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경주1 - 대릉원주변 고분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경주는 우리나라 최고이자 최대의 유적이 있는 도시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숱하게 많이 가 보았지만 최근에는 좀 드물어 이번 기회에 경주를 통괄하여 답사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경주시에 관광지도와 책자를 요청해서 받아서 날을 잡아 먼저 대릉원 부근의 고분을 중심으로 답사하기로 하였다.

 

 예전에 비하여 교통이 아주 편하게 발전하여 경주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고분군으로 갔다.

 

경주역 전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려 조금 걸어가니  먼저 노서리고분군이 나타난다. 노서리고분군(慶州路西里古墳群)은 넓은 평지에 크고 작은 고분 14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더불어 그 규모에 있고, 쌍벽을 이루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해, 1921년에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1926년에 일본 방문 길에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들러 발굴을 조사 참관한, 서봉총, 1946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되어, 신라 고분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 호우총과 은평총, 쌍상총, 마총 등도 있다. 쌍상총에서 토기 조각, 마총에서 말뼈와 안장 조각이 출토하였다고 한다.

 

노서동고분군

 

 노서동고분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금관총은 과거와 달리 고분이 아주 잘 정비되어 관람을 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금관총(金冠塚)은 경주시 노서동에 소재한 사적 제39호 노서리 고분군 가운데 하나인 고분으로 신라 왕족 혹은 귀족으로 추정되는 이사지왕의 무덤으로 신라의 고분 중에서 금관이 처음 발견되어 금관총이라고 부른다. 금관총에서 나온 금관은 국보 제87호로 지정되었고, ()자 모양의 장식과 사슴뿔 모양의 장식으로 신라 금관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금관총은 1921년 집터를 파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이미 파괴된 고분인데다 정식으로 조사된 것이 아니어서 무덤의 구조나 유물 등 상태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뒤 많은 조사와 발굴을 통해 금관총은 신라 때만 있었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모양은 지름이 50미터, 높이 13미터 정도로, 무덤 안에 옻칠한 덧널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덧널이란 나무로 만든 널방(관을 넣어두는 방)을 뜻하는데, 이러한 구조는 신라 특유의 무덤 양식으로, 불교의 영향이 있는 점으로 보아 통일 신라 이전인 6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왕릉으로 추측된다.

 

 2013년 발견된 검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이 확인되었고, 2015년 금관총 재발굴에서 '이사지왕도' 라고 새겨진 칼집부속구가 추가로 확인되고, 금관총에서 출토된 이사지왕 관련 명문 환두대도 3점의 실존이 모두 확인됨에 따라 금관총=이사지왕의 무덤으로 거의 확실시되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들 중 유일하게 피장자의 이름이 확인된 무덤이다. 그러나 이사지왕이 신라의 '국왕'인지 귀족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등을 두고 논란이 많다. 연구성과들을 기초로 500년 전후에 축조했다고 본다.

 

 현대식 전시 공간은 20233월 완전 개방되었다.

 

금관총의 내부

 

 금관총을 나와 옆에 있는 신라고분정보센터에 가니 신라고분의 역사를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이러한 것은 예전에는 없던 것인데 이제는 문화에 대한 투자가 엄청 많이 이루어져 좋은 환경에서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신라고분정보센터 내부

 

 신라고분정보센터를 나오면 바로 왼쪽에 노동리고분군이 나타난다. 노동리고분군(慶州路東里古墳群)은 노동동에 있는 고분군이다. 이들 중 봉황대는 밑둘레 230m, 직경 82m, 높이 22m로 대한민국에서는 큰 규모의 무덤이다. 봉황대 남쪽에 1924년 발굴 조사한 금령총 터와 식리총 터가 있는데, 내부 구조는 모두 돌무지 덧널무덤이다.

 

봉황대 표석

 

노동리고분군 표석

 

노동리고분군의 여러 모습

 

 노동리고분군을 벗어나서 대릉원으로 가는 길에 신라대종을 본다. 옛날에 만들어진 종이 아니라 옛날의 성덕대왕신종을 본떠서 현대에 만든 종이다.

 

신라대종 설명

 

 신라대종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앞에 대릉원이 있다.

 

 경주시 황남동(皇南洞)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인 대릉원(大陵苑)이란 이름은 미추왕(味鄒王)을 대릉(大陵:竹長陵)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서 딴 것이다.

 

 125400평의 평지에 신라시대의 왕과 왕비, 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다.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시대만의 독특한 무덤군()으로, 크게 다음과 같은 7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신라미추왕릉(사적 175) 경주 황남리 고분군(皇南里古墳群:사적 40) 경주 노서리 고분군(路西里古墳群:사적 39) 신라 오릉(五陵:사적 172) 경주 동부사적지대(東部史蹟地帶:사적 161) 경주 노동리 고분군(路東里古墳群:사적 38) 재매정(財買井:사적 246) 등이다.

 본래 사적 경주노동리고분군(慶州路東里古墳群), 사적 경주노서리고분군(慶州路西里古墳群), 사적 경주황남리고분군(慶州皇南里古墳群), 사적 경주황오리고분군(慶州皇吾里古墳群), 사적 경주인왕리고분군(慶州仁旺里古墳群)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728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경주 평야 한복판에 서로 인접해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통합하여 재지정하였다.

 

대릉원안내

 

대릉원의 여러 고분과 석조유물

 

 대릉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발길이 천마총으로 향한다. 천마총은 대릉원의 고분들 중에서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155호 고분이다. 과거에도 여러 번을 온 곳이지만 주변이 제법 많이 바뀌었다.

 

 경주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인 천마총(天馬塚)은 경주분지 내의 거의 중심지인 황남동에 조성한 고분공원(大陵苑) 안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황남동 제155호분으로 21대 소지왕 혹은 22대 지증왕 중 잠정적으로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분의 규모는 분구 높이 12m 70cm, 분구의 바닥지름 47m인 원형의 봉토분(封土墳)이다. 분구의 자락에는 돌로 쌓아 만든 호석(護石)이 돌담 형식으로 돌려 있다. 1973년에 발굴되어, 천마도(국보 제207), 금관(국보 제188), 금모(국보 제189) 11,297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부장품 중에 순백의 천마(天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이라 한다. 그 밖에 서조도(瑞鳥圖)와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도 출토되었다. 현재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2017년 보수 후 원래 위치에서 조금 밀려서 복원된 목곽을 원 위치로 옮기고 적석과 봉분을 제대로 복원하였으며 관리용 복도 부분도 전시 부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곳에서 발굴된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의 천마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고구려벽화의 무용총(舞踊塚) 수렵도(狩獵圖)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지역의 거의 유일한 영주 태장리의 고분벽화와 함께 고구려벽화고분의 영향을 잘 나타내 준다.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고분벽화가 별로 없는 신라의 회화자료로서 천마총의 천마도는 매우 귀중하다고 하겠다. 근자에 천마에 대하여 기린이라는 이견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거대한 언덕들만 있는 공원처럼 보이는 대릉원 관람의 핵심이 천마총이 된다. 천마총 입구는 대릉원 담벼락 방향으로 나있는데 대릉원 주 동선에서는 바로 눈에 띄지 않으므로 관심이 없거나 대충 보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천마총입구

 

천마도

 

 천마도는 1973년 155호 고분 발굴 당시 가른 금제 유품들과는 달리 왕의 머리맡에 있던 부장품 유물 상자 속 말다래에 그려저 있었다. 아주 예전에 이곳에서 대 천마도를 직접 본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복제품만 이곳에 있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천마총의 여러 전시품

 

 대릉원의 여러 왕릉을 구경하고 천마총을 끝으로 구경한 뒤에 다시 발을 옮겨 월성지구로 향한다.

 

 여기서 내가 길을 걸으며 문화유적을 구경하며 다니는 중에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경주는 외국인들에게도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고 시설도 수준급으로 갖추어진 곳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곳의 문화재 입장료도 65세 이상은 무료라 편안하게 관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