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8코스(운림산방주차장 - 송정저수지 - 귀성삼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서해랑길 8코스는 운림산방주차장을 출발하여 농촌 길을 걸어 죽림어촌체험마을을 거쳐 아리랑마을을 지나 귀성삼거리에 도착하는 24.0km의 제법 긴 길이다.
8코스 안내판
아침 일찝 일어나 가볍게 세면을 하고 아침을 먹을 곳이 없어 공복으로 길을 떠난다. 길을 걸으면서 아침을 제대로 먹은 경우는 손을 꼽을 만하다. 거의 대부분이 그냥 길을 가다가 가지고 간 음식으로 아침을 적당하게 때운다. 그래서 전날 저녁을 항상 배불리 먹어야 한다.
8코스는 안내판에서는 길을 따라 운림예술촌을 한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길을 가리킨다.
운림예술촌
조금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운림예술촌이 나오고 옆에 제법 잘 정돈된 큰 공원이 있다. 표지판을 보니 운림삼벌초공원이다. 진도의 향토사에서 삼별초를 빼고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곳곳에 삼별총하 관련된 설화와 이야기가 전해지고 진도군도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곳곳에 기념이 되는 명칭을 붙여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운림삼별초공원의 모습
맞은편에서 보는 운림예술촌
운림예술촌을 지나 농촌 길을 조금 걸어가서 산으로 올라간다. 물론 높은 산이 아니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산길을 올라가니 임도 양쪽으로 표고나무목이 울창하게 보인다. 조그마하게 표고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넓이에 표고나무목이 계속 보인다. 이곳이 표고가 잘되는 모양이었다.
표고나무목
길가 암벽에 붙어 있는 서해랑길 표시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집
산길을 내려와 마을길에 들어서서 마을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가져간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니 백구기념공원이 있었다. 기념공원옆에는 의신들소리비가 있고 백구문화센터 경내에는 돌아온 백구상이 있다.
돌아온 백구는 1993년에 대전의 애견가에게 팔려갔으나 원래 주인을 그리워하여 7개월 만에 약 300km의 거리를 되돌아 진도로 돌아온 진돗개 백구 이야기로 진돗개의 충성심과 귀소성(歸巢性)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원래 주인의 집에 돌아왔을 때는 오랜 시간의 귀가 탓에 심하게 말라 있었으나 이후 가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원래 가족들과 살다가 12살이 되던 해인 2000년 2월에 사망했다. 진도군은 돌아온 백구를 기리기 위해 2004년 11월 돈지마을에 '돌아온 백구상'을 만들었고, 2009년 8월 29일에는 돈지마을에 〈돌아온 백구〉 시비를 세웠다.
이 이야기가 메스컴에 의해서 유명해지면서 백구를 모델로 한 광고와 백구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동화(돌아온 진돗개 백구), 애니메이션(하얀마음 백구, SBS 방영), 게임(하얀마음 백구, 하얀마음 백구 2, 하얀마음 백구 3)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당시 기자는 대전에서 돌아온 진도개 백구를 전국최초 보도를 하면서 대전지역 애견가에게 팔려간 것처럼 보도를 했다. 그러나 실상은 애견가에게 팔려간 것이 아니고 원 주인인 할머니가 보신탕업자에게 팔았고 팔려가는 과정에서 탈출해 돌아온 것이라고 한다. 진도개 백구는 진도군에서 매년 2차례 실시하는 진도개심사판정에서 도태견 일명 잡견으로 판정받고 도태대상이 되어 대전 상인에게 팔려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대전의 애견가에게 팔려갔다는 것은 기자의 과장보도였다.
그런데도 당시 각종언론매체들이 연일 백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배경에는 자신을 판 옛 주인을 찾아온 백구를 통해 부모조차 버리는 우리사회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묵시적인 반성과 아쉬움이 많이 가미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백구 모양으로 만들어진 백구문화센터
여기서 농촌 길을 따라 조금의 언덕으로 가니 '삼별초 궁녀 둠벙'이 나온다. 사실관계는 과외로 하고 우리 역사의 슬픈 한 단면을 보는 것이다.
삼별초 궁녀둠벙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있으며, 2001년 10월 30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유형유산) 제4호로 지정되었다.
삼별초가 추대했던 承化侯 王溫은 지금의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에서 붙잡혀 ‘논수골’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피난 중이던 여기급창 등 궁녀들은 창포리에서 만길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만길재’를 넘다 몽고군에게 붙잡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언덕을 따라 내려가 지금의 둠벙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백제가 망할 당시 3천 궁녀가 부여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과도 매우 흡사한 이야기로 충절과 정절을 지킨 대표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이곳 둠벙에서 여인네의 울음소리가 슬피 들려와서 얼마되지 않은 예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이곳을 지나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이곳 둠벙을 가리켜, 이후 진도사람들은 '여기급창둠벙'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 둠벙의 수심은 매우 깊어서 절굿대를 넣으면 우수영 또는 금갑 앞바다로 나온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삼벌초 궁녀둠벙
유채꽃 들판
파밭
멀리 보이는 바다
죽림어촌체험휴양마을
남도국악원 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길을 계속해서 남도국악원 가까이에서 오른쪽을 보면 진도아리랑마을의 장구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아리랑이라는 곡조를 모르는 우리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아리랑을 기념하여 진도에는 아리랑마을이 있다
진도군에서 여귀산 자락에 아리랑과 관련된 것들을 모아서 관광단지를 조성한 마을이다
우리나라 각지에는 다양한 아리랑 곡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3대 아리랑으로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지칭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아리랑마을관광지
국립남도국악원 전경
조금 더 가면 국립남도국악원이 나온다. 그저 지나가면서 보는 국악원은 적막하다. 2004년 7월 7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수려한 산세의 여귀산을 등지고 드넓은 남해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개원한 국립남도국악원은 34,258평의 부지에 연건평2,886평 규모로 자리하고 있으며, 600석의 국악전용 대극장 진악당(珍樂堂), 1,2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달빛마당”, 120석 규모의“별빛마당”, 160여명의 인원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춘“사랑채(舍廊寨)”를 비롯하여 개인 연습실, 단체연습실을 갖춘 사무 연습동과 식당, 카페테리아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립남도국악원은 국악 전문 연수와 공연을 통한 국악 보급 활동, 국악을 통한 건전한 여가문화 선도와 이를 통한 국민정서 함양, 문화소외지역 주민에게 국악문화를 체계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지역 문화예술 관광자원화의 토대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움직이는 미술관
길을 가다가 여러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기념관 등등 예술의 향기가 풍기는 건물들을 본다. 진도가 남도 예솔혼의 고장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곳들을 지나니 이 코스의 끝자락에 도착한다.
가볍고 쉬고 다음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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