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76코스(구도항 - 장구섬 - 팔봉초등학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6코스는 서산 구도항에서 시작하여 가로림만의 해안을 따라 걷다가 장구 모양과 같이 생겨서 장구섬이라 이름이 붙은 섬을 지나 해안을 걸어서 안쪽 농촌 길을 따라가면 팔봉초등학교가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2.9km의 아주 편하고 짧은 길이다.

 

76코스 안내판

 

구도항

 

 75코스가 끝난 구도항에서 조금 쉬다가 바로 76코스를 시작한다. 구도항은 서산 팔봉산 입구에서 멀지 않은 호리에 있는 어항으로 서산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로 이 지역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가로림만에서 잡히는 낙지가 유명해 박속낙지탕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변의 식당에 들어가면 대부분이 2인분 이상만 팔기에 먹지는 못하고 길을 떠났다. 이런 점이 혼자서 걸으면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또 구도항에서 바라보는 가로림만의 저녁노을이 일품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곳을 지나는 시간은 한낮이다. 그렇다고 해넘이의 시간까지 기다릴 수도 없기에 아쉬운 마음만 가슴에 담고 지나간다.

 

 구도항에서 조금 길을 가니 호랑이의 형상을 한 입간판이 이색적인 가로림만범머리길이라는 길이 나온다. 이곳의 행정구역이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리(虎里)인데 마을의 지형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풍수상 호랑이 모양의 산세가 있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먹이나 호랑이를 잠들지 않게 하는 동물이 있게 마련이라 하는데, 2리 마을 입구에 산양 머리처럼 생겼다 하는 산양포(山羊浦)가 있는 것이 흥미롭다.

 

가로림만범머리길 입구

 

 ‘가로림만범머리길은 서산 아라메길 중 하나로 서산시 팔봉면의 해안과 팔봉산을 따라 조성된 트레킹 코스로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곳곳에 소소하게 붙어있는 여러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이 중에는 바닷가에 민물이 솟아오른다는 옻샘과 가로림만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주벅배 전망대등이 길 걷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 준다.

 

가로림만범머리길 안내판

 

가로림만범머리길 풍경

 

산양포 이정표

 

 가로림만범머리길을 따라 걸어 나지막한 산언덕을 넘어 바닷가로 가면 옻샘이 나오고 여러 이야기를 꾸며 놓은 작은 휴식처가 나온다. 이곳에 도착하니 50대로 보이는 여인들이소풍을 나왔는지 여남은 명이 모여 사진을 찍으며 유쾌하게 놀고 있다. 나도 잠시 정자에 앉아 쉬다가 여인들이 가고 난 뒤 그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떠났다.

 

옻샘 설명판

 

휴식을 한 장소 주변 풍경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마음의 표시

 

멀리 보이는 호리 카페

 

가로림만 풍경

 

 길을 따라 걸어 호리1리 마을로 가니 길가에 마레카페라는 이름의 카페가 보인다. 지나온 길에 있는 호리카페는 좀 떨어진 곳에 있어 들르지 않고 왔기에 잠시 휴식할 겸 커피를 마시려고 들어가니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다고 주인장이 말한다. 나는 조금 이해를 잘못하여 오후도 상당히 지난 시간인데 하고 의아해 했는데, 이 카페가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연 카페가 아니라 준비 중인 카페였다. 그래도 50대의 친절한 여사장님이 목마른 길손에게 친절하게 커피를 한잔 내려주어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사장님은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하여 이곳으로 들어와서 카페를 연다고 하며 욕심을 가지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려고 한다는 좋은 말을 하였다. 나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해 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돈이 모든 것이 아니고 마음의 평화가 최고라는 것을 이 사장님은 빨리 깨달은 것 같아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길을 걸으며 이런 소소한 인연을 맺는 것도 살아가는 한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의 길이 더 기쁜 길이 되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이 카페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보면서 따뜻한 인정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직은 완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차츰차츰 주변을 가꾸어 봄이면 여사장님이 좋아하는 꽃을 심어 화원도 꾸미고 넓은 앞뜰에는 야외 테이블도 갖추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공간을 만들 예정이라 하니 기대가 크다.

 

 

카페 앞 마당

 

카페 전경

 

카페 앞의 넓은 공터

 

길가의 호박

 

잘 크고 있는 배추

 

 

 

 계속 해안과 농촌 길을 걸어 호덕간사지를 지나고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니 멀리에 학교 비슷한 건물이 보여 짐작하기를 오늘의 목적지인 필봉초등학교라고 생각하고 걸어가니 짐작한대로 76코스의 종착점인 팔봉초등학교였다.

 

 종착점에 도착하여 서산터미널로 가려고 지나가는 주민에게 버스 시간을 물어 조금 기다렸다. 이곳에는 숙박을 할 곳이 없기에 버스를 타고 서산터미널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이곳에 와서 다음 코스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약 30분 정도를 기다려 버스가 와서 서산터미널로 가서 주변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고 가볍게 맥주를 한 캔 구입하여 혼자서 즐기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오늘 길에서 뜻하지 않았던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