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서해랑길 4코스(산소버스정류장 - 원문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4코스는 산소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지극히 단조로운 농촌 길과 해안을 걸어 원문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14.5km의 짧은 길이다. 하지만 이 단조롭고 특징이 없는 길에서 나는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4코스 안내판

 

 황산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 택시를 타고 산소버스정류장으로 와서 4코스를 걷기 시작하였다. 산소마을 길로 들어가 조금을 걸으니 목줄이 덜린 개가 한 마리 나와서 앞뒤로 뛰어 다닌다. 마을 주민들이 쫓으라고 하였으나 그냥 두었다.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 산소마을은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 갯몰이라 불렸으며, 다른 명칭으로는 저산, 어덕멀이라고도 불렸다.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내산소리(乃山所里)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내() 자가 빠지고 산소리(山所里)라 한다.

산소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김 양식으로 이름난 곳이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친환경 김을 생산하는 곳으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해안에는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2012년 어촌체험마을에 신청하여 지정되었으며, 2014년부터 해남군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어촌체험마을로 조성되었다.

 

담벽에 핀 개나리

 

마을 입구에서 따라나온 개

 

나를 따라 같이 길을 가는 개

 

 앞에서 아주 단조로운 길에서 나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고 하였다. 마을 입구에서 개가 나타나 나를 따라 왔다. 처음에는 마을의 개이겠지 생각하고 조금 가면 돌아 가겠지하고 그냥 길을 걸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 개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계속 따라 왓다. 심지어는 앞에 서 가면서 마치 길을 인도하듯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앞서 갔다. 조금 앞장서서 가면서 주변을 살펴 보기도 하고 개울이나 다른 오솔길이 있으면 먼저 달려가 보고 다시 돌아와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마치 동행인 것겉이 함께 길을 갔다.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무신경하였는데 차츰 호기심도 생기고 혼자서 걷는 길에 동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휴식을 취하니 내 주위에서 떠나지 않고 지켜 주는 듯이 주변을 경계하였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가지고 간 음식을 주니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물도 주니 잘 받아 먹었다. 차츰차츰 이 개에 대해 다정함을 느끼고 함께 길을 갔다. 가다가 내가 조금 쉬면 반드시 그 주위를 배회하면서 호위하듯이 있다가 내가 걸음을 옮기면 다시 저도 길을 따르고 하였다. 내가 기른 개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엇다.

 

 

 길을 가다가 멀리 보니 광산이 보인다. 길에 잇는 이정표를 보니 옥매광산이다. 옥매산광산(玉埋山鑛山)은 해남군 황산면(黃山面) 옥동리(玉洞里)에 있는 납석 광산인데 부근에서는 명반석(明礬石)도 산출되고, 동쪽의 황산면과 마산면(馬山面)과의 경계에 솟은 성산(星山)에서도 납석을 산출한다. 옥매산 광산은 과거 일제 강점기인 1916년부터 1945년 종전 까지 국내 기술자와 노무자 약 1200여명을 강제 동원하여 노역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옥매광산

 

나와 동행한 개

 

 

 

 단조로운 농촌 길을 동행한 개와 함께 걸으니 길가에 옥매산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경계에 있는 옥매산은 조선시대에 옥()을 생산하고, 전라우수영의 관아나 군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는 국가 봉산(封山)이었다. 원래는 매옥산이었으나, ()이 매장되어 있다 하여 옥매산(玉埋山)이란 산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204]에는 옥매산(玉梅山)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또 명량대첩의 승전지로 잘 알려진 울돌목의 입구에 있어 왜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강강술래를 하였다는 설화가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군용비행기 제작에 필요한 알루미늄의 원료를 채석하기 위하여 대규모 광산으로 개발하였다. 옥매산 정상은 해발 173.9m였지만 광산 채굴이 진행되면서 깎여 나가 지금은 168m의 다른 봉우리가 정상이다.

 

옥매산 설명판

 

 

 단조롭고 아무런 특징이 없는 길을 걸어 길가의 원문버스정류장에서 이 4코스는 끝이 난다. 4 코스가 끝나는 정류장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여기까지 나와 같이 4코스를 함께 걸은 개에게도 간식을 주고 물을 주었다. 참 기이하게 내가 쉬면 개도 멈추어 주변을 경계하듯이 배회하다가 내가 움직이면 그 개도 따라 움직였다. 너무나 기특해서 어디까지 따라올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개에게 말하였다. 길을 가다가 슈퍼나 간이매점이라도 나오면 꼭 맛잇는 것을 사서 주겠다고...

 

 아무 특징없는 길을 동무하며 함께 걸은 개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서해랑길 3코스(영터버스정류장 - 산소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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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3코스는 영터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단조로운 농촌 길과 해안을 따라 걸으면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고천암철새도래지에 도착한다. 여기셔 다시 농촌 길을 따라 걸어 산소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14.7km의 짧고 단조로운 길이다.

 

3코스 안내판

 

 3코스 안내판에 그려진 QR코드를 찍어 인증을 하고 걷기를 계속한다. 아주 평탄한 길을 아무런 장애도 없이 그냥 도로를 따라 걷듯이 한적한 농촌 길과 해안 길을 걷는다.

 

해안의 풍경

 

여러 해안의 모습

 

곳곳에 보이는 태양광발전소

 

 

 농촌과 해안을 여러 번 지나가니 제법 긴 방조제가 나타난다.  '고천암방조제'다.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와 화산면 율동리를 이어주는 고천암방조제(庫千巖防潮堤)196312월 고천암 지구의 대규모 바다를 메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64년 해남 지역 농민들의 농경지 확장에 따른 양곡 증산을 목적으로 간척공사가 시작되었다.

 198591일에 착공하여 19881030일 완공한 방조제의 길이는 1,874m이다. 방조제 완공으로 인해 총저수량 17,103의 고천암호가 생겼다

 

고천암방조제

 

 

 방조제 길을 따라 걸으니 오른쪽으로 간척지가 보이고 고천암철새도래지라는 간판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철새 이동 경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철새들의 번식지, 월동지,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고천암 철새도래지(庫千巖-到來地)는 고천암방조제 내 간척지에서 본격적으로 쌀농사를 시작하면서 철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천암호를 찾아오는 대표적인 철새로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적색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가창오리는 국제 보호종으로, 겨울에 들어서면 전세계 가창오리의 95%가 고천암호로 모여든다고 한다. 특히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인 고천후조(庫千候鳥)는 해남 8경 중 으뜸으로써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 외 청둥오리, 고방오리, 흰죽지, 큰기러기, 쇠기러기 뿐만 아니라 고니(천연기념물 제201),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 등과 같이 희귀한 새들도 종종 눈에 띈다고 한다.

 

 고천암호 둘레는 약 14로 해남읍 부호리에서 연곡리까지 약 3거리에 165에 달하는 거대한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어 서편제, 살인의 추억, 청풍명월등의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방조제에서 보는 풍경

 

 방조제를 지나면 나오는 고천암 자연생태공원은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을 벗 삼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다. 해남 고천암은 본래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여 해남을 찾는 철새들의 조형물과 고천암호에 출현하는 조류를 테마로 한 철새 솟대 화랑 등과 여러 조형물을 갖추어 도심을 떠나 녹지 속에서 산책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공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오늘의 일정을 다시 생각하였다. 원래는 4코스 중간쯤까지 걷고 택시를 불러 황산면으로 가서 숙박을 하려고 예정하였는데 그냥 3코스가 끝나는 곳에서 황산면으로 가기로 하였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무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고천암 자연생태공원

 

해안과 농촌 길

 

 단조로운 해안과 농촌 길을 따락 걸어 산소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3코스는 끝이 난다. 여기서 황산면에 가기 위해서 택시를 불러 황산면 숙소로 향했다. 작년에 남파랑길을 걸을 때도 숙박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서해랑길도 숙박소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숙박소가 있으면 여정을 멈추어야 한다. 바쁜 일정도 아니니 느긋하게 여행을 할 생각이다.

 

황산면의 숙소에서 잠시 휴식한 후에 황상성당을 찾아 갔다. 내일이 성지 주일이고 하여 성당을 찾아가니 아주 작은 공소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시등로 122-11[우항리 505-1]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우수영성당 소속의 황산공소는 황산면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의 종교 활동을 위해 1982년에 모임을 시작으로 황산공소(黃山公所)를 설립되었다.

1990215일 대지 1,041(3,441.32)130여 평(429.75)2층 공소를 신축하고 축복식을 하였다. 농어촌의 작은 마을에 있는 공소로서는 비교적 크고 좋은 공소 건물을 갖추고 있어, 신자들과 주민들에게 유용한 공간이 되고 있다. 현재 선교사로 임봉용(아우구스티노)님이 있으며 신자 수는 50여 명이다.

 

 작은 공소이지만 대도시의 큰 성당보다 훨씬 정감이 가는 성당이었다. 어떤 종교든지 종교적인 감흥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 작은 공소가 나에게는 무언지 다정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성당의 여러 곳을 구경하다고 본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가니 한 사람이 나오며 '어떻게 왔는지?'를 물어 그냥 마음이 가서 왔다고 하니 자기가 이 성당의 선교사라고 하면서  이 공소의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해 주었다.

 

그러면서 내일은 성지주일이라 우수영본당에서 미사를 한다고 내일 시간을 맞추어 오면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나의 일정에 맞지 않아 완곡하게 어려움을 말하고 헤어졌다.

 

황산성당의 여러 모습

 

성당에서 나와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휴식을 하였다.

 

 3코스는 아주 쉬운 길이다. 평지를 그냥 즐기면서 걸으면 된다.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은 제법 산을 넘어 가는 길이 많았는데 현재까지의 서해랑길은 아주 편안한 길이다. 뒤에 어떤 길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서해랑길 2코스(송지면 사무소 - 영터버스정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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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2코스는 송지면 사무소를 출발하여 농촌마을길과 해안길을 번갈아 걸어가서 영터버스정류소까지 가는 17.9km의 비교적 단조로운 길이다.

 

서해랑길 2코스 안내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니 문을 열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밥을 먹고 분명히 아침 6시 30분에 식당을 연다고 확인을 하였는데 영업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공복으로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점이 항상 불편하게 한다. 아침 일찍부터 길을 걷기 시작하기에 대개는 미리 준비해 간 음식으로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먹고 시작하는데 이런 경우를 당하면 그냥 굶고 걷기를 시작한다.

 

송지면 사부소

 

 송지면 사무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니 집 담벽에 여러 가지의 그림을 그린 마을이 보인다. 시골 길을 걷다가 보면 담벽에 그림을 그려 놓은 마을들을 많이 본다. 각기 마을들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한 것도 있고 퇴락한 담장을 아름답게 치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동기야 무엇이든지 담벽을 치장해 놓은 것은 좋다. 무색의 거무칙칙한 담벽보다는 유채색의 그림이 좋다. 더구나 어떤 그림을 보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내용도 있어 보는 재미도 있다.

 

담장에 그려져 있는 그림

 

봄이 오는 들판의 모습

 

 평범한 시골 마을길을 걸어 가면 봄이 오는 모습이 보인다. 올해는 유넌히 기온이 빨리 올라 이제 4월 1일인데도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온다. 들판을 바라보면 가뭄으로 말라버린 농토가 부석부석하게 습기가 없다. 그러나 푸른 보리는 나름대로 생명을 키우면 자라고 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농촌 길을 제법 걸으면 바다가 나온다. 탁트인 바다를 보는 것이 훨씬 편하다. 막힌 듯이 보이는 농촌길보다는 바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서해 바다 

 

우근마을 표지석

 

태양광 발전

 

 계속 길을 가니 소금을 수확하는 모습이 보여 잠시 의아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바다물을 끌어다가 소금읗 만드는지가 의문이었다. 조금 더 가니 '땅끝염전'이라는 염전 표시가 보이고 바다가 보였다. 염전에서 소금을 수확하는 모습은 신안을 여행할 때와 부안에서 염전을 경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소금 수확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땅끝염전의 모습

 

길가에 핀 개나리

 

두모선착장

 

 

 계속 길을 따라 가면 조그마한 두모선착장이 나오고 작은 방파제 길을 따라 가며 바다의 풍경을 즐기다 보면 또 다시 농촌 길이 나오고 농촌 길을 따라 가면 또 다시 바다가 나오는 길이 반복된다.

 

방파제 안쪽의 습지

 

나주 임씨 정려비

 

바다 물이 밀려 들어 오는 모습

 

 

 계속 길을 따라 가니 제법 큰 방조제가 나온다. 관동방조제이다. 이 방조제를 지나면 2코스는 끝이 난다. 방조제를 걸어 가면서 보는 풍경은 양쪽이 다른 모습이다. 한쪽은 바다가 보이고 반대쪽은 바다를 방조제로 막아 아직은 농토가 되지 않은 간석지가 보인다. 이 간석지에 물이 흐르고 갈대가 숲을 이루는 모습은 볼 때마다 아름답다. 특히 물새가 이 간석지에서 날아오르는 풍경을 볼 때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관동방조제

 

 관동방조제를 지나면 2코스가 끝이 난다.

 2코스는 상당히 단조롭다. 아무런 특징도 없고 대단한 경치나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농촌 길과 해안 길을 걷는 길이다.

 

서해랑길 1코스(해남 땅끝탑 - 송지면 사무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서해랑길 완보를 드디어 시작한다. 날이 좋지 않은 겨울을 피하고 따뜻한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때를 택하여 대장정을 시작하려고 집을 더나 광주로 가서 해남 땅끝까지 오는 시간만 일곱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새벽부터 집을 나서 점심 무렵에 땅끝 마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땅끝탑으로 향했다.

 땅끝케이블카 정류장 옆길로 계속 걸어가서 땅끝탑에 도착했다.

 

땅끝탑

 

땅끝탑에서 보는 남해와 서해

 

서해랑길 1코스 안내판

 

 해남군 토말(土末)이 한반도의 최남단임을 상징하는 토말비와 토말탑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1721초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한 노령산맥의 줄기가 내뻗은 마지막 봉우리인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땅끝을 알리는 새로운 땅끝탑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가 땅끝의 가진 감흥을 우리에게 준다. 오솔길과 테크길을 한참 걸어 땅끝탑에 도착했다.

 

 땅끝탑이 있는 곳에서 남해바다와 서해가 갈라진다. 남파랑길 90 코스가 끝나는 종착점이자 새로운 길 서해랑길의 시작점이다. 땅끝에서 보는 바다는 여느 바다와 같지만, 막상 도착하면 더 나아갈 수 없는 땅끝이 지닌 절박함이 와락 달려든다. 하지만 같은 장소도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다라 다르게 느껴진다. 지난 해 남파랑길을 끝냈을 때는 마지막 종착점이었지만 오늘은 서해랑길의 시작점으로 새로운 발걸음의 시작이다.

 

 서해랑길 1코스는 땅끝탑에서 출발하여 서해안의 길을 걸어 해남 송지면 사무소까지 가는 14.9km의 비교적 편안하고 멀지 않은 길이다.

 

 서해랑길은 남파랑길과 다른 길을 걸어가게 한다. 땉끝전망대로 가지 않고 땅끝탑에서 조금 올라가면 바로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가서 서해의 바다를 보고 걷게 한다.

 

서해랑길 안내 리본

 

멀리서 보는 땅끝탑

 

바다에 넓게 펼쳐져 있는 전복 양식장

 

 해안을 따라 걸으니 양식을 하는 것이 보였다. 무엇을 양식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지나가는 여성에게 물으니 자기도 이 지방 사람이 아니라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많이 하는 김 양식장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이 고장 사람인 듯한 젊은이에게 물으니 전복양식장이라고 하엿다.

 

 길을 가다 보니 연리지가 보인다.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을 상징하는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며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비유하기도 하였다.

 

 백거이(白居易)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연리지를 말하고 있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7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연리지의 모습

 

산에 핀 진달래

 

서해랑길 표시

 

전복양식장

 

 

 해안길을 계속 따라가면 송호해수욕장이 나온다  

송호해수욕장은 땅끝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펼쳐진 해남의 대표 해변으로 해남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옆에는 땅끝오토캠핑장과 황토문화체험관이 있지만 지금은 시절이 아니라 텅 비어 있다.

 

길가의 집 담벽에 써 놓은 시

 

멀리 보이는 달마산

 

소죽마을 중구제

 

 

 해안과 농토길을 따라 한가롭게 걸어가니 어느 새 송지면 사무소가 가까와지고 있다. 길을 가니 조그마한 성당이 보인다. 땅끝성당이다 처음에는 해남성당의 당끝공소였다가 2015년 6월 20일에 성당으로 승격하였다. 아주 큰 성당도 많지만 이런 작은 성당이 더 정감이 간다. 잠시 들러서 기도를 드리고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땅끝성당의 모습

 

동백이 흐드러진 모습

 

 조금 걸어가니 송지면 사무소가 나오고 서해랑길 1코스가 끝이 난다. 

처음 시작부터 무리를 하지 않기로 하고 저번 남파랑길을 걸을 때 숙박한 숙소을 찾아가 하루를 마친다. 

서해랑길을 해파랑길이나 남파랑길에 비해 비교적 단조롭다는 평이 많았는데 어떨지?가 궁금하다.

서해랑길 완보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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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새 한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4년째로 들어서고 있다.

 

한참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야 하는 때에 예기치 못하게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어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편이 막히고 해외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우리나라를 걸어 보기로 마음을 먹고 2020년에는 부산의 갈맷길을 완보하였고, 재미를 붙여 2021년부터 코리아 둘레길에 도전하기로 작정하고 2021년에 동해안 해파랑길을 완보하였고, 2022년에는 남해안 남파랑길을 완보하였다. 그리고 올해 2023년은 서해안 서해랑길을 걷기로 하고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끝나고 꽃피는 봄이 피부에 느껴질 때를 택하여 서해랑길을 걷기로 하고 집을 떠나 전남 해남으로 향했다.

 

 서해랑길을 전남 해남 땅끝에서 시작하여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경기도, 인천광역시의 해안을 거쳐 인천 강화도 평화전망대까지 서해안을 따라 가는 약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여행길이다.

 

우리나라의 삼면의 바다는 둘러싸여 있는데  각 방향의 바다는 각자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동해의 바다는 좀 가파르고 거친 모습을 보여주고, 남해의 바다는 조용하면서도 풍성한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서해의 바다는 동해의 해파랑길과 남해의 남파랑길과는 다른 경치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걷기를 시작한다.

 

서해랑길 전도

 

 서해랑길 1 코스를 시작하기 위해 전남 해남 땅끝으로 가서 땅끝정류소 주변 풍경을 잠시 즐기고 점심을 먹고 1 코스의 시작점인 땅끝탑으로 향했다. 

 

 이곳은 작년에 남파랑길을 끝내고 잠시 머물었던 곳이다.

 

땅끝정류소 부근 풍경

남파랑길 완보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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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완보를 마치고

코로나로 인해 해외를 여행하지 못하는 어려움으로 나의 특기를 살려 국내 도보여행을 시작한지도 3년이다. 2020년에는 먼저 부산 갈맷길 300km를 걸었고, 우리나라에 코리아 둘레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모두 완보하자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워 2021년에는 해파랑길 750km를 완보하였고, 드디어 2022년 올해에 남파랑길을 완보하였다.

 

 3년 동안 한국의 여러 길을 걸으면서 내가 예전에 보지 못했던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도 볼 수 있었으며 여러 지방에 늘려 있는 여러 문화유적을 새롭게 볼 수 있었음도 큰 소득이었다.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남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즐기는 길로 해안을 따라 난 길을 해남 땅끝까지 걸으면 무려 1470km나 되는 길이다. 내가 올해의 목표를 정하고 나를 아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말을 하니 모두 무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제는 나이도 제법 많아 모두들 걱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걷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결코 무모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도전을 했다.

 

 여정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 시작하는 20223월부터 시작했다. 남녘의 3월은 온갖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시절이라 봄꽃들을 구경하면서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작했다. 매화가 피어 있는 시절을 지나니 산수유가 길을 반기고 어느 새 개나리와 벚꽃이 피고, 진달래가 피어 있는 산을 한없이 즐기며 걸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꽃구경을 가면 명승지를 찾아가지만 나는 이 여정에서 산야에 그냥 자연스럽게 피어 있는 꽃들을 즐긴 것이다.

 5월이 되니 봄꽃이 지면서 배꽃이 하얗게 피고, 빨간 석류꽃이 아름다운지도 새삼 느끼며 산과 들에 피는 이름도 모르는 꽃들을 보고 즐기며 길을 걸었다. 6월과 7월에는 여름 꽃이 또 아름답게 피어서 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상쾌하게 하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수국이 핀 여러 곳을 지나면서 즐거워하고 산길을 걷다가는 산에 핀 산수국에서 정겨움을 느꼈다.

걷기의 여정은 원래 계획한 대로 7월과 8월을 휴식을 하였다. 이 때는 여름 피서철이라 바닷가는 매우 혼잡하기에 나와 같은 현직을 은퇴한 한가한 여행객은 한참 일하면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껴주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였고, 날도 너무 더워서 걷기보다는 다음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자는 의도도 있었다.

 9월이 되어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걷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는데 올해 들어 9월에는 태풍이 자주 올라와서 하는 수없이 조금 쉬고 추석을 맞아 쉬고 있었는데 뜻밖에 코로나에 걸려서 후유증을 앓아 한 달간 걷기를 쉬었다.

 10월 중순부터 다시 걷기를 시작하니 어느 새 들판에는 추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걷는 지방이 남쪽이라 아직 단풍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절기상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에 추위가 닥치기 전에 걷기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정을 조절하였다.

 11월에 들어와서 박차를 가하여 걸으면서 11월 중으로 끝을 내리라 생각했는데 해남 땅끝에 도착한 날은 129일이었다.

 

 예정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무사히 여정을 마무리한 나 자신에게 고맙게 생각이 된다.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느낀 점이나 아쉬운 점을 기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남파랑길의 원래 취지는 아름다운 해안을 보고 즐기자는 의미로 이름도 파랑으로 지었는데 산을 너무 많이 지나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산을 지나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좋은 바다 길을 두고 산으로 가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둘째로는 각 코스의 종착점에서 숙박을 하기 위해 숙박업소를 찾을 수 없는 곳이 엄청 많았다. 교통편도 제대로 편리하게 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택시를 불러서 읍이나 군 소재지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점도 제대로 찾을 수 없어 비상용으로 음식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관계자들께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칵 코스를 조절하여 종착점에서는 쉽게 숙박지와 음식점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만이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사람 대다수가 같은 의견이었다.

 셋째로는 지방자치단체와 의견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곳곳에 지방자치단체가 길을 막아 놓은 곳이 있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는 나름대로의 애로가 있었겠지만 이 길을 관리하는 두루누비와 밀접하게 의견 교환이 있어 코스 중간을 폐쇄할 때는 반드시 알려서 우회로를 빨리 선정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길이 폐쇄되었다고 알려준 것만 해도 열 번도 더 된다.

 넷째로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은 젊은이들이 걷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이 나이가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만나 이야기를 해본 사람들은 대개가 일선에서 은퇴한 사람들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길의 난이도 무척이나 어려운 곳이 제법 있다. 산을 등산하고 극기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걷기를 즐긴다는 취지에는 너무 어려운 길은 고쳤으면 한다.

 

 남파랑길 90개 코스가 모두 각 코스마다 특징이 있고 어렵고 아쉬운 코스도 있고 재미있고 즐거운 길도 많았지만 길을 걸으면서 얻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내가 길을 걸으면서 좋았던 코스와 어려웠던 코스를 불문하고 기억에 남는 몇 코스를 소개하겠다. 이 소개는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1코스 : 이 길의 시작지이다.

 1470KM 남파랑길의 시작은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한다. 첫 시작의 발길은 3월에 처음 때었다.

 

오륙도 전경

 

15 코스 : 내가 코스를 바꾼 곳

 통영 15 코스의 산길이 폐쇄되어 있어 '두루누비'에 알려서 해안으로 길을 바꾸게 하였다.

 

길이 폐쇄된 곳

 

23 코스 : 가장 험하여 어려웠던 길

 거제도 가라산을 넘는 23 코스는 90개 코스 중 가장 험난한 곳이다. 아주 조심해야 한다.

 

산위에서 보는 거제 바다

 

29 코스  :  아름다운 바다 해안 길

 통영의 바다는 조용하고 고요하여 마음에 평화를 준다.

 

산 위에서 보는 통영 앞 바다

 

35 코스 : 각산전망대에서 보는 남해 앞 바다

 사천의 각산전망대에서 보는 남해 섬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는 바다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림같은 남해를 잇는 다리들

 

37 코스 : 뜻밖의 아름다운 경치 : 고사리밭

 남해 창선의 고사리밭은 우리가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으로 파랗게 자란 고사리가 감탄을 자아낸다.

 

 창선면의고사리 밭

 

47 코스 : 여유로게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섬진강을 보면 항상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에 안긴 듯한 느낌을 가진다.

 

하동포구에서 보는  섬진강

 

60 코스 : 황홀하고 장엄한 해넘이의 와온해변

 어디서든지 보는 해넘이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특히 이 와온해변의 해넘이는 장관이다.

 

순천 와온해변의 해넘이

 

63 코스 : 태백산맥 문학의 고장의 습지에 떠오르는 태양

 벌교 습지에 아침 일찍 걸으면서 보는 해돋이는 동해안과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벌교습지공원의 아침

 

79 코스 : 장흥 자연산 굴구이

 양식이 아닌 자연산 굴이 장흥에 11월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석화를 구워 먹는 것이 별미다.

 

자연산 굴을 굽는 모습

 

81 코스 : 조그마한 관광지 가우도

 강진의 가우도는 뜻밖에 발견한 아름다운 섬으로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고 차는 전혀 없다.

 

가우도와 가우도로 들어가는 청자다리

 

83 코스 :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가는 길

 너무나 잘 알려진 다산초당 가는 길을 걸으며 호젓하게 선인의 정취를 느낀다.

 

다산초당 현판

 

87 코스 : 완도 정도리 구계등 - 한국의 명승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경치와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해돋이와 해넘이를 보는 여유가 있다.

 

구계등 자갈해변

 

90코스 : 달마고도를 넘어 땅끝으로

 달마고도를 걸으며 땅끝으로 향하며 이 여정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 무겁다.

해남 땅끝탑

 

 아름다운 길을 걷고 모두 머리에 남아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의 기억에 남는 코스를 간추려 간단히 소개하였다.

 

 내년의 서해랑길을 벌써 머리속에서 생각하면서 올해의 여정은 이 글로서 마친다.

남파랑길 90 코스(미황사천왕문 - 연포산 임도 - 땅끝탑)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의 마지막 코스인 90 코스는 미황사 천왕문 앞에서 시작하여 달마고도를 따라 걸으면 도솔암을 지나고 연포산을 넘어 땅끝탑까지 가는 13.9km의 짧은 길이지만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을 걷기에 편안한 길은 아니다.

 

90 코스 지도

 

송지초등학교 아래에 있는 숙소에서 어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타고 미황사로 갔다. 미황사를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택시를 탄 것이다.

 

 미황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108계단이 맞이한다. '마음 버리며 오르는 108계단'이라는 '자비의 108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계단을 오르며 부처님의 큰 자비와 무소유를 생각하였다. 감히 내가 따라 갈 수 없지만 이 계단을 오르면서 잠시라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참 복받은 것이다.

 

자비의 108계단 간판

 

90 코스 안내판

 

 천왕문 옆에 난 산길을 걸으며 이 코스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편안한 산길인 달마고도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달마고도는 여러 코스가 있기에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한가로이 걷는다. 내가 이 달마고도를 얼마나 걷고 싶어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고도를 개척한 스님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걷는다.

 

 

 완전히 기계화된 지금 세상에 곡괭이와 삽을 들고 지게를 사용하여 길을 냈다는 달마고도는 미황사의 주지이산 금강스님이 중심이 되어 군데군데 남은 길을 기반으로 하여 사라진 길과 잊힌 길의 흔적을 찾아 하루 평균 40여명의 인원이 열달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스님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과 같이 살아가면서 여행객이 달마산에 제대로 깃들여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길을 만들었다.

 

 

 미황사에 출발하면  달마고도는 처음에는 나무가 우거진 흙길이지만 30분 정도가 지나면 너덜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바위가 쏟아져 내린 돌의 너덜경은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여 곳이 있다고 하는데  몇 미터의 짧은 것도 있지만 150미터가 되는 긴 너덜경도 있다. 달마산의 깊은 산 속에서 나무와 하늘만 보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바위계곡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는 것과 같이 신비롭다.

 

달마고도의 너덜경

 

 

 너덜지대를 지나 도솔암쪽으로 길을 가면 이 길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다. 땅끝 천년숲 옛길은 대한민국 국토의 시발점 땅끝에서 시작하여 도솔암, 미황사, 대흥사 세곡재를 지나는 명품숲길로 총 52로 땅끝길(16.5), 미황사역사길(20), 다산초의교류길(15.5) 3코스의 테마로 나뉘어 있다.

 땅끝 천년숲 옛길은 다양한 해남의 역사와 문화재를 탐방할 수 있는 코스로, 작은 오솔길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숲길을 2010년 조성하였다.

 

미황사 천년 역사길 표지

 

울창한 숲

 

 울창한 숲을 걸으면 도솔암이 나온다. 하지만 표지를 보고도 도솔암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90 코스를 걷는 동안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앞서는지 다소 피로함을 느낀 때문이다.

 

 해남 달마산에 있는 도솔암(兜率庵)<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그 땅의 끝 편에 도솔암이 있고, 그 암자가 향한 형세가 곶(: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선단)을 얻어 장관이 따를만한 짝이 없다. 화엄조사(華嚴祖師) 상공(湘公)이 터 잡고 지은 곳이다. 그 암자 북쪽에는 서굴(西屈)이 있는데, 신라 때 의조화상이 비로소 붙어살면서 낙일관(落日觀)을 수리한 곳이요, 서쪽 골짜기에는 미황사·통교사(通敎寺)가 있고, 북쪽에는 문수암과 관음굴이 있는데 그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참으로 속세의 경치가 아니다.” 이후 도솔암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정유재란 때 명랑해전에 패한 왜구들이 해상 통로가 막혀 달마산으로 퇴각하던 중 도솔암이 불탔다고 전해진다. 2002년까지 주춧돌만 남은 폐사지로 방치되다가 200268일 월정사에 있던 승려 법조가 법당을 중건하였다.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아스팔트

 

 코스는 이 아스팔트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좁은 산길로 인도한다. 산의 수림이 얼마아 울창한지 대낮인데도 어둠이 끼여 있다

 

울창한 수림

 

멀리 보이는 남해 바다

 

복잡한 이정표

 

 이제 연포산 줄기를 따라 걷는데 이 길이 만만하지가 않다. 아주 험한 길은 아니지만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하는 길인데 곳곳에는 조그마한 암릉이 가로막고 있어서 바위를 돌아가야 하고, 길이라고는 아주 좁은 길이고 더구나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으로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그래도 주의를 기울이면 길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으니 제법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더구나 낙엽이 길을 덮고 있어 내리막길에는 미끄러지기가 쉬우므로 아주 조심을 해야 한다.잘못해서 미끌어지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곳이다.

 

땅끝 천년숲 옛길 표시

 

 

 길을 가다가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남해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서해가 보인다. 두 바다를 동시에 보고 길을 계속해서 가면 멀리 땅끝전망대가 보인다.

 

상당히 어려운 산길

 

멀리 보이는 땅끝전망대

 

 

 드디어 연포산 산길을 벗어나면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질러 땅끝전망대로 가는 육교가 나온다. 이 육교를 건너 가면 여러 리조트가 나오고 땅끝이 가까운 갈두산이다.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갈두리)에 있는 갈두산(葛頭山)은 높이 156m로 칡이 많다 하여 칡머리라 하였고, 칡머리를 갈두(葛頭)라 하는데, 갈두에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1981년에 갈두산 정상에 전망대를 세우면서 미황사의 창건설화에 나오는 사자포(獅子浦)와 관련지어 사자봉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해남군 토말(土末)이 한반도의 최남단임을 상징하는 토말비와 토말탑이 땅끝마을·칡머리로도 불리는 갈두리(葛頭里) 갈두산의 주봉인 사자봉 정상에 세워져 있다.

 

멀리 보이는 땅끝전망대

 

전망대로 가는 나무테크

 

땅끝 주변 안내도

 

 

 나무테크를 한참 걸어 땅끝전망대에 도착했다. 해남 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진도에서 완도까지 서남해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 주변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약 500m로 거리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땅끝탑이 있는 해안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은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편하게 내려가게 한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발아래서 가깝게 들리는 길을 걷다 보면 드디어 땅의 끝이다.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 17 21초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한 노령산맥의 줄기가 내뻗은 마지막 봉우리인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땅끝을 알리는 새로운 땅끝탑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가 땅끝의 가진 감흥을 우리에게 준다.

 

 땅끝에서 보는 바다는 여느 바다와 같지만, 막상 도착하면 더 나아갈 수 없는 땅끝이 지닌 절박함이 와락 달려든다.

 

땅끝탑

 

땅끝 앞 바다

 

남파랑길 90 코스의 마지막과 서해랑길 1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

 

 땅끝탑이 있는 곳에서 남해바다와 서해가 갈라진다. 남파랑길 90 코스가 끝나는 종착점이자 새로운 길 서해랑길의 시작점이다.

 

부산의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90개 코스1470km를 걸어 이제야 도착했다. 단 1m도 다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거리를 다 두 발로 걸었다. 처음 1 코스의 시작을 봄이 시작하는 계절에 하였는데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하니 12월 초순이다. 작년에 해파랑길을 끝낸 시점과 비슷하게 끝을 내니 감회가 새롭다. 많은 친구들이 내가 이길을 겯는 것에 도전을 할 때 걱정을 했지만 나는 무사히 걷기를 마쳤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대단한 일을 하였다. 올해의 목표를 이루었기에 내년에는 서해랑길을 걸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천년숲 옛길 표지

 

땅끝버스정류소 주변

 

 내가 항상 걸으면서 예정한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늘도 예정된 시간에 어긋나지 않고 끝을 냈기에 버스정류장에 와서 시간을 맞추어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남파랑길 89 코스(원동버스터미널 - 바람재 - 미황사 천왕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9 코스는 원동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86 코스의 처음 부분을 거슬러 올라간다. 거슬러 올라가서 남창사거리에서 이진마을을 거쳐서 바람재를 지나면 달마산으로 올라가 달마고도를 따라 산을 넘으면 미황사에 도착하는 13.8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89 코스 지도

 

89코스 안내판

 

 처음 예정은 88 코스까지만 걷고 숙박을 하고 다음 날  89, 90 코스를 동시에 걸으려고 하였으나 88 코스를 마치는 시간이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다. 나의 걸음걸이를 생각했을 때 89 코스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걸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89 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86 코스에서 걸어온 길

 

가다가 만나는 86 코스 안내판

 

 

 남창사거리를 지나면 86 코스와 같은 길을 벗어난다. 남창사거리에서 조금 가면 남창 5일장이 나온다.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는 전통시장인 남창5일시장(南倉五日市場)은 완도와 강진을 잇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2일과 7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설시장이다.

 1945년 직후에 형성되어 1964년에 개설된 후 2005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여러 편의시설과 증축과 시설의 현대화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지나는 날이 장날이 아니어서 장터는 텅 비어 있었으나 장텨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남창5일장터

 

이정표

 

멀리 보이는 달마산

 

 해안도로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마을을 돌아나가면 이진리로 가는 표시가 보이고 그 표시를 따라 이진마을을 지나면 달마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진마을 풍경

 

달마산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완도 앞 바다

 

 

 해남군 송지면 및 북평면에 걸쳐 있는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達摩山, 489m)은 높지 않지만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릉으로 형성되어 있어 상당히 험한 산이다. 암릉은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 8에 거쳐 기세가 이어진 다음 땅끝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 갈무리한다. 산을 오르는 도중 여러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산행이 쉽지만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의하면 1218년 이곳까지 표류한 남송의 배가 이 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살고 계실만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하여 지명이 달마대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는 달마대사(達磨大師)는 인도의 향지국(香至國)에서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대사는 소림국에서 9년간 벽을 보고 수행을 한 후 법을 전해 주고 갑자기 사라졌는데, 사라진 달마대사가 해남의 달마산(達磨山)으로 왔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중국 남송(南宋)의 고관들이 해남으로 건너와 주민들에게 이곳이 달마산이냐?”라고 물었다. 주민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자 남송의 고관들이 너희들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너무 부럽다. 우리는 멀리 중국에서 평생에 한 번 오기를 소원하고 바라고 바랄 뿐인데……. 역시 달마대사가 머물 땅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후 남송의 고관들은 달마산을 그림으로 그려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달마산의 여러 모습

 

 달마산을 올라가면서 달마고도 표시가 여러 곳에 보인다.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미황사에서 시작하여 송지면과 북평면으로 이어지는 달마산 둘레길인 달마고도(達磨古道)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획하였다. 해발고도 220~380m에 이르는 달마산 중턱에 미황사에 전해 내려오는 12암자터 순례 코스를 개발하여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을 주제로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71118일 개통한 둘레길이다. 달마고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12개의 암자를 끼고 있는 숲길로 소사나무와 편백나무 등 산림 군락과 달마산 동쪽의 땅끝 해안 경관도 볼 수 있다. 달마고도는 미황사에서 시작하여 큰바람재, 노지랑골, 몰고리재 등 달마산 주능선 전체를 아우르는 여행길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인력으로만 길을 닦아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하여 선인들이 걸었던 옛길을 복원하였다.

 

 북일면 이진에서 시작되는 옛길 이진로와 해남 대흥사에서 시작되는 옛길 미황로, 송지면 마봉리에서 시작되는 옛길 인길(마봉로), 북일면 영전리에서 시작되어 몰고리재에서 끝나는 옛길 13모통이 길은 기존 있던 길을 새로 손질하고 복원하였고, 달마고도 2코스, 달마고도 3코스, 달마고도 4코스 일부는 새롭게 조성하였다.

 

 달마고도는 4개의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길이는 17.74㎞로 한 바퀴 도는데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1구간은 2.72로 미황사 일주문 옆에서 시작한다. 숲길과 임도를 따라 1가량 가면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오며, 앞에는 완도가 바로 보인다. 2구간은 4.3로 농바위, 문바위골을 거처 노시랑길로 이어진다. 이서 소사나무 등 대규모 산림 군락지가 이어진다. 중간쯤 관음암 터에 이르면 작은 못이 나온다. 2구간 끝자락에 서면 동남쪽은 남해, 서북쪽은 서해로 서해와 남해를 한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3구간은 5.63로 노지랑골에서 편백나무숲을 지나 몰고리재까지 연결된다. 4구간은 5.03로 몰고리재에서 미황사로 돌아오는 구간이며, 용굴과 도솔암, 편백숲, 미황사 부도전을 순례할 수 있다.

 

너덜지대

 

달마고도

 

 달마고도를 걸어 달마산을 넘으면 미황사에 도착한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 잡은 미황사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미황사의 창건 연대나 사적에 대한 기록은 숙종 18(1692) 병조판서 민암(閔黯, 1636~1694)이 비문을 지었다는 미황사 사적비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8(749)에 인도에서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40성중(聖衆), 53선지식(善知識), 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한다.

 

미황사 천왕문

 

 천왕문을 통과하여  저녁의 어스름을 안고 절 안으로 들어가니 사찰의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웅전이 휴식 중이다. 대웅전을 통째로 벽으로 가두어 놓아 조금도 볼 수 없게 하였고 임시로 대웅전을 만들어 놓았는데 조금도 감흥이 없다.

 

미황사 전경 - 뒤에 달마산이 보인다.

 

 

 미황사 천왕문 앞이 89 코스의 끝이다. 

 

 미황사 주변에는 숙박울 하거나 음식을 먹는 곳이 전혀 없다. 그래서 숙박을 위해서는 멀리까지 나가야 하는데 교통편도 여의치 못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음먹은 대로 택시를 호출하여 송지면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가서 숙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