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불가리아, 릴라수도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구원의 장소 릴라수도원

 

 소피아를 떠나 릴라수도원으로 향했다. 소피아에서 릴라수도원을 가는 버스는 오전에 잠시 있고 오후 늦게 한편이 있는 아주 이상한 시간표였다. 아마 늦게 출발하면 돌아오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은 불가리아 남서부 릴라 산맥에 위치한 동방 정교회 수도원이다. 소피아에서 버스로 약 세시간이 걸리는 남서쪽으로 11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수도원 안에는 교회, 주거 구역,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외부에서 보면 마치 요새 같은 모습을 한 이 수도원은 927년 치유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유명했던 이반 릴스키(릴라의 이반)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수도원은 오랜 세월에 걸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외국 세력의 지배와 간섭을 견뎌 왔다. 중세의 통치자들은 무척이나 이반 릴스키의 유골을 손에 넣고 싶어 했으나, 유골은 1183년 에스테르곰으로 갔다가 비잔틴 제국과 불가리아를 거쳐 결국 1469년 릴라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도원 건물도 빈번하게 약탈당하고 다시 짓고 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1833년에는 화재로 인해 파괴되기도 했지만 1834년부터 1862년까지 진행된 불가리아 국민들의 지원을 통해 재건되었다. 험악해 보이는 벽 안으로 일단 발을 디디면 건물이 지닌 매력과 그 규모에 놀란다. 당당한 모습의 '예수 탄생 교회'는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 부속 교회이며, 줄무늬와 체크무늬로 단장한 4단으로 된 주랑 발코니가 불규칙한 형태의 안뜰을 둘러싸고 있다. 아무렇게나 건축한 것 같은 붉은 타일로 덮인 지붕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돔이 전체적인 매력을 더해 준다.

 

 1976년에는 불가리아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991년 이후부터는 불가리아 정교회 소유로 남아 있다. 2002525일에는 불가리아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곳을 순례하기도 했다.

 

 이 수도원은 단지 매력적이기만 한 장소는 아니다. 수도원 박물관은 '릴라 십자가'라는 뛰어난 작품과 1790년에서 1802년에 걸쳐 라파일이라는 수사가 조각한 양면 예수 수난상을 소장하고 있다. 주 교회는 화려하게 채색된 극적인 장면의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는데, 그림은 구원받은 자와 죄인을 기다리고 있는 서로 다른 운명을 생생하게 나타낸다.

 

 

릴라수도원 전경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는 먼 산에 눈이 아직도 쌓여 있었다. 벌써 오월인데도 높은 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지대라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수도원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

 

 수도원 가까이 있는 마을에 잠간 휴식을 위해 버스가 멈추었다. 이 마을도 제법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마을을 돌아보는 마차가 여행객들을 태우고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제법 오래된 마을로 나름대로의 유적도 있는 곳이었다. 이 휴식지에서 한국의 젊은이 둘을 만났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젊은이로 한쌍의 남녀였다. 이야기를 해 보니 남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한다고 하였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한 후 여기로 왔다고 하여, 나도 3년 전에 한달간 시베리아를 횡단하였다 하니 놀란다. 자기는 그냥 기차만 타고 횡단하였다고 하였다. 여자는 헝가리에 유학온 학생으로 귀국 전에 여행읗 한다고 하였다. 둘이 아침에 공항에서 만나 같은 동포라고 같이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참 기특한 젊은이들이라 느껴졌다. 젊을 때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더 큰 지혜는 없으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잠시 쉬다가 릴라수도원으로 향했다. 수도원 입구에 가니 많은 전세 버스가 있었고, 노선 버스는 거의 없었다.

 

 

 

릴라수도원 전경

 

 

릴라수도원 뒷 산 풍경

 

 

 

좌우의 주랑

 

 

 

흐렐류탑

 

 14세기 중반 이후 릴라 수도원의 흐렐류 탑과 같이 많은 수도원들은 오스만 제국의 침입 하에 요새화하였다. 이러한 요새들은 도나우 강, 발칸 산맥, 로도피 산맥, 흑해 연안을 따라 완벽한 방어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비딘, 실리스트라, 체르벤, 레베츠, 소피아, 플로프디프, 류티챠, 우스트라 등에 많은 성들이 세워졌다.

 

 

 

 

 

 

 

 

 

 

수도원의 여러 모습

 

 

 

 

아름다운 조각의 분수대

 

 

 

 

 

예수 탄생 교회의 내부

 

 

릴라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수도원 설명 이정표

 

 수도원을 구경하면서 그 당시로는 엄청난 산골이었을 이곳에 세속의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오직 신에게 자신을 바치고 헌신을 약속했을 수도사들을 생각하였다. 인간이 가진 모든 욕망과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고 신에게 자신의 구원을 빌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서 신에게 자신의 소망을 빌었을까? 어찌 되었든지 세속의 인간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못하였다. 신에게 헌양되었을 이곳도 여러 제국들의 패권 다툼에 의해 파괴되고 변화를 거듭했던 것이다. 그것도 신이 인간에게 준 섭리인지.....

 

 수도원에서 소피아로 돌아와서 마지막 여행지이며 이 여행의 출발지이기도 한 이스탄불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피아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기차는 밤 기차로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여정이다. 이스탄불에서 소피아로 오는 기차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다음 날 아침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교외에 기차가 멈추고 대기한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이스탄불을 출발할 때도 이스탄불 시내에서 버스로 역까지 이동을 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이동을 해 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불편한 방법이지만 이들이 이렇게 역을 지었으니 어쩔수 없이 따라야 한다.

 

 이제 이번 여행도 끝이 나간다. 이스탄불에 몇 일 머물다가 귀국을 할 것이다.

 

 이스탄불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글을 썼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참 오래 여행을 하였다. 이스탄불과 발칸을 합하여 총 50일 정도를 여행하였다. 건강에 이상이 없이 무사히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즐겼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책을 통하여서 보았던 많은 것들을 이제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고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행이 모두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나 투어여행이 아니고 직접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숙소를 잡고 유적지나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일이라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별다른 탈이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는 그 어려움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여행은 항상 즐거운 것이다.

 

 다음에는 다른 여행기를 계속해서 올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