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헝가리, 부다페스트 1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부다페스트-다뉴브의 진주

 

 물은 생명을 뜻하며, 생명을 탄생시키고 생명을 살아있게 만든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자식을 가진 물줄기는 독일 남부의 흑삼림 지대에서 발원해 9개 나라, 2,850를 달려 흑해로 가는 라틴어로는 다누 비우스(Danubius), 영어로는 다뉴브(Danube)로 불리는 강이다. 다뉴브가 지나가는 가운데에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유럽의 모든 곳을 연결하는 부다페스트이다. 부다페스트는 도시를 관통하는 다뉴브 강으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가져 '다뉴브의 진주'로 불리는 유일한 곳이다.

 부다페스트는 인구는 200만 명이 조금 못 미치는 헝가리의 수도이자 현재 중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부다와 페스트는 원래 별개의 도시였는데 1873년에 도나우 강 서편의 부다(Buda)와 오부다(Obuda) 동편의 페스트(Pest)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는 대지 위에 자리하며, 왕궁(王宮)의 언덕, 겔레르트 언덕 등이 강기슭 근처까지 뻗어 있고,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다. 페스트는 저지에 자리한 상업지역으로, 주변지구에 공장과 집단주택이 들어서 있다. 정치의 중심지로서 중앙관공서, 옛 국회의사당 등이 있고, 문화의 중심지로서 여러 대학과 많은 도서관·박물관이 있다. 그밖에 전통을 자랑하는 음악학교·국립극장 등을 포함한 많은 극장이 있다. 국회의사당 앞은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도 유명하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낀 풍경이 밤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다페스트는 온천이 발달한 도시로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알맞은 도시다.

 

 자그레브에서 기차로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자그레브역에서 바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자그레브역에서 전철을 타고 가니 내리라고 하고, 다시 버스를 타라고 한다. 버스를 타니 다시 기차역으로 데리고 간다. 아마 시외에 국제선 기차가 다니는 역이 있는 것 같았다. 이스탄불에서 소피아를 갈 때도 같은 과정을 거친 기억이 났다. 자그레브역에서 한국의 아가씨를 만났다. 자기도 부다페스트로 간다면서 다소 여행에 찌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행 편하게 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열차에 올랐다. 약 4시간 반 정도 걸려서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예정으로는 약 일주일을 부다페스트에 머물 생각이다. 천천히 발걸음 닿는대로 걸으면서 부다페스트를 구경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갔던 곳을 몇번이나 지나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날짜의 순서에 따라 서술하겠다.

 

 

성 이슈트반 성당의 전경

 

 

 

 

자그레브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에서 보는 풍경

 

 

 

 

겔레티역

 

 부다페스트의 중앙역이라 할 수 있는 역으로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열차가 이 역에서 떠나기도 하고 도착하기도 한다.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역에 도착하여 숙소를 물어 가며 찾아가서 짐을 부리고 나니 어느 새 저녁이 되었다. 숙소가 엘리자베스 다리에서 멀지 않아 부다페스트의 첫 밤을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쉬워 가까운 곳의 야경을 구경하러 나갔다.

 

 

멀리 보이는 세체니 다리

 

 

 

성 겔레르트 상과 엘리자베스 황후 동상

 

 

에르제베트 다리(일명 엘리자베스 다리)

 

 

다뉴브강의 밤 풍경

 

 

부다왕궁

 

 

어부의 요새

 

밤에 돌아다니며 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꼭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모스크바의 야경을 즐긴 경험이 있는데 강을 끼고 있는 도시는 모두 아름다운 밤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밤 늦게 돌아와 잠을 청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부다페스트 일대를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헝가리는 전통적인 카톨릭국가라 도시의 곳곳에는 오래 된 성당이 즐비하게 있다. 조금 과장하면 몇 개의 건물을 지나면 성당이 보이는 도시다.

 

 

 

 

 

 

길을 가면서 보는 성당들

 

 먼저 엘리자베스 다리 근처로 가니 고색창연한 성당이 보이는데 저녁에 바하의 'Passion'을 공연한다고 선전을 한다. 표를 구입하고 시간을 보니 늦게 공연을 시작한다. 이 시간에 일정을 맞추기로 하고, 먼저 바찌 거리를 서서히 걸으면서 중앙시장으로 갔다.

 

 헝가리의 중앙시장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 오스트리아의 요세프 황제도 방문했다는 곳이다. 여러 가지 물품과 식료품을 팔며, 2층에는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어 식사를 하기도 한다. 나도 여기서 헝가리의 유명한 구야쉬로 점심읋 해결했다.

 

 1867년 헝가리가 자치권을 획득한 이후 부다페스트는 급격히 발전하였으나 식량 분배를 위한 새로운 도매 시장이 필요하게 되어 건축된 재래시장 건물은 커다란 메인 창문 하나와 네 개의 좀 더 작은 창문 주위로 벽돌 벽에 문양을 넣은 균형 잡힌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정면의 양끝에는 작은 탑이 서있다. 돌로 만든 정문은 네오 고딕 양식이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건물 내부다. 3층까지 올라가서 꽃과 여러 식품을 파는 180개가 넘는 가게들이 빚어내는 떠들썩한 광경을 내려다보라. 전체적인 인상은 시장이라기보다 신선한 생산물과 좋은 음식에 바치는 철과 유리로 만든 대성당쯤으로 생각된다. 1991~1994년의 보수 공사 이후 부다페스트 재래시장은 소매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찌 거리

 

 바찌 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번화가인 보행자 전용거리다. 카페, 레스토랑, 화장품 가게, 기념품 가게 등등이 수 많이 늘려 있다. 이 거리를 걸으면서 구경을 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저 멀리 보이는 중앙 시장

 

 

중앙 시장의 입구

 

 

 

 

중앙 시장의 내부

 

 

중앙시장의 전경

 

시장이 아니라 성과 같은 모양으로 입구의 아름다운 건축미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중앙 시장 내부의 가게들

 

숙소가 가까워 수시로 이 시장에서 식품을 사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겔레르트 언덕

 

 중앙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비가도로 갔다. 벨바로시에 있는 페슈티 비가도(Pesti Vigadó)는 부다페스트 음악의 전당이다. '기쁨을 주는 곳'이란 뜻의 비가도는 1832년 미하이 폴락(Mihály Polláck)의 설계로 지어진 음악홀로 1848년 독립전쟁 때 파괴되고 프리제쉬 페슬의 설계로 1865년에 다시 지어져, 지금은 부다페스트 음악의 상징적 존재로 남아 있다. 카로이 로츠나 모르 탄의 그림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으며 내부의 조각은 카로이 알렉시(Károly Alexy)의 작품으로 그 웅장함은 더욱 빛난다. 2차 세계대전 때 다시 파괴되었고 1980년 재건된 비가도는 시대를 건너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뛰어난 콘서트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드보르작 등이 이곳에서 연주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브루노 발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위대한 지휘자들, 그리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등 거장들의 솔로 연주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비가도

 

 

 

버가도에서 보는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

 

 

 

버가도의 내부

 

 

 길을 돌려 간 곳이 부다페스트으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이슈트반 성당이다.

 

  높이로 역사를 기억하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당 가운데 최대 규모로 1000년도 초대 헝가리 왕이었던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1851년에 착공하여 1906년에 완공되었다. 성 이슈트반 1세는 헝가리를 국가로 성립시키는 토대를 마련한 건국 시조이다. 또한 로마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헝가리를 서구 문화권으로 편입시키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오른손에 홀을, 왼손에 구슬을 들고 있는 성 이슈트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제단의 뒤쪽에 가면 성이슈트반의 오른손이 봉헌된 신성한 오른손 예배당이 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전형적인 네오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전체 구조가 그리스 십자가 형상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중앙 돔이 있다. 건물 내부에선 86m, 돔 외부의 십자가까지는 96m인데, 마자르족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896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뉴브 강변의 모든 다른 건축물들은 도시미관을 이유로 이보다 더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된다고 한다.

 

 대성당 내부에는 당대의 저명한 헝가리의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벤추르의 성화는 성 이슈트반 왕이 헝가리 왕관을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이는 곧 이교도였던 마자르족이 유럽의 일부가 되었음을 내외에 과시한 그림이다. 이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돔의 스테인트 글라스로, 카로이 로츠의 작품이다.

 

 

 

 

성 이슈트반 성당의 여러 모습

 

 

입구의 성화

 

 

 

성 이슈트반 성당의 양쪽 첨탑

 

 

성 이슈트반 성당의 전경

 

 

 

중앙 입구의 돔과  장식한 조각상

 

 

성당의 전경

 

 

 

 

 

 

 

 

 

 

 

 

 

성 이슈트반 상

 

 손에 쥐고 있는 십자가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십자가와 다르다. 십자가의 가로가 두 개로 되어 있다. 헝가리만의 독특한 십자가인데 신권과 왕권을 동시에 나타내는 의미이다. 교황청에서도 특별히 헝가리의 십자가를 인정하였다고 한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화려한 성당 내부의 모습

 

 

 

 

첨탑

 

 

 

성 이슈트반 성당의 높은 곳에서 보는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 그리고 시내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티켓을 구입하고 외양만 잠시 보고 지나왔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뒤에 다시 언급하겠다. 여기서 공연을 보면서 찍은 여러 사진을 보여 드리겠다.

 

 

 

 

 

 

 

 

 엘리자베스 다리 근방에 있는 성당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단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하였다. 부활절이 가까워 이 성당에서 밤에 Bach의 'Passion'를 공연한다고 해서 표를 구하고 들으러 갔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었고 오르간의 소리가 너무 좋았다.

 밑의 포스터에 보면 이 성당의 명칭을 Inner City Parish Church 라고 되어 있다.

 

 

공연 포스터

 

 

 

 

 

 

 

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의 내부

 

 공연을 마치니 밤 12시가 되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으나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감동적으로 들렸다. 밤이 늦었지만 숙소가 멀지 않아 걸어 가면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았다. 오늘은 목적지도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이곳 저곳을 다녔다. 일종의 탐색이라 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다페스트를 돌아 볼 생각이다. 숙소가 중심지에 가까워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광경도 솔솔하지 않았다. 헝가리 중앙시장이나 그 외 다른 시장도 지나가면서 구경하고, 헝가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광장에서 주전부리도 사 먹고 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보기도 했다. 거리를 지나가며 보는 풍경은 '참 아름다운 도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느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보였다.

 

 이제 늦었지만 잡을 청하고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자꾸만 생각나는 도시 자그레브

 

 플리트비체를 떠나 자그레브로 왔다. 약 2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자그레브에 도착하니 11시경이다. 먼저 숙소를 찾아 짐을 풀고 시내로 나갔다. 숙소가 시내 중심지에 가까워서 돌아 다니기가 편하다.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자그레브는 해발 약 122m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나우강의 지류인 사바강 유역에 세워졌다. (za)'후방의, 저쪽의'라는 뜻으로 자그레브는 '후방의 굴()을 메워 만든 도시'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구는 약 120만 명 정도로 크로아티아에서 유일하게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도시권이다도시의 구시가지는1세기 로마인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고, 이후 1241-42년 몽골 침략 이후 자그레브는 왕의 보호를 받는 요새 도시로서 성장하기 시작한다. 17세기~18세기에 걸쳐 대화재와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로서 번성이 주춤하였으나, 1776년 왕실 의회와 왕실 총독부가 옮겨진 후부터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었으며, 19세기 이후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991년에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선언 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발생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에서 자그레브는 전쟁의 중심지였다.

 

 자그레브에는 한 사흘을 머물 예정이기에 급하지 않게 천천히 구경을 하기로 하고, 먼저 중앙역으로 갔다. 다음 행선지인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 보기 위해서다. 어디를 가든지 다음 행선지로 가는 차편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여행의 기본이다. 자그레브중앙역 주변에는 수 많은 구경거리가 있다.

 

 

자그레브 대 성당 앞에 지진으로 멈추어 선 시계

  

 

 

 

웅장하고 아름다운 중앙역

 

 자그레브 도시 여행은 자그레브 중앙역 광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역 광장에 늠름하게 서있는 크로아티아의 초대 왕이라는 토미슬라브의 동상을 지나쳐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반 요셉 옐라치치 광장에 이르는 길이 자그레브 관광의 핵심 루트다. 스토로마이어, 즈린스키 등의 여러 개 공원이 이어지는 이 코스는 말발굽과 같다고 해서 레누치의 푸른 말발굽으로 불린다이 코스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작은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리고 거대한 수목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될 만큼 상쾌하고 평화롭다

 

 

 

 

 

중앙역 앞에 있는 토미슬라브 동상

 

 역광이 되어 사진이 깨끗하지 못하다. 최초의 크로아티아의 왕이라고 하지만 토미슬라브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가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된 사료는 없다. 단지 19세기에 활동한 크로아티아의 사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프라뇨 라츠키가 최초의 크로아티아 왕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크로아티아 역사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또 크로아티아 역사학계는 토미슬라브가 헝가리와 불가리아의 공격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했다고 여기고 있다. 스플리트의 역사가였던 토마 아르히자콘(1200년 ~ 1268년)의 기록에 따르면 토미슬라브는 914년에 크로아티아의 공작 칭호를 받았다고 하며, 925년 교황 요한 10세가 크로아티아의 토미슬라브 국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토미슬라브에게 "크로아티아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따라서 토미슬라브는 914년과 925년 사이에 왕의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여기서부터 반 옐라치치 광장까지 세개의 공원이 연결되어 있다. 공원 곳곳에는 분수와 벤치 야외공연이 이루어지는 정자. 잘 가꾸어진 꽃밭이 있어 시민들이 한가로이 거닐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도 한다. 반 옐라치치 광장에 가장 가까운 공원이 즈리네바츠 공원이다.

 

 

 

 

토미슬라브 광장의 아름다운 건물

 

 

 

 

무슨 예술괸이었는데 이름이???

 

 

 

광장에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건물들

 

 

J.J. STROSSMAYER 주교상

 

 

Strossmayerov 광장

 

 

 

 

 

 

즈리네바츠 공원

 

나무가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잘 자라고 있다. 빈 나무속에 사람이 들어갈 정도였다.

 

 

 이 공원들을 거쳐 반 옐라치치 광장에 와서 대성당으로 발을 돌렸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1093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102년에 완성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자그레브 대성당(Zagreb’s Cathedrale)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하늘을 찌르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성 스테판 성당이라고도 불린다이 성당은 100m가 넘는 2개의 첨탑이 인상적이다. 성당 앞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황금빛 성모 마리아’와 수호성인의 조각상은 감탄을 자아낸다.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 반짝이는 마리아상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으로 파괴되면서 침략을 성당 주변을 요새화하였데, 1880년 자그레브에 발생한 대지진은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지진으로 첨탑의 높이가 달라졌고, 1880년 11월 9일, 7시 3분 3초를 가리키며 멈춘 시계는 오늘도 그 당시의 재난을 보여준다. 성당 내부에는 인권의 수호자였던 스테피타츠 추기경의 밀납인형이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는 의자와 대리석 제단, 바로크풍의 설교단, 13세기 프레스코화 등으로 채워져 시간에 녹슬지 않은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관광객을 압도한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자그레브 여행의 백미이기도 하다.

 

 

 

 

 

 

1880년 11월 9일, 7시 3분 3초를 가리키는 시계

 

 

 

 

아름답게 장식된 성당의 외벽

 

 

 

성당의 두 첨탑

 

 원래는 높이가 108M였는데 1880년의 대지진으로 각각 105M, 104M의 서로 다른 높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수 공사중인 첨탑

 

 

성당을 보호하는 요새의 외벽

 

 

 

 

 

 

 

 

 

아름다운 성당 내부의 모습

 

 

성당 앞 광장

 

 

 

성당 앞, 황금빛 성모상과 화려한 수호성인의 조각상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미사에 참석한 후의 성당 내부

 

 

 

성당 오르간

 

 성당을 나와 곧 발길에 닿는 돌락 시장은 자그레브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노천광장에 매일 열리는 시장은 재래시장 특유의 활기가 넘쳐 흐른다. 이곳에는 아드리아 해의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자란 향긋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이 진열되어 있다. 생선과 고기를 파는 곳은 시장 한편에 있고, 온갖 식료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돌락시장 표시

 

 

돌락시장 옆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당이 있어 비빔밥 한 그릇

 

 

 

돌락시장의 공예품

 

 

 

 

꽃을 파는 가게들

 

 

시장의 할머니

 

 

 

 

 

활기에 가득한 시장

 

 

수산물 시장

 

 

 

 

 

 

돌락시장의 여러 모습

 

 

 

반 옐라치치 동상

 

 

 

반 옐라치치광장에 시장이 선다. 자그레브 주변 각지에서 가져온 식품이나 여러 생활 용품들을 파는 곳이다.

 

 자그레브의 심장 반 옐라치치 광장은 가장 많은 자그레브 시민들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전과를 세운 옐라치치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광장이다. 이 광장부터는 보행자 전용 구역이기 때문에 자동차가 다닐 수 없고, 트램만이 들어올 수 있는데 자그레브에서 가장 복잡하고 번화한 지역으로 만남의 장소이자 자그레브 여행의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이 곳을 중심으로 자그레브의 대부분을 갈 수 있다

 

 일요일 아침에 자그레브 대성당의 미사에 참여하고, 길을 나서 반 옐라치치광장을 지나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자그레브 여행의 묘미는 걷는데 있는 것 같았다. 시가지가 그리 크기 않고 유명한 건축물들이 구시가지에 밀집해 있어 한가로이 걸으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산책하듯 걸으며 때로 푸른색 트램을 타고 자그레브 시민들의 삶의 곳곳을 누비며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Croatian National Theatre in Zagreb)

 

 국립극장의 역사는 1836년에 시작되었으나, 1860년에야 비로소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한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세프 1세의 도움으로 1895년 비엔나의 유명한 건축가인 페르디난드 펠네르와 헤르만 헬메르가 현재 위치에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화사한 노란 빛의 국립극장 건물은 신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어 매우 우아하고 장엄한 외관을 갖추었다. 1967~1968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이곳은 크로아티아의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1995년에는 국립극장 건립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고 지금까지 오페라와 발레가 공연되는 유럽의 이름난 공연장이다. 지금까지 수 많은 음악가들이 이 극장에서 공연했다.

 

 

국립극장 앞 분수대에서 한가로이 앉아 있는 여인

 

 

 

국립극장 앞에 있는 분수대 1905년 IvanMestrovic의 작품 '생명의 근원'

 

 

 

 

 

자그레브 예술 공예 박물관(?)

 

 

 

 

 

 

 

 

미마라 박물관에 있는 소장품들

 

카톨릭 국가라 종교적인 뛰어난 예술품을 자랑한다.

 

 

 

미마라박물관(Mimara Museum)

 

 19877월에 개관한 미마라 박물관은 자그레브의 루세벨토브 광장에 자리한다. 유명한 수집가인 안테 토피치 미마라가 일생 동안 수집한 소장품을 크로아티아 국민을 위해 기증하여 탄생한 박물관이다. 이곳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회화 450, 조각품 250, 비단과 나무, , , 유리 등을 이용해 만든 수공예품 1000점 등 모두 3750점의 전세계의 미술품이 모여 있다. 특히 전시품은 시대별, 국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각 나라의 예술사를 훑어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회화 작품은 고흐, 고갱, 렘브란트, 다빈치 등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스페인의 마르가리타 왕녀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건물들

 

 다시 반 옐라치치 광장으로 돌아와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로 향해 간다. Radiceva Ulica 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카페와 기념품 가게 등을 볼 수 있다.

 

 

 

 

 

거리의 풍경

 

 

성 조지 기마상

 

 

 

 

 

돌의 문

 

 돌의 문은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를 둘러 싼 성문 중 하나이다. 자그레브는 중세시대에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아 보호했고, 4개의 성문이 위치해 있었다. 1266년에 건축한 성문은 몇 번의 화재를 겪었는데, 1731년 자그레브 대화재로 모두 불타버렸고, 1760돌의 문을 재건해 현재 남아있는 성문은 이 곳 하나뿐이다. 다른 성문들과 달리 이 곳만 재건하게 된 이유는 화재로 인해 성문이 모두 불탔지만 무명화가가 그린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의 그림만은 불에 타지 않았고, 이 기적을 그림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이를 기념하여 성문의 아치 아래에 성모마리아를 위한 예배당을 두었고, 그 안에는 불에 타지 않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림이 보존되고 있다. 지금은 순례자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찾는 하나의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많은 시민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소설 속의 비운의 여인 상

 

 돌의 문 입구에는 크로아티아의 16세기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Zlatarovo zlato의 주인공 조각상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돌의 문 옆에 살았다고 하며, 사랑을 거절하여 독살당한  여 주인공 Dora의 상이다.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는 자그레브 시내와는 완전히 독립된 세상인 것 같다. 색 다른 건물과 옛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고, 또 그것을 보존하며 지키고 있다.

 

 

 

아름다운 성마르크성당(St. Mark Church)

 

 

 

 도시의 교구성당으로 성마르크 광장(구 그라데츠 광장)에 위치하며, 1256년에 건설된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문장, 오른쪽은 자그레브의 문장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빨강, 하얀, 파란색 타일로 만든 지붕으로 유명하다. 14세기 후반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고딕 양식으로 변했고 지붕은 3곳으로 구분되었다. 건물 남쪽의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현관은 고딕 양식으로 19세기 말 프라하 출신의 건축가가 지었다. 현관에는 15개의 조각상이 11개의 벽감(조각상을 놓기 위해 만든 곳)에 놓여 있고 맨 꼭대기에는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측면에는 예수의 12제자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들은 예술적 가치가 높아 성당뿐만 아니라 남동유럽에서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겨진다. 외관과는 달리 성당 내부는 단조로우나, 황금색의 천장과 벽면의 프레스코화는 경건함을 더해 준다.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에서 보는 자그레브 시내 전경

 

 

 

성 캐서린 성당과 멀리 보이는 대 성당

 

 

성 마르크 성당 전경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에서 보는 자그레브 시내의 모습

 

 

 예전에는 시내와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를 이어주었던 푸니쿨라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운행을 하고 있다. 숙소가 바로 이 푸니쿨라 정류장 바로 옆이어서 자주 보다가 나중에 한번 타 보았다.

 

 

 

북쪽 마을인 고르니 그라드로에서 운행 중인 옛날 자동차

 

 

 

 

성캐서린성당(St. Catherine's Church)

 

 캐서린 광장에 위치하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양식의 성당이다. 원래는 14세기에 세워진 성 도미니크 성당이었다가, 1620년에 재건축해서 1632년에 완공하여 오늘에 이른다. 성당 정면의 외부는 1880년 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복구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순백색의 외관만큼이나 성당 내부는 밝고 우아하면서 화려하게 아름다운 스투코(Stucco) 장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17세기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성당 뒤편의 전망대에서는 붉은 지붕으로 가득찬 자그레브 시내와 우뚝 솟은 대 성당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보는 대 성당

 

  

 

 

로트르슈차크탑(Lotrscak Tower)

 

 자그레브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탑으로 13세기에 북쪽마을인 고르니 그라드의 남쪽 성문을 방어하던 탑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외형은 사면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로 모양이 다른 돌과 벽돌을 혼합하여 만들었고 성벽의 두께는 1.95m이다. 탑에 있는 종은 매일 저녁 도시로 진입하는 문을 닫기 전에 울렸는데, (Bell)을 도둑맞아서 없어졌기 때문에 라틴어로 도둑의 종이라는 뜻의 '로트르슈차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19세기에 높이 19m4층으로 증축되었고 창문도 덧대었으며 맨 위에 대포를 들여놓아 187711일 시간을 알리는 의미로 정오에 발사하여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 정오에 종 대신 대포를 발사한다. 이러한 대포 발사는 자그레브의 역사적 전통을 알리는 조그만 행사이면서 사람들에게 기준시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높은 전망대에서는 자그레브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로트르슈차크 탑으로 올라가는 푸니툴라. 자그레브 시내 최초의 공공교통기관으로 특이하게 경사로를 따라 움직인다. 1888년에 설치한 것으로 자그레브의 로 타운과 업 타운을 연결한다.

 

자그레브는 작은 도시고 명소는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몰려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일치기로 자그레브를 구경하고 간다. 하지만 자그레브는 큰 도시다. 수많은 건물과 옛날의 성당들, 사람들이 살아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시장과 광장을 여유를 가지고 느껴 보기에는 하루는 짧다. 여유를 가지고 시내를 배화하면서 길가의 카페에 앉아 한가로움을 즐길 수도 있고, 자그레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다. 자동차를 전면 금지하고 트램만 지나가는 광장의 거리를 자유롭게 다녀도 좋고, 길가의 카페에 밤 늦게 앉아 와인이나 맥주로 여행의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은 여행의 한 방법이다.

 

 하여튼 사흘을 머무르고 반 옐라치치 광장을 계속 지나가면서 자그레브를 즐겼으나 자그레브를 얼마나 보았는지가  의문이다. 일년을 거주해도 다 볼 수 없는 것이 도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내일은 부다페스트로 간다.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신이 만든 자연의 경이로움 -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의 모티브가 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자그레브(Zagreb)와 자다르(Zadar)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크로아티아 최초로 194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공원의 크기는 약 3ha이며, 수천 년간 물이 흐르며 쌓인 석회와 백악의 자연 댐이 장관을 이루며 층층 계단을 이루고 있는 청록색의 16개의 호수가 크고 작은 90여 개의 폭포들로 연결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16개의 호수는 12개의 상류부분에 위치한 호수(Gornja jezera)4개의 하류부분에 위치한 호수(Donja jezera)로 나눌 수 있다. 상류부분에 위치한 백운암 계곡의 호수들은 신비로운 색과 울창한 숲의 조화가 신비로운 장관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 곳을 보지 않고 나간다하류부분에 위치한 호수와 계곡들은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두 호수 Proscansko jezeroKozjak이 약 80%의 면적을 차지한다. 이 두 호수는 깊이도 각각 37m47m로 가장 깊은 호수들이다. Kozjak 호수에서는 관광객의 이동을 위해 전기 배가 다니고 있다. 폭포의 경우 높이가 78m로 가장 큰 큰 폭포인 Veliki slap은 하류부분 호수들의 끝 부분에 위치하며, 그 위에는 Plitvica 강물이 흐른다. 상류부분의 대표적인 폭포로는 높이 25mGalovački buk가 있다.

 

 공원의 상징 동물은 갈색 곰으로 국립공원 내에는 갈색 곰을 비롯하여 수많은 곤충과 동물, 희귀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30개의 동굴에는 종유석이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약 400년 전 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다가, 16-17세기에 걸쳐 터키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경 문제로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사람의 접근이 매우 어려워 악마의 정원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중 한 곳으로, 전 세계에서 매년 약 백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영화 아바타의 중심 무대로 알려져 요즈음은 더 많은 관광객이 플리트비체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탐방에는 여러 경로가 있는데 각각의 경로는 소요되는 시간, 걷는 거리, 국립공원 내에서 이용하게 되는 교통수단 등이 다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입구에 표지판으로 각각의 경로에 대한 안내가 되어 있고, 입장표에 작게 국립공원의 전체적인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조금 더 보기 편리한 큰 지도를 팔기도 한다. 짧은 경로는 2-3시간이 걸리고, 긴 경로는 8시간 이상 걸린다. 하지만 경로를 따라가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즐기면 된다.

 

 참고로 나는 하루 종일을 국립공원에서 즐겼다.

 

 

입구를 들어서면 저 멀리 보이는 폭포 - 가장 큰 폭포인 Veliki Slap

 

 

숙소로 정한 곳 -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숙소 안내판

 

 

 

 

 

입구를 들어서면 저 멀리 보이는 폭포 - 가장 큰 폭포인 Veliki Slap

 

 이 폭포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벌써 감탄사가 입에서 뛰어 나온다.

 

 

 

 

 

 

 

 

 

 

 

폭포 주변의 맑은 물에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

 

 

 

 

 

 

 

 

아름다운 폭포를 배경으로 한 컷

 

 

 

 

나무로 만들어 놓은 인도교를 따라 걷는다. 그저 눈에 보이는 풍광을 즐기면 된다.

 

 탐방로는 나무로 만들어진 약 18km 길이의 인도교로, 개울 위를 지나기도 하고 개울이 인도교 위를 지나 흐르기도 하여 매우 상쾌한 산책로를 형성하고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탐방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만족하면 된다. 봄철에는 풍부한 수량의 웅장한 폭포를, 여름철에는 녹음이 우거진 신비로운 호수를 볼 수 있으며, 가을철에는 고요한 분위기와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사시사철 매력 있는 곳이다.

 

 

 

 

 

 

 

곳곳에 자그마한 폭포와 소가 보인다. 물이 너무나 맑다.

 

 

 

맑은 소에 놀고 있는 야생 오리

 

 

 

 

 

 

국립공원 내의 휴게소

 

 이곳에서 사람들은 배를 타고 Kozjak 호수를 건너 간다. 투어로 여행온 사람들은 대개가 여기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서 공원 탐방을 마치고 나간다. 플리트비체를 그래도 조금 보고 가는 가장 간단한 코스이다. 내가 간 날에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 휴게소에서 간단한 음료라도 마시면서 경치를 완상하면 좋으련마는.....  발칸의 여러 나라는 자국 화폐가 아니면 받지 않는 곳이 많다. 달러나 유로를 받지 않고 바꾸어 오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받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자국화폐만 받았다. 한국의 단체 관광객들은 크로아티아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이드가 그런 점은 좀 알려 주어 환전을 해 왔으면 되는 일인데 싶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배를 기다려 타고 호수를 건넌다.

 

 

 

 

 

 

 

Kozjak 호수

 

 호수의 물과 하늘의 빛깔이 거의 비슷했다. 날씨가 좋아서 오염은 전혀 되지 않고 미세 먼지도 없이 티끌 하나없이 푸른 하늘과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빛깔의 호수의 물이 조화를 이루어 빛나고 있다.

 

 배를 내리면 단체 관광객이 대부분이라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려간다. 나는 하루 종일 탐방을 계획하였으므로 인도교를 따라 위로 올라 갔다. 정해진 코스도 없이 그냥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면 된다. 이제부터는 단체관광객은 가지 않는 플리트비체의 상류쪽이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곳곳에 폭포와 소들이 보인다. 물의 색깔이 모두 다르게 보인다.

 

 국립공원 호수의 빛깔은 끊임없이 변한다. 대부분의 경우 호수는 청록색을 띄지만 물에 포함된 광물, 무기물과 유기물의 종류, 심지어는 햇살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자랑한다.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색을 가늠할 수가 없다. 물의 색은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비가 오면 땅의 흙이 일어나 탁한 색을 띠기도 하고, 맑은 날에는 햇살에 의해 반짝거리고 투명한 물빛이 연출되기도 한다.

 

 

 

 

 

 

 

 

 

 물의 색이 또 다르다. 인도교에서 손이라도 담가볼까? 했으나 너무나 맑은 물이라 손을 담그는 것이 물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쉽지만 참았다.

 

 

 

 

햇빛을 받아 다른 색으로 보이는 폭포

 

 

길 표시 이정표 - Galovački buk 폭포

 

 

상류에서 가장 큰 Galovački buk 폭포

 

 

 

 

 계속 길을 따라 걸으며 경치를 즐기는데, 서양인들은 제법 많이 보였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보이고 젊은이들이 여러 명 무리를 지어 걷는 모습도 보였다. 자유롭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우리도 이런 여행을 해야 하는데..... 투어만 여행하면 제대로 보는 것이 없다. 내가 투어여행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유유히 노니는 야생 오리

 

 

 

 

호수의 물 위에 하늘이 담겼다.

 

어느 쪽이 하늘이고, 어느 쪽이 호수인지가 분간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여기까지 한 바퀴를 돌고 나오니 어느 새 오후 4시경이 되었다. 이제 공원을 나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었다. 나온 곳에서 셔틀버스가 입구까지 간다고 하지만 그냥 걸어서 가기로 하고 입구쪽으로 걸어 갔다. 걸으면서 보는 플리트비체는 또 다른 모습이다. 안에서는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았는데, 외부에서 걸으면서 보는 플리트비체는 나무가 아니라 숲이다.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걷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플리트비체 전체 조경도와 안내도

 

 

 

 

 

 

 

 

 

 

 

 

 

멀리서 보는 플리트비체의 계곡

 

 

 

입구 광장

 

 

조감도

 

 하루 종일 플리트비체를 걸으면서 즐겼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다고 한다. 물론 그 아름다운 곳에는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움은 각자의 가치가 있다. 이 플리트비체의 아름다움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이다. 대개의 명승지라 하면 사람들의 손에 더럽혀져 있는 곳이 많은데 플리트비체는 아직 사람의 손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다. 물론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렇게 깨끗한 자연을 하루 종일 즐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시간이 아직 멀어 숙소 주변을 산책하며 돌아보니, 아름다운 자연에 맞추어 마을이 들어서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제법 많이 걸어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자그레브로 가야 한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가니 서양인 젊은 부부가 인사를 한다. 미국인인데 영국에 지금 살면서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남자가 군인인데 공군으로 한국에 근무를 하였다고 해서 내가 그러면 오산에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반가워 한다. 잠시 이야기를 하고 여행 잘 하라고 인사를 하고 짐을 꾸려 자그레브행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간다.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ilt)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황제가 휴양처로 정한 도시 스플리트

 

 메주고리예에서 스플리트로 가기전에 시내를 좀 더 보고 버스 시간에 맞추어 버스를 타고 긴여행을 시작한다. 이쪽 지역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통 수단이 참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플리트까지 약 4시간이 더 걸린다. 우리 같으면 2시간도 안 걸릴 거리인데......

 버스에서 내려 먼저 숙소를 찾아가 짐을 내려 놓고 스플리트 시내로 나간다.

 

 달마티아(Dalmatia)중부에 위치한  스플리트는 아드리아 해와 마주하는 크로아티아 제2의 항구도시로 약 25만 명이 거주하며, 수도  자그레브 다음으로  도시이다. 스플리트는 기원전에 그리스거주지로 건설되었다가, 그 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 305년 이 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어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궁전은 비잔틴, 고딕 양식 등의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스플리트는 중요한 항구도시로 개발되어 근대적인 항만시설이 갖추어졌고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폭격의 피해를 받지 않아 귀중한 유적들이 보존되었다. 스플리트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스플리트 역사 지구 및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이 1979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여행객들로 항상 붐빈다. 기후가 온화하고 디나알프스 산맥과 아드리아 해가 조화를 이룬 경치가 아름다워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스플리트역사 지구 및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왕궁은 3세기~4세기에 건축된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 중세 요새, 로마네스크 교회 등이 잘 혼재되어 있는 역사 도시인데, 특히 스플리트 항을 마주보고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은 로마 후기 건축 양식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비잔틴 및 초기 중세 예술 형식을 갖고 있어 건축사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띤다. 3세기 말 후기 로마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기 위해 황궁을 건립했다. 궁전은 295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305년에 완성되었다. 궁전은 높이 25m의 성벽이 둘러싸고, 16개의 탑이 있으며, 4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궁전은 삼면은 육지와 이어져 있고, 동쪽은 은의 문’, 북쪽은 금의 문’, 서쪽에는 철의 문이 있다. 궁전 안에는 열주광장, 성 돔니우스 대성당, 황제 알현실, 지하궁전 등이 남아 있다. 스필리트의 초기 역사는 그리스 정착민들에 의해 시작되지만, 가장 주된 역사적 발전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여생을 보낼 궁전을 스플리트에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궁전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도시의 심장부 기능을 그대로 하고 있으며, 미로같이 만들어진 좁은 길에는 술집과 상점, 식당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궁전의 여러 모습

 

 

궁전의 모형 설명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

 

 

 

열주광장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안뜰에는 동, 서에 각각 6열, 남쪽에 4열의 열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 광장을 열주광장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밤에 카페가 흥청거리고, 라이브 음악의 공연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 종탑

 

 은퇴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316, 이 궁전 안에 있는 팔각형의 영묘 안에서 영원히 잠든다. 7세기에 황제의 영묘는 성 돔니우스에게 봉헌한 대성당으로 바뀌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초기 기독교 박해로 악명 높은 황제라는 점, 그리고 성 돔니우스가 바로 그 와중에 순교한 성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은 팔각형의 평면 설계로 24개의 로마식 기둥과 아치 등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황후를 새긴 부조 장식과 함께 그대로 원위치에 서 있다. 이후 13세기에 육각형 설교단과 고대 개선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종탑이 추가되었다. 성당과 열주광장 사이에는 1100년에 세워진 높이 60m의 네오 로마네스코 양식의 종탑이 있다. 1908년에 재건하면서 로마네스코 양식의 조각상은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한다. 내부에는 15세기에는 밀라노의 보니노가 제작한 고딕 양식의 돔니우스 제단이 자리하고 있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은 세계 최고(最古)의 가톨릭 대성당이지만, 그 뼈는 로마의 영묘에 묻혀 있다.

 

 

황제의 영묘 입구에 있는 스핑크스-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하궁전 입구

 

1960년에 발견된 황제의 궁전 지하로 열주광장에서 아래쪽으로 연결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나. 거의 형태만 남아 있어 화려한 내부는 볼 수 없다.

 

 

 

 

 

나로드니광장

 

나로드니 '사람'이라는 뜻이다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서쪽문인 '철의 문'과 연결되어 있는 광장으로, 14세기에 궁전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중심지가 된 곳이다. 보행광장으로 스플리트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주요 광장이지만 유럽의 다른 광장에 비해 매우 작은 편이다 바닥은 흰 대리석으로 포장되었으며 지금도 주위에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어 저녁이 되면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15세기에 건축된 3개의 고딕 양식 아치로 장식된 구시청건물이 있는데 이는 지금은 민족박물관으로 사용한다

 

 

 

 

항구의 모습

 

 

 

해변가에 늘어선 호텔들

 

 

항구에 정박 중인 요트

 

 

 

항구의 모습

 

 

 

리바거리

 

 스플리트의 메인 거리로, 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를 접하고 한쪽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접하고 있는 최대 번화가 거리이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고, 야자수가 길의 양쪽으로 늘어 서 있는 거리는 낮에도 번화하지만 밤이 되면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거리로 수 많은 관광객들이 거닐면서 분위기를 즐긴다. 밤에 이 거리를 걸어 보는 것도 여행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를 즐기는 것이 여행이다.

 

 

 

 

리바 거리에서의 저녁 식사

 

 

 

 

 

밤의 리바 거리

 

밤의 리바 거리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 오니 늦은 시간이다. 내일 플리트비체로 이동해야 함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 그치지 않았다. 플리트비체행 버스표를 구입하고 시간이 남아 스플리트의 야채와 생선을 파는 그린 마켓을 구경하러 갔다.

 

 

 

생선시장

 

 스플리트가 바다를 접해 있기에 생선시장은 여러 해산물이 많이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 문어와 새우를 구입하여 숙소로 돌아와 삶아 먹으니 여행 중에 별미였다.

 

 

 

 

 

 

야채 및 꽃 시장

 

사실 스플리트는 플리트비체로 가는 도중에 잠시 머문 곳이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시간 조절을 위해 머물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곳이었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이곳에서 한가롭게 머문다면 상당히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 그저 유적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함을 즐기는 것이라면, 이 스플리트가 가장 적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바이칼의 알혼 섬에서 느낀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 곳이다.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황홀한 성벽의 도시 두브로브니크

 

 메주고리예에서 아침에 두브로브니크로 갔다가 다시 메주고이예로 돌아오는 여정을 택했다.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국경을 넘어 갔다가 오는 여정이 좀 번거롭지만 짐을 가지고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편하기에 일정을 이렇게 짰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보면 참 이상하게 그어져 있다. 크로아티아의 남쪽과 북쪽이 보스니아에 의해 양단되어 있다. 왜 그렇게 국경이 그어졌는지는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다니면 된다.

 아침부터 기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우중충한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하다. 여행중에 비를 만나는 것은 썩 반가은 일은 아니다. 무어라 해도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이 좋다. 하지만 일기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만 있다면...... 국경를 통과한 버스가 두브로브니크에 내려 준다. 여기서 시내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갔다. 관광객의 모두가 가는 곳이기에 길을 찾기는 쉽다.

 

 두브로브니크는 달마티아 남부의 아드리아 해에 면한 역사적인 도시로서, 크로아티아어로 '작은 떡갈나무 숲'이라는 뜻인데, 옛 이름은 라구사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을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 본토는 단절되어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도시로, 예로부터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렸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7세기 라구사(Ragusa)라는 도시를 형성하면서 시작된다. 그 뒤 번창하였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13세기부터 지중해 세계의 중심도시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1979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5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였다가 유고연방이 해체되고, 1991년 크로아티아가 독립국이 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지성인들이 이 곳으로 달려와 인간방패(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의 역할을 해 주지 않았다면 이 곳은 폐허만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훼손되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가 국제사회와 유네스코의 협력으로 구 시가지의 대부분은 복원되었다.

 

 

두브로브니크 해안

 

 

 

 

보키르 요새 전경

 

민세타요새와 함께 아름다운 요새로 알려졌으며, 15세기 피렌체의 Michelozzi에 의해 지어진 요새다.

 

 

버스 정류장의 분수대

 

 

 

 

 

필레 관문

 

 필레 관문은 197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은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로 수세기 동안 도시를 방어하고 '아드리아 해의 진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담당했다. 필레 관문은 1471년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에 의해 건설된 고딕 양식의 석조문이다. 필레 관문은 사실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15세기에 세워진 내부 문과 1537년에 세워진 외부 문으로, 두 개의 문은 1350년에 팠던 수로 위로 놓인 도개교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내부 문에 파인 니치 안에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시우스의 조각상이 있는데, 저명한 종교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으로, 수호성인의 손에는 구시가의 모형이 들려 있다. 필레 관문을 통해 두브로브니크의 도시 성벽에도 접근할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고도시는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대규모의 손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필레 관문은 이 싸움에도 무사히 보존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인 심장부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성 블라시우스에게 탄원하노니, 신께서 그대의 목의 통증과 다른 불행들을 덜어 주시기를. 아멘." 성 블라시우스의 축일인 23일에 내리는 축복. 두브로브니크에서는 2월 3일 축제를 연다.

 

 

 

오노프리오 분수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Great Fountain)는 필레 관문을 들어서면 스트라둔 대로에 가장 먼저 보인다. 1448년에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만들었다. 중앙에 커다란 돔 모양의 석조물이 있고 그 아래는 동물과 사람의 입을 표현한 16면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서 물이 나오도록 설계되었다. 원래는 돔 위에 커다란 쿠폴라와 조각상이 장식되었으나 1667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도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분수의 물은 약 20km 떨어진 리예카 두브로바츠카(Rijeka Dubrovacka)에 있는 우물에서 공급받는데, 둘 사이에 놓인 수로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수로이며 당시로서는 물을 공급받는 시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오노프리오가 설계한 또 다른 작은 분수가 중앙로인 스트라둔(Stradun) 거리가 끝나는 루지 광장에 있는데, 이것은 우아한 돌고래가 뛰노는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먼저 성벽을 올라가기로 하고 표를 구하니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가격에서 약 50%는 오른 것 간다. 얼마되지 않은 시간인데 너무 급격하게 올랐다. 먼저 말하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성벽을 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복잡함이 없어 그 점은 좋았다. 뒤에 많은 한국 사람들을 스트라둔 거리에서 만났는데 모두들 가격이 비싸 성벽 걷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백미인 성벽 걷기를 안하다니????

 

 이제부터 성벽을 일주하면서 보는 풍경들이다.

 

 유럽 각지의 여행자들은 성벽 위 걷기를 위해 성곽마을을 찾는다. 성벽에 오르면 아드리아 해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단순히 성벽 걷기라는 체험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고성들이 대부분 오래된 유적들로 채워진 것과 달리 두브로브니크 성의 구시가는 일상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골목골목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과일 시장이나 주민들의 단골 이발소, 야채시장, 잡화점, 정육점들을 마주치게 된다. 구시가의 성벽 밑에서 꼬마들이 공을 차는 모습도 어느 동네의 풍경이다. 이 맛을 느끼는 것이 성벽 걷기의 참 맛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강력한 요새에 속한다. 10세기에 건설되어 수 세기에 걸쳐 증축하거나 보완하여 현재 성벽 모습의 기초를 이루었다. 19세기에는 성벽을 더욱 견고하고 두껍게 보완하였는데, 도시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성벽의 총길이는 1,949m이며 최고 높이는 6m, 두께는 1.5~3m나 된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중세시대 성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최고의 관광지이며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가장 인기 있는 산책길이다.

 

 성벽에는 두 개의 타워와 요새가 있다. 탑은 민세타(Minceta)탑과 보카르(Bokar)탑이고 성벽의 동남쪽에 위치한 주 출입구는 아주 웅장하며 필레 게이트(Pile Gate) 왼편에 위치한다. 아드리아 해안과 두브로브니크의 구 시가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빨간 지붕의 집들

 

 

 

요새임을 나타내는 대포

 

 

 

건너편 산의 모습

 

 

 

 

 

 

 

성벽을 도는 중간에 있는 넓은 공터

 

 

 

 

오밀 조밀 모여 있는 집들

 

   

 

성벽위에서 보는 항구

 

 

 

갤러리

 

 

성요한 요새(St. John's Fortress)

 

 '뮬로탑'이라고도 불리며 구시가지의 남동쪽에 위치한 요한 요새는 구시가지의 요새 중 가장 처음으로 1346년에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를 차단하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중요한 요새로 16세기에 완공되었다. 14세기에 건설된 탑은 2세기 동안 보강되고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반원형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은 1층은 수족관, 2-3층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박물관은 두브로브니크의 발전된 항해술과 조선기술에 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민세타요새

 

 

 

 

 

 

 

민세타 요새

 

 성벽 북쪽에 위치한 민세타 요새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요새로 유명하다. 요새는 훌륭한 건축가들의 합작품인데, 1319년 니치포르 라니나(Nichifor Ranjina)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뒤에 다른 건축가들이 이곳에 덧붙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요새를 피렌체의 건축가인 미켈로조 미켈로지(Michellozzo Michellozzi)와 조각가 유라이 달마티나체의 손을 거쳐 1464년에야 완공되었다. 요새는 크로아티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요새 내의 탑에서는 아름다운 도시 경관이 내려다 보인다.

 

 

항구의 모습

 

요금이 비싸져서 그런지 성벽을 도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 한가롭게 일주를 했다. 예전에는 주말이면 사람에게 밀려서 갔다고도 하는데 오늘은 참 한가로웠다. 성벽을 돌면서 한국인은 보지 못했고 외국인은 제법 보았는데 내려 와서 거리를 구경하니, 한국인이 왜 그렇게 많은지???

 

 

 

성 사비오르 성당

 

 아쉽게도 성 사비오르 성당은 폐쇄되어 있다. 한 여름에 정해진 때에 성당안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간 때는 봄이었다. 건물의 겉 모양만 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구시가지의 스트라둔 거리의 성 사비오르 성당 옆에 길게 늘어서 있다. 1317년에 세워진 원래의 수도원은 당시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고딕 양식의 남쪽의 커다란 현관위의 피에타 조각상은 이 지역 최고의 페트로비츠 형제가 제작했다. 1667년 대지진으로 많은 조각상이나 부조가 훼손되었는데 이 피에타 조각상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유명한 피에타 상

 

 

 

 

 

 

 

너무 아름다운 수도원 내부

 

 성당과 수도원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예로부터 약 제조로 유명했고 지금은 제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을 본다. 가장 먼저 보는 곳은 1317년에 문을 연 약국이다. 유럽에서 손가락안에 드는 전통있는 약국이다. 박물관에는 중세시대의 약 제조에 관한 역사는 물론 기구나 방법 등에 관한 소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에는 도서관도 있는데, 고대의 원고, 귀중한 단행본, 손으로 일일이 쓴 원고, 보물급 공예품 등 수많은 작가들과 역사가들의 작품 및 방대한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아이 크림이나 입술보호제, 스킨 등의 화장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약국의 내부 회랑

 

 

 

곳곳에 보이는 프레스코

 

 

 

약국의 내부

 

 

 

 

 루자 광장 전경

 

 스트라둔 거리 동쪽 끝에 있는 광장으로 스폰자궁, 성 블라이세 성당, 렉터 궁전, 대성당 등과 이어져 있다. 광장에는 1444년에 세워진 높이 35m의 종탑이 있다. 이 주변에는 길거리에 많은 카페가 있다. 내가 몇 번을 지나가면서 보니 많은 카페에 한국의 단체관광객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모두들 성벽돌기는 투어 경비에 포함되지 않아, 제법 돈이 들어 포기하고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왜 이런 여행을 하는지 참 의문이 들면서 좀은 한심스러웠다.

 

 

 

 

성 블라이세 성당과 롤랑의 기둥

 

 스트라둔(Stradun) 거리 동쪽 루지 광장에 위치하며,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입구 위에 그의 조각상이 서 있다. 1368년에 건립되었으나 1667년 대지진 때 파괴되었다. 지금의 바로크 양식 건물은 1706년에 시작하여 1717년에 완공되었으며, 베네치아의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Marino Gropelli)가 지었다. 도시의 가장 핵심 되는 건물로 도시인들이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면 계단은 도시의 주요한 행사인 새해 전날 행사 또는 여름페스티벌의 오프닝 등이 개최되는 중요 무대이다.

 

 이 성당 앞에는 중세 유럽의 최대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주인공이 서 있다. 롤랑이 들고 있는 칼은 천사가 하사했다는 명검 듀란달이다. 롤랑이 사라센족의 침입에서 이 곳을 지켰다고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이 곳에 롤랑의 기둥이 세워졌다고 한다.

 

 

 

스폰자 궁전

 

구시가지의 스트라둔 거리 끝에 있는 루지 광장에 있는 건축물이다. 1516~1522년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 라구사공화국(Ragusa Republic)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었다. 3층 건물은 당시 두브로브니크에 지배적이었던 후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필레 문을 건설한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치의 또 다른 작품이다.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으며 우아한 아케이드, 기다란 고딕 양식의 창문 등이 특징이다. 특히 1층의 6개의 열주로 돤 지붕이 매우 아름답다. 현관과 건물의 조각장식은 안드리지치(Andrijić) 형제가 담당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1667년의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본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매년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열리며, 전체적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렉터궁전

 

 두브로브니크 행정의 중심 건물로 통치자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된 궁전이다. 원 궁전이 1435년 첫 번째 화약폭발로 파괴되어,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그 뒤 다시 폭발을 겪으면서 초기르네상스양식이 혼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었다. 총격으로 심하게 부서지고 1667년 대지진으로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된 후 17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보수되었다. 궁전 정면에는 기둥이 늘어서 있고 교회의자처럼 장식한 석조벤치가 놓여 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었는데,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 기간에는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현재는 시 박물관으로 사용하는데 라구사공화국(Republic of Ragusa) 시절의 유물들을 전시한다.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대성당

 

 7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처음 세워져 성모승천 대성당으로 불리었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재건축되었는데, 이 때의 성당은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1세가 기부하여 지어졌다 한다. 1667년 대지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자 1672년부터 1713년까지 두 명의 이탈리아 건축가가 로마-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가운데 돔 모양의 지붕이 높이 솟아올라 있어 아름답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St. Blaise)의 유물을 포함한 수많은 보물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금으로 된 작은 보석상자에는 그의 유골과 발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 외부는 고급스러운 회색으로 되어 있고 성인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라파엘로의 '옥좌 위의 마돈나'와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이 있다. 

 

 

 

건물의 이름이 ????

 

 

 

 

 두브로브니크 올드항구는 구시가지에 있는 항구로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과 쿠르즈가 정박한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인 로크룸섬(Lokrum Island)으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다. 옆에는 해양박물관이 있고 이는 성벽의 동쪽과 연결되어 있다.

 

 구시가지는 크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왕복했다.  어느 새 시간이 제법 지나 올드항구에 있는 제법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바깥을 구경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비 내리는 항구를 바로 보며 식사를 하는 것도 흥취가 있다.

 

 

로브리예나츠 요새(Fortress Lovrijenac) 가는 길 표시

 

 로브리예나츠 요새는 구시가지 서쪽의 성벽 밖에 있는 요새로 서쪽에서 침입하는 베네치아로부터 도시를 방어할 목적으로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는 절벽 위에 건설되었다. 101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세기에 완공했으며 높이 36m, 성벽의 두께는 4-12m에 달한다. 요새는 총 3층 구조이며 1층은 도개교를 통해 곧바로 바다와 연결된다. 요새의 내부 장식은 유럽에서 가장 기품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유명한 여름축제 기간 중에 공연과 콘서트가 열리는데 특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새의 맨 꼭대기에 올라 바다와 도시를 조망할 수 있으며 매일 오전10시에서 일몰까지 개방한다.

 

 

 

 

로브니예나체 요새 전경

 

 

 

 

요새에서 보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성벽

 

 

 

 

요새 내부

 

 

 

요새에서 보는 구시가지 성벽

 

 

 

 

요새 주변

 

 

 

 

구 시가지 골목길

 

 

거리에 늘어서 있는 카페

 

 

 

 

 

 

군들리체바 폴랴나 광장에 있는 군들리치 기념비

 

 이반 군둘리치는 17세기 유고슬라비아의 극작가로 두브로브니크 문학의 대표자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향으로 인생 긍정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받침대에 그가 쓴 오스만의 장면이 새겨져 있다.

 

 

어딘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 청사 앞의 마린 드로지치 동상

 

 16세기 크로아티아 최고의 극작가이다. 동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무릎, 발이 반질거린다.

 

 

 

두브로브니크 구 시가지 안내판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참 평화로운 곳이다. 거리를 따라 걸으면 작은 동화 속의 도시를 걷는 기분이 든다. 좁은 골목아다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시대를 뛰어 넘어 살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렇다고 비밀스러운 곳은 아니다.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멋진 풍경에 취하고,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곳의 성벽은 누구든지 한번은 걸어보아야 하는 흥취가 있는 곳이다. 두브로브니크에 처음왔거나 아니거나 스트라둔 거리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짝거리는 대리석에 싫증을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0년 내전으로 인해 구시가지가 훼손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버나드 쇼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한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마음의 풍요와 평화로움을 즐기자.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보스니아 포치텔, 메주고리예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한가하게 여유로운 포치텔 마을

 

 메주고리예에 베이스를 정하고 주변을 돌아 다닐 예정이다. 처음에는 메주고리예에 왔다가 모스타르를 가려고 했는데 메주고리예를 오는 도중에 모스타르를 이미  갔다 왔다. 그러다 보니 하루 일정을 벌은 셈이 되었다. 오랜 기간의 여행이기에 한가로이 여유를 즐길 수도 있지만 하루 종일을 허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주변을 검색해 보니, 우리에게는 생소한 포치텔(Pocitelj)이라는 옛 성의 유적지가 있다고 나온다. 메주고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여기를 다녀오고, 오후에 메주고리를 둘러 보기로 하였다.

 

 포치텔은 모스타르의 남쪽에 인구가 약 4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그러니 버스편도 제대로 있지 않다.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을 묻고 있으니 어느 나라에나 있는 호객꾼이 나타난다. 자기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다. 요금을 흥정하니 적당하여 조금은 허름한 승용차를 타고 갔다.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 약 30분 정도 걸렸다. 도착하여 처음 본 풍경은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곳이었다. 이런 곳이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

 

 오스만 시대의 요새 마을인 포치텔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가장 완전한 건축물의 앙상불을 보여 주는 곳이라 한다. 가파른 바위투성이에 감싸인 이곳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돌지붕 집들이 계단을 따라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1563년에 지은 하지 알라나 모스크는 파괴되었다가 다시 완전히 복원되었으나, 시계탑의 종은 1917년부터 누가 어디로 가져 갔는지도 모르고 탑만 남아 있다.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은 반쯤은 폐허로 남아 있는 요새의 팔각형 가브라 카페탄 타워다. 가장 위쪽 성곽 요새로 올라가서 보는 포치텔의 경치는 우리를 잠시 숨이 막히게 한다. 포치텔에 대한 설명은 밑의 안내판과 설명을 참조하시기를....

 

 

포치텔 요새의 전경

 

 

 

요새로 올라가는 입구

 

 

한적하고 조그만 기념품 가게

 

 

 

요새 안내도와 설명판

 

 

요새를 돌아 볼 수 있게 옛부터 만들어 놓은 돌길

 

 

저 멀리 보이는 가브라 카페탄 타워

 

 

무슬림 지역 학교

 

 

시계탑

 

 

길 안내표

 

 

모스크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많은 집들이 보인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했다. 가끔은 주민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4월이었는데 벌써 등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고, 여러 가지 꽃들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정말 물질의 욕심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삶의 여유를 즐기면서 아름답게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 보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에 새겨진 무늬들

 

 

 

요새의 맨 위

 

이곳에 올라가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요새 맨 위에는 도로가 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뒷편으로는 마을이 제법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자동차도 다니는 길이 펼쳐졌다. 그 마을 주민들이 보여 간단히 인사를 하니 무어라 안내를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떡이고 공감을 표했다.

 

 

 

 

 

요새의 성벽위에서 보는 풍경

 

저 멀리 강이 이 마을을 돌아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저 강을 바라보며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이 요새를 건설한 것이라 생각된다. 요새 위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저 멀이 보이는 가부라 카팬타 타워로 발길을 돌린다.

 

 

 

 

KULINA 설명판

 

요새 벽을 따라 걸어가면 요새의 여러 모슴을 보게 된다. 요새의 구조를 설명한 도판이 벽에 걸려 있다. 아마도 망루같은 곳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아마도 이 주변 국가에는 제법 잘 알려진 곳인지 젊은이들도 많이 보였다. 이 성벽에서 어린 소녀들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려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브라 카페탄 타워로 가면서 보는 풍경

 

 

 

 

 

 

가브라 카페탄 타워의 외부와 내부

 

 

타워에서 보는 강

 

 

 

멀리서 보는 타워의 모습

 

 

 

 

 타워를 내려와서 마을 입구로 가니 요새의 벽이 이어져 있다. 멀리 보이던 강까지 원래는 이어져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중간은 유실되고 도로가 나서 그 흔적만 보여 주고 있다. 정류소쪽으로 가니 카페 겸 식당이 있어 늦었지만 점심을 먹고 여유를 즐겼다.

 

 뜻하지 않았던 하루의 여유로 아름다운 포치텔을 구경하고 메주고리예로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메주고리예를 둘러 보러 나갔다. 

 

 메주고리예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서남부, 치트룩시에 속한 가톨릭교회 소교구의 명칭이자, 교구 내에 속한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메주고리예는 슬라브어로 산과 산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해발 200미터 높이의 산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구 전체 인구가 약 4300명 정도의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19816월 24일 여섯 아이들이 마을 외곽의 크르니카라는 언덕 위에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아이들의 성모 발현 주장을 놓고 다양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부정적이다. 현재까지 교황청은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으며, 신도들의 메주고리예 여행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순례는 금하지만 개인적인 여행은 허락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일반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을 성모발현 성지로 인정하여, 1981년 이후 한해에 약 300만 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메주고리예의 도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순수한 신앙심과 그것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천박한 상술이 뒤섞여 성지라기보다는 세속적인 관광지에 가깝다. 현재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성모가 발현했다는 언덕뿐 아니라, 카톨릭과 연관된 다양한 볼거리들을 볼 수 있다.

 거대한 교회 입구 광장에는 조각가 디노 펠리치(Dino Felici)의 작품인 평화의 성모상이 서 있다. 왼쪽에는 고해성사의 사도’, ‘일치의 사도로 불리는 성인 레오폴도 만딕(St. Leopold Bogdan Mandic)의 상이 위치하고 있다. 성당 오른쪽 광장에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 주위로 기도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고해소에는 여러 나라의 국가가 표시되어 있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진행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있다.

 

 

 

 

메주고리예 성당

 

 

수난의 예수상

 

미사 시간이 바빠 해가 있을 때는 찍지 못하고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둠이 짙게 깔렸다. 그래도 사진을 찍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화의 성모상도 찍었는데 보니 영 아니다. 그래서 뺐다.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산 언덕

 

 

 

 

 

 

메주고리예 성당 주변의 모습

 

 솔직히 말해서 메주고리예는 나에게 어떠한 감동도 주지 않았다. 그저 상업자본에 휘둘린 관광지에 불과했다. 그리스나 터키의 수 많은 성지와 성전을 보았을 때는 비록 문외한이라도 무언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나라의 성당을 관광하고 심지어는 부활절미사에도 참여해 보았다. 다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메주고리예는 그런감동이 없다.

 

 성당을 나와 시내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완전히 관광지다. 성지라고 하기에는 좀은 부끄럽다. 여하간에 나는 이곳에서 몇일을 보내며 여러 곳을 다녀 왔다.

 

 내일부터는 크로아티아를 밑에서부터 위로 쭉 올라갈 예정이다. 먼저 갈곳은 두보로브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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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보스니아 사라예보, 모스타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역사의 현장 사라예보, 모스타르

 

 우지체에서 출발하여 사라예보를 향해 갔다. 솔직히 이번 여행에서 사라예보는 주요 여행지는 아니다. 단지 보스니아의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 편의상 지나가는 곳이다. 하지만 사라예보는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닌 곳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 당한 도시이고 나는 그 역사적 현장을 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모크라 고라에서 출발하여 보스니아 국경을 넘고 중간에 잠시 쉬었다. 택시 기사가 좋은 곳이라며 멈추고 구경을 하라고 했는데 비세그라드라는 조그마한 도시로, 도시 중앙으로 강이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리에게 비세그라드는 헝가리에 있는 도시라고 알지만 같은 이름의 도시가 여기에도 있었다.

 

 비세그라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작은 도시로 인구는 약 30,000명이다. 드리나 강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세르비아와 국경을 접한다.

 

 196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는 1571년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이었던 소콜루 메흐메드 파샤의 명령을 받은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에 의해 건설된 다리이며 1577년에 준공되었다. 200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이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모스타르의 스타리 모스트

 

 

드리나 강 주변 휴게소

 

 

 

 

유유히 흐르는 드리나 강

 

 

드리나 강 건너 편 풍경

 

 

 

 

드리나 강 다리

 

 원래 이름은 이 다리를 건설한 사람의 이름을 딴 메흐메드 파사 소콜로비치 다리이다.  오스만제국 시대의 건축과 공학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강의 왼쪽 언덕에서 오른쪽 모서리로 접근하는 아치 모양의 램프 4개가 있다. 오스만제국의 최고 건축가이자 공학자였던 시난의 대표작으로 특유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1896년 큰 홍수로 난간이 파손되었고, 1차 세계대전 때 아치 3개가 손상되어 1940년에 복구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 다시 아치 5개가 파손되었으며, 1951년에 복구하였다.

 

 

 

비세그라드의 꼬마들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선뜻 사진 촬영에 응해 주었다.

 

 

 

 

조용한 시내의 모습

 

 

이보 안드리치의 동상

 

 

무슨 건물인지 기억이???

 

 

성당 앞 동상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영어로 좀 소개해 놓았으면...

 

 

 

성당 내부의 모습

 

 

비세그라드를 떠나 사라예보로 길을 재촉하여 숙소 근방에 택시 기사가 데려다 준다. 기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요금을 지불하니 그도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사라예보를 구경하러 나간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 인구는 약 오십만 정도이고, 보스나 강의 지류인 밀야츠카 강이 시내를 흐른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문화권이 접하는 곳에 위치하여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의 건물이 뒤섞인 광경을 엿볼 수 있다. 발칸 반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1461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세워진 이래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19146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암살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시내를 흐르는 밀야츠카 강변에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고 시내에는 이슬람풍의 거리와 시장, 다수의 모스크, 성당 등이 있다. 또한 이곳이 한국에 잘 알려진 것은 19734월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처음으로 한국탁구가 세계제패를 이룬 곳이다.

가장 중요한 제 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암살의 현장이 궁금하다. 먼저 사라예보의 올드 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라예보거리 풍경

 

 

GAZI HUSREV - BEG BEZISTAND의 입구

 

베지스탄이란 시장이란 뜻인데, 이 시장은 1555년에 가지 후스레브란 관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통적인 이슬람의 시장으로 여러 가지 상품과 기념품으 판매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와 비슷한 형태지만 규모는 훨씬 작다. 그 대신 아주 정감이 가는 시장이다. 한가하게 이 시장을 거닐며 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올드타운 시장 거리의 풍경

 

 

 

 

Gazi Husrev Bey Mosque

 

이 모스크는 1521년부터 1541년까지 보스니아를 통치한 Gazi Husrev Bey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어진 모스크이다

 

 

 

기도를 하기 전에 경건함을 가지기 위해 손을 씻는다.

 

 

 

 

모스크의 아름다운 입구

 

 

사라예보의 올드타운 타워

 

시계탑으로 정확한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 시계는 1875년 런던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사라예보사건(Assassination of Sarajevo)19146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의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1914628일 일요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부인 조세핀은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 날은 세르비아왕국이 오스만제국에 패한 코소보 전투가 벌어진 치욕의 날이라 세르비아인들의 반감은 더욱 커진 상태로,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들의 비밀결사인 검은 손은 이들에 대한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육군대연습을 참관하고 돌아가던 길에 황태자와 부인은 총을 맞아 즉사하였고 범인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이를 세칭 '사라예보 사건'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백과 사전을 참조하시기를 바란다.

 

 

역사의 현장 라틴 다리

 

 

그 당시의 건물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라틴 다리와 설명판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지나간 시간은 누구도 돠돌릴 수 없다. 다시 그 때의 시간이 되었음을 생각하고 그 때의 장면을 상상하자. 영화나 여러 자료에서 그 장면을 보았는데 젊은 청년들의 애국심에 무어라 말을 할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올드타운 거리

 

 

Gazi Husrev Bey 박물관

 

 

올드타운 안내도 - 아주 상세하다.

 

 

 

 

올드타운 거리의 상점과 풍경

 

 

Sebilj Fountain

1753년에 지어진 이 분수대는 1891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저 멀리 보이는 Gazi Husrev Bey' s Mosque

 

사라예보의 올드타운 거리는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즐거움이 있다. 거리를 천천히 거닐면서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 이 올드타운 거리에는 사라예보에서 보아야 하는 관광지가 대부분이 밀집해 있다. 거리가 소란스럽거나 혼잡하지 않고 가게의 모양도 아주 특이하다. 특히 가게 바깥에 손님들이 앉아서 쉴 수 있게 장치를 해 놓은 것이 아주 특이했다.

 

 

전망대 가는 도중의 묘지

 

 

 

 

 

 

 

 이 곳은 원래 사라예보 올드타운의 방어벽이었다. 지금은 해넘이 때 사라예보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려고 많은 사람들이 해질 무렵 이 요새의 벽에 오른다. 사라예보 시내를 일망무제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저녁 해지는 광경이 아름답다. 다행히도 나는 시간에 맞추어 올라가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다.

이 전망대에서 내려 오니 밤이 되었다. 사라예보의 올드타운의 야경을 보면서 숙소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 모스타르로 향한다.

 

 모스타르(Mostar)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서부, 헤르체고비나 지방에 있는 도시로 인구 약 십만의 조그마한 도시다. 모스타르는 다리의 수호자라는 뜻이다.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네레트바강() 연안에 위치한다. 중세 건축물이 많으며, 로마 시대의 성(), 1556년 건설된 다리, 터키령 시대의 이슬람교 사원 등이 유명하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동안에 다리가 건설되었고 모스타르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다리는 19931191015분 보스니아 전쟁 기간 동안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1995년까지 모스타르의 모든 다리가 파괴되고, 오스만 시대의 모스크도 모두 파고되고 하나만 남아 있었다.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였다.

 그 뒤 대규모의 국제적인 원조로 구 시가지는 대부분 복구되었으나 아직도 많은 곳이 유령의 도시처럼 남아 있다. 아직도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국가의 시스템이 공존하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도시처럼 보인다. 지금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이 1981이 이 모스타르의 학살과 관계있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여러 자료를 찾고 검색한 결과 확실하지는 않으나(내가 보스니아어를 몰라 해석 불가능??) 아마 축구 클럽과 관계되는 것으로 알수 있었다. 아마도 1981년에 창단한 클럽인 듯하다.....

 

 

 

 

 

모스타르 시내의 모습

 

버스를 내려 시내를 계속 걸어가면서 주변의 경치를 보고 즐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차를 타고 목적지에 휙 가서 잠깐 구경하고 또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은 진실한 여행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느껴보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가지고 걷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계속 걸어 도착한 곳이 바로 모스타르의 상징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이것 하나를 보기 위해서 모스타르에 오는 스타리 모스트이다.

 

 모스타르 옛 도시의 다리([Old Bridge Area of the Old City of Mostar)는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모스타르에 있는 다리이다. 보통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로 알려져 있는데, 모스타르라는 도시 이름도 '다리의 수호자, 또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스타리 모스트는 1566년 오스만 투르크 점령 때 폭 5m, 길이 30m, 높이 24m9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한다. 북동쪽과 남서쪽에 탑이 2개 있는 아치형 다리로 돌로 만들어졌다.

 다리 아래로 네레트바 강이 흐르며, 다리를 사이에 두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가 있다. 1993년 인종청소로 잔혹하게 알려진 보스니아 내전으로 다리와 옛 도시의 거의 모두가 파괴되었다가 2004년에 복구되었다. 이 다리가 유명한 이유는 모스타르의 이슬람지구와 기독교지구를 이어주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모스타르 옛 시가지의 다리는 오늘날 국제적인 협력과 다양한 문화적, 민족적, 종교적 공동체의 공존과 화해의 상징이다. 아직도 이 다리의 끝에는 ‘93년을 기억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금 이 다리는 전쟁의 상흔을 치료하고 관광객을 끌어 모우고 있다. 하나의 다리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 모스타르에 모여 든다. 다리 위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젊은이들로 구경꾼을 모으고 있는데, 요즈음은 여기도 상술이 접목되어 구경꾼에게 적당한 돈을 받고 강으로 뛰어 든다.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저 멀리 모스크가 보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네레트바 강의 모습

 

 

단체 광광 온 한국인들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

 

 

 

다리를 건너면 2층에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는 조그마한 박물관이 있다.

 

 

'93년을 기억하라'라는 표지

 

 

 

 

 다리 양 쪽 옆에는 다리를 조망하기 좋은 곳에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아 보이는 곳에 앉아서 맥주와 와인을 곁들인 점심을 먹으면서 다리의 풍경을 즐겼다.

 

 

 

점심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준비하고 있는 중

 

 

 

 

 

 이 스타리 모스트 주변을 돌아 다녀 보면 소소하게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 양쪽에 늘어서 있는 싸구려 기념품 가게와 카페, 식당들도 아름답게 보이고, 길을 돌아 강으로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은 스타리 모스트보다 더 아름답다. 워낙에 스타리 모스트가 유명하다 보니 다른 것은 거의 무시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완상하면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다.

 

 

유네스코 지정판(Crooked Bridge)

 

 

 

 

다른 다리의 모습

 

 

 

 

강가에서 보는 스타리 모스트

 

 

 

스타리 모스트에서 보는 주변

 

 스타리 모스트를 구경하려고 아침부터 사라예보에서 출발하였다. 바로 오는 버스가 없어서 중간 기착지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오너라 시간이 좀 걸렸다. 이제 다시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숙소를 상당히 고민하였다. 여기는 크로아티아와 아주 가까워서 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곳곳을 버스로 이동하여 구경하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메쥬고리로 정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메쥬고리를 향해간다.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세르비아 우지체 3 (모크라 고라)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모크라 고라

 

 아침에 일어나 모크라 고라의 산악열차 개통식에 맞추어 가기 위해 식사를 하고 나서니 정말 택시가 온다. 택시 기사와 숙소 주인이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나에게 말한다. 모크라 고라까지 데려다 주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기다렸다가 사라예보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70유로만 주라고 한다. 너무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꼭 한국에 돌아가면 이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알리고, 우지체도 소개해 주겠다고 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 이제야 소개하게 되어 미안할 뿐이다.

 

 우지체는 내가 앞에서 소개한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휴양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시다. 온천도 있고, 동굴, 하이킹 코스, 산악열차 등등이 있어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곳이다.

 

 모크라 고라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서다. 내가 영화를 아주 좋아해 숱하게 많은 영화를 쟝르를 불문하고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각종 영화제도 시간이 되는데로 영화를 보러 간다. 그 중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이기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화를 본다.

 

 2004년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세르비아의 영화 "The Life is Miracle"이라는 영화가 샹영되었다. 그 뒤에 이 영화의 제목을 '삶은 기적이다'라고 소개되었지만 부산영화제에서는 '인생은 기적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이 영화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다룬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이다.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한 1992년 세르비아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전쟁 양 진영에 속한 두 남녀의 이야기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인터넷 영화소개를 참조하기를....

 

 이 영화의 내용도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였으나 그 배경이 되는 곳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배경이 바로 모크라 고라라는 곳임을 알고 언젠가는 한번 가 보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이 곳에서 꼭 기차를 타고 싶었다.

 

 

모크라 고라역에서 기차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당시 입장권(내 목록을 뒤져 찾았다.)

 

 

당시 영화 포스트

 

 

   

 

 

   

 

 

 

 

 

 

영화의 주요 장면들(다음에서 가져옴)

 

 모크라 고라는 젖은 산이라는 뜻이다. 모크라 고라는 베오그라드와 사라예보를 잇는 협궤 철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국경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비타시 마을에서 모크라 고라 마을까지 이어지는 협궤열차는 과거에는 보스니아까지 국경을 넘어 달리던 발칸 횡단 열차였으나 보스니아 내전 때 파괴돼 중단됐다가 1974년 폐쇄되었다. 이 폐쇄된 철도를 2003년 세르비아 관광청과 철도회사가 이 곳이 고향인 유명한 세르비아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Emir Kusturica)의 지원으로 "샤르간8" 구간으로 재건하였다. 험한 산을 오르는 철로가 하늘에서 보면 숫자 8자와 같다고 해서 이 곳의 기차역명과 결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철도는 또한 에미르 쿠스투리차가 2004년 제작한 영화(Life is Miracle)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현재 일부 구간이 재개통돼 관광열차로 운행되고 있는데, 하루에 4번 관광객들을 위해 모크라 고라역과 샤르간 비타시역을 왕복 운행하며 약 두 시간이 걸린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열차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모크라 고라역에 가기 전에 에미르 쿠스투리차(Emir Kusturica)가 영화를 찍기 위하여 만든 마을로 갔다. Mt. Hill이라는 마을은 무슨 동화의 한 조각, 조각이 모여 있는 것 같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곳이다. 아직도 여기에 에미르 쿠스트리차감독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모든 집이 목조로 만들어졌고 아기자기하다.

 

 

마을 안내판

 

 

 

 

 

 

 

 

영화 세트로 만든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영화의 마을에서 구경을 하고 시간을 맞추어 모크라 고라로 갔다. 우지체의 숙소 주인이 택시 기사에게 미리 모든 것을 지시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구경을 하고 이동을 했다. 정말로 우지체의 숙소 주인이 고마웠다.

 

 

모크라 고라 SARGAN EIGHT 철도 안내판

 

 

모크라 고라에서 가져온 철도 안내도

 

 이 날이 이 철도의 개통일이었다. 그래서 세르비아 정부당국자와 세르비아국영 TV에서 중계를 하고 있었다. 사실은 우지체의 역장이 먼 나라 한국에서 특별히 이 기차를 타러 왔다고 알려 인터뷰를 나의 일행과 하게 예정이 되어 있었다. 열차를 타서 주변을 살펴 보니 서구의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앞에 앉은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였다. 열차가 출발하고 세르비아국영 TV의 간단한 인터뷰가 있고 열차는 계속 철로를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었다.

 

 

 

 

 

 

모크라 고라 역 부근 풍경

 

 

 

 

 

기차가 지나가는 주변경치

 

 이 기차는 협궤로 자그마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차창으로 주변의 경치를 즐기기도 하고, 열차 뒷 부분을 오픈해 놓았으므로 뒤의 바깥에서 지나가는 경치를 보고 즐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열차와 아주 흡사하다.

 

 

중간 기착역 GOLUBICI STATION

 

 

멀리로 아주 깊은 협곡이 보인다.

 

 

SARGAN VITASI STATION

 

 

 

 

운행중인열차

 

 

 

 

저 멀리 마을이 보이고, 지나온 철길이 아래에 보인다.

 

 

 

카페

 

 

 

중간 기착지로 유명한 JATARE STATION

 

 

모크라 고라 열차 기념판

 

 

GOLUBICI STATION

 

 

 

 

 

 

 

영화에 출연한 자동차

 

 영화를 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환상적인 이 자동차를...... 그리고 이 철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을. 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는지 이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도 자동차를 타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역 주변에 있는 운석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BELE VODA SPRING이다.

 

 

 

주변의 풍경

 

기차는 노선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서 다시 모크라 고라역으로 도착한다. 처음 출발 때는 기차를 타기에 바빠 주변을 미처 보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 보았다. 아름다운 마을이다. 언덕위에 보이는 호텔들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미리 이 곳에 이런 숙소가 있는줄을 알았다면 여기서 일박을 하면서 주위의 경치를 즐겼을 것인데.....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영화 한편 보고 거기에 매료되어 무작정 찿아 온 것이니....

 

 

 

 

모크라 고라 역 언덕위의 동화 속의 성과 같은 호텔

 

 

 

 

 

 

모크라 고라 역 주변

 

 SARGAN EIGHT 열차는 순환형이라 약 두시간 정도를 운행하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 온다. 중간중간의 역에 잠시 내려서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가벼운 마음을 돌아와 우지체 역장을 찾아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에 이제 사라예보를 향하여 길을 재촉하기로 한다. 여기서 사라예보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저 우리가 대절한 택시 기사에게 맡기기로 한다. 기사가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을 태워도 괜찮은지를 물어 그렇게 하라고 하니 한 사람을 태운다. 아마 이렇게 합승을 통해 요금을 보충하는 것이리라,

 

여하튼 나는 편안하게 사라예보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