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경주 13 - 동학의 자취(최제우 생가, 용담정)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은 경주 북부 권역에서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는 동학의 발자취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일찍이 경주로 가서 북부 권역중 용담정쪽으로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 타고 먼저 최제우의 생가에서 내려 걸어갔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동학에 대한 평가는 최제우가 득도하고 개창했던 경신년(1860)보다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이 선봉에 섰던 갑오년(1894)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즉 신앙과 자주적 근대 사상의 출발지인 경주보다 호남의 격전지에 더 주목해 왔다. 하지만 갑오년 혁명의 힘이 분출되는 자양분을 마련했던 곳은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의 용담정이다.

 그러므로 동학 유적을 대표하는 구미산 용담정은 근대적 사상과 동학의 출발이자 신앙의 원천인 종교의 발상지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용담정에 앞서 찾아간 최제우 생가는 용담정 입구에거 약 1km 떨어진 가정리의 한적한 농촌에 있다. 생가 입구 오른쪽에 자리해 있는 1971년 세워진 5m높이의 유허비는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고 최제우의 행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유허비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2014년 동학발상지 성역화 사업으로 안채와 사랑채, 별채, 곳간 등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구미산의 품에 아늑하게 싸여 절로 평온한 기분이 들게 하는 분위기이다.

 

최제우 생가 앞의 '동학 가는 길' 안내판

 

최제우 생가 전경

 

생가 설명

 

생가 입구의 유허비

 

 최제우 생가는 조금 큰 한옥으로 큰 특징은 없는 집이다. 그저 최제우의 생가라는 의의가 있을 뿐인 거의 현대적으로 복원한 집으로 역사적인 의미만 부여할 뿐이다.

 

사랑채

 

방앗간

 

안채(수운고택)

 

생가의 여러 모습

 

 생가를 나와 생가 앞에 있는 안내소에 가서 안내 팜플렛을 요청하니 아직 팜플렛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며 미안해 한다. 이런 점은 다소 아쉽게 생각이 되었다.

 

 안내소 앞에 있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나무에 봄이 오는 빛이 보였다. 그런데 너무 특이한 모습이라 무슨 나무인지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식물 이름을 가르쳐 주는 앱에 물음을 보내니 '백합나무'라는 답이 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백합나무

 

 생가에서 나와 길을 걸어 내려가면 용담정 입구의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용담정까지는 약 2km의 아스팔트 길을 걸어 가야 한다.

 

용담정 버스 정류장

 

용담정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용담정 입구(포덕문)

 

 경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12에 가정리가 있고 그 앞산이 바로 구미산(龜尾山)이며, 그 산 계곡에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정자인 용담정이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 가을철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 계절여행지로서의 매력도 있는 곳이다.

 

 용담정은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이 나이 60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구미산 계곡에서 시를 읊조리며 소일하던 곳이다. 최옥은 나이 63세 되던 해 한 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아 18241028일 최제우를 낳았다. 태어나던 날 구미산이 사흘 동안 크게 진동하였다고 전해진다.

 

 최제우는 동학(東學)의 창시자로, 호는 수운(水雲), 수운재(水雲齋)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행상을 하던 최제우는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을 품고 울산, 양산 등을 떠돌며 수련해 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1859년 고향 경주로 돌아와 용담정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수련을 이어가던 중 186045일 한울님으로부터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무극대도(無極大道, 끝없이 훌륭한 진리)의 가르침을 받게 됐다. 그는 용담에서의 종교체험을 서학에 대립되는 동학이라 이름하고 민족의 고유신앙을 계승한 새로운 종교로 창시하게 된다. 그는 용담가를 지어 이 득도의 과정과 내용을 서술하였는데, 용담가라는 가사의 명칭은 용담정의 이름을 딴 것이다.

 

 포교를 시작한 후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수 만의 신도가 운집하였고, 광범위한 계층에 걸쳐 교세를 확장하고 1863년 접소가 14개 소에 이르렀다. 1863년 제자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에게 도통을 계승하고,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를 이단지도(異端之道)’라 하여 좌도난정(左道難正)’이라는 죄명으로 이듬해 용담정에서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체포하여 그를 참형에 처하였다. 대구에서 처형되었으며, 1907년 복권되었다.

 

 19752월 천도교는 구미용담성역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거교적인 사업으로 용담정 · 포덕문 · 용담정사 · 성화문 등을 건립하여 성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천도교에서는 가정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천도교의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궁을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제우 동상

 

 최제우가 한울님과 만나는 과정을 기록한 글인 포덕문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용담정의 정문 포덕문을 지나 정자 용담정까지 오르는 길은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숲길이다. 포덕문으로 들어서서 최제우 동상을 지나, 수도원을 거치면 또 하나의 문인 성화문을 만난다. 여기에서부터 용담정까지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약간의 경사는 있지만 길이 잘 단장되어 있어 걷기에 불편함은 없다.

 

멀리 보이는 용담정

 

 용담정은 원래 작은 암자였는데, 최제우의 할아버지가 사들여 정자로 고쳤고, 부친은 용담정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전한다. 최제우는 이곳 용담정에서 한울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기이한 경험의 과정을 기록한 '포덕문'을 쓰고, 기본 이념이 시천주(侍天主)인 동학을 창시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늘을 모신다는 뜻인 이것을 다르게 생각하면 하늘 아래의 모든 만물은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용담정

 

용담정 위의 용추각

 

용담정에 있는 최제우 초상

 

 용담정 정자에서 멍하니 눈앞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의 소리가 귀를 기울이면 도시에서는 멀게만 느껴졌던 바람소리,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최제우가 이곳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용담정 주변의 풍경

 

용담정 안내도

 

 용담정을 벗어나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동학수련원과 수운기념관이 있다. 아직까지는 구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보이나 최제우의 일생과 동학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곳이다.

 

수운기념관 전경

 

수운기념관 내부

 

용담가 비

 

수운기념관 앞 풍경

 

 수운기념관을 나와 길을 걸어 내려와서 용담정 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 타고 경주 시내로 돌아오니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여정을 마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에게 끝없이 드는 의문은 용담이란 못을 가리키는데 어디에 그 못이 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