 강화도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건평포구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순수한 마음을 적은 메모가 귀천이라고 한다.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천상병의 동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데, 정면은 한없이 해맑고 측면에서는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비는 천상병의 육필을 새긴 것이라고 하니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천상병 귀천공원

 

 공원을 지나 조금 저 가면 제법 큰 어항이 나타난다. 외포항이다. 강화도 섬의 북단에 있는 포구로는 상당히 큰 포구로 사람들의 왕래도 많은 포구다.

 

 외포항(外浦港)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547지선에 있는 어항으로,. 해상교통이 빈번한 곳으로서 석모도의 보문사를 비롯하여 주문도, 볼음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당초 명칭은 정포항이었으나, 201879일 외포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외포항젓갈수산시장은 전국 추젓의 70%가 생산되는 곳으로 새우부터 낙지, 오징어, 조개, 명란, 창난 등 젓갈류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수산시장이다. 옛날에는 좌판이었으나 현재는 천정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현대식으로 정비하여 쾌적한 환경에서 장을 볼 수 있다. 특히 매년 10월이면 강화도 새우젓 축제가 외포항에서 열리고 김장을 위해 젓갈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외포항의 모습

 

 101코스의 종착점인 외포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으나 여기서 오늘의 여정을 끝내기로 했다. 내일 걸을 길이 길지 않은 길이기에 휴식도 하면서 천천히 걸을 생각이었다.

 

 숙소를 정하고 샤워를 하고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니 지금이 밴댕이 철이라 밴댕이 정식을 파는 식당이 있어 들어가니 2인분을 판다고 하였으나 1인분을 주문하여 맛있게 밴댕이 정식을 먹었다. 사실 밴댕이는 크게 맛있는 생선은 아니지만 별미로 밴댕이회. 밴댕이구이. 밴댕이무침으로 한상을 차려주는 정식은 한번쯤은 먹어 보아야 할 것이다. 길을 가면서 그 고장의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내가 식당에 들어갈 때는 손님이 아무도 없고 나 혼자였는데 내가 들어가고 손님이 만원이 될 정도였다. 어디에서든지 내가 식당에 가면 손님이 뒤따라 들어와 북적거린다. 이것도 나의 복이라 생각하고 식당에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숙소에 들어와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