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12코스(쉬미항 - 나리방조제 - 우수영국민관광단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12코스는 아름다운 진도의 마지막 코스로 쉬미항을 출발하여 진도의 아름다운 해안을 즐기며 느긋하게 걸어 나리방조제를 지나 건배산으로 올라가 높지 않은 산을 걸으면서 보는 진도의 앞 바다는 너무 아름답다. 산을 내려와 조금 걸으면 녹진마을이 나오고 여기서 진도대교를 지나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 이르는 22.2km의 제법 긴 길이다.

 

12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부터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집 식당 덕분에 아침을 느긋하게 잘 먹었다. 길을 걸으면서 아침을 먹은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나의 여정에 맞추어 영업을 하는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첫 출발이 너무 즐겁다.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기 시작하니 비가 조금 오기 시작한다. 장기 기상예보에 의해 오늘은 비가 온다는 것을 미리 예상하였기에 우의를 겸할 수 있는 웃옷을 꺼내어 입고 길을 떠났다.

 

쉬망항 풍경

 

여객선터미널

 

날이 흐린 진도 바다 풍경

 

길가의 표지로 진도개를 이용한 문구들

 

청룡어촌체험마을 표시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면 나리방조제 이정표가 나타난다. 진도군 군내면 나리에 있는 나리방조제는 진도 간척사상 소포 간척 다음으로 규모가 큰 사업장으로, 나리방조제에는 이미 건설된 나리2방조제와 군내지구에 현재 건설 중인 나리방조제가 있다.

 나리방조제 안의 간척 면적은 900이며, 그 중 464가 개발되었다. 나머지 436에 군내호(郡內湖)를 수원공으로 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나리방조제의 길이는 총 3.5㎞로 매우 길다.

 

이정표

 

 길을 계속 가니 뜻밖에 진도고니류도래지가 나오고 그 부근을 공원으로 조성한 백조호수공원이 나온다. 그렇게 큰 특징이 있는 공원은 아니고 고니류가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곳으로 나리방조제로 인하여 생긴 군내호를 앞에 두고 있다.

 

백조호수공원 풍경

 

나리방조제와 군내호

 

 나리방조제를 지나면 높지 않은 건배산으로 올라간다. 해안만을 걷다가 산으로 가니 조금은 힘이 든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산을 올라가는 것도 걷는 여정에는 좋은 변화다. 너무 평지길만 걸으면 재미가 없다. 더구나 산 위에서 멀리 보는 바다의 모습은 가까이서 볼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축사의 소

 

건배산의 범바위 둘레길 표시

 

범바위

 

건배산에서 보는 여러 풍경

 

 건배산은 높지 않은 산으로 처음에는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올라갔다. 그런데 산에는 작은 여러 설화들이 표지에 설명이 되어 있어 작은 재미를 느끼며 걸었다. 또 건배산을 걸으며 보는 오른쪽과 왼쪽의 진도 바다는 바다 가를 걸으면서 보는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라고 전면에는 멀리 진도대교가 보여 이제 이 코스도 거의 다 왔음을 실감한다.

 

건배산을 내려와 조금 가니 녹진마을회관이 나온다. 이제 거의 다 온 것이다.

 

녹진마을회관

 

 녹진마을 지나 진도대교 쪽으로 가면 녹진버스정류장 부근에 이충무공승전공원이 있다.

 

 진도대교 좁은 해협이 울돌목으로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히며 좁은 해협을 통과하면서 울음소리를 낸다하여 '울돌목'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울돌목의 빠른 물길을 이용하여 이순신장군이 '명량대첩'의 대승을 거두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여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 해협을 앞에 두고 이충무공의 자취를 기억하고자 만든 '이충무공승전공원'이 있다.

 

이충무공승전공원

 

명량대첩해전도

 

진도대교의 모습

 

울돌목 주말장터

 

구진도대교

 

 구진도대교를 건너 우수영국민관광지로 가는 길에 여러 위락시설이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스카이 워크

 

 

 여기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서 12코스는 끝이 난다. 지난 번에 5코스를 걸으면서 이 관광단지를 지나 별다른 느낌을 가지지 않고 여정을 마친다.

 

 이 여정을 마치면서 상당히 이상한 점을 뱔견하였다. 녹진버스정류장 옆에는 숙박을 할 수 잇는 곳과 식당도 많이 있어 편리하고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왜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 종착지를 정하였는지가 의문이다. 이곳에서는 숙박을 하기도 쉽지 않고 시외버스를 이용하기도 불편한 곳인데, 너무 현장의 편리함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진도를 한 바퀴 도는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서해랑길 11코스(가치버스정류장 - 대홍포방조제 - 쉬미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11코스는 가치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금노항을 지나서 이름도 아름다운 진도낙원해안로를 따라 해안의 경치를 즐기면서 걸으면 대흥포방조제에 이른다. 방조제를 돌아 나가 조금 가면 나오는 쉬미항에서 이 코스가 끝이 나는 22km의 길이다.

 

길가의 11코스 안내판

 

 

 11코스의 안내판 옆에 있는 가치보건진료소를 지나서 길을 가면 파밭이 많이 보인다. 진도를 한 바퀴 빙 돌면서 많이 보는 것이 예상하지 못한 유채와 파다. 더구나 대파에는 파꽃이 제법 많이 피어 있는 광경을 본다.

 

꽃이 핀 대파들

 

 농촌 길을 따라 제법 가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 해안 길에 '진도낙원해안로'라는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진도의 해안을 따라가게 만들어 놓은 해안 길이다. 차도에는 거의 차들이 다니지 않지만 인도는 따로 만들어서 안전을 확보하고 있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가면서 진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피로를 잊고 계속 길을 간다.

 

여러 입간판

 

 진도낙원해안도로를 따라 가다가 길 건너편을 보니 등꽃이 보인다. '벌써 등꽃이 피는 계절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올해는 봄꽃이 제 시간을 맞추어 피는 것을 제대로 못 보았음을 느낀다. 작년에는 길을 걸으면서 봄꽃이 차례로 피는 모습을 즐기면서 걸었는데 올해의 봄꽃은 시간을 잊어버린 것같이 제 멋대로 피고 있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우리에게도 닥친 것 같아서 잠깐 심란하였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등꽃을 보니 즐거웠다..

 

길가의 등꽃

 

진도낙원해안도로에서 보는 진도 앞 바다 풍경

 

 해안도로를 잠시 벗어나 안쪽으로 길을 따라 걸으니 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이 보인다. 무엇인가 모종을 심고 있어 무엇을 심는지 물으니 쪽파를 심는다고 하였다. 아마 진도의 곳곳에 파밭이 보아는 것을 보니 진도의 땅이 파 종류가 잘 자라는 것 같아 보였다. 모종을 심는 여인들이 나에게 여행 중인가를 물어 그렇다고 하니 어디에서 왔는지도 묻고 여러 농담을 하여 웃었다. 먼 길을 겯는 중에 이런 소박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매우 상쾌한 일이다. 인사를 하고 내 길을 재촉한다.

 

모종을 심고 있는 아낙들

 

길가의 수호석

 

 

 길을 계속 따라 가면 보전방조제와 거제방파제가 나온다. 동해를 걸으면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으로 남해와 서해는 곳곳에 바다를 막은 방파제를 본다. 이 방파제로 방파제 안쪽에는 넓은 들판이 생겨 농사응 짓기도 하고 많은 습지가 조성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대 급부로 많은 갯벌이 사라졌다.

 

방파제로 막은 바다의 모습

 

소포방조제 표지

 

 진도낙원해안도로를 걸으며 진도바다 풍경을 즐겼지만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길을 걸으면서 앉아서 풍광을 즐기면서 쉴 곳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길가에 공지가 있는 곳에 벤치를 설치하여 쉬어 가게 했으면 더 좋을 것인데 그런 휴식 공간이 없었다. 쉴 곳이 없어 그냥 길가에 앉아서 쉬고 있다가 서울에서 살다가 진도로 내려와서 산다는 여인을 만나 잠깐 이런 불평을 하고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나 쉬미항으로 간다.

 

 진도군의 서북쪽 해안에 있는 봄철 유채꽃과 목련이 아름다운 마을에 위치한 어촌정주어항(어촌의 생활근거지가 되는 소규모 어항으로, 어업기지 또는 해상교통·관광·유통에 적당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인 쉬미항은 15척 미만의 어선들이 항구를 이용하는 조그마한 어항이지만, 진도의 항구 중 주변 부속 섬으로 정기선이 다니는 곳은 진도항과 쉬미항뿐으로 진도항 다음으로 큰 항구가 바로 쉬미항이다. 쉬미항에서는 주로 진도의 북서쪽 섬들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혈도(공도, 구멍섬), 광대도(사자섬), 송도(솔섬), 작도도(잠자리섬) 등 가사군도(加沙群島)를 두루 유람하는 관광유람선을 이용할 수 있다.

 

쉬미항의 모습

 

 쉬미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경이었다. 처음 여정을 계획할 때 쉬미항에는 숙박업소가 없어 여기서 진도읍으로 나가 숙박을 하고 다시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길을 오다 보니 유람선터미널 앞에 민박 집이 한 곳이 있다. 그래서 물어보나 숙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식당까지 운영하여 밥을 먹기에 편리했다. 아침도 일찍 6시부터 영업을 한다고 하여 뜻밖에 여정이 편리하게 되었다. 잠시 쉬다가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고 휴식을 청하여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서해랑길 10코스(서망항 - 봉암저수지 - 가치버스정류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10코스는 서망항을 출발하여 눈물의 현장인 진도팽목항을 지나서 해안을 따라 걸어 죽도를 바라보는 죽도 선착장에서 작은 산 언덕을 올라가 제법 길을 걸어 봉암저수지를 지나 가치버스정류장까지 가는 15.9km의 길이다.

 

10코스 안내판

 

원래 숙박하려던 민박집

 

 서망항에서 숙박을 하지 못하고 임회면 소재지로 나가서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다시 서망항으로 돌아와서 10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서해랑길을 걸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식사를 할 곳과 숙박지를 찾는 일이 너무 고달프다는 것이다.

 

서망항의 상징 꽃게상

 

 

 서망항을 떠나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슬픈 추억의 장소로 유명해진 진도팽목항이 나온다. 진도항 가까이 가면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시는 이 같은 슬픔이 없어야 하는데 하면서 길을 간다.

 

진도팽목항의 추모 리본

 

 진도군 서남쪽 끝에 임회면에 팽목리에 있는 연안항으로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이다. 과거에는 목포-팽목-제주도를 잇는 항구였으며, 현재는 진도 근해의 섬, 그중에서도 팽목과 조도군도를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가 되고 있다. 2016년 세월호 사고의 수습 항구로 사용되면서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팽목항이라 불리다가 20132월 진도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팽목항이라는 명칭도 통용되고 있다.

 

 

 진도항의 슬픈 리본을 뒤로하고 길을 걸으면 팽목마을이 나오고 스 해안을 따라 가면 죽도선착장이 나온다.

 

 

 팽목마을을 지나 해안을 걸어 가면 팽목방조제가 나온다.

 팽목리에 았는 팽목방조제는 높이는 4.7m, 길이는 1,755m이다. 팽목리라는 명칭은 예전에 팽목구미라는 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마을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팽목리에 속해 있는 도리섬에 팽나무가 많이 있어 팽목(彭木)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팽목방조제는 임회면의 동쪽과 지산면의 남쪽에 각각 접하고 있다. 팽목방조제 사업으로 넓은 간척지가 개발되어 여러 마을의 농지 면적이 확대되었으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 많이 나오던 낙지·꼬막·장어 등의 해산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간석지의 갈대밭

 

마사선착장 표시

 

마사선착장 위 언덕에 세월호 추모 표지

 

 

마사선착장에서 그 앞에 펼쳐지는 비극의 현장 바다를 보며 언덕을 넘어 산길을 간다.

 

멀리 보이는 암봉

 

 길을 따라 가며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멀리에 암봉이 보인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내가 보는 암봉은 어느 아름다운 산의 암봉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무언지 모르게 친근감이 드는 암봉이라 길을 가면서 자꾸만 쳐다보게 하였다.

 

멀리 보이는 암봉

 

봉암저수지

 

 

 봉암저수지를 지나 길을 따라 걸으면 길가에서 10코스는 끝이 나고 11코스의 안내판이 보인다.

 어느 듯 10코스는 다 걸은 것이다.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향한다.

서해랑길 9코스(귀성삼거리 - 윤고산사당 - 서망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9코스는 귀성삼거리에서 출발하여 윤고산사당을 지나서 고갯길을 올라가면 조그마한 동령개소공원이 나온다. 동령개소공원을 지나 고갯길을 내려오면 진도남도진성이 나오고 왼쪽으로 길을 따라 가면 서망항이 나오는 12.0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9코스 안내판

 

 

 길을 따라 조금 가니 '나절로미술관' 표지가 나온다. 진도에는 곳곳에 여러 예술촌이 나오는데 '나절로미술관'도 그 중 하나아.

 나절로미술관은 이상은 관장이 1993년 오랜 시간 버려져 있던 고향의 폐교를 구입하여 홀로 5천여 평의 운동장에 여러 꽃을 심어 가꾸어 매년 5월이면 미술관 천지엔 꽃과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지는 축제가 열린다.

넓은 자연 속에서 물이 흐르고 음악이 흐르고 흙으로 만든 찻집에서 관람객들과 미술관을 음미 한다. 고달픈 삶에 지쳐있는 도시인들에게 살아 숨 쉬는 여가의 공간으로 접할 수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에 들어가 여유를 가지려고 했는데 문을 닫아 놓아 아쉬움을 가지고 길을 계속 하였다.

 

나절로미술관

 

이정표

 

진도해안길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면 윤고산둑이 나오고 그 옆에 윤고산사당이 있다. 고산 윤선도는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1650년 굴포리 지역에 높이 3m, 길이 380m의 방조제를 쌓아 100ha의 농지를 조성한 다음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이후 진도 굴포, 남선, 백동, 신동 등 4개 마을 주민들은 이 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상 대대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은공을 기리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감사제와 당제를 지내왔다.

 

 1999년에 삼별초의 배중손 장군을 기린다며 지역 유지들이 같은 장소에 배중손 사당을 짓고 동상을 세워 불편한 동거를 해왔으나, 이에 반발한 여러 단채들이 소송까지 진행해 법원 조정을 통해 2003년 배중손 사당 이전에 합의했으나 이후 이전이 진행되지 않다가 2021년에 배중손 동상과 사당은 용장성으로 옮겨 그곳에 마련되었는데 지금도 인터넷에서 배중손 사당을 검색하면 이곳이 나오기도 한다.

 

 고산이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생긴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산은 이곳에 제방을 쌓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쌓으면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제방을 쌓고 있는 곳으로 큰 구렁이가 기어가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고산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새벽녘 사립문을 열고 나가 제방을 쌓는 곳을 보니 꿈에 보았던 구렁이가 기어가던 자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었다. 고산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구렁이가 지나간 자리에 제방을 쌓으라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곳에 뱀의 지나간 형상대로 석축을 쌓도록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는 둑이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곳의 지형이나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쌓은 결과 무너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윤고산둑

 

윤고산사당의 여러 모습

 

윤고산둑의 모습

 

 

 길을 계속해서 가니 조그마한 언덕 위에 동령개소공원이 나온다. 조그마한 공원인데 시와 서, 화를 새긴 돌 비석이 곳곳에 보여 남도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바다를 보는 경치도 아름다워 잠시 휴식을 하고 지나간다.

 

동령개소공원의 모습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에 성이 보인다. 남도진성이다. 고려 배중손이 진도에 와서 몽골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여겨지며, 현재 남아 있는 성은 1438년 이후에 축성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석성은 본래의 규모가 둘레 1,233, 높이 8척이 되었으며,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동문, 서문, 남문과 성터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벌로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눈으로 보면서 지나간다.

 

남도진성의 전경

 

 남도진성을 지나쳐 조금 가면 서망항이 나오고 9코스는 끝이 난다.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서망항은 서망리에 있는 항구라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서망항은 가을 꽃게잡이가 풍어를 이루는 전국 꽃게 주산지며 꽃게의 상품성이 좋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곳이다.

 

 

 

 서망항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으니 민박 집이 모두 만원이라고 하여 숙박을 할 곳이 없다. 사전에 여러 곳을 검색하여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 길을 떠나기로 예정했는데 착오가 생겼다. 진도항으로 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임회면에 나가기로 결정하고 택시를 호출하여 임회면으로 간다.

 

서해랑길 8코스(운림산방주차장 - 송정저수지 - 귀성삼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8코스는 운림산방주차장을 출발하여 농촌 길을 걸어 죽림어촌체험마을을 거쳐 아리랑마을을 지나 귀성삼거리에 도착하는 24.0km의 제법 긴 길이다.

 

8코스 안내판

 

 아침 일찝 일어나 가볍게 세면을 하고 아침을 먹을 곳이 없어 공복으로 길을 떠난다. 길을 걸으면서 아침을 제대로 먹은 경우는 손을 꼽을 만하다. 거의 대부분이 그냥 길을 가다가 가지고 간 음식으로 아침을 적당하게 때운다. 그래서 전날 저녁을 항상 배불리 먹어야 한다.

 

 8코스는 안내판에서는 길을 따라 운림예술촌을 한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길을 가리킨다.

 

운림예술촌

 

 조금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운림예술촌이 나오고 옆에 제법 잘 정돈된 큰 공원이 있다. 표지판을 보니 운림삼벌초공원이다. 진도의 향토사에서 삼별초를 빼고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곳곳에 삼별총하 관련된 설화와 이야기가 전해지고 진도군도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곳곳에 기념이 되는 명칭을 붙여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운림삼별초공원의 모습

 

맞은편에서 보는 운림예술촌

 

 운림예술촌을 지나 농촌 길을 조금 걸어가서 산으로 올라간다. 물론 높은 산이 아니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산길을 올라가니 임도 양쪽으로 표고나무목이 울창하게 보인다. 조그마하게 표고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넓이에 표고나무목이 계속 보인다. 이곳이 표고가 잘되는 모양이었다.

 

표고나무목

 

길가 암벽에 붙어 있는 서해랑길 표시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집

 

 

 산길을 내려와 마을길에 들어서서 마을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가져간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니  백구기념공원이 있었다. 기념공원옆에는 의신들소리비가 있고 백구문화센터 경내에는 돌아온 백구상이 있다.

 

 돌아온 백구는 1993년에 대전의 애견가에게 팔려갔으나 원래 주인을 그리워하여 7개월 만에 약 300km의 거리를 되돌아 진도로 돌아온 진돗개 백구 이야기로 진돗개의 충성심과 귀소성(歸巢性)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원래 주인의 집에 돌아왔을 때는 오랜 시간의 귀가 탓에 심하게 말라 있었으나 이후 가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원래 가족들과 살다가 12살이 되던 해인 20002월에 사망했다. 진도군은 돌아온 백구를 기리기 위해 200411월 돈지마을에 '돌아온 백구상'을 만들었고, 2009829일에는 돈지마을에 돌아온 백구시비를 세웠다.

이 이야기가 메스컴에 의해서 유명해지면서 백구를 모델로 한 광고와 백구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동화(돌아온 진돗개 백구), 애니메이션(하얀마음 백구, SBS 방영), 게임(하얀마음 백구, 하얀마음 백구 2, 하얀마음 백구 3)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당시 기자는 대전에서 돌아온 진도개 백구를 전국최초 보도를 하면서 대전지역 애견가에게 팔려간 것처럼 보도를 했다. 그러나 실상은 애견가에게 팔려간 것이 아니고 원 주인인 할머니가 보신탕업자에게 팔았고 팔려가는 과정에서 탈출해 돌아온 것이라고 한다. 진도개 백구는 진도군에서 매년 2차례 실시하는 진도개심사판정에서 도태견 일명 잡견으로 판정받고 도태대상이 되어 대전 상인에게 팔려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대전의 애견가에게 팔려갔다는 것은 기자의 과장보도였다.

 

 그런데도 당시 각종언론매체들이 연일 백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배경에는 자신을 판 옛 주인을 찾아온 백구를 통해 부모조차 버리는 우리사회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묵시적인 반성과 아쉬움이 많이 가미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백구 모양으로 만들어진 백구문화센터

 

 여기서 농촌 길을 따라 조금의 언덕으로 가니 '삼별초 궁녀 둠벙'이 나온다. 사실관계는 과외로 하고 우리 역사의 슬픈 한 단면을 보는 것이다.

 

 삼별초 궁녀둠벙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있으며, 20011030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유형유산) 4호로 지정되었다.

 삼별초가 추대했던 承化侯 王溫은 지금의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에서 붙잡혀 논수골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피난 중이던 여기급창 등 궁녀들은 창포리에서 만길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만길재를 넘다 몽고군에게 붙잡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언덕을 따라 내려가 지금의 둠벙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백제가 망할 당시 3천 궁녀가 부여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과도 매우 흡사한 이야기로 충절과 정절을 지킨 대표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 둠벙에서 여인네의 울음소리가 슬피 들려와서 얼마되지 않은 예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이곳을 지나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이곳 둠벙을 가리켜, 이후 진도사람들은 '여기급창둠벙'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 둠벙의 수심은 매우 깊어서 절굿대를 넣으면 우수영 또는 금갑 앞바다로 나온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삼벌초 궁녀둠벙

 

유채꽃 들판

 

파밭

 

멀리 보이는 바다

 

죽림어촌체험휴양마을

 

남도국악원 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길을 계속해서 남도국악원 가까이에서 오른쪽을 보면 진도아리랑마을의 장구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아리랑이라는 곡조를 모르는 우리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아리랑을 기념하여 진도에는 아리랑마을이 있다

진도군에서 여귀산 자락에 아리랑과 관련된 것들을 모아서 관광단지를 조성한 마을이다

우리나라 각지에는 다양한 아리랑 곡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3대 아리랑으로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지칭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아리랑마을관광지

 

국립남도국악원 전경

 

 조금 더 가면 국립남도국악원이 나온다. 그저 지나가면서 보는 국악원은 적막하다. 200477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수려한 산세의 여귀산을 등지고 드넓은 남해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개원한 국립남도국악원은 34,258평의 부지에 연건평2,886평 규모로 자리하고 있으며, 600석의 국악전용 대극장 진악당(珍樂堂), 1,2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달빛마당”, 120석 규모의별빛마당”, 160여명의 인원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춘사랑채(舍廊寨)”를 비롯하여 개인 연습실, 단체연습실을 갖춘 사무 연습동과 식당, 카페테리아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립남도국악원은 국악 전문 연수와 공연을 통한 국악 보급 활동, 국악을 통한 건전한 여가문화 선도와 이를 통한 국민정서 함양, 문화소외지역 주민에게 국악문화를 체계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지역 문화예술 관광자원화의 토대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움직이는 미술관

 

 길을 가다가 여러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기념관 등등 예술의 향기가 풍기는 건물들을 본다. 진도가 남도 예솔혼의 고장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곳들을 지나니 이 코스의 끝자락에 도착한다.

 가볍고 쉬고 다음 길을 재촉한다.

서해랑길 7코스(진도용장성 - 진도기상대 - 운림산방주차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코스는 진도용장성을 출발하여 잠시 농촌 길을 걷다가 첨찰산으로 올라간다. 첨찰산 정상부에 있는 진도기상대입구에서 산을 내려가면 운림산방이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2.2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첨찰산을 넘어가는 길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7코스 안내판

 

 용장성에서 6코스의 따라가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안내판을 찾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멀리를 보면서 찾아보니 제법 위 지점에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서 7코스를 따라가려고 하니 생각과는 다르게 밑으로 내려가게 인도한다. 길을 따라 내려가 농촌 마을길을 조금 걸어 갔다.

 

길가의 유채꽃 - 진도에 유채가 많이 보였다.

 

이정표

 

 농촌 길을 제법 가다가 보면 제법 큰 시내가 나온다 고군 5일장도 있는 곳으로 밥을 먹을 식당도 여러 곳이 보인다. 출발하기 전에 검색하여 여기서 점심을 먹으려고 생각하였기에 식당에 들러 배불리 점심을 먹였다. 속을 채우고 커피를 한잔하려고 아무리 찾아도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러려니 하고 길을 가니 뜻밖에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카페가 있었다. 아마 마을의 복지적 건물인 것 같은데 이야기마당이란 이름을 달고 조그마한 북카페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기분 좋게 들어가 커피를 한잔 청하여 느긋하게 마시고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뜻밖에 만난 카페

 

 

 계속 길을 가니 이제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가 나온다. 첨철산 임도다. 첨찰산은 해발이 485m로 높지 않으나 섬인 진도에서는 제일 높은 바위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와 진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진도의 진산이다.. 백제시대의 성으로 추정되는 산성(山城)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설치한 봉수대의 유적이 있다. 산 밑에는 유명한 운림산방이 있고, 그 옆의 쌍계사와 운림산방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07)에 둘러싸여 있다.

 

여러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

 

정상입구

정상 입구의 이정표

 

 첨철산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진도기상대가 있고 여기서 정상으로 가는 길과 운림산방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있다. 등산을 목적으로 오지 않았기에 정상을 눈앞에 두고 그냥 운림산방 쪽으로 발을 돌렸다.

 

운림산방 가는 길에 보는 숯가마터 - 곳곳에 보인다.

 

운림상방 가는 길

 

 운림산방으로 가는 길은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내리막길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길이다. 원래 산길이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려운 것임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항상 내려오는 길은 조심해야 한다.

 

 산길을 다 내려오면 '진도아리랑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아리랑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진도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비

 

 여기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운림산방에 도착한다. 여기에 도착하니 오후 4시경이 되었다. 매번 말하지만 이 지방에서 숙소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숙소가 있으면 가는 길을 멈추고 숙박을 해여 한다. 그래서 오늘 여정은 이곳에서 멈추고 숙박을 하기로 하고 먼저 7코스의 종점을 찾아 가니 7코스의 종점은 쌍계사로 들어가는 산문 입구로 여기에 8코스 안내판이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길을 건너가며 숙박할 곳을 찾으니 모두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휴게소에 가서 주인장에게 물으니 근처에 숙박할 곳이 없다고 한다. 난감하여 택시를 불러 타고 진도읍으로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사정을 이야기하여 민박을 할 수 없느냐고 하니 자기 집이 전에 민박을 했는데 요즈음은 하지 않아 방안에 모든 편의시설물을 제거하였다 한다. 그래도 자고 갈 수만 있다면 좋다고 하여 그 집에 방을 얻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8코스 안내판

 

 숙소를 정하였기에 배낭을 풀고 운림산방으로 갔다. 경로 우대로 입장료는 면제받고 들어가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예전에 왔을 때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운림산방은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남화의 대가이던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만년에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사랑채인 화실의 당호(堂號)이다.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이곳에는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더욱 유명하다.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후손들이 계속 이어져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는 시(), (), ()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었는데,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재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하게 된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 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전시관에 있는 그림 중 마음에 든 것

 

운림산방 마루에서 보는 운림지

 

운림산방

 

운림산방 표석

 

 운림산방을 돌아보고 식당에 둘러 저녁을 먹고 다음 날을 위해 먹을거리를 장만하였다. 다음 날의 길을 미리 보니 중간에 밥을 먹을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거리와 점심거리를 미리 장만해야만 했다. 남파랑길을 걸을 때도 먹을 곳을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서해랑길도 이 지방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인 먹고 자는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먹거리를 장만하고 숙소로 가니 TV도 없고 하여 폰으로 여러 가지를 보다가 일찍 잠을 청해 들었다.

 

서해랑길 6코스(녹진관광단지 - 벽파항 - 진도용장성)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6코스는 진도코스의 시작으로 녹진관광단지를 출발하여 해안을 돌아 벽파항에 도착한 뒤에 해안을 더나 용장성까지 가는 15.5km의 길이다.

 

6코스 안내판

 

 내가 거주하는 곳에서 6코스가 시작하는 진도는 너무 멀다, 그래서 전날 집을 출발하여 녹진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서기로 하고 녹진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쉬었다.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출발하여 녹진관광단지에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녹진관광단지에 있는 진도대교준공기념탑

 

 

 서해랑길 6코스 안내판이 있는 광장에서 진도타워 방향으로 직진해서 조금 가면 언덕을 올라가게 한다. 제법 경사가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진도타워가 나온다.

 

 

 7층 전망대에 오르면 울돌목과 셋방낙조, 영암 월출산, 해남 두륜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광장의 랜드 마크인 진도타워는 9시 이후 오를 수 있다고 하여 포기하고 주변의 경관을 즐겼다. 강강술래 터는 이순신 장군이 적으로 하여금 우리 군사가 많게 보이려고, 망금산에 토성을 쌓고 부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남장을 시켜 산봉우리에 원을 그리며 반복해 돌게 하자 왜적은 대규모 군사이동으로 오인해 혼란을 일으켰다.

 

진도타워광장과 진도타워

 

 망금산(106.5m) 정상 진도대교 근처에 있는 진도타워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고 진도군 관광의 랜드 마크로 군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건립되었다. 진도타워는 여러 시설물이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여기서 바라보는 진도 앞 바다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진도타워에서 보는 진도대교

 

 진도대교 밑의 울돌목은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순우리말이며, 한자어로는 명량(鳴梁)해협이라 한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의 폭은 294m 정도이나,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가 쳐서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들 정도라는 뜻이라 한다.

 

아침 바다 안개가 자욱한 진도 바다

 

 진도타워에서 진도 바다의 풍광을 보며 내려오면 무궁화동산이 나온다.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무궁화와는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무슨 꽃이지 의아해 했는데 이름을 적어 놓은 팻말을 보고 무궁화의 여러 종류임을 알았다.

 

 무궁화(無窮花 Hibiscus syriacus)는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2~4m의 아담한 관목으로 정원수나 울타리로도 이용된다. 7~10월의 약 100일 동안 매일 새 꽃이 핀다. 히비스커스(Hibiscus)는 쌍떡잎식물로 아욱목 아욱과 무궁화속에 속한 식물의 총칭한다. 높이 2~5m로 열대성 상록 관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꽃은 크고 빛깔은 분홍색, 붉은색, 노란색 따위가 있다. 통 모양으로 된 많은 수술이 긴 암술을 감싸고 있다. syriacus는 시리아를 뜻하므로 원산지라 하나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을 자생지로 본다.

 미국 하와이 주에서 3,000종 이상이 개발되었고 주화(州花)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인 무궁화에 관한 시 중에서 하나만 소개한다.

 

 홍근화(紅槿花)  - 서거정(徐居正) -

紅槿花開秋更催(홍근화개추경최) 붉은 무궁화 피었는데 가을에 또 피려 하네

朝開暮落復朝開(조개모락복조개) 아침에 피어 저녁엔 지고 아침마다 다시 피네

可憐續續開無盡(가련속속개무진) 어여쁘게 끊임없이 피어 끝이 없으니

猶勝情人去不來(유승정인거불래) 가고는 아니 오는 임보다 한결 낫구나

 

다양한 부궁화로 구민 무궁화동산

 

진도갯벌습지보호구역 표지

 

갯벌습지

 

습지보호구역의 습지

 

 

 바다가 길을 걸어 방파제를 지나면 벽파마을로 가는 길이 나오고 벽파마을이 나온다. 벽파마을 주변의 언덕 정상부에는 정유재란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가 나오고 벽파정이 나온다. 

 

이충무공전첩비

 

 벽파진 전첩비(碧波津 戰捷碑)는 정유재란 때 이충무공의 가장 통쾌한 승리인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1129일 건립되었다. 전첩비는 높이 3.8m, 1.2m, 두께 58cm 이며, 머릿돌 높이 1.2m, 1.2m, 길이 2.1m이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이곳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 언덕 위에 솟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산 꼭대기를 거북모양으로 깎은 후 받침돌로 그 위에 화강석의 비를 세웠다.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진도벽파정(珍島碧波亭)은 고려 희종(熙宗) 3(1207)에 주로 중국을 왕래하는 국제적 사절을 위로하기 위하여 창건한 정자이다. 벽파정은 고려 조선조에 걸쳐 문학누정으로 알려지며 많은 시인묵객들이 거쳐 갔다. 1207년 진도의 관문인 벽파나루 언덕에 창건해 1465(조선 세조11) 중건되었지만 허물어지고 옛 자취만 남아 있었는데 진도군이 사업비 5억원을 투입, 고려시대 양식으로 정면 5, 측면 3칸의 벽파정의 역사를 고려해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복원했다. 벽파정은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본거지를 옮겨 여몽연합군과 회담 장소로 이용하는 등 대몽항쟁의 근거지와 함께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머물면서 전략을 세우고 수군을 정비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략적 요새로 알려져 있다.

 

 

 벽파정을 지나서 해안을 잠시 벗어나 농촌길로 들어간다. 소박한 농촌의 마을을 여러 지나면 용장성이 나온다.

 

용장성 가는 길 - 삼별초, 호국역사 탐방길 -

 

 

 제법 긴 임도를 걸어 도착한 곳이 용장성이다.

 

 진도 용장성 (珍島 龍藏城)은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였던 장소이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겨 40여 년을 삼별초가 중심이 되어 몽골과의 전쟁을 벌였으나, 원종 11(1270)에 고려가 몽골에 항복을 하였다.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던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承化候溫)을 왕으로 삼아 남쪽 진도로 내려와 궁궐과 성을 쌓고 몽골과의 전쟁을 계속하였다. 지금은 용장산 기슭에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성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고 고려의 왕실과 대립되는 궁궐이 만들어진 점에서 가치있는 유적이다.

 

배중손상

 

용장성의 여러 모습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났기에 여기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다. 주변을 돌아 보니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서해랑길을 걸으며 어려운 것이 편의시설이나 슈퍼 같은곳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점을 명심하고 미리 준비를 하고 가여 한다.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 안내판을 찾으니 잘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에 보인다. 7코스 안내판에서 OR코드를 찍고 길을 살펴보니 다시 아래로 가라고 한다. 그래서 7코스를 시작한다.

 

서해랑길 5코스(원문버스정류장 - 녹진국민관광단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5코스는 원문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하여 학동저수지를 거쳐 우수영귝민관광지를 지나면 해남이 끝난다. 여기서 진도대교를 건너가면 녹진국민관광지 광장이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2.0km의 짧은 거리다.

 

5코스 안내판

 

 원문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고 도로를 건너 5코스로 들어선다. 4코스가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동행한 개는 내가 쉬는 동안 내 곁에서 맴돌다가 내가 배낭을 메고 일어서니 자기가 앞장서서 간다. 마치 내가 가는 길을 알고 있듯이 앞장을 서서 나를 인도한다. 시간이 갈수록 묘하게 정이 가게 하는 행동을 계속한다. 나도 이제 친구와 같이 알아듣는 지도 모르면서 말을 건네며 길을 간다.

 

 아직 4월 초순인데도 날이 더워서 걸으면 땀이 나기 시작한다.

 

송정마을회관

 

 길을 가다가 송정마을회관에 도착하니 너무 더워서 옷을 갈아입기로 하고 배낭을 벗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를 따라온 개는 내 주위를 맴돌았다. 여기서 아마 마을 주민인 듯한 사람이 개를 보고 내가 데리고 온 개냐고 물어서 아니고 황산면 산소마을부터 나를 따라온 개라고 하니 조금 놀라면서 개줄을 잡더니 데리고 간다. 내 개도 아니기에 조금은 무신경했는데 무언가 마음속에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부터 나와 함께 동행하며 20여km를 함께 걸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잡혀가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꼈다. 하지만 내가 계속 데리고 다닐 수도 없기에 좋은 주인 만나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지내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주었다.

 

멀리 보이는 진도대교

 

 평범한 마을 길을 걸어가니 식수나 음료수를 구할 곳이 하나도 없다. 길을 계속 가다가 장포마을 노인회관이 보여서 들어가 좀 쉬어 가기를 청하니 마을 주민들께서 반가이 맞아주며 커피도 한잔 타 주어 맛있게 먹고 쉬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가다가 보니 손에 들고 있던 스틱이 없다 혹시나 해서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가 보니 없다. 아마도 앞의 송정마을회관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놓아두고 온 것이다. 먼 길이라 돌아 갈수도 없고 그냥 길을 간다.

 

명랑대첩기념공원 산책로 안내판

 

길을 계속 가니 멀리 진도대교가 보인다 어느 듯 거의 다 온 것 같다.

 

진도대교

 

 길을 가니 우수영국민관광지가 나온다. 우수영국민관광지는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1597년 충무공이 이룩한 임진왜란 최대의 승리를 거둔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옛 성지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해남군에서 1986년 해전이 벌어졌던 명량해협을 국민관광지로 지정하고 1990년에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에는 명량대첩탑, 명량대첩비, 어록비, 충무공유물전시관 등의 시설물이 있다. 공원내 전망대에서 명량해협과 진도대교를 비롯하여 당시의 전투 상황을 알 수 있는 상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은 명량대첩 현장인 울둘목을 역사의 산 교육장이자 호국을 주제로 한 관광지로 운영하기 위하여 전라우수영명량대첩공원 우수영관광지에 조성되었다. 명량대첩해전사 전시관은 판옥선을 모습을 본뜬 건물이다. 특히 외부공간에서도 현장을 볼 수 있도록 3층 전망시설을 갖추어 울둘목의 지리 지형을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2014년 영화 명량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해남 우수영 울돌목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명량대첩의 랜드마크와 교육·체험을 제공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해남군은 2016년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을 개관하였다.

 

우수영국민관광지의 여러 모습

 

 우수영국민관광지를 돌아보고 주변의 풍광도 보면서 길을 재촉하여 진도대교로 발길을 옮겼다. 진도대교(珍島大橋)는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와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녹진리(鹿津里) 사이의 울돌목해협(鳴梁海峽)에 놓인 한국 최초의 사장교(斜張橋)로 길이 484 m, 너비 11.7 m인 진도대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진도의 울돌목을 횡단하는 교량이다.

 

울돌목 위에 바다를 가로지르며 놓인 다리를 걸어가며 보는 울돌목의 물은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다리가 놓인 지점이 이렇게 물살이 빠른 곳이니 옛날에는 어떻게 건넜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대교

 

울돌목과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진도에서 보는 진도대교 - 진도개가 조형물로 서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면 바로 녹진국민관광지로 내려간다. 여기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다. 원래 계획은 6코스를 오늘 걷기로 하였는데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는 도중에 함께 걸었던 개와 헤어진 일도 마음에 계속 남았고, 스틱을 분실한 일 등등 상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을 여기서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진도읍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라 조금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