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코스(녹진관광단지 - 벽파항 - 진도용장성)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서해랑길 6코스는 진도코스의 시작으로 녹진관광단지를 출발하여 해안을 돌아 벽파항에 도착한 뒤에 해안을 더나 용장성까지 가는 15.5km의 길이다.
6코스 안내판
내가 거주하는 곳에서 6코스가 시작하는 진도는 너무 멀다, 그래서 전날 집을 출발하여 녹진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서기로 하고 녹진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쉬었다. 아침 일찍부터 숙소를 출발하여 녹진관광단지에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녹진관광단지에 있는 진도대교준공기념탑
서해랑길 6코스 안내판이 있는 광장에서 진도타워 방향으로 직진해서 조금 가면 언덕을 올라가게 한다. 제법 경사가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진도타워가 나온다.
7층 전망대에 오르면 울돌목과 셋방낙조, 영암 월출산, 해남 두륜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광장의 랜드 마크인 진도타워는 9시 이후 오를 수 있다고 하여 포기하고 주변의 경관을 즐겼다. 강강술래 터는 이순신 장군이 적으로 하여금 우리 군사가 많게 보이려고, 망금산에 토성을 쌓고 부근의 부녀자들을 모아 남장을 시켜 산봉우리에 원을 그리며 반복해 돌게 하자 왜적은 대규모 군사이동으로 오인해 혼란을 일으켰다.
진도타워광장과 진도타워
망금산(106.5m) 정상 진도대교 근처에 있는 진도타워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고 진도군 관광의 랜드 마크로 군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건립되었다. 진도타워는 여러 시설물이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여기서 바라보는 진도 앞 바다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진도타워에서 보는 진도대교
진도대교 밑의 울돌목은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순우리말이며, 한자어로는 명량(鳴梁)해협이라 한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의 폭은 294m 정도이나,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가 쳐서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들 정도라는 뜻이라 한다.
아침 바다 안개가 자욱한 진도 바다
진도타워에서 진도 바다의 풍광을 보며 내려오면 무궁화동산이 나온다.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무궁화와는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무슨 꽃이지 의아해 했는데 이름을 적어 놓은 팻말을 보고 무궁화의 여러 종류임을 알았다.
무궁화(無窮花 Hibiscus syriacus)는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2~4m의 아담한 관목으로 정원수나 울타리로도 이용된다. 7~10월의 약 100일 동안 매일 새 꽃이 핀다. 히비스커스(Hibiscus)는 쌍떡잎식물로 아욱목 아욱과 무궁화속에 속한 식물의 총칭한다. 높이 2~5m로 열대성 상록 관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꽃은 크고 빛깔은 분홍색, 붉은색, 노란색 따위가 있다. 통 모양으로 된 많은 수술이 긴 암술을 감싸고 있다. syriacus는 시리아를 뜻하므로 원산지라 하나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을 자생지로 본다.
미국 하와이 주에서 3,000종 이상이 개발되었고 주화(州花)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인 무궁화에 관한 시 중에서 하나만 소개한다.
홍근화(紅槿花) - 서거정(徐居正) -
紅槿花開秋更催(홍근화개추경최) 붉은 무궁화 피었는데 가을에 또 피려 하네
朝開暮落復朝開(조개모락복조개) 아침에 피어 저녁엔 지고 아침마다 다시 피네
可憐續續開無盡(가련속속개무진) 어여쁘게 끊임없이 피어 끝이 없으니
猶勝情人去不來(유승정인거불래) 가고는 아니 오는 임보다 한결 낫구나
다양한 부궁화로 구민 무궁화동산
진도갯벌습지보호구역 표지
갯벌습지
습지보호구역의 습지
바다가 길을 걸어 방파제를 지나면 벽파마을로 가는 길이 나오고 벽파마을이 나온다. 벽파마을 주변의 언덕 정상부에는 정유재란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가 나오고 벽파정이 나온다.
이충무공전첩비
벽파진 전첩비(碧波津 戰捷碑)는 정유재란 때 이충무공의 가장 통쾌한 승리인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11월29일 건립되었다. 전첩비는 높이 3.8m, 폭 1.2m, 두께 58cm 이며, 머릿돌 높이 1.2m, 폭 1.2m, 길이 2.1m이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이곳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 언덕 위에 솟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산 꼭대기를 거북모양으로 깎은 후 받침돌로 그 위에 화강석의 비를 세웠다.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진도벽파정(珍島碧波亭)은 고려 희종(熙宗) 3년(1207)에 주로 중국을 왕래하는 국제적 사절을 위로하기 위하여 창건한 정자이다. 벽파정은 고려 조선조에 걸쳐 문학누정으로 알려지며 많은 시인묵객들이 거쳐 갔다. 1207년 진도의 관문인 벽파나루 언덕에 창건해 1465년(조선 세조11년) 중건되었지만 허물어지고 옛 자취만 남아 있었는데 진도군이 사업비 5억원을 투입, 고려시대 양식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벽파정의 역사를 고려해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복원했다. 벽파정은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본거지를 옮겨 여몽연합군과 회담 장소로 이용하는 등 대몽항쟁의 근거지와 함께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머물면서 전략을 세우고 수군을 정비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략적 요새로 알려져 있다.
벽파정을 지나서 해안을 잠시 벗어나 농촌길로 들어간다. 소박한 농촌의 마을을 여러 지나면 용장성이 나온다.
용장성 가는 길 - 삼별초, 호국역사 탐방길 -
제법 긴 임도를 걸어 도착한 곳이 용장성이다.
진도 용장성 (珍島 龍藏城)은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였던 장소이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겨 40여 년을 삼별초가 중심이 되어 몽골과의 전쟁을 벌였으나, 원종 11년(1270)에 고려가 몽골에 항복을 하였다.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던 배중손을 비롯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承化候溫)을 왕으로 삼아 남쪽 진도로 내려와 궁궐과 성을 쌓고 몽골과의 전쟁을 계속하였다. 지금은 용장산 기슭에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성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고 고려의 왕실과 대립되는 궁궐이 만들어진 점에서 가치있는 유적이다.
배중손상
용장성의 여러 모습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났기에 여기에 도착하니 아직 이른 시간이다. 주변을 돌아 보니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서해랑길을 걸으며 어려운 것이 편의시설이나 슈퍼 같은곳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점을 명심하고 미리 준비를 하고 가여 한다.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 안내판을 찾으니 잘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에 보인다. 7코스 안내판에서 OR코드를 찍고 길을 살펴보니 다시 아래로 가라고 한다. 그래서 7코스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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