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중국운남여행 9 -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샹그릴라 그리고 매리설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이상향을 찾아 샹그릴라 가는 길과 매리설산 

 

 인간은 항상 오늘에 만족하고 살지는 않고 영원한 이상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꿈을 꾼다.

 옛날부터 중국 도연명이 이야기하는 '무릉도원'이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우리나라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등이 인간이 항상 찾고자 하는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이들 이상향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샹그릴라(shangrila)다. 이 이름은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1933년에 펴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란 소설에서 만들어낸 가상적인 지명으로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샹그릴라를 히말라야 어디엔가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의 지명인 것처럼 알고 있으나 사실은 소설 속에서 만든 도시다. 하지만 오늘날 샹그릴라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일반 어휘로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되어 있다. 이 소설은 영화화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에게 이상향에 대한 꿈을 꾸게 하였다.(1937년 작품. 줄거리는 생략하겠으나 한번쯤은 볼만한 영화다.)

 

 인류가 이상으로 그리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 속의 세계인 샹그릴라는 이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실존의 이상 도시처럼 알려져 아직도 많은 히말라야 여행자들이 이상향 샹그릴라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여 히말라야 부근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히말라야 산속 계곡에 존재한다는 이 마을로 가는 길은 과연 우리들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오늘날 인간의 영원한 이상향을 장사의 수단으로 한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가진 셀 수도 없이 많은 호텔, 카페, 음식점 등이 있다.

 

 오늘날  샹그릴라(Shangri-La , 香格裏拉 香格里拉, 향격리랍)는 실제로 중국 윈난성(雲南省) 디칭티베트족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에 있는 현()으로 쿤룬산맥(崑崙山脈) 서쪽 끝에 있다. 원래 지명은 중뎬(中甸), 또는 겔랑이라고 불리었으나, 중국 정부가 관광객을 끌어 모을 목적으로 티베트어()'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을 지닌 샹그릴라라고 2001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티베트족, 후이족, 먀오족 등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그중 티베트족이 43%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은 샹그릴라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꿈을 쫓아 방문하기에는 명칭만 샹그릴라일뿐 아직은 조금 실망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평균 해발고도 3,459m의 고산지대로 여름 평균 기온이 15정도로 눈 덮인 산, 계곡, 호수,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고, 동식물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샹그릴라 외곽은 방문할 만하다. 특히 매리설산이 있는 더친은 꿈꾸는 샹그릴라에 더 가까운 곳이라 생각된다. 

 

 아침에 리장을 출발하여 먼 길을 버스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샹그릴라를 거쳐 매리설산을 볼 수 있는 더친까지 가야 한다. 대략 10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라 하루 종일 버스에서 지내야 하는 고된 여정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인 매리설산을 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어려움은 겪어야 한다. 중국은 광대한 대륙의 나라다. 좁은 우리나라의 땅덩이로 생각할 수 없이 큰 땅이다.

 

샹그릴라 가는 길에 보는 금사강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곤륜산맥의 일부

 

버스가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에서 보는 금사강과 산맥

 

 중간에 잠시 휴식을 한 버스는 계속하여 길을 재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고산지대를 버스는 하염없이 달린다. 차창에 펼쳐지는 풍경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보이는 산, 산, 산들. 중국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거대한 곤륜산맥이다. 고산지대라 보이는 산위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다. 장관이다. 이런 장관을 언제 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니 문득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꼭 하면서 장엄한 자연을 볼 것이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버스 차창으로 보는 곤륜산맥의 만년설(사진이 좀????)

 

 계속 달리던 버스가 멈추면서 승객들에게 내려서 구경을 하라고 한다. 버스가 지나가는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한 것이다. 무려 해발고도가 4,292m나되는 높은 곳이다.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니 장관이다. 주변에는 높은 고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맥이다. 해발고도를 나타내는 표시가 서 있는 곳에서 이 지방의 민속신앙을 나타내듯이 여러 가지의 천으로 묶여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좀 빨리 움직이니 숨이 차다. 고산임을 실감할 수가 있다. 천천히 움직이면 별로 무리가 없는데 빨리 움직이니 숨이 가빠온다. 평생에 잊지 못할 풍경이다. 히말라야의 끝자락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해발 4,292m에서

 

 버스는 계속 달려서 드디어 매리설산이 보이는 더친에 오후 6시경 도착했다. ()나라 때는 토번(吐蕃)의 땅이었던  더친(Deqin , 德欽, 덕흠)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북서부에 위치한 면적7,504의 디칭장족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에 있는 현()으로 티베트어로 극락태평(極樂太平)’의 뜻으로, 란창강(瀾滄江)과 진사강(金沙江) 연안에 위치한다. 1952년에는 장족(藏族)자치구였다가 1956년에 현으로 바뀌었다. 쓰촨(四川) 및 시짱(西藏)()과의 교통요지로 쌀, 보리, , 옥수수·약재 등을 산출하며, 유명한 메이리쉐산(梅里雪山)은 삼림자원이 풍부하고, 목축업도 활발한 곳이다.

 

매리설산 관광안내지도

 

 숙소를 정하고 매리설산을 보러 나갔다. 마침 저녁 때가 되어 해가 지는 시간이라 장엄한 매리설산의 낙조를 기대하고 멀리 보이는 매리설산을 보았으나 날이 흐려서 기대한 낙조를 보지 못하였다. 항상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기상상태가 여행에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메이리쉐산(매리설산, 梅里雪山 , Méilǐ Xuěshān)

 메이리쉐산은 중국 윈난성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윈난성 디칭티베트족자치주(迪庆藏族自治州, 적경장족자치주) 더친현(德钦县, 덕흠현)과 시짱자치구의 차위현(察隅县, 찰우현)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봉 가와격박봉(卡瓦格博峰)은 해발 6,740m에 이르며 티베트 장전불교(藏传佛教)8대신산(八大神山)중에서 으뜸으로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다녀가야 하는 성지이다. 

 이곳은 윈난의 아름다운 풍경 중에서도 최고 절경으로 꼽히며, 그동안 수많은 등산객이 산을 점령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메이리쉐산은 아직도 신의 산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만년설(萬年雪)이 덮여 있는 산은 더친현 동북 약 10거리의 헝돤산맥(横断山脉) 중단의 누강(怒江)과 란창강(澜沧江) 사이에 위치하고, 주봉에는 만년설과 거대한 빙하가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활모양으로 펼쳐져 있다고 한다. 북쪽부분은 매리설산, 중간 부분은 태자설산(太子雪山), 남쪽부분은 벽라설산(碧羅雪山)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설산의 북쪽은 시짱(西藏)의 아동격니산(阿冬格尼山), 남쪽은 벽라설산(碧罗雪山)과 연결되어 있으며, 매리설산의 주요 봉우리인, 장족어(藏族語)로 설산의 신(, 만년설이 덮인 봉우리 중의 신이다)이라는 의미를 가진 가와격박봉우리의 주변에 평균 높이 6,000m인 봉우리 13개가 있으므로 태자십삼봉우리(太子十三峰)라고 부르는데 이 13개 봉우리의 형태는 각자 다르다. 그 중에 미녀봉우리(美女峰)이라고 부르는 봉우리는 높이 6,054m, 산신령의 왕비라는 전설이 있다.

 

 매리설산의 원시림은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여기에는 흑곰, 금전표범, 작은 판다 등 113종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한다. 매리설산에 있는 사찰의 역사는 700여 년이 되기 때문에 해마다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매리설산의 저녁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매리설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서두러고 있었다. 나도 숙소의 옥상으로 올라가 일출을 기다렸다. 옥상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거내어 일출을 찍기 위해 분주하였다. 멀리 보이는 매리설산은 날씨가 별로 좋지 않고 구름으로 덮여 일출을 보기가 어려웠다. 매리설산의 일출을 보는 것이 엄청 어렵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꾸준히 기다리니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해가 떠 올라 산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모습만 보아도 장관이다. 정말 일출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도 되지 않는 감흥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리설산 일출의 모습

 

매리설산 일출 동영상

 

매리설산을 잘 볼 수 있다는 비대사

 아침을 먹고 또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다리까지 가야하는 여정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땅이 넓다보니 움직이는 거리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교통이 우리처럼 발달되지 않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대도시는 그런대로 교통편이 괜찮지만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면 우리나라 1970년대 수준도 되지 않아 보인다. 더친을 출발하여 샹그릴라현에 도착하여 구경을 하였으나 별로 볼 것이 없다. 중국이 샹그릴라라고 이름만 붙였지 아직은 제대로 개발이 되어 있지 않다.

 

샹그릴라 납파해

 

샹그릴라 현 주변

 

 샹그릴라에서 다리행 버스를 갈아타고 다리에 도착하니 저녁이 되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으니 좀 찾기가 어려웠다. 인터넷에 나온 위치가 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제법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겨우 찾아가니 숙소에는 손님이라고는 없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의 여자애 두명이 반겨 준다. 대학을 다니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가 통하기에 잠시 이야기하다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니 다리고성의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먼 길을 이동하였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봄 - 작천정계곡, 벚꽃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아름다운 벚꽃계곡 - 작천정계곡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집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서러운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번 봄에는 무엇이 바빠서인지 봄꽃 구경도 제대로 한번 가지를 못한 것이다. 물론 아직 봄이 다 가지는 않았지만 때를 맞추어 피고지는 꽃은 시간을 놓치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는 봄을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으니 가까운 곳의 벚꽃 구경을 가기로 생각하니 언양 작천정계곡이 떠올랐다.

 

 작천정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에 있는 작괘천 가에 있는 정자로, 작천정이란 이름은 주변 계곡의 바위 돌들이 물에 깍여서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 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작괘천 인근에 유배를 왔는데, 작괘천 변에서 경치를 보며 시를 읊었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조 세종 20년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작천정은 주변의 절경과 조화되어 하나의 선경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 정자에 올라 주변의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있노라면 무릉도원에 들어온 생각을 느낀다. 봄에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도 좋지만 가을이 되면 이 계곡을 붉게 불붙이며 타는 만산홍엽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 작천정은 예로부터 많은 풍류객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노래를 하며 풍류를 즐긴 곳이라 한다. 하지만 작천정은 언제나 낭만만이 있었던 곳은 아니다. 이곳은 3.1운동의 계획을 세우던 조국과 민족을 구하려는 우국지사들의 보금자리였는가 하면, 울산지방에 천도교, 천주교가 들어올 때 노천교회의 역할을 한 곳으로 외래 종교들의 정착을 위한 싹을 틔운 곳이기도 하고, 이 고장 학문을 중흥시킨 곳이기도 하다.

 

작천정입구의 이정표

 

작청전 입구의 벚꽃이 핀 길

 

깨끗한 물이 흐르는 작괘천의 바위들

 

작천정 옆에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 - 왜 감옥에????

 

작천정의 모습

 

 

 작괘천(작수천, 작천정계곡) - 세월의 술잔

 작천정 앞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계곡은 너른 바위로 펼쳐져 있고 물에 깍인 여러 모양이 보인다. 바로 작괘천이다. 작천정이 있는 계곡을 흐르는 작괘천(酌掛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신불산 홍류폭포에서 발원하여 삼남면 신화리에서 삼동천으로 유입하는 지방하천으로, 지도에는 작수천(酌樹川)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은 작괘천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1872년지방지도(언양)조선지지자료에는 작괘천(酌掛川)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영남 12경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작괘천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은 수백 명이 앉을 듯한 너른 바위마당을 부드럽게 스치며 흐르는 물에 계곡의 바위가 오랜 세월의 물살에 깎여 움푹 파인 형상이 마치 술잔()을 걸어둔() 것과 비슷한 모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괘천은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서 일찍부터 언양 지방의 휴식처가 되어 왔다. 계곡의 입구에는 수령이 약 사십 년이나 되는 벚꽃나무 터널이 나타나는데, 아름드리 우거진 벚꽃나무 터널 밑으로 약 1가량을 빠져 들어가면 정자 작천정이 눈앞에 보인다.

 

작괘천의 너른 바위들

 

작괘천의 풍경

 

작천정의 설명판과 내부의 작천정기등의 여러 글들

 

작천정에서 보는 작괘천의 풍경

 

 작천정을 떠나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 너른 공터에서 작천정 벚꽃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계곡에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면서 내려오니 큰 바위에 "인내천"이라는 글자를 새긴 곳이 보인다. 올라가 보니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그냥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다.

 

'인내천' 바위 설명판

 

가까이 보는 글자와 아래의 길가에서 보는 글자

 

벚꽃축제장 이정표

 

봄바람에 꽃잎이 휘날리는 벚꽃길

 

축제가 있으면 반드시 먹거리 장터가 선다. - 먹거리 장터

 

 우리나라의 봄은 너무나 아름답다. 곳곳에 꽃이 피고 축제가 펼쳐진다.

매년 봄이면 여러 종류의 꽃이 피고 그 꽃을 보면 즐기는 것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재미이다. 3월말에서 4월 초에는 전국의 어디를 가도 벚꽃이 지천으로 피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전국의 관광객을 끌어 당기는 이름난 곳도 많이 있지만 깨끗한 계곡과 벚꽃이 함께 어울리는 작천정계곡도 우리 눈을 끈다.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을 소비하지 않고 가볍게 봄의 하루를 즐기고 마음을 상쾌하게 한 하루였다.

중국 운남 여행 8 - 호도협 트레킹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보물같은 트레킹 - 후탸오샤(호도협, 虎跳峡, Tiger Leaping Gorge)

 

  거대한 대륙 중국의 서남쪽에 자리 잡은 윈난성이 품고 있는 보물 같은 트레킹 루트가 바로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호도협(虎跳峽)이다. 리장(丽江)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위치한 협곡으로 호랑이가 뛰어 건너던 협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도협은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장강(長江)이 이곳에 오면 '금사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거대한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하바쉐산(哈巴雪山) 두 산의 발치로 접어든다. 두 산의 갈라진 틈으로 장강(長江)이 흘러들면서 16km의 길이에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다.

  이 위룽쉐산과 하바쉐산을 끼고 이어지는 16km의 협곡의 길은 먼 옛날부터 윈난성에서 생산된 차를 싣고 티베트로 가던 마방들의 길로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일부로 불려왔다.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의 길에서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구간이 금사강(金沙江 장강의 상류), 난창강(瀾滄江 메콩강의 상류), 누강(怒江 살윈강의 상류)이 설산 사이로 흘러가는 삼강빙류(三江并流) 협곡이다.

  리장에서 버스를 타고 차오터우촌(桥头村)에서 내려 아래로 6정도 내려가면 후탸오샤(虎跳峡)입구가 나오는데, 이 때 강의 폭이 30m로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 후탸오샤(虎跳峡)의 윗부분을 상후탸오(上虎跳)라고 한다. 후타오샤(虎跳峡)에서 교통이 가장 편리하다.

 협곡을 따라가는 평균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의 지형적 특이함과 세계의 동물 중 25퍼센트가 존재하는 생물학적 다양성으로 인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꼭 하려고 생각한 호도협트레킹을 나선다.

 

 리장 버스터미널에서 치아토우(橋頭)행 버스를 타는 것으로 호도협으로 가는 여행은 시작된다. 리장에서 호도협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타니 한국인가족과 일행이 보였다. 이곳에서 살면서 보이차를 생산하고 또 여행객을 안내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하였다. 오늘은 호도협트레킹의 중간에 있는 차마객잔에 볼일이 있어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중에 차마객잔에서 보자고 하면서 그들은 차를 계속 타고 갔다. 나는 트레킹이 목적이기에 호도협 입구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로 하고 트에킹을 시작하였다.

 

호도협입장권

 

호도협입구에서 보는 진사강 지류

 

 트레킹을 시작하는 입구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다. 한국의 청년으로 삼성전자에 다닌다고 하며, 휴가를 내어 여행중이라고 하였다. 고향이 부산이며 고등학교도 부산에서 나왔다고 하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이 젊은이도 호도협을 트레킹하기 위해 처음부터 걷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먼 이국에서 같은 길을 걷는 고국의 젊은이를 보니 기뻐 트레킹을 하는 도중에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의 모습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보이는 계단식 논과 마을의 풍경

 

마을을 지나가게 길에 토실하게 잘 자란 닭들이 보인다.

 

 트레킹을 시작하여 산길에 접어들면 마부들이 몰고 온 말들의 워낭소리가 요란하다. 28굽이돌이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이 험하고 어렵다며 말을 타고 오르라고 유혹하지만 그래도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니 뿌리치고 발걸음을 옮긴다. 트레킹 코스는 두 개의 길로 나뉜다. 저지대의 길과 먼 옛날부터 나시족이 이용해온 고지대의 길.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고지대의 길을 선택한다. 길은 초등학교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시작된다 말을 끄는 마부는 과연 타지 않을 것인가를 시험이나 하듯이 말을 끌고 계속 뒤를 따라온다.

 

트레킹도중에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

 

 호도협입구에서 한 시간 반정도를 걸으니 나시객잔이 나온다. 여기에 도달하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이곳까지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인들도 많이 눈에 뜨이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도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호도협에서 가장 험하다는 28밴드 고갯길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제법 고산이라 숨이 제법 차기도 하였고 여행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 말을 끌고 올라온 마부와 흥정을 하여 말을 타기로 하였다. 그런데 말을 타는 재미도 솔솔하였다. 말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편안하게 탈 수 있다. 아주 좁은 산길이라 두려움에 말의 고삐를 꽉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 더 불편하다. 이 길에서는 말이 자연의 일부이다. 말이 가는대로 몸을 맡기고 경치를 즐기면 된다. 삼성전자에 다닌 젊은이도 힘들어 하여 배낭을 벗어서 말에다 싣고 가라고 하니 젊은이도 좀 편안해 하였다.

 

말을 타고 오르면서 마부와 기념사진 한 컷.

 

계속 보이는 옥룡설산

 

28밴드 중간 지점의 휴식처 -이곳에서 말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걷는다.

 

트레킹중인 본인과 젊은이

 

호도협계곡을 흐르는 진사강

 

계곡을 흐르는 강과 꼬불꼬불 펼쳐지는 산길의 모습

 

  오후 5시경이 되어서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아직 해는 떨어지지 않고 대지를 비추고 있지만 오늘의 일정은 계획한대로 여기까지로 이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함께 온 젊은이는 더 걸어서 중도객잔까지 간다고 한다. 조심해서 여행하며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격려하고 헤어졌다. 차마객잔에 들어가니 아침에 보았던 한국인 일행이 반갑게 맞이한다. 객잔에 방을 구하여 잠시 쉬다가 석양의 옥룡설산을 보기 위해서 객잔의 옥상 전망대에 올라갔다.

 

  웅장한 옥룡설산을 조망할 수 있고, 호도협 산장 중에서 가장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12일의 트레킹에서 가장 적당한 곳에 위치해 있는 차마객잔은, 중도객잔보다 약 2시간 전에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정이 무리하지 않다면 중도객잔까지 가지 않고, 차마객잔에서 숙박하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다음날 트레킹에 도움이 된다.

호도협에 있는 어떤 숙소보다 깨끗한 차마객잔 신관은 구관처럼 목조 건물이 아니라서 조용하여 1일차 트레킹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편히 쉴 수 있고, 객실 안 창문 밖으로 옥룡설산의 웅장한 13봉우리를 모두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다.

특히 해 질 무렵 설산 봉우리에 붉게 물든 석양이 환상적이며, 밤하늘에 수많이 빛나는 별들을 꿈을 꾸듯이 아름답게 즐길 수 있다. 옥상 전망대에서는 벤치에 누워서 별을 감상할 수도 있다. 호도협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객잔으로 한국 여행객들이 항상 북적거리며, 한국식 닭백숙을 매우 맛있게 만들어 한국인 여행자들을 즐겁게 하는 곳이다.

.

  아침에 창문을 열면 장엄한 옥룡설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차마객잔 표시

 

차마객잔 옥상전망대에서 보는 옥룡설산

 

서서히 어둠이 다가오는 옥룡설산의 모습(옥상 전망대에서)

 

 짙어지는 어둠을 보면서 잠간 센티멘탈한 감정에 빠졌다가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식당으로 발을 돌렸다. 식당에는 아침에 만났던 가족과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함께 자리를 하여 오골계백숙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한잔의 술로 피로를 풀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고국을 떠나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는 무언가 짙은 아픔이 배여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은 이곳에서 죽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서 온 것이라 했다. 먼 타국에서 만난 동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오골계 백숙

 

 저녁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났다.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밝게 빛나는 별들이 온 하늘에 가득하다. 높은 고산지대에 아무런 오염이 없는 깨끗한 고장이라 별이 더 총총하게 빛났다. 잠시 하늘을 보다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옥룡설산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참으로 장관이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방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니!!!!!

 

옥룡설산의 일출

 

차마객잔에 있는 호도협 안내도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장엄하게 비치는 옥룡설산의 일출

 

 아침을 먹고 이틀째의 트레킹에 나선다. 바쁠 것이 없는 여정이니 한가롭게 길을 가면 된다. 좁은 산길은 한사란밖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이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산쪽으로 붙어서 길을 비켜 주어야 한다. 호도협의 계곡을 즐겁게 구경하면서 끝없이 이어진 듯한 산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평탄한 구간이라 그저 아래에 흐르는 진사강을 즐기면서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옥룡설산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걷는다.

 

협곡을 흐르는 진사강과 강 위의 오솔길

 

 

트레킹 도중에 곳곳에 마을이 보이고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도중에 협곡으로 길이 끊어진 곳에 놓인 돌다리

 

햇빛 아래 빛나는 옥룡설산

 

이 가파른 협곡에도 목축을 하고 있다.

 

중간지점에 위의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협곡을 흐르는 진사강 물

 

중간에 있는 폭포

 

나시족의 민간신앙의 장소

 

 

 어느 새 트레킹이 끝이 났다. 도로에 있는 티나하우스의 표지가 나타난다. 1박 2일의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티나하우스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을 구경하다가 리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서 트레킹은 끝이 났다.

 

티나하우스 표지

 

티나하우스 주변의 경

 

 이렇게 1박 2일의 호도협트레킹이 끝났다. 현재까지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를 걸은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깨끗한 공기는 폐부를 맑고 깨끗하게 하였고, 도도하게 흐르는 진사강과 두 산 사이희 협곡은 눈을 즐겁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협곡을 구경한다는 섯만으로도 만족한 트레킹이었다. 그리고 도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 열심으로 살아가면서 사연이 많은 사람들...... 이 여행을 끝내고 이글을 쓰면서 모두 행복하기를 빈다.

 

 리장으로 돌앙하서 숙소에 들어가 휴식을 좀 취하고 내일은 매리설산이 있는 샹그릴라로 가기로 했다. 또 먼 길을 하루 종일 이동해야 한다.

 

중국 운남 여행 7 - 루구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신비한 모서족 여인국의 호수 - 루구호

 

 다음 날은 리장을 잠시 벗어나 루구호를 보러 가기로 했다. 루구호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가기가 좀 불편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루구호를 보지 않는 것도 아쉬운 일이라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기로 하였다. 리장에서 루구호를 가는 버스편이 하루에 두편 정도밖에 없고 시간이 약 8시간이 더 걸린다.(요즈음은 좀 좋아졌다고 한다.) 리장에서 거리로는 약 200여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꼬불꼬불힌 산길을 조심하며 버스가 천천히 가기에 주변 경치를 완상하는 재미는 있지만 우리 생각에는 너무 느렸다. 가는 도중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중간 휴식지에 머물러 밥을 사 먹었다. 너무 오래 가기 때문에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 임시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버스를 갈아 타라고 한다. 무슨 일인가 하고 버스를 타니 좀 작은 버스다. 버스를 타고 가며 알았지만 길이 좁아 큰 버스가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중국이 현대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옆에 앉은 젊은이가 여행객인 것 같아 말을 건네니 북경에서 에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는 중국청년이었다. 짧은 영어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잠도 자고 하니 이제야 루구호에 도착한다.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루구 호(중국어: 泸沽湖, 병음: Lúgū Hú)는 리장 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202km의 위치에 있다. 원난성과 쓰촨성(四川省)의 경계에 있는 윈구이 고원에 있는 해발 2,700m의 산정호수로 담수호며, 면적 48.5, 평균수심 40.3m, 길이 9.4, 최대수심 93.5m, 호수의 투명도가 11m에 달할 정도로 맑으며 호수 안에는 8개의 섬이 있다. 쓰촨성과 윈난성(雲南省) 변경지역의 염원(鹽源)이며, 호수에는 가는비늘 물고기와 유명한 구이수이(貴水) 수달이 서식하며, 중국 고유의 보예하이(波葉海), 꽃양배추 등 여러 수생식물이 자란다. 호수 주위는 여러 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윈난송(雲南松), 윈난(雲南)삼나무, 다궈(大果)홍삼나무 등 수목이 울창하다. 호수 풍경이 아름다워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자연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는 흑관조의 월동장소이다.

 

 원난성 여행에서 루구호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모계사회의 전통을 계속 지키고 있다 이 일대에 사는 모서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루구호 전경

 

 

 

 

루구호 가는 도중 계곡사이로 보이는 진사강

 

 

 

루구호 가는 도중의 풍경

 

 

리장에서 루구호를 가는 버스

 

 

중간에 차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루구호 버스정류소에 가기전에 산마루에서 보는 루구호의 전경

 

 비수기라 객잔은 거의 비어 있는 듯하였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루구호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객잔을 골라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방향의 방을 잡았다.

 

 

숙소로 잡은 객잔

 

 이리저리 다니며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려 나가니 비수기라서 그런지 관광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식당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닭곰탕과 비슷한 음식을 시켜서 가볍게 중국 맥주를 한잔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루구호의 밤 풍경을 보다가 잠을 청한다.

 

 

 

 

 

어둠이 깔린 루구호 풍경

 

 루구호의 모계사회

 

 중국에서 루구호 인근에 살고 있는 나시족의 일파인 모서인은 인구가 5만정도로 매우 소수이다. 그래서 모서족으로 불리지 않고 모서인이라 칭한다. 그들은 대부분 윈난성 서북부와 쓰촨성 서부 접경지대에 살고 있는데 특히 루구호 일대에 많이 살고 있다.

 

 모서인은 이른바 주혼(走婚)이라는 독특한 결혼 형태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지에서는 아샤훈(阿夏婚)이라고 하는 것으로 남자와 여자는 혼인하지 않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여자는 집에 "아샤(阿夏)"라고 부르는 방을 만들어 놓는다. 이 방에는 그 집의 여자 중 큰 어른(대개 어머니)이 허락하면 밤에 남자가 몰래 들어오는데(물론 허락의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의 마음이다.) 이 방에서 관계를 맺은 뒤에 남자는 날이 새기 전에 떠나야 한다. 이렇게 되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숨기는데 남자가 수십 명에 달하기도 한다고 하니 나중에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 된다. 그래서 여자가 가장이 되고, 아이들은 엄마의 성을 물려받는 모계사회인 것이다. 남자와 밤에 잠은 같이 자도, 같이 살지 않는 것이 주혼제도이다. 그리고 평생 한 남자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여자가 주혼 관계에 있는 남자가 싫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통 3대와 4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 형태이고 대가족의 가장은 보통 2대째의 여인이 맡는다. 이러한 가장을 따부라 부르며 따부가 집안의 대소사를 맡아서 처리한다.

집안의 재산이나 각종 제사에 관한 권리는 모계로 계승되기 때문에 계승과 관련된 모순이 별반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창혼(枪婚), 즉 보쌈 같은 결혼 형태도 일부 지역에서는 존재하는 것이 이 지역의 특성이다.

 

 

 

루구호에 가면 관광객에게 나누어 주는 여인국 여권(?)이다.

 

 

 

모서족 여인들

 

 

 

 

 

 

 

 

모서족의 집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니 호수가 빛을 내고 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모서인들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주변의 경치를 즐기기도 하였다. 어디에 있었는지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보이기도 한다.

 

 

 

 

 

 

 

 

주위에 오염원이 없는지 호수의 물이 깨끗하다.

 

 

 

모서족 여인의 복식

 

 

 

 

 

평화로운 루구호의 모습

 

 

 

 

 

 

 

 

루구호의 여러 모습

 

 

 

 

 

 

모서족의 민간신앙의 탑(?)인듯 한데.... 기억이???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깨끗한 호수를 보며 즐기고 있다.

 

 

루구호 표지석

 

 

기념품 가게

 

 

 

주변에는 어디에나 볼 수 있는 행상의 물건

 

 

 

루구호에서 리장으로 돌아오는 길

 

 

고장난 버스

 

 루구호에서 관광을 마치고 다시 리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약 10시간을 버스를 타고 가야 하지만 여행이란 것이 이런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풍경도 여행의 한 맛이다. 그런데 리장으로 가는 도중에 버스가 고장이 났단다. 모두들 인적도 없는 산중의 길가에 내려서 기사가 차를 고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운행을 하였다. 아마도 노후된 버스 엔진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도로와 교통이 참으로 편리하고 잘 되어 있다고 항상 생각한다. 루구호를 갈 때와 마찬 가지로 버스를 두 번이나 환승을 하고 리장으로 돌아왔다. 리장에 와서 내일 갈 호도협의 티켓을 미리 구입하고 호도협 트레킹을 위해 간식과 음료를 구입하였다.

 

 내일부터는 이번 여행의 백미 중 하나인 호도협트레킹에 나선다.

중국 운남 여행 6 - 리장, 옥룡설산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나시족의 불멸의 성산 - 옥룡설산(玉龍雪山)

 

 아침에 숙소를 출발하여 옥룡설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안내서에 설명해 놓은 곳을 찾아 갔으나 쉽게 찾아지지가 않았다. 방향을 잘못 든 까닭이었다. 조금 헤매다가 찾고 보니 그 앞을 지나친 곳이었다. 대형 버스만 찾았는데 찾고보니 소형 미니버스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제대로 몰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옥룡설산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입하고 대삭도를 타려고 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대삭도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자연의 변화를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여행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기후도 여행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기상상태의 차이로 꼭 보아야 하는 것을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이것도 여행의 한 묘미라 생각하면 이 상태에 적응할 수 있다.

 

 대삭도는 타지 못하고 옥룡설산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대삭도에 못지 않는 모우평에 올라가기로 하고 모우평으로 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리장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위룽쉐산(Jade Dragon Snow Mountain 玉龍雪山 : 옥룡설)중국 윈난성(雲南省) 리장 (麗江) 서쪽에 있는 산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이다. 중국 서부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 해발 5,596m고산으로 13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봉은 산쯔더우(扇子陡, 선자두) 메이리설산 (梅里雪山, 매리설)이어 윈난성(云南省)에서번째로 높다. 산에 쌓인 만년설이 마치 마리의 은빛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옥룡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맥이 꿈틀대는 용처럼 보이는 것은 23,000만 년 전에 지각이 휘었기 때문이라 한다.

위룽쉐산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손오공이 갇혀 벌을 받았다는 산으로 전해진다.

해발 3,000지점까지 등산로가 나 있고 4,500까지는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으며 케이블카에서 전망대까지는 원시림 사이로 산책로가 있다. 해발 4,450지점에 윈사핑(雲杉坪, 운삼평)이 있는데, 삼나무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야이다.

위룽쉐산의 진짜 매력은 이곳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이다. 산비탈에서 발견된 식물은 약 6,500여 종류인데, 그중에 진달래 50, 앵초 60, 용담 50종과 백합 20여 종이 있다. 다양한 화초들이 자라다 보니 설산 아래 지역은 연 중 10개월은 항상 꽃으로 만발해 있다. 이 지역에는 레서판다, 사향노루, 백한과 운표처럼 희귀한 동물들도 많이 서식한다. 만년설에 뒤덮여 있는 설산의 봉우리에는 항상 폭풍우가 몰아치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최고봉인 높이는 에베레스트 산의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위룽쉐산은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만년설로 덮여 있고 희귀한 식물이 많아 중국의 빙하박물관 또는 식물왕국이라 불린다

 

 

모우평에서 보는 옥룡설산

 

 

옥룡설산 가는 버스가 있는 마오쩌뚱 동상

 

 

 

 

옥룡설산풍경구 입구에서 보는 옥룡설산의 위용

 

 

옥룡설산풍경구 입구

 

 

옥룡설산 풍경구내 유람차 탑승권

 

 

옥룡설산 입장권

 

 

 

 

만년설로 덮인 옥룡설산의 모습

 

 

옥룡설산 설명판

 

 

 

 

모우평으로 가는 도중에 보는 옥룡설산

 

 

모우평 리프트탑승권

 

 

 

모우평으로 올라가는 리프트에서 보는 옥룡설산

 

 모우평은 중국 윈난성 리장의 위룽쉐산[玉龙雪山] 풍경구에 위치한 초습지로 모우평은 옥룡설산의 중간부분에 위치하며 해발고도 약 3,800m에 해당한다. 고도가 높기 때문에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케이블이 설치되어있다. 마오뉴핑(모우평, 牦牛坪)의 경관은 윈산핑(云杉坪)과 거의 흡사하며 지대가 높기에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우평에서 모우란 야크를 지칭한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야크를 키워 생활하는데 모우평은 풀이 많은 평지라 야크를 방목해서 기르기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모우평은 옥룡설산 전체를 굽어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모우평에서 옥룡설산의 13봉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손을 내뻗으면 금방이라도 닫을듯한 착각에 빠진다.

 

모우평에서 옥룡설산을 바라보니 하늘은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이 푸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조금 어려웠지만 경치만은 어디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모우평에서 보는 옥룡설산의 모습

 

 

 

모우평에서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한 본인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는 옥룡설산

 

 

모우평 위에 있는 나시족 사원 설화사

 

 

 

 

 

 

설화사 여러 모습

 

 

모우평에서 옥룡설산을 찍은 동영상 - 바람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모우평에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간 곳이 백수하의 남월곡이다.

 

 남월곡(蓝月谷 란우에구)은 이전에 '백수하(白水河 바이쉐이허)'라고 불린 곳이다.

맑을 땐 물 색깔이 비취색이고 산골짜기가 초승달 모양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옥룡설산 발 밑에 푸른 달이 박혀있는 듯 해서 '남월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남월곡은 물이 흐르는 가운데 산에 가로 막혀 옥액(玉液 위이에), 경담(镜潭 찡탄), 남월(蓝月 란위에), 청도(听涛 칭타오)의 4개의 호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남월곡 풍경조감도

 

 

 

 

 

 

남월곡에서 보는 옥룡설산과 푸른 물

 

 

 

 

쓰촨에 있는 구채구를 모방하여 만든 남월곡의 제2의 구채구(沟) -정말 아름 다웠습니다.

쓰촨에 있는 구채구는 언제 갈 볼 수 있을는지.....

 

 

 

남월곡 표지석

 

 

 

 

 

 

 

 

 

 

남월곡에서 보는 옥룡설산의 장엄한 위용

 

 좀 떨어진 거리에서 장엄한 산의 전경을 보니 압도적이다. 푸른 하늘 아래에 태양은 맑게 비치고 산 정상에 휘날리는 눈보라가 환강적인 꿈을 꾸게 만든다. 산에 들어가면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없고 산을 벗어나면 산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교훈을 주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자연에 거저 경탄만 할 뿐이다.

 

 남월곡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백수하표지판을 만난다.

 

 바이수이허(白水河, 백수하)위룽쉐산(玉龍雪山)의 운삼평이라 불리는 대지 아래로 펼쳐져 있는 인공호수로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내려오는 차가운 빙하수가 옥빛을 띠며 흐르고 있어 신비롭게 보인다. 아름다운 물빛과 희귀한 지형이 만드는 이국적인 느낌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며, 유원지와 같은 시설이 있다. 호수 하류 쪽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하여 울긋불긋하게 장식한 야크들이 머물고 있으며, 물이 얕게 흘러 걸어 다닐 수도 있다.

 '백수하'라는 이름은 호수 아래 진흙이 백색이라 비가 오면 물이 흰 색으로 변한다 해서 얻어진 이름이다

 

 

백수하표지판

 

 

 

 

 

백수하의 맑은 물

 

좀 더 올라가니 운삼평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올라가지를 못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예정과는 달리 가지 못하는 곳이 허다하게 있다. 나는 이것도 여행의 묘미라 생각한다. 가지 못한 곳이 있어야 다시 이곳을 찾아 올 핑계거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산속의 오아시스인 해발 약 3,300m 높이에 위치한 운삼평(雲衫坪)은 구름()과 삼나무()로 둘러싸인 고원의 평지()라는 의미이다. 옥룡설산 기슭에서 중턱쪽으로 케이블카를 통해 올라가면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푸른 오아이스가 나타난다. 금수곡이라고도 불리는 운삼평은 푸른하늘과 만년설, 원시림과 어울려 환상적이고도 이국적인 풍취를 보여준다. 보통 이곳을 가르켜 '동양의 알프스', 혹은 '지상낙원'이라 부른다.

 하지만 운삼평에 도착하면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기 보다는 평원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운삼평표지

 

 

백수하 운삼평 입구에서 보는 옥룡설산

 

 옥룡설산 구경을 마치고 유명한 '인상여강' 공연을 보려고 찾아갔으나 공연을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하여 후일을 기약하고 리장으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나갔다. 제법 오래 여행을 했기에 오늘은 몸보신을 하기로 하고 지나다니다가 보아 둔 흑염소구이집을 찾아갔다. 이곳이 흑염소구이와 탕으로 유명한 곳이라 한번쯤 먹어보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탕과 구이를 시켜서 배부르게 먹었다. 우리 돈으로는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이곳 물가로는 상당히 고급스런 음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소고기구이나 전골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는 음식으로 맛은 비교적 우리 입맛에도 맞고 좋았다. 별미라고 생각하고 여행 도중에 먹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탕에 넣는 야채

 

 

흑염소 탕

 

 

 

흑염소 구이

 

 

리장 시내에 있는 흑염소 가게 - 일대가 모두 이 같은 가게다.

 

 하루 종일 다니며 피곤한 몸을 숙소에 들어와 쉬면서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해 보았다.

리장에서 몇 일을 보내며 여러 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내가 보고 싶은 모든 곳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만족이란 끝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제 리장에서의 마지막은 호도협 트레킹이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반드시 가야할 곳이 바로 호도협트레킹이었다. 그래서 여행의 일정을 조금 바꾸어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루구호를 다녀 오기로 하였다. 루구호는 리장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한 이삼일이 필요한 곳이다. 어찌 되었든지 내일은 루구호로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중국 운남 여행 5 - 리장, 수허고성, 옥봉사, 백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나시족의 고즈늑한 삶의 터전 - 수허고성, 옥봉사. 백사

 

 아침 일찍 잠이 깨었다. 비교적 여행지에서도 잠을 잘자는 편이라 별로 불편함이 없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려고 길을 나섰다. 중국말이라고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작정 나선 것이다. 오늘의 여정은 수허고성과 옥봉사 그리고 백사 마을을 둘러 보는 것으로 미리 생각하였으므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거기에서 책자를 보여주며 손짓으로 버스를 물어 타고 먼저 수허고성으로 갔다.

 

 수허고성(束河古鎮 :속하고진),

 

 나시의 선조들이 리장지역에서 가장 먼저 거주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수허고성은 리장 시내에서 북쪽으로 7바이사진(白沙镇)에서 3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나시언어로 '높은 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촌락'이라는 의미의 '사오우(绍坞)'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은 윈난 남쪽에서 출발하여 리장을 지나 바로 티베트의 라싸에 이르는 차마고도에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역참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며,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리장고성의 1/4 정도의 작은 규모이나, 리장고성에 비해 아직은 상업화가 덜 된 고즈넉한 수허고성은 여행자를 편안하게 맞아 준다. 수허고성은 골목골목 현지인인 나시족이 생활하는 공간들이 많다. 돌다리와 석판로(石板路), 상마스(上马石), 마궈터우(马锅头)의 정원, 룽취안사(龙泉寺)에 남겨진 명대(明代) 벽화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수많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보면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책자를 보여주며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이 수허고성은 상당히 현대화된 곳도 많아 까페촌으로 불릴만큼 음식점과 술집이 많으며, 무용학원도 있고 다양한 상품도 판매하고 있어서 산책하는 느낌으로 구경하기에 좋다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면 재미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리장보다 훨씬 많은 수로가 있어 물의 느낌이 완연한 곳이다. 사용되는 물은 옥룡설산에서 내려오는 물인데 우물은 제일 위쪽은 먹는 물로 두 번째는 음식 재료를 씻는 물로 맨 아래 우물은 빨래를 하는 옛날 그대로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허고성은 리장고성과 상당히 비슷하였다. 단지 규모가 리장고성의 1/4 정도로 작지만 더 아담하게 보였다.

 

수허고성 버스정류소에 내려 천천히 걸어가니 먼저 만나는 곳이 고도장가이다. 나중에 보기로 하고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고도장가의 전경

 

 

수허고성의 돌길

 

 

 

곳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노인들이 있는 가게가 즐비했다.

 

 

통로가 돌판으로 깔렸다.

 

 

 

 

 

수허고성 음식점거리

 

 

수로의 모습

 

 

수허고성 차마역참비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말들

 

 

 

 

거리의 여러 모습

 

 

수허고성 안내 조감도

 

 

위풍당당한 수하고성 대문

 

 

길 안내도

 

 

 

 

 

리장 어디에서나 보이는 옥룡설산

 

 

 

 

 

 

고도장가의 내부 여러 모습

 

티벳불교사원 - 옥봉사

 

 수허고성을 여유롭게 구경하고 먼저 옥봉사로 향했다. 옥봉사는 버스에서 내려 제법 길을 걸어가야 했다. 가파른 길을 조금 가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이 나타났다. 옥봉사다. 옥봉사는 백사에서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티벳불교사원이다. 사원안에는 '만타산차'라고 부르는 300살이 넘은 거대한 동백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봄에 꽃을 피우는데 만송이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 동백나무에 얽힌 일화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말려 죽여라'라는 명령이 있었으나 현지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이 나무에 물을 주고 보호하여 지금에 전한다고 한다. 그런데 '말려 죽여라'라는 명령이 이 나무가 모택동보다 더 인기가 있어서 그런 명령이 내렸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옥봉사 표시석

 

 

옥봉사 산문

 

 

나시족의 여인들

 

 

 

 

 

옥봉사 내부의 모습

 

 

 

 

유명한 동백나무 '만타산차'

 

 

나시족 여인들의 복식

 

옥봉사를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백사마을로 향했다. 사실은 수허고성에서 가까이 있었으나 옥봉사부터 둘러 보고 나오면서 백사마을에 간 것이다. 유명한 마을이지만 관광객의 눈을 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오며 보니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리장으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백사마을 구경하러 갔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관광객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인 것 같았다.

 

  백사마을(The Baisha Village , 白沙村 : 백사촌)

 

 윈난성 리장 리장고대마을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져 있는 나시족 전통마을인 백사는 나시족 최초의 마을이자 13세기 몽골족에 의해 멸망한 나시족 왕국의 수도였다. (), () 시기에 리장의 정치·경제 중심지였으며, () ()나라 시기인 1385~1619년에 대보적궁(大寶積宮), 유리전(琉璃殿), 문창궁(文昌宮) 등 유서 깊은 15개 사찰이 건설되었고 이곳에 유명한 백사벽화가 200점 이상 보존되어 있다.

 

 리장이 유명 관광지가 되어 제 모습을 잃고 있는 것과 달리, 비교적 마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남자는 가사나 육아를 전담하는 나시족 특유의 모계사회 생활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백사벽화(The Baisha Mural , 白沙壁畵)

 

백사마을에 있는 벽화로, () ()나라 시기에 이 지역에 살던 둥바교(東巴敎) 화가들과 중앙 평야지대에서 온 도교(道敎) 예술가, 티베트 지역의 라마교 화가 등이 그렸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건축된 대보적궁(大寶積宮), 유리전(琉璃殿) 등 유서 깊은 15개 사찰에서 보관·전시되고 있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는 모두 200점 이상인데, 이 중 55점은 상태가 양호하다.

 

 벽화에는 부처 외에 관리, 다양한 사람들을 그린 100점 이상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 강렬한 색깔과 표현 기법이 생생하고 정확하여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림 내용은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나, 대보적궁에 있는 5m 길이의 여래회불도(如來會佛圖 혹은 여래장경도)에는 불교와 도교, 티베트 불교 등 서로 다른 종교가 하나의 회화양식에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어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백사벽화를 구경하기 위한 입장권

 

백사벽화를 보관 전시하는 곳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

 

 

백사벽화 안내도

 

 

문창궁(목씨토사역사문화전)

 

 

 

 

 

벽화를 보관중인 건물 외부 -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가 눈에 띈다.

 

 

유리전 대보적궁 설명

 

 

 

 

 

유명한 여래장경도

 

 

여러 벽화들

 

 

대보적궁 입구 표시

 

 

 

 

 

유리전, 대보적궁 표시

 

 

호법신주

 

 

 

 

벽화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들

 

 

 

 

 

백사마을 문화거리 풍경

 

 

생활력이 강한 나시여인들

 

 

백사 나시 자수공예관

 

 

 

 

전시중인  작품들

 

 

옛날 남, 북방 실크로드 안내도

 

 

 

 

나시족 전통 복식과 자수

 

 

 

 

버스정류장의 여정표

 

 하루를 바쁘게 버스를 타고 다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다니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다. 어디에서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비슷하다. 언어가 잘 통하면 좀은 편리하겠지만 실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감각은 비슷하기에 조금만 유의하면 큰 불편함은 없다.

 

 리장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내일의 행선지에 가는 방법을 찾아 보았다. 내일은 옥룡설산으로 갈 예정이다. 안내 책자를 보니 가는 차편이 제법 있는 것 같아 안심하고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다시 내일을 기약한다.

 

중국 운남 여행 4 - 리장, 동바문화, 흑룡담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나시족(纳西族)의 동파문자와 동파문화(东巴文化)

 

 동바(东巴)라는 뜻은 바로 "지혜로운 자"라는 뜻이다. 이 동바 문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동바인데, 나시족에서는 문화인이라고 볼 수 있고 일종의 성직자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 이미 이런 고명한 동바는 아주 적은 수만 남아 있다고 한다.

 

 리장(丽江)은 나시(纳西族)의 땅이라고 한다..

리장에는 옥룡설산(玉龙雪山)이 있고 그 웅장함이나 자태, 아름다움은 무엇에 비할 것이 못된다. 리장에 들어서면 해발 5596미터의 옥룡설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리장의 이 옥룡설산 아래서 살아온 나시족들은 한없이 순박한 미소를 가지고 있고, 뭔가 자신감이 있어 보이고, 활기차 보인다. 그런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바로 그들의 동파문화(东巴文化)’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천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현재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하나뿐인 상형문자인 그들의 문자 동파문자가 있고, 그 동파문자를 포함한 그들의 독특한 문화인 동파문화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들은 이 문자와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고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리장에는 어디를 가나 이 동파문자가 그려져 있고, 장식되어 있다. 리장에선 이런 광고문구가 붙은 버스가 지나가기도 한다. “请让您孩子学纳西文字"(당신들의 자녀에게 나시문자를 배우게 하십시오)”

 

 자신의 독특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좋은 예이다.

 

 고성 내에는 이 동파문자를 이용한 기념품 가게가 많았는데, 그 중 나의 눈길을 끄는 곳은 고대 나시족들이 사용하던 종이를 이용해 각종 종이 공예품을 파는 东巴纸坊과 라는 동파문자를 이용해 나무조각 공예를 진열해 놓은 和东巴이라는 곳인데 조각해 놓은 동파문자가 아름답게 보인다.

 

 

동파문자(우리는 그냥 그림으로 이해한다.)

 

 

리장고성의 나시족 할머니

 

 

 

나시족의 집

 

 

 

 

 

 

리장고성의 나시족 문화거리 - 글자라기보다 아름다운 그림같은 느낌이 든다.

 

 

 리장고성을 여유롭게 즐기다가 고성 끝으로 가면 흑룡담공원이 나온다.

 쿤밍 헤이룽탄공원(곤명 흑룡담) 중국 윈난성(雲南省) 나시(納西)·티베트족자치현의 리장(麗江) 시내 북쪽 산기슭에 있는 호수공원으로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를 이루고 있다. 호수 주변에는 힘 있게 뻗어있는 산세와 높이 솟아있는 나무, 산에 층층이 세워져 있는 건축물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옥룡설산에 서 한 줄기 샘이 흘러 들어 연못을 이루고 있는데, 맑고 깨끗한 이곳을 헤이룽탄(黑龙潭)이라고 부르며 일명 옥천(玉泉)이라고도 부른다. 호수의 맑은 물에 비친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하늘의 모습이 멋진 장관을 이루는 호수공원으로 원대(元代)룽취안관(龙泉观)이 세워졌고, (), () 이후로 도교건축군이 형성되었다. 가장 유명한 오봉루(五鳳樓, 1601)는 복국사(福國寺)로부터 일부를 옮겨와 만든 것으로, 윈난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공원 내에는 고대 나시족 건축물들이 있으며, 공원 북쪽 입구에는 나시족[納西族]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둥바(東巴)문화연구소가 있다. 둥바는 나시족 고유의 문자로 오늘날 유일하게 사용되는 순수 상형문자이다.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자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최근에는 룽취안탄메이위안(龙泉探梅园)이 조성되었으며, 매년 겨울에 매화꽃이 만발할 때는 매화축제가 열린다. 이곳에는 100여 종의 매화가 있어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의 매원(梅园)이다.

 

 

고성에서 흑룡단으로 가는 도중의 수차

 

 

세계문화유산 표지

 

 

 

흑룡담 정문

 

 

 

 

 

 

흑룡담과 오봉루 뒤에 보이는 옥룡설산 - 리장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옥룡설산은 흑룡담에서 보는 모습이 압권이라고 한다.

 

 

흑룡담을 배경으로 한 컷을 찍은 본인

 

흑룡담을 한 바퀴 돌아나오면 동파문화연구소가 있다. 나시족의 생활풍습, 문화, 문자 등의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보존한다는 곳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의 문화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연구하여 문화적 자랑거리로 내세워 관광산업의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파문화연구소 표지석

 

 

 

 

 

 

 

동파문화연구소 내부

 

 

 

 

 

 

 

리장고성의 풍경

 

 리장고성 일대와 흑룡담까지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제법 늦은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기에 좀 피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그네가 그냥 잠만 잘 수는 없다. 그래서 리장 일대의 밤 구경을 나갔다. 밤거리는 그냥 일반적인 거리에 불과하였으나 이국이라는 점에 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돌아다니다가 가게에서 맥주를 조금 마시고 돌아 왔다. 내일은 이 지역의 로컬 버스를 타고 수허고성과 옥봉사, 백사 등을 둘러 볼 생각이다. 전혀 모르는 길이고 중국어도 하나도 할 줄 모르지만 여행책자와 인터넷 등에 의존하며 또 종일을 다녀야 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여행이라 두려움 없이 상쾌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중국 운남 여행 3 - 리장, 리장고성, 목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작은 수로를 따라 펼쳐지는 신비 - 리장 고성

 

 아침에 일어나 쿤밍을 떠나 리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쿤밍역으로 갔다. 리장행 기차는 객실이 침실로 되어 있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기차인데 4인용 객실에 손님이 없어 넓게 자리를 차지하며 편안하게 리장으로 향했다.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긴 여정을 창밖으로 경치를 구경하면서 잠도 자다가 하니 저녁에 리장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로 택시를 타고 가서 등록을 하고 가볍게 저녁도 먹고 산책을 했다.

 

 리장(Lijiang : 麗江,여강)은 중국 윈난성 북서부에 있는 해발 2400의 고원도시로, 진샤강(金沙江) 중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칭장고원(靑藏高原)과 윈구이고원(雲貴高原)에 인접해 있다. 나시족(納西族)자치현, 융성(永勝), 화핑(華坪), 이족(彛族)자치현을 관할하며, 리장 고시가, 리장 신시가, 다얀 고시가, 슈헤 고시가(수허고성), 바이샤 고시가(백사마을) 및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후탸오샤(虎跳峡: 호도협) 협곡지역 등으로 구성된다. 리장은 리장고대마을, 만년설이 덮인 위룽쉐산(玉龍雪山:옥룡설산), 아름다운 경관의 호수공원인 헤이룽탄공원(黑龍潭公園)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관광도시로 이름이 높아졌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리장고대마을(리장고성)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도농 복합도시이다.

 

 

만고루에서 보는 리장 일대

 

 

 

 

 

리장역 풍경과 쿤밍에서 리장으로 타고온 기차

 

 

 

리장앞에서 보는 옥룡설산

 

 

 

리장역의 택시

 

 

 

저녁으로 먹은 돼지다리 탕?

 

 

저녁 먹은 식당 - 리장에 있는 동안 자주 이용하였다.

 

 

숙소 근처에서 보는 옥룡설산

 

 

 

아침에 거리에 나가니 중국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다음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으러 가니 부페식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준다. 여행을 하면서 먹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기울이는 까닭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아침을 먹고 리장고성으로 향했다.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지름 10km 가량의 리장고대마을(麗江古城)이 있는 지역은 지형적으로 평탄하지는 않으나, 주민들은 이 지역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명청(明淸) 때부터 서북지역 차 무역의 거점을 이루었으며, 주요 상업 및 전략적 요충지로 만들었다. 리장고대마을은 역사적 마을 형태의 탁월함과 진정성이 있으며, 나시족의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고성 건물로 유명하다. 이곳의 건축물은 수세기에 걸친 여러 문화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리장은 오늘날에도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복잡하고도 독창적인 옛 급수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리장 각 마을의 집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복잡한 수로망과 지하 배수로망으로 나뉘며, 마을에 있는 많은 샘과 우물에 물을 공급해 준다. 이렇게 복잡한 수로 체계 때문에 리장에는 형태가 각기 다른 354개의 다리가 있다. 이것이 리장을 다리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19962월 진도 7의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 고성 지역만 해를 입지 않았다.

 

 리장 옛 시가지의 형태는 화려하게 치장하는 나시족(納西族)이라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한다. 집들의 장식은 매우 흥미로운데, 특히 대문의 아치 형태, 차단벽, 외부 복도, 대문과 창문들, 야외 정원, 지붕 들보들에 눈길이 간다. 나무로 된 곳에는 지역 문화 요소인 시, 악기, , 새 등이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여러 형태의 멋진 대문 아치가 있다.

 

 

리장 입장권

 

 

리장고성 입구 전면

 

 

선화원

 

 

 

 

리장의 거리 풍경 -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

 

 

물길

 

 

 

 

 

 

 

 

 

 

 

 

리장고성의 아름다운 거리

 

리장의 아름다운 거리를 한가롭게 거닐며 완상하며 도달한 곳이 목부다.

 

 목부는北有故宫南有木府(북쪽에는 고궁이 있고 남쪽에는 목부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장 나시족(纳西族) 목씨들의 자부심이 큰 정원이며 유산이다. 목부는 명나라 홍무제. 즉 주원장 시기에 건축되었다. 물론 그 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윈난 지역은 청나라 말기에 거대한 전란에 휘말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규모 목재 건축물들은 그 때 다 타버렸다. 그런 고로 현재 있는 건물은 모두 재건한 것이다.

 

 목씨는 리장 나시 족 가운데 가장 많으며, 중요한 성씨라고 할 수 있다. ()씨는 명대(明代) 주원장(朱元璋)이 당시 지방관의 일종이었던 이 지역의 토호 지배 세력인 토사(土司)에게 하사한 성씨라고 한다. 당시 나시족은 성이 없고 ' +이름'의 형태로 불리었는데 주원장이 자신의 성 '()'에 필획 2개를 떼어내고 '()'를 만들어 하사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성이 목씨이면 대체로 왕족이나 귀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목부는 화려하기가 고궁에 못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북경의 관리가 올 때 목부는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고궁보다 더 화려하면 중앙정부의 미움을 받지 않을까? 하고....목부에는 여러 건물이 있다. 그 중 뒷쪽의 만권루는 일종의 장경각이라고 보면 되겠다.

만권루에는 이제 나시의 동바 문자(우리말로 읽으면 동파)의 고서적들에 대해서 각주를 달아놓은 책들이 소장되어 있다.

 

 

목부입장권

 

 

목부의 정문

 

 

목부안내도

 

 

 

 

의사청과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중국 처자

 

 

만권루

 

 

 

 

 

목부에서 보는 리장 일대 - 멀리 옥룡설산에 휘날리는 눈

 

 

고목의 매화가 꽃을 피웠다.

 

 

남원 입구

 

 

호법전

 

 

 

 

 

 

 

 

 

꽃이 핀 아름다운 정원

 

 목부를 나와 다시 리장고성일대를 유람하듯이 한가롭게 거닐며 주위의 경치와 사람들을 보면서 다다른 곳이 유명한 사방가다.

 

 

 

 

 

 

 

 

 

 

 

곳곳에서 음식을 파는 모습이 보인다.

 

 

 

 

 

리장 고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방가(스팡지에, 四方街) 광장

 

 

사방가 표지

 

 

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산을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그대로 쭉 오르다보면 가장 높은 위치에 사자산 만고루(狮子山万古楼)에 다다른다.

 

 

사자산 만고루 이정표

 

 

 

만고루 설명판

 

 만고루 아래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리며 차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 보니 리장 일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은 시내에서보다 뚜렷하게 그 위용을 자랑한다.

 

 

 

 

 

 

 

 

 

만고루에서 보는 리장고성 일대와 옥룡설산

 

만고루에서 내려와 거리를 돌아 다니다 벚꽃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한국식 비빔밥을 먹었는데 이 집 주인장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리장의 수로가 식당앞으로 흐르는 곳으로 주변 풍경이 좋다.

 

 

 

 

 

 

 

 

벚꽃마을 식당가의 모습

 

 

나시족 할머니

 

 

 

 

 

 

리장고성 세계문화유산 표지

 

 

 

 리장고성은 참 특색이 있는 곳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사는 곳으로 미로같이 얽혀 있는 전통 가옥의 숲, 마을의 구석구석을 이어주는 개천, 바람에 흔들리는 능수버들의 모습에 낯선 여행객은 현실을 벗어난 꿈을 꾼다.리장고성에서 흔히 듣는 말이 '여기서 살고 싶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행을 하다가 이곳에 머물러 몇 개월째 지내는 여행객들을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다.사방가를 중심으로 뻗어 있는 수 많은 골목들이 여행객을 유혹한다. 처음에는 길을 잃어버릴 정도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길을 걸으면 된다. 그러면 구석구석의 리장의 모습을 어느 새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상업화된 모습이 조금은 신경을 거스러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