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5(05.21, 팜플로나 - 푸엔테 라 레이나)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길 : 팜플로나 - 시수르메노르 - 사리키에기 - 페르돈 고개 - 우테르가 - 오바노스 - 푸엔테 라 레이나

 

 오늘은 팜플로나를 출발하여 까미노 길에서 유명한 '용서의 언덕'인 해발 750m의 페르돈 고개를 지나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가는 약 22km의 길이다. 오늘은 까미노의 가장 상징적인 용서의 언덕을 지나게 되는 길로. 용서의 언덕이 있는 페르돈 고개까지는 조금 산길을 올라가지만 거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을 걷는 어렵지 않은 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걸을 준비를 하고 7시부터 길을 나섰다. 팜플로나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길에서는 어제 보지 못했던 여러 건물들과 아름다운 거리의 풍경이 보였다. 길을 조금 가니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팜플로나 시청 건물이다.

 

 팜플로나 시청은 1755년에 시작하여 1760년에 완성된 바로크식 파사드(Fachada : 건조물에서 중요한 전면, 정면을 일컫는 말이다.)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이 세계에 잘 알려진 것은 매년 76일 시청의 발코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시청 내부에 있는 문틀위의 상인방(上引枋)은 바로크 양식인데 이 문은 모든 이를 위해 열려 있으며 마음은 더 많이 열려 있다라는 나바라의 까를로스 3세 아름다운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팜플로나 시청

 

 시청을 지나 거리를 걸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없고 길을 걷는 일행들만이 발길을 재촉한다. 여러 거리를 지나 서쪽 문을 통과하니 뜻밖에 대학교가 나타난다. 나바로대학이다. 까미노 길은 이 대학의 경내를 통과해야 하므로 평탄한 길을 걸어간다.

 

팜플로나 성의 서쪽 문

 

나바라 대학 표지

 

이 구간의 안내도

 

 대학을 빠져 나와 조그만 사다르 강에 걸쳐있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저 멀리에 내가 넘어야 하는 페르돈 고개가 보인다. 정상 주변의 여러 봉우리에는 풍차를 본뜬 현대의 풍력발전의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자동차 전용도로의 보도를 따라 직진하면 시수르 메노르에 다다른다.

 시수르 메노르 마을에는 이미 12세기부터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Los Caballeros de San Juan de Jerusalén)이 운영하는 순례자병원과 수도원이 있었다고 한다. 성 요한 기사단은 순례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했고 까미노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던 팜플로나부터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ón)까지 순례자들을 도적들에게서 보호해주었다고 한다.

 

 시수르 메노르의 마을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경기장이 나온다. 여기부터 페르돈 고개가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페드론 고개의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이지만 부지런히 걸어도 2시간 반이 걸리는 제법 먼 거리다. 다음 마을인 사리키에기로 오르는 좁은 도로 좌우로 넓게 펼쳐져 있는 밀밭은 순례자의 마음을 더욱 평화롭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넓게 펼쳐진 평원은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너그럽게 한다. 사위가 막힌 산에서만 사는 사람과 사위가 탁 트인 넓은 평원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길가에는 관상용 양귀비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시선을 끈다. 왼쪽으로 사리키에기를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면 여러 사진과 글귀들이 붙어있고 조그마한 돌로 이루어진 소박한 순례자의 무덤인 것 같은 십자가가 나오고 두 번째 마을인 사리키에기에 도착한다.

 

멀리 보이는 그림같은 마을

 

밀밭 주위에 핀 양귀비 꽃

 

저 멀리 보이는 페르돈의 성모 수도원(Ermita de Nuestra Señora del Perdón)

 

길가의 양귀비와 들꽃

 

계속 이어지는 밀밭과 보리밭을 걷는 순례자들

 

소박한 순례자의 무덤

 

사리끼에기 - 사도 안드레아 성당 (La Parroquia de San Andrés)

 

 사리키에기 마을의 입구에는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 보이며 순례자는 이 성당의 그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사도 안드레아 성당 (La Parroquia de San Andrés)은 13세기의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나, 성당의 정문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남아 있다. 한 개의 신랑과 단순한 형태의 고딕 양식 아치가 있는 석조 건물로 성당의 내부에는 12,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앉아 있는 성모상이 있다.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ón)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인 사리끼에기 마을을 지나면 길이 험해진다. 험한 길을 걸어 페르돈 고개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밀밭을 감상할 수 있다. 사리키에기 마을을 벗어나 페르돈 고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산길을 걸으면서 좌우를 보면 유채와 비슷한 노란 꽃을 많이 본다. 우리에게는 낯선 꽃이지만 이곳에는 너무 많다. 하지만 꽃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이런 궁금증을 참을 수 없기에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꽃 이름을 가르쳐 주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물어보니 '스페니쉬 블룸'이라는 답이 왔다. 아주 짙은 향기가 나는 꽃이다.

 

'스페니쉬 블룸'이 피어 있는 모습

 

 

 

 드디어 '용서의 언덕'에 도착한다. 힘들게 페르돈 고개 정상에 오른 순례자는 철 조각품을 만난다. 원래 이 언덕에는 페르돈 성모를 기리는 성당이 있었는데, 그 성당이 노후화되어 1996년에 나바라 까미노 친구의 협회에 의해 순례자 모습을 철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는 것은 이 언덕에서 회개를 통해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준다는 곳이다. 한 무리의 순례자의 행렬을 나타낸 조각을 자세히 보면 맨 앞에는 길잡이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말을 탄 순례자가 따르고 그 뒤로 짐을 지고 있는 말과 개 그리고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철 구조물에는 여러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서 가운데 말을 자세히 보면 ‘dond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las estrellas'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가는 시간은 한낮이라 바람의 소리와 길은 듣고 느낄 수 있으나 별의 길은 보지 못했다.

 이 조형물 앞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 중에서 순례자의 모형을 따라 걷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용서의 언덕'을 지나왔기에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지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다. 

 

용서의 언덕의 조형물

 

용서의 언덕에서 보는 조망

 

 용서의 언덕 왼쪽으로 바로 밑에 예전에는 없었다는 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놓여 있는 모습을 본다. 메모리 알라의 기념 무덤이라는 곳으로 스페인의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프랑코 정권에 항거하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로 나바라의 역사적 기억 장소에 의한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하는 곳이다.

 

메모리 알라의 기념 무덤 설명판

 

메모리 알라의 기념 무덤

 

 엄청난 크기의 풍력발전 바람개비를 배경으로 휴식을 청한 순례자는 도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내리막길로 우떼르가로 향한다. 이 길은 상당히 경사가 급하며 너덜지대가 많으므로 걸으면서 상당히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힘들게 내려간 순례자에게 까미노는 황홀한 기쁨을 준다. 순례자를 위한 쉼터에 아름답게 자리한 순백의 성모상은 자비로운 미소로 그 동안의 어려움을 잊게 한다.

 성모상을 지나 조금 가면 우테르가에 도착한다. 마을의 입구에는 중세의 분위기가 풍기나 마을로 들어가면서 점차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우테르가를 빠져 나온 순례자는 지대는 상당히 높은 야트막한 언덕 능선을 연이어 계속 넘어야 한다.

 

성모상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성당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성당

 

 발디사르베 포도원이 있는 오바노스는, 역사적, 종교적 유산이 많아 관광객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마을이다. 특히 오바노스는 고관대작과 왕으로부터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나바라 토호들의 모임인 인판소네스 회의(Junta de Infanzones)가 열리는 장소가 되면서 나바라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바노스 마을 안내도

 

 

 오바노스의 대표적 건축물인 세례자 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은 19121117일에 완성된 20세기의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14세기 고딕 시대에 지어진 같은 이름의 성당을 대체하여 건축되었고 과거의 성당에서 문과 가구를 옮겨와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14세기의 고딕 양식 문은 건물 끝에 위치하며 현관이 문을 보호해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13세기 후반 로마네스크 양식의 블랑까 성모상이 있다. 이 성당에는 오바노스 전설의 주인공인 기옌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세례자 요한 성당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성당 앞 광장의 십자가

 

까미노 설명인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순례자 기념물 (Monumento Peregrino)

- 프랑스 길과 아라곤 길이 만나는 푸엔떼 라 레이나로 들어가는 입구에 순례자를 형상화한 기념물

 

 

 프랑스 길과 아라곤 길이 만나는 푸엔떼 라 레이나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순례자를 형상화한 기념물을 지나 푸엔테 라 레이니 마을의 숙소 알베르게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서 마을을 구경하러 갔다. ‘푸엔떼 라 레이나 다리’(여왕의 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는 내일 까미노 길을 갈 때 지나가지만 시간이 충분히 여유가 있을 때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여 우리 4몀의 무리는 소요하듯이 마을을 구경하면서 다리로 갔다.

 

 

마을의 성당

 

 까미노 길에서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곳 중 하나라는 ‘푸엔떼 라 레이나 다리로 불리는 이 중세의 다리는 푸엔떼 라 레이나 출구에 순례자의 길을 따라 아르가 강에 건축된 다리다. 11세기에 지어진 이 석조 다리는 순례자들이 아르가 강을 건너기 쉽도록 지어졌으며 까미노 중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 다리다. 일곱 개의 아치로 되어 있으나 가장 동쪽의 아치는 땅 속에 묻혀 여섯 개의 아치로 된 다리로 보인다고 한다. 양 끝과 가운데에 방어용 탑이 있으며 가운데 탑에는 초리의 성모라고 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성모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 페드로 성당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푸엔떼 라 레이나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여행객이 아니고 까미노 길을 걷는 순례자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전설의 고장을 찾아갈 수가 없다.

 

푸엔테 라 레이나 다리 (Puente de Puente la Reina)

 

다리 입구에 여러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

 

다리 앞 관광안내소 앞에 있는 푸엔테 라 레이니 마을 안내도

 

다리 위에서 보는 마을 풍경

 

다리 입구의 방어용 탑의 모습

 

 여왕의 다리를 구경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조금 쉬다가 하는 일이 없이 잠을 청하였다.

 

 오늘 길에서 보는 넓은 구릉지대에 펼쳐지는 평원은 우리에게는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산이고 평야라고 해도 넓지 않은 지역에 펼쳐지는데 이곳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고 구릉만 보이며 그 지역에는 넓게 펼쳐지는 평원이 있었다. 축복받은 땅이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