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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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8(05.24, 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길 : 로스 아르코스 - 산솔(6.8km) - 토레스 델 리오(0.8km) - 비아나(9.6km) - 로그로뇨(10.4km)

 

 오늘 여정은 나바라 왕국의 오래된 까미노를 걷는 상당히 쉬운 길로 중간에 만나는 마을인 산솔과 토레스 델 리오, 비아나는 모두 아름답고 친절한 마을로 순례자를 맞이한다. 산솔까지 7km 정도의 길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길고 긴 포도밭이 계속 이어진다. 산솔부터 비아나까지는 높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으로 이어져서 전날의 외로움과 지루함을 떨쳐낼 수 있다. 그러나 언덕에 올라서자마자 11km 정도 거리의 비아나가 손에 잡힐 듯 보이면서 순례자는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조급해진다. 조급한 마음은 접어두고, 여유롭게 길을 걷는 것이 좋다.

 많은 순례자들이 비아나에서 하루의 길을 멈추지만 힘이 남았고, 시간과 날씨가 걷기에 적합하다면 비아나에서 10km 정도를 더 걸어 로그로뇨까지 이동하는 것도 좋다.

 

 오늘은 약 28km의 제법 긴 길을 가여 하는 여정이다. 평상시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가볍게 과일과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고. 제법 먼 길을 가야하기에 조금 일찍 서둘러 06시 30분경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길에 나가니 아직 사람의 기척도 없고 마을은 정적에 덮여 있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숙소를 벗어나 길을 가면 동네를 지나는 지점에 카스티야문이 있고 이 문을 지나 아르코스를 벗어난다.

 

비아나까지 안내도

 

 길을 떠날 때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는데 좀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서쪽을 향해 걷고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게 우리 등 뒤에서 해가 비친다.

 

뒤를 돌아보면 해가 떠오른다.

 

멀리 보이는 산솔 마을

 

 첫 번째 마을인 산솔까지는 순례자의 눈에 포도밭과 밀밭이 펼쳐져 어제의 길을 걷는 듯이 착각에 빠지며 편안하고도 쓸쓸한 길을 걷는다. 저 멀리에 산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같이 아름답다. 스페인의 마을은 멀리서 보면 너무 아름다워 그 마을을 향해 밀밭과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마치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산솔을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가벼운 오르막길로 데소호(Desojo)를 향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등지고 마을로 들어간다.

 

서쪽을 향해 가는 그림자 - 키다리 아저씨

 

밀밭 사이로 난 길로 산솔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

 

산솔 마을 표지

 

산솔 마을 입구의 버스정류장

 

산솔 마을

 

 산솔은 원래 산 소일로 수도원(Monasterio de San Zoilo)의 영지로 마을과 수도원, 성당의 이름은 순교한 코르도바 출신의 성인 산 소일로(San Zoilo)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의 유해는 현재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로그로뇨(20.7km) 비아나(11.2km) 토레스 델 리오(800m)를 가리키는 이정표

 

 마을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산 소일로 성당 (Iglesia de San Zoilo)17세기 후기 바로크 시대의 석조 건물로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십자가상과 합창단 석에 위치한 거대한 성 베드로 상이 있다. 성당의 외부에는 사각형의 높은 기둥과 종이 있는 날씬한 탑이 돋보이는데 멀리서 보기만 하고 둘러보지는 못했다.

 

산솔 마을 맨 위에 있는 성당이 산 소일로 성당(Iglesia de San Zoilo)이다.

 

토레스 델 리오 마을 안내도

 

토레스 델 리오로 들어가는 다리

 

 산솔에서 1km도 안 되는 거리의 산솔언덕 위에 위치한 토레스 델 리오는 경관이 뛰어난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마을은 로마인들이 농사를 짓던 흔적이 발견되어 아주 오래 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0세기 초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몬하르딘에 이어 기독교지역으로 탈환했다고 한다. 그래서 까미노 길을 따라 있는 성당에는 여러 가지의 문화가 조화롭게 섞여 있다. 좁은 길에는 파사드(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건물 외벽 부분)에 문장이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집이 가득하다. 1109년에 히메노 갈린데스가 이라체 수도원에 마을 기증했다고 한다.

 

 또레스 델 리오의 성묘 성당(Iglesia del Santo Sepulcro)12세기에 템플 기사단이 아랍의 건축양식을 차용하여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과 유사하게 만든 팔각형 평면의 성당이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으로 나바라의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며 팔각형 평면에 건물 동쪽에는 단순한 반원형 소성당, 서쪽에는 원통형 탑이 있다.

 팔각형 평면은 템플 기사단의 특징이며 성묘 성당의 쿠폴라 정탑은 죽은 이들의 정탑이라고 불렸다. 그 이유는 이 탑이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고 순례자가 죽으면 불을 켜서 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당 안의 공간은 두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벽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이 붙어있고 위층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창문이 나있으며 주두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있다. 외부는 3층으로 나뉜 구조이며 3층엔 각 면에 창문이 나 있다.

 

토레스 델 리오의 성묘 성당

 

 토레스 델 리오를 지나 너덜지대의 자갈과 오솔길로 이어진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되어 중세부터 다리를 부러뜨리는 길이라고 불렸던 이 길을 걸어가면, 뜻밖에 길가에 16세기 고딕양식의 작고 아담한 성당이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일반적으로는 거의 모르는 포요의 암자라고 불리는 성당이다. 벽면에 그려져 있는 성모상 밑의 글귀는 '바르가타 마을을 축복하시고 순례자들을 보호하소서.'라는 의미다.

 

 이 조그마한 성당을 지나 다시 협곡과 언덕 사이를 반복해서 지나면 멀리 보이는 비아나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면 순례자는 마침내 라 리오하로 이어지는 평야에 도착한다. 이제 비아나는 그리 멀지 않다.

 

성당과 포도밭을 그린 벽화

 

순례자들이 길가에 달아놓은 자기 나라의 국기

 

'포보의 암자'라 불리는 조그마한 성당

 

이정표

 

비아나 마을 표시

 

 비아나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까미노와 같은 의미인 비아(Via)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과, 로마의 여신이자 주술사였던 디아나(Diana)와 관련돼 있다는 주장이 있다.

 비아나는 오래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의 사각형 도시다. 카스티야와 가까워서 산초 7세가 기존의 성벽을 합쳐서 비아나의 성벽을 만들었다. 비아나의 까미노 표시는 도시의 오래된 성벽을 통해 화려한 저택으로 가득 찬 도시의 내부로까지 올라가게 한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은 카스티야와 나바라의 왕국 사이에 번성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지 않고 지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비아나는 양송이, 소시지, 비스킷과 함께 리오 하 원산지의 향기로운 포도주를 생산한다. 비아나의 외곽에는 까냐스 연못(Laguna de las Cañas)이 있는데, 자연 보호 구역이자 조류 보호 구역으로 여러 종류의 어류와 수많은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비아나로 들어가는 문

 

비아나 마을 시장(우리의 5일장 비슷)

 

비아나 마을을 통과하는 길

 

 마을 시장을 조금 지나면 비아라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을 만난다. 일부는 수리 중이라 차양을 두르고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

 

비아나 시청 발코니(Balcon del Ayuntamiento)

 

 산타 마리아 성당 옆에는 후안 데 라온(Juan de Raon)1685년에 짓기 시작한 시청이 있는데 이 건물은 바로크 양식을 나타내는 파사드가 있고 발코니, 토스카나식 기둥, 처마의 띠 장식 위의 문장, 벽돌로 된 탑 등이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 표지

 

 성당 입구에 있는 동판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문이 붙어 있다.(정확한 해석이 되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13세기 고딕양식의 대규모의 성당에는 트리포리움 갤러리가 눈에 뜨인다. 17세기 지롤라(Girola), 바로크 양식의 제단화 및 비아네스 조각가가 제작한 다양한 작품, 마드리드 루이스 파레트의 그림이 있는 산 후안 델 라모 예배당, 18세기 말 회화, 금세공, 장식품,상아, 찬토랄 컬렉션으로 구성된성물.16세기의  후안 드 고야르(Juan De Goyaz)의 르네상스 정문이 있고 그리고 그밑에는 세자르 보르지아의 무덤이 있다 -비아나 시의회-

 

 산타 마리아 성당의 반석 아래에 묻혀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인물은 바로 교황 알레한드로 6세의 아들인 케사르 보르지아(Cesar Borgia).

 그는 16세에 팜플로나의 주교, 19세에는 추기경, 22세에 가톨릭 군대의 장군이었고 24세엔 나바라 왕의 처남이 되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 영감을 준 사람으로 군주론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바라의 총수라고 불렸던 보르지아는 1507년 레린백작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여 비아나에 묻혔다. 그의 무덤에는 비아나와 팔렌시아 (보르지아는 스페인 팔렌시아의 보르하 가문 출신이다)의 흙이 함께 뿌려졌고, 아직까지도 그의 무덤 위에는 남녀 어린이가 두 지역의 꽃을 걸어놓는 전통이 전해져 오고 있다.

 

성당 입구

 

성당 외부

 

성당 내부의 여러 모습

 

성당 외부의 모습

 

 성당을 지나 조금 가면 나오는 산 페드로 수도원 (Monasterio de San Pedro)13세기의 원래 건물에 18세기 후반까지 증축이 여러 번 되었으며 그 중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현관이 돋보인다. 현재까지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이 건물의 제단은 시토 교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산 페드로 수도원의 모습

 

비아나에서 로그로뇨까지 안내도

 

비아나 마을 전경

 

 비아나의 까미노 표시를 따라서 반대편으로 도시를 빠져나가면 로그로뇨까지는 10km 정도의 길이다.

 

 이제부터 스페인에서 가장 작은 자치주 라 리오하로 들어선다. 라 리오하의 땅은 크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풍성한 문화와 예술, 다양한 경관을 보여준다. 이 지역은 대서양과 지중해 기후, 내륙의 메세타 지역의 영향이 모두 만나는 접점이다. 라 리오하의 땅은 비옥했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고 늘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라 리오하는 다른 지역보다 로마네스크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라 라오하의 자연은 사람들에게 값진 선물 포도주를 주었다. 스페인에서 여기만큼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특히 적포도주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비노 호벤(Vinos Jovenes), 끄리안사(Crianzas), 레세르바(Reservas), 그란데스 레세르바(Grandes Reservas)와 같은 포도주가 생산되고 있다.

 

 순례자들은 로그로뇨 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 에브로 강의 삐에드라 다리를 통해서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건물 사이로 이어져있는 까미노 표시를 따라가면 오래된 성벽의 일부처럼 보이는 레벨린 문(Puerta del Revellín)이 나온다. 이 문을 통과한 순례자는 광장에 도착하고 여기에서 계속 직진하면 도로의 끝이다. 여기에서 뚜게스 데 나헤라 거리를 따라 왼쪽으로 300미터 가량 직진하면 된다.

 

 비아나에서 로그로뇨까지는 제법 먼 길이라 중간의 숲에서나 곳곳의 쉼터에서 쉬면서 길을 가니 15시 경에 로그로뇨에 도착한다.

 

저 멀리 보이는 로그로뇨 마을

 

멀리 보이는 로그로뇨 성당의 탑들

 

 로그로뇨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브로 강 위에 서있는 삐에드라 다리 (Puente de Piedra)를 건넌다. 이 다리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의 제자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가 12개의 아치와 세 개의 방어용 탑이 있는 석조 다리를 지었다고 한다. 1917년 늘어나는 교통량 때문에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리를 현대화했다.

 

삐에드라 다리

 

라 리오하의 와인길 표시

 

 로그로뇨에 도착하여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길을 가며 자주 만났던 모녀가 같은 알베르게에 들어와 있었다. 오는 길에 딸이 다리를 절고 있어 파스를 하나 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딸에게 엄마와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용기를 내어 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싸우지 말고 모녀가 끝까지 길을 잘 걸으라고 당부를 하고 여러 이야기를 하며 잠시 쉬고, 저녁도 먹을 겸 시내 구경을 나갔다.

 

 시내를 가니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대성당이다. 로그로뇨 대성당(La Catedral de Logroño)으로도 불리는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 대성당 (Catedral Santa Maria la Redonda)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되었으나 고딕 양식도 보인다. 세 개의 신랑(교회당 건축에서좌우의 측량 사이에 끼인 중심부), 세 개의 후진이 있고, 측면에 소성당이 위치하며 지붕은 궁륭으로 덮여 있다. 문은 철책으로 가려져 있으며 늘씬한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이다.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의 길은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 대성당 (Catedral Santa Maria la Redonda)

 

 대성당의 쌍둥이 탑이 두드러져 보이는 도시 내부 중심지에는 정원 같은 공간이자 산책로인 파세오 델 에스폴론이 있다. 이 산책로를 경계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나눈다. 구 시가지에는 흥미로운 건물들과 가죽 공예, 이 고장의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을 만날 수 있다. 엘 에스폴론(El Espolon)과 그란 비아(Gran Via) 주변은 상점과 카페 등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밤에는 펍과 음식점이 호황을 이루고 있다. 우리도 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저녁을 먹으려 간 곳이 튀르크식 케밥 비슷한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4명이 떠들면서 저녁을 먹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오늘 하루를 끝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대성당을 휴대폰으로만 찍은 사진이 있고 다른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