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99코스(가현산입구 -학운산 -수안산성 - 승마산 -대명포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99코스는 가현산입구에서 출발하여 대명포구까지 가는 13.1km의 아주 짧은 길이지만 나는 이 코스에서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다.

 

99코스 안내판

 

 99코스의 시작은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 입구에 있다. 98코스가 끝나는 지점은 산을 내려와 큰 도로를 건너는 육교 옆에 설치되어 있어 여기는 아주 황량하게 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길을 가려니 왼쪽 무릎에 갑지가 망치로 때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산중이라 계속 길을 가니 통증이 자꾸 느껴졌다. 내가 아주 오래 길을 걸으면서 처음 느껴보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마을도 없는 곳이라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는 내려가야 했다. 통증을 참으며 가현산입구에 출발하여 수안산으로 향했다.

 옛 수안현(守安縣)의 이름을 따라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수안산(遂安山)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한 해발 147m의 김포평야지대에 있는 나지막한 산으로 대곶면과 통진면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의 정상부에는 테를 두른 듯한 형태로 원수골을 둘러싸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김포 수안산성의 유적인 토석성(土石城)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통진읍지에 의하면 부남20리에 있으며 성 주위는 2(800m), 성 높이는 십척(3m)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봉수대가 있다 하였다.

 

수안산 길

 

수안산 신령지단

 

상마리입구

 

 수안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무릎의 통증이 심해졌다. 그래서 중간에서 멈추고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이곳에서 돌아갈 일도 아득했다. 어쩔 수 없이 인천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여 좀 데리러 오라고 하니 아들이 크게 걱정하면서 먼 길을 지체 없이 와서 인천으로 가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즉시 병원을 가니 뼈나 인대 등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고 아마도 좀 무리해서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하였다. 아마도 97, 98코스를 걸으며 가파른 길을 무리하게 걸은 때문이라고 짐작하며 통증이 가 앉기를 기다렸는데 무려 두 달이나 지났다. 그래서 약 두 달이 지나 다시 99코스를 상마리입구에서 시작하였다. 내가 사는 부산에서 상마리입구까지 오는 길은 너무 멀었다. 일찍 ktx를 타고 부산을 출발했는데도 상마리입구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그래서 입구의 어탕 집으로 가서 맛있는 어탕국수로 점심을 먹고 길을 떠났다. 처음에는 무릎에 이상이 있을까 걱정을 조금하였는데 다행히도 무릎이 아프지는 않았다.

 

상마리어탕국수집

 

 

 어탕국수집을 나와 공단거리를 조금 걸어가 승마산으로 오른다. 승마산(乘馬山)은 김포시 대곶면 남서부에 위치한 해발 130m의 조그마한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약산(藥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약초가 많은 산이어서 지명이 유래하였고 이로부터 약암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승마산 길

 

승마산에서 보는 서해

 

승마산 이정표

 

멀리 보이는 대명포구

 

 승마산을 내려와 대명포구로 향해 가니 제법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대명항은 김포시의 유일한 어항이며, 대명포구 또는 대명포라고 불린다. 대명포구(大明浦口)는 강화해협을 사이로 강화도와 마주보는 곳에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어시장과 어판장에서 여러 수산물을 살 수 있고, 즐비한 횟집에서는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가깝고 인근에 역사의 현장인 덕포진과 덕포진교육박물관, 천연 미네랄 라듐천인 약암온천 등이 있어 주말에는 크게 붐빈다고 하였는데 내가 간 날이 토요일이었다.

 

대명포구의 모습

 

 대명포구 길을 걸어가니 함상공원이 나타난다. 김포함상공원(金浦艦上公園)은 퇴역한 초계 군함 LST-671운봉함을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정박하고 있는 공원으로 2010910일 개장하였다. 일반인이 해군 군함 내부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으로 개조되었다. 공원 입구 정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LST-671운봉함은  2006년 해군에서 공식 퇴역한 군함으로, 전시관으로 개조한 후 대명항 부두에 정박하여 일반인들에게 안보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초지대교

 

김포함상공원의 여러 모습

 

 김포함상공원을 나와 조금 가니 99코스의 종착점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평화누리길'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이 길이 아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서 100코스를 걷기를 시작하였다.

 

99코스 종착점

 

 99코스를 걷는 도중에 뜻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무릎이 아파 쉬면서 이 일도 나를 자만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절대 무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99코스를 마쳤다.

 

나를 찾아 걸은 까미노 산티아고 출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나의 까미노의 기록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모두 보여드릴 수는 없어 들어가기 부분을 통하여 이 책의 내용을 알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들어가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까미노에 가기 전에

 

 내가 까미노Camino에 관심을 가지고 내 여행의 버킷 리스트에 올린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실행하려고 떠날 준비를 하던 때 느닷없이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도 차일피일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024년에는 꼭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준비하였다.

 

 내가 까미노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도 가끔은 회의가 들곤 하였다. 까미노는 과연 무엇이며, 왜 나는 이 길을 걸으려고 하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 이 길을 걷는가? 등등의 의구심이 들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까미노 길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 하였고, ‘용서의 길, 화해의 길, 은총의 길, 구원의 길, 치유의 길’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자신이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나이에 무엇을 찾겠다고 이 길을 걷고 싶은 걸까? 하는 의문과 무엇을 얻겠다는 것 자체가 헛된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친구들은 한국의 ‘코리아 둘레길’을 걷는 나에게도 ‘왜 길을 걷느냐?’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했는데 까미노를 걷겠다고 이야기하자 대부분은 의아해하였다. 하지만 세
상을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끌리는 일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길을 걷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까미노를 끝내는 날에 무언가를 얻을 수가 있다면 그것 또한 나에게 주어지는 축복이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즐겁게 여행한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떠나기로 하였다.

 

 떠나기로 하고 작년에 혼자서 까미노 길을 걸은 아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아들이 나에게 당부하기를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숙소 잡기가 쉽지 않으니, 숙소를 잡아 주는 여행사의 상품을 택하여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였다. 여러 여행사에 문의하여 검토한 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인 까미노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여행사에 예약하고 떠날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였다. 아들은 간단한 스페인어와 숫자를 익히길 권했고, 나는 아들의 말을 참고하여 매일 스페인어를 익혔는데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멀리 떠나고 싶어 한다. 가벼운 짐을 꾸린 뒤 세상사를 모두 잊고 훌쩍 떠나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상상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국내에도 걷는 길이 많이 개척되었고, 사람들은 국내의 길도 많이 걷는다. 하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까미노를 걷는 꿈을 꾸고 있다. 까미노의 여러 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길인 ‘까미노’는 프랑스의 생 장 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고 나바라Navarra와 라 리오하 지방, 부르고스, 팔렌시아, 메세타, 레온, 갈리시아, 칸타브리아산맥을 돌아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Santiago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은 약 800km를 35일 정도 걸어야 하기에 ‘까미노’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길을 걸을 용기만 있으면 이미 까미노는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나의 까미노 기록으로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의 국경 마을 생 장 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약 800km를 35일간 걸어가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 먼 길을 걸으면서 보는 자연과 유적들, 그리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 같은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많은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였다. 사실 까미노 길을 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수많은 마을에는 여러 이야기가 얽힌 역사적 유적이 많이 있으나, 우리에게는 이 이야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자료도 충분하지 않다. 까미노의 기록은 대부분 감상문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이 길에 얽힌 이야기와 길 중간에서 만나는 여러 유적에 대해 알고 걸을 수 있도록 내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서 설명을 하도록 노력했다. 나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겠지만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 설화, 그리고 지리적 설명 등은 네이버 지식백과의 두산백과, 위키백과와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의 자료를 참고하며 정리하였음을 미리 밝혀 둔다. 그리고 곳곳에 나오는 그림은 내가 길을 걸으면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친구 박재영 님이 그린 걸 사용하였다.

 

 덧붙여 말하면 까미노를 걸으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모든 사진을 책에 실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러니 더 많은 사진을 보려는 사람들은 ‘Daum’에서 나의 블로그 ‘학의 오딧세이1’를 검색하여 한번 방문하면 이 책보다 엄청나게 많은 까미노의 여러 곳을 보여 주는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표지

 

  이 책은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까미노 산티아고에 얽혀있는 여러 이야기를 여러 문헌을 통하여 조사하고 정리한 기록입니다. 까미노는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길을 걷기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통하여 까미노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사전에 준비하시고 더 좋은 까미노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까미노 산티아고를 준비하거나 동경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해랑길 98코스(검암역 - 가현산 - 가현산입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98코스는 검암역 광장에서 시작하여 경인아래뱃길 위로 난 고가도로를 걸어 독정역을 거친다. 거기에서 이름도 정겨운 힐메산으로 올라가서 가볍게 지나고 마전역을 지나 가현산으로 올라가서 김포시의 가현산 입구에서 끝이 나는 11.7km의 짧은 길이나 그렇게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다.

 

98코스 안내판

 

 어제 저녁에 인천 서구청 주변에서 인천에 사는 지인과 회포를 나누면서 가볍게 소주를 한잔하고 푹 쉬고 아침에 일어나 검암역 광장으로 와서 98코스를 시작한다. 광장에서 출발하여 잠시 길이 헷갈려 머뭇거리다가 고가도로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걷기를 시작한다. 고가도로 위를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하고 약간 머뭇거렸다.

 

검암역

 

 고가도로는 경인아라뱃길 위로 난 길이라 길을 걸으며 보는 아라뱃길이 제법 볼만하다. 서천교에서 뱃깅의 동쪽을 보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경인아라뱃길은 2012525일 개통한 국내 최초의 내륙 운하로 김포 한강에서 인천 서해 바다까지 연결된 물길로, 아라뱃길의 아라는 우리 민요 아리랑의 후렴구 아라리오에서 따온 말이다. 행주대교(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인근 아라 한강갑문에서부터 시작하는 물줄기는 김포시를 지나 인천시 계양구를 거쳐 인천시 서구를 통해 바다로 나아가, 서해와 한강을 잇는 우리 민족의 멋과 얼, 정서와 문화가 흐르는 뱃길이다. 경인아라뱃길에서는 수상에서는 유람선, 요트, 카누 등의 레저를 체험할 수 있고, 수변공간에서는 전망대, 함상공원, 문화관 등 문화시설을 관람하거나, 18Km 뱃길 수변을 따라가며 산책, 피크닉등을 할 수 있다.

주운수로는 인천시 서구 오류동(서해) ~ 서울 강서구 개화동(한강)에 이르는 18km (방수로 구간 14.2km 포함) 이며, 주민생활 편의를 위해 주운수로에 평균 1km 간격으로 횡단교량을 건설했다.

 아라뱃길에는 총16개의 다리가 있는데, 다리의 형식은 여객선과 다리 위에서 뱃길 조망시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주로 거더교 형식으로 건설되었다.

 

서천교에서 보는 아라뱃길

 

 아라뱃길 위로 난 고가도로를 내려와서 시내를 걸으면 독정역이 나오고 조금 지나서 이름도 정겨운 힐메산으로 들어간다.

 

 독정역과 완정역 사이의 남북으로 이어진 할메산은 고도 105m의 낮은 산이지만 본디 이름으로는 큰()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강화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구간으로, 산 자체보다는 산맥의 의미가 강하게 투영된 이름을 지녀 당하동 사람들의 뒷동산 쉼터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름도 재밌는 할메산의 이름을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워낙에 변형되어 불리는 이름이 많으니 곧이곧대로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정겨운 산이다.

 

 

 야트막한 할메산을 오르니 날이 몇 일 따뜻해서인지 올해 처음 보는 진달래가 보인다. 아직 진달래가 피는 때가 아닌데 벌써 따뜻한 양지녁에 피었다.(내가 이곳을 지난 일시는 3월 23일이다.)  올해 처음 보는 진달래라 사진을 찍어 곳곳에 보내니 모두들 봄이 왔는가 보다고 감탄을 하였다.

 

양지에 핀 진달래

 

할메산 안내도

 

 할메산을 내려와 검단도서관 옆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계속 지나가면 현무체육공원이 나오고 뒤이어 가현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난다.

 

현무체육공원

 

 가현산(歌鉉山)은 인천광역시의 서구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215m의 나지막한 높이의 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산의 형세가 코끼리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상두산', 칡이 번성한다 하여 '갈현산'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서해바다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하며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불렀다 하여 '가현산'이라 고쳐 불렀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해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을 잇는 산들 중 하나로, 등산 난이도가 평이하면서도 정상의 풍광이 좋아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다.

예전에는 서해바다가 가까워 풍광이 매우 좋았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멀리 떨어져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세자봉 

 

가현산 정상

 

가현산 수애단 안내

 

정상의 팔각정

 

 가현산 정상 팔각정에서 가현산을 내려오면 큰 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놓여있고 거기에서 98코스는 끝이 난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산의 초입에서 다음 코스가 시작하는 안내판이 서 있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코스였다.

 

서해랑길 97코스(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 - 천마산 - 계양산산림욕장 -피고개길 - 검암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97코스는 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천마산 계양산둘레길을 지나 피고개산을 넘어서 검암역에 도착하는 14.3km의 비교적 짧은 길이지만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고 상당히 어려운 길이다. 97코스 안내판을 보면 난이도를 매우 어려움이라 표시해 놓았는데 그 안내가 정말로 느껴지는 곳이니 조심해야 한다.

 

97코스 안내판

 

 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에서 아파트로 들어가서 목이 말라 슈퍼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조금 쉬다가 아파트를 통과하여 천마산으로 올라간다.

 

천마산 안내도

 

 천마산(天馬山)은 서구와 계양구를 가르는 산으로 서구 공촌동, 심곡동과 계양구 효성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천마와 아기장수의 전설이 전해오며 오랫동안 철마산으로 잘못 불리웠는데 그 이유는 부평의 향토사학자인 고 조기준 선생에 따르면 1916년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세부 측량 때 도면에 철마산으로 표기하면서 천마산철마산으로 잘못 전해졌다고 한다.

 

 천마산을 오르면서 남파랑길을 걸으며 만난 인천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하니 천마산 정상에서 산불지킴이를 하고 있으니 정상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라 산을 계속 걸어가면서 정상부의 육각정에 도달하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전화를 하니 다른 정상부에 있는 것 같은데 전화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역이라 간단히 통화하고 정상을 향해 갔다. 산에서 만나지 못하면 나중에 검암역에서 만나기로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천마산등산로 안내판

 

천마바위 설명

 

천마산 정상 표시와 설명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가니 중구봉 팔각정이 보이고 그곳에서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검암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길을 계속하고 그는 근무를 하러 갔다.

 

중구봉 표시

 

이정표

 

 천마산을 내려오니 이어서 계양산이 나타난다. 그리고 중심성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성같은 것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여러 번 헤매다가 성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발을 장미원 쪽으로 돌렸다. 이 여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면서 중심성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중심성(衆心城)은 인천시 계양구와 서구의 경계에 위치하던 둘레 471m의 성이다. 1883년 고종의 명으로 축조되었으나, 1914년 헐렸다. 성이 있던 경명현(景明峴, 징매이고개)는 서해안부터 한강까지 모두 조망되는데다가 도성으로 통하는 요충지였다. 현재는 징매이고개 생태통로 인근에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중심성 표시

 

 중심성 표시에서 길을 내려가니 계양산장미원이 나타난다. 계양산장미원은 계양구 계양산 일대에 조성된 대규모 장미 공원으로 면적 4,667에 장미 6711,366주와 금낭화 등 야생화도 1312,000여 본에 달하는 꽃을 심어 놓았다. 벽천분수와 물레방아, 원두막과 수로 등 시설물도 다양하게 설치하여 여유 있게 산책하면서 마음껏 꽃밭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하였다. 하지만 시절이 아직은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꽃구경은 하지 못하고 둘레를 돌아 내려갔다.

 

계양산장미원의 여러 모습

 

 계양산장미원을 지나서 시내를 조금 걸어가니 경인여대가 나타나고 계속 가니 계양문화회관과 계양산성박물관이 나오고 그 옆으로 계양산 둘레길로 올라가는 표시가 있다.

 

계양산성박물관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봄엔 진달래 그리고 가을이면 단풍이 멋스러운 곳이다. 수도권의 많은 등산객이 찾는 숲으로 숲 탐방로, 계양산성 치유의 숲과 여러 개의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1883)에 해안 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이 징매이고개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양산의 산 이름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1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 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계양산 정상으로 가지 않고 산 주위를 둘러 나 있는 계양산둘레길을 걷는다. 계양산 둘레길은 인천 계양구에 위치하고 있는 계양산을 중심으로 한 산책로이다. 계양산 둘레길은 총거리 7.29km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이다.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시작하여 임학오거리, 무당골 약수터, 피고개, 장미원, 계양문화화관을 걸쳐 출발지인 계양산 야외공연장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코스이다. 계양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사람들이 많아서 정상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계양산 둘레길은 트레킹 하기 좋은 숲길로 둘레길을 따라 전 구간에 야자 매트가 깔려있고 무장애 데크길이 있어 장애인과 노약자도 걷는데 어려움이 없다.

 

 

 

계양산둘레길이 끝나는 곳에서 피고개산으로 가는 길은 상상이상으로 험하다. 코스를 따라가니 거의 60도도 더 되어 보이는 비탈길을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데 조금만 삐끗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코스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기에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이 길을 걸으며 걷기에 집중하느라 사진을 한 장도 찍지를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도록 하였는지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피고개산으로 올라가서 제법 쉽지 않은 산길을 걸어가서 검암산을 넘어 내려가면 오늘의 종착점인 검암역이 나타난다.

 

피고개산

 

검암산

 

저녁의 산길

 

검암역

 

검암산을 내려오니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오늘의 여정을 이곳에서 끝내고 검암역 주변의 숙소를 검색하니 마땅한 곳이 없다. 그래서 서구청앞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천마산에서 만났던 지인을 기다려서 만나 같이 서구청앞으로 가서 숙소를 정하고 오랜만에 둘이서 소주를 한잔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코스는 너무 어려운 코스다. 남파랑길의 거제도 가라산 코스가 어려운데 이 코스는 상당히 위험하다. 코리아둘레길에서 새로운 코스를 개척하기를 희망한다.

서해랑길 96코스(자유공원입구 - 원적산 -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95코스가 끝나고 아들내외와 손자를 만나 즐겁게 지내고 다음날 아침 96코스 시작점인 자유공원앞까지 아들이 차로 데려다 주어서 편하게 시작을 한다. 그런데 96코스 시작점에서 아무리 찾아도 안내판이 보이지 않고 자유공원 들어가는 입구에 조그마한 인증표만 붙어 있다.

 

96코스 시작점 표시

 

서해랑길 96코스는 자유공원 입구에서 시작하여 신포 문화의 거리, 송림초등학교를 지나 백범로를 지나 장고개로를 걸어 함봉산과 원적산을 넘어가서 대우 하나 아파트 입구에서 끝이 나는 14.4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나 코스의 마무리가 산을 넘는 것이라 쉽지는 않다..

 

자유공원 올라가는 입구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해발 69m의 야트막한 산인 응봉산 일대 전역에 조성돼 있는 자유공원(自由公園)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근대식 공원이며, 개항 당시에는 각국조계에 해당된다. 이 공원이 조성된 것은 인천항 개항 초기인 1888년이다. 당시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외국인 거주자들이 꽤 있었는데 이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러시아 출신 토목 기사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1888년 응봉산(鷹峰山) 일대에 공원을 설계했고 꾸준한 확장 작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의 탑골공원보다 조성 시기가 9년이나 빠르기 때문에 이곳이 대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자 근대식 공원이다.

 공원 조성 당시 시민들은 이를 각국공원(各國公園)이라고 불렀고 그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각국 거류지의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로 넘어가면서부터 공원 명칭이 '(西)공원'으로 바뀌었고, 1945년 해방 후에는 공원 명칭이 만국공원(萬國公園)으로 바뀌었다. 명칭이 '자유공원'으로 바뀐 것은 1957년부터다. 19509월 인천 상륙 작전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만들었고 공원 남동쪽 부지에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 인천시장에 의해 공원 명칭이 '자유공원'으로 명명됐다.

 

 공원 내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비롯해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석정루나 연오정 등 팔각지붕의 전통 형식의 건물도 있다. 특히 석정루나 자유공원 광장에서 내려다보는 인천항 전경이 꽤 멋있는데 석양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매년 1231일에 서구 정서진과 월미도 등과 함께 해넘이 행사가 자유공원 광장에서 진행되곤 한다.

 또 191942324인의 국민대회 13도 대표자들이 이 공원에서 모여 <국민대회 취지서>를 발표하고 <임시정부 선포문>을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축이자 한반도 유일의 임시정부였던 한성 임시정부의 수립을 의결한 곳도 바로 이 공원이다. 자유공원 광장에 임시정부 수립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효도권장비

 

멀리 아침이 밝아오는 광경

 

자유공원 설명판

 

맥아더장군 동상

 

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

 

 자유공원을 통과하여 내려오니 신포국제시장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 멀리서 보면서 통과한다.

 

신포국제시장

 

 신포국제시장을 조금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면 답동성당이 나타난다.

 

 답동성당(天主敎 仁川敎區 主敎座 沓洞 聖 바오로 聖堂)은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에 위치한 천주교 인천교구의 주교좌 대성당으로, 주보성인은 성 바오로이다.

19세기말 제물포에 성당이 건립된 것은 이곳이 서울의 관문이고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입지라는 점을 중시한 당시 조선교구장 블랑(188490년 파리외방전교회) 주교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구한말 1897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처음 건립되었고, 페낭신학교에 있던 빌렘(홍 요셉 18601938)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인천지역 첫 번째 본당인 제물포본당(답동본당의 원래 이름)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때가 188971일이다.

답동성전의 건립은 빌렘 신부가 이듬해 지금의 성당 자리인 답동 언덕에 대지를 매입함으로써 첫 발을 내딛게 된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성전 건립은 1895년 정초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이듬해 종탑이 완공되고 마침내 189774일 조선교구장 뮈텔(18901933년 재임)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300평 규모로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역사적인 성전 축성식이 거행됐다. 1937년에 시잘레 신부의 설계로 증축된 991.74m²(300) 규모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이며 한국의 성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로 인천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답동성당은 문화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287호로 지정됐다.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제물포에 건립된 이후 답동성당의 아름다운 자태와 위용으로 인천의 역사적인 건축물이자 종교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답동성당의 여러 모습

 

 답동성당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성전에 들어가 잠시 기도를 한 후에 길을 다시 걸어 시가지로 향한다. 시가지 길을 이리저리 걸어가니 백범로가 나오고 백석중고등학교가 보인다.

 

시가지의 여러 모습

 

시가지 길을 계속 걸어가니 장고개라는 설명판이 보이고 이제 산으로 올라가게 한다. 여기서부터 함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함봉산은 부평도서관 뒷산을 지칭한다. 옛날 이 산에는 나무가 울창하여 호랑이가 살았다는 말이 있어서 함봉산이란 호랑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산이란 뜻인데 이것은 한자 풀이일 뿐 확실치 못하다.

 

장고개 설명

 

한남정맥 안내도

 

 높지 않은 함봉산을 지나니 원적산이 나타난다. 원적산(元積山)은 부평구와 서구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원래 표기는 이 아니라 으로 원한이 맺힌 산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세곡을 뱃길로 운반할 때 삼남지방의 세곡선이 김포를 지나 강화해협을 지나는데 손돌목에서 자주 좌초되어 서해바다와 한강을 연결하는 굴포작업을 하는데 원통이 고개를 파니 암석만 나와 실패하고 또 다시 안아지 고개를 파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원통하고 원한이 맺힌 산이라 해서 원적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적산공원은 부평구 산곡동, 청천동 2개동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공원으로, 인천의 중요한 녹지축이 되는 공원으로 인조잔디구장, 다양한 체육활동 공간과, 생태습지, 발물놀이터 등이 마련되어,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원이다.

 

원적정

 

원적산 등산 안내도

 

 원적산을 내려오니 멀리 종점인 대우하나아파트가 보이고 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