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남파랑길 56 코스(여수소호요트장 - 화양면사무소 - 원포버스정류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56 코스는 소호요트장을 출발하여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용주리 언덕을 지나서 계속 여수 해안의 풍경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별 다른 특색이 있는 길이 아니고 해안의 풍경을 즈리며 걸으면 원포버스정류장에서 끝이 나는 14.7km의 평범한 길이다.

 

56 코스 지도

 

오랜만에 보는 56 코스 안내도

 

소호요트장

 

 소호요트장을 지나 해안을 따라 걷다가 조금 지나면 작은 언덕으로 올라가게 한다. 올라가면서 보면 소호승마장이 나오고 언덕을 넘어가면 용주리다. 용주리(龍珠里)는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비봉산 동쪽과 안탈산 남동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주리라 하였다. 이 지역 포구의 이름이 예로부터 용진개 또는 용문포라고 한 데서 착안하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뜻을 담았다.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가 되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농업과 어업이 혼합된 형태의 반농반어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논보다는 밭이 많은 지역이며 고내마을과 호두마을은 멸치잡이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다.

 

 

 용주리에 가까이 가니 길가에 할머니들이 모여서 조그마한 장터를 만들어 가판을 하고 있다. 지나가면서 보니 농산물을 팔고 있는데 하루 종일 기다려도 손님은 한 사람도 오지 않을 곳인 듯 보였다. 그래도 마을의 할머니들이 모여서 담소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곳이라는 생각에 이런 장터가 더 애틋하게 보였다. 여행을 하는 중이 아니면 농산물을 조금이라도 팔아 주고 싶었지만 짐을 가지고 길을 걸을 수는 없기에 보고 지나쳤다.

 

용주 할머니 장터

 

 

 용주리를 지나 여수 바다의 풍경을 즐기며 걸을 가며 주변을 살피니 물을 공급받을 곳이 보이지 않는디. 가지고 있는 물이 있어 계속 길을 가니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나진마을이다. 제법 먼 길을 걸었기에 목이 말라서 슈퍼에 들어가 음료수를 한 병 사서 마시고 물을 두 통 구입하여 잠시 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나진마을의 슈퍼

 

소장정류소

 

 

습지

 

 

 안포리로 가는 길인  국도 제77호선인 안포나진로는 여수시 화양면 세포1교차로에서 화양면 나진교차로를 이어주는 도로이다.

길을 가다가 보니 정류장도 아니고 우체통도 아닌 묘한 박스가 보인다. 그 옆에 붙여진 표지가 내 눈을 끌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화양연화'다. 이곳이 화양연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단어가 주는 따뜻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길가의 아름다운 팬션

 

 

 안포나진로를 따라 안포쪽으로 내려가니 아름다운 카페가 눈을 끈다. 안포카페라고 길을 오다가 표지를 보았는데 이런 외진 곳에 카페가 운영이 되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래도 운영이 되니 이렇게 큰 규모의 카페를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고 길을 간다.

 

안포 카페

 

안포어항

 

 안포어항을 지나 아무 특징이 없는 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원포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여기서 56 코스는 끝이 난다.

 

 아무런 특징이 없었지만 여수의 바다 풍경을 즐기며 편안하게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간다.

남파랑길 55 코스(여수해양공원 - 돌산대교 - 웅천친수공원 - 여수소호요트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55 코스는 여수 해양공원을 출발하여 여수의 아름다운 해안길을 끼고 걸으면서 동산대교를 지나 여수소호요트장까지 가는 15.6km의 길이다. 이 길은 해안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서 걷는 길이라 아무런 무리가 없는 길이다.

 

남파랑길 55 코스 지도

 

 54 코스 끝과 55 코스 시작점의 표시가 아무 곳에도 없다. 그저 길을 따라 걸으면 여수해양공원의 아래 사진의 해양경찰서가 55 코스 시작점이 아닌가 생각될 뿐이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남파랑길에는 코스 안내 표지가 없는 곳이 왜 이렇게 많은 지가 의문이다.

 

 

 여수시 종화동에 있는 여수 해양공원은 처음에는 이순신장군공원이라 부르다가 중앙동 해양공원으로 명명(命名)되었는데 여수구항해양공원이라고도 한다. 도시기능을 고려한 항만시설과 주변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시민의 휴식공간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여수해양공원은 시민들의 쉼터이자 운동·여가 활동 공간으로 2016년 종포해양공원 안에 낭만포차거리가 조성되었으나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여러 문제가 되면서 2019년 거북선대교 아래로 이전하여,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며 여수 밤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여수해양공원은 여수 구항 2단계 정비공사의 일부분으로,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종포해양공원과 중앙동해양공원, 이순신광장이 연계되도록 조성하였다.

 

 원래 여기는 종포해양공원인데 조선시대에 종포는 읍내에서 떨어진 동쪽 해안의 마을로, 현재의 여수시 종화동에 있던 포구를 이르는 지명으로 전라좌수영의 고소대 아래에서 오동도가 있는 자산공원 동쪽 해변까지를 종포라고 하였으며, 종고산(鐘鼓山) 밑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포구라 하여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핸드릭 하멜이 전라좌수영을 나와 조선을 탈출하고자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향하는 배를 탄 곳이 종포 해변으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에 집필된 이광수의 <충무공전서>에선 종포를 새복개로 기술하였다.

1953년 종포동과 평화동을 합치면서 종화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수해양공원의 모습

 

 여수해양공원을 걸어가면 큰 거북선을 만난다. 이순신광장이다. 이순신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구조물은 원형에 가깝게 재현한 거북선이다. 단순히 외형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내부에서도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거북선 내부로 들어가면 수군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임진왜란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며 간단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왜란에서 활약한 거북선은 세 척으로 전라좌수영, 방답진, 순천부 선소에서 한 척씩 건조했으며, 거북선이 있는 위치는 바로 전라좌수영 선소가 있던 곳이다. 이순신 광장의 한쪽 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와 임진왜란의 과정 등을 담은 벽화가 있다.

 

이순신광장의 거북선

 

평화의 소녀상

 

 이순신광장을 조금 지나면 좌수영 음식문화거리가 나온다. 여수시에 있는 음식 특화 거리인 좌수영 음식문화거리(左水營 飮食文化- )가 있는 중앙동은 예전부터 음식점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 엑스포 개최지로 여수시가 결정되자 여수의 특색 있는 음식 문화를 전하기 위하여 2009년 좌수영 음식문화거리를 조성하여 발전시켰다. 좌수영 음식문화거리에는 많은 점포가 입점해 관광객들에게 여수의 대표적인 음식인 아귀탕과 아귀찜, 서대회, 게장백반, 해물삼합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들이 호기심을 끌고 있지만 아직 밥 때가 되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길을 계속 걷는다. 단순하게 관광을 왔으면 기다렸다가 맛을 즐길 것인데 주된 목적이 걷기이기에 다음을 기약한다.

 

좌수영 음식문화거리

 

여수연안여객터미널

 

여수수산시장

 

 

 여수시 남산동과 여천군 돌산읍 우두리를 연결하는 돌산대교는 돌산섬(돌산읍) 앞바다에 세워진 길이 450 m,너비 11.7 m의 사장교로 밤이면 50가지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찬란한 위용을 뽐내는 돌산대교는 198012월에 착공하여 198412월에 완공되었다.

 다리의 건설로 '돌산' 이라는 섬이 이제 육지가 되었으며, 섬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육지출하가 활발하여지고 육지의 관광객들이 섬에 드나드는 데 편의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차량운행비의 감소와 통행시간 감소에 따른 경비의 절감을 가져왔다.

 

동산대교

 

영당지

 

 길을 따라 걸으니 제법 큰 어항이 보인다. 주변의 안내도를 보니 국동항이다. 구봉산 아래 마을은 포()로서 지형이 국화(菊花)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국포(菊浦)'라 부르다가 지금의 국동이 되었다 하는 국동항(菊洞港)은 여수시 국동에 있는 어항으로 여러 섬들이 파도와 바람을 막아줌으로써 천혜의 어항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대표적인 여수의 해산물 집산지이며 지역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동항 인근 봉산동에는 국동항 수변공원이 있는데 조용하고 한적해 여수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야자나무와 푸르른 잔디, 잠시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의자도 많이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공원의 바닷가엔 여수시에서 허가를 받은 푸드트럭들이 있어 잠시 허기를 달랠 수도 있다.

 

 

국동항의 모습

 

국동항 갈치잡이 배의 모습

 

 

 해안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유명한 여수 14연대 주둔지라는 표지가 나온다. 1948년 여수 14연대 사건은 해방이후 우리나라가 겪은 슬픈 역사중의 하나이다. 그 사건에 대해서 내가 무어라 말할 수 있는 지식이 없으므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신월동 해안길 표시

 

여수시하수종합처리장

 

 신월동해안길이라 된 표시를 따라 계속 걸어 가먼 웅천항이 나온다. 웅천항은 조그마한 어항이지만 해안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제법 크게 변모시켰다.

 

 여수시 웅천지구 서측해안지선에 있는 도시 근린공원인 웅천친수공원(熊川親水公園)은 도시민과 관광객이 청정해역인 가막만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도시 근교 근린공원이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공원의 이색적인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 도시민과 관광객들의 휴식 쉼터 마련과 친수 공간 조성을 위해서, 해수부에는 인공해수욕장을 만들고, 편의시설과 야외무대, 잔디광장 등등의 부대시설을 갖추었다.

 

웅천친수공원

 

장도

 

예울마루

 

 

 예울마루를 지나 조금 가면 선소유적지가 나온다. 여수 선소유적 (麗水 船所遺蹟)은  여수시에 있는 조선시대 거북선이 건조되었던 선박제작소로 199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로, 여수 선소유적은 옛부터 선소마을로 불렸는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던 유적이다. 선소마을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거북선 제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거북선은 여수지역에 있던 본영 선소, 순천부 선소 및 방답진 선소 세 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배를 정박시켰던 굴강을 비롯하여 무기 제작처로 추정되는 대장간(풀뭇간), 세검정, 군기창고 등의 터가 남아 있고, 마을 입구에는 벅수가 세워져 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변씨부인을 모셨던 곳인 자당기거지가 있다.

 

여수 선소 유적지

 

 

 선소를 지나 항호마을로 들어가니 제법 시가지 모습이 보인다. 점심 때가 되어 끼니를 해결하려고 횟집에 들어가니 한사람이 먹는 메뉴가 없다고 하면서 곤란해 한다. 길을 가면서 흔히 겪는 일이다. 대형 음식점에서 일인분을 요리하는 것이 번거롭고 이문이 제대로 남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문을 나서니 주인장이 미안한지 그 옆에 있는 감자탕 집을 소개해 주어 가서 맛있게 한 그릇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감자탕 집

 

 점심을 먹고 가벼운 걸음으로 조금 요트장쪽으로 걸어가니 바다 위를 가로 지르는 테크가 놓여 있다. 여수시 소호로 392 (소호동)에 밤바다의 멋진 야경을 보며 걷는 물 위의 데크 산책로인 소호동동다리로 바다 위에 조성된 742m의 해변산책로다.

 

소호동동다리

 

 소호동동다리를 건너면 바로 소호요트장이다. 여수시 소호동 505-2번지 가막만() 해역에 있는 소호요트장(蘇湖)은 1987년 제68회 전국체육대회 전라남도 유치를 계기로 여수시는 여수 지역에서 요트 경기를 개최하고자 1986년 소호동에 요트장을 착공하여 198710월 전국에서 두 번째 규모의 소호요트장을 건립하였다.

 클럽하우스와 요트 500척을 수용할 수 있는 육상계류장을 비롯하여 선박세척장, 잔교, 부잔교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요트 강습도 이루어지고 실습을 할 수도 있다.

 

소호요트장

 

 소호요트장에서 55 코스는 끝난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해안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무런 무리도 없이 55 코스를 걷고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발걸음을 시작한다.

 

남파랑길 54 코스(여수종합터미널 - 여수해양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라일 54 코스는 여수종합터미널을 출발하여 충민로를 따라 걸어가면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단지 인 엑스포타운인 엑스포공원을 지나 유명한 오동도를 지나서 하멜전시관에 도착한다. 여기서 조금 여수해양공원을 가면 아딘지는 몰지만 끝이 나는 코스로  7.3km의 아주 짧은 거리다. 하지만 무언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느긋하게 걷다 보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54 코스 지도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를 나와 하루의 여정을 시작한다. 내 여행의 원칙이 아침에는 일찍 출발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조금 의아해 한다. 54 코스 시작점인 여수종합터미널 부근을 아누리 찾아도 54 코스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터미널을 지나 길을 조금 가면 충민사 표지가 나오는 약간의 오르막이 나오는데 충민로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충민사는  사적 제381호로 여수시청에서 관리한다.. 충민로(忠愍路) 표시석을 지나자 제법 가파른 고개 길이 나오며 아침 일찍부터 길을 걷는데도 땀이 흐른다.

 

여수종합터미널

 

충민로와 충민사

 

 길을 따라 가다가 담벽을 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돌벽이나 콘크리트벽이 아니고, 나무를 가로 세로로 얽어서 흙을 채워 놓은 모습이 눈에 띤다. 나무로 흙을 채워 놓으니 여러 식물들이 그 주변에 자라는 모습이 매우 친근하게 보여 새롭다.

 

나무로 만든 담벽

 

 높은 고개 마루를 올라 내리막 차도 따라 가니 엑스포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고층 아파들을 많이 건설하였는지 아파트 숲을 이룬다. 아파트 사이의 덕대천 아래에 만덕동 힐스테이트 부녀회에서 조성하여 놓은 꽃밭 길이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다. 굴다리를 지나 하천위로 올라가니, 꽃가람공원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꽃가람공원 표지

 

 꽃가람공원을 지나면 엑스포 브리지 위에 박람회장으로 진입하는 출입문 아치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직진하면 엑스포 광장이 나오고, 지구촌에서 단 하나뿐인 화려한 빅 오 쇼(Big-O Show)를 펼치는 큰 원형의 조형물이 나타난다.

 2012 여수 엑스포는  2012512일부터 812일까지 93일간 개최되었던 엑스포로 전 세계 105개국과 10개 국제 기구가 참가하였다. 주제는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다.

 1993 대전 엑스포 이후 19년 만에 열린 BIE 공인박람회(인정박람회)로서 규모는 대전 엑스포보다 많이 작았지만 규모면에 비해서 관광객은 꽤 많았던 편이다.

 개막식은 511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꿈꾸는 바다"라는 주제로 이루어졌디. 이 엑스포를 기점으로 여수시의 각종 사회간접자본이나 경제 등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여수 엑스포 박람회장의 여러 모습

 

엑스포 해양공원

 

해안의 여러 모습

 

자산공원 전망대

 

 엑스포 공원을 지나 해안길을 조금 걸어가면 유명한 오동도입구에 도착한다. 코스를 약간 벗어나게 하는 오동도는 동백나무 군락지를 이루어, 꽃이 피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섬 전체는 완만한 구릉지로 해안은 많은 형상의 바위들과 기암절벽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오동도의 모습

 

오동도 들어가는 길에서 보는 여수

 

 오동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골목길로 들어가면 자산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자산공원(紫山公園)은 여수시 동남쪽 자산(紫山) 정상에 있는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자산이라는 이름은 일출 때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붙여졌다. 자산공원은 오동도 방파제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여수시와 오동도, 남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일출의 명소로도 유명하지만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소망을 간직한 열쇠가 달린 하트들이 난간을 덮어버리고 있다. 넓은 전망대에 세워진 사랑의 열쇠 탑을 보고, 오동도 앞바다를 두루 조망하고는 케이블카 탑승장 방향으로 간다. 이곳 자산공원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돌산도 돌산공원까지 가는 1.5km의 케이블카로 2014년부터 운행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정상에 이르면 넓은 평지에 수천 그루의 상록수와 화초들이 식재되어 있다. 공원 정상에는 1967년도 충무공 탄신일을 제막한 국내 최대 높이 15m의 이순신 장군 동상, 자산각, 충혼탑이 있고 바다에서 밀려오는 해풍과 탁 트인 전망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동상 반대편에 1998년에 건립된 일출정(팔각정)이 있다. 팔각정에는 여수여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소원 팬던트와 낭만엽서를 구매할 수 있다.

 낭만엽서를 구입 후, 낭만우체통에 넣으면 매년 15일 경, 발송하는 느린 우체통이다.

 

자산공원 올라가는 계단

 

공원 팔각정의 사랑의 탑

 

자산공원에서 보는 여수 바다

 

케이블카 정류장

 

이충무공 동상

 

공원의 햔충탑

 

자산공원 안내판

 

 공원에서 내려가는 길에 바라보는 바다 위의 거북선대교부터 우측 돌산대교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차도에서 좌측 좁은 길로 들어가서 우측 하멜 전시관 방향으로 내려가서 거북선대교 옆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니, 여수 밤바다가 시작되는 낭만포차이다. 양쪽으로 작은 포차들이 18개 정도 있다.

 여수하면 떠오르는여수밤바다,낭만포차」를 보니 아 이곳이 여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포차들은 개점시간이 아닌 아침이라 문을 닫고 있지만, 밤에 오면 어떤 풍경일지를 생각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낭맘포차거리

 

 낭만포차를 지나 조금 해변 따라가니 풍차가 앞에 있는 하멜전시관이 있다. 여수 하멜전시관은 '하멜표류기'를 써서 조선을 서양세계에 처음 알린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srik Hamel, 1630-1692)을 기리기 위한 전시관으로, 2012104일 개관하였다. 하멜은 13년 동안 조선에 머물며 1653-1666년까지의 경험을 <Hamel'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1668)에 기록했으며, 1659년부터 7년간 여수에 억류되었다가 166694일 일본으로 탈출했다. 하멜 전시관은 1663년부터 1666년까지 약 36개월 동안 여수에 억류되어 있다가 일본 나가사키로의 탈출에 성공하여 1668년 본국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된 뒷이야기까지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앞에는 하멜 동상과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가 설치되어 있으며, 하멜 동상의 왼쪽 팔에는 하멜표류기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먼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전시관 내에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네덜란드에서 기증한 하멜보고서(하멜표류기)가 전시되고 있다.

 하멜전시관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 가면 조그마하지만 예쁜 하멜 등대가 있다.

 

하멜전시관과 하멜등대

 

 하멜전시관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걸으면 처음에는 이순신장군공원이라 부르다가 중앙동 해양공원으로 명명(命名)된 해양공원이 나온다.

 시민들의 쉼터이자 운동·여가 활동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는 여수해양공원은 2016년 종포해양공원 안에 낭만포차거리가 조성되었으나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여러 문제가 제기되면서 2019년 거북선대교 아래로 이전하여,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며 여수 밤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해변 반대편의 많은 음식점들도 하나같이 낭만포차라는 간판을 걸고,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거북선대교 위에는 해상케이블카가 해양공원의 운치를 더해 준다. GPS54코스의 종점은 다 왔다고 알려주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주위에는 54코스 종점이자 55코스의 시점 안내판이 없다. 그저 이곳이 종점이구나 하고 54 코스를 끝낸다.

 

여수해양공원 거리

 

 54 코스는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볼거리가 아주 많은 코스이다. 여수 엑스포공원을 지나서 여수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즐기며 거닐다 보면 여수가 자랑하는 낭만포차 거리가 나오고 정겨운 사람들이 한께 밤거리를 거닐고 즐기는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추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곳이다.

남파랑길 53 코스(소라초등학교 - 흥국사역입구 - 여수종합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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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53 코스는 소라초등학교 앞을 출발하여 골목길로 조금 가면 구 철길을 공원으로 만든 길을 따라 여수종합버스터미널로 가는 11.3KM의 짧고도 단조로운 길이다.

 

53 코스 지도

 

 

 소라초등학교 주변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53 코스 시작 안내판이 없다. 그저 길을 찾아서 골목길로 들어가 길을 갈 뿐이다. 왜 안내판이 없는 곳이 곳곳에 있는지가 조금은 의문이다.

 

 

 골목길을 조금 가니 공원길과 같은 길이 나온다. 무슨 길인가 약간 의아했는데 계속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펴 보니 여수의 옛 철길을 공원으로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 길은 여러 공원으로 나누어져 있고 옛날의 폐역도 공원의 일부로 개발되어 여수 사람들의 산책로로 애용되는 곳이었다.

 

중간에 파손된 도로를 보수하는 곳

 

곳곳에 있는 갤러리 작품

 

선원뜨레 공원

 

옛철길공원 갤러리 조성 설명

 

맑은 가을 하늘

 

 계속 공원길을 따라 가니 미평지하보도갤러리가 나온다. 여러 작품이 양쪽의 벽에 걸려 있어 구경을 하면서 길을 계속 재촉한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구경할 수가 없었는데 우리나라가 참 많이 발전하였다는 느낌을 여행을 하면서 많이 느낀다.

 

미평지하보도갤러리와 작품

 

 조금 더 길을 가니 구 미평역이 나온다. 지금은 폐역으로 주변은 공원으로 안전히 변신한 곳이다.  

 미평역(美坪驛)은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에 위치하였던 전라선의 역으로 201145일에 순천 - 여수 구간 선로 이설로 공식 폐역되었다. 폐역 이후의 역사는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미평공원 설명판

 

구 미평역

 

 미평역을 조금 지나면 뜻밖의 고인돌이 나온다.  미평동 고인돌군은 미평동 평지마을·죽림마을(죽림리 195-2, 원죽길 59-2)·양지마을(미평동 양지 772)에 위치한다. 평지마을 3개 군, 죽림마을 3개 군, 양지마을 1개 군 등 모두 7개 군에 51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이 가운데 발굴 조사된 유적은 미평택지개발사업 지구 내 미평공원 부지(미평동 11-1)에 이전되어 복원되었다.

 

미평동고인돌

 

 다른 특징이 없는 공원길을 계속 따라 걸으니 어느 새 하늘에 저녁 노을이 진다. 해변이나 산에서 보는 노을이 아니라 도심의 공원길에서 노을을 보니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저녁 노을

 여수종합버스터미널은 여수시 좌수영로 268에 위치한 고속버스·시외버스 터미널이다.

1982년에 개장하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터미널이다. 선원동에 위치한 여천터미널도 있다. 또한 시외버스의 경우 대다수가 순천을 경유하고 있다.

 

여수종합버스터미널

 

 53 코스는 비교적 짧은 길이고 평탄한 길이라 처음 예정과 다르게 긴 길을 오늘 걸었다. 처음 예정은 여천터미널에서 오늘을 멈추고 쉬려고 했는데 계속 길을 걸어 여수버스터미널까지 오니 어둠이 제법 짙었다. 내가 항상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하루의 일정을 마치는 것을 계획하였는데 도심길을 걷는다고 조금 늦게까지 걸었다.

 

 빨리 숙소를 정하고 휴식을 하기로 하고 숙박지를 찾아간다.

 

남파랑길 52 코스(율촌파출소 - 여수공항입구 - 덕양역 - 소라초등학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52 코스부터 여수구간이 시작된다. 여수구간은 광양, 순천 구간의 중간에 위치하여 여수를 한 바퀴 돌아나오게 하는 구간이다.

 

여수구간 안내도

 

 52코스는 여수시 율촌파출소 건너편에 있는 52코스 시작점인 안내판에서 출발하여 여수공항과 덕양역을 지나서 소라초등학교에 이르는 11.3KM의 비교적 짧고 편안한 길이다. 5km의 대포리 구간은 확 트인 평야의 농촌 풍경과 여천 산업단지를 바라보며 걷는다.

 

52 코스 지도

 

52 코스 안내도

 

율촌파출소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조금 걷다가 조그마한 카페에 들어가 휴식을 하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별 다른 특색이 없는 길을 그냥 혼자서 즐기며 걷는다.

 

율촌천

 

멀리 보이는 갯벌

 

 가을이 깊어 가는 시절이 되었는지 들판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농부들의 노력이 헛되게 소모되지 않게 참새로 보호하려고 독수리 연을 듸워 놓았다. 과거의 들판에는 허수아비가 있었는데 이것도 세월의 흐름으로 변한 것 같다. 풍년을 기뻐해야 하는데 뉴스를 보면 쌀값이 떨어져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고 하니 그것도 걱정이다.

 

가을 들판

 

 

 길을 따라 가다가 이정표를 보니 여순로라고 한다. 여순로는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 교차로와 순천시 연향동 팔마사거리를 잇는 전라남도의 도로이다. 여수시와 순천시를 잇는 도로이기 때문에 여수시의 ''와 순천시의 ''을 따서 여순로라고 명명되었다. 엑스포대로가 생기기 전에는 17번 국도로 지정되어 있었다.

 

여수공항입구

 

 여수공항은 작은 공항으로 서울-여수간 운항은 55, 제주-여수간 비행시간은 45분 소요된다.

20041125일 신활주로 운영으로 더 편리하게 항공교통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2005년 공사 완료로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여수국가산업단지 및 율촌산업단지 개발 등 전남 동부권 관문공항으로 중추적 역할을 수행 하고 있다.

 

꽃무릇

 

 여수공항을 지나 길을 걸어 덕양역쪽으로 가니 길가에 꽃무릇이 제법 피어 있다. 내가 꽃구경을 좋아하여 여러 곳의 꽃무릇을 구경했는데 길가에 조금 피어 있는 꽃무릇을 보니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낀다. 여수에서 이 부근을 양지바름공원으로 조성하여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덕양역 

 

 양지바름공원안에 있는 덕양역(德陽驛)은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위치한 전라선과 여천선의 역으로 여수국가산업단지로 가는 여천선과 분기하는 역이며, 여객열차는 정차하지 않는다.

 

 덕양역을 지나니 덕양시장곱창거리가 나온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여 여러 곳에 먹을거리를 찾아가서 먹기도 하는데 지금은 먹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고 걷는 것이 주 목적이라 그냥 지나친다.

 

덕양시장곱창거리

 

 덕양시장을 지나 조금 가면 길 맞은편에 소라초등학교가 나온다. 여기에서 52 코스가 끝이 난다.

 

소라초등학교

 

 52코스는 비교적 짧고 평탄한 길이라 벌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날씨가 더워 갈증이 많이 났다. 소라초등학교 맞은편에 하나로마트가 있어 음료수를 한 병 마시고 물을 보충하여 다음 코스의 길로 떠나기로 한다.

남파랑길 51 코스(광양터미널 - 충무사 - 율촌파출소)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50 코스를 다녀온 후 다음 코스를 가기 위해서는 제법 많은 시일이 있었다. 태풍이 2주를 사이에 두고 올라와서 남해안을 걷기가 어려웠고, 그 중간에는 추석이 있어 또 길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50코스를 갔다 온 뒤 20여일이 더 지나 51 코스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51 코스 지도

 

 51코스는 광양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전남미술관인 구 광양역을 지나서 새 광양역을 지나간다, 계속해서 평지길을 걸어가면 충무사가 나오고 조금 가면 순천왜성으로 올라간다, 왜성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율촌산업단지를 거쳐가 율촌파출소에 이르러 끝이 나는 15,0km의 비교적 평이한 길이다.

 

광양터미널 앞에 있는 51 코스 안내판

 

 터미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은 옛 광양역 자리에 지하 1, 지상 3층 규모의 작지 않은 미술관은 다수의 작품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경전선의 철도역인 광양역 폐역은 경전선에서 유일하게 옛 동광양시 지역에 있었다. 1968년 보통역으로 출발했으나 2016614일 광양~진상 복선 비전철 신선이 개통하고 714일 공식 폐역 처리되었다. 그리고 이 역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으로 만들어 폐역을 활용하는 좋은 예이다.

 

전남도립미술관

 

 시간이 맞았으면 미술관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였을 것인데 내가 광양터미널을 출발하는 시간이 빨라 미술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그냥 외양만 보고 지나갔다.

 

이정표

 

 넓은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농촌 길로 들어간다. 어느 새 들판의 벼들이 여물어가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연은 우리를 속이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싸우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면서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 길을 걸었다.

 

도로 변의 감나무에 익어 가는 감

 

요즈음은 잘 보이지 않는 정미소

 

벼가 여물어 가는 들판

 

현대제철 부근의 습지와 방조제

 

현대제철

 

충무사외 순천왜성을 가는 이정표

 

 현대제철과 함께 가던 방조제 끝까지 걸어가 마을에 들어서면 길 오른쪽에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충장공 정운장군, 송희립장군이 배향되어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 제48호인 충무사(忠武祀)가 있다. 지역 주민들이 순천 '충무사'를 세우게 된 동기는 특이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00여 년 전후에, 왜구들의 악귀가 꿈에 자주 나타나서 주민들을 몹시 괴롭혔다. 그래서 주민들이 지혜를 모아서 왜적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 충무공의 사당을 짓고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 뒤부터는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하여 지금도 봄가을로 제향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이 충무사는 문을 잠가 놓아서 안으로 들어가 보지를 못하고 주변만 보고 지났다. 왜 문을 잠가 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충무사 주변의 모습

 

 충무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임진왜란 때의 위대한 장군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순천왜성이 있다. 일본에 가지 않더라도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어 있는 순천왜성은 정유재란 당시 패배한 왜군이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으려고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14천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두 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당시에 지어졌던 남해안 26개 왜성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성을 쌓으려 2km 주변 마을의 육지부를 파서 바닷물이 차도록 섬처럼 만들고 연결다리가 물에 뜨도록 했다는데 그 모습이 일본 성곽의 건축 양식으로 우리 성과는 다르게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자아낸다. 예전에 보았던 동경의 황궁이나 오오사카 성의 모습이 잠시 생각이 났다.

 길을 따라 성으로 올라가면  본성(本城)과 외성(外城)을 연결하는 주출입문인 문지(門址)1과 문지2와 해자(垓字) 위로 왜성의 망루인 천수기단(天守基壇)이 보인다.   

 

순천왜성의 모습

 성을 내려와 과거에는 바다였던 곳이 매립을 하여 도로를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순천왜성의 산 언덕을 보고 걸어가면 율촌산단이 나온다. 아스팔트가를 따라 계속 가니 율촌면 표지가 나온다. 이제 율촌으로 들어 선다. 여기서부터 여수인 것이다.

 

 

율촌산단의 모습

여수시 율촌면 이정표

 

 이 이정표를 지나 조금 가면 조그마한 율촌파출소가 나온다. 여기가 51 코스의 끝이다. 51 코스는 별 다른 특색이 있는 길은 아니다. 조용한 농촌 길을 걸으며 가을 풍경을 조용히 보면 즐긴 곳이다. 하지만 순천 왜성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성이라 좀은 특이한 느낌이 들었다.

남파랑길 50 코스(중동근린공원 - 사라실라벤더단지 - 광양터미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50 코스는 도심의 중동근린공원을 출발하여 시애를 통과하는 길을 따라 가면 구봉산으로 올라가는 임도가 나온다. 그 임도를 따라 구봉산을 빙 돌아 나오면 사곡저수지가 나오고 그 길을 내려오면 조그마한 사라실라벤다단지가 나온다. 러밴다 단지를 내려오면 사라실예술촌이 나오고 그 옆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광양시내로 들어가 광양터미널에서 끝이 나는 15.0km의 길이다.

 

50 코스 지도

 

남파랑길 50 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 걷기를 시작했으므로 49 코스를 완보하고 중동근린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사 조금 지났다. 공원에 잠시 앉아 쉬다가 다음 코스인 50코스를 걷기 시작하였다. 비교적 도심을 걷는 길이었기에 피곤함은 없었다.

 

공원의 배롱나무

 

 

공원길을 따라 걸으면 곧 시내의 아스팔트가(제철로)를 걷게 되고 조금 지나니 구봉산으로 올라가는 임도 표시가 나온다. 구봉산은 호남정맥의 끝인 백운산에서 남하하는 주능선 중 하나로 해발 473m의 산으로, 서쪽으로는 봉화산(신봉화산), 남서쪽에는 순천 검단산성과 왜성이 위치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광양제철소, 북동쪽에는 마로산성이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광양시내가 바로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임도를 따라 걸으면 광양만의 여러 모습을 잘 조망할 수 있다. 산 이름은 봉우리가 9개여서 구봉산이 아니라, 옛날에 여기에 있던 봉수대가 옆의 봉화산으로 옮겨간 후 구 봉화산을 줄여서 구봉산이란다. 임도는 계속 포장도로라 걷기가 팍팍하지만 옆으로 보이는 울창한 숲은 좋았다.

 

멀리 보이는 광양만

 

울창한 숲

 

임도를 돌아 내려오는 길에 밤송이가 열려 있다.

 

 

 산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맥분동이 넓게 펼쳐져 꽃을 피우고 있다.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심어 놓은 것 같은데 어떤 의도로 여기에 이렇게 많은 맥문동을 심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뜻밖의 눈호강을 하였다. 성주 성밖숲의 맥문동을 보러가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곳에서 넓게 피어 있는 맥문동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뜻밖에 보니는 맥문동 군락

 

사곡저수지

 

 구봉산을 돌아 내려오면 사곡저수지가 보이고 계속해서 길을 다라 내려오면 외쪽으로 사라실라벤다단지가 보인다. 지금이 라벤다의 계절은 아니었지만 잠시 쉴 겸해서 들어갔다. 사라실라벤더단지는 라벤다의 계절이 아니어서 꽃은 없었지만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나그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라벤다단지의 커피 솝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며 준비해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주인 아낙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떠나 조금 내려오니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위용이 참으로 눈길을 끌었다. 느티나무들이 한 그루가 아니라 여러 그루로 우람한 나무들 덕분에 마을도 매우 풍요로워 보였다.

 

라벤다단지의 여러 모습

 

보호수 느티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모습

 

 라벤다단지에서 내려오면 사라실예술촌이 나온다. 길을 내려오다가 조그마한 개천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에 감탄을 하며 조금 지나 남해고속도로 앞에서 길을 꺾으면 사라실예술촌이다. 광양시 사라실 예술촌은 201612월 폐교를 활용해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제철 문화권의 동광양과 향토 문화권인 서광양(광양읍)의 중심에 위치해 지역민 누구나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라실예술촌입구

 

 여기서부터는 별 특징이 없는 길을 따라 걷는다. 큰 길도 아니고 작은 길을 걷는데 한국전력직원들이 전신주를 감싸 올라간 나무덩굴을 제거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고한다고 말을 하고 계속 길을 따라 걸으니 광양시내로 들어선다.

 

조금 길이 애매한 로터리

 

광양동천변의 스포츠 시설

 

유당공원 옆의 50 코스 안내판

 

유당공원

 

광양5일 전통시장

 

 광양시내로 들어와서 길을 계속 가면 유당공원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맞은 편에 광양5일전통시장이 보인다. 여기서 계속 길을 따라 가면 광양터미널이 나오고 여기서 50 코스는 끝이 았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 오후 4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지만 다음날 약속이 잡혀서 하는 수 없이 여기서 걷기를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남파랑길 49 코스(진월초등학교 - 백운그린랜드 - 중동근린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49 코스는 진월초등학교 옆에서 시작하여 망덕포구를 거쳐 포스코광양제철소를 한 바퀴 돌아 나가 중동근린공원까지 가는 15.1km의 길이다. 그런데 48 코스의 끝임과 동시에 49 코스의 시작점이 두루누비의 지도와 코리아둘레길의 지도가 조금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이 그냥 가면 다시 합쳐진다.

 

49 코스 지도

 

49 코스 안내판

 

진월초등학교

 

 진월초등학교를 지나 섬진강하구를 따라 망덕포구로 가는 길에 나무 테크가 설치되어 여행자를 도우며 풍광을 즐기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 나무 테크가 곳곳이 부수어지고 썩어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너무나 아쉽게도 걷는 것 자체가 좀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도로를 따라 걷고 다음날 아침에 광양시 관광국에 전화를 하여 실태를 알리니 자기들은 몰랐다며 곧 보수를 하여 놓을테니 다음 주에 와 보라고 하였다.(내가 걸은 날이 일요일이라 당일은 신고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려고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두루누비를 보니 49코스에 내가 신고한 테크에 보행에 유의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이런 일이 보람 있는 일이다.

 

망덕포구를 향해 가는 길

 

 망덕포구를 향해 가는 길에 윤동주의 시비로 가꾸어진 공원이 있다. 여기에 왜 윤동주 시비 공원이 있지? 하는 의문은 곧 풀린다. 조금 아래에 일제강점기에 윤동주의 시 원고를 끝까지 보관했던 정병욱의 집이다.

 

윤동주 시비 공원

 

망덕포구 

 

 망덕포구는 550리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호남정맥의 최장맥이면서 천자봉조혈(天子奉朝穴)의 명당이 많이 있다는 망덕산,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힐링할 수 있는 강변 데크산책로 등 빼어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윤동주 시인의 작품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의 원고를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 나비가 춤추는 형상의 무접도(舞蝶島)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쌓아두어서 미적도(米積島)라고도 하며 역사적 의미가 있는 문화관광자원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의 9월은 은근하게 깊어가는 가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은빛 전어로 풍요롭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긴 이름으로 불리는 이 가옥은 순결한 시어로 일제의 심장을 겨눈 윤동주의 육필시고가 살아남은 공간입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 시집 출간을 꿈꾸며, 육필로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부를 제본해 이양하 지도교수와 평소 아끼던 후배 정병욱에게 줬습니다.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가 갖고 있던 시고는 행방을 잃었지만,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남은 시고는 1948 1 30일 유고집으로 출간돼 윤동주를 시인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정병욱은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주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일제 말기인 1944 1, 정병욱은 학병으로 징집돼 일본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떠나기 전 그는 어머니에게 동주의 원고를 맡기며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고 유언처럼 남겨 놓고 떠났었다. 다행히 목숨을 보존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님은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던 동주의 시고를 자랑스레 내주면서 기뻐하셨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형)

 그는 상경하자마자 윤동주 가족에게 원고를 보였고, 다른 작품을 찾아 시집 발간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윤동주 3주기인 1948, 유고 31편을 묶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를 출간할 수 있었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정병욱은 잊지 못할 윤동주라는 수필에서 동주의 노래소리는 이 땅의 방방곡곡에 메아리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으니 동주는 죽지 않았다 내 평생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런 일은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것이라고 회고했다.

 

 시를 품은 집 정병욱 가옥은 1925년에 건립된 목조슬레이트 주택이다. 정병욱의 아버지 정남섭이 지었으며 1930 8 28일부터 조선탁주와 조선약주를 허가 받아 양조장과 정미소를 함께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집 앞에 섬진강 나루터가 있었으며 경관이 좋았다고 한다.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하고 있는 보기 드문 건축물로서, 2007 7 5일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제 341호로 지정했다. 현재 집 외관은 좌우측 증개축으로 인해 변형된 상태로 창고가 딸린 ''자 형이다.

 

정병욱 가옥

 

 정병욱가옥에서 조금 더 가서 오늘의 여정을 끝내고 숙박을 하기로 했다.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항상 숙박할 곳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미리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예정을 맞추어 움직인다.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다음 숙박소를 기약할 수 없어 숙박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졸복탕이 아주 맛이 있었다.

 

졸복탕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났다. 항상 걸으면서 저녁에는 조금 일찍 걷기를 멈추고 아침에는 일찍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니 섬진강 저 너머에 해가 떠 있는 풍경이 보였다.

 

섬진강의 아침

 

배알도 별헤는 다리

 

배알도

 

 배알도 해변공원은 섬진강 하구 태인동의 맨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배알도라는 이름은 해수욕장 건너편의 망덕산(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소재)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배알도 해변공원은 섬진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배알도를 배경으로 해변을 따라 조성된 데크는 낭만적인 산책로이다. 백사장은 길이 500m, 넓이 50200m이고 진입도로를 확장함으로써 전보다 교통사정이 훨씬 편리해졌다.

 

 배알도 해변공원을 지나가면 태안도에 있는 광양제철소를 만난다.

태인도는 남해의 광양만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그곳의 바다를 메우고 광양제철소가 들어서 태인도를 포함한 16개가 넘는 유 · 무인도 섬이 사라지고 500만 평에 달하는 인공 섬이 생겨났다.

태인도에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광양 김 시식지(始殖址)'가 있다. 1700년대 초반 광양현감을 지낸 허심이 김여익(1606~1660)을 추모하기 위해 비문을 쓰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석은 없어졌으나 '시식해의(始殖海衣)'라는 비문 기록이 김해 김씨 족보에 남아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밤나무와 소나무, 대나무 등의 가지를 베어다 마을 앞 애기섬(兒島) 주변의 갯벌에 꽂아 놓고 관찰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나뭇가지에 해의()가 붙어 자랐다. 김여익은 해의를 키우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해의를 건조하는 방법을 개발해 사람들에게 보급했다. 태인도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이를 양식하고 그 제품을 하동 장에 내다 팔았다. 하동 사람들은 태인도 '김씨'가 만든 것이라고 ''(사투리로 짐)이라 불렀고, 이것이 김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광양제철소(光陽製鐵所)는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국가산업단지 안에 ()포스코에서 건설한 대규모 제철소이다. 19821기 설비 건설에 착공하여 1987년에 준공하였으며, 이후 19995고로가 준공됨으로써 모두 5기의 고로에 연간 1800t의 조강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대형 선박 5척을 동시에 댈 수 있는 국내 최대의 항만시설이 갖추어졌다.

 

 

 포스코광양제철소를 지나 백운둘레길을 계속 걸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중동근린공원이 나온다. 여기가 49코스의 끝이다.

 

무지개 다리 

 

길호마을 옛터 표지석

 

 49 코스는 거리도 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길도 편안한 길이라 한가롭게 걸었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기에 아침밥도 먹지 못해서 도중에 편의점에 들어가 도시락으로 때우고 다음 길을 위해 간식과 먹거리 구입하여 배낭에 넣고 길을 떠났다.

 

 항상 걸으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아침을 먹지 못하고 길을 떠난다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새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