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64코스(궁리출장소 - 간월호철새탐조대 - 간월도선착장 - 천수만쉼터 - 태안관광안내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4코스는 궁리출장소를 출발하여 간월호철새탐조대와 간월도선착장을 지나서 천수만 쉼터를 지나고 창리포구에서 방조제를 따라 가면 중간에 태안관광안내소가 있고 여기서 끝이 나는 13.2km의 비교적 짧은길이다.

 

64코스 인내판

 

 64코스를 시작하여 조금 가면 궁리항이 나오고 해안을 따라 계속 기면 간척사업으로 유명한 서산간척지가 나온다. 간척지의 방조제를 따라 가면 방조제 위에서 홍성이 끝나고 서산이 시작됨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궁리항 엠블렘

 

천수만 해안길

 

방조제

 

서산시의 시작 표시

 

 방조제를 걸어가니 중간에 서산의 관광안내판과 서산 간척사업에서 아주 기발한 공법으로 간척사업을 완성시킨 유명한 정주영공법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서산A지구방조제는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로와 서산군 부석면을 연결하는 길이 6,458m인 방조제로 홍성 쪽에서는 간월도를 보며 달리게 된다. 19798월 물막이 공사를 시작해 198210월에 B지구, 19843월에 A지구 물막이 공사를 최종 마무리했다. 간척으로 대단위 농경지가 조성된 뒤에는 먹이가 풍부해 천수만 일대가 철새도래지로 자리를 잡았다.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은 1970년대 중동에 나가 있던 ()현대건설이 대규모의 장비를 철수하게 되자 정부는  이 장비로 대단위 간척사업으로 농지를 늘려 식량 자급량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되어 1980523일 착공하였다.

 방조제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최종 물막이 공사에 접어들어 남은 구간이 260m가 되었을 때는 유속이 초속 8.2m에 달해 10톤이 넘는 바위도 쓸려 나가는 난공사였다. 트럭으로 아무리 많은 흙을 쏟아부어도 물에 휩쓸려 나가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난감해 했다. 이때 고안된 공법이 세계 토목 사상 유래가 없는 VLCC 유조선 공법으로 방조제 사이를 유조선으로 가로막고 유조선 탱크에 바닷물을 넣어 바닥에 가라앉힌 다음, 조수의 유입을 차단하여 방조제를 잇는 공법이다. 정주영(鄭周永) 회장이 고안한 공법으로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한다.

1984310일 서산A지구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였고 1995814일 착공 153개월 만에 준공하였다.

 

정주영 공법 안내판

 

천수만 해안은 너무 길어 여러 시와 군에 접하므로 어디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여기서 소개한다. 

 

 천수만은 서해 중에서 충남 육지부와 안면도 사이에 위치한 만입 지형이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철새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자리하고 있다. 간척사업으로 천수만 일대에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과거 갯벌이던 곳에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 부남호와 대단위 농경지가 형성되었다. 이 일대는 시베리아나 만주 등지에서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철새의 주요 이동 경로로 간척사업으로 인해 벼를 재배하는 대단위 농경지가 들어서면서 추수 후에 남겨지는 곡식들이 겨울 철새들의 좋은 먹이가 되어 철새도래지로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그 중 가창오리는 전 세계 개체수의 90% 이상이 모인다고 한다. 많은 종류의 새들이 떼 지어 날아오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천수만 해안길은 겨울 철새와 겨울바다, 갯벌, 겨울별미 등을 만날 수 있는 해안도로로 겨울에 더욱 여행 맛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청명한 겨울 서해바람을 느끼며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여러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관찰할 수 있다. 여기에 멋스러운 서해 낙조까지 만끽할 수 있다.

 

간월호 철새도래지 표지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인공호수인 간월호(看月湖)는 수면면적 28.76, 서산·홍성 일대의 천수만 일부를 막는 간월부남지구 간척사업으로 인해 조성되었다. 서산 A지구 방조제에 의해 천수만과 분리되어 오른쪽이 담수호인 간월호, 왼쪽이 바다인 천수만이다. 1984년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호수의 염분이 빠져나가 담수호로 바뀐 뒤부터 담수어종이 크게 늘었고, 매년 11월에서 3월이면 120여 종의 수십만 마리 철새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0여 종의 조류가 찾아오는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다.

 

방조제를 지나 간월도 가는 표시

 

 간월도로 가는 이정표를 보고 간월암을 가리키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서산 어리굴젓의 대명사인 간월도가 보인다. 피안도(彼岸島)라고도 불렸던 간월도(看月島)는 서산시 부석면에 속한 면적 0.88의 작은 섬으로 아름다운 어촌 100에 선정된 어촌마을로 간월암이 있는 유명 여행지다. 이름에 에''()가 들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섬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말 천수만 간척 사업으로 인해 간월도 인근에 간척지가 생겨 뭍과 연결되어 지금은 육지다. 간월도에는 썰물엔 걸어 들어갈 수 있고 밀물엔 쪽배를 타고 건너는 무학대사와 원효대사가 수행을 했던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간월암이 있다. 만조 시에 바다 위에 떠 있는 간월암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며, 간월도는 어리굴젓과 영양굴밥으로 유명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간월도 입구에 들어서면 큰 기념탑이 눈에 들어온다. 음식물을 주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기념탑으로 알려져 있는 '어리굴젓기념탑'이다. 기념탑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주차장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이 공원 너머로 더 가면 내리막길이 있다. 그 앞으로 작은 섬 간월도가 보인다. 드넓은 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진 간월도는 해가 넘어가는 장면이 장관이다.

 

굴따는 아낙네의 조형물

 

천수만과 멀리 보이는 그림같은 간월암

 

어리굴젓탑

 

 여기를 지나다 보니 그림같은 천수만과 간월암을 볼 수 있는 곳에 카페가 있다. 이런 카페를 그냥 지나가는 것은 여행자의 도리가 아니다. 너무 시간이 촉박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여정은 64코스에서 끝내기로 마음을 굳혔기에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카페에 가니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다. 호젓한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 청하여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간월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간월암 입구

 

 간월암으로 가는 길이 마침 물이 빠져서 걸어갈 수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간월암을 구경하고 간월암으로 들어가는 주차장에는 관굉버스도 보였다.

 

 간월도에 가면 물위에 떠있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암자를 하나 만날 수 있다. 간월도에는 새끼 섬이 하나 있다. 이 새끼 섬은 하루 두 번씩 물이 빠질 때 30m 정도의 모래톱 길이 열려 섬과 육지가 된다. 손바닥만 한 이 섬에 조막만한 '간월암(看月庵)'이 들어앉아 있다. 과거 명칭은 피안암(彼岸庵)으로 삼국시대 당시에는 옛 명칭으로 불리다 어머니 등에 업혀 이 섬으로 들어오게 된 어린 무학대사가 이곳 토굴에서 달빛으로 공부를 하다가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깨우침을 받았다고 하여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한다. 이후 폐사되었다가 1941년에 현재의 구조로 재건되었다. 근대 한국선 불교의 중흥조인 만공선사께서 간월암에 주석하시면서 수행 정진하셨고, 또한 많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던 곳이다.

 

 바다 위의 작은 섬과 그 안에 있는 작은 절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간월암은 커다란 바위 전체에 아담한 암자가 자리하고 있어 만조 시 물이 차면 마치 암자가 물 위에 떠 있는 듯 신비로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그 간월암 너머로 간월도의 명품인 일몰의 경관이 펼쳐지고, 가을이 되면 군무를 통해 새들의 천국을 이룬다.

 

물이 빠져 육지와 이어진 간월암의 모습

 

간월암 설명판

 

간월암과 간월암에서 보는 바다

 

간월암이 육지와 이어진 모래 길

 

 간월암을 돌아보고 나와서 다시 해안을 따라가니 서산 어리굴젓을 파는 집이 곳곳에 보인다.

 

 간월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자연산 굴이다. 어리굴젓 앞에 간월도가 붙어야 명품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아주 가난하던 옛날부터 간월도 주민들을 풍성하게 한 것은 굴이고, 지금도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도 역시 굴이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서산 굴은 색깔이 거무스레하고 알이 작은 편이다. 강장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는 서산 어리굴젓은, 임금님이 드시던 그 맛 그대로 서해안 갯벌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과 천일염 등 신선한 재료에 정성을 더하여 만든다.

 

 굴을 따는 시기는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약 6개월 정도이며,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추어 개펄에 나간다. 굴은 대부분 여자들이 개펄에 나가 채취하는데 한 달에 약 20일 정도 작업을 한다.

 

 내가 음식에는 조금 욕심이 있어 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방의 특별한 별미는 꼭 맛을 보거나 구입을 한다. 그래서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간월도 어리굴젓을 사서 택배로 집으로 보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내온 어리굴젓에 여러 양념을 하여 맛있게 먹으니 다시 여행이 새롭게 머리에 떠올랐다.

 

간월도 어리굴젓 가게

 

멀리 보이는 서산버드랜드

 

 

 

 간월도를 지나 해안을 따라가면 조그마한 쉼터들이 나온다. 천수만쉼터, 간월호쉼터공원 등을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가 다시 해안으로 나가면 창리포구로 향한다. 창리포구는 역사적으로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왜현리였으며 왜구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수군의 배를 매어 두던 주사창이 있어서 주사창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음력 정월 초사흘에 행해지는 풍어굿인 '창리 영신제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간월도로 가는 유일한 포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서산 AB 방조제가 완공되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제법 큰 포구로 많은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창리포구의 여러 모습

 

 창리포구를 빙 돌아나와서 더 가면 방조제가 나온다. 바로 서산 B지구 방조제이다. 이 방조제를 걸어 조금 가면 방조제 위에 태안관광안내소가 나오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서산 b지구 방조제에서 보는 부남호

 

 여기에서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래 집을 떠날 때 예정했던 시간을 하루를 앞당겨서 여정을 마쳤다. 집을 떠날 때 걷기를 예정한 것보다 내가 그만큼 걷기를 잘하는 것이라 뿌듯했다.

 이제 겨울도 깊어가기에 다음 여정을 언제 다시 시작할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의 여정을 끝낼 때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제 너무 멀다. 창리에서 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먼 길을 가야 집으로 간다.

 

서해랑길 63코스(천북굴단지 - 홍성방조제 - 남당항 - 속동전망대 - 궁리출장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3코스는 천북굴단지에서 출발하여 보령을 벗어나 홍성으로 들어간다. 바로 붙어 있는 홍성방조제를 지나서 천수만을 왼쪽으로 끼고 해안을 계속 걸어가면 남당항이 나온다. 남당항에서 계속 해안을 따라 걸어 속동전망대를 지나서 궁리출장소에서 끝이 나는 11.2km의 짧은 길이다.

 

서해랑길 63코스 안내판

 

 보령을 벗어나니 안내판이 버젓하게 서 있다. 보령의 세 코스에서 안내판을 보지 못하다가 다시 보니 이게 무엇이라고 너무나 기뻤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 가볍다는 것을 느끼며 길을 가니 바로 홍성방조제다.

 홍성군 서부면과 보령시 천북면을 잇는 홍성방조제의 서쪽 바다에는 안면도가 수평선 위에 거대한 섬으로 떠 있고, 방조제가 끝나는 곳에 있는 수룡포구 쪽으로 내려가면 좀더 가까이서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내륙 쪽으로는 간간이 날아드는 철새들의 군무가 볼거리라고 하지만 내가 지나는 시간대는 대낮이라 철새들의 군무를 보지 못했다.

 

홍성방조제

 

홍성방조제에서 보는 풍경

 

 홍성방조제의 끝 부분에 수룡항 포구가 있다. 홍성군 서부면에 자리한 수룡항 포구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다. 가까운 곳에 천북 굴 단지가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고 탁 트인 바다 앞에서의 힐링도 가능한 곳이다.

 

수룡항 포구

 

 수룡항 포구를 지나 해안을 따라 가니 어느 새 저녁이 되어 어스름이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오늘의 여정을 남당항에서 멈추기로 예정을 하였기에 미리 예상을 해둔 숙박처에 전화를 하여 예약을 하고 그 집을 찾아 갔다. 그 집 앞의 식당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편의점에서 내일을 대비한 먹거리를 구입하고 오랜만에 맥주도 한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다.

 

남당항 가는 길

 

 천수만변에 있는 어항으로, 홍성읍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남당항은 우리나라 가을철 대표적인 축제인 대하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남당항에는 대하축제 기간인 9~10월 두 달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하뿐만 아니라 천수만 최고 별미인 새조개가 유명해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곳으로 이른 봄에는 새조개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지나는 시절은 축제가 끝난 후라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그리고 식당마다 겨울을 맞이하는 김장 준비에 여념이 없어 바닷물에 절인 배추더미가 곳곳에 보였다.

 

 이 날이 올해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기상예보가 나오고 서해안에는 눈이 온다는 예보가 저녁에 있어 조금 걱정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에 조금 눈이 왔어 대지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풍경

 

 아침에 일어나 해안을 따라가니 아름다운 해안이 이어져 나오고 남당노을전망대가 나온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서해안을 걸으며 노을을 보고 지나온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걷는 길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당노을전망대

 

 남당노을전망대를 지나 어사리쪽으로 길을 가니 나이가 든 여인들이 호미와 소쿠리를 들고 바다로 나가고 있다. 지나가면서 말을 걸어 무엇을 캐러 가느냐고 물으니 굴을 캐러 간다고 한다. 마을의 어촌계에서 모여서 굴을 채취하는지 바다를 보니 많은 여인들이 작업을 하려고 모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유명한 천수만의 어리굴젓의 생산지라는사실이 생각났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떠들면서 모여서 잏하는 바다는 그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고 살아온 고향이었다.

 

굴 캐는 여인들의 모습

 

어사리노을공원을 가리키는 이정표

 

 이곳을 지나니 저 멀리에 타워가 보이고 옆으로 숙동해안공원 표지가 보인다. 속동갯벌마을은 홍성 해안의 명소로 어사리 포구와 궁리 중간 서해안의 보고인 천수만 바닷가에 위치한 농어촌마을로 홍성 8경 중에 하나인 마을의 갯벌과 속동 전망대에는 외지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푸른 해송림이 바다와 어우러져 있고, 해변 앞의 모섬까지는 언제나 섬에 오를 수 있도록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바닷가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속동해안

 

 멀리에서 보이던 타워는 홍성스카이타워다. 홍성군은 대표 관광브랜드 육성을 목표로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핵심시설로 속동전망대에  '홍성스카이타워'를 조성 중이다.

 

 홍성스카이타워는 높이 65m의 초대형 구조물에 256가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RGB조명 시설을 도입하여 타워 자체의 아름다운 디자인이 세심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조명기구를 공간 배치해 천수만의 바다와 어울리도록 잔잔하고 고급스러운 경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스카이타워의 가장 상부에 설치돼 있는 첨탑 조형물의 조명 연출은 촛대 위에 촛불이 켜진 것처럼 예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의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타워의 상층 전망대느의 발아래는 모두 유리로 돼 있어 바닥이 훤히 보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지나가면서 주위에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아직 개장이 되지 않았다고 하여 아쉽지만 걸음을 옮겼다.

 

홍성스카이타워

 

 홍성스카이타워 옆에 서해랑길 쉼터가 보여 가보니 이직 시간이 일러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아 문을 닫아 놓았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내가 가는 길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해랑 쉼터

 

궁리항 가는 길

 

 홍성스카이타워를 지나 길을 따라가면 궁리항이 나오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종착점에 도착하니 아침 일찍부터 걷기를 시작하였기에 오전이 이른 시간이다. 오늘 이번 여정을 끝내기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기에 다음 코스로 발길을 옮긴다.

 

서해랑길 62코스(충청수영성 - 보령방조제 - 하만저수지 - 사호3리마을회관 - 천북굴단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2코스는 충청수영성 입구에서 시작한다. 충청수영성을 올라가 빙 돌아 나와서 마을을 지나 보령방조제를 지나서 해안을 따라가면 하만저수지에 도착한다. 여기서 농촌의 여러 마을을 지나면 해안이 나온다. 이 해안을 잠시 걸어 사호리로 들어가 다시 해안을 따라서 천북굴단지로 가는 15.3km의 길이다. 그런데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말하겠지만 미리 말하면 마지막 천북굴단지로 가는 길이 막혀 있어 다른 길로 돌아가야만 한다.

 

62코스 시작 표시

 

 보령구간에는 서해랑길의 시작 종합안내판이 모두 없다. 왜 보령구간만 없는지 너무 궁금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령시 관광안내과에 전화를 하여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보령시에 서해랑길 담당자가 있어 통화를 하니 잘 모르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알아보고 조치하겠다고 답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있으니 한국관광공사 코리아둘레길에서 전화가 와서 지금 보령구간의 코스를 조절하면서 시점이 달라져서 안내판이 없다고 해명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보령시에도 이야기하였다고 알려 주었다. 아마 곧 설치가 될 것 같아서 조금 뿌듯했다.

 

 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으로 2011년에 공식적인 명칭이 변경된 오천항 인근의 충청수영성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석성으로 1509년에 축성되었다. 충청수영성은 오천항 바다로 급히 자락을 내린 언덕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외곽을 두른 길이 1,650m의 성으로 자라 모양의 지형을 이용하여 높은 곳에 치성 또는 곡성을 두어 서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필 수 있었다.

 사방(四方)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여러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원래 있던 사방의 성문과 여러 시설이 건축되고 보수되어 온 내력이 충청수영 사례집에 개략 기록되어 있다.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엿볼 수 있다. 1896(고종 33)에 폐영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충청수영은 충청도 지역 해안을 관할구역으로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남단의 전라우수영과 경계구역인 금강하구부터 북단의 경기수영과 경계구역인 평택현 지역까지를 관할하였다.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져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갈매못)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진휼청(賑恤廳)

 

충청수영성에서 보는 오천항

 

 충청수영을 오르며 영보정 부근에서 보는 오천항의 전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항구의 전경이 모두 보인다.

 아래로는 천수만으로 이어지는 만의 협곡이 보이고, 보령방조제 위에는 도미부인이 태어나 성장했던 빙도(미인도), 도미부부가 수난을 당하기 전까지 살았다는 포구 도미항, 개루왕이 자주 순행했다는 전마들, 파리재,마차미, 남편을 사모한 곳으로 전해지는 상사봉, 등의 옜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적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오천항은 광천천이 서해 천수만으로 유입되는 곳에 있는 항구이다. 오천은 예전부터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듯이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되었지만, 지금도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고요한 바다 천수만 뒤에 숨은 수줍은 항구로, 항구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방파제를 대신해 풍랑을 막아주어 천혜의 항구로 발전했다. 또 주변의 산봉우리가 오천항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어 충철수영성의 영보정에서 보는 풍경에 반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글을 지었다 한다. 호수같이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오천항을 오가는 배들도 알록달록 예쁘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부산히 오가며 활기를 불어 넣는 이 항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낚시를 즐기지 않더라도 제철 해산물이 가득한 오천항 수산물센터’에서 맛있는 많은 해산물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복원한 영보정

 

그림과 같은 오천항

 

 영보정을 지나 충청수영성의 성벽을 따라 오르면 적대가 나오고, 성벽을 따라 걸으면 동문지와 주변의 발굴지가 나온다. 토성과 석성이 함께 어울려 있는 성터는 아직도 발굴 중이었다. 그리고 이 성벽을 걸으면서 보는 바다의 풍경은 너무 멋있다.

 

적대및 성벽 그리고 동문지

 

 성을 내려와 걸음을 옮겨 오천항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보령방조제 쪽을 향해 걷는다.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소성삼거리에서 천북면 육지 사이의 바다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잇는 소규모의 보령방조제는 갓길이 없어 방조제에 주차할 수 없는 도로다.

 

오천항의 풍경

 

 

 다른 방조제에 비해서는 길지 않은 보령방조제를 지나서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이 고장의 명물인 굴을 파는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가 나온다. 그 음식점들을 보면서 계속 길을 간다.

 

굴을 파는 음식점들

 

 길을 따라 가면 하만저수지가 나오고 계속 농촌의 길을 가면 사호3리마을회관이 나온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천북 굴따라길이 나온다. 울창한 숲속과 해안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천북 굴 따라 길은 숲내음과 바다 내음을 같이 마시면서 걸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도 없고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천북면 장은리부터 하파동까지 길이 2.3km에 이르는 천북굴따라길 해안 길에도 야자 매트가 깔려있어서 걷는데 무리가 가지는 않는다.

 

해안을 걷는 천북 굴따라 길

 

오랜만에 보는 메주를 달아 놓은 풍경

 

 그런데 이 길에서 문제가 생겼다. 해안에 만들어 놓은 천북 굴따라 테크 길을 따라 조금 가니 통행이 막혀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돌아와서 입구를 보니 리본이 두 곳으로 매여 있다. 두루누비의 따라가기는 해안을 가리키는데 갈 수가 없어서 다른 리본이 가리키는 마을 쪽으로 가니 계속 리본이 보이다가 또 길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해안의 테크로 내려가는 좁은 길이 있어 내려가 테크 길을 걸어가니 또 중간을 막아 놓고 중장비가 동원되어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지나갈 수가 없다고 하여 공사장 위로 올라가니 제법 큰 비포장 길이 있고 서해랑길 리본이 보인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두루누비에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하니 리본을 따라가라고 하며 따라가기에는 우회로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따라가기를 통해 길을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너무 무신경한 것 같았다. 다시 리본을 따라가니 리본이 무언가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네이버 지도를 찾아서 그 길을 따라 천북굴단지로 갔다.

 

천북 굴따라 길의 테크 길

 

중간에 공사중인 모습

 

 

 뜻하지 않게 길을 돌아서 천북굴단지에 도착하니 이곳은 굴축제 준비로 시끌벅적하다. 천북굴단지는 보령의 최북단 홍성방조제 인근에 있는 보령 8미 중 하나인 천복굴 전문점 단지이다. 천북굴단지에는 굴 전문 음식점들이 천수만 바다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굴은 서양에서는 영어로 달을 지칭하는 명칭에 R자가 들어가지 않은 달에는 먹지 않는다 한다. 굴은 8월까지의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에 살이 차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최적의 상태가 되기에 겨울인 11월에서 2월까지 잡히는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그래서 매년 12월 중에 이곳 장은리 굴단지 일원에서 다양한 굴요리를 맛볼 수 있는 <천북 굴 축제>를 연다. 가을철부터 토실토실 살 오른 굴 맛이 살아나는 11월부터 천북굴단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날 즈음부터 천북굴단지에서는 축제 준비를 한다. 내가 이곳을 지날 때에도 다음 날부터 굴축제를 열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많은 가게들이 굴을 쌓아 놓고 다음 날부터의 축제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무대도 만들고 주변 정리도 하고 있었다. 

 

천북 굴단지의  모습

 

 

 굴 축제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홍성방조제 입구로 가니 천수만의 간판이 서 있는 곳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났다.

 

 천수만(淺水灣)은 충청남도에 위치한 남북으로 긴 만으로 지역주민들이 수심이 얕다(淺水, 천수)는 의미로 <천수만>이라고 부르며 해도상에도 <천수만>으로 표기한다. 동쪽은 서산시, 홍성군, 보령시에 접하고, 북쪽과 서쪽은 태안군의 태안반도와 안면도와 접한다.

 천수만은 삼면이 육지로 가로막히고 안면도가 앞을 길쭉하게 틀어막아 거대한 내륙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천수만에는 두 차례 큰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안면도와 태안반도 사이에 운하를 뚫은 것. 원래 안면도도 육지에 붙어서 길게 튀어나온 반도 지형이었으나, 안흥항 일대 바다가 험해 사고가 빈번하자 물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판목운하를 뚫었다. 이로서 안면도는 지금 우리가 잘 아는대로 섬이 됐고, 천수만 역시 서해로 이어지는 수로가 하나 늘었다. 두 번째는 간척. 1980년대 이후 천수만 일대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A/B지구 방조제가 건설됐다. 천수만 위로 내륙으로 파고들어간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는데, 오른쪽 호수인 간월호 방향이 A지구, 왼쪽 호수인 부남호 방향이 B지구다. 이에 따라 해당 방조제 주변으로 섬이었던 곳들이 간척지와 연결되며 육지에 붙었다.

 천수만은 순천만, 낙동강 하구 습지 등과 함께 한반도에서 중요한 철새 도래지로 꼽힌다.

 

 원래는 이곳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치려고 했으나 시간도 아직 늦지 않아서 조금 더 가기로 하고 다음 코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해랑길 61코스(깊은골버스정류장 - 오포버스정류장 - 보령LNG터미널 - 갈매못순교성지 - 충청수영성)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1코스는 깊은골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내륙으로 걸음을 옮겨서 길을 가면 오포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여기서 교성천을 따라 계속 길을 가면 엄청나게 큰 부지에 자리잡은 보령LNG터미널이 나온다. 보령LNG터미널을 지나서 해안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천주교에서 순교성지로 손꼽히는 갈매못순교성지가 나온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계속가서 충청수영성입구에서 이 코스가 끝이 나는 8.7km의 아주 짧은 길이다.

 

61코스 시작점 표시

 

 앞의 60코스에서 시작점 안내판을 이야기한 것같이 61코스에도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각 코스를 시작할 때 안내판을 보고 그 코스의 대략적인 이해를 하는데 보령 구간에 들어오니 갑자기 안내판이 사라져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61코스 시작점 표시는 주의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라 모형의 마을 표지

 

 마을 이름이 깊은골이라서 상당히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가? 짐작을 하고 걸으니 제법 깊은 골짜기로 길을 인도하다. 지금은 도로가 나 있지만 옛날에는 진짜로 깊은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골 태양열 발전단지를 지나서 제법 걸어가니 오포버스정류장이 나온다.

 

깊은골의 여러 풍경

 

오포버스정류장

 

 

보령화력발전소

 

 오포를 지나 교성천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제법 큰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를 따라가면 나타나는  보령LNG터미널()201212GS에너지와 SK E&S가 공동투자에 합의한 국내 최대 민간 상업용 LNG터미널로, 20132월에 합작법인을 설립하였고, 4년여 간의 건설공사 뒤에 201711일에 상업운전을 하였다.

 2020년 현재로 20규모의 LNG 저장탱크 6기와 연간 600만톤의 LNG를 직도입 할 수 있는 하역부두(2선좌), 기화·송출 설비 및 천연가스의 열량 조절용 LPG 열조시설과 7.7규모의 LPG탱크 1기를 갖추고 있다. 보령LNG터미널은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방침으로 5,6호기와 함께 추가 건설 중인 7호기 건설 사업은 20237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으며, 최근 8~9호기 설계작업에도 착수했다.

 

보령LNG터미널

 

 보령LNG터미널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오천항으로 가는 해안길이 나온다. 바다의 풍경을 즐기며 그 길을 따라가면 천주고신자라면 한 번쯤은 가는 갈매못순교성지가 나온다.

 

 

 

 갈매못순교성지는 보령시의 북서쪽 오천면 영보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천(鰲川)’이라는 명칭은 오천을 비롯한 천수만(淺水灣) 일대의 지형이 마치 자라와도 같다고 하여 유래되었으며, 영보리의 영보(永寶)’는 영원한 보물이 있다는 뜻이다. 갈매못은 예로부터 성지가 속해 있는 영보리 마을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라 하며, 그 앞바다가 섬과 육지로 둘러싸여 마치 연못과 같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하며 갈마무시’, ‘갈마연’, ‘갈마연동(渴馬淵洞)’이라 불렸던 곳이다. 그러므로 갈매못은 갈마연(渴馬淵)에서 온 이름만으로도 영적인 곳이다.

 

 천주교 갈매못순교성지는 1866323일 병인박해 때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보령에 있는 충청수영으로 이송되어 신자들의 희생을 줄이고자 스스로 순교의 길을 간 프랑스 선교사인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성 오메트르 오() 베드로, 성 위앵 민() 마르티노 루카 세 사람과 당시 교회를 이끌었던 회장 두 사람 성 황석두 루카, 성 장주기 요셉 등 5명과 그 외 수많은 천주교인의 순교지이다, 사제와 평신도 다섯 성인이 1866330일 수영 근처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한 장소로 현재 순교자기념비, 기념관 등과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유물이 소장돼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성지이다.

 이때 순교한 성직자 3명의 유해는 현재 명동 성당 지하실에 안치되어 있다.

샤를 달래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갈매못성지를 '형장(刑場)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형장은 바로 충청수영의 수군들 훈련장이었다.

 

 갈매못이 형장(刑場)이 된 이유로는 흥성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1846(현종12) 6월에 프랑스 함대 세실함장이 침범했던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의 수영을 택하여 5명을 끌고 와 외연도를 바라보고 목을 쳐서 처형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병인년 3월은 고종의 국혼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던 때라, 당시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니, 250리 밖으로 내보내어 형을 집행케 하라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라는 명이 내려졌던 것이다.

 

 갈매못순교성지는 부여군 금사리 쇠양리 본당 주임이었던 정규랑(레오)신부가 적극적인 노력으로 순교현장을 발굴하였다. 1925년 정규량 신부는 주변의 여러 신부들과 함께 갈매못 순교현장을 발견한다. 정규량 신부는 처형된 다섯 성인의 시신을 몰래 파서 홍산지방 석죽골로 이장한 공소에 생존해 있었던 이들의 도움과 같은 목격증인으로 고증해준 사람들과 함께 성인들의 머리가 걸렸던 장깃대가 세워졌던 자리와 참수하던 자리 그리고 임시로 매장했던 세 구덩이를 확인했다.

정규랑 신부는 서둘러 그 땅 20평을 사들여 등기하고(1926914) 19291월에 서울 천주교 재단 법인에 기증하게 된다. 오기선 신부의 곡예사 같은 인생에서는 정규량(레오1883-1953)신부가 이곳 갈매못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순교터의 요약 설명

 

순교자들의 비

 

갈매못순교성지의 여러 모습

 

 갈매못순교성지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소성전으로 가니 여러 신자들이 평일 미사를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 중년의 남자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미사 시간을 보니 내가 참여하기에는 나그네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지를 나와 해안을 따라 걸었다.

 

오천항으로 가는 바다 물길

 

 해안에 난 길을 따라 걸어 충청수영성 가까이 가니 많은 식당들이 보였다. 때가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기에 식당에 들어가 맛있게 포식을 하였다. 여행을 하면서 밥을 제대로 못 먹을 때가 많아 밥을 먹을 기회가 있으면 항상 많이 먹고 다음 길을 떠나는 것이 여행에서 생긴 습관이다.

 

 

 충청수영성 입구에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아주 짧은 길이지만 역사의 현장을 지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느낌을 주었다.

 바로 이어서 다음 코스의 길로 향한다.

서해랑길 60코스(대천해변 - 대천항 - 보령시생태공원 - 토정이지함선생묘 - 깊은골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0코스는 대천해변을 출발하여 바로 옆에 있는 대천항을 지나 해안을 따라가면 보령시생태공원이 나온다. 이공원을 지나 다시 해안을 따라가다가 큰 도로를 만나서 그 도로를 따라가면 토정이지함선생묘가 나오고 계속 그 길을 따라가면 깊은골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7.2km의 길이다.

 

머드광장 한쪽 옆에 있는 60코스 시작점 표시

 

 머드광장에서 60코스 시작 안내판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왔 다갔다 하면서 제법 시간을 보내어 시작점에서 QR코드를 찍고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대천해수욕장 중앙에는 있는 머드광장에는 머드상징조형물이 있으며, 이 머드광장은 매년 7월 중하순 보령머드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머드 체험 프로그램과 사진전시, 머드락페스타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된 보령머드축제는 해마다 7월 중순 경부터 외국인과 내국인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축제로 모두가 천연머드를 온몸에 바르고 함께 뒹굴며 하나가 되는 체험 형태의 축제이다. 축제에는 머드마사지, 대형머드탕, 머드몹씬, 컬러머드, 머드에어바운스, 갯벌체험, 머드축제 개막공연, 머드락페스티벌, 힙합-레이브파티가 준비되어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 시작되어 머드광장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년을 위한 것인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머드광장 표지석

 

머드광장의 풍경

 

 광장을 지나 시내를 벗어나 해안으로 가니 해변의 바다 위에는 모노레일이 깔려 있고 그 옆 아래의 길을 따라가게 한다. 길을 가며 보니 모노레일 타고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모노레일과 즐거운 관광객들

 

 

 

 해안을 벗어나 길을 조금 가니 제법 큰 항구와 수산시장이 보인다. 대천항이다. 보령시내에서 서쪽으로 12km떨어져있고 대천해수욕장에서 북쪽이로 1km에 위치한 대천항은 서해안의 주요한 어업 전진기지이며, 인근 섬들을 왕래하는 선박이 이곳에서 출항한다.

 대천항은 드물게 오염되지 않은 청정수역을 끼고 있는 항구로 어족 자원도 풍부하여 수 많은 관광객들이 값도 싸고 맛이 뛰어나 이곳을 찾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대천항 주변의 모습

 

해안을 걸어가며 보는 풍경

 

 길을 걸어가니 어느 새 저녁때가 되었다. 그래서 미리 숙박을 하기로 예정한 곳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으니, 3군데 가운데 한 곳은 아직 공사중이고 한 곳은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그래서 나머지 한 곳에 가니 주인이 없다. 옆의 편의점에 문의하여 주인을 찾으니 숙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숙소를 정하고 저녁밥을 먹으려고 식당을 물으니 식당에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집이 지금 김장을 하고 있으니, 김장 김치를 줄 테니 편의점에서 라면과 햇반을 사서 방에서 그냥 끓여 먹으라고 권한다. 말을 듣고 보니 괜찮은 의견이라 그렇게 하기로 하고 편의점에서 라면과 햇반 그리고 약간의 과자류를 사서 돌아오니 맛있게 보이는 김치를 한 쟁반이나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저녁을 풍성하게 해결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하였다. 아주 고마운 주인 부부였다.

 

숙박을 한 콘도형 펜션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볍게 아침 밥을 먹고 길을 떠나니 아직 해도 뜨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의 해안을 걸어가니 바다와 대천천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한다. 두루누비의 주의사항에 만조시에는 이곳을 지날 수 없으니 우회도로를 따라 올라가 남대천교를 지나라고 하였는데 다행히 물이 빠진 시간이라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만조라면 몇 km를 더 돌아가야 되었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내가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을 걸으면서 운이 좋았는지 한 번도 만조로 인해 길을 돌아가지는 않았다.

 

대천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보령시 일대를 흐르는 하천 중의 하나인 대천천은 하천연장 13.80으로 크게 2개의 지류가 있다. 하나는 오서산(烏棲山)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다른 하나는 성주산(聖住山)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대천천은 하천의 중·하류부가 지나는 대천시가지 또는 보령 지역 옛 이름의 하나인 큰내(한내)’의 한자 표기인 대천(大川)’ 지명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우회도로 안내도

 

 다행히 만조 시에 이 도로가 침수되어도 먼 길을 돌아가는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이 지점의 도로 조금 위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거의 완공이 다 되어 가는 듯이 보여 주민들과 여행객이 편리할 것 같았다.

 이도로를 건너면서 물이 빠진 갯벌을 보니 영양분을 듬뿍 함유한 새까만 진흙이 눈에 보인다. 저 진흙으로 보령머드축제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윤기가 있어 보였다. 

 

바다 물이 빠져서 보이는 보령의 새까만 머드

 

 

 

 편안하게 이 도로를 건너니 바로 보령시생태공원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보령시가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있는 하수처리장에 생태체험 학습장을 조성해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한 곳이다. 하수종말처리장 주변부지에 생태습지와 방향식물원, 야생초화원 등을 조성해 20091215일부터 개방하였다. 보령의 특산물인 남포오석을 활용해 상징물을 곳곳에 배치하고 습지에는 각종어류도 양식하고 있어 수생과 육생이 조화로운 서식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 외에도 소공연장과 각종 휴게시설을 갖춰 가족단위의 휴식과 체험학습장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대천방조제 도로

 

물이 빠져 저 멀리까지 연결되는 도로가 나온다.

 

주교면 하는공원 안내 설명판

 

해안 풍경

 

이정표

 

 해안을 벗어나 제법 큰 도로를 따라 걸으니 토정이지함선생묘가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토정 이지함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이가 제법 든 사람치고 토정비결을 연초에  한 번이라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친근한 이름이다.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산27-3의 보령시에서 오천항으로 가는 도로가에 1992 8 17일에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20호로 지정된 이지함선생묘(李之菡先生墓)가 있다.

 이지함(李之菡)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으로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지번(之蕃)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토정비결이란 책을 저술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이 책으로 간절한 소망과 더불어 한해의 운수를 보고 있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기반으로 구성된 점술로 하늘과 땅 그리고 자신의 기운이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를 알아내어 나쁜 기운을 미리 방어해 보자는데 목적을 둔 비결서라고 하는데 요즈음은 재미로 많이 보기도 한다.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선조6) 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으며,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데 힘쓰다가 1598년 재임 중 순직하였다.

 

 묘역은 이지함과 그의 형제와 존비속의 14기 묘소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가족묘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그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이곳은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토정이지함선생묘의 여러 모습

 

 토정선생묘를 지나서는 별 특징이 없이 큰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깊은골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여기서 이 코스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