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황홀한 성벽의 도시 두브로브니크
메주고리예에서 아침에 두브로브니크로 갔다가 다시 메주고이예로 돌아오는 여정을 택했다.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국경을 넘어 갔다가 오는 여정이 좀 번거롭지만 짐을 가지고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편하기에 일정을 이렇게 짰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보면 참 이상하게 그어져 있다. 크로아티아의 남쪽과 북쪽이 보스니아에 의해 양단되어 있다. 왜 그렇게 국경이 그어졌는지는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다니면 된다.
아침부터 기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우중충한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하다. 여행중에 비를 만나는 것은 썩 반가은 일은 아니다. 무어라 해도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이 좋다. 하지만 일기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만 있다면...... 국경를 통과한 버스가 두브로브니크에 내려 준다. 여기서 시내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갔다. 관광객의 모두가 가는 곳이기에 길을 찾기는 쉽다.
두브로브니크는 달마티아 남부의 아드리아 해에 면한 역사적인 도시로서, 크로아티아어로 '작은 떡갈나무 숲'이라는 뜻인데, 옛 이름은 라구사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을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 본토는 단절되어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도시로, 예로부터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렸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7세기 라구사(Ragusa)라는 도시를 형성하면서 시작된다. 그 뒤 번창하였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13세기부터 지중해 세계의 중심도시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5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였다가 유고연방이 해체되고, 1991년 크로아티아가 독립국이 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지성인들이 이 곳으로 달려와 인간방패(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의 역할을 해 주지 않았다면 이 곳은 폐허만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훼손되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가 국제사회와 유네스코의 협력으로 구 시가지의 대부분은 복원되었다.
두브로브니크 해안
보키르 요새 전경
민세타요새와 함께 아름다운 요새로 알려졌으며, 15세기 피렌체의 Michelozzi에 의해 지어진 요새다.
버스 정류장의 분수대
필레 관문
필레 관문은 197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은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로 수세기 동안 도시를 방어하고 '아드리아 해의 진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담당했다. 필레 관문은 1471년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에 의해 건설된 고딕 양식의 석조문이다. 필레 관문은 사실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15세기에 세워진 내부 문과 1537년에 세워진 외부 문으로, 두 개의 문은 1350년에 팠던 수로 위로 놓인 도개교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내부 문에 파인 니치 안에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시우스의 조각상이 있는데, 저명한 종교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으로, 수호성인의 손에는 구시가의 모형이 들려 있다. 필레 관문을 통해 두브로브니크의 도시 성벽에도 접근할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고도시는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대규모의 손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필레 관문은 이 싸움에도 무사히 보존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인 심장부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성 블라시우스에게 탄원하노니, 신께서 그대의 목의 통증과 다른 불행들을 덜어 주시기를. 아멘." 성 블라시우스의 축일인 2월 3일에 내리는 축복. 두브로브니크에서는 2월 3일 축제를 연다.
오노프리오 분수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Great Fountain)는 필레 관문을 들어서면 스트라둔 대로에 가장 먼저 보인다. 1448년에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만들었다. 중앙에 커다란 돔 모양의 석조물이 있고 그 아래는 동물과 사람의 입을 표현한 16면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서 물이 나오도록 설계되었다. 원래는 돔 위에 커다란 쿠폴라와 조각상이 장식되었으나 1667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도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분수의 물은 약 20km 떨어진 리예카 두브로바츠카(Rijeka Dubrovacka)에 있는 우물에서 공급받는데, 둘 사이에 놓인 수로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수로이며 당시로서는 물을 공급받는 시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오노프리오가 설계한 또 다른 작은 분수가 중앙로인 스트라둔(Stradun) 거리가 끝나는 루지 광장에 있는데, 이것은 우아한 돌고래가 뛰노는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먼저 성벽을 올라가기로 하고 표를 구하니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가격에서 약 50%는 오른 것 간다. 얼마되지 않은 시간인데 너무 급격하게 올랐다. 먼저 말하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성벽을 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복잡함이 없어 그 점은 좋았다. 뒤에 많은 한국 사람들을 스트라둔 거리에서 만났는데 모두들 가격이 비싸 성벽 걷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백미인 성벽 걷기를 안하다니????
이제부터 성벽을 일주하면서 보는 풍경들이다.
유럽 각지의 여행자들은 ‘성벽 위 걷기’를 위해 성곽마을을 찾는다. 성벽에 오르면 아드리아 해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단순히 성벽 걷기라는 체험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고성들이 대부분 오래된 유적들로 채워진 것과 달리 두브로브니크 성의 구시가는 일상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골목골목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과일 시장이나 주민들의 단골 이발소, 야채시장, 잡화점, 정육점들을 마주치게 된다. 구시가의 성벽 밑에서 꼬마들이 공을 차는 모습도 어느 동네의 풍경이다. 이 맛을 느끼는 것이 성벽 걷기의 참 맛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강력한 요새에 속한다. 10세기에 건설되어 수 세기에 걸쳐 증축하거나 보완하여 현재 성벽 모습의 기초를 이루었다. 19세기에는 성벽을 더욱 견고하고 두껍게 보완하였는데, 도시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성벽의 총길이는 1,949m이며 최고 높이는 6m, 두께는 1.5~3m나 된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중세시대 성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최고의 관광지이며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가장 인기 있는 산책길이다.
성벽에는 두 개의 타워와 요새가 있다. 탑은 민세타(Minceta)탑과 보카르(Bokar)탑이고 성벽의 동남쪽에 위치한 주 출입구는 아주 웅장하며 필레 게이트(Pile Gate) 왼편에 위치한다. 아드리아 해안과 두브로브니크의 구 시가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빨간 지붕의 집들
요새임을 나타내는 대포
건너편 산의 모습
성벽을 도는 중간에 있는 넓은 공터
오밀 조밀 모여 있는 집들
성벽위에서 보는 항구
갤러리
성요한 요새(St. John's Fortress)
'뮬로탑'이라고도 불리며 구시가지의 남동쪽에 위치한 요한 요새는 구시가지의 요새 중 가장 처음으로 1346년에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를 차단하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중요한 요새로 16세기에 완공되었다. 14세기에 건설된 탑은 2세기 동안 보강되고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반원형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은 1층은 수족관, 2-3층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박물관은 두브로브니크의 발전된 항해술과 조선기술에 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민세타요새
민세타 요새
성벽 북쪽에 위치한 민세타 요새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요새로 유명하다. 요새는 훌륭한 건축가들의 합작품인데, 1319년 니치포르 라니나(Nichifor Ranjina)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뒤에 다른 건축가들이 이곳에 덧붙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요새를 피렌체의 건축가인 미켈로조 미켈로지(Michellozzo Michellozzi)와 조각가 유라이 달마티나체의 손을 거쳐 1464년에야 완공되었다. 요새는 크로아티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요새 내의 탑에서는 아름다운 도시 경관이 내려다 보인다.
항구의 모습
요금이 비싸져서 그런지 성벽을 도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 한가롭게 일주를 했다. 예전에는 주말이면 사람에게 밀려서 갔다고도 하는데 오늘은 참 한가로웠다. 성벽을 돌면서 한국인은 보지 못했고 외국인은 제법 보았는데 내려 와서 거리를 구경하니, 한국인이 왜 그렇게 많은지???
성 사비오르 성당
아쉽게도 성 사비오르 성당은 폐쇄되어 있다. 한 여름에 정해진 때에 성당안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간 때는 봄이었다. 건물의 겉 모양만 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구시가지의 스트라둔 거리의 성 사비오르 성당 옆에 길게 늘어서 있다. 1317년에 세워진 원래의 수도원은 당시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고딕 양식의 남쪽의 커다란 현관위의 피에타 조각상은 이 지역 최고의 페트로비츠 형제가 제작했다. 1667년 대지진으로 많은 조각상이나 부조가 훼손되었는데 이 피에타 조각상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유명한 피에타 상
너무 아름다운 수도원 내부
성당과 수도원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예로부터 약 제조로 유명했고 지금은 제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을 본다. 가장 먼저 보는 곳은 1317년에 문을 연 약국이다. 유럽에서 손가락안에 드는 전통있는 약국이다. 박물관에는 중세시대의 약 제조에 관한 역사는 물론 기구나 방법 등에 관한 소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에는 도서관도 있는데, 고대의 원고, 귀중한 단행본, 손으로 일일이 쓴 원고, 보물급 공예품 등 수많은 작가들과 역사가들의 작품 및 방대한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아이 크림이나 입술보호제, 스킨 등의 화장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약국의 내부 회랑
곳곳에 보이는 프레스코
약국의 내부
루자 광장 전경
스트라둔 거리 동쪽 끝에 있는 광장으로 스폰자궁, 성 블라이세 성당, 렉터 궁전, 대성당 등과 이어져 있다. 광장에는 1444년에 세워진 높이 35m의 종탑이 있다. 이 주변에는 길거리에 많은 카페가 있다. 내가 몇 번을 지나가면서 보니 많은 카페에 한국의 단체관광객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모두들 성벽돌기는 투어 경비에 포함되지 않아, 제법 돈이 들어 포기하고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왜 이런 여행을 하는지 참 의문이 들면서 좀은 한심스러웠다.
성 블라이세 성당과 롤랑의 기둥
스트라둔(Stradun) 거리 동쪽 루지 광장에 위치하며,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입구 위에 그의 조각상이 서 있다. 1368년에 건립되었으나 1667년 대지진 때 파괴되었다. 지금의 바로크 양식 건물은 1706년에 시작하여 1717년에 완공되었으며, 베네치아의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Marino Gropelli)가 지었다. 도시의 가장 핵심 되는 건물로 도시인들이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면 계단은 도시의 주요한 행사인 새해 전날 행사 또는 여름페스티벌의 오프닝 등이 개최되는 중요 무대이다.
이 성당 앞에는 중세 유럽의 최대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 주인공이 서 있다. 롤랑이 들고 있는 칼은 천사가 하사했다는 명검 ’듀란달‘이다. 롤랑이 사라센족의 침입에서 이 곳을 지켰다고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이 곳에 롤랑의 기둥이 세워졌다고 한다.
스폰자 궁전
구시가지의 스트라둔 거리 끝에 있는 루지 광장에 있는 건축물이다. 1516~1522년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 라구사공화국(Ragusa Republic)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었다. 3층 건물은 당시 두브로브니크에 지배적이었던 후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필레 문을 건설한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치의 또 다른 작품이다.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으며 우아한 아케이드, 기다란 고딕 양식의 창문 등이 특징이다. 특히 1층의 6개의 열주로 돤 지붕이 매우 아름답다. 현관과 건물의 조각장식은 안드리지치(Andrijić) 형제가 담당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1667년의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본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매년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열리며, 전체적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렉터궁전
두브로브니크 행정의 중심 건물로 통치자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된 궁전이다. 원 궁전이 1435년 첫 번째 화약폭발로 파괴되어,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그 뒤 다시 폭발을 겪으면서 초기르네상스양식이 혼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었다. 총격으로 심하게 부서지고 1667년 대지진으로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된 후 17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보수되었다. 궁전 정면에는 기둥이 늘어서 있고 교회의자처럼 장식한 석조벤치가 놓여 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었는데,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 기간에는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현재는 시 박물관으로 사용하는데 라구사공화국(Republic of Ragusa) 시절의 유물들을 전시한다.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대성당
7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처음 세워져 성모승천 대성당으로 불리었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재건축되었는데, 이 때의 성당은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1세가 기부하여 지어졌다 한다. 1667년 대지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자 1672년부터 1713년까지 두 명의 이탈리아 건축가가 로마-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가운데 돔 모양의 지붕이 높이 솟아올라 있어 아름답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St. Blaise)의 유물을 포함한 수많은 보물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금으로 된 작은 보석상자에는 그의 유골과 발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 외부는 고급스러운 회색으로 되어 있고 성인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라파엘로의 '옥좌 위의 마돈나'와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이 있다.
건물의 이름이 ????
두브로브니크 올드항구는 구시가지에 있는 항구로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과 쿠르즈가 정박한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인 로크룸섬(Lokrum Island)으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다. 옆에는 해양박물관이 있고 이는 성벽의 동쪽과 연결되어 있다.
구시가지는 크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왕복했다. 어느 새 시간이 제법 지나 올드항구에 있는 제법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바깥을 구경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비 내리는 항구를 바로 보며 식사를 하는 것도 흥취가 있다.
로브리예나츠 요새(Fortress Lovrijenac) 가는 길 표시
로브리예나츠 요새는 구시가지 서쪽의 성벽 밖에 있는 요새로 서쪽에서 침입하는 베네치아로부터 도시를 방어할 목적으로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는 절벽 위에 건설되었다. 101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세기에 완공했으며 높이 36m, 성벽의 두께는 4-12m에 달한다. 요새는 총 3층 구조이며 1층은 도개교를 통해 곧바로 바다와 연결된다. 요새의 내부 장식은 유럽에서 가장 기품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유명한 여름축제 기간 중에 공연과 콘서트가 열리는데 특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새의 맨 꼭대기에 올라 바다와 도시를 조망할 수 있으며 매일 오전10시에서 일몰까지 개방한다.
로브니예나체 요새 전경
요새에서 보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성벽
요새 내부
요새에서 보는 구시가지 성벽
요새 주변
구 시가지 골목길
거리에 늘어서 있는 카페
군들리체바 폴랴나 광장에 있는 군들리치 기념비
이반 군둘리치는 17세기 유고슬라비아의 극작가로 두브로브니크 문학의 대표자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향으로 인생 긍정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받침대에 그가 쓴 ‘오스만’의 장면이 새겨져 있다.
어딘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 청사 앞의 마린 드로지치 동상
16세기 크로아티아 최고의 극작가이다. 동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무릎, 발이 반질거린다.
두브로브니크 구 시가지 안내판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참 평화로운 곳이다. 거리를 따라 걸으면 작은 동화 속의 도시를 걷는 기분이 든다. 좁은 골목아다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시대를 뛰어 넘어 살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렇다고 비밀스러운 곳은 아니다.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멋진 풍경에 취하고,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곳의 성벽은 누구든지 한번은 걸어보아야 하는 흥취가 있는 곳이다. 두브로브니크에 처음왔거나 아니거나 스트라둔 거리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짝거리는 대리석에 싫증을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0년 내전으로 인해 구시가지가 훼손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버나드 쇼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한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마음의 풍요와 평화로움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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