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84코스(인주공단교차로 - 공세리성당입구 - 쌀조개섬입구 - 노양마을회관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서해랑길 84코스는 인주공단교차로에서 출발하여 유명한 공세리성당 입구를 지나서 노양마을회관정류장까지 가는 18km의 길이다.
84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약 한 시간 정도 길을 걸어가니 공세리성당 입구에 도착한다. 코스의 길은 성당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공세리성당을 가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당으로 발을 옮겼다.
공세리성당 이정표
공세리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서 내포지역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중요한 중심지로 공세리뿐만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해미성지나 갈뫼못성지 등등 곳곳에 한국천주교회 초기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성당입구
성당 설명과 안내도
공세리성당(貢稅里聖堂)은 1895년 6월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대전교구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져 역사적 가치가 높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1922년에 완공된 건물은, 한국의 오래된 성당들이 다 그러하듯이 벽돌로 된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성당이 고풍스럽고 주변 조경도 잘 다듬어져 멋진 사진을 찍기에 좋다. 성당 마당에는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보호수로 지정된 거목이 많아 나무만 찍어도 멋지다. 하지만 그 나무가 건물을 가리어 성당 건물이 잘 나오는 사진을 찍기에는 다소 불편하여 건물 촬영 시는 여러 곳에서 각도를 맞추어야 하기에 한 번에 안 잡힐 수 있다.
공세리성당은 1801년부터 1873년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한 32명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성지기에 더욱 경건하고 의미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병인박해 당시의 유물과 유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지 박물관은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을 비롯 1,500여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성당 주위에는 십자가의 길14처와 별채로 꾸며진 성체조배실, 장구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삼백년 이상된 보호수들과 ´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있다.
아산만을 잇는 공세리 언덕 위에 세워진 공세리성당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 덕분에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미남이시네요´, ´아내가 돌아왔다´, ´청담동 앨리스´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명소로 가톨릭을 믿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성당들 중에 하나이다. 2005년도에는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 이곳은 이명래 고약의 발산지로 에밀 드뷔즈 신부가 이곳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는데 그 비법을 이명래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보호수 거목
성모 마리아상
성당 본관
14처 십자가의 길
보호수
멀리서 보는 성당 전경
삼십이순교자현양비
본당 주변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기도초를 밝히고 기도를 한 뒤에 본당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묵상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내가 지나는 곳에 성당이 보이면 기도를 드리는 일이 일상이 된 것 같다.
본당 내부의 모습
성당을 나와 다시 길을 걸으니 백석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서해선 철로가 보인다. 이 서해선이 개통되어 이제 이곳으로 오는 교통이 좀 편리해지기를 빌면서 끝없 길게 이어지는 아산호 주변을 걷는다.
서해선
안성천(安城川) 하구에 있는 아산호/평택호(牙山湖/平澤湖)는 저수량 1억 2,300만t으로 충남 아산시 인주면(仁州面) 공세리(貢稅里)와 경기 평택시 현덕면(玄德面) 권관리(權管里) 사이에 아산만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생겨난 인공호수다. 제방 위에는 너비 12m의 새로운 도로가 개설됨으로써 평택시와 아산시를 쉽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고, 연평균 필요 용수 1억 800만t을 공급하고 남는 물은 남양호(南陽湖:汾陽灣 안쪽에 조성한 인공담수호)에 송수한다. 또한, 1977년에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면서 아산만일대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었고, 특히 담수어의 낚시터로 이름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찾아들고 있다. 내가 걷는 날에도 방조제 주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야영을 하면서 즐기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호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본래 호수는 1974년 5월 준공을 기념하는 '아산호기념탑'을 세우면서 아산호라 불리었는데 1990년대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가 호수관리를 담당하면서 평택호로 불리게 되었고, 1994년 5월에는 교통부가 아산호에서 평택호로 명칭변경 고시(제 1994-25호)를 했다. 이후 아산호와 평택호가 혼용되고 있으며, 명칭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아산호의 여러 풍경
아산호 주변을 걷는 도중에 나와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났다.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가는 모습이 친근함이 들어 이야기를 하니 강원도 영월에 사는 82세 된 노인이었다. 나도 70이 넘었지만 그 연세에 길을 걷는다는 일이 너무 존경스러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길을 걸었다. 이야기를 하니 그 분도 나와 같이 '해파랑길, 남파랑길'을 모두 걷고 지금 '서해랑길'을 걷는 중이라 하면서 어느 정도 걷고 집에 갔다가 다시 그 구간부터 걷는다고 하였다. 이점도 나와 같은 걷기 방법이라 친근감이 많이 들었다.
아산호 주변의 여러 풍경
아산호 주변을 걸어 구룡교를 건너서 평택시로 들어가 노양리마을회관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났다. 나는 이번 여정을 여기서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 일상의 생활을 하다가 다시 길을 걸을 예정이지만 길에서 만난 그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코스의 길을 떠난다고 하였다. 잠시 쉬다가 길을 조심하라고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평택지제역으로 가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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