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남파랑길 84 코스(도암농협앞 - 도암배수갑문 - 사내방조제 북쪽교차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4 코스는 도암농협앞에서 출발하여 향촌리를 거쳐 농촌마을 길을 따라 걸어 신기마을을 지나서 강진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도암배수갑문이 나오고, 방조제를 지나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풍광을 즐기다 가면 사내방조제가 시작하는 북쪽교차로에서 끝이 나는 13.7kn의 잛은 거리다.

 

84 코스 지도

 

84 코스 안내판

 

앞에서 말한 민박 집

 

숙박을 할 수 있다는 도암문화회관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나기에 고마운 민박 집 주인에게 인사도 못하고 길을 가니 아직 해도 떠지 않았다. 조금 길을 다라 내려가 도암문화회관과 도암파출소를 지나 장촌교앞에서 좌측 길로 돌아가 항촌교를 건너니, 항촌마을 입구에 마을 보호수 사장나무가 있다.

 

항촌 사장나무 앞에는 정약용 남도 유배길 4코스(총거리:65.7km)중에서 1코스 주작산 휴양림길(20.2km)이라는 안내판도 있다.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곳곳에 다산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다산이 무슨 생각을 하고 갔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다산 유배 길은 우리들의 미래를 읽는 아름다운 길이라 소개한다. 해남 윤씨 세장비(世莊碑)와 사장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항촌마을을 좌측에 두고 도암천을 따라 간다.

 

향촌 사장나무와 그 주변

 

 저 멀리서 아침이 밝아 온다.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해돋이를 엄청 많이 보았지만 어디에서든지 해돋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고 그 장엄한 광경에 압도당한다.

 

해돋이 모습

 

 농촌 마을길을 따라 한가로이 걸어가면 신기리(新基里) 신기마을이 나오고 농로와 차도, 마을길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는 강진만 논정방조제로 나온다. 강진만 해안도로라는 안내판과 방조제 옆의 갯벌에는 그물이 처져 있는데 양식장 같다. 중간에 도암 배수갑문이 있고, 이어서 방조제는 계속된다. 30분 이상을 걸어야 되는 긴 논정방조제가 끝나면 좌측으로 강진만 해안도로는 계속된다.

 

도암배수갑문

 

해안 풍경

 

 종점을 눈앞에 둔 소공원에는 쉼터 정자가 있고, 그 뒤로 썰물 때라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호래비섬이 보인다. 84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는 유일한 숙박업소인 바다가 보이는 집이 있다. 이 코스가 끝나고 숙박을 하려면 이 집에 예약이 안 되면 강진읍으로 나가서 자고 와야 하는데 문제는 교통편이 거의 없어서 택시를 호출해서 가고 다시 와야 하는 것이다. 전라도 구간의 남파랑길에서 제일 큰 문제가 숙박과 식사라는 것이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원래는 이 집 뒤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인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를 지나 85 코스 길에도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잠시 쉬면서 가지고 간 빵으로 해결하기로 하려고 동행과 자리를 잡으려고 하니 마침 숙박업소의 주인아주머니가 나온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라면이라도 끓여 줄 수 있는지를 물으니 고맙게도 낙지를 넣은 라면과 공기밥을 준다. 너무 고마워서 여러 이여기를 하며 지나가는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마은으로 라면이라도 좀 먹을 수 있게 하면 너무 좋은 일이라고 권유를 하고 인사를 극진히 하고 길을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집'의 모습

 

 이 집의 숙박은 민박도 되지만 숙박용 캠핑카를 운용하고 있어 색다른 낭만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낮에 지나기에 그냥 지나쳤지만 이 코스에서 밯길을 멈추는 사람은 이 집을 애용하면 편리할 것이라 생각된다.

 

남파랑길 83 코스(구목리교서쪽 - 백련사 -도암농협앞)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3 코스는 구목리교서쪽에서 출발하여 탐진강을 따라 강진만생테공원을 옆에 끼고 내려와서 백련사와 다산초당으로 간다. 다산초당에서 산을 내려오면 석문공원이 나오고 공원의 산길을 걸어가서 내려오면 도암면 농협에서 끝이 나는 18.0km의 길이다.

 

83 코스 지도

 

83 코스 안내판

 

  82 코스가 끝나는 구목리교는 강진읍에 있다. 그래서 조금 걸어가 강진읍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83 코스 시작점으로 와서 걷기를 시작한다.

  83 코스의 시작은 82 코스와 같은 풍경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82 코스가 탐진강과 강진만생태공원을 왼쪽으로 끼고 걸어가는데 83 코스는 강을 건너 오른쪽에 끼고 길을 간다. 물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코스도 생태공원안으로 들어가 나무 테크길을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 원래의 길이지만 조류독감으로 길을 모두 봉쇄해 놓았다. 하지만 강변으로 걸어가는 길이 있어 82 코스와는 다르게 우회를 하면서 길을 걷고 두루누비에 이 사실을 알려 주니 곧 코스 수정의 공지가 나왔다.

 

강진만생태공원

 

 이 길을 가면 '남도유배길'이라는 입간판을 자주 본다.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은 삼남대로의 한 갈래이다. 강진군의 다산수련원에서 시작하여 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사의재~영랑 생가~고성사~무위사~태평양 녹차밭~누릿재~천황사~월출산 자락~성풍사지 5층석탑~도갑사~왕인박사 유적지~영암 구림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55에 걸쳐 펼쳐진다. 전라남도에서 새롭게 조성한 해남군 북일면~다산초당 구간을 포함하면 남도 유배길의 총 길이는 65.7에 이른다. 그러니 이 길은 남파랑길가 제법 겹친다.

 

남도유배길 표시

 

겨울 철새들

 

 강진만생태공원을 지나면 내륙으로 길을 안내한다.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

 

백련사 가는 길

 

 백련사 입구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하고 백련사로 올라가니 장애인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와서 해남 땅끝까지 걷는다고 하니 감탄을 한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감탄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강진군 도암면(道岩面) 만덕리(萬德里)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白蓮寺)의 원래 이름은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로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그 뒤 고려 희종 7년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고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렸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련사의 자랑은 많으나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서 있는 3,000여 평에 달하는 숲속은 사시사철 푸르고 두터운 잎으로 인해 대낮에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 가는 산책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과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가 있던 산은 고려시대 때부터 자생해온 이 야생 차밭이 있어서 다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때문에 정약용이 이곳에 유배와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이라는 호를 지어 사용했다고 한다.

 

단풍이 곱게 든 백련사 뒷산

 

백련사 일주문

 

백련사 단풍

 

백련사 동백나무숲

 

다산초당 가는 길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에는 두 곳의 유명 여행지가 있는데 백련사(白蓮寺)와 다산초당(茶山草堂)이다. 두 곳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800m 정도이며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산 속 숲길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에 아주 좋다.

 

백련사 차밭

 

다산초당 가는 길에 보는 백련사

 

다산초당 가는 오솔길

 

 오솔길을 지나서 내려오면 다산초당의 건물들이 보인다. 비록 현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다산의 자취를 흠모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많은 정감을 느끼는 곳이다.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문화재로 1963년에 다산초당을 포함한 관련 유적 일대가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공식 명칭은 강진 다산 정약용유적 또는 강진 정다산유적이다. 원래는 초가였지만 현재는 기와집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적지로 불리고 있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18(1801~1818)의 유배 기간 동안 11년가량(1808~1818)을 머물며 생활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유배가 끝날 때까지 생활하며 학문에 몰두한 끝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숱한 저서들을 남겼다.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다산초당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고 다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만 나의 지식으로 이야기하기보다 백과사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산초당의 여러 모습

 

다산초당 안내판

 

 

 다산초당을 지나 바로 밑의 찻집에서 동행과 함께 향기로운 솔순차를 마시며 휴식을 잠시하고 다시 길을 가니 남도명품길 중의 하나인  '강진바스락길'을 표시하면서 '인연의 길'로 명명된 이정표가 보인다.

 

강진 바스락길은 백련사에서 시작해 해남 대흥사에 이르는 총 37.4의 걷기 길로 전라남도가 남도 명품길조성사업의 하나로 해남 미황사 달마고도와 함께 첫 번째 사업으로 만든 전남의 대표 길이기도 하다.

이중 인연의 길코스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과 석문공원을 거쳐 도암면 소재지에 이르는 8구간이다.

인연의 길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은 19세기 초 이 오솔길을 통해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아름다운 우정과 배움을 나눈 인연 때문이다.

 

인연의 길 표시

 

길가의 기이하게 자란 소나무

 

 산을 내려와 조금 가니 석문공원이 나온다.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며 강진군에 있는 석문공원은 석문산과 만덕산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의 절경이 너무 멋이 있어서 이런 별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석문(石門)이라는 이름은 북동쪽의 만덕산에서 남서쪽의 덕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에 하천 양안에 솟아 있는 암석지형은 긴 세월과 비바람이 조각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마치 돌문처럼 생겼고 멀리서 보면 큰 바위 안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석문공원에서 보는 기암괴석

 

 석문공원을 따라 올라가면 큰 도로 위에 도로를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이름도 조금 특이한 '사랑+ 구름다리'다.

 

 만덕산과 석문산의 단절된 등산로를 연결하는 길이 111m, 1.5m로 산악현수형 출렁다리인 사랑구름다리는 구름다리 양끝에는 하트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등산객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원래 등산로가 만덕산과 석문산이 따로 있었는데 이 사랑구름다리를 통해 단절된 등산로가 연결이 되어 이름을 사랑+로 지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심하지는 않지만 출렁거리는 출렁다리다. 그리고 밑을 보면 차들이 지나다니는 대로가 아찔하게 보이는 곳으로 건너는데 제법 재미가 있다.

 

사랑+ 구름다리

 

 다리를 건너니 길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산길을 가게 만들어 놓았다. 밑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은 없고 차가 다니는 길만 있어 어쩔 수 없이 산길을 가는데 하루 종일 걸었는데 저녁 마지막 길에 산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산길을 가니 바라보는 경치가 제법 솔솔했다.

 

 

 구름다리를 건너 데크를 내려와서 조금 가면 세종대왕(탕건) 바위가 나온다. 느닷없이 세종대왕이라니 하는 의문을 가지며 돌아보니 구름다리 주변의 암석의 경치가 그냥 지나칠 수 없이 좋았다.

 

 세종대왕이 익선관을 쓰고 인자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의 바위 세종대왕의 가슴으로 뱀 한 마리가 생동감 있게 기어 올라가고 있다. 세종대왕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봐서 이것이 뱀이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이 아닐까 생각되는 형태이다.(안내판의 설명)

 

강진의 남도명품길 표시

 

 산길을 내려와 도암면 소재지로 들어가 농협앞에서 이 길은 끝난다. 이곳은 면소재지이지만 숙박을 하는 곳이 없다. 온갖 인터넷을 뒤져서 겨우 숙소를 정했는데 이 집의 주인도 자기 집에서는 숙박을 할 수 없다고 오면 다른 집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예약을 한 곳으로 가니 다른 집으로 데려 간다. 전문적인 숙박업소가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만 숙박을 허용하는 곳인 것 같았는데 집이 아주 기풍이 있는 집이었다. 아주 고대광실은 아니었지만 정결하게 꾸며진 집으로 각 방마다 당호가 붙어 있었다. 그것도 제법 오래되어 퇴색한 당호가 있었다. 주인과 이야기를 해 보니 아마도 이 곳에서는 명망이 있는 집인 것 같았다. 뜻밖에 좋은 집에서 머무르게 되어 어제의 가우도와 같이 좋은 운이 따랐다.

 숙소에 배낭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어디에 숙박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이곳에 숙박지가 없어 참 어려웠다고 하니 마을문화회관을 재단장하여 숙박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는데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하자 주인이 조금 화를 내면서 내일 면에 가서 따져야겠다고 의아해 한다.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참조하기를 바란다.

남파랑길 82 코스(가우도입구 - 구로마을 - 구목리교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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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82 코스는 가우도입구에서 출발하여 탐진강과 강진만 생태공원을 지나 구목리교서쪽에 도착하는 14.7km의 거리다. 이 코스에는 남도이순신길 조선수군재건로와 겹치는 구간도 있고,고려시대부터 옹기를 구웠던 옹기마을로 유명한 칠량면을 지난다.

 

82 코스 지도

 

82 코스 안내판

 

 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하루의 여정을 시작한다. 아침 일찍 가우도를 벗어나서 오늘의 코스를 시작하니 길가에 가우도 짚 트랙 종착점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니 해안으로는 갈 수 없어 작은 언덕위로 올라가게 한다.

가우도 짚 트랙

 

언덕 길에서 보는 바다

 

 언덕 길을 돌아 내려와서 조금 가니 칠량면으로 들어선다. 고금도의 관문인 마량항에서 강진만까지 23번 국도가 이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 초입이 칠량면인데 예전에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다. 그래서 강진의 별명이 청자골이다. 12세기 전성기에는 가마터가 무려 180개나 있었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가면서 보니 길 이름이 청자로이다. 청자로는 강진의 문화유산인 고려청자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으로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동성사거리와 마량면 상흥리 하분교를 연결하는 전라남도의 도로로 거의 모든 구간이 국도 23호선에 속한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길에서 만나 같이 걷는 동행과 전라도 지역을 걸으면서 원도 한도 없이 갯벌과 습지 그리고 갈대를 본다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가니 방조제가 나오고 강남배수장이 나온다.

 

방조제 길

 

 방조제를 지나서 오른쪽 들판을 보니 겨울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고 있다. 길을 가면서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항상 생동감을 느끼며 사진을 찍고 싶지만 순간의 장면을 찍기가 쉬지 않다. 방조제를 지나 해안으로 길을 가려고 하나 해안 길을 통행금지해 놓았다. AI 조류 독감으로 출입을 금지해 놓은 것이다. 하는 수없이 해안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갈 수밖에 없었다.

 

들판의 철새들

 

통행금지 표시

 

 해안을 지나면 탐진강이 나온다. 탐진강(耽津江)은 일명 납양강, 예양강(汭陽江)이라고도 불리는데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에서 시작하여 장흥군, 강진군을 흘러 남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51.5정도의 아주 짧은 강이다. 심한 곡류를 하며 급경사를 이루는 지역이 많고, 하구에는 조수의 영향으로 하폭이 좁고 구릉지가 인접하고 있어 직류하도를 이룬다.

 지명유래는 신라 문무왕 때 탐라국 고을나(高乙那)15대손 고후(高厚고청(高淸) 등의 형제가 내조할 때 구십포(九十浦)에 상륙하였다는 전설에 연유하여 탐라국의 ()’자와 강진(康津)()’자를 합하여 탐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탐진강

 

고니(백조)모형

 

 

 탐진강을 따라 올라가면 저 멀리 백조의 모형이 보이는 강진만 생태공원에 도착했다. 탐진강 하구와 강진천이 만나는 강진만은 기수지역으로, 둑이 없는 열린 하구로 자연적인 기수역이 넓게 형성되고, 하구 습지에 인접한 농경지, 산지, 소하천 등의 생태환경이 양호해 다양한 생태자원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강진군의 대표 관광지이며 남해안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강진만 생태공원은 남해안 11개 하구 평균보다 2배 많은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등 철새들이 때가 되면 찾아드는 생명의 보고이다. 동시에 다산 정약용의 유배길이었고, 남당포구, 구강포 등이 있었던 역사 유적지로의 가치도 갖고 있다. 좌우로 펼쳐진 20만평의 갈대군락지와 청정 갯벌을 자랑하며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자연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곳도 A I 조류 독감으로 생태공원의 출입을 금지하였다. GPS를 통하여 지도를 보니 우회하는 길이 없다. 길을 조금 더 가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건너는 곳이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엄청나게 긴 길을 돌아가면 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금지해 놓은 나무 테크길을 지날 수밖에 업었다. 이런 점은 두루누비와 지자제가 서로 긴밀하게 의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게 느껴졌다. 길을 가면서 '한국의 길과 문화' 두루누비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니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어 보내었다.

 

강진망 생태공원 갈대밭

 

 강진만 생태공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구 목리교가 나오고 여기가 82 코스의 끝이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 도착하니 11시 정도 되었으나 동행과 이야기하여 강진읍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둘이서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했고 또 음식점을 찾기도 쉽지 않으므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길을 가기로 하였다. 강진은 한정식이 알려져 식객들이 즐겨 찾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82 코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강진만 갯벌이 왼쪽으로 펼쳐지고, 하얀 색의 고니(백조)들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고니가 우아한 모습으로 쉬는 모습은 이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다.

 

남파랑길 81 코스(마량항 - 백사어촌체험마을 - 가우도입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1 코스는 마량항을 출발하여 주로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백사어촌체험마을이 나오고 더 가면 고바우상록공원이 나온다. 길을 더 가 하저어촌체험마을을 지나면 가우도가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6.0km의 길이다.

 

81 코스 지도

 

81 코스 안내판

 

조선수군재건로 안내판

 

 마량항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해안을 따라 길을 가면서 보니 마량항이 상당히 크다. 해안을 따라 발달되어 있는 상가는 여러 업종이 존재하고 특히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눈에 보인다. 해안을 조금 들어간 뒤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해안은 완전히 유흥지 같이 발달되어 있다.

 

 조금 걸어가니 까막섬 안내판이 보인다. 마량항의 마스코트인 까막섬은 대표적인 우리나라 상록수림으로 문화적,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썰물 때엔 모세의 기적과 같이 육지와 연결되어 마량항에서 까막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까막섬

 

마량항 안쪽 마을

 

까막섬의 모습

 

썰물로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모습

 

넓게 펼쳐진 갯벌

 

 계속 길을 가다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카페가 있어 동행하는 사람과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며 경치를 즐기고 조금 더 가니 백사어촌체험마을 표지가 나타난다. 강진읍에서 남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하며, 앞바다에 흰모래가 많아 백사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 백사어촌체험마을에서는 다양한 갯벌체험을 비롯해 어장체험, 승선체험 등의 어촌문화체험을 할 수 있으며 드넓은 강진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고려 시대 청자를 수출하기도 했던 곳인 만큼 청자박물관에서 도자기체험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백사어촌체험마을

 

 

 백사어촌체험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이름도 정다운 고바우상록공원이 나온다. 고바우상록공원은 경치 좋은 23번 국도를 따라 가면 대구면 저두리와 사당리의 경계 해안가에 위치한 전망 좋은 곳으로 해질녘 노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지나 노을의 장관을 보지 못했다.고바우상록공원은 원래의 명당자리는 도로를 내면서 그 기능을 잃었지만 다시 공원으로 조성되어 카페와 강진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아름다운 노을을 눈이 아닌 사진으로 담아갈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길을 더 가면 하저어촌체험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상당히 큰 마을로 많은 숙박시설이 있어 원래는 여기서 머물려고 하고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보니 지금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곳이 없다고 하였다. 여러 번을 말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숙박지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출발할 때 곳곳에 전화를 하여 숙박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예약을 해야만 길을 떠날 수가 있었다. 

 

 하저(下猪)라는 이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국이 돼지머리형이여서 저두산(猪豆山)이라 칭해졌으며, 마을의 명칭은 이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저두산(猪豆山)은 아라비아상인들이 서기 600년쯤에 이용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돛머리이기도 하다.

하저(下猪)마을은 이웃에 있는 상저마을과 중저마을보다 아래에 위치하여 "아랫돛머리"라고 불리었으며 그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이 되면서 하저(下猪)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청정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하여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갯벌과 바다에서 얻은 바지락. 꼬막. 석화(), 어패류 등등이 새로운 각광을 받는 지역이다.

 

 

 하저마을을 지나 조금가면 가우도입구가 나온다. 원래는 가우도 앞의 중저마을에 있는 유일한 숙박지를 예약을 했는데 그 숙소 주인이 자기 집은 값이 비싸다고 하면서 숙소를 가우도 안에 있는 집을 소개해 주어 가우도로 들어가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이 글로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참고로 중저마을에 있는 숙박장소는 '강진바다노을예쁜민박' 집이다. 혹시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하고 강진만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도교로 연결된 가우도(駕牛島)는 면적 0.228km2, 해안선 길이 2.4km의 조그마한 섬이다. 가우도(駕牛島)라는 이름은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의 멍에에 해당된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駕牛島)는 강진 대구면을 잇는 저두출렁다리(438m)와 도암면을 잇는 망호출렁다리(716m)에 연결되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2.5km)은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전라남도의 가고싶은 섬으로 선정되었다.

 가우도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예전에는 여러 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중저마을 앞에 출렁다리가 생겨 걸어서 간다. 저녁이 되면 저두출렁다리와 망호출렁다리 모두 멋진 조명 옷을 입고 불을 밝힌다. 다양하게 바뀌는 조명은 강진에서 가장 화려한 밤 조명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해가지는 노을과 어우러진 출렁다리의 풍경은 인생사진을 찍기에도 최적지이다.


 가우도 입구에 도착하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조그마한 섬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나 몇 명이 찾는 곳이라 예상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는 모습을 보나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가우도로 들어가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가우도는 완전히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있었다. 두 개의 출렁다리와 모노레일, 짚트랙 등등 조그마한 섬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연에 인공을 더하여 꾸며 놓은 섬이었다.

 

가우도 입구의 모습

 

 가우도로 들어가는 출렁다리 앞에 페트 병으로 만든 고기조형물이 있다. 가우도 바다에서 밀려오는 페트병 쓰레기를 한국 중국 일본의 청년 작가들이 모여서 만들었다고 하는 고기조형물이 멋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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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 병으로 만든 고기조형물

 

 가우도는 청자다리와 다산다리 두개의 출렁다리가 가우도 섬을 육지와 이어주고 있다.

출렁다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겁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출렁다리가 아니라 바람이 불면 위험할까봐 당초의 계획을 뒤집고 튼튼한 나무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지역이라지만 군데군데 걸린 구명튜브와 스릴을 노리고 만들어 놓은 강화유리바닥 구간을 보면 더 그렇다. 출렁이는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출렁다리인지도 모른다.

 이 다리는 대구면 쪽으로 연결된 저두 출렁다리(438m, 도보 10분 소요)와 도암면 쪽으로 연결된 망호 출렁다리(716m, 도보 15분 소요)로 나뉜다. 이 다리들은 사람의 보행만 가능하지 차량이 통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직은 가우도는 깨끗하게 보존이 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차가 들어오지 못하니 입구에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내려서 사람들은 걸어 들어가 관광을 하고 곧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유지하려는지 모르겠으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렁다리 중에서 청자다리를 건너 가우도로 들어갔다. 청자다리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두 개의 교각으로 이루어진 사장교인 출렁다리의 거리는 438m이다. 그리고 교량 폭은 보도 폭 2.2m를 포함하여 2.6m이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보도는 나무로 되어 있다. 이 도보를 걷다보면 양쪽에 구명보트 두 개가 마주보고 있고 중간지점에 양쪽으로 조망대가 있다. 그리고 중간에 강화유리로 바닥을 깔아놓은 지점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가도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다리의 완공으로 그동안 어업에만 종사하던 주민들은 교통의 편리를 느끼고 있고, 민박을 통한 생활 안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어스름 무렵의 청자 다리

 

다리 건너서 보이는 가우도 표시

 

두꺼비 바위

 

가우도를 돌아가는 나무 테크길

 

 숙소가 망호출렁다리 바로 앞에 위치하여 경치가 그만이었다. 숙소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뜻밖에 아름다운 해넘이의 장관을 구경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해넘이의 광경

 

망호출렁다리의 조명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하여 다시 가우도를 나오기 위해 출발하면서 보니 가우도는 완전히 인공적으로 꾸며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지금은 계절이 여름이 많이 지나서 관광객이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머물고 간다고 한다.

 

조명을 밝힌 조형물

 

강진 출신인 김영랑 조상

 

가우도의 아침

 

 81 코스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가우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만나 같이 숙박을 한 일행도 가우도를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여정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하였다. 여행을 계속하다가 보면 우리가 예상하지 않은 일에도 부딪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조흥 일로 다가왔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남파랑길 80 코스(회진시외버스터미널 - 신리마을 - 마량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80 코스는 회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이청준 소설의 주요 무대인 선학동을 지나 이청준 생가를 지나면 해안이 펼쳐지고 그 해안을 따라가서 신리마을을 통과하여 마량항에 이르는 20.0km의 길로 오롯이 이청준의 향기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80 코스 지도

 

80 코스 안내판

 

코스 안내판 옆에 있는 이청준소설문학길 안내

 

 저번 여정을 회진에서 멈추었기에 이번 여정을 시작하려고 집에서 출발하여 회진으로 가니 벌써 어둠이 내려 왔다. 집에서 회진까지 오는데도 6시간이 더 걸렸다. 회진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저녁밥을 먹고 돌아와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코스 안내판 옆에는 장흥 출신인 한승원과 이청준을 소개하는 안내가 보인다. 내가 젊었을 대 가장 좋아한 작가가 이청준이었기에 그의 작품은 엄청나게 많이 읽었는데, 그 작가의 문학길을 걷고 그의 생가로 간다는데 묘한 흥분을 느끼며 기대감을 가지고 걷기를 시작했다.

 

  시작점옆의 나무 테크

 

 시작점에 있는 나무테크가 조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가게 하여.테크를 올라가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의 회진항을 조망할 수 있게 하였고, 뜻밖에 작은 성이 보인다. 회령진성이다.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확보한 장흥군 회령진성(會寧鎭城)은 성종 21(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조선 초기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회령진성과 그 앞 회령포구는 조선시대 선소와 선창이 있던 곳으로 이순신 장군은 회령진성에서 난파 직전인 배를 수리해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쳤다고 전한다.

 성은 마을의 뒷산을 이용하여 축성한 부정형 성이며 덕도·노력도·대마도·대구도·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진성을 바깥에서 보호하고 있다. 성벽을 돌아나오며 보니 성벽이 주민들의 집 담이 되고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단애절벽 위에 축성하였으나 현재는 모두 훼철되고 마을의 집 부근 동문지(東門址)의 유구만 확인될 뿐이다. 북벽은 석축성이 끝나는 마을 주민의 집 담장 부근에 너비 4.4m의 북문지가 남아 있다. 서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으로 길이 122m정도이고, 남벽은 대부분 훼철되고 길이 40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다.

 

언덕 위에서 보는 회진항

 

회령진성의 모습

 

 회령진성을 내려와 해안으로 가니 동쪽에 해가 이제야 떠오르기 시작한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동해의 해돋이를 엄청나게 보았는데 남해를 걸으면서도 제법 많은 해돋이를 본다. 언제든지 어지서나 보는 해돋이는 항상 장관이다. 바다와 하늘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동전같이 조그마한 해가 모양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해돋이의 광경

 

 해돋이를 광경을 즐기면서 해안을 따라서 제법 가면 안쪽으로 돌아가게 길을 인도한다.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목조건물이 나온다. 바로 영화 '천년학' 세트장이다.

 

 천년학(千年鶴)2007년에 개봉한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로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편제가 소리꾼 아버지와 눈먼 딸, 이복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소리로 승화된 정()과 한()을 그렸다면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천년학은 소리를 타고 한없이 날아오르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 세트장은 유채꽃 흐드러진 벌판 위에 세워진 선술집으로 바로 천년학 남녀 주인공들이 마지막 만남을 가지던 장소이다.

내가 이청준을 좋아하여 소설<선학동 나그네>도 재미있게 읽었고, 영화를 좋아하기에 '천년학' 영화도 재미있게 보았다. 남도해변의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던 무대가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영화 천년학 세트장

 

 순천 보성을 거쳐 오면서 '조선수군재건로'라는 안내판을 자주 보았다. 조선수군재건로 600km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진주 원계리에서 백의종군하던 중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을 받고 44일간 하동, 구례, 곡성, 옥과, 주암, 순천, 낙안, 보성, 회령포, 벽파진을 거쳐, 우수영에 이르러 명량대첩을 이룬 과정의 길이다.

 

 '천년학' 세트장을 지나 조금 가면 유명한 선학동이 나온다. 따뜻한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마을을 뒤덮고, 가을에는 맑은 바람과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메밀꽃이 피어 아름다운 경치가 유명한 곳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곳이다.

 

선학동 표지 입석

 

길가의 풍경

 

선학동마을 설명판과 마을전경

 

 이곳에서 작은 산을 넘어 이청준의 생가로 있는 곳으로 길이 나 있다.선학동마을을 아래에 두고 빙 돌아나가는 길을 따라 가면 이청준소설문학길이다. 이곳에는 이청준의 여러 소설에 대한 해설과 이청준에 대한 소개가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이청준을 엄청 좋아했으므로 대부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즐겁게 보고 산을 넘었다.

 

 여기서 간단하게 이청준을 소개하면  그는 193989일 장흥군 대덕면(현 회진면)진목리에서 태어났다.

1965년 소설가로 등단하여 40여 년 동안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데로 임하소서', 등을 비롯해 중단편 150 여 편을 발표했다.

 

 

 

 <이청준소설문학길>은 회령진성에서 출발해 선학동 메밀꽃 단지를 지나 이청준의 생가와 묘소까지의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청준소설문학길 곳곳에는 나무로 된 판에 이청준에 대한 설명들이 써져 있다.

 

이청준소설문학길의 여러 모습

 

 산을 넘어 내려오니 이청준의 생가로 가는 표시가 있다.  비록 진목리 해안에 있는 묘소까지는 가지 못해도 이청준의 생가를 보고 싶었다. 생가는 남파랑길 코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지만 발길을 그곳으로 돌렸다. 이청준의 생가는 그저 조그마한 시골집이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았다.

 

이청준의 생가 모습

 

 이청준의 생가에서 내려와 마을길을 걸어서 해안으로 가는데 칠팔명의 40정도 되어 보이는 일행이 길을 걸어오기에 인사를 하니 남파랑길을 해남에서 부산으로 걷고 있는 일행이었다.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

 

벌판을 노니는 철새들

 

마을 집의 벽화

 

 

길을 가다가 보면 개매기체험장이라는 표지가 자주 눈에 보인다. 개매기는 갯고랑에 그물을 쳐놓고 밀물 때에 밀려든 물고기를 썰물 때에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 잡는 그물을 일컫는 말로 전통적인 어로 방법 중 하나이다.

 

 

 마량으로 가는 도중에 쉼터에서 잠시 쉬려고 보니 나와 같이 배낭을 가지고 길을 걷다가 쉬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이야기를 해 보니 인천에 산다고 하며 나이는 나보다 다섯 정도 아래로 남파랑길을 걷는 동료다. 서로가 겪은 경험을 이야기를 하니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전라도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숙박지와 식당을 찾는 일인데 나는 숙박지를 그래도 찾아서 코스를 가고 있는데 그 사람은 숙소를 찾지 못하고 그냥 가는 중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잡아 놓은 숙소로 가자고 해서 나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삼일이나 같이 길을 걸으며 같이 먹고 잠을 잔 묘한 인연으로 맺어졌다.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니 마량방조제가 나오고 그 방조제를 지나면 마량항이 다가 온다. 2012년 제 15호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마량방조제는 태풍피해 재발을 막고자 항구적인 개량 복구 사업에 나서 800m 전 구간의 방조제 단면을 개선 보강하여 제방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지금의 방조제 도로가 만들어졌다.

 

마량의 상징 말

 

 강진만의 끝자락에 위치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량(馬良)말을 건너 주는 다리란 뜻에서 유래한 지명으로써 7세기 무렵 제주를 오가던 관문으로서 조공을 목적으로 제주에서 실어 온 말들을 중간 방목하던 목마장이 있었던 곳이다. 탐라의 사자가 신라에 조공할 때 배가 마량항 인근 구강포에 머물렀다 하여 탐진으로 불렸었으며, 고려시대 때는 강진만 일대에서 만든 고려청자를 개성까지 실어 나르던 뱃길의 시작점이었다.

지금 마량항의 해안 거리는 어지간한 항구이ㅡ 거리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번창한 거리다. 많은 관광객들도 보이고 음식점과 카페들도 많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너무 좋은 곳이다.

 

마량항

 

 이곳에 도착하니 80 코스가 끝이 났다.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서 식당에 중국집에 들러 맛있게 점심을 시켜서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다음 코스로 발길을 시작한다.

남파랑길 79 코스(원등마을회관 - 정남진 - 회진버스터미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79 코스는 원등마을회관을 출발하여 해돋이가 아름다운 소등섬해안을 걸어 나가면 정남진전망대가 나온다. 정남진을 지나 해안을 조금 더 가면 약간의 산언덕으로 올라가게 한다. 그 언덕에는 한승원의 생가가 있고 조금 더 가면 한재공원이 나오고 그 언덕을 넘으면 조금 가서 회진항이 나오면 길을 따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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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코스 지도

 

원등마을회관

 

 78 코스가 끝나고 79 코스가 시작하는 원등마을회관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남파랑길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못보고 지났는지 해서 온 길을 다시 가 보아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 가면 있는가 하였으나 계속 길을 가도 없었고 거의 이 코스가 끝나가는 곳에서 안내판을 보았다. 뒤에 보여 드리겠다.

 

 앞에서 말하였는데 이곳에는 숙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약 6km 정도 떨어진 상발에 천신만고 끝에 숙소를 예약하였기에 그곳까지 길을 계속했다.

 

상발로 가는 길

 

풍산마을 입석

 

남파랑길 이용안내판

 

소등섬권역종합복지문화센터

 

 장흥군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줄 목적과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한 방안으로 소등섬권역종합문화복지센터를 건립하였다.

 상발리 일대 3392부지에 2층 규모로 건립된 종합문화복지센터는 전통 건축의 요소들을 활용해 지어져서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거의 활용이 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 상발마을에서도 숙박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온갖 인터넷을 뒤져서 겨우 이곳을 찾았는데 아직은 시설이 너무 미비했다. 밥을 먹을 장소도 없어 겨우 센터장이란 분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먹는 밥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며 센터장과 여러 이야기를 하였는데 내년부터 숙박시설을 갖추어 숙박업소로 운영되도록 하겠다는 희망을 말하였다. 하여튼 이 센터장이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나에게 라면도 끓여 주어서 고맙게 먹고 길을 떠났다. 지금도 고마움을 생각한다. 이 길을 지나며 숙박지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숙박지로 소개한다.

 

저 멀리 보이는 해넘이 풍경

 

숙박한 곳

 

상발마을 표시

 

 아침 일찍 일어나 센터장이 고맙게 끓여주는 라면과 공기 밥을 먹고 길을 나서니 소등섬 너머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해가 뜬다면서 풍경을 보고 즐기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다에서 해 뜨는 풍경

 

 남포마을 앞에 있는 조그마한 무인도인  소등섬 이름의 유래에는 먼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가족들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다하여 소등섬이라 불린다고 하는 가족의 안녕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소등섬은 득량만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해를 볼 수 있는 명소로 잘 알려져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소다. 또 지는 해와 보는 모습도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소등섬은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비로운 섬으로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빠지고 섬으로 이어진 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가로질러 나타난 길을 5분 정도 걸으면 소등섬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소등섬 해안에서 해돋이를 보고 즐기다가 정남진해안로를 따라 가면 굴구이 마을이 나온다. 

 

 찬바람이 불면 장흥 청정해역 바닷가 갯벌 바위에는 하얀 꽃이 핀다. 우리가 '석화'라고 부르는 아연 성분이 많기로 이름난 ''이다.

 우리는 보통 굴이라고 하면 통영일대에서 생산되는 양식 굴을 알지만, 장흥의 굴은 바닷물 아래에서 양식하는 '수하식'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자연 그대로의 굴이다. 장흥9미 중 하나인 굴구이는 겨울의 별미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가 주는 꿀맛이다. 장흥의 득량만 자연산 굴은 향긋한 바다 내음을 자랑하며 겨울철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굴은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불에 구우면 풍미가 훨씬 깊다. 이곳 해안에서는 굴이 나는 동안 반짝 운영하는 굴구이 하우스들이 펼쳐져 있다. 넓은 철판에 굴을 가득 올려 굽기도 하고, 장작불에 석쇠를 올려 굽기도 하는데 껍데기가 크고 두껍지만, 잘 익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한 소등섬 앞바다에서 마을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자연산 굴을 직화로 구워 먹을 수 있어 관광객들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내가 먹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면서 제철을 맞이한 굴구이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굴구이집에 들어가니 2인분 이상만 판다고 하였지만 사정을 해서 1인분을 구워서 먹기로 했는데 양이 혼자서 먹기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배불리 구워 먹었지만 다 먹지 못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기 길을 떠났다.

  

굴구이 석쇠판에 굴이 익는 모습

 

익은 굴 - 크기가 장난이 아니게 크다.

 

굴구이마을 모습

 

 

 굴구이마을을 지나 죽청배수갑문(정남진해안로)를 따라 해안의 풍경을 즐기면서 가면 저 멀리에 우뚝 솟아 있는 타워를 본다. 정남진전망대이다.

 

정남진전망대 올라가는 길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경도상 정남쪽은 장흥 관산읍이다. 읍내에서 약 8 떨어진 남동쪽 바닷가에 정남진전망대가 있다.

정남진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득량만 일대와 여러 섬뿐만 아니라 저 멀리 완도 등 수많은 섬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보는 푸르른 에메랄드빛 남해바다와 하늘, 저 멀리 서있는 천관산은 한 폭의 그림으로도 묘사할 수 없다.

정남진전망대 앞에는 12간지 조형물이 있고 전망대 계단을 오르면 지도 모양의 바닥분수가 있어 시원한 물줄기로 맞이한다. 전망대 탑의 높이는 45.9로 상층은 떠오르는 태양을, 중층은 황포돛대를, 하층은 파도를 형상화하였다.

정남향이라는 방향 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율려라는 둥근 조형물은 둥근 분지처럼 생긴 땅에 바닷물이 찼다는 뜻으로 정남진의 둥근 바다를 표현했다고 한다.

 

완도쪽 경치

 

정남진전망대 주변

 

 전망대에 올라가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시켜 먹으며 보는 탁트인 바다는 일망부제로 펼쳐져 있었다. 시간이 많으면 더 한가로움을 즐길 것인데 계속 길을 가야 하기에 아쉽지만 떠나기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장흥의 맛과 풍경 소개 안내판

 

마을 보호수와 돌에 얽힌 이야기

 

 신상마을을 지나면서 뜻밖의 장소를 보았다. 제법 큰 비가 서 있는 아주 작은 곳으로 사진에서 보는 '이삼오정'이다 일제감정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여 보호할 곳으로 꾸며 놓은 듯한데 너무 초라하다. 장흥군에서 좀더 번듯하게 정비를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삼오정의 모습

 

 조금 더 가니 산 언덕으로 길을 인도한다. 한재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한재공원을 넘는 것도 있지만 장흥의 자랑인 '소설가 한승원의 생가를 지나는 길이다. 언덕을 제법 올라가면 한승원생ㅅ가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길을 통과하여 제법 땀을 흘리며 올라가면 한재고개가 나온다.

 

신상리에서 신덕리에 위치한 한재고개는 옛날에는 이곳이 덕도 섬이었다고 하는 곳으로 한승원의 소설작품들 가운데서 신화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낸 공간이다. 그의 작품 <신화(神話)>에도 나오고, <동학제>의 공간적 배경인 도둑골이기도 하고, 장편소설 <아버지와 아들> 가운데 겨울 폐사이야기는 온전히 그 도둑골과 한재산 꼭대기를 무대로 한다.

 득량만 바다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한재공원은 국내 최대 할미꽃 자생 군락지로 유명하다. 10에 할미꽃이 자유롭게 핀다고 하는데 내가 지나는 계절은 겨울 초입이다.

 

한승원을 소개하는 안내판

 

한재고개

 

느닷없이 보이는 남파랑길 79 코스 안내판

 

할미꽃 군락지

 

한승원문학길 안내판

 한재고개를 내려와서 조금 가면 회진항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회령포라 불렸던 회잔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매우 깊은 인연을 가진 곳으로 백의종군을 명받고 임지로 가던 도중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를 받아 전선 12척을 인수받고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발판이 되는 역사작인 현장이 바로 회령포, 회진항이다.

회진항은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바다로 그들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다.

 

화진항의 모습

 

 회진항을 지나서 제법 크게 발달되어 있는 길을 따라 위로 쭉 올라가면 시외저스터미널이 나오고 여기서 79 코스는 끝이 난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가 여기까지라 이기서 장흥으로 나가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 시간이 빠듯하여 걱정을 했는데  회진터미널에서 장흥가는 버스가 십분이 일찍 출발한다. 조금 의아했는데 가다가 기사님이 시간을 잘못보고 출발했다고 한다. 하여튼 나는 시간을을 걱정하지 않고 장흥에 도착하니 부산가는 버스가 십분 뒤에 출발한다고 하여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남파랑길 78 코스(율포솔밭해변 - 수문해변 - 원등마을회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78 코스는 율포솔밭해변에서 시작하여 명교해변과 회천생태공원을 지나서 군학항을 지나면 보성구간이 끝이 난다. 이제는 장흥구간으로 들어가 수문해변을 지나면 한승원문학산책길이 펼쳐진다. 계속 해안을 따라 걸으면 내룩 깊숙히 바다물이 들어가는 습지를 따라 가면 원등마을이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난다.

 

78 코스 지도

 

율포해번 거리 중간에 있는 78 코스 안내판

 

 77 코스에서 이야기했지만 율포해변은 제법 번화한 거리다. 여름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오는지를 능히 짐작하게 하는 곳이었다. 해수욕장도 넓고 깨끗하고 주위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듯했다.

 

율포해변 거리

 

임진왜란 조선수군재건로 안내도

 

보성 출신인 문정희의 '율포의 기억' 시비

 

율포해수욕장 전경

 

녹차해수탕

 

백사장 풍경

 

중간에 있는 사랑의 하트

 

 

 율포해변을 벗어나 해안풍경을 즐기며 길을 계속 가니 뜻밖에 야구장이 보인다. 간판을 보니 보성야구장이다. 보성군은 회천면 벽교리 회천하수처리장 생태공원 일원에 20115월에 야구장을 건립했다. 이 야구장은 13,500의 그라운드와 비구방지 펜스 224m를 갖추어 프로 야구장 규격에 충족하는 시설로 청정 남해바다와 인접해 풍광이 매우 우수하여 겨울에 전지훈련의 장소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성야구장 전경

 

 야구장을 지나 회천생태공원과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평등앞들을 군학항을 지나서 77번 국도를 따라가면 보성구간이 끝이 나고 장흥구간이 시작한다. 해변의 풍광을 즐기면서 계속 가니 수문해수욕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장흥군 표지

 

멀리 보이는 수문해수욕장

 

남파랑길 78 코스 중간 안내판

 

리조트라고 건립한 것 같은데.......????

 

 조금 더 길을 가니 탁 트인 해변이 펼쳐진다. '수문해수욕장'이다. 장흥읍에서 동남쪽으로 16km 떨어진 18번 국도변 안양면 수문리에 위치하는 수문해수욕장은 키조개마을 앞바다에 위치한 수심이 얇고 바닷물이 깨끗해 해수욕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또한 파도가 잔잔하고 넓고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져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은 곳이다. 또한 해수욕장 앞 바다에는 득량도가 떠 있고 뒤편에는 일림산에서 흘러내리는 담수가 있어 편리하다. 해수욕장이 개장한 유래로 약 90년 전에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시설이 있는 고흥 소록도로 이동하기 위해 정기여객선을 기다리다 더위에 지친 일본관헌과 환자들이 해변에서 목욕을 하였더니 몸이 가뿐해지고 한센병도 완치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문해수욕장 전경

 

 이곳에 도착하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이곳이 제법 상가와 식당이 많이 있어 밥을 먹기로 하고 들어가니 손님을 맞이하는 아가씨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한다. 음식이 2인분 이상이 기준이니 상차림비와 따로 내면 1인분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1인분은 안된다고 해서 그 지방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곳은 아주 합리작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자고 하고 장흥의 별미인 키조개회무침정식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이렇게 넉넉하게 점심을 먹은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한잔 시켜서 마시고 휴식을 하다가 길을 다시 떠났다.

 

점심을 먹은 음식점

 

장흥의 명물 키조개 조형물

 

 점심을 먹고 천천히 길을 따라 가니 해변의 길에 비가 죽 늘어서 있다. ;한승원문학산책길'이다.

 

 장재도가 보이는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아름다운 여닫이 바닷가 산책로의 모래 언덕 약 600미터 사이에 20미터 간격으로 해산 한승원의 시비 약 30기가 보인다.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끝 부분에 한승원문학산책길이라는 표지가 보였다. 여기에 새긴 글들은 선생이 율산 마을로 이거하신 이후 쓴 작품들로, 이 바다에서 사는 마을 사람들의 희망과, 이 바다를 찬양하는 헌사를 내용으로 한다.

한승원 문학산책길은 바닷가를 따라 쭉 이어진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어 가볍게 걸으면서 몇 편의 글을 읽어 보았다.

 나는 한승원을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많은 시도 발표한 시인이었다.

 

여러 한승원의 시비들

 

한승원문학산책길

 

 한승원은 장흥군에서 태어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당선되어 문단에 오른 소설가로 그의 문학에서 고향은 하나의 운명, 원죄, 근원,  원형으로 다가온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바다 이야기를 시와 소설로 형상화시켜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여 왔다.

 

장재도 표시

 시야에 걸리는 것 없어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로 유명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에 있는 장재도(壯載島)는 장재(장자, 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며 조선 중종 때에 정국공신 정해군 백수장이 은퇴하여 서재를 짓고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장재도는 섬이지만 내륙과 이어진 다리가 있어 편하게 진입이 가능하지만 내가 걷는 길에는 장재도가 포함되지 않아 눈으로만 보고 길을 계속 간다.

 

 계속 해안을 따라 길을 가니 내륙 깊숙하게 바다물이 들어가는 갯벌이 보인다. 물이 나간 갯벌에는 칠면초와 갈대가 서로 조응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오후 3시경 내가 이 길을 걸어가는데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다. 물이 나가 바닥이 드러난 갯벌이 빠른 속도로 물이 채워지며 또 다름 모습을 보여준다.

 

바다물이 들어노는 갯벌

 

 제법 긴 시간을 걸어 갯벌의 끝까지 가니 마을이 나오고 아주 조그마하지만 깨끗한 이름을 가진 가게가 나온다. 이름이 '남하 점방'과 '남하부엌'이다. 너무나 정겨운 이름이라 잠시 보다가 조금 더 가니 78 코스가 끝나는 원등마을이 나타나고 마을회관이 보인다.

 

남하점방과 남하부엌

 

원등마을 회관

 

 처음에 이번 여정을 시작하면서 숙박지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원등마을 주변에는 숙박을 하는 곳이 하나도 없어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원등마을 이장님의 전화번호를 얻어 연락을 해서 민박을 좀 할 수 있게 조치를 해 주기를 요청했다. 민박을 하는 곳이 없다고 해서 민박이 아니면 마을회관에서라도 잠을 자고 갈 수 있게 청햇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뒤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출발을 하였는데 다행히도 이곳에서 약 5내지 6km 떨어진 곳에 숙박지를 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장님께 연락해서 소식을 전하고 이 마을은 가볍게 지나가게 되었다.

남파랑길 77 코스(청암항입구 - 율포솔밭해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77 코스는 청암항입구에서 출발하여 선소항을 거쳐 율포솔밭해변까지 가는 16.7km의 길로 해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길이다.

 

77 코스 지도

 

77 코스 안내판

 

 청암항을 지나 해안의 언덕위로 길을 따라 가니 선소어촌체험장이 나온다. 어촌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유료로 운영되는 곳인데 지금은 철이 아니라 아무도 없다.

 

 

선소어촌체험장을 지나 조금 가면 공룡모형이 보인다. 이곳에 무슨 공룡이 있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지나가며 보니 공룡알화석지라고 한다.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에 있는 비봉리공룡알화석산지(寶城飛鳳里恐龍化石産地) 2000428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득량면 선소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공룡알들은 약 3해안에 걸쳐 5개의 층준에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알둥지를 형성하고 있다. 둥지 하나에는 최소 6개에서 30여 개의 공룡알들이 있다.

알둥지 중 최대지름이 1.5m 되는 것이 발견되었고, 또한 공룡알 껍데기가 8겹이나 중첩된 것이 나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예라고 한다.

알 껍데기의 구조나 기공 시스템, 알의 크기·형태 및 알 껍데기 표면장식들을 고려해볼 때 대부분 조각류나 용각류(龍脚類)의 초식성 공룡이며 육식성 수각류종은 산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선소마을 안내판

 

선소마을 공룡알화석지 소개

 

 선소항을 지나 길을 따라 제법 가니 오늘 숙박하기로 예약한 펜션이 나온다. 바다가에 자리잡은 깔끔한 펜션이었는데 저녁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에게 물으니 해넘이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돋이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숙소로 정한 곳에 들어가니 앞에 해넘이를 볼 수 있도록 전망대도 만들어져 있었다. 조금 지나니 해가 지는 시간이 되어 밖에 나가서 해넘이를 보는데 굉장한 장관이었다.

해넘이를 보고 객실로 들어와 라면을 끓여 저녁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했다.

 

 참고로 이 펜션은 '은빛파랑펜션'이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를 바란다.

 

해넘이 시간적 광경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나며 해돋이를 보려고 했으나 하늘은 두 가지의 기쁨을 함께 주지는 않았다. 동쪽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여 해돋이를 볼 수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길을 떠나서 제법 걸어가니 하늘 위에 해가 떠 있었다.

 

펜션의 모습

 

 보성은 우리에게 녹차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해안을 따라 걸어가는데도 곳곳에 녹차가 보였다.

 

녹차밭

 

 계속 시간이 이른 길을 가니 회천면을 경계를 지나 객산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가까이로 가서 마을 입구를 보니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보인다. 아니 바위라기보다도 암벽이다. 아주 큰 암벽이 마을입구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이 마을이 복 받은 마을인 것 같았다. 객산마을을 지나 조금 가니 쪽파를 거두는 마을 아낙네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 농촌의 하루는 때가 없이 바쁘다. 쪽파를 거두고 그 파를 차에 실어 내가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길을 가며 그 모습을 찍으니 아낙네가 웃는다. 그 모습이 정말 소박하고 천진스러웠다.

 

객산마을 입구의 암벽

 

쪽파를 거두는 아낙들

 

저 멀리 필봉위로 해가 떠 오른다.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바다가를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같은 것 같으나 다르게 보인다. 수 많은 갯벌을 보고 습지를 보면서도 항상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광경이 펼쳐지는 까닭이리라.

 

왼쪽의 갈대와 오른쪽의 파가 대조적이다.

 

수 많은 갯벌의 다양한 모습

 

 이 길을 계속 가면서 보는 것이 '다향길' 표시다. 훨씬 일찍부터 보아온 길로 보성다향길은 보성군에 차밭과 해안길을 끼고 도는 총연장 42.195km의 생태탐방로 4개 코스로 조성된 다향길이 있다.

 다향길 1코스는 한국차박물관 입구 주차장에서 율포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16.5km의 거리고, 2코스는 율포해수욕장에서 회천면 서당리에 이르는 약 7.7km의 거리다. 그리고 3코스는 회천면 서당리에서 득량면 비봉공룡공원에 이르는 코스로 약 9km의 거리고, 4코스는 비봉공룡공원에서부터 득량만 방조제 길을 거닐면서 갈대 군락지인 예당습지의 노을감상과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거리는 약 9km의 거리다.

 

다향길 표시

 

 

 계속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서 여러 풍경을 즐기다 보니 제법 번화한 거리가 나온다. 율포솔밭해수욕장이다. 시골의 조그마한 해수욕장으로 생각했는데 그 주변을 보니 생각보다 화려하게 치장이 된 번화한 거리가 있는 상당한 규모의 해수욕장이다.

 

 율포솔밭해변은 폭 60m와 길이 1.2km에 이르는 은빛 모래밭에 100년생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풍광이 빼어난 해수욕장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득량만이 안겨준 수심이 깊지 않아 해수욕에 편안하고, 아름다운 노을, 바지락과 새조개를 잡을 수 있는 모래개펄, 이웃한 식당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 율포솔밭해변 바로 곁에는 지하 120m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해수가 보성 녹차와 만나 지친 몸을 달래주는 전국 유일의 녹차해수탕이 위치하고 있다.

 

율포솔밭해수욕장 거리

 

 율포솔밭해수욕장 거리 중간에서 77 코스가 끝난다. 날로는 이틀 동안 걸었지만 시간상으로는 4시간 정도 걸었다. 이길을 걸으면서 저녁의 해넘이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날씨의 변화를 인간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기에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는데 날이 좋아 해넘이의 장관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