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44코스(사포버스정류장 - 줄포만갯벌생태공원 - 호암마을 -곰소염전 - 곰소항회타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4코스는 사포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조금 길을 걸으면 고창을 지나 부안으로 넘어간다. 해안을 따라 가면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이 나오고 계속 걸어 호암마을을 지나면 유래가 오래된 곰소염전에 도착한다. 여기서 잠시 머물다 걸어가면 곰소항회타운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나는 14km의 코스다.

 

44코스 안내판

 

 44코스 안내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대략 오십은 아직 되어 보이지 않은 남자가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는 아마 부인인 듯한 여인이 차를 몰고 있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하여 보니 나와 같은 부산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자기 부인의 고향이 이곳이라 자기만 길을 걷고 부인은 차를 타고 가서 목적지에서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직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 오랜 시간은 걷지 못하고 휴일이 있으면 띄엄띄엄 코스를 걷는다고 하였다. 이길을 걸으면서 길을 걷는 사람을 제법 보는데 나와 같이 1코스부터 순서대로 걷는 사람은 보지를 못하고 대부분이 띄엄띄엄 코스를 몇 개씩 걷고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걷다가 나는 사진도 찍고 해야겠기에 길 잘 걸으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져 내 속도에 맞추어 길을 걸었다.

 

길가에 핀 꽃

 

 

누렇게 익은 가을 들판

 

 들을 돌아 길을 가니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을 가리키는 표지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니 해안이 나타난다.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이다.

 

 줄포면 우포리 앞바다는 옛날에는 주요 항구로 이용되었으나 점차 갯벌이 퇴적됨에 따라 1960년대 후반에 줄포항은 폐항되고 줄포면 소재지가 상습적인 바닷물 침수 피해를 입고 있었다. 줄포갯벌생태공원은 침수에 대비하여 제방을 쌓은 것이 쉼터로 자리잡은 것이다. 제방을 쌓은 후 갈대와 띠풀 등이 무성해지고, 담수습지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생태늪지로 발전했다. 공원의 총 면적은 20여만 평으로 각종 들꽃들이 계절에 따라 만발해 지나가는 나그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생태공원 앞 갯벌은 지난 20101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될 만큼 갯벌이 살아 있는 곳으로 많은 조류와 염생 식물, 갯벌동물 등이 한데 어울리며 살아간다. 칠면초 군락도 넓게 펼쳐져 있어 초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들어 볼거리를 제공하며 좋은 추억을 남겨 주는 곳이기도 하다. 생태공원의 하얀 2층집 건물은 2005년 방영됐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촬영됐던 곳이다.

 

줄포갯벌생태공원 표지

 

줄포갯벌생태공원의 여러 풍경

 

줄포만 탐방로 안내판

 

 줄포갯벌생태공원을 지나 해안과 들판을 번갈아 지나가면 호암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지나 더 걸어가면 유명한 곰소염전이 나온다.

 

 부안군 진서면 곰소만에 있는 곰소염전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조선시대부터 천일염을 생산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줄포만에서 곰소만까지 화염(바다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서울 노량진과 마포나루를 통해서 도성으로 운송되었다. 지금의 곰소염전은 1942년에 이곳에 제방을 축조하면서 곰소 일대는 간척지가 되었으며 북쪽으로 넓은 염전지대가 형성되었다.

 소금은 보통 3월 말에서 10월까지 생산되는데 5,6월에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고 맛도 좋기 때문에 이 시기가 염부들에게는 수확의 계절이라고 한다. 연간 생산량은 20kg 소금포대로 약 10~15만 가마를 생산하는데, 신안군 일대의 다른 염전에 비해서 생산량이 많은 편은 아니나 '곰소천일염'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곰소염전 일대에는 갯벌이 발달해 있으며 바닷물에 미네랄이 많기 때문에 소금의 맛을 더욱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곰소 앞바다에서 잡힌 싱싱한 생선을 천일염으로 절여서 만든 젓갈이 유명해졌다.

곰소염전에 대해서는 예전에 내가 곰소염전에서 염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지식을 얻었는데 아래의 나의 블로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lhg5412.tistory.com/50, 곰소 염전 - 잘 말려진 천일염

곰소염전의 모습

 

 염전주변에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관광지로 변하여 있었다. 우연히 나이가 지긋하게 보이는 주차장의 차량운행을 관리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예전에 왔을 때와 달리 곰소가 엄청 변하였다고 하니 지금 곰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예전과는 다르게 발전했다고 하였다. 내가 이 염전에서 염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소금도 구입했다고 하니 그 염부가 누군가를 물었지만 그 염부를 나는 지금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내가 저 멀리 보이는 함초를 보면서 함초를 재배하는가를 물으니 재배하는 곳은 따른 곳에 있고 염전의 함초는 자생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 교통 관리하는 사람과 여러 이야기를 하고 주위에 있는 카페에서 쉬려고 하니 소금커피가 아주 맛있다고 추천을 하면서 여행을 잘 하라고 인사를 했다.

 

카페의 외부와 내부

 

 내가 예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카페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주차장 관리인이 추천한 소금커피를 한잔시켜서 느긋하게 음미를 하면서 마셨다. 커피를 받아서 살펴보니 커피 잔 주위에 소금을 둘러놓아 커피를 마시면 자연히 소금을 맛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커피와 소금 맛이 조화를 이루어 아주 색다른 맛이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커피였다.

 

소금커피

 

곰소항 주변

 

 카페에서 쉬다가 나와 다시 길을 걸으니 곰소의 해변이 나타난다. 해변을 따라 걸으니 철길이 보이고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곰소역이 나온다. 아마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옛 철길을 살려 역을 만든 것이라 여겨졌다.

 

곰소역

 

곰소 표지

 

 곰소항 해안을 따라 길을 가니 젓갈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젓갈을 좋아하여 이 곰소에 젓갈정식을 먹으려 몇 번이나 왔었는데 예전에 보던 그 음식점은 보이지 않고 시장도 예전과 달리 많이 커졌다.

 

 곰소항은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있는 지방어항으로 하루에 130여척의 어선들이 드나들 정도로 활성화된 어항이다. 곰소항 주변으로 대규모 곰소염전이 있고, 대한민국 최대의 젓갈시장인 곰소 젓갈시장과 수산시장, 건어물시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항구는 일제강점기 말엽 우리에게서 착취한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반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항구이다.

진서에는 곰소염전이 있어 소금 생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근해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 단지가 조성돼 있어 주말이면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곰소젓갈의 맛있는 젓갈정식은 아래의 나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s://lhg5412.tistory.com/51, 곰소 젓갈정식 : 깨끗한 천일염으로 담근 정갈한 맛

 

풍악소리가 들리는 젓갈축제장

 

젓갈시장

 

 

해안의 조형물

 

 해안을 따라 조금 가니 이 코스가 끝나고 다음 코스의 안내판이 보인다.

 

 이길을 걸으면서 예전의 추억도 되살리고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다.

 

서해랑길 43코스(선운사버스정류장 - 연기제 - 미당서정주생가 - 상포마을회관 - 사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3코스는 선운사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연기제를 지나서 질마재를 넘어 미당 서정주의 생가로 내려 간다. 농촌 길과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면 상포마을회관을 나오고 만정 김소희의 생가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서 조금 가면 나오는 사포버스정류장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나는 21.1km의 제법 긴 길이다.

 

43코스 안내판

 

 늦게 이곳에 도착하여 선운사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내려가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이곳은 풍천장어의 고장이라 가격이 만만하지 않지만 이곳까지 와서 먹지 않는다는 것도 여행의 본 목적에 어긋난다.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명심하는 것이 어느 지방에 가든지 그 지방의 특산 음식은 되도록 먹는 것이다. 그래서 정어구이 집에 들어가 혼자서 장어를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선운사 입구의 장어구이 집들

 

 선운사 입구로 내려가면 제법 큰 하천이 보인다. 이 하천을 따라가면서 보는 풍경도 매우 좋은데 코스를 보니 이 길로는 가지 않고, 하천을 가로질러 연기제로 길을 가게 한다

 

  이 하천이 주진천인데 일명 풍천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선운산을 뚫고 북으로 흘러 서해 바다 곰소만으로 유입되는 주진천은 풍천으로 더 이름이 알려져 있다. 원래 풍천은 풍수지리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을 일컫는 이름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굳어진 모습이다.

 주진천 하류에는 댐이 없어 바닷물이 역류하여 하구에서 4km 들어간 선운사 입구에서도 더 상류로 치고 거슬러 올라와서 훌륭한 기수역을 형성하여 수많은 생물이 자라는 생태계를 형성한다. 특히 주진천에서는 실뱀장어잡이가 어민들에게 높은 소득을 안겨주고 있다. 실뱀장어는 인근 양만장에서 키워 음식점으로 간다. 고창 일대에는 풍천장어라는 이름을 단 음식점들이 어딜 가나 눈에 띈다.

 

주진천(일명 풍천)의 모습

 

연기제

 

 다리를 지나 조금 가니 마을이 나오고 마을에서 개가 한 마리 나와서 길을 인도하듯이 나를 앞서 간다. 저번에도 같은 경험을 하였는데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조금 가다가 개는 자기 갈 길로 가고 나는 임도를 따라 더 가니 연기제라는 저수지가 나온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저수지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컸다. 이 연기제를 빙 돌아나가는 길이 이 코스였다.

 

 

 길을 따라 가다가 조그마한 오솔길로 코스가 나 있다. 조금 가니 '질마재'라는 표지가 있다. 미당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라는 시를 내가 좋아하기에 참으로 반갑다. 이 질마재를 지나 제법 내려가면 미당 서정주의 생가가 나온다. 

 

질마재 표지

 

질마재에서 미당 생가 가는 길 주변의 풍경

 

 서정주(徐廷柱)는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생명파 시인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이며 호는 미당(未堂), 궁발(窮髮), 뚝술이다. 탁월한 시적 자질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해방 전후에 걸쳐 한국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및 해방후의 여러 처신으로 역사적 평가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다.

 

 미당에 대한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lhg5412.tistory.com/54, 서정주 시의 고향 질마재 - 미당생가와 미당문학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아주 상세하게 많은 사진과 설명이 되어 있다.

 

 

미당 생가의 여러 모습

 

미당의 선운리 길

 

 미당의 생가를 벗어나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을 보니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누가 무엇이라 해도 우리 세대는 한국전쟁이 지나고 헐벗고 굶주린 세대이기 때문에 풍요로운 들판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들판을 지나고 다시 고창의 해안을 지나서 걸어가면 김소희의 생가가 나온다.

 

가을 들판

 

해안의 풍경

 

 국악계의 사표(師表)이며 국창(國唱)으로 불리는 김소희(金素姬)는 판소리 명창으로 호는 만정(晩汀)이며, 본명은 순옥(順玉)이다. 1917년에 태어나 1929년에 광주의 송만갑 문하로 들어가 판소리 공부를 하였는데, 15세에는 제1회 전국춘향제전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였고, 이후 정정렬, 박동실, 정응민 등에게 사사하였다.

김소희는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마친 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이때 광주에 내려온 이화중선(李花仲仙) 일행의 공연을 보게 된 뒤 소리에 이끌려 소리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송만갑(宋萬甲)의 문하에 입문하여 송만갑에게 심청가와 단가(短歌)6개월 정도 배우면서 애기 명창이란 이름으로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당대의 명창들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으면서 김소희는 서편제의 한 흐름과, 그리고 송흥록(宋興祿)-송우룡(宋雨龍)-송만갑으로 이어지는 동편제의 흐름까지 꿰뚫게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판소리의 성음이 유독 미려(美麗)한 것은 이런 가곡 발성의 영향도 있다고 평가된다.

김소희는 안향렬, 신영희, 이명희, 안숙선, 오정해 등의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판소리를 세계화시키는 데에 공을 세웠다.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 있는 김소희생가(金素姬生家)는 예전에는 주변이 줄포만(곰소만)에 자리 잡은 포구였으나 간척되어 지금은 대부분 논으로 바뀌었지만 하천을 따라 바다로 가는 물길이 남아 있다. 김소희 생가의 마루에 앉아서 보면 왼쪽으로부터 노령산맥이 포진하였고, 오른편으로는 변산반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자 형태의 초가지붕을 얹은 민가로, 온돌방 3칸과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토와 지푸라기를 짓이겨 바람벽을 만들었고, 댓살로 문과 창문을 엮었다.

안방 문 위에 김소희 사진과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뒤뜰에 장독대와 우물이 남아 있으며 헛간도 한 채 있다.

 

김소희 생가의 여러 모습

 

 김소희 생가의 툇마루에 앉아 가지고 다니는 음식물로 가볍게 점심을 먹으며 김소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예전에 들은 여러 일화들을 생각하며 참 대단한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집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다시 길을 떠났다.

 

 

 김소희 생가를 지나 마을길을 따라 조금 가면 사포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났다. 버스정류장 주변에 쉼터도 없어 길가에서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길을 옮긴다.

서해랑길 42코스(심원면사무소 - 화산교 - 천마봉 - 선운사 - 선운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2코스는 모처럼 해안을 벗어나서 걷는 구간이다. 시작점인 심원면사무소를 출발하여 화산교를 지나면 선운산으로 올라가게 한다. 제법 산을 타고 천마봉을 지나 내려오면 유명한 선운사에 도착한다. 선운사를 지나 절입구에 나오면 이 코스는 끝이 나는 11.6km의 짧은 길이나 산을 넘어오는 길이 만만하지 않다.

 

42코스 안내판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고 구시포해변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하니 아직은 이른 점심시간이다. 하지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하면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밥을 먹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식당을 발견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주변에 특이하게 'tv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는 음식점이 보여 재미있게 생각하여 가니 여러 음식 중에 도시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흔하지 않는 민물 새우탕이 있었다. 그래서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새우탕의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흔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도 큰 재미다.

 

심원면사무소

 

심원면 거리

 

화산마을 안내판

 

 화산마을을 지나 산으로 조금 가니 서해랑길 42코스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카페가 나온다. 이 외진 곳에 손님이 과연 있는지가 의문인 곳인데 카페와 펜션이 있다. 이런 곳에서 세상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삶을 누리면서 사는 것도 멋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페와 펜션

 

 카페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선운사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선운산으로 올라가는 산길로 코스가 나 있다.

 

선운산으로 올라가는 길

 

 고창군 심원면, 아산면, 해리면에 걸쳐 있는 높이가 334.7m인 선운산(禪雲山)은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계곡미가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다. 577(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선운사(禪雲寺)를 창건하면서 불리던 이름으로, 선운이란 말은 신선이 구름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이다. 선운산의 유래에 대해 잘못된 견해로 선운사에서는 미륵부처가 있는 도솔천을 의미해서 도솔산(兜率山)으로 부른다거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진흥굴에서 수도하며 왕비 도솔의 이름을 따서 도솔산으로 지었다고 말하나 이는 속설에 불과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선운산의 선은 봉선한다’, ‘참선한다는 뜻의 선()인데, ()으로도 쓰인다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선운산으로 나와 있고, <고려사(高麗史)>악지에 백제 유민들이 부르던 선운산가선운산곡이라는 기록도 전해지니 선운산이 원래 이름이었던 것이라 추측된다.

 선운산의 주봉은 선운사 뒤에 있는 도솔봉 또는 수리봉, 제일 상봉은 경수봉, 그밖에 청룡봉, 천마봉, 개이빨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이정표

 

저 멀리 보이는 서해 바다

 

울창한 조릿대

 

이정표 밑에 서해랑길 표지(화살표)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혼자서 계속 올라가니 여러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이 보이고 서해랑길의 표시를 따라 가니 어느 새 천마봉에 도착하였다. 선운산 천마봉은 선운사 사찰 서쪽3.6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336m로서 정상에 올라서면 주위의 풍광에 감탄하게 하는 산이다.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솔천의 비경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인접한 낙조대와 함께 가장 많이 오르는 관광명소이다.

 

천마봉 안내판

 

 낙조대에서 도솔암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제법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도 도솔암 쪽에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짧은 등산로를 택하여 산을 올라온 것이다. 서해랑길은 산을 넘어가는 코스이기에 심원면 쪽에서 올라가서 산을 넘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산을 내려오는데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영인이 이야기를 걸어와서 같이 걸으며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도솔암 근처에서 방향을 달리 하여 다시 혼자 걸었다.

 

도솔암 내려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도솔암에서 유명한 것은 마애불이다.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도솔암 주변 암벽에 새겨진 고려 시대의 대형 마애불상이다. 마애불상은 양감을 살리지 못한 저부조로 새겨져 세련된 조형미가 떨어지지만 규모 면에서 국내 마애불 중에서 큰 편이지만, 거친 암질과 평면적인 조각 수법 등으로 토속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마애불상의 가슴 중앙에는 사각형 구멍이 남아 있다. 이곳에 복장 유물을 넣기 위한 용도로 추정되지만, 이곳에 비결(祕訣)을 넣었다는 조선 후기의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를 믿는 동학의 주도 세력이 무력으로 책을 탈취하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 조각사에서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기록이 드문데, 이 마애불상은 조성 시기를 알려주는 기록이 전하고 있어 편년 설정에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마애여래좌상

 

도솔암의 여러 모습

 

 

 

 도솔암에서 내려와 도솔천을 따라 걸어 내려오니 선운사가 나타난다. 선운사는 내가 좋아하는 절 중의 하나라 너무나 많이 온 곳이라서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앞으로 그냥 지나친다. 선운사에 대한 여러 소개는 나의 블로그에 있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s://lhg5412.tistory.com/213 꽃무릇 - 선운사, 불갑사

https://lhg5412.tistory.com/57 선운사 - 내리는 봄비에 흩날리는 벚꽃

https://lhg5412.tistory.com/47 선운사 동백꽃 - 20124

 

선운사 템플스테이

 

선운사 돌 담장

 

선운사의 여러 모습

 

선운사 입구의 여러 풍경

 

 선운사입구에 나오면 버스정류장 옆에서 42코스는 끝이 난다.

 

 시간이 되면 선운사를 좀더 둘러보았으면 좋았겠지만 오늘은 너무 많이 걸었고 너무나 많이 왔던 선운사이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 코스를 끝낸다.

 

서해랑길 41코스(구시포해변 - 동호해수욕장 - 서해안바람공원 -심원면사무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1코스는 구시포해변에서 출발하여 계속 해안을 따라 걸으면 동호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이곳을 지나면 서해안바람공원이 나오고 해안을 따라 걷다가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심원면이 나오고 심원면사무소앞에서 끝이 나는 19.7km의 제법 긴 길이다.

 

41코스 안내판

 

 여행을 하면서 항상 아침 6시에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먹고 빠른 시간부터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길을 떠나니 구시포해변에 인적이 없다.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구시포해변을 걸어간다.

 

구시포해수욕장 풍경

 

 구시포해변 끝에서 잠시 바다를 벗어나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잠시 길을 따라 걸어가니 명사십리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명사십리는 우리나라 곳곳에 있지만 이곳의 명사십리는 서해의 해안으로서는 좀 특이하다.

 

한국해상풍력 발전회사

 

 이 해안에는 바람이 아주 세게 불기 때문에 해상풍력발전이 이루어져서 풍력발전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고창군 상하면과 해리면으로 이어진 약 8.5km 명사십리 해변은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직선형 해안으로 파도와 조수에 의해 계절에 따라 퇴적물이 다르게 나타나는 해안이라 한다. 명사십리는 해변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으면서 갯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해수욕만이 가능한 해변이 아닌 갯벌 체험을 겸할 수 있는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강한 계절풍의 영향으로 해변과 인접한 육지에는 풍성한 해안사구가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형성된 해안사구에는 해송 등의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어 바람, 해일 등으로부터 해안 마을을 보호해 주는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명사십리해변 옆의 직선으로 난 길은 어디에서 끝이 나는지를 알 수가 없게 길었다. 이 해변을 걸어가면 여러 마을이 나오고 해수욕장도 여러 곳이 나온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마을이 장호어촌체험마을이다.

 

 2011년도부터 시작되었다는 장호어촌체험마을에는 1년에 약 1만 명 정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은 예전에 농사 위주였으나 체험프로그램들을 시작한 뒤로 관광산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긴 백사장에 물이 빠지면 거대한 갯벌이 생기는데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이 아니라서 모래로 이루어진 갯벌이라 단단해서 차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고 예전엔 소형 비행기 활주로로도 쓰였다고 한다.

갯벌이 아주 길고 넓으며 조개도 많이 나오고, 발이 빠지는 갯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도 안전하게 체험을 할 수 있다. 2016년에 삼시세끼고창 편에서 양동이 가득 조개를 캐는 모습이 TV에 나왔었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이 해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보니 곳곳에 쓰레기통이 보이고 그 쓰레기통을 비우는 마을 사람들도 보았다

 

 

장호어촌체험마을 안내판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안내판

 

명사십리해변

 

장호어촌체험마을

 

명사십리 해양파크

 

 

 명사십리를 계속 따라 가니 특이하게 해안가의 도로 옆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정도의 넓이의 나무판이 즐비하게 깔려 있다. 앞으로는 탁 트인 명사십리 해변을 구경할 수 있께 만들어 놓은 것이 참신하다고 생각되었다. 이 길을 따라가니 동호해수욕장이 나온다.

 

 부안 변산반도와 고창군 사이의 곰소만 남쪽에 자리한 동호해수욕장(冬湖海水浴場)은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에 있으며 1967년에 개장하였다.

 명사십리의 일부분으로 백사장 길이는 주변을 합하여 약 4이나 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다. 모래사장은 모래가 가늘고 경사가 완만하여 어린이들도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해변 가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천연 그늘과 바람을 만들어 주어 더위를 씻겨 준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났기에 잠시 쉬려고 주위를 돌아보니 해수욕장에 바다를 바라보는 명소에 카페가 있다. 이른 시간이지만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한가롭게 앉아서 넓게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카페 전경

 

 

 해수욕장을 벗어나니 마을이 있고 조그마한 포구가 있다.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에 있는 포구인 동호항(冬湖港)은 조선 시대에 동백정포(冬柏亭浦)와 영신당이 있었던 곳이다. 동백정포는 동호마을의 북쪽 언덕에 있는 동백정이라는 정자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동백정 주변은 몇 리에 걸쳐 동백나무가 푸르게 우거져 있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동호항 표시

 

고창컨트리클럽 표지

 

 

 동호항을 지나 해안을 걸어가니 이국적인 모습이 보인다. 빨간 풍차와 여러 모양의 바람개비가 보이며 나무테크도 정비되어 있고 벤치도 있는 공원이다. 이름도 특이한 바람공원이다. 고창 서해안 바람공원은 빨간 풍차와 바람개비 등 많은 조형물과 시원한 바닷바람, 서해안의 해넘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다. 누구나 휴식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바람공원 앞 고창 갯벌(세계자연유산)

 

 고창갯벌은 고창군과 부안군 사이에 있는 곰소만(줄포만)에 위치한 반폐쇄적인 내만형 갯벌로서 새만금 갯벌이 간척으로 사라짐에 따라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지고 있다. 20071231에 우리나라의 연안습지 중에서 일곱 번째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고창갯벌은 갯벌의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도 풍부하다. 고창갯벌의 주요 생태계는 조개류, 갯지렁이 등 저서동물 68종이 서식하며, 풀게, 동죽 등 수산 자원이 13종에 이른다. 또한, 곰소만(줄포만) 연안에는 갈대, 칠면초, 나문재 등 염생식물 22종이 서식하고 있다. 물새의 경우 여러 종이 출현했으나 그 중에 전 세계 생존 계체 1% 이상의 종으로 흰물떼새 1종이 출현하였다.

 고창갯벌은 부안갯벌과 합하여 고창·부안갯벌로 201021일에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었다. 고창·부안갯벌은 기존의 고창갯벌 습지보호구역 10.4와 부안 줄포만갯벌 습지보호구역 4.9, 그리고 고창군 주변갯벌 30.2를 합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등록면적은 45.5이다. 이 지역들은 동일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점이 감안되어 람사르습지에 고창·부안갯벌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다.

고창·부안갯벌은 펄과 모래 및 갯벌·혼합된 갯벌이 조화롭게 분포되어 다양한 저서동물과 칠면초 · 나문재 등 염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안의 반대편의 들판

 

엄청난 크기의 고창갯벌

 

염전

 

고창갯정식물워 표지

 

갯벌에서 조개캐는 모습의 벽화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고창갯벌의 여러 전시관

 

 

 고창갯벌을 벗어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가을 들판을 걸어가니 심원면사무소가 나오고 여기서 41코스는 끝이 난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백사장과 갯벌을 보면서 자연이 얼마나 우리 인간이 상상하는 이상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서해랑길 40코스(법성리버스정류장 - 홍농버스터미널 - 영광승마장입구 - 고리포 - 구시포해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0코스는 법성리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농촌 마을길을 걸어 홍농버스터미널을 지나고 계속 가을 농촌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고리포에 도착한다. 여기서 해안을 따라 조금 걸으면 저녁 해넘이의 노을이 아름다운 구시포해변에서 끝이 나는 13.7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40코스 안내판

 

 40코스의 시작이 법성포 중심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약 한 달전에 법성포에 왔다가 이곳의 유명한 굴비정식을 먹지 못해 아쉽게 생각하며 돌아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굴비정식을 먹기로 마음속으로 깊게 명심하였다. 비교적 내가 식탐이 있는 편이라 어느 지방이든지 그 지방의 명품 음식을 꼭 먹어야만 분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아는 굴비 파는 집에 가서 식당을 추천받아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법성포의 명품 굴비 다리 조형물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으로 참조기로 만든 영광굴비가 유명하다. 특히 산란을 위해 3월 중순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를 쓴 굴비를 영광굴비라 하며 가장 유명하다.

 전통적인 영광굴비는 조기의 아가미를 헤치고 조름을 떼어낸 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아가미 속에 가득히 소금을 넣고 생선 몸 전체에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아 이틀쯤 절인다. 절인 조기를 꺼내어 보에 싸서 하루쯤 눌러 놓았다가 채반에 널어 빳빳해질 때까지 말린다. (식품과학기술대사전에서) 영광굴비는 섶간이라 하여 1년 넘게 보관해서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재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굴비를 연상하면 법성포 굴비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법성포 인근의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더 이상 살지 않고, 대신 추자도 인근에 조기 어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법성포 굴비는 추자도산 조기를 많이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더구나 중국산 조기로 굴비를 만드는 일이 허다하여 국내산 조기는 많이 귀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굴비를 제조하는 집은 거의 없다. 그래도 영광에서 조기가 건조되니 '여전히 영광굴비는 영광굴비다'라는 주장이 있다.

 굴비라는 어원은 고려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한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수라상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뱃노래를 부를 만큼 참조기 어업이 성행했었고 엄청난 양의 조기가 잡혔다고 하지만 이제는 참조기가 그만큼 잡히지 않아 모양이 비슷한 수조기를 이용하여 속여 파는 일도 제법 있다.

 

굴비 가게가 쭉 늘어서 있는 거리

 

 굴비거리를 지나가서 가리켜준 식당을 찾아가니 굴비정식은 1인분은 팔지 않고 2인분이상으로만 주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 그러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상차림이 2인분이 기본이니 1인분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그 지방의 특산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항상 일어났다. 내가 전국을 걸어다니며 느끼는 현상인데 좀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요즈음은 홀로 여행하는 사람도 많은데 언제까지 홀로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작년에 남파랑길을 걸으며 강진에 갔을 때 음식점에서 혼자라니 상차림비를 좀 더 주면 1인분을 주겠다 하여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글을 썼던 일이 있다. 그래서 주인장에게 상차림비를 더 줄테니 1인분을 주문하자 하니 굉장히 난감해 하면서 안된다고 하였다. 굴비정식은 먹어야 하겠기에 혼자서 2인분을 시켜서 배불리 먹고 남은 굴비를 포장해 달라고 하니 기꺼이 포장을 해 준다. 이런 점은 또 굉장히 친절하였다. 어찌 되었던 맛있게 굴비정식을 먹었으니 만족하였다.

 사실은 이 굴비정식에 나온 굴비구이나 굴비매운탕ㄷ도 맛있었지만 간장새우절임장과 간장꽃게장, 양념꽃게장이 더 맛있었다. 내가 게장과 새우장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이것을 먹기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배불리 먹고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니 주인장이 자기는 강화도 출신이라면서 내가 걷는 종착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충분히 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굴비정식 상차림

 

내가 점심을 먹은 식당

 

 

 법성포를 벗어나 농촌의 길을 걸어가니 홍농읍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1985년 읍으로 승격한 영광군의 서북단 맨 끝에 위치한 홍농읍(弘農邑)은 북동쪽으로 전북 고창군 공음면(孔音面), 남쪽으로 법성면(法聖面), 북쪽으로 고창군 상하면(上下面)에 접하고, 서쪽으로 서해에 면해 있으며 구암천이 남쪽 경계를 지나 서해로 유입된다.. 서부의 금정산(264m) 일대는 200m 내외의 산지를 이루며,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100m 이하의 저평한 산지와 평지를 이루고 있다. 계마리에 영광 원자력발전소와 가마미 해수욕장이 있다.

 

홍농읍의 여러 모습

 

 

 홍농읍거리를 걸어가니 영광승마장 입구가 나오고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가며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있다. 제22회 홍농읍민의 날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많은 관광버스들이 주변에 보이기도 한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읍민들이 모여 친목도 도모하며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홍농읍민의 날 모습

 

이정표

 

가을의 풍경

 

 홍농읍을 지나 농촌을 조금 지나면 전라남도를 벗어나 전라북도로 들어선다. 기니긴 남도를 드디어 다 걸은 것이다. 구시포가는 길의 이정표도 나오고 유명한 풍천장어집을 가리키는 안내판도 보이니 고창으로 들어선 것은 확실했다.

 

구시포해수욕장 가는 이정표

 

 

 구시포를 가는 길에 조그마하지만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고 조용하게 아주 친근해 보이는 어항이 나타난다. 고리포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고리포(古里浦)는 조선 시대 봉화를 올렸던 고리포 봉수대가 있었던 포구로 유명하며 봉군들이 머물렀던 마을로 추정된다. 봉수대는 포구 북동쪽 600m 지점의 안산의 정상에 있었다고 한다.

현 고창 지역의 포구 중 유일하게 그 위치가 이동되지 않고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포구로 모래사장에 있는 고리포 포구는 10척의 소형 선박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안쪽의 해변에는 1.3정도에 걸쳐 양어장이 건설되어 있다.

 

고리포의 풍경

 

 고리포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구시포다. 그런데 고개이름이 주씨고개다. 무슨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알지를 못한다.

 

 

 조금 가니 송림이 나온다. 바로 40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구시포 송림이다. 이 송림을 지나 해안을 따라 조금 가면 종착점이 나온다.

 

구시포 송림

 

구시포해수욕장 전경

 

구시포해변의 고창 그네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구시포(九市浦)는 조선 전기부터 확인되는 옛 포구로 한자로 구시포(仇時浦)로도 표기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3월에 법성포를 출발한 세곡 선단이 첫 번째 정박하는 곳이었으나 조운 제도가 폐지된 1895년 이후에는 마을 어항으로서의 기능만 유지해오고 있다. 구시포의 원래 이름은 새나리불영(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이었으나 현재 이름은 아홉 개의 도시, 혹은 아홉 개의 저자를 먹여 살릴 마을이란 뜻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구시포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구시포 마을의 앞이 포구였고 당시에는 구시포 마을 안쪽에 있는 섬포(蟾浦)마을까지 바다였고 조수가 구시포 마을 앞 좁은 물목을 통하여 섬포까지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구시포 마을 앞을 막는 간척으로 인하여 섬포는 바닷물이 차단되어 1955년 구시포 염전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으며, 구시포는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에 뽑혔으며, 울창한 송림과 넓고 단단한 모래사장을 갖춘 구시포 해수욕장과 해수 찜이 잘 알려져 있다.

 

 구시포에는 각종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음식점과 편의점뿐만 아니라 숙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았다. 그러나 숙박시설에 전화를 하니 방이 없다는 답이 많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조금 당황하였으나 어느 펜션에 전화를 거니 방이 있다고 한다. 주인장과 이야기를 해 보니 혼자서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은 드물고 대부분이 단체나 가족 단위로 숙박을 하는 시설이라 하였고 더구나 주말이라 방이 없다고 하였다.

 

 숙소에 배낭을 풀고 시간이 되어 구시포의 해넘이를 구경하러 나갔다. 해넘이 풍경을 보는 것은 여행을 하면서 수시로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그 장엄하고 신비로움에 감탄을 한다.

 

구시포의 해넘이

 

 해넘이를 구경하고 편의점에 가서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과 음료수 등을 구입하고 오랜만에 맥주를 한 캔 마시기로 하고 맥주와 주전부리를 구입하였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거의 지키고 있지만 이런 날은 조금의 알콜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품을 구입하고 숙소롤 돌아와 한가로이 쉬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