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39코스(답동버스정류장 - 영광노을전시관 - 영광대교 - 법성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39코스는 답동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도로를 조금 걸으면 봉화령 산길로 들어가게 한다. 제법 긴 산길을 걸어 다시 도로로 내려와서 백수해안도로를 걸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면 영광노을전시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해안을 따라 걸어 영광대교를 지나면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코스는 법성포 법성리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6.3km의 길이다.

 

39코스 안내판

 

안내판 옆에 있는 38코스 우회도로 안내도

 

백수해안도로 안내도

 

답동마을 펜션단지 안내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나는 것이 습관이라 길을 떠나니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니 등산로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런데 등산로라는 것이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은 것같은 아주 좁은 길로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길이다. 도로를 따라가면 위험하다고 산길로 가라고 인도하는 것 같은데 코리아둘레길을 계속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너무 도로를 피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조심하면 아무런 위험이 없는데 유별나게  구경할 것도 없는 산길을 걷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

 

산길로 가는 입구 표시

 

길도 제대로 없는 산길

 

이정표

 

 

봉수 유적지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보는 영광 앞 바다

 

가자봉 정상 표시

 

구수산 등산로 입구 표시

 

 산을 돌아 나오니 구수산등산로 입구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러니 답동마을에서는 등산로가 제대로 없고 반대쪽에는 제법 등산로가 갖추어져 있었다.

 

 산을 내려와 조금 걸어 해안으로 가니 사당이 보인다. 모열사(慕烈祠)라는 사당인데 정문이 한자가 상당히 어려운 도해문(蹈海門)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몰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역사적 사실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영광정유재란열부순절지'라는 곳이었다.

 

 이 순절지는 우리가 잘 모르는 곳이니 다소 긴 설명이지만 알리고자 한다.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847-8(대신리)에 정유재란열부순절지(丁酉再亂烈婦殉節地)가 있다.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에 살던 동래 정씨, 진주 정씨 두 문중의 아홉 부인들이 왜적을 피해 영광군 묵방포까지 피신하였다가, 왜군을 만나서 의롭게 죽을 것을 결심하고 모두가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한 곳이다. 아홉 부인들이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것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7(1681) 이곳에 순절비를 세웠다.

 순절지에 있는 작은 사당 모열사(慕烈祠)는 바닷물에 몸을 던진 12명의 여인의 정절을 기려 칠산 앞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안 언덕에 세운 사당이다. 모열사와 열부 순절소 비각을 묶어 정유재란열부순절지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19769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모열사의 정문이 도해문인데 도해(蹈海)는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다는 뜻으로, 고결한 절개와 지조를 지킴을 이르는 말이다. 이 어려운 이름을 누가 찾아서 명칭을 정했는지 참으로 알맞게 잘 지은 이름이었다.

 

  정유재란 열부순절지 비각(丁酉再亂 烈婦殉節地 碑閣)은 팔각의 돌기둥 4개를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형 옥개석을 배치하였다. 바다를 뒤로하여 오른쪽에 8열부의 비각 그 옆에 정박(鄭博)의 처 밀양박씨의 비각(1946 건립)이 같은 규모로 배치되어 있다.

 

 몇 해 전에 후손들이 세운 건립기는 아래와 같다.

 

 당시(1597)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동래정씨와 진주정씨 집안사람들이 정유재란을 당하여 서울로 피난을 가기 위해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 앞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던 중 왜적선을 만나 피랍위기에 처하자 일행 중 12부녀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그 사실이 널리 알려져 광해 9(1617) 동국신삼강행실도에 그 내역과 그림이 수록되었으며, 숙종7(1681)에 열부로 지정되어 정려가 내려졌다.

당시 함께 피난을 가다 왜구에 붙잡혀 일본에서 3년간을 억류되었다 귀환한 정경득은 만사록(萬死錄)을 남겼고, 동생 정희득은 해상록(海上錄)을 남겼다. 조카인 정호인은 정유피난기(丁酉避難記)를 남겼는데 그들의 일기에도 그 날의 동시순절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8열부는 동래 정운길(鄭雲吉)의 처 함양오씨(咸陽吳氏), 장남 정경득(鄭慶得)의 처 순천박씨(順天朴氏), 차남 정희득(鄭希得)의 처 함평이씨, 족질 정호인(鄭好仁)의 처 함평이씨이며, 진주 정함일(鄭咸一)의 처 함평이씨(咸平李氏)와 그의 딸 정씨, 진주 정주일(鄭主一)의 처 함평이씨, 진주 정절(鄭節)의 처 영광김씨(靈光金氏) 등이다.

 

 

도해문(蹈海門)

 

모열사(慕烈祠)

 

순절지 설명판

 

순절비각

 

순절비각 앞 바다

 

 순절지를 지나며 참으로 수난이 많았던 우리의 역사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어떤 고난의 역사든지 온갖 어려움을 겪고 피해를 입는 것은 항상 민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바다를 보다가 옆에 나 있는 나무 테크로 걸음을 옮겼다.

 

 

 해안에서 한가로이 날고 있는 새들을 보며 서해의 바닷가를 걸으니 노을전망대가 나타난다. 얼마나 노을이 좋으면 이런 벽지의 해안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을까? 하고 생각만 했다. 내가 지나가는 시간은 한낮이어서 노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노을전망대

 

 

 노을전망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영광노을전시관이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가운데 하나인 백수해안도로에 위치하여 서해안을 대표하는 해넘이 관광지인 영광노을전시관은 2009년에 개관하여 운영 중인 곳으로, 천혜의 자연경관이 빼어나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영광 노을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서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는 시간은 한낮이라 노을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이곳에서 해넘이의 풍광을 즐기며 찍은 사진으로 대신한다.(아래의 나의 블그에 있음)

 https://lhg5412.tistory.com/214 칠산 바다의 저녁 노을 - 백수해안도로(전남 영광)

 

 

영광노을전시관

 

물결이 일고 있는 서해 바다

 

 영광노을전시관에서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가지 않고 해안에 나 있는 나무테크 길을 따라 걸어가면 여러 가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노을종각에 이르러서는 설명에 있는 대로 종을 껴안고 작게 종을 울려 소리의 공명으로 마음의 편화로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노을종을 지나면 백수해안도로로 올라간다.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

 

노을종

 

 

 도로를 따라 계속 가니 멀리영광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오는 영광대교를 계속 보면서 해안을 따라 걸으니 물결에 의해 침식당한 해안의 풍경과 갯벌 등을 보면서 가니 영광대교가 나타난다.

 

멀리 보이는 영광대교

 

영광대교

 

 영광대교 가까이 가니 영광의 자랑인 굴비집들이 보이고 굴비 냄새가 코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대교 가까이에 아주 평화로운 해수욕장이 보여 이름을 보니 이름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래미 해수욕장'이다.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여 마음도 평화롭게 느껴졌다.

 

모래미해변

 

 영광대교는 영광군 백수읍과 홍농읍을 잇는 다리로 2016년에 완공된 다리다. 주탑과 주탑 간 거리는 320m에 달하는 영광대교의 완공으로 영광 지역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관광 산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다리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갈 때는 나도 모르게 조금은 두려운 느낌을 가진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수 많은 다리를 건넜는데 그 때마다 아래를 보면 아찔해진다.

 

영광대교

 

영광대교에서 보는 바다

 

이정표

 

 

 대교를 건너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걸으면 백제불교최초도래지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불교 전파는 삼국시대 고구려(소수림왕 2년 전진의 왕 부견)와 신라(눌지 마립간 때 묵호자)의 경우는 불교의 전래 경로와 초전 법륜지가 분명하나, 백제불교의 전래는 불확실하였으나 삼국사기(백제본기 제2 침류앙), 삼국유사(제3권 홍법 제3 나타백제). 해동고승전(권제1 마라나타) 등에 인도의 명승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의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불갑사를 개창하여 백제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전하여 왔다

 그러다가 1998년 동국대학교 교수진들의 연구와 고증을 통해서 현재의 영광 법성포 지역이 백제 불교의 도래지였다는 것이 알려졌고, 법성포 좌우두는 인도승 마라난타가 A.D 384년에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광군은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있다. 법성포의 법()은 불교를, ()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가리키는 명칭이라고 한다.

일주문은 인도 간다라 양식의 관문이며 간다라 불교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간다라유물관과 법당 등이 있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의 이모 저모

 

이름도 요상한 '숲쟁이동산'

 불교도래지를 관통하여 법성짐성쪽으로 가니'숲쟁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靈光 法聖鎭 숲쟁이)는 고려시대 번창한 포구였던 법성포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성진성(法聖鎭城) 및 숲을 지칭하는 것으로 2007년에 대한민국의 명승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숲쟁이는 법성포 마을에서 홍농 방향의 지방도로 고개 마루 부분에 좌우측으로 산 능선을 따라 약 300m에 걸쳐 조성된 숲으로, ‘쟁이란 재, 즉 성()이라는 뜻으로 숲쟁이란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법성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해 왔으며, 예로부터 이 숲에서 단오행사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용왕제와 단오날 선유놀이 등 지금의 영광 단오제와 각종 민속행사가 이 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 조금 가니 많이 허물어져보이는 조그마한 성이 보인다. 길을 걸으며 해안의 각 고장에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성을 보았는데 그러한 성 중 하나로 법성진성이다.

 

.영광 법성진성(靈光 法城鎭城)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으로 2002년에 전라남도의 기념물 205호로 지정되었다.

법성진성은 남쪽으로 바다와 접한 구릉의 남사면에 있으며, 평면상 직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수군들이 전투를 위해 해안 벽에 쌓는 성곽)터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둘레 1,688, 높이 12척으로 기록되어 있는 법성진성은 석성으로, 동서 너비 약 200m, 잔존 최대 높이 300㎝ 내외, 성벽의 너비 700㎝ 내외의 규모이다. 남벽이 모두 파괴되어 남북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서의 길이는 250m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동벽 75m, 북벽 250m, 서벽 125m, 남벽 10m로 총 길이는 460m인데 밖으로 돌출된 치부분을 포함하면 더 길어진다. 성벽은 외벽을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안쪽으로는 잡석과 흙을 섞어 채워 넣은 형태이다. 법성진성의 성벽은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동벽은 북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으며, 동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은 광주이동통신 중계탑이 설치되면서 파괴되었다. 북벽은 대부분 흙으로 덮여 있는데, 북벽의 중간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지점에 반원형을 이루면서 돌출된 치()가 설치되어 있다. 서벽은 남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벽의 중간지점에는 문터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고 이 문터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각각 치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성벽에는 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전라도 관내의 군현명과 쌓은 척(), 그리고 감관(監官도색(都色)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글에 나타난 내용으로 보아 인원 동원은 물론 성의 축조와 관련한 당시의 제도 등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로 판단된다.

 

법성진성 표지

 

법성진성의 여러 모습

 

 법성진성을 내려와 평탄한 길을 걸어가니 법성포 표시가 나온다. 이제 이 코스도 거의 다 온 것이다.

 

 법성포(法聖浦)는 영광군 북부 해안가에 위치한 포구로 국방상교통상 중요한 지역으로 이른바 '영광굴비' 의 본고장이다. 법성포항구는 좁은 만구(灣口)에 뻗은 작은 반도의 남안에 자리하여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는 천연의 항구이다. 그래서 고려 성종(成宗) 때 조창(漕倉)을 설치하여 세곡(稅穀)을 받아 저장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조창제도는 계속 실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514년에 법성포에 진()을 설치하고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다가, 1708년 첨사(僉使)로 승격시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1명 배치하고 관할하도록 하였다. 1514년 진성(鎭城)을 쌓았는데 법성포는 조선 말기까지도 수군통제부를 설치하는 등 국방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법성포는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며 토사가 쌓여 선박의 출입이 불편하여 항구로서 부적합하여 조창제도의 폐지와 함께 쇠퇴하여 오늘날은 영광굴비의 어항으로 이름이 나 있다.

 

법성포 표지

 

 39코스는 법성버스정류장에서 끝난다. 종점에 도착하여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 갔더니 종업원이 외출 중이라 문을 닫고 있다. 버스정류장의 편의점이 문을 잠시라도 닫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주변의 노인들이 말을 걸어오며 물을 마시라고 주어 고맙게 받아 마셨다. 잠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길을 떠났다.

 

서해랑길 38코스(하사6구버스정류장 - 복수분등소공원 - 서해특산시험장입구 - 답동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38코스는 하사6구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계속 해안을 따라 걸으면 복수분등소공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계속 걸으면 유명한 백수해안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간다. 종점 가까이에 가면 도로 공사 중이라 우회노선이 나온다.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 백수해안도로 중간의 답동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5.4km의 길이다.

 

38코스 안내판

 

칠산갯길 300리 안내도

 

갯벌의 칠면초와 바람개비의 조화

 

갯벌에 협곡같이 보이는 위에 피어 있는 칠면초

 

 

 길을 따라 해안과 조금 안의 내륙으로 들어가니 풍력발전의 바람개비와 태양열 발전단지가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이 보이는 것이 태양열발전단지다.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지에도 넓은 땅에 집열판을 조성해 놓았다. 평지에 농사를 짓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인데 조금은 의아했다.

 

이정표

 

태양열집열판

 

넓게 펼쳐져 있는 천일염전

 

염전 주변의 칠면초

 

 길을 따라 제법 가면 복수분등소공원이 나온다. 지도상 공원이라고 되어 있어 간식거리나 음료수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도착하니 편의시설이라고는 화장실밖에 없다. 아마도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휴식처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그래도 화장실이 있어 들어가 수도를 틀어보니 물이 나온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화장실시설은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화장실에서 땀으로 젖은 얼굴을 씻고 앉아서 조금 쉬다가 발걸음을 다시 시작했다.

 

복수분등소공원

 

 

 복수분등소공원을 지나 조금 가니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노지장어직판장이 있다. 혹시나 물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가서 보니 식당을 겸하고 있다. 이 외진 곳에 장어집이 있다니 조금은 의아해 하면서 안의 사람들에게 물을 좀 얻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손님이고 주인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물을 얻고자 하니 정수기를 가리켜 준다. 그래서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 마시고 패트병에 물을 꽉 채울 수 있었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집이었다. 길을 떠난 아침부터 오후도 늦어가는 지금까지 편의점이나 가게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어 가지고 다니던 비상식량만을 소진하였고 물도 아껴 마시고 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다.

 

노지장어직판장

 

바람개비 중 가장 크게 생각한 것. 다른 바람개비보다 엄청 컸다.

 

노랗게 무들인 들판

 

 해안과 들판을 지나쳐 가니 공사 중이라서 우회하라는 표시가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38코스의 종착점인 답동마을까지 바로 가면 1.9km인데 우회하는 길은 3.9km이다. 하루 종일을 걸어 조금은 피곤한데 막바지에 느닷없이 2km를 더 걸어야 해서 조금 짜증이 났으나 어쩔 수 없는 길이라 우회하는 길을 걸어갔다.

 

우회안내판

 

우회하는 길에서 보는 풍경

 

 

 마을을 지나 백수해안도로로 나가는 길목에 큰 나무가 서 있었다. 길을 가다가 큰 나무를 보면 꼭 유심히 살펴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령이 50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다. 느티나무  사진을 찍고 옆을 보니 모싯잎송편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에 들어가니 음료수를 팔아 두 병을 사서 한 병을 그대로 들이키고 다른 음식물을 파는지 물으니 팔지 않다고 해서 아쉬웠다.

 

느티나무

 

 영광에는 예로부터 모싯잎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바로 영광 모싯잎송편이다.

 예전부터 해안가에서 나는 모시는 향이 강하여 풍미가 좋고 그 자체로 천연방부성분이 있어 음식을 모싯잎으로 감싸두곤 했다 한다. 그러니 더운 호남지역에서 모싯잎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모시잎송편은 삶은 모시잎과 불린 쌀을 가루로 만들어 익반죽한 다음 여러 가지의 소를 넣고 송편을 빚어 찐 떡이다. 경남에서는 쪄낸 떡에 참기름을 바르고 감잎에 싸기도 한다.

모시잎이 들어간 송편은 쫄깃한 맛과 쉽게 굳지 않는 장점이 있으며 특히 전라도에서 주로 먹는 별미 떡이었다. 전라남도에서는 옛날에는 2월 초하루 중화절식을 노비일(奴婢日, 머슴날)이라 하여 노비들에게 노비송편을 나이 수대로 먹여 머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여 노비송편이라고도 불리었다.

 

모싯잎송편 가게

 

 송편 가게를 나와 백수해안도로를 걸어가면서 잠시 후회를 했다. 하루 종일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 없어 저녁을 걱정해야하는데 이곳에서 송편을 구입해서 자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되돌아가기가 귀챦아 그냥 걸을을 옮겨 종점 가까이 가니 모싯잎송편을 파는 가게가 있어 여기서 송편을 구입하였다.

 

백수해안도로

 

숙소로 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38코스 종착점에 도착하여 아침에 전화로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니 큰 펜션단지에 있는 숙소에 주인이 없다. 전화를 하니 출타 중인데 문을 열어 놓았으니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 예약한 곳으로 가니 넓은 방에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펜션이다. 아침에 전화를 하면서 근처에 식당이 있는가를 물으니 없다고 해서 라면 두 봉지만 줄 수 없겠는가 하고 사정을 말했는데 라면도 두 봉지를 가져다 놓았다. 너무 고마웠다.

 

 땀으로 찌들은 몸을 씻고 라면을 끓여 먹고 송편도 먹고 배부르게 쉬고 있으니 주인장이 와서 요금을 치르면서 염치없게 커피 믹스가 있으면 두개만 얻고자 한다 하니 또 가져다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누워서 TV를 보다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서해랑길 37코스(합산버스정류장 - 삼성염전정류장 - 뒷산전망대 - 하사6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37코스는 합산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계속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다. 해안을 따라가면 삼성염전이 나오고 뒷산전망대를 지나서 해안을 따라가면 하사6구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9.7km의 길이다.

 

37코스 안내판

 

월평마을로 가는 해안에서 보는 갯벌

 

 여기서 보는 갯벌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산과 같은 협곡이 생겨 있었다.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짐작해도 1m는 넘는 깊이로 보였다. 물이 들어올 때 흙이 이 깊이를 메우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물이 나가는 길이겠지만 그 길을 만드는 자연의 현상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월평마을입구표시

 

칠산갯길300리생태탐방안내도

 

 이 길을 따라 가면 곳곳에 칠산갯길 안내도가 나타난다. 칠산의 바다는 아주 풍요로운 것 같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조기뿐만이 아니라 많은 해산물이 있고 갯벌에는 아주 다양한 생물이 살아 어민들의 소득을 높이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깊게 패인 갯벌에 핀 칠면초

 

길가에 핀 호박꽃

 

이정표

 

영백염전의 모습

 

 염전의 모양이 무언가 다른 염전과는 다소 다르게 보이고 이름이 특이한 '갯뜨락 천일염'이라 궁금해서 조사를 해 보니 다음과 같은 기사를 발견할 수 있어 소개한다.

 

 영백염전은 2011년 제1회 대한민국 염전콘테스트에서 친환경 대상을 받은 13만평의 자기판 염전을 보유하고 있으며, HACCP 산지종합가공공장에서 천일염의 이중세척, 저온다중건조법 등의 차별된 공정을 통해 국내업계 최초로 KS인증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고품질 천일염으로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수출을 통해 천일염의 글로벌화와 명품화를 선도하고 있다.

 (광주일보 기사 중에서 발췌)

 

 갯벌 소금으로 세계 5대 염전의 명성을 가진 전남 영광군의 갯뜨락천일염은 순수한 도자기로 바닥을 만들고 틈새에 이물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필터막을 설치, 1회 친환경 염전 대상을 수상했다.

 1973년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갯벌에 약 43만㎡(13만평) 규모로 조성된 전통 갯벌염전의 염산천일염영농법인 사장은 "국내 갯벌에서 생산한 천일염은 미네랄 성분이 매우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그동안 해외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많았다""삼면의 바다에서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소중한 자원인 천일염의 명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연간 1규모 천일염 생산가공처리 공장을 갖추고 있는 영백염전은 생산한 소금을 연도별계절별로 구분해 저장한 뒤 간수를 빼고 자체 구축한 종합처리 공정을 통해 제품화하고 있다.

 (스포츠 월드, 매일경제 기사를 발췌 요약한 것임)

 

 

 염전을 지나 해안을 따라 가니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법으로 보이는 어살의 한 가지인 듯한 바다에 방죽을 설치한 모습이 보인다. 작년에 남파랑길을 걸으며 해남에서 본 어로 방법이다. 그런데 이 어로방법의 정확한 명칭을 나는 모른다. 짐작하기로 간조와 만조의 차이로 고기가 안으로 들어와서 나가지 못하게 바다에 나무로 장막을 설치한 것이다.

 

전통어로의 방법

 

계속 보이는 갯벌

 

 

 길을 가서 두우리마을로 들어가니 펜션이 보이고 식당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영업을 하면 밥을 먹으려고 들어가니 문을 닫아 놓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건물은 반듯하고 마당도 제법 정리가 되어 있는데 통행금지를 해 놓은 것을 보니 아마 영업을 중지한 모양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음을 진행했다.

 

 

 길을 벗어나 바다를 끼고 걸어가니 갑자기 하얀 암벽군이 보인다.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바다를 접하고 일반적인 바위가 아니라 하얀 옥돌같은 바위가 절벽을 이루어 쭉 뻗어 있다. 일명 백바위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암석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으니 그냥 보고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백바위 전망대

 

백바위해수욕장 주변 풍경

 

 백바위해수욕장을 지나 해안을 따라 가니 멀리 영광의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길을 가니 엄청난 풍력발전기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큰 단지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모를 정도 넓은 땅에 바람개비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

 

영광풍력발전회사

 

 여기서 리본을 잘못 해석하여 길을 조금 잘못 들었다. 제법 가다가 보니 길이 없어 다시 이 위치로 돌아와서 자세히 보니 리본이 다른 쪽에도 있었다. 길을 걷다가 리본이 정확하지 않은 곳을 자주 본다. 리본을 달아놓은  사람은 그 지방의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자신들은 그곳의 길을 잘 알고 있으니 자신의 입장에서 달지 말고 아무 길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아서 걷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리본을 자세히 달아 주었으면 한다.

 

불갑천의 모습

 

 

 도로를 따라 걸으며 유유하게 흐르는 불갑천을 보면서 조금 가니 37코스의 종점인 하사6구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오늘의 여정은 예정한대로 가기 위하여 다음 코스로 걸음을 시작한다.

 

서해랑길 36코스(칠산타워 - 설도젓갈타운 - 합산제 - 합산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36코스는 칠산타워에서 설도항의 설도젓갈타운을 거쳐 합산버스벙류장까지 가는 비교적 짧은 14km의 길이다.

 

36코스 안내판

 

 35코스가 끝난 칠산타워 주변에서 36코스 안내판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GPS에 의하면 36코스가 시작되고 있는데 타워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이곳 주민에게 물으니 다행히 그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 더 가면 안내판이 있다고 하여 계속 가니 길가에 안내판이 서 있다. 이런 점에서 두루누비의 안내는 조금 미흡하다고 생각이 들엇다.

 

칠산타워 조금 옆에는 향화도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을 지나 계속 해안을 걸어가는데 비가 오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한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길을 걷는데 비를 만나는 일은 반가운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걷기에 불편하다.

 

영광칠산 갯벌 300리 길 표시

 

잔뜩 찌푸린 하늘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니 염전이 나타난다. 서해안에서는 곳곳에 염전이 보이는 것은 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일조양이 많은 까닭에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워낙 큰 염전들을 많이 보았기에 염전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보고 지나간다.

 

염전

 

설도항을 가리키는 이정표

 

멀리 보이는 설도젓갈타운

 

 

 설도항이 보이는 거리에서 길을 재촉하여 가니 제법 큰 동네가 나타난다. 설도항과 젓갈타운이다.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고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에는 숙박업소가 없고 염산면사무소까지 가야 된다고 한다. 제법 큰 젓갈타운으로 많은 손님이 오는 곳인데도 숙박업소가 없다고 해서 원래 예정한 대로 염산면사무소 옆에 있는 이곳의 유일한 숙소를 찾아 갔다.

 

설도항의 여러 모습

 

  염산면사무소 옆에 있는 숙박업소를 찾아가니 추석연휴의 탓인지 주인이 없다. 그래서 입구에 붙어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하니 방을 가르쳐 주면서 휴식하라고 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으니 추석연휴라 대부분이 문을 닫고 있었다. 다행히 문을 열고 있는 가게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내일 아침과 점심거리로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잤다. 다음 날 일찍부터 다시 설도항으로 내려가 걷기를 시작했다.

 

아침이 밝아오는 모습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

 

해가 떠 올라 바다를 비추는 광경

 

갯벌의 칠면초

 

 

 다른 특이점이 없는 해안과 마을을 지나 한가로이 걸어 어느 새 36코스의 종착점인 합산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오전 9시도 되지 않았다. 가지고 다니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잠시 쉬었다. 항상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나니 제대로 된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전날 준비하는 빵과 우유로 간단히 아침을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식당만 발견하면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밥을 먹는다. 위가 튼튼한 것이 축복이다.

 

서해랑길 35코스(돌머리해변 - 주포한옥마을입구 - 안악해수욕장 - 칠산타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35코스는 돌머리해변에서 출발하여 주포한옥마을과 안악해변을 거쳐 함평에서 영광으로 들어가 칠산타워에서 끝이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안을 따라가는 19.0km의 길이다,

 

35코스 안내판

 

 34코스까지를 걷고 중간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아침에 옛날에 해 넣은 이가 갑자기 빠졌다. 만약 길을 걷는 도중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당황할 일인데 마침 예감이 이상하여 중간에 멈추고 집에 돌아와서 생기니 다행이었다. 그러다가 추석이 되고 추석연휴를 보내다가 연휴의 끝에 다시 길을 걷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광주로 가서 다시 함평으로 가고 그리고  돌머리해변에 도착하니 11시 경이 되었다. 미리 예정한 시간이었기에 시간을 맞추기로 하고 길을 시작했다.

 

돌머리해수욕장의 여러 풍경

 

해수욕장 옆의 함평만해안도로

 

 돌머리해수욕장을 지나 조금 가면 조그마한 어항이 나타난다 바로 주포항이다. 주포는 과거에는 주항포(酒缸浦, 1865년 간행 대동지지지명)라 하였고, 1900년대 초부터 주포(1906, 1924, 1934년 간행 군지 지명)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 때 주포방조제가 건설된 간척 공사 이후는 신설포라는 이름과 함께 불리었다. 인근은 물론 먼 지역에서조차 널리 알려진 이름은 수랑개’, 또는 주포였는데 수랑개란 바다를 막은 간척지여서 진흙탕 즉 수렁이었기에 수렁인 갯가라는 뜻이며 주포라는 이름은 주막이 많은 포구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함평만에서 잡히는 황실이(강달어), 준치, 또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조기 등의 어획물이 집산되는 곳이 바로 주포였다. 따라서 1955년까지는 크게 번창하여 수많은 주막이 있었으며, 신설포는 주포라는 별명으로 불리었고 그 별명은 이제는 본 지명(주포)으로 바뀌었다.

 

 주포는 1955년 이후 사양길에 접어들어 거의 폐항이 되었으나 1962년부터 돌머리 해수욕장이 개장되고 각종 횟집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본래 포구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으며 현재는 아름다운 함평만 낙조 및 해수욕장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이곳을 지나면 아름다운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갑자기 무슨 한옥 촌이 이렇게 크게 나타나는지 조금 의아하지만 바로 주포에서 특징적인 한옥마을이다.

 

 주포한옥마을은 201108월에 전원마을 사업대상지 확정(농림축산식품부)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아래 현재 48개 필지에 한옥 건축이 완료되어 서해안 정취를 느끼며 민박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꼭 한번 민박을 해볼 만한 곳이다. 내가 원래는 저번 여정에서 이곳에서 민박을 하는 것이었는데 사정이 꼬이어 지금은 그냥 지나친다.

 

주포한옥마을의 여러 모습

 

해수찜질

 

물이 빠진 갯벌

 

 두루누비의 안내에 의하면 만조시에는 우회하라는 구간이 있는데 우리가 물 때를 알 수가 없으니 그냥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여러 곳에 이런 공고가 보이는데 만조 시간을 좀 알려 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다행히 내가 길을 갈 때는 물이 빠져 있는 시간이라 해안의 길이 아니라 바닷가 모래밭 위를 걸어 그 구간을 통과하였다.

 

물이 빠져 걸을 수 있었던 구간

 

재래식 고기잡이 방식

 

이정표

 

멋있게 지어 놓은 버스정류장

 

방파제 위에서 보는 갯벌의 모습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보는 갯벌의 기하학적인 모습이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서해안을 걸으면서 얻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예전에는 그냥 무신경하게 보았는데 자꾸 보게 되니 그 물길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그렇게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잠시 쉬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그마한 정자가 보였다. 저곳에서 잠시 쉬어야지 하고 갔더니 40대로 보이는 부부가 거의 20살이 되어 보이는 두 딸과 함께 일가족이 몰지각하게 정자위에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정자인데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모든 사람의 휴식을 막고 정자위에 텐트를 치는 것은 너무나 몰지각한 행동이라 눈쌀이 찌그러졌다. 말을 해도 알아들을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계단에 앉아 잠시 쉬다가 길을 떠났다. 아직도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가 궁금했다.

 

정자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일가족

 

 

 길을 계속 가니 월천방조제가 나오고 방조제를 걸어 나가니 안악해변이 나온다. 지금은 여름의 물놀이 때가 지나서 많지는 않지만 제법 여러 가족들이 휴식을 하고 있으며 갯벌에서조개를 캐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것인데 그렇지 못한 요즈음의 현실이 아쉽다.

 

 

 길을 가다가 보니 무슨 기념비같은 탑이 보인다. 무엇인가가 항상 궁금하면 꼭 둘러본다. 그래서 가까이 가 보니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다.

 내가 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때에 KBS 라디오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과 동명의 주제가였던 이 곡은로 1966년에 발표되어 긴 세월 동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가수 이미자의 대표곡인데,  '섬마을 선생님'의 배경지가 안산시 대부도의 대남 초교라고 한다.

 '섬마을 선생님'은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로 열아홉살 섬색시가 섬을 떠나는 총각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일주일 만에 큰 히트를 쳐 가요계가 들썩들썩했었다.

 

 그런데 함평 안악해변 입구에서 이 노래비를 만나니 조금은 의아했다. 이 노래비는 드넓은 바다 갯벌이 드러나는 도로 옆에서 만날 수 있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

 

 조금 가면 안악해변이 나온다. 서해안의 해수욕장 해변은 아주 넓다.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기에 물이 나가면 수 km의 모래밭과 갯벌이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함평군 손불면 월천리에 있는 안악해수욕장은 1991년에 새로 개발된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만도 200m가 넘는 대형 해수욕장이다. 넓은 백사장과 주위의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여름철 피서객들이 천막을 치고 아이들과 함께 노는 휴식공간으로 매우 좋은 곳이다. 또 함평만 갯벌에서 나오는 싱싱한 해산물이 입맛을 돋우고, 아직은 덜 유명한 까닭으로 깨끗하고 조용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함평만이 바라보이는 해수욕장 주변의 해변도로는 석양을 감상하기에 좋아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보지를 못했다. 내가 지나는 시간이 한낮이었다.

 

안악해변

 

 안악해변을 지나 해안을 따라 계속 가서 함평항을 지나니 저 멀리에 칠산대교가 보인다. 무안의 도리포에서 보던 그 다리다. 도리포에서 저 다리만 건너면 칠산타워인데 나는 빙 돌아서 약 60km를 넘게 걸어 왔다.

 

갯벌

 

칠산대교의 여러 모습

 

 칠산대교는 영광군 염산면과 바다 건너 무안군 해제면을 잇는 1.82의 해상교량으로 20121218일에 개통되었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이전에는 무려 62km를 돌아서 가야 했던 거리를 단 3km로 줄여 주어 운행시간을 70분에서 5분으로 단축시켰다.

 

 칠산대교를 지나면 높이 우뚝 서 있는 칠산타워를 만난다.

 

 전남에서 가장 높은 111m의 전망대로 영광군 염산면 향화로에 있는 칠산타워는 영광군 11개 읍면이 하나로 화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층과 2층에는 여러 가게가 있고, 3층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하게 펼쳐진 칠산 앞바다와 주변 육지가 한 눈에 들어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옆에 보이는 칠산대교는 무안군 도리포에 연결되어 통행 시간을 절약해 준다.

 

칠산타워

 

칠산타워에서 보는 풍경

 

 칠산타워에 올라가려니 입장료를 받는다. 안내에 보니 경로는 무료라 하여 신분증을 보이고 타워로 올라가니 눈이 탁 트인다. 사방을 둘러보니 한쪽면만 육지가 보이고 나머지는 넓은 바다다.

 전망대에 커피를 팔고 있어 한잔 사서 마시면서 느긋하게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내려오니 비가 오고 있다. 겉옷을 꺼내어 입고 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