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5코스(선학역 3번 출입구 - 문학산 - 자유공원 입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저번에 서해랑길 94코스를 걷고 겨울이 와서 눈도 내리고 기온이 많이 떨어져 걷기를 쉬다가 따뜻한 봄이 오길래 나머지 구간을 걷기로 마음먹고 집을 떠나 95코스로 갔다. 부산에서 인천의 선학역까지 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으나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이기에 일찍 부산을 출발했다.
서해랑길 95코스는 선학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문학산을 넘고 인천의 신구 시가지를 따락 걸으며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길로 마지막 종점은 차이나타운을 지나 자유공원 입구이다.
95코스 안내판
선학역 3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문학산 입구로 가니 식당이 즐비하다. 점심 때도 되어 점심을 먹고 문학산으로 올라가려니 인천의 연수둘레길과 같이 가는 표시가 있다.
연수구 음식특화거리
연수둘레길 안내판
문학산은 인천의 고대 왕국이었던 미추홀의 진산으로 인천의 역사와 함께 하였지만, 1965년부터 50여 년간 군부대가 주둔한 때문에 시민들은 오래도록 정상을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 15일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 옷을 갈아입는 문학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문학산은 해발 217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바위가 많아 등산화 착용은 필수다. 정상에 오르면 문학산 표지석과 예전 봉수대를 재현한 상징물을 만나게 된다. 도시 전경이 숨결처럼 산자락을 타고 오르고, 시계가 좋으면 청량산을 넘어 팔미도와 무의도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미세 먼지가 뿌옇게 덮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산에 있는 문학산성은 인천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임진왜란 때는 인천부사였던 김민선이 백성과 함께 나라를 지킨 구국의 현장이기도 하다. 성 둘레는 577m, 현존하는 부분은 339m이다.
문학산 오르는 길
문학산에서 보는 풍경(문학야구장)
문학산 주변 문화유산 설명
문학산의 명칭은 조선 전기 관찬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문학산이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남산(南山)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이 때까지는 앞산이라는 의미에서 남산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문학산은 원래 '학산(鶴山)'이라고 하던 것을 근처 문묘(文廟)에서 '문(文)'자를 따와 문학산으로 부르게 된 것인데, '학산'이라는 명칭은 이 산에 학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거나 산세가 날개를 펼친 학의 모양을 닮아서라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문학산 정상의 모습
문학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가에는 문학산 주변의 여러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 놓은 것이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이곳이 비류백제의 미추홀이었다는 역사를 중시하여 미추홀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해 놓았다.
일송정
산을 내려오면서 일송정을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무슨 역사적 유적을 발굴하고 있다. 나도 한 때는 이 방면에 관심이 많아 참여도 해 보았기에 궁금해서 발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를 발굴 중이라고 하엿다.
발굴현장
산을 내려와 시내를 따라 걸으니 백제사신길이라는 표시가 있고 사신의 행렬들을 설명하고 있는 벽화가 계속 늘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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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중국으로 파견 가는 백제 사신들은 부평별 고개와 사모지 고개를 거쳐 지금의 옥련동 한나루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이곳에 서서 세 번 이름을 부르고 이별하던 고개라 하여 삼호현이라 불렀다.
조각의 거리에 서 있는 조각품
옥련시장
계속 시내를 따라 걸어가니 능허대가 나온다. 지금은 공원 일대를 공사중이라 통행을 금지해 놓아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 능허대(凌虛臺)는 백제가 근초고왕 27년(372년)에 처음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한 이래 중국으로 가는 우리의 사신들이 출발했던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이 나루터는 한나루(漢津)라 불렸다. 능허대지(凌虛臺址)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에 있는 문화재로 1990년 11월 9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아파트와 유원지가 개발되어,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현재 능허대 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으며, 연못에는 인공폭포와 분수대가 있다.
능허대의 명칭은 소동파의「적벽부」에 나오는‘능만경(凌萬頃)’의 ‘능(凌)’과 ‘빙허어풍(憑虛御風)’의 ‘허(虛)’를 따서 ‘만경(萬頃)을 넘어(능 : 凌) 을 하늘(허 : 虛)을 오른다.’라는 뜻이다.
능허대의 여러 모습
능허대를 지나 남항해안공원으로 가는 길은 인천이ㅡ 갯벌을 옆에 끼고 걷는 시내 길이다. 한쪽에서는 자동차가 싱싱 달리고 한쪽은 바다 갯벌이 펼쳐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갯벌과 남항그린공원 모습
시내를 계속 걸어가면서 보니 조금 생소한 교회가 보인다. '천부교'라는 교회다.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천부교(天父敎)는 박태선 장로가 1955년에 창시한 반기독교 성향의 신흥종교로 박태선을 하나님으로 믿으며 박장로교 또는 전도관(傳道館)이라고도 하며, 우리에게는 교인들의 신앙공동체인 신앙촌으로도 유명하다. 박태선 교주를 육신을 입고 내려온 신(하나님)으로 주장하고 그를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영미권에서는 감람나무 교회(Olive Tree Church)라고 불린다고 한다.
천부교 교회
계속 길을 걸어가니 인천개항누리길이 나온다. 인천 개항 누리길은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역 부근 개항장 일대에 조성된 길로 근대 개항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며 걷는 테마길이다.
인천의 올레길로 불리는 누리길(세상을 즐기는 길)은 2006년부터 운영해 온 도보 관광 코스로 근대 역사 건축물 등 문화유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문화관광해설사의 재미있고 유익한 해설을 들으며 도보로 관광할 수 있는 테마관광코스이다. 이 길을 걸어가면서 오래된 개항기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구 인천유체국 건물
구 인천 일본 제1은행 지점(舊仁川日本第一銀行支店)은 일본 제1은행이 개화기 인천에 설치한 지점으로 근대건축물로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3번길에 있으며 1982년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다.
1883년 인천을 개항한 후, 일본 제1은행 부산지점이 개설한 인천출장소가 전신으로, 초기에는 해관 통관세를 취급하였다. 1899년(고종 광무 3년)에 지금의 건물을 신축하여 1911년에는 조선은행 인천지점, 1950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조달청 인천사무소, 법원 등기소 등으로 활용되다가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건물은 일본인 니이노미 다카마사가 설계하여 모래, 자갈, 석회를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건축 재료를 일본에서 직접 가져와 만들었다. 1899년에 만들어진 지상 1층 건물로 석재 기단부와 수평 줄눈의 안정되고 견고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돌출된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성된 석조 건축물이다. 현관 상부는 아치 구조이며 지붕에는 중앙 돔과 작은 천창을 설치하였다. 처마 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을 올렸다.
구 인천제1은행 지점 건물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인천의 개항누리길을 따라가면서 여러 건물을 구경라며 다다른 곳이 유명한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다.
인천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화교들은 소매잡화 점포와 주택을 짓고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혀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193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부터 6·25전쟁 전까지는 청요리로 명성을 얻었는데 공화춘, 중화루, 동흥루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각종 제도적 제한으로 화교들이 떠나는 등 차이나타운의 화교사회가 위축되었으나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이나타운'이라고 말하면 이곳을 꼽는 이들이 많다. 서울, 부산, 대구 등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넓은데다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으로 꼽는 중국 음식인 짜장면의 탄생지가 이곳이라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권역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 이곳에는 화교 2,3세들로 구성된 약 170가구, 약 5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에 공화춘이라는 식당이 있지만 그 공화춘은 1911년 개업한 공화춘이 아닌 판권을 구입하고 부지를 고친 공화춘이며 재한 화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짜 공화춘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는 가게는 인천역 건너편에 있는 신승반점이다. 1983년 원조 공화춘이 폐업하기 3년 전에 공화춘 주방에서 일하던 창업주인 우희광의 막내딸 우란영과 사위 왕입영이 독립하여 세운 가게가 신승반점이다
차이나타운의 여러 모습
차이나타운을 지나면 이어지는 마을이 송월동 동화마을로 2013년 4월 인천광역시 중구 송월동 2가~3가에 조성된 벽화마을이다.
1883년 개항 이래로 송월동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부촌이었으나 마을이 노후화되며 젊은 사람들은 떠나 빈집이 늘고 고령층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2013년 4월에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전동화를 테마로 하여 낡은 담에는 벽화를 그리고, 곳곳에 조형물을 세웠고,. 몇몇 주택은 개조되어 카페나 음식점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벽화 및 조형물의 모티브가 된 동화로는 서구의 신데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피노키오, 알라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공주, 라푼젤, 밤비, 엄지공주, 빨간 모자, 미녀와 야수, 피터팬,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 노아의 방주 등과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 도깨비 방망이, 혹부리 영감, 흥부전, 별주부전, 그리고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마을에는 못난이인형, 무지개다리 포토존 등이 설치되어 있다.
송월동 동화마을의 여러 풍경
송월동 동화마을을 지나 자유공원 담장을 따라 조금 가면 삼국지의 여러 모습을 벽화로 그림 그림이 나오고 삼국지거리를 지나면 초한지를 벽화로 그림 거리가 나온다. 차이나타운의 벽화거리는 삼국지 벽화거리가 먼저 조성된 후 인기를 끌자 추후에 초한지를 주제로 초한지 벽화거리를 조성했다. 초한지 이야기는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쥐고 새로운 통일제국 한나라에 황제로 취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초한지 벽화거리의 마지막 벽화는 마치 역사와 이야기는 끝맺음 없이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그 이후 한나라의 몰락과 위·촉·오 세 나라의 이야기인삼국지를 예고하고 있다. 벽화 거리에 있는 그림은 서양 미술에서 보던 작품과 구도를 공유한다. 이를테면 6번 그림은 진승·오광의 난을 묘사하는데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오마주(Homage)했다. 15번 항우의 무용은 말탄 나폴레옹 황제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51번 그림 패왕별희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본떴다고 생각하면 된다.
벽화거리의 모습
인천역 앞의 차이나타운 올라가는 길
여기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95코스는 끝이 난다. 오늘은 여기에서 끝을 내고 인천에 사는 큰 아들을 만나서 즐겁게 회포를 풀 생각이다. 그리고 편안하게 쉬고 내일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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