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7(05. 23, 에스테야 - 로스 아르코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늘의 길 : 에스테야 - 이라체와인샘 - 아스케타 - 비야마요르데 몬하르딘 - 로스 아르코스
오늘은 에스테야에서 로스 아르코스까지 약 22km의 길을 가야 한다. 이제 조금은 익숙하게 아침 6시 경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고 가볍게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는 시간은 7시 경이다.
숙소를 나와 에스테야 시내를 제법 걸어가면서 시내 아침의 여러 풍경을 즐긴다. 에스테야에서 2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도시의 일부로 여겨지는 첫 번째 마을인 아예기는 포장된 도로의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도착한다. 산초 가르세스 4세의 양도로 이라체 수도원에 소속된 중세 교회의 영지였던 아예기는 전원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예기에서 포도주 수도꼭지로 순례자에게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이 눈에 잡힐 듯 가깝다. 아예기를 지나 조금 가면 길가에 고로를 피어놓고 쇠를 두드리는 대장간이 보인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까미노의 기념품을 수공예로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기계로 찍어내는 기념품이 아니라 직접 불에 주물을 녹여서 두드려가며 만드는 것이었다. 그 정성이 너무 고마워 조그마한 기념품을 하나 사고 조금 가니 유명한 이라체의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나온다.
에스테야 공원의 조형물
이 구간의 안내도
기념품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대장간
이제 순례자는 책과 블로그 등을 통해 가장 많이 보았던 장소인 까미노에서 가장 특이하면서 유명한 수도꼭지 보데가스 이라체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한 곳에서는 물이 나오고 다른 한 곳에서는 포도주가 나온다. 까미노를 다녀온 순례자는 누구나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 잔의 포도주를 마셨을 것이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한 잔의 포도주는 힘든 길을 걷는 순례자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게 해주며, 포도주의 땅으로 들어온 것을 실감하게 한다. 한 잔의 포도주는 순례자의 마음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적셔주는데, 사실 이것은 까미노를 빙자한 포도주 마케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세시대 이 길을 힘없이 걸어야 했던 굶주린 순례자에게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는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격할 만한 일이다.
이곳을 지나가는 시간이 일러 아직 포도주 수도를 청소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니 수도에서 포도주가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컵에 한 잔의 포도주를 받아 마시며 기뻐하였다. 저번에 만나 같은 길을 걷는 모녀가 있어 우리를 인솔하는 여행사에서 미리 준비한 종이컵을 하나 주니 고마워하였다.
사실 이 수도는 Bodegas Irache라는 와인회사가 홍보용으로 순례자에게 주는 와인이다. 한 때는 무분별한 사람들이 병에 가득 담아 가기도 하여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수도꼭지 옆에 붙어 있는 글귀는 '순례자여! 이 훌륭한 와인의 힘과 활력을 가지고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면, 한잔 마시고 행복을 위해 건배하세요. -이라체 샘, 와인 샘'이라는 글이다. 동기야 어찌되었던 한잔의 와인이 순례자에게 힘을 준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사족으로 말하면 이 와인은 우리나라에도 한국 나바라 주식회사와 한국 이라체 주식회사를 통해서 수입되고 있다
fuente de irache에서 와인을 받는 사람들
나바라의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 하나인 이라체 수도원은 보데가스 이라체를 지나면 보인다.
이라체 수도원 (Monasterio de Santa Maria de Irache)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오래된 수도원으로 기록은 958년부터 존재한다. 공식 명칭이 산타 마리아 데 이라체 수도원으로 전성기는 11세기에 수도원장 베레문도가 이곳을 순례자를 위한 나바라의 첫 번째 병원으로 바꾸었을 때였다고 한다. 12세기에 현재의 성당 건물을 짓기로 계획하면서 전성기는 계속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12세기 중반에 후진과 십자가상도 완성되었다. 17세기 초에 베네딕토 수도회의 학교가 생겼고 대학교로 바뀌었다.
까미노의 수호성인 성 베레문도(San Veremundo)는 11세기에 이라체에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사가 되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후 수도원의 문지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수도원에서 나오는 빵 조각을 조금씩 모아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고 한다. 어느 날 수도원장이 옷 속에 감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린 베레문도는 약간의 빵 조각이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그 빵 조각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때마다 빵 조각이 커져서 나왔다고 한다.
성 베레문도에 관해 전하는 이야기 중 많은 내용은 그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을 개선하기 위해 많이 애써 수도원, 병원을 세우고 까미노가 지나는 지역에 사람들을 거주하게 했다는 내용도 있다. 성 베레문도는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와 함께 순례자를 위해 헌신했던 동시대의 3대 까미노 성인 중 하나며, 그들 성인들의 덕에 순례자가 지나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많이 좋아졌다고 전해진다.
이라체 수도원
수도원을 지나 오른쪽 길을 따라가서 호텔의 뒤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산 미겔의 들판을 지나 자동차 전용 도로의 밑을 지나는 터널을 통과하면 까미노는 바위투성이 산 위에 펼쳐진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숲으로 난 구부러진 길을 따라가면 언덕 위의 작은 마을 아스께타에 도착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 야고브의 길 이정표
두 갈래 길의 안내도
이 길을 따라가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의 안내도가 나온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얼마 아니 가서 만나는 길이지만 우리는 왼쪽 산길로 들어섰다. 평탄한 도로를 따라가는 길보다는 경치가 아름답다고 이 길을 안내하는 분이 우리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면서 저 멀리를 보니 산봉우리에 암벽 비슷한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길을 가던 사람들이 암벽이니 건축물이니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길을 더 가서 산봉우리가 잘 보이는 곳에서 보니 무슨 요새와 같았다. 바로 몬하르딘 성 (Castillo de Monjardín)으로 산 에스테반 데 데이오 성(Castillo San Esteban de Deyo)으로도 불리는 9세기에 지어진 성인데 10세기엔 데이오 팜플로나 왕조의 요새로 10세기에 산초 가르세스가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요새다. 이 성은 14세기에 보수되었으며 현재도 복원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멀리 산봉우리 위에 보이는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의 몬하르딘 성
길에서 보는 여러 풍경
아스께야 마을 근처의 샘
아스케따에서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까지는 약 1km 정도다. 이 마을은 언덕 위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조그만 까미노 마을로 성벽에 맞대어져 있는 바로크의 화사한 탑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성 안드레아 성당이 인상적이다.
산 마르틴 칼레 길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마을의 성당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을 떠난 순례자들은 까미노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포도밭 사이로 내려가야 한다. 이 길은 까미노 표시가 잘되어 있는 직진으로 넓은 농지를 지나기 때문에 로스 아르코스까지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12km의 길을 마을도 없이 약 3시간 정도를 탁 트인 공간을 침묵과 함께 걸으면 자신도 모르게 '무엇 때문에 왜 이 길을 걷는가?'에 대해 회의도 들 수 있고, 자신이 살아온 지나온 세월의 희로애락이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넓게 펼쳐진 포도밭
넓게 펼쳐진 평원길을 걷는 순례자들
다행히도 이 길의 중간에 뜻밖에 푸드 트럭이 순례자들을 반겨 주었다.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주스를 마시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피로를 풀었다.
푸드 트럭
넓게 펼쳐진 평원
길을 가다가 보니 '인간의 역사'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보였다. 아마 오래 전의 무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정확한 사실은 잘 모르겠다.
쉼터에서 쉬고 있는 세 여인
쉼터에서 신발과 양말도 벗고 망중한을 즐기는 순례자
아주 넓은 평원에펼쳐지는 양귀비 꽃
로스 아르코스 입구
덤불과 로즈마리, 침엽수의 언덕 발치에 위치한 조그만 농업 도시 로스 아르코스는 15∼16세기를 거치면서 카스티야 왕국과 나바라 왕국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로 두 왕국 어느 곳에도 세금을 내지 않으며 두 왕국의 상업적 특성을 잘 이용해 부를 축척했던 마을이었다. 도시가 건설되고 왕은 마을 사람들의 용기를 치하하여 활이 그려진 그림을 하사하며 이 마을을 아르코스(Arcos; 활 모양의)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발코니가 있는 아름다운 집들 사이의 조그만 골목길을 지나가면 조그만 광장 왼쪽으로 아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이 나타나고 성당을 지나 조금 가면 카스티야 문이 나타난다.
줄지어 길을 가는 거위들
로스 아르코스 거리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은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는 변화가 느껴지면서 조화를 이루는 성당이다. 십자가 평면의 성당은 그리스와 로마식 신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6세기에 보수되어 성당의 일부 요소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외부에는 거대한 쿠폴라(둥근 지붕)와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팔각형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풍의 탑은 산띠아고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가장 높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탑 중 하나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의 아름다운 복도 한가운데에는 그늘에서 보관중인 성모상이 있다. 이 성모상은 6월 15일에만 햇빛에 내놓는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성당
산타 마리아 성당 앞 석탑
산타 마리아 성당 옆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카스티야 문(Puerta de Castilla)은 17세기에 만들어졌고 1739년 펠리페 5세에 의해 보수되었다. 로스 아르코스를 나설 때는 이 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양쪽의 건물 사이로 멀리 보이는 카스티야 문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하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다. 아르코스 마을에 들어와서 숙소를 조금 벗어나 광장의 성당까지 갔다가 다시 길을 돌아와서 숙소를 찾아서 가니 이제 13시 30분이었다. 까미노에서 주변도 살피고 자신도 돌아보아야 하는데 아직은 까미노를 너무 걷는 것에만 열중하는 것 같았다. 혼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 빨리 걷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숙소가 예약이 되어 있기에 천천히 걸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걷기에만 열중하여 아무 것도 올바르게 살피지 않으니 숙소에 너무 일찍 도착한다.
숙소에 도착하여 함께 하루 종일 걸어온 일행과 알베르게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인 순례자 음식을 코스로 시켜서 배불리 먹고 조금 있으니 일행들이 모두 도착한다. 알베르게 2층의 휴식처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며 한가하게 휴식을 취했다.
길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아주 나이가 많은 조그마한 할머니가 혼자서 자기보다 더 큰 배낭을 지고 아주 힘든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인사를 해도 인사를 받을 힘이 없는지 조그마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여자에게는 이 길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과 서양인들 이 걷고 있는 광경을 본다. 과연 그들 모두에게 어떤 절실함이 있어 이 길을 걷는 것일까? 아니면 여행을 하는 것일까? 단순하게 여행을 하기 위해서 이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답을 모르겠다.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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