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7코스(진도용장성 - 진도기상대 - 운림산방주차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7코스는 진도용장성을 출발하여 잠시 농촌 길을 걷다가 첨찰산으로 올라간다. 첨찰산 정상부에 있는 진도기상대입구에서 산을 내려가면 운림산방이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2.2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첨찰산을 넘어가는 길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7코스 안내판

 

 용장성에서 6코스의 따라가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안내판을 찾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멀리를 보면서 찾아보니 제법 위 지점에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서 7코스를 따라가려고 하니 생각과는 다르게 밑으로 내려가게 인도한다. 길을 따라 내려가 농촌 마을길을 조금 걸어 갔다.

 

길가의 유채꽃 - 진도에 유채가 많이 보였다.

 

이정표

 

 농촌 길을 제법 가다가 보면 제법 큰 시내가 나온다 고군 5일장도 있는 곳으로 밥을 먹을 식당도 여러 곳이 보인다. 출발하기 전에 검색하여 여기서 점심을 먹으려고 생각하였기에 식당에 들러 배불리 점심을 먹였다. 속을 채우고 커피를 한잔하려고 아무리 찾아도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러려니 하고 길을 가니 뜻밖에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카페가 있었다. 아마 마을의 복지적 건물인 것 같은데 이야기마당이란 이름을 달고 조그마한 북카페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기분 좋게 들어가 커피를 한잔 청하여 느긋하게 마시고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뜻밖에 만난 카페

 

 

 계속 길을 가니 이제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가 나온다. 첨철산 임도다. 첨찰산은 해발이 485m로 높지 않으나 섬인 진도에서는 제일 높은 바위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와 진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진도의 진산이다.. 백제시대의 성으로 추정되는 산성(山城)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설치한 봉수대의 유적이 있다. 산 밑에는 유명한 운림산방이 있고, 그 옆의 쌍계사와 운림산방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07)에 둘러싸여 있다.

 

여러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

 

정상입구

정상 입구의 이정표

 

 첨철산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진도기상대가 있고 여기서 정상으로 가는 길과 운림산방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있다. 등산을 목적으로 오지 않았기에 정상을 눈앞에 두고 그냥 운림산방 쪽으로 발을 돌렸다.

 

운림산방 가는 길에 보는 숯가마터 - 곳곳에 보인다.

 

운림상방 가는 길

 

 운림산방으로 가는 길은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내리막길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길이다. 원래 산길이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려운 것임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항상 내려오는 길은 조심해야 한다.

 

 산길을 다 내려오면 '진도아리랑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아리랑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진도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비

 

 여기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운림산방에 도착한다. 여기에 도착하니 오후 4시경이 되었다. 매번 말하지만 이 지방에서 숙소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숙소가 있으면 가는 길을 멈추고 숙박을 해여 한다. 그래서 오늘 여정은 이곳에서 멈추고 숙박을 하기로 하고 먼저 7코스의 종점을 찾아 가니 7코스의 종점은 쌍계사로 들어가는 산문 입구로 여기에 8코스 안내판이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길을 건너가며 숙박할 곳을 찾으니 모두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휴게소에 가서 주인장에게 물으니 근처에 숙박할 곳이 없다고 한다. 난감하여 택시를 불러 타고 진도읍으로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사정을 이야기하여 민박을 할 수 없느냐고 하니 자기 집이 전에 민박을 했는데 요즈음은 하지 않아 방안에 모든 편의시설물을 제거하였다 한다. 그래도 자고 갈 수만 있다면 좋다고 하여 그 집에 방을 얻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8코스 안내판

 

 숙소를 정하였기에 배낭을 풀고 운림산방으로 갔다. 경로 우대로 입장료는 면제받고 들어가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예전에 왔을 때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운림산방은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남화의 대가이던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만년에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사랑채인 화실의 당호(堂號)이다.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이곳에는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더욱 유명하다.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후손들이 계속 이어져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는 시(), (), ()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었는데,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재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하게 된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 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전시관에 있는 그림 중 마음에 든 것

 

운림산방 마루에서 보는 운림지

 

운림산방

 

운림산방 표석

 

 운림산방을 돌아보고 식당에 둘러 저녁을 먹고 다음 날을 위해 먹을거리를 장만하였다. 다음 날의 길을 미리 보니 중간에 밥을 먹을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거리와 점심거리를 미리 장만해야만 했다. 남파랑길을 걸을 때도 먹을 곳을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서해랑길도 이 지방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인 먹고 자는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먹거리를 장만하고 숙소로 가니 TV도 없고 하여 폰으로 여러 가지를 보다가 일찍 잠을 청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