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대마도 - 이즈하라 일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우리나라에 더 가까운 대마도

 

 쓰시마(Tsushima Island)는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에 딸린 섬으로 면적은 약700이고 인구는 약 4만 정도가 된다.

 

 쓰시마는 일본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섬 전체가 쓰시마시()에 속한다. 시는 6개의 읍이 있고, 이즈하라에 쓰시마시청이 있다. 중앙부의 아소만(淺茅灣)과 인공적으로 굴착된 만제키세토(萬關瀨戶:수로)에 의해 상도(上島), 하도(下島)의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산에서 쓰시마를 볼 때 두 마리의 말이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지명이 대마(對馬)라고 불리어졌다고 한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창조 신들이 쓰시마를 일본 최초의 섬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섬 전체가 산지이고,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다. 아소만에서는 진주조개 양식이 번성하고 있다. 매년 8월에는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한 아리랑 축제가 열린다. 부산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쓰시마는 부산에서 약 50km의 거리에 있고 일본 규슈(九州) 본토와는 132km 떨어져 있어 한국과 관계가 깊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콩 등의 곡식을 답례로 받는 관계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마도를 근거지로 출몰하는 왜구의 폐해가 막심하여, 조선에서는 이들을 퇴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하자 세종 때에는 이종무(李從茂)가 대마도 원정(遠征)에 나선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에게 대마도의 반환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연말에 잠시 짬을 내어 대마도로 향했다. 부산에서 아침에 배를 타고 이즈하라항에 도착하니 아직 점심 때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가까운 곳이다.

 

이즈하라는 7세기부터 쓰시마국의 관청이 설치되어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해 옸다. 후추라고도 불렸으며 메이지유신이후로 이즈하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에도시대 쓰시마번주 소가문은 막부로부터 10만석의 재력을 가진 번으로 인정받았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지위였다. 외교 문화사절단 "조선통신사"는 쓰시마번의 안내와 호위를 받으며 후추를 거쳐 에도로 향했다. 쓰시마는 조선의 문화, 무역 창구로 번영했고, 부산에는 쓰시마번주민 600여명이 체류하는 왜관이 설치되는 등, 독자적인 외교 무역 기능을 발휘하였다.

 

1945년 광복이후에는 일본의 밀수 기지로도 악명을 높였다.

 

 

야구라문 : 가네이시성 정원 입구의 문

 

 

 

 

 

이즈하라항구의 모습 - 아주 조그마한 항구다.

 

 

부산에서 이즈하라를 운행하는 오션플라워호

 

 

 

항구 바깥의 일반인집

 

 

항구 맞은 편에 보이는 풍경

 

 

 

 

 

 

항구 주변의 풍경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

 

 

아주 오래된 식품회사

 

 

길가에 있는 조그마한 기도처

 

 

 

 

방화벽

 

 일본은 목조저택이고 다다미이기에 불에 취약하다. 그래서 돌담을 쌓아서 방화벽을 만들었다. 저택의 돌담과는 다르게 불에 거을린 흔적이 남아 있는 방화벽으로 쓰인 돌담은 높이가 약 3m, 폭이 약 1.5m 정도이며 현재 남아 있는 수는 몇 안된다고 한다. 방하벽에는 만들어진 날짜 등을 새겨서 기념물로 보존하며, 허물지 않고 담벽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길가의 오래 된 나무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막부에서 파견된 사자가 머물렀다는 기념비다. 흔히들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잘못 안 것이다. 이즈하라에 이 비석이 12개가 있다고 한다. 

 

 

곳곳에 보이는 신사 입구

 

 

일본식 돈까스 정식

 

 

 

 

무가저택돌담

 

이즈하라에는 쓰시마번 조카마치 당시의 저택 돌담이 남아 있다. 이 돌담은 에도시대 초기부터 만들어졌고, 1911년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에 맞추어 더욱 아름답게 정비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야구라문 : 가네이시성 정원 입구의 문

 

 

가네이시성 유적 설명판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 이정표

 

 

 

새로 짓고 있는 박물관

 

 

 

 

멀리 산위에 보이는 시미즈야마성터

 

 이 성은 임진왜란을 즈음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1591년에 세웠다고 알려진 산성이다. 이치노마루에서 산노마루까지 약 500m에 이르는 유적이 남아 있다 한다. 조카마치 이즈하라마을의 전경과 규슈쪽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올라가지 못했다.

 

 

이정표

 

 

 

 

가네이시성 정원

 

 소가의 거처지였던 가네이시성의 정원으로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발굴조사 결과 근세 정원으러서는 드문 디자인과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네이시성터에는 이 정원 외에도 성벽, 성문의 흔적 등이 있다.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

 

 조선 26대 국왕 고종의 딸(덕혜옹주)과 쓰시마번주 소 다케유키의 결혼을 기념하여 1931년 쓰시마에 거주했던 조선인들이 세운 기념비다. 전쟁후, 덕혜옹주가 정신분열증세로 이혼하였고, 가념비는 철거되었다가 2001년에 복원하였다.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졌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약간의 허구가 더해진 것이다. 사실과는 좀 다르다. 한말 비운의 희생양인 덕혜옹주는 결혼봉축기념비란 이름하에 한국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 비

 

이 비석은 1990년에 건립되었다. 1689년 쓰시마번에서 조선외교를 담당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 - 1755)가 만년에 조선교역에 있어서 대마도주가 취할 자세를 54개 항목으로 나누어 만든 지침서에 있는 구절이다.

 

 

 

성신지교린 비에서 바라보는 가네이시겅의 야구라문. 치미는 잉어이다.

 

 

이 조그마한 섬에 많이 눈에 듸는 것이 치괴이다.

 

 

 

 

 

 

 

 

 

 

 

하치만구신사

 

이 신사는 이즈하라 중심부에 위치하며 옛부터 쓰시마번주를 비롯한 주민들의 숭배를 받아온 오래된 신사이다. 진구황후가 시미즈야마에서 제사를 지내고 타국의 침입으로부터 땅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 전한다. 쓰시마 초재번주의 아내인 마리아(고니시 유키나가의 딸)는 카톨릭신자였으나 하치만구 신사안에 있는 이마미야 와카미야 신사에 모셔져 있다.

 

 

쓰시마 초대번주 宗義智상

 

 

 

 

관광안내도

 

 

 

 

 

 

 

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

 

일본 5천엔권 지폐의 주인공인 소설가 히구치 이요이의 스승이자 연모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는 나카라이 토스이는 메이지시대의 신문기자이자 소설가이다. 1860년에 출생하여 1926년에 사망한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초량 왜관에서 살았다. 그래서 한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신문에 연재하였다. 그가 태어난 이즈하라마치 나카무라지구는 지금도 조카마치의 정취가 남아 있으며, 생가가 있던 자리에 기념괸으로 정비되어 있다.

 

 

 

저녁을 먹은 대마도 멧돼지 고기집 - 고기 맛이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대마도는 우리나라에 가까이 있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볼 것이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다. 특히 부산에서는 당일로 갔다 올 수도 있어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곳이다. 하지만 대마도도 자세히 보면 상당히 볼 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옛날부터 교역이 활발하였고, 근세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 보존되어 있기도 한 곳이다. 그리고 일본말보다 한국말이 더 친근하게 들리는곳이 대마도이니 언어의 장벽이 조금도 없어 편한다.

 

 한가지 단점으로는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좀 불편하다. 대마도의 인구가 많지 않아 그러니 어쩔수 없다. 이즈하라에서 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니면 편할 것이다. 이즈하라 일대는 가볍게 걸어다녀도 하루면 대부분의 관광을 할 수 있으니 차분하고 한가롭게 거닐어 보는 것도 재미일 것이다.

 

 그래도 외국이라고 밤에는 선술집에라도 둘러 한잔의 술로 낭만을 즐겨도 된다.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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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 동물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종합테마파크 서울대공원

 

  1984년 개장한 서울대공원은 서울 창경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창경궁의 동물원과 놀이시설을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하면서 개원하였다. 현재 공원의 총 부지면적은 약 913, 근린공원 면적이 약 667이고 기타 면적이 청계산 내 임야지역으로 약 246에 달한다. 근린공원 가운데 동·식물원의 면적은 약 242입니다.

서울대공원은 세계 각국의 야생동물들이 살아 숨 쉬는 서울동물원과 다양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서울랜드, 자연과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테마가든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서울대공원 캠핑장, 신나는 어린이 체험놀이터 기린나라, ·현대 미술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추억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종합 테마파크이다.(홈페이지에서)

 

 서울동물원

 

 서울동물원은 동물과 자연보전의 의미, 동물에게 더 생태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동물들이 행복하고 행복한 동물을 보면서 관람객이 행복해지는 동물원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29개 동물사 2983,041수를 통하여 동물원의 기능인 전시, 보전, 교육, 연구에 힘쓰고 있다. 또한, 귀중한 동물자원을 다음 세대에 건강하게 넘겨주어야 할 중요한 보존 및 연구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국제적 희귀종뿐만 아니라 국내 멸종위기 동물의 보존과 번식을 위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와 발맞추어 다양한 내용의 동물 보전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야생동물보호를 위한 기능과 업적을 높이 평가 받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ISIS(국제종보전시스템) IUDZG-WZO(세계동물원기구)에 정회원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고 있다.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서)

 

 오랜만에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동물원을 구경하고 싶어 서울대공원을 찾아갔다. 나이가 들면서 이와 같은 테마파크를 찾아본 지가 언제인지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 것도 이제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FLAMINGO

 

 

지하철 서울대공원역

 

 

 

 

 

 

 

 

 

 

 

지하철역에서 대공원으로 가는 길도 아름답게 보인다.

 

 

서울대공원 종합안내도

 

 

 

대공원 입구

 

 

동물원을 다니는 코끼리열차 승차장

 

 

 

코끼리열차의 모습

 

 

 

 

 

 

FLAMINGO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FLAMINGO

 

 

 

가을이 물든 대공원의 길

 

 

 

 

 

목이 긴 기린

 

 

 

멀리 보이는 얼룩말

 

 

 

 

서울동물원 개원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사막여우

 

 

 

로랜드 고릴라

 

 

 

 

 

옥상녹화 조성건물의 옥상

 

 

 

 

 

 

 

 

 

동물원 길에 단풍이 아름답게 들었다.

 

 

 

 

재규어

 

 

 

아시아 동물관

 

 

 

 

 

 

 

 

 

 

 

 

한가로이 누워 있는 호랑이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

 

 

 

 

 

 

랫서 팬더 - 곰이 아닌 너구리

 

 

 

 

 

 

 

 

 

 

사람이 다가가도 그냥 지내는 공작들

 

 

 

 

내가 간 때가 10월이라 단풍이 곱게 들었다.

 

 

목장승들

 

 

 

 

 

황새들

 

 

 

 

부리가 긴 홍따오기

 

 

 

 

 

 

 

 

큰 몸을 자랑하는 코끼리들

 

 정말 오랜만에 동물원에 가서 한가로이 거닐며 구경을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동물원을 가본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을이 짙게 물든 대공원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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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365 시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영주의 재래시장 - 365시장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또 자신이 생산한 여러 물품을 팔기 위해서 시장을 만들어 왔다. 오늘날에는 대형화된 백화점이나 마트 등이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의 온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재래시장이 많이 있다. 오일마다 열리는 5일장도 있지만 상설재래시장도 많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 주는 곳이 많다. 재래시장에 가면 왁작지껄하게 떠드는 상인들의 소리와 물건을 흥정하는 고객들의 소리가 우리 귀에 시끄럽게 들리지만 그 소리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영주365시장은 영주 선비골전통시장과 골목시장, 문화의거리 상인회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브랜드다. 2016년 10월 4일에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시장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영주시가 통합브랜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365란 숫자의 의미는 북위36.5˚에 위치한 영주시의 위치. 사람이 가장 건강할 때의 체온 36.5, 1365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영주365시장은 1년 내내 고객과 함께하는 건강한 시장이라는 이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영주를 여행하면서 재래시장이 보고 싶어서 365시장으로 발을 돌렸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65시장 입구

 

 

 

365시장 전경

 

 

365시장 방송국

 

 

 

 

장사를 준비중인 시장 풍경

 

* 배추전

 

 배추에 밀가루 반죽(밀가루, 소금, )을 식용유를 두른 팬에 지진 것을 말하며 초간장을 곁들인다. 배춧잎을 칼등으로 두드려 소금 간을 하여 만들며,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에서는 배추로 구운 전을 일상 음식은 물론 의례음식에도 빠뜨리지 않고 사용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배추로 전을 붙일 경우 물이 생기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으나 안동 지역에서는 배추의 고유한 단맛과 시원한 느낌을 좋아하여 배추전을 선호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배추전을 해 먹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강원도 산간 주민들의 가난한 삶에서 비롯한 음식일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배추전을 처음 접한 곳은 영월 동부시장에서다. 영월의 시장에서 먹거리를 찾아 다니다 눈에 띄이었다. 그 때만 해도 배추로 전을 부친다는 것을 상상해 보지 않아 사서 먹어 보았는데 나름대로 맛이 좋았다. 그래서 경북 북부나 강원도 등을 여행할 때는 사먹곤 하였다.

 

 

 

배추전을 부치고 있는 가게

 

 

배추전과 각종 전을 파는 가게

 

 

 

부추전

 

 

 

 

시장에서 뺄 수 없는 닭강정

 

 

각종 반찬을 판매하는 가게. 택배로 전국 어디든지 보내준다.

 

 

 

민속강정가게

 

 

 

반찬가게

 

 

 

 

각 시장의 골목이 겹쳐지는 광장

 

 

 

 

화장품, 구두, 의류점 골목 -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다른쪽 입구의 멋들어진 소나무

 

 

영주 365시장 설명판

 

 

 

어느 시장에서나 보는 폐점정리가게와 핸드폰 선전

 

 

 

 

시장골목 풍경

 

 

시장 입구 조형물

 

 시장은 흥청거려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고 활기찬 도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장은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에 잠식당하여 제대로 살아남아 있기가 힘들다. 영주의 365시장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여러 시장이 모여서 공동브랜드를 만들고 활기찬 시장을 만들려는 노력의 소산물이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옛 유적지나 아름다운 자연의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함께 호흡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공간을 엿볼 수 있는 곳을 보는 기회를 가지기를 빈다.

 

 아쉽게도 내가 이 시장을 간 시간이 아침 이른 시간이라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시장의 한 편린만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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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 최초의 서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 소수서원(紹修書院)

 

 서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그런데 역사나 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 빼고는 서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거나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서원을 지나간 시대의 유산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든지 교육적으로활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산이다

 소백산 비로봉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맑은 죽계천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우리나라 사립교육기관의 첫 발자취인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은 주세붕(周世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 문성공 안향 선생이 젊어서 공부하던 이곳 백운동에 1542에 영정을 모신 사묘(祠廟)를 세웠다. 이듬해인 1543811일에 완공하여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중국에서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본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같은 해에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명종 5년에 왕에게 진언을 올려 紹修書院’(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최초의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하여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소수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살아남은 47개소에 들었으며 사적 제55호이다.

 

 

소수서원 표지비

 

 

소수서원 입구

 

 

가을이 짙게 물든 죽계천

 

 

 

 

소수서원 입구의 풍경

 

 

안축의 고려 경기체가 '죽계별곡'

 

 안축은 안향의 삼종손(三從孫)이다. 그가 지은 관동별곡(關東別曲)죽계별곡(竹溪別曲)은 이름난 경기체가(景幾體歌)로 국문학사상 귀중한 사료이다.

 

 

 

소수서원 입구 앞의 풍경

 

 

 

소수서원 입구 이정표

 

 

소수서원 입구

 

 

소수서원 건물 배치 설명판

 

 소수서원 입구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지면이 한 단 높아져, 이곳부터 서원 경내임을 알 수 있다. 서원 출입문인 사주문(四柱門)으로 통하는 길 왼쪽으로는 성생단(省牲壇)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죽계수(竹溪水)가 내려다보이도록 지은 경렴정(景濂亭)이 있다

 

 

 

 

지락재(至樂齋)와 학구재(學求齋)

 

 

영정각

 

 

주자와 안축

 

 

주세붕과 ???

 

 

허목과 이원익

 

 

장서각

 

 

 

 

문성공(안향)묘

 

현판 글씨는 중국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썼다. 사방에 흙담을 둘러 다른 공간과의 위계를 구분하고 있다. 매년 3월, 9월 초정일()날 제향을 올린다. 현존하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고 전하는 안향의 초상화(국보 111),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왔다는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殿, 보물 485)가 안치되어 있다. 명호를 사()가 아닌 묘()로 지칭하는 몇 안 되는 사당 중의 하나로, 문성공묘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

 

백운동정자

 

 

 

 

 

경렴정

 

 경렴정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 '경렴정'은 북송의 성리학자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頣)를 경모하는 뜻으로 그의 호에서 빌어왔다.

 

 

경자바위와 취한대 설명판

 

 경렴정 동쪽에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죽계 건너편에는 물가로 튀어나온 경자바위[敬字岩]가 있는데, 거기에 새겨진 ''자는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쓴 글씨이다. ''은 성리학에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양론의 핵심으로, 선비들의 지침이 되었다. 퇴계는 풍기군수로 있을 당시 이곳에 송백과 죽을 심어 취한대(翠寒臺)라고 이름짓고, ''자 위에 '백운동' 석 자를 써서 음각하고 이곳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경자바위와 취한대

 

 

안내판

 

 

 

소수서원 표지비

 

 

 

 

일신재

 

 

영귀천(우물)

 

 

 

 

 

소수서원 주변 풍경

 

 서원은 오늘날로 보면 사립교육기괸이다.

과거에는 글을 배우고 학문은 익히는 것은 양반만의 특권이었다. 글을 익힌 양반은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직에는 초탈하게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면서 학문을 도야하는 사람들도 있엇으니 그들을 선비라고 칭하기도 한다. 학문을 실제 생활에 응용하여 국태민안을 위해 사용하였든가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며 청정하게 삶을 살아왔든가 간에 하여튼 이곳은 선비들의 수양처이다. 현대에서 보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의 옛 자취를 무시하는 버릇이 좀 생긴 것 같다.

 지나간 과거를 무시하고 오늘이 있을 수는 없다. 현재는과거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또 미래는 현재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온고이지신이라고 옛것을 토대로 하여야 풍족한 현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수서원은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 선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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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선비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조상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경북 영주 순흥 소수서원에 접하여 위치하며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하여,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영주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 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병폐 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효의 현장으로 재현하게 된 것입니다.영주 선비촌은 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 될 것입니다.(선비촌 홈페이지에서 발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354번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영주 선비촌은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을 복원하고 생활상을 재현하여,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영주시가 건설한 테마파크이며, 조선시대 선비와 상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전통 민속마을이다. 죽계천(竹溪川)에 접한 선비촌의 핵심을 이루는 12채의 고택은 영주시 관내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던 기와집과 초가집의 본디 모습을 되살려 지었으며 입신양명(立身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등의 선비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 가옥 등 기와집 7채와 장휘덕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 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등 초가집 5채가 있으며 고택 12채 외에 정자, 물레방아, 강학당, 원두막, 대장간 등의 민속시설과 강학시설, 음식점, 주차장 등도 갖추어져 있어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권할 만하다.

 

 

영주선비상

 

 

가을이 든 선비촌 입구

 

 

선비촌 안내판

 

 

선비의 기개를 나타내는 소나무

 

 

선비촌 입구 풍경

 

 

입구의 죽계루

 

 

 

 

종가집, 수랏간 등 상호가 붙은 식당가

 

 

 

 * 수신제가(修身齊家)

 김상진, 해우당고택, 강학당의 '수신제가(修身齊家)’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올바르게 가꾼다는 뜻이다.선비들은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학문을 힘쓰며 일상의 생활윤리를 실천하는 수신(修身)을 중요시했다. 선비들은 수신을 위해 인(), (), (), ()를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상진 가옥

 

 

 

 

마을 한 바퀴 돌아 올 수 있는 당나귀

 

 

김구영가옥

 

 

단아한 풍취를 드러내는 정자

 

 

 

기품이 있는 마나님이 나들이를 나오신다.

 

 

 

 

아름답게 단풍이 든 한옥(누구 가옥인지????)

 

 

선비촌 관광객

 

 * 입신양명(立身揚名)

 

 두암고택, 인동장씨종가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이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이름을 드높인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에게 과거시험을 통한 관료의 길은 수신제가(修身齊家)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즉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얻는 일이었다.

 

 

우금촌 두암고택

 

 

 

 

 

인동장씨 종택

 

 

 

 

 

 

 * 거무구안(居無求安)

 

 김문기, 만죽재, 정사의'거무구안(居無求安)’이란 사는데 있어 물질적인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비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와 자연과 하나되는 인간의 살아갈 길을 고민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을 인격수양의 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석정(돌우물)

 

 

김문기가옥

 

 

 

 

 

 

정사설명판

 

 

 

 

 

가을이 짙은 마을 풍경

 

 

*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김세기, 김뢰진, 장휘덕. 이후남, 김규진, 두암고택가람집의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이란 가난함 속에서도 바른 삶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비록 살림살이가 어렵더라도 잘사는 것에 욕심이 나서 선비의 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곤궁함으로 인해 가볍게 스스로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장휘덕가옥

 

 

 

김뢰진 가옥

 

 

 

김세기 가옥

 

 

대장간 안내판

 

 

 

대장간의 모습

 

 선비촌에 가을이 들면 아름다운 단풍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한옥과 초가집이 자연과 어울려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선비촌의 여러 집들의 모양도 아름답지만 그 주위의 풍경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

 

 우리나라에 여러 곳의 한옥 마을이 있다. 대표적인 전주의 한옥마을이나. 경주 양동, 안동의 하회마을, 영해의 괴시마을, 영주의 무섬마을 등등이 엣 한옥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선비촌은 인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만든 곳이다. 그러다 보니 초가집도 한옥과 함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 인위적으로 만들어 교육의 장으로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 있기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보다 더 배치가 잘 되어 있고 가옥의 형태도 아름답다.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이 선비촌 바로 옆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있어 교육의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가을에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옛 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보자.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슬픈 전설이 서린 낙동강 발원지 황지

 

 동국여지승람 등의 옛 문헌에서 처음에는 '하늘못'이라는 의미로 '천황(天潢)' 또는 '황지(潢池)'라고도 했다는 유로연장 510.36인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상지, 중지, 하지 등 3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는 상지가 100m, 중지 50m, 하지가 30m이다. 특히, 상지 남쪽에는 깊이를 잴 수 없는 깊은 물구멍이 있어 가뭄에도 하루 약 5,000t의 물이 솟아나고 있고 수온 또한 한 여름철에도 차가울 정도로 맑아 예전에는 이 지역 주민의 상수도원으로 이용되었다 한다. 황지는 수온이 영하 30도로 떨어져도 얼지 않으며 아무리 큰 홍수나 가뭄이 와도 수량이 줄거나 넘쳐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 물은 시내를 흘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남북도를 거쳐 부산광역시의 을숙도에서 남해로 유입된다.

 

 이 못은 장자못 전설의 근원지가 되는 연못으로, 옛부터 황부자 전설이 전한다. 옛날 한 노승이 연못의 자리였던 이곳 황부자의 집으로 시주를 받으러 오자, 황부자는 시주 대신 쇠똥을 퍼주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놀라서 노승에게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주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자,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아니 되오."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노승의 말을 듣고 그의 뒤를 따라갔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때 며느리는 노승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보아 돌이 되었고, 황부잣집은 땅 속으로 꺼져 큰 연못이 되었는데, 상지가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터라고 한다. 그리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못은 1년에 한두 번 흙탕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무기가 된 연못 속의 황부자가 심술을 부린 탓이라고 전한다.

 

 정선 민둥산을 올랐다가 태백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황지 못을 찾아갔다. 태백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천천히 걸어가니 황지연못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황지 못에 얽힌 전설을 벽화식으로 쭉 나열해 놓은 아크릴판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황지 연못이 나온다.

 

 

황지연못의 전경

 

 

태백역 전경

 

 

황지연못 가는 길 이정표

 

 

황지 연못 유래 설명판

 

 

황지연못 사진판

 

    

 

황지연못의 세 주인공

 

  

 

 

황부자의 전설 아크릴판

 

 

황지연못 표지판

 

 

 

 

황지 전경

 

 

 

며느리상

 

 

 

 

 

 

 

 

 

 

상, 중, 하지

 

 

 

 

황지와 낙동강 발원지 표지석

 

 

 

 

가을이 깊은 황지의 모습

 

 

 맑은 물이 흐르는 황지는 가을이 물들어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깨끗하게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모여서 긴 여정을 시작하여 큰 강물을 이루어 바다로 간다. 모든 일이 항상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장대하리라는 말과 같이 그 큰 낙동강도 시작은 이렇게 조그마한 냇물이었다. 우리네 인생도 모두 이같이 시작은 조그마한 일이 큰 일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작은 항상 소소한 것에서 일어난다. 

 

 

 

2018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2018 가을, 국화로 물들다 - 가고파 국화축제

 

 지금은 창원시이지만 옛 마산은 우리나라 국화재배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1961년 회원동 일대에서 여섯농가가 전국 최초로 국화 상업재배를 시작한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다가 1972년 국내 처음으로 일본에 수출을 하였다 한다. 그리고 현재도 마산은 전국 국화 재배면적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으며,국화의 수출로 연간 40만불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나라 국화산업의 메카라고 한다.

 그래서 마산은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마산국화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홍보하고 국화소비 촉진을 위해 2000년부터 마산국화축제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번 제18회 마산가고파국화축제는 가을, 국화로 물들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예전에 돝섬에서 개최되었던 축제를 전년에 이어 마산지역의 대표 상권중 하나인 마산어시장과 마산가고파수산시장 인근에 조성된 방재언덕 부지에 메인 축제(전시)장을 마련하고, 창동,오동동,부림시장 일대에 축제거리를 조성해 관람객들을 맞이하였.

 

 축제(전시)장 전체를 수놓은 국향대전에는 11만본의 국화가 투입되어 10개 테마 9500여점의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국화축제의 백미 천향여심

 

 

 

 

 

가고파국화축제장 입구

 

 마산지역이 가진 역사적 자산인 마산개항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에 제작돼 불종로에 설치되어 있는 마산 불종7.5m 높이의 랜드마크 국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마산 불종

 

 

 

창원의 인물상

 

 

 

분재동산 - 국화를 이용하여 분재를 만들었다.

 

 

 

 

 

 

 

 

보합대화(초대형 다륜대작)

 

 

 

 

 

 

 

 

여러 가지모양으로 전시된 국화

 

 

야구하는 모습

 

 

 

 

한영(WELCOM)

 

 

 눈을 돌리면 보이는 것은 국화뿐이요. 코로 들어오는 향기는 국화향뿐인 가운데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한줄기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큼 많은 꽃을 피운다운 '천향여신'이다. 이 꽃은 특별히 무대를 마련해서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천향여심 설명판

 

 

 

 

 

 

1줄기 국화로 1520여송이를 피워낸 천향여심

 

 

 

 

 

 

국화힐링터널 - 이 터널을 거닐면 국화향에 취해서.....

 

 

 

국화로 만든 풍차

 

 

 

 

 

 

 

 

 

 

 

 

 

 

다양하게 꾸며 놓은 국화 동산들

 

 

 

 

 

 

 

 

 

여러 동물의 모형을 국화로 꾸민 모습

 

 

 

마산의 상징 3.15 기념탑

 

 

 

 

엄마와 딸

 

 

 

 

창원 소싸움

 

 

 

 

 

창원의 먹거리

 

 

국화속 그네

 

 

 

 

 

여러 해산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국화

 

 

 

사랑의 하트

 

 

 

 

 

 

 

 

창원 시티 투어

 

 마산가고파국화축제를 항상 간다고 하고는 가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가리라 예정하고 미리 마산에 있는 지인들과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늦가을의 비가 제법 세차게 오는 날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하였기에 우중에 출발하여 행사장에 가니 마침 비가 어느 정도는 그쳐서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구경을 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국화를 한 곳에서 볼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자연적으로 핀 꽃동산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국화에 취하여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움이다.

 

 내년에는 좀더 좋은 날을 택하여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축제였다.

 

가을이 짙게 물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따뜻한 봄볕을 뜻하는 춘양은 북쪽으로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이 지나가고, 지맥에 해당하는 옥두산(1,044m)과 문수산(1,206m)이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돌출하여, 이른바 고산준령(高山峻嶺)으로 에워싼 곳이다. 이곳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있다. 교통편이 좀 어렵지만 춘양에서 시내버스가 한 시간에 한 편이 다니니 잘만 조절하면 쉽게 갈 수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옥석산/문수산 일원) 일대에 5,179ha(중점조성지역 206ha)의 넓은 지역에 자리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오랜 기간의 공사를 거쳐 20185월에 정식으로 개장하였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2008910일 대통령 주재의 국토균형발전위원회의 결정으로 백두대간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산림 생물자원을 보전 및 관리하기 위해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후대별·권역별 국립수목원 확충계획의 일환으로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보전, 그리고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수목원 홈페이지에서 발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입구

 

 

 

 

수목원 입구의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표지석

 

 

  *춘양구곡

 

 춘양구곡은 앞서간 학자들이 은거한 정자나 정사가 있는 굽이를 중심으로 설정했다. 경암 이한응은 춘양이 비록 외진 고을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를 많이 배출하고 풍속과 예절이 우아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고을이라 했다. 춘양구곡은 1곡 어은(漁隱), 2곡 사미정(四未亭), 3곡 풍대(風臺), 4곡 연지(硯池), 5곡 창애(滄崖), 6곡 쌍호(雙湖), 7곡 서담(書潭), 8곡 한수정(寒水亭), 9곡 도연서원(道淵書院)이다.

 

 이한응은 춘양구곡시 서시에서 이렇게 읊는다.

태백산 남쪽은 맑고 신령스러우니/ 발원(發源)이 어찌 청결하지 않겠는가/ 춘양의 평평한 들판에 구불구불 흘러서/ 굽이마다 구역을 이루어 대대로 도가(櫂歌) 소리 있네.’

 

 

춘양구곡시비

 

 

수목원 입구

 

 

 

 

 

 

수목원 들어가는 길 - 물위에 가을이 떠 있다.

 

 

수목원을 운행하는 트램

 

 참고로 말하면 트램을 타는 맛이 있지만 구간도 짧고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하니 천천히 걷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기는 하겠지만 걸으며 곳곳을 구경하는 것이 더 즐기는 맛이 있다.

 

 

 

 

가을의 전령 국화

 

 

갯쑥부쟁이

 

 

구절초

 

 

 

늦은 가을에 비치니 햇살

 

 

 

브락테아룸 헬리크리섬(종이꽃)

 

 

낙상홍

 

 

 

노루오름 '하트 앤 소울'

 

 

이정표

 

 

 

 

 

 

 

돌틈정원

 

 

호랑이가 있는 호랑이숲으로 가는 이정표

 

 

호랑이숲 안내 표지판

 

 

먼저 고산습원으로 발을 돌렸다.

 

 

 

 

 

 

 

 

 

가을이 짙게 물든 아름다운 고산습원의 여러 모습

 

 

호랑이숲 가는 이정표

 

 

 

 

호랑이숲 가는 길

 

 

 

호식총

 

 과거에는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많아 호랑이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호식총을 만들었다고 한다.

 

 

 

 

 

 

호랑이숲의 호랑이 : 맹수라 주위를 삼엄하게 철망을 둘러 놓았다.

 

 팁을 하나 말하면 철망 주위에서 호랑이를 구경하는데, 그러지 말고 바로 앞에 호랑이전망대가 있다. 그 위에는 망원경을 장치해 놓고 호랑이를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 곳에서 구경하는 것이 편하다.

 

 

암석원으로 가는 이정표

 

 

 

곳곳에 이정표가 길을 가리키고 있다.

 

 연못의 표면에는 하늘과 산과 나무들 모두가 비추어진다. 그래서 연못을 큰 거울과 같다고 해서 거울연못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울연못

 

 

길 위의 고추잠자리

 

 

 

 

 

매화원에는 봄이 아니라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가을의 전령 억새

 

 

 

돌담정원

 

 

 

사계원 이정표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

 

 

 

 

 

 

 

 

 

 

수목원의 여러 모습들

 

 백두대간수목원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신 산줄기 '백두대간'의 중심에 조성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으로 백두대간 산림생태계와 생물의 다양한 자원을 보전하고 복원하는 곳이라 한다.

 

 내가 간 시간이 가을도 늦은 시간이라 그랬겠지만 기대한 꽃들을 보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다른 수목원에 비하여 넓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자연의 시원함에 형형새색의 가을 빛이 나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한 바퀴 돌아보면서 마음 깊이 가을 느끼고 힐링을 하였다. 그러면서 다음 해 봄에 이곳을 다시 와서 아름다운 꽃을 보리라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봄날의 수목원에는 여러 꽃이 피어 나의 눈과 가슴을 기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사족 : 수목원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니 버스가 오지 않는다. 다른 교통편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뒤에 알았지만 한시간에 한 대가 다닌다 한다.) 지나가는 승용차에 손을 들어 보아도 아무도 멈추지도 않는다. 그래서 조금 걷고 있으니 지나갔던 트럭이 후진을 하여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그래서 춘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고 하니 타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를 모르겠으나 춘양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면서 여행 잘 하라고 한다. 따뜻한 인정이 고맙다. 이 기회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한다. 내가 여행 중에 걸으면서 차를 얻어 탄 일이 서너번 있는데 승용차는 한 번도 멈추어 태워 준 일이 없다. 모두들 트럭이 멈추어 목적지를 묻고 태워 주었다. 세상의 인심을 엿 볼 수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