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평화의 길 5코스(고양종합운동장 - 심학산둘레길 - 파주출판도시 - 송촌교 - 통일동산/성동사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5코스는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을 출발하여 심학산둘레길을 돌아 파주출판도시를 가로질러 통일동산/성동사거리에 도착하는 20.7km의 평화의 길에서는 비교적 긴 거리다.

 

평화의 길 5코스 출발점의 안내판

 

 어제 대화역 주변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5코스의 출발점으로 왔다. 어제 저녁 때는 이 휴게공원의 인공암벽 등반장에 많은 사람이 보였는데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고요함만이 느껴진다. 코리아둘레길을 걸을 때는 항상 아침 일찍 출발하기에 인적이 없는 장소에서 조용하게 시작하는 재미도 있다.

 

출발점인 휴게공원의 인공암벽

 

이정표

 

 아직 인적이 드문 대로를 따라 걸으니 낮에는 소란스럽게 느껴지는 도시의 적막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고요한 길을 제법 걸어가니 가좌근린공원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일산서구 가좌마을 중앙부에 있는 가좌근린공원은 가좌마을 개발 전부터 보존되어온 낮은 동산을 활용해 20여 년 전 아파트 개발 시기에 맞춰 공원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가좌마을의 많은 지역행사가 이 공원 광장에서 이뤄지는 점을 반영하여 주민들이 축제를 관람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계단을 없애고 바닥을 평평하게 해 광장 공간을 넓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공원이다.

 

가좌근린공원

 

 가죄근린공원을 지나 대로를 따라가다가 심학산으로 접어 든다.

 

 심학산은 파주시 교하읍 서남단의 한강 하류 자유로 변에 위치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심악산으로 나오며, 조선 시대의 경기 5(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 중 하나이다.

 원래 명칭은 고려 시대 전까지만 해도 넓은 평야와 구릉지에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홍수 때 한강 물이 범람하여 내려오는 물을 막았다 하여 수막산(水幕山)’, 또는 물속으로 깊이 들어간 메뿌리라고 호칭하였다. 다른 명칭으로는 홍수가 일 때 산이 깊이 잠겼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심악산(深嶽山)’, 바위가 깊숙히 포진해 있다며 붙여진 심악산(深岳山)‘이 있다. 이외에도 거북의 등딱지를 닮아서 구봉산(龜峰山)’이라고 칭하였다. 현재 명칭은 조선 숙종 때 왕이 애지중지하던 학() 두 마리가 궁궐에서 도망쳤는데 이후 이곳에서 찾았다고 해서 학을 찾은 산, ‘심학(尋鶴)'으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 오는데, 대동여지도와 같은 일제강점기 이전 문헌에는 끊임없이 심악산(深岳山)’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는데, 1913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전설급동화(朝鮮傳說及童話)’에서 심학산(尋鶴山)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면서 대략 1910년대 사이에 해당 명칭으로 의도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심학산을 올라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에서 보는 탁 트인 풍경이 눈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심학산 산림공원은 심학산을 두르는 둘레길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심학산 둘레 코스는 배수지-약천사-수투바위-배밭정자-낙조전망대-솔향기쉼터로 6.8km이다. 산림욕을 즐기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쭉 뻗은 자유로와 한강, 김포, 관산반도를 조망할 수 있으며,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그야말로 일품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낮에 이곳을 지나간다.

 

심학산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휴식을 한 정자

 

 

 심학산을 둘러 내려오면 파주출판단지가 나온다. 파주출판도시는 파주시 문발동에 출판사 등이 모인 산업단지로 정식 명칭은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이다. 말 그대로 출판사 및 출판 관련 업체들로 이루어진 곳이며, 공식 산업단지로도 인가되어 있으며 한국의 웬만한 출판사와 출판인쇄소의 반 이상이 여기에 있다.

 단지 초입 좌측에 출판유통사 북센의 낮고 거대한 건물(종합유통센터)이 서 있고, 더 들어가면 각 출판 관련 회사들의 사옥과 창고, 공장, 상가 건물 등이 야트막하게 이어져 있다. 단지를 구성하는 각 회사의 사옥들을 보면 독특하고 멋있는 디자인의 건축물이 많다. 이는 애초에 헤이리 마을과 같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에 한정하여 허가해 내주었기 때문에 대부분 국내외 건축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하여 지은 건물들로, 경제적 효율성에 덜 연연하고 미적인 데 주안을 두고 지었다고 한다.

 

파주출판단지의 여러 모습

 

 파주출판단지근린공원은 출판과 문화의 중심지인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공원으로, 이 공원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제공한다.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야외 공연과 문화 행사들이 개최되어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는 곳이다.

 

 

파주출판단지를 지나 산길과 언덕길을 따라 걸으니 오른쪽에 큰 기와집이 보인다. 이 외진 곳에 무슨 건물인가 의아해서 주변에서 나물을 캐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무슨 박물관인가를 지었다고 하며 영 못마땅한 얼굴로 대답을 해 주었다. 무슨 용도로 지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별 특이한 곳도 아닌 것같아 그냥 지나쳤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어 제법 가니 큰 도로가 나타나고 바로 통일동산 입구다.

 

 통일동산(統一東山)은 동서화합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남북한 교류협력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가시적 사업추진이 요구됨에 따라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에서 제시된 '평화시 건설구상'의 일환으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법흥리 일원 약 300에 조성한 안보·관광단지이다.

주요 목적은 1천만 이산가족의 망향의 한을 달래는 만남의 장소이자 각계각층의 통일 의지를 일깨우는 통일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곳에는 이미 통일전망대를 비롯해 축구 국가대표팀 전용 트레이닝 센터 등이 마련되었고, 헤이리마을, 카트랜드, 프리미엄아울렛 등 여러 관광 콘텐츠가 있으며, 한반도 평화관광의 중심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통일동산/성동사거리

 

 이곳 주변에는 제법 도시의 번화가와 같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더 소중한데 찾기가 너무 어렵고 조금은 소홀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그냥 이 코스를 통과하여 조금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걸었다.

평화의 길 4코스(전류리포구 -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 일산대교 -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평화의 길 4코스는 전류리포구를 출발하여 한강 옆으로 난 큰길을 따라 걸어 운암사거리에서 계속 가서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을 지나 일산대교를 건너 고양시의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에서 끝이 나는 15.2km의 길이다.

 

평화의 길 4코스 안내판

 

전류리 표구 설명판

 

 4코스를 시작하여 조금 가니 자전거 길과 걷기 길이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걷기 길이 사유지라고 철망으로 보행을 막아 갈 수가 없었다. 코리아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곳이 곳곳에 보여 보일 때마다 두루누비에 전화로 알려주고 현장의 사진도 찍어 보내주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전화하여 알려주니 서울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길을 만들면서 사유지의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는지 아니며 무시하고 만들었는지를 모르겠으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하다. 사유지라고 막아 놓은 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돌아가야 하므로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가 도중에 언덕 위로 올라가 길을 따라가니 제법 걷고 나서 자전거 길과 걷는 길이 마주하였다. 그래서 이것도 두루누비에 전화를 걸어 알려주고 계속 길을 갔다.

 

사유지로 막아 놓은 철조망

 

도로를 따라 한강에 쳐진 철책선

 

 한강을 옆에 끼고 길을 계속 가니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 나온다.

 

 정식 명칭은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은 '생태공원', '에코파크'등으로 줄여 부르는, 탁 트인 한강 변에 펼쳐진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의 푸른 습지와 넓은 들판을 따라 걸으면 철새들의 힘찬 날갯짓 속에서 자연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생태체험과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산책길을 가진 이곳은 바로 수도권 최대의 생태공원이다. 엄청나게 널은 부지에 조성된 이곳은 철새들이 많이 찾는 반달형 농경지를 김포한강신도시 조성에 따라 야생조류의 생태와 서식환경 보존·관리를 위해 만들었다. 여러 종류의 기러기와 재두루미 등이 날아들어 다양한 철새를 관찰할 수 있으며, 물길 따라 걸으며 느끼는 한강의 정취와 아름다운 경관은 철새와 사람 모두가 쉬어가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한강신도시를 지을 당시 LH는 신도시를 3개의 지구로 나눠 개발하였고, 그중에서 A지구는 인공호수나 하천을 설치하지 않고 한강 하류 변에 위치한 점을 살려 기존의 습지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공원화하는 생태공원을 조성하였는데, 이것이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다. 자연 보존을 위해 만든 공원이라 기존 습지의 훼손은 최소화하였으며, 산책로와 자전거길, 벤치 등의 시설만 조성되었다. 따라서 공원 면적의 대부분이 갈대밭과 논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에서는 철책과 감시초소를 볼 수 있다.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의 여러 모습

 

DMZ 평화의 길 표시

 

 

 길을 따라 계속 가니 저 멀리에 고양의 일산대교가 보인다. 일산대교(一山大橋)는 길이 1,840m로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과 김포시 걸포동을 연결하는 한강의 33개 다리로 20038월 착공되어 20081월에 개통되었으며, 정식개통은 2008516일이다. 수도권의 대표적 철새 도래지인 장항습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친환경 공법을 도입하고 장식을 위한 시설은 배제하였다. 외벽 도색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연두색을 사용하였고, 겉모습도 평범하게 꾸몄으며, 야간에 교량을 돋보이도록 비추는 장식용 조명시설도 갖추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일산대교

 

일산대교를 건너며 보는 물새들의 모습

 

일산대교에서 보는 풍경

 

 일산대교를 건너 고양시에 들어선다. 고양은 새로운 도시답게 활기에 넘친다. 도로를 따라난 길을 걸으면서 시내를 구경하며 따라가니 고양종합운동장이 나타나고 계속가니 휴게공원이 나온다. 여기가 4코스 끝인 곳이다.

 

고양 시내 풍경

 

 고양종합운동장 휴게공원에 도착하니 이 부근에는 숙소를 구할 수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대화역 부근으로 갔다. 대화역 부근의 숙박업소에 들어가니 평소와 다르게 요금이 비싸다. 주인에게 요금이 비싸다고 하니 주말이고 오늘 BTS가 고양에 와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요금이 비싸졌다고 했다. 시내를 걸어오며 곳곳에 깃발을 보았는데 이날은 BTS 데뷔 12주년 기념 축제가 고양 킨텍스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숙소에서 가볍게 종일 걸으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평화의 길 3코스(애기봉입구 - 사암2리마을회관 - 전류리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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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3코스는 애기봉입구에서 시작하여 마근포리와 석탄리철새조망지를 거쳐 전류리포구까지 걷는 16.7km의 특별한 것이 없는 한적한 길이다.

 

애기봉 입구의 평화의 길 3코스 안내판

 

 3코스는 산에서 내려오면 도로 가에 3코스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북쪽으로는 애기봉으로 가는 도로가 뻗어 있고 도로를 건너 농촌의 마을 길을 따라 걷는다.

 

애기봉으로 가는 도로

 평화의 길은 애기봉으로 가지 않지만 애기봉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인 애기봉(愛妓峰)은 155m의 높이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이 봉우리에는 슬픈 사연이 전해진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으나 감사는 강 건너 개풍군에서 오랑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넜다. 홀로 남은 애기는 매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를 기다리다 병들어 죽어 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1966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恨)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 명명하고, 친필로 휘호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
정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1993년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망배단이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때는 북녘을 향해 대형 트리를 세우고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며 석가탄신일에는 법회가 열리는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

 

평화의 길 안내판

 

 마을 길을 가다가 왼쪽을 보니 박신의 묘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제법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사당이 보인다. 그리고는 아무 특징없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박신 묘역 안내

 

한강을 접하고 있는 쳘책선

 

 이 길에선 마을을 잇는 길과 시원스레 뻗은 농로를 걷는다. 전류리까지 여러 마을을 지나는 들판에는 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의 파릇파릇한 벼는 가을과는 다른 정감을 느끼게 한다.

 

아리수 낚시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아리수낚시터를 지나 길을 걷다가 보니 뜻밖의 집이 보인다. 너무 깨끗하고 단정한 집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 무슨 집인가 의아했는데 옆에 '초리화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조용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끽하며 예술을 즐기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그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하였다.

 

 

 농로를 걷다 지나는 석탄리 철새 조망지는 손꼽히는 포토존으로 알려져 있다. 김포평야가 맞닿아 먹이가 풍부해 많은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백로, 황로, 왜가리 등은 물론 겨울 철새인 재두루미도 날아오며 흑두루미가 찾기도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석탄리 철재조망지에서 보는 풍경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 가를 따라 걸으니 전류리포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 한강 하구에 자리한 유일한 포구인 전류리 포구는 한강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서해로 나가는 마지막 길목이자 최북단 어장으로, 어로 한계선과 그리 멀지 않아 사전에 허가를 받은 배들만이 바다로 나갈 수 있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이 긴 여행을 마치고 서해로 합류할 즈음, 민물과 짠물이 넘나드는 기수역인 풍요로운 강의 하구에 포구들이 들어선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전류리는 12시간 간격으로 바뀌는 물때는 물론 거센 조류의 흐름 파악하기가 아주 힘든 곳이다. 그래도 풍부한 어장 덕에 계절마다 민물고기며 바닷고기며 풍부하다.

 

전류리포구 간판

 

 이곳에서 평화의 길 3코스는 끝이 났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없기에 주변을 좀 둘러보다가 잠시 쉬고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긴다.

 

평화의 길 2코스(문수산성 남문 - 문수산성전망대 - 김포 DMZ평화쉼터 - 애기봉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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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길 2코스는 문수산성 남문 부근에서 출발하여 멀리 한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산길을 걸어 김포 DMZ평화쉼터를 지나 애기봉 입구에서 끝이 나는 7.8km의 아주 짧은 거리지만 계속해서 야트막한 산을 넘어야 하므로 쉽지 않은 길이다.

 

2코스 시작점에 있는 여러 길 안내판

 

 평화의 길은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이 겹쳐 있는 구간이 많아서 3개의 길 안내판이 같은 곳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관계기관이 협조하면 하나로 정리하고 좀더 세밀한 안내판을 세울 수 있을 것인데 각 기관이 서로 자신만을 내세우는 것 같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통진읍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2코스 시작점에 와서 산으로 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산길을 올라가서 문수산을 둘러싸고 있는 문수산성 벽 주변을 걷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정상부에 있는 문수사를 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문수산성은 김포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문수산에 자리한 둘레 2.4km의 산성으로 1964년 사적 제139호로 지정됐다. 명칭은 신라 시대 때 산 정상에 창건된 문수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694년 숙종때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1812년 순조에 의해 고쳐 쌓았으며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산성이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위에서는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의 여장을 둘렀고, 성문은 취예류와 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가 침략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른 산성으로 조선군이 프랑스군 방어에 성공하였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졌고,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병인양요 때 북문, 서문, 남문이 소실됐다. 소실되었던 북문은 1995년에 남문은 2002년, 장대는 2017년 복원되었고, 2023년 4차 조사에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방어시설 여장, 공해루(서문)로 추정되는 성문지 기초 등이 발굴되었다.

 

문수산성 유적지

 

 

문수산성 전망대에서 보는 강화 앞 바다

 

문수산성 성벽 길

 

문수산성 설명판

 

홍예문 설명

 

 산성 벽을 따라 계속 가다가 정상으로 가지 않고 홍예문에서 성벽을 통과하여 아래로 내려간다. 산길을 따라가면 조강1리의 입구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 좀 가면 김포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가 나온다.

 

김포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

 

김포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안에 들어가 잠시 쉬면서 자료를 얻으려고 들어가니 근무하시는 분이 자리를 비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니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요즈음 어디에도 특별한 실내가 아니면 신을 벗는 곳이 드문데 이곳은 조금 별난 것 같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를 산보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대부분이 등산화를 신고 있다. 그래서 등산화 끈을 풀고 다시 묶는 일이 너무 번거롭다. 오랜 시간을 긴 길을 걷기에 사소한 조그마한 일도 피로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주변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갔다. 평화의 길 거점센터라면 길 걷는 사람에게 편리함을 제공해야 하는데 너무 근무자 위주로 만들어진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애기봉 입구의 길 표시

 

 평화의 길 거점센터를 지나 산길을 걸어 조강저수지를 지나서 조금 가면 애기봉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2코스는 끝이 난다. 별 특이한 것도 없이 다음 코스를 가리키는 말뚝이 서 있고 애기봉으로 가는 도로가 뻗어 있는 곳이다.

 

평화의 길 1코스(강화평화전망대 - 강화고려천도공원 - 연미정 - 문수산성 남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DMZ 평화의 길은 동··남해와 DMZ 접경지역을 하나로 연결한 약 4,500km의 코리아둘레길의 북쪽 길이다. 인천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까지 한반도의 마지막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총 34개 코스, 510km의 걷기 여행길로, DMZ 초입인 민간인통제선 인근에 자리한 최전방 마을, 전적지, 평야와 강, 산악 지형을 지나며 한반도 중부의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자유롭게 방문 가능한 횡단노선과 투어 예약 후 방문이 가능한 테마노선으로 나누어진다. '테마노선'은 민통선 이북의 생태·문화·역사자원을 통해 국민이 안보,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하도록 조성한 길로 각 테마길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접경지역에 서식하는 각종 야생 동식물의 보호와 참여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되 주요 구간에서는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참가자가 직접 철책 길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평화의 길 노선도(두루누비에서 가져 옴)

 

 어느새 코리아둘레길을 걷기 시작하여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을 다 걷고 마지막 남은 DMZ 평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국의 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만끽하고 즐기며 걸으니 알지 못하고 있던 여러 일도 알게 되었고 알게 모르게 건강한 몸도 가지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서해랑길 걷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여러 다른 일도 하면서 보내다가 다시 DMZ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부산 집에서 강화도 평화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너무 먼 길이고 몇 번을 대중교통편을 갈아타고 해서 평화전망대에 도착하니 아침 일찍이 부산을 출발했는데 벌써 오후다.

 

평화의 길 1코스는 인천 강화구간으로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출벌하여 고려천도공원 연미정을 거쳐 강화대교를 건너 문수산성 남문에서 끝이 나는 18.9km의 길이다. 이 길은 한강 하구의 철책을 옆에 두고 걷는 길이 대부분이라 도로를 단순하게 따라 걷는 길이 대부분이나 많은 구경거리가 있는 길이다.

 

1코스 시작점에 있는  'DMZ 평화의 길’ 종합안내도

 

멀리 보이는 북한 땅

 

이정표

 

왼쪽으로 한강 하구를 따라 이어진 철책선

 

 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걸으면 철산리검문소가 나타난다. 근무를 하는 군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물으니 찍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대로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걸으니 왼쪽으로는 철책이 가로막고 있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빤히 보이는 곳이 북한의 황해도 땅이 보인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은 철책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고 지나가는데 우리는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부산에서 살면서 이런 감정을 가지는 일도 드문네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걷는 길에서 얻는 소득이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고려천도공원이 나온다. 고려천도공원은 강화군 송해면 12에 민통선 안보 관광코스 조성사업의 하나로 2019년에 개장한 역사 테마공원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강화천도는 몽골에 항전하기 위해 고려 고종이 1232년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일이다. 이후 38년간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역사를 천도문을 시작으로 고종사적비까지 강화 해안가를 따라 돌아볼 수 있게 조성되었다. 천도문을 지나 천도문 광장에 들어서면, 고려 시대 대몽 항쟁을 위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외 팔만대장경과 상정고금예문 등에 대한 자료와 강화도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 유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 천도 길 설명

 

팔만대장경 비

 

고려천도공원 간판

 

 고려천도공원을 지나 철책선을 따라 난 길을 걸어가면 연미정이 나온다. 이 길에는 여러 돈대가 있지만 가 볼 수는 없고 표지만 보고 지나왔다.

 

 

 연미정 가까이에는 역시 검문소가 있다. 이곳이 최북단임을 증명하듯이 지나가는 차들을 모두 검문을 하지만.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나같은 사람은 그냥 지나가게 한다. 검문소를 지나 연미정에 올라갔다. 연미정에서 보는 북쪽과 동쪽은 탁 트여 있다. 북쪽으로는 멀리 황해도가 보였다.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위치한 연미정은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정자다.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로,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1244년 왕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제(九齊)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면학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510년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하며, 1627정묘호란 때에는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정자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한강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성시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연미정 앞에 배가 머물던 곳이였고, 성곽과 성문을 복원한 것으로 보아 앞쪽으로 나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강화로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년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의 풍광과 정자 양쪽에 수백 년 된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연미정 올라가는 길

 

월곶돈대

 

연미정

 

연미정에서 보는 풍경

 

월곶진 안내판

 

 연미정을 내려오니 평화전망대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보지 못했던 슈퍼가 보인다. 날이 너무 더워 가게에 들어가 차가운 음료수를 사서 마시다가 바로 옆 검문소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줄 수가 있는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함부로 음식물을 주기도 조금은 의심스러워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엿다. 그래서 차가운 음료를 세 통을 구입해서 그들에게 주니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한다. 내 아들보다 더 어린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장을 보면 꼭 무엇이라도 하나를 주고 싶은 마음인데 조금은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슈퍼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간다. 길을 가다가 보니 강화도 와이너리를 선전하는 선전물이 곳곳에 붙어 있다.

 

외이너리 선전

 

 

 계속 철책 가로 난 길을 따라가니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나타난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공원인 곳으로 6.25 참전 유엔 16개국의 기념비가 있다.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입구

 

참전 16개국 기념비

 

 

 계속 길을 따라가니 강화대교 밑에 갑곶나루 선착장 표지석이 있고 그 옆으로 갑곶성지가 나타난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길만을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길 주변의 여러 역사적 현장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걷는 길의 즐거움이라 갑곶순교성지로 올라갔다.

 

 갑곶순교성지(甲串殉敎聖地)의 조성은 19세기의 천주교 박해에서 시작된다. 1866년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됐고 갑곶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또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진두(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 후에 천주교 인천 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렸다. 강화도 성지로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진무영(鎭武營) 순교성지, 관청리 형방이 있으며, 십자가의 길, 순교자 삼위비, 박순집 베드로 묘 등을 순례할 수 있다.

 

갑곶나루선착장 표석

 

순교선지 갑곶 표석

 

갑곶순교성지의 여러 모습

 

 갑곶순교성지를 나와 구 강화대교를 건너가면 이제 강화를 벗어나 김포도 들어간다. 강화대교(江華大橋)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까지 연결하는 연륙교로 1997에 개통되었다. 1970에 개통된 기존의 교량인 강화교가 노후화되어 새로 건설된 다리이다.

 

구 강화교

 

구 강화교에서 보는 강화대교

 

평화의 길 안내판

 강화교를 지나 길을 따라가니 비교적 최근에 복원한 문수산성 남문이 멀리 보이고 조금 더 가니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이 나타난다.

 

1코스의 마지막 지점 주변 안내판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리 찾아도 코스의 안내판이 없다.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에는 모두 각 코스의 안내판 크게 서 있어 다음 코스를 대강 알 수 있었는데 평화의 길에는 코스 안내판이 없다. 그리고 코스를 인증하는 두루누비의 인증 QR코드도 찾기가 상당히 불편하고 힘들다. 주변의 코스 말뚝이나 안내판 그리고 여러 곳을 잘 찾아야 한다. 

 

 또 이 주변에는 숙박을 할 곳도 없어 버스를 타고 통진읍으로 가야 숙박을 할 수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내가 코스 종점에 도착해 QR 코드를 찾으니 젊은 여인이 말뚝에 붙어 있다고 알려주어 코드를 찍고 나오다가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김포에 살면서 여러 길을 걷는다는 아직은 젊은 나이인 그 여자는 은퇴하면 여러 길을 걷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여 내가 걸은 여러 길을 이여기해 주고 나는 통진읍의 통진 성당에서 내려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