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불가리아, 벨리코 투르노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 벨리코 투르노보
오늘은 하루를 이동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야 하는 일정이다. 부쿠레슈티에서 불가리아의 벨리코 투르노보로 이동해야 한다. 열차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고 간혹 있어 시간을 맞추니 12시 경에 국경을 넘어가는 열차가 있다. 처음에는 벨리코 투르노보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고 계획을 했으나 이쪽 동네의 기차는 우리와는 달리 상당히 완행이다. 그래서 모험을 해 보기로 하고 국경을 넘어 루세까지만 기차를 타고 루세에서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과감하게 루세까지만 표를 끊었다. 루세에서는 어떤 이동 수단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람 사는 동네이니 이동수단이 있으리라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맞았다. 루세역에서 버스 정류장은 멀지 않았고 루세에서 벨리코 투르노보로 가는 버스는 상당히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시간도 절약하고 편안하게 벨리코 투르노보에 도착했다. 오후 6시 경에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저녁도 먹고 벨리토 투르노보를 구경하기 위해서 시가지로 향했다.
아센기념비와 미술관
기차에서 보는 루마니아 평원 - 유채다.
이쪽에서는 유채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헝가리 대평원을 지날 때도 들판에 가득 심어져 있는 것이 유채였다. 아마도 식용이 아니라 기름을 짜는 것 같았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경을 흐르는 강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arnovo)는인구가 십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로 과거에는 투르노보라고 불렀지만 1965년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기 위해 "큰, 위대한"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인 "벨리코"(Велико)를 붙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불가리아 북부 로베치 주 남동부의 얀트라 강 상류 연안에 위치하며 소피아에서 동쪽으로 240km 떨어져 있다.
제2차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고 아센 2세(1218~1241)시대에는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불가리아의 아테네’라고 불렸기 때문에 볼 곳이 많다. 1393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왕국은 멸망하여 마을과 교회, 수도원 대부분이 화재로 인해 사라졌다. 1394~1877년 터키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5세기에 걸쳐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1867년에는 오스만에 저항하는 중심지가 되었고, 1877년 러시아가 투르노보를 해방시켰고, 480년 동안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된다. 1878년 베를린 조약에 따라 승인된 불가리아 공국은 투르노보를 수도로 삼았다. 1879년 4월 17일 최초의 불가리아 의회가 이 곳에서 소집되어 불가리아 최초의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에는 수도를 소피아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피아는 지금도 불가리아의 수도로 남아 있다. 1908년 10월 5일 페르디난드 1세가 이 곳에서 불가리아의 완전 독립을 선언했다. 불가리아 왕국 군주의 장남이자 왕위계승자의 칭호가 투르노보 공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반(反)파시즘 운동의 최대 거점이었다.
벨리코 투르노보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3개의 언덕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주요 관광 명소는 구시가지와 언덕 주변에 집중되어 있으나 도시로서의 기능은 주로 신시가지에서 이루어진다. 시내 중심은 9월 9일 광장으로 광장 한가운데에는 ‘불가리아 어머니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신시가지와 언덕 사이에 위치하며 디미트로프 거리가 블라고에프 거리로 이름이 바뀌는 지점에서부터 구시가지가 시작된다. 구시가지에서는 민족적인 양식의 가옥들과 벨리코 투르노보 특유의 전통 공예방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벨리코 투르노보 버스터미널 부근
숙소 앞이 공원이라 그 공원을 가로 질러 가면 벨리코 투르노보의 구시가지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한가로이 공원을 배회하면서 오늘 저녁에는 그냥 배회하면서 시가를 둘러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공원에 꽃이 핀 나무
숙소 호텔
거리를 배회하며 구경하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들어간 레스토랑의 경치가 그만이었다. 비록 창문을 통해서 보는 경치지만 벨리코 투르노보의 진면목을 다 보는 것 같았다. 얀트라강이 휘어져 흐르는 물돌이 마을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그 물돌이의 땅에 서 있는 미술관과 아센기념비가 보이는 곳이었다. 조용히 앉아서 말없이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즐기며 저녁을 만끽했다. 여기서 한 가지 흠이라면 어디에서나 젊은이들의 치기는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 몇 명이 모여서 주변은 생각하지 않고 너무 떠들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귀에 거슬렸다. 좀 자제했으면 하는 느낌이었으나 그냥 지나치고 경치만 즐겼다. 경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 새 어둠이 몰려와서 늦은 시간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레스토랑 창으로 보는 얀트라강이 굽어 흐르는 모습
멀리 보이는 미술관과 아센 기념비
공원에 있는 제 1차 서계대전 전몰 용사 기념탑
다음 날 벨리코 투르노보의 차레베츠요새로 가기 위해서 아기자기한 시내를 걸어 갔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가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아침을 우리처럼 일찍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느지막하게 문을 열고 대신에 밤에는 제법 늦게까지 영업을 하거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문도 열지 않은 가게 거리를 지나 요새로 갔다.
구시가지의 건물들
요새로 가는 도중에 보는 요새 맞은 편의 마을 풍경
성녀 강탄 교회
전통적인 옛 건물
제법 긴 길을 걸어서 요새에 도착했다.
중세 불가리아의 도시는 언덕에 지어진 요새와 산기슭에 펼쳐진 주거 지역 및 상점들로 구성되었다. 요새는 천험의 땅에 건설되었고, 그러한 도시의 요새와 거주지의 구조는 수도 투르노보를 기반으로 하였다. 핵심적인 요새인 투르노보는 마을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고, 언덕에는 요새와 요새화한 수도원이 세워졌다. 가장 높은 곳에 차레베츠 요새가 구축되었고 내부에는 궁전, 수좌주교구 교회, 귀족들과 그들의 하인들의 거주구들이 세워져 있었다. 도시 거주민은 다양하였으며, 하층민들은 요새 밖 얀트라 강둑에 거주하였다. 벨리코 투르노보에 있는 차베레츠 언덕은 트라키아인과 로마인들의 정착지로, 비잔틴시대인 5세기와 7세기 사이에 이 언덕 위에 처음 요새가 건립되었다. 요새는 8세기와 10세기에 불가리아와 슬라브인들에 의해 재건축되었으며, 12세기 초 비잔티움제국에 의해 다시 요새화되었다. 불가리아 제 2왕정 때 최고의 부흥기를 맞이하였으나, 139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점령되어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을 맞이하여 1930년부터 1981년까지 복원한 모습이다.
현재는 400개 이상의 주택, 18개의 교회, 여러 개의 수도원, 상점, 성문과 타워 등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요새의 벽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이 요새는 밤이 되면 불가리아의 주요 역사를 빛과 소리로 표현하는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보지를 못했다.
요새의 전경 - 맨 위에 성당이 보인다.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 입구
많은 사람들이 이 요새를 보기 위해 북적거렸다. 또 우리나라와 같은 체험학습인지 봄소풍인지 모르겠으나 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인솔을 받으며 이 요새로 가고 있었다. 요새를 돌아보는 도중에도 이 학생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교사들이 이 요새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보는 요새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
천험의 요새라 이 입구만 방어를 잘 하면 요새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이 입구를 제외하고는 절벽과 강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곳이다. 제 2차 불가리아 제국 시절에는 도개교로 만들어 요새 안으로 진입을 방어하였다.
요새 맞은편 마을
요새의 여러 모습
요새에서 보는 요새 밖의 마을
종들
요새의 성벽
요새의 맨 위에 있는 성모 승천 대주교 성당
이 성당은 11-12 세기에 지어졌는데 역시 1393년에 소실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복원되어 요새 안에서 가장 완전한 건물로 남아 있다.
내부의 성화
요새에서 보는 구시가지쪽 풍경
요새의 여러 유적
요새 성벽
요새 망루의 내부
망루에서 보는 요새 밖의 트라페지차 마을 풍경 - 얀트라강이 굽어 흐른다.
요새 밖 마을의 방어용 요새
요새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요새에서 보이는 요새 밖의 마을로 갔다. 강을 사이에 두고 요새와 거리를 두고 있는 요새 밖 마을은 외적의 침입에서 일차적인 방어용 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강 주변에는 옛날의 방어용 진지같은 것이 많이 보였다. 강을 건너오는 적을 막기 위해서 일반 평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요새 밖 마을과 요새를 연결해 주는 현재의 다리
조금 위에 있는 옛 다리
요새 밖에서 보는 요새
요새 밖 마을의 모습
요새와 요새밖 마을을 구경하고 아침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간다. 가면서 보니 아침에는 문을 열지 않았던 공방들이 모두 문을 열고 기념품을 팔고 있다. 공방에서는 직접 장인들이 여러 수제품의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 거리가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아라는 거리다.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아는 전통 가옥이 즐비한 라코브스키 거리(Rakovski St.)에서 게오르기 키르코브 광장(pl. Georgi Kirkov)까지 이어지는 공예방 거리다. 차르시아는 불가리아여로 시장을 의미한다. 라코브스키 거리 양옆으로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한적하게 산책하며 둘러보기 좋다. 입구에는 거리의 지도가 붙어 있다. 장인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공방이 대부분으로 주얼리 아티스트, 유리작가, 금속공예가, 도예가, 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이 직접 작품 활동을 하며 상점을 운영하고 있기에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다. 품질은 보장할 수 있다지만 가격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장인이 직접 작업하고 있는 모습
여러 목공예품
사모보드스카 차르시아 거리
다시 보는 아센기념비와 미술관
얀트라강이 U자 모양으로 휘감고 지나가는 곳에 물돌이 섬처럼 남겨진 땅에 1985년에 아센기념비가 세워졌다. 제 2차 불가리아제국은 이반 아센 2세를 거치면서 최전성기를 누리며 번창했다. 이를 기념하여 800주년이 되는 해에 기념비를 세웠다. 중앙의 칼은 제 2차 불가리아 제국의 힘과 번영을 상징한다고 한다.
기념비 뒤에 있는 미술관은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1934년에 개관라였으며 불가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벨리코 투르노보를 하루 종일 걸어다니멱 구경을 하고 나니 이제 좀 피곤하였다. 벌서 여행을 시작한 지가 한 달이 지났고 앞으로도 한 열흘은 더 다녀야 하는데 이제 제법 피로가 쌓인 것 같다. 이럴 대는 휴식이 최고다. 일찍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 잔하고 잠자리로 향한다. 내일은 다시 소피아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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