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내가 제법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덥다고 생각되는 해는 거의 없을 지경으로 더웠다. 그래서 여름철 장마도 지고 날도 덥고 해서 당분간 걷기를 중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가서 처서가 지나니 제법 시원한 느낌이 들어 다시 걷기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고 8월 마지막 주에 걷기 여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저번 걷기를 중단한 코스가 경상도가 끝나는 47 코스였으므로 48코스부터 시작하려고 섬진강으로 떠났다.
광양-순천 구간 지도
48코스는 경상남도 하동의 섬진교를 지나 광양 지범에서 시작한다. 48 코스는 비교적 단순하여 섬진강을 끼고 풍광을 즐기며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서 동넘어골을 지나 진월초등학교까지 가는 평탄한 15.1km의 길이다.
남파랑길 48 코스 지도
하동 섬진교 동단에서 보는 광양
하동에서 강을 가로지르는 섬진교에서 다리를 건너면 광양이다. 섬진강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구분해 주는 강이다.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래에서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른다고 노래한다. 48코스 안내판이 다리를 건너니 광양 땅에 반듯이 서 있다.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를 연결하는 섬진교(蟾津橋)는 섬진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라는 점에 착안하여 섬진교로 명명되었다.
섬진교가 처음 건설된 것은 일제 강점기로 경남과 전남 양 도의 연결을 위한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섬진교는 1935년 7월 완공되었으나 6·25 전쟁 시 남하하는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폭파되었다. 새로 만들어진 섬진교에 1993년 개축 공사가 이루어졌다.
48 코스 안내판
다리를 건너니 바로 섬진강둔치 표지판이 나오고 섬진강 강변길로 안내 리본이 발을 이끈다. 여기서부터 그냥 고요하게 흐르는 섬진강변을 조용히 걷는 길이다. 47 코스는 남해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이 48 코스는 섬진강의 흐름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는 코스다. 똑 같은 섬진강이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풍경은 다르게 보이고 걷는 계절에 따라 또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섬진강 자전거길 안내
섬진강에서 재첩을 채취하는 사람들
흐르는 강을 보면서 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며 길을 가니 길가에서 감물을 드리는 여인이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시옷에 감물을 드리는 여인이 말하기를 감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고 하며 쉬운 것이 아니라 하였다. 화학염료에 익숙한 오늘날에 천연 감물을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잠시 구경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감물을 드리는 모습
섬진강 주변 풍경
섬진강 강변 습지
강을 따라 계속 내려가는 길은 다소 단조로우나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혼자서 걸으며 호젓함을 느끼며 계속 가니 어느새 망덕포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48 코스가 거의 다 와 가는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여천공단
아주 단조롭지만 조용히 흐르는 강을 따라 내려오니 남해고속도로 밑을 지나 섬진강휴게소옆을 지나서 계속 걸으니 진월초등학교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공원이 나타나고 49 코스 시작을 나타내는 안내판이 보인다. 48코스가 끝나는 것이다.
48 코스는 어떠한 유적이라든가 특이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내려오며 걷는 코스로 아주 편안한 길이다.
남파랑길 47 코스는 구노량공영주차장을 출발하여 노량항을 지나 농촌마을 길로 들어가 대송리를 지나서 섬진강으로 나간다.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은 너무 아름답다. 하동포구에서부터는 너무 조용하게 흘러가며 펼쳐지는 섬진강을 보면서 걸으면 하동포구공원과 섬진강습지공원을 지나고 하동송림공원을 지나 섬진교동단에서 이 길은 끝난다. 여기까지가 남파랑길 경상도 구간이 끝이 난다.
남파랑길 47 코스 지도
남파랑길 47 코스가 시작하는 곳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47 코스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어절 수 없이 길을 가는데 길이 잘 찾아지지가 않는다. GPS를 보아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데 겨우 찾으니 아주 조그마한 오솔길로 해안으로 내려가게 한다. 큰길도 있는데 왜 이렇게 설정했는지가 의문이다. 남파랑길을 걸으며 느끼는 점이 코스 길을 좀 더 다듬어야겠다는 것이다. 하여튼 길을 가며 노량ㅁ항을 지나 오늘의 숙소를 찾으니 숙소를 찾기가 어렵다. 해파랑길에 비해 이런 점이 남해안이 좀 부족하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위치한 노량항은 옛날 남해로 유배 오는 선비들의 눈에 나룻배에 부딪히는 물방울이 이슬방울로 보였다 하여 노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노량항은 남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어항으로 발달하였으나 남해를 이어주는 다리가 놓이면서 옛날의 위용은 사라지고 지금은 작은 어항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순신 장군 최후의 결전지로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
노량항의 모습
노량항을 지나 제법 걸어가니 숙소를 찾을 수 없다. 지도에는 숙소라고 되어 있는 곳을 찾으니 숙박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며 주변에는 숙소가 없다고 하였다.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발길을 돌려 다시 노량항 쪽으로 가서 숙소를 정하고 하루를 끝냈다. 좀 불편하지만 길을 걷는 나그네로서 이런 점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지난해에 해파랑길을 걷다가 늦게까지 숙소를 구하지 못해 걸은 경험이 생각났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났다. 해안을 조금 걸어가면 농촌마을길로 들어간다. 대송리 마을길로 이 길에서 보는 아침 풍경이 몽환적이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르겠지만 산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도 좋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해가 비치는 모습도 좋았다.
금남면에 속하는 대송리(大松里)는 마을에 큰 소나무가 있어 대송(大松)이라 하였다. 다르게는 대송개라고도 하였다는데, ‘개’는 포구를 뜻하는 말이다.북동쪽의 금오산(金鰲山) 줄기가 남서 방향으로 남해를 향해 뻗어 내린 100~300m 산지 사이로 평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고, 거기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송리마을의 모습
마을 산길을 지나 내려오면 선소공원으로 가는 길이 나오며 섬진강의 지류인 여러 하천이 나온다. 하천 주변에는 갈대가 우거져 무료함을 달래며 길을 가게 한다.
여러 하천을 지나니 하동포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 섬진강자락으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내가 강중에서는 섬진강을 좋아하여 이 강변은 여러 번 와 보았고 중간 중간을 거닐어 보았지만 오늘은 섬진강을 포구입구부터 걸어서 하동읍 주변의 섬진교까지 걸어가는 아주 재미있는 길이라 마음이 벅차다.
하동포구 이정표
이 이정표를 따라가니 섬진강이 마주친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보면 항상 어머니의 강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 포근함을 느낀다.
흔히 오백리라고 하는 섬진강은 212.3㎞로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북도의 동쪽 지리산 기슭을 지나 남해의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긴 강으로 물줄기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계곡과 산과 들과 마을을 적셔 주며, 지리산 자락을 끼고 돌아 숱하게 아름다운 강변을 만들어 내는 어느 강보다 정겹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강이다.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기문화, 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염도가 낮은 강으로도 손꼽히며, 강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한 강물에서 잡히는 은어, 참게, 재첩이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전설만을 의지하여 지명을 해석할 수는 없고, 섬(蟾)은 차자표기에서 산을 뜻하는 ‘달’로 읽히는 차훈자(借訓字)이다. 따라서 섬진(蟾津)은 ‘달나루’ 또는 줄여서 ‘달래’란 고유어를 한자어 지명으로 적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남한에서 네 번째로 큰 강으로 지리적으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
하동포구교
하동포구를 꼭 집어서 어디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동포구(河東浦口)는 배가 드나들던 하동의 섬진강 물길을 일컫는 말로, ‘하동포구 80리’라는 표현을 자주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80리인지를 알 수도 없고 가 정확한 거리는 아니다. 화개, 악양, 하동(하동읍), 하저구, 갈사 등지를 거쳐 바다에 이르는 하동의 섬진강 물길을 통칭하는 말로 포구(浦口)란 배가 드나드는 개(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어귀라는 의미이다.
섬진강의 여러 풍경
섬진강 강줄기가 바다로 빠져나가며 작별을 고하는 섬진강 하구는 섬진강의 진객, 재첩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섬진강의 강변을 유유하게 따라 걸으니 재첩국을 파는 식당들이 보인다. 점심때도 되었고 재첩국을 먹기로 미리 마음을 먹었기에 주저없이 들어가 재첩국에 간장게장 한 접시를 청하여 맛있게 먹었다. 길을 가면서 그 지방의 특산물을 먹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재첩은 민물조개로 조금의 염분에는 버티는데 바닷물이 교차하는 하구에까지 자란다. 재첩은 강조개에서 유래해 하동 사투리로 갱조개, 가막조개라 부른다. 가막조개는 '까만 아기조개'란 뜻으로 재첩의 생김새를 보고 지은 이름이다. 재첩은 모래가 많은 진흙바닥에서 서식하는 민물조개로 물 맑은 1급수에서 산다. 또 번식력이 왕성해 하룻밤 사이에 3대손을 볼 정도로 첩을 많이 거느린다 하여 재첩이라 불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예전에는 낙동강, 영산강, 한강 등 여러 강에도 있었고, 특히 부산의 낙동강 재첩은 유명하여 어릴 때 아침에 "재첩국 사이소." 하며 동내를 다니던 아낙네들의 소리가 귀에 선하다. 지금은 오염으로 인해 자연 상태에서 채취가 가능한 곳은 섬진강뿐이라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재첩은 한국에서 먹는 조개 중에 가장 작은 조개이다. 보통은 삶아서 국으로 먹지만살만 거두어 무침도 한다. 재첩은 4~6월과9~11월 봄과 가을 두 차례의 제철이 있는데,이 중에 봄에 나는 재첩이 맛있다. 5~6월이 산란로이때에 살이 차기 때문이다.
재첩에는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들어 있어 간장의 활동을 도와주고, 타우린이 담즙 분비를 활발하게 해서 해독 작용을 하기도 한다. 재첩국은 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나 애주가들이 간을 보호하고 주독을 풀기 위해 많이 찾는다.
재첩국 식당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니 재첩국이 맛있었다. 특히나 잔 알갱이의 재첩은 구수하기도 하여 주변을 보니 이 식당의 아들이 직접 재첩을 잡아 국을 끓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택배가 되는가를 물으니 판다고 하여 아는 지인들에게 재첩국을 보내었다. 길을 가다가 그 고장의 특산물이 있으며 아는 지인들에게 보내 주는 것도 길을 걷는 즐거움이다.
점심을 먹고 다시 섬진강변을 걸어 올라가니 하동습지공원이 나온다. 예전에도 와 본 곳으로 계절에 따라 느끼는 풍경이 다르다. 지금은 여름철이라 갈대도 푸르고 강물도 풍부하고 모두가 생생하게 보인다. 습지공원에는 습지를 걸을 수 있게 나무 테크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어린 아이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공부도 될 수 있는 좋은 곳이나 휴게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점이 단점으로 사람들에게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섬진강 습지공원 안내판
섬진강 습지공원의 여러 모습
섬진강 습지공원을 지나 조금 가면 섬진강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남파랑길은 이 숲길은 걷지 않고 주변의 도로가를 따라 걸으며 그냥 구경만 하는 코스라 지나가면서 대나무 숲길의 향기만 맡는다.
대나무 숲길의 풍경
섬진강 변의 길을 따라 계속 가니 하동포구공원이 나온다.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에 있는 하동포구공원(河東浦口公園)은 과거 하동포구였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2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섬진강 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하동포구공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 과거 이곳이 포구였음을 알리는 배 형상의 알림판, 드라마 「허준」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입간판,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그리고 실제 소규모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 시설 등이 있다.
하동포구의 여러 모습
하동포구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앉아 있으니 주위의 노부부가 사과를 주기에 맛있게 먹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섬진강을 따라 올라간다.
멀리 보이는 섬진강교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와 광양시 진월면 선소리를 연결하는 다리인 섬진강교(蟾津江橋)는 길이 760m, 폭 12m, 높이 8m로 고속국도 10호선 31.27km 지점에 위치하며 왕복 4차선 남해고속도로 제 2의 대교로서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여 상호 교류와 균형적인 지역 발전에 일조하기 위하여 구교는 1973년에 준공되었고, 이를 전면 재시공하여 1992년에 신교를 준공하였다.
알프스 하모니 철교(구 섬진철교)는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광양시 다압면 월길리를 연결했던 경전선 철로상의 철교로 섬진강을 건너는 철도 교량이란 의미에서 ‘섬진철교’로 명명되었다. 2016년 7월에 폐선되어 지금은 알프스 하모니 철교로 개명되어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다리로 활용하고 있다.
알프스 하모니 철교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하동송림이 나온다.
섬진철교와 섬진교 사이의 섬진강변에는 하동 8경 중의 하나인 ‘하동포구 백사청송’의 모래언덕 위의 소나무 숲인 하동 송림공원이 있다. 하동 송림은 인공림으로 섬진강 변 백사장에 소재한다고 하여 ‘백사 송림(白沙松林)’ 또는 소나무가 푸르다는 의미의 ‘하동 창송(蒼松)’이라고도 한다. 2005년 2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천연기념물로 재지정 되었다.
하동송림은 영조 21년(1745)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 숲으로 약 900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노송의 나무껍질은 거북이 등과 같이 갈라져 있어 옛날 장군들이 입었던 철갑옷을 연상케 한다.
하동송림은 오늘날 국내 제일가는 노송 숲으로 넓은 백사장과 맑은 섬진강물이 어우러진 경치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하동송림에 들어가 길을 걸으니 거대한 카메라를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나무 숲 주변에 진을 치고 있다. 전문적인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집단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라는 사람에게 무엇을 찍느냐 물으니 새를 찍는다고 한다. 아주 휘귀한 새인지 많은 사진작가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계속 앉아 있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니 긴장을 하면서 새 이름을 물으니 무어라 말을 하던데 무슨 새인지도 모르는 새였다. 수고하라는 말을 하고 내 길을 가면서 참으로 세상에는 다양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새를 기다리는 사진 작가들
하동 송림의 여러 모습
송림이 끝나는 곳에 섬진교가 있다.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를 연결하는 섬진교(蟾津橋)는 섬진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라는 점에 착안하여 섬진교로 명명되었다.
섬진교가 처음 건설된 것은 일제 강점기로 경남과 전남 양 도의 연결을 위한 것으로1935년 7월 완공되었으나 6·25 전쟁 시 남하하는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폭파되었다. 새로 만들어진 섬진교는 1993년 개축 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섬진교 입구에 있는 남파랑길 47 코스 안내판
뜻밖에 47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47 코스 안내판이 있다. 조금은 생뚱맞은 안내판이다. 여기까지가 남파랑길 경상도구간이 끝나는 것이다.
섬진교의 모습
이곳에서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동터미널로 가려니 교통편이 너무 불편하다. 지도를 보니 멀지는 않아 걷기로 라고 7월의 땡볕 아래를 걸어서 하동터미널에 도착하니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제법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땀을 식히며 기다리다가 부산으로 향했다.
새로 지은 하동역
하동공용버스터미널
여기까지 걸음으로 3월에 시작한 남파랑길 걷기의 경상도구간 약 750km는 끝이 났다. 내가 미리 예상한 시간에 끝을 내게 된 것에 매우 만족한다. 중간중간에 여러 가지 일정도 있고, 기상상태도 고려하여 길을 걷고 또 나 자신의 능력도 고려해서 길을 걷기에 한 번에 모든 길을 주파한 것은 아니나 하여튼 경상도 구간은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전라도 구간을 걸어야 하는데 여름의 장마가 계속되어 비가 오기에 언제 시작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연구 중이다. 발리 걷기에 좋은 날씨가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남파랑길 46 코스는 남해군 서면의 중현리보건지소를 출발하여 이순신순국공원을 지나 구노량공영주차장에 이르는 17.6km의 길이다. 이 길은 남해바레길 14 코스로 남해는 이순신호국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우리민족의 성웅인 이순신을 기리게 하는 길이다. 이 길의 시작은 바다와 제법 떨어져 있는 곳으로 마을길과 숲길을 따라 걸어 백년고개를 넘으면 고현면에 도착한다. 이후 이순신장군 전몰지인 관음포를 지나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운구되었다는 길을 따라 노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남파랑길 46 코스 지도
중현보건진료소 앞의 안내판(남해바래길, 남파랑길 46 코스)
몇 일간 기상이 좋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고 기상상태만 계속 살펴 보았다. 중부지방은 호우로 엄청나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나 남쪽은 그냥 흐리기만 한다는 예보를 믿고 길을 떠났다. 서울에 사는 아들들이 기상이 좋지 않다고 걱정을 하였지만 결과로는 화창한 날이 계속되어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여름이라 더운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날씨였다.
중현보건진료소
남파랑길 이정표
파랗게 빛나는 하늘
여기서 길을 떠나니 중현마을이 나온다. 서면에 있는 중현리(中峴里)는 용두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온 줄기 밑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여러 자연마을 중에 양지, 음지 마을이 있는데, 양지 마을은 양지에 자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음지 마을은 음지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운곡사 전경
중현마을을 지나 농촌 길을 따라 걸으면 여러 마을을 지난다. 별다른 특이점도 없이 그냥 농촌마을을 지나 길을 계속 갈 뿐이다. 길을 가면서 보는 남해의 바다는 오늘 따라 더 파랗게 빛났다.
우물마을로 가는 이정표
우물마을에는 여름이면 차갑고 겨울이면 김이 나는 참샘이 하나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끔찍이 아끼는 것 3가지가 있다. 음력10월 보름 동제를 지내는 당산나무와 돌탑, 그리고 마을뒷산에 있는 고려장터이다. 당산나무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마을 수호신이라 믿고 있는 돌탑에서 제를 마치는데 제주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맡는다고 한다.
우물마을을 지나 백년곡고개를 넘으면 포상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는 마을 노임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 정자나무를 지나 길을 더 가면 고현면행정복지센터가 나온다.
포상마을 정자나무
포상마을은 아주 오래된 마을로 신라 신문왕 때 개뫼라 하다가 고려 때 개상(介上)으로 불리었다가, 조선 태종 때 고현면 개칭과 함께 포구의 위쪽에 있다하여 포상(浦上)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현면랭정복지센터
날이 너무 더워 이곳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좀 쉬다가 다시 길을 따라 간다. 길을 가다가 보나 이곳부터 이순신순국공워까지의 길을 관세음길이라는 명칭을 붙여 놓았다.
대사천 주변
이 길을 따라 해안을 걸으니 관음포에 도착한다.
남해군의 북쪽 고현면 차면리 바닷가에 있는 포구로 일명 이락포(李落浦)로 불리고 있는 관음포(觀音浦)는 우리나라 최고의 호국성지로 불리고 있다. 몽골의 침략을 부처님의 가호로 물리치기 위해 고려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위한 치목(治木) 장소이자 고려 말 왜구를 물리친 4대첩 중 하나인 정지 장군이 대승한 관음포대첩의 현장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이에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부르며, 마주보는 해안에는 이락사가 있다.
이순신순국공원 표지
2017년 4월에 첫 선을 보인 ‘이순신순국공원’은, 역사적 지식이나 정보 없이 가더라도 관음포 바다와 광장이 평온한 휴식을 주는 곳이지만,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과 그의 순국지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 광장이자 문화공원이다.
공원을 걸어가니 열두첩반상 식당이 나온다. 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고 점심 때가 되었기에 휴식을 할 겸하여 들어가 갈낙해물짬뽕을 한 그릇 시켜서 맛있게 먹고 쉬다가 다시 길을 걷는다.
갈낙해물짬뽕
식당에서 보는 관음포 바다
공원을 걸어가면 이락사가 나온다. 그런데 이락사라는 안내문이 길가에는 없다. 이런 점은 좀 더 신경을 써서 관리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길을 걷기 전에 미리 조사하여 이락사를 꼭 보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칠 뻔하였다. 옆을 지나다가 사당이 있어 올라가 보니 이락사였다.
이락사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충무공 전몰유허다. 비각 안의 유허비는 충무공이 죽은 뒤 243년이 지난 순조 32년, 전국 여러 곳에 충무공을 기리는 사당과 비는 있지만 정작 순국지에는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이순신의 8대손인 이항권이 왕에게 건의하여 사당을 짓고 유허비를 세웠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를 이락사라 부르는 것은 남해사람들이 이곳을 본래 지명인 관음포로 부르지 않고 굳이 이락포(李落浦)로 바꾸어 부르는 이유는 ‘충무공의 목숨이 이곳에서 떨어졌’던 역사적 사건을 더욱 비장하게 느끼고자 함이다.
이락사의 모습
이락사 옆에 보면 뒤편 바닷가 쪽에 있는 첨망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1991년에 세워진 첨망대에서는 노량 앞바다가 지척이고, 멀리 광양제철소까지 보인다.
첨망대 가는 길
첨망대 전경
첨망대에서 보는 앞 바다
이충무공 전시관
충무공순국공원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 노량으로 간다. 노량은 남해에도 있고, 하동에도 있다. 이 두 노량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처음에는 남해대교였다가 교통량의 증가로 노량대교가 또 건설되었다.
멀리 보이는 노량대교
노량대교는 남해군 설천면과 하동군 금남면을 잇는 교량으로, 국내 기술로 만든 세계 최초의 경사 주탑 현수교이다. 왕복 4차로의 도로이며 남해대교를 대체할 교량이고 19번 국도 확장 사업에 포함되어 2018년 9월 13일에 개통했다. 다리의 디자인은 이순신 장군의 전술 '학익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노량대교를 지나면 남해대교가 보인다. 단절된 국도 19호선의 경남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를 연결하는 국내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南海大橋)는 연륙교다.
남해도는 약 600m인 노량해협으로 육지와 단절돼 고립 상태였지만 해협의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빨라 이곳에 교량을 가설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남해대교(南海大橋)는현존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현수교로, 마치 미국의 금문교를 빼다 박은 듯하다.
남해대교를 올라가는 입구의 남해바래길 안내판
여기에서 남해대교를 올라가는데 남파랑길은 남해대교를 지나 끝이 나지만 여기서 남해는 끝이 난다. 다리를 건너면 하동이다.
남해대교
남해대교에서 보는 노량대교
남해대교를 건너서 보는 풍경
여기에서 남파랑길 46 코스는 끝난다. 46 코스는 아름다운 해안길을 즐기면서 걷는 길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이 더 부각되는 길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되는 이순신의 숨결을 느끼며 한 여름의 길을 걷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남파랑길 45 코스는 남해스포츠파크의 서상게스트하우스를 출발하여 우회하여 언덕을 조금 돌아나가면 해안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길도 없는 해안을 따라 제법 긴 거리를 걷는다. 방파제와 몽돌해안, 모래해안 등등을 지나면서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다가 유포어촌체험마을을 지나고 노구마을을 지나면 중현보건진료소에 도착하는 비교적 짧은 12.6km의 코스다.
남파랑길 45 코스 지도
남파랑길 45 코스와 남해바래길 안내판
45 코스 출발점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마을이 있어 점심을 해결하려고 식당을 찾으니 여러 곳이 있다. 그 중에서 중국식당에 들어가 자장면 곱배기를 시켜서 배부르게 먹고 걷기를 시작하니 스포츠파크 앞의 언덕길을 돌아나가게 한다.
언덕길에서 보는 스포츠파크와 서상항
길가에 핀 수국
산 언덕길을 지나니 예계마을이 나온다. 남파랑길 안내에서는 이곳부터는 만조 시에는 해안을 걸을 수 없으니 우회하라고 되어 있으나, 내가 걸은 시간은 간조 때였으므로 아무런 지장이 없이 해변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남해바래길에서는 이 길을 망운산노을길이라 명명하였는데 이 길의 반대편이 망운산이기 때문이다. 남해바래길의 이름처럼 이 길의 노을을 즐기며 바닷가를 걷는 길이나 내가 걷는 시간은 해가 하늘 위에서 쨍쨍하게 비추는 한낮이었다.
예계방파제에서 시작하는 해안길은 모처럼 바다를 지척에 두고 바닷가를 걷는 길이다. 예계방파제, 상남방파제, 지장리방파제, 남상리반파제가 이어지며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는 길이 없지만 이정표는 있기에 이정표를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이다.
예계방파제를 지나 해안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보니 한 여인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지 아니면 해녀 연습을 하는지 깊은 물속에서 혼자서 물속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너무 멀기에 젊은 여인인지 나이가 든 여인인지도 모르겠으나 저 넓은 바다를 자기 것인 양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바다를 혼자서 즐기는 여인
바다 건너 보이는 여천공업단지
해안의 장독이 늘어선 풍경
바다 건너 보이는 여천공업단지
해안의 풍경
내가 걸은 날이 너무 더운 날이어서 물의 소모가 매우 심하였다. 중간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편의점이 없다는 것이 남해의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거리를 생각하면서 물과 음료수를 조절하였지만 엄청난 더위에 물이 금방 소진되었다. 아무 곳에도 편의점이 없어 참고 끝까지 가야하나 하고 걸으니 유포어촌체험마을에 도착했다.
남해군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의 서북쪽에 자리한 유포마을은 마을주민의 인심이 평온하고 후덕하기로 유명한 반농반어 마을이다. 바다를 사이로 여수시와 마주하여 바다 건너 여수 여천공단의 야경은 남해에서 즐기는 여수밤바다이다. 드넓은 갯벌에서는 다양한 해산물이 사계절 다양한 생태를 이루고 있으며, 대표적인 어촌체험마을이다. 대표적인 체험은 갯벌체험과 개막이 체험이 있으며, 체험으로는 우럭조개와 쏙, 바지락 등을 캘 수 있다. 또 여름이면 체험마을 앞 민물 수영장과 함께 바다수영을 즐길 수 있다.
유포어촌체험마을
유포어촌체험마을 센터에서 고맙게도 물을 비롯하여 소소한 물품을 팔고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너무 급하여 생수를 꺼내어 한 병을 마시고 관리인을 찾으니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물 값을 매대 위에 놓고 나오려 하는데 관리인인 듯한 분이 오셨다. 아마 무슨 회의를 하는 중이인 것 같아 현장에 갔다 오는 것 같았다.그래서 물 값을 치르고 상쾌하게 다음 길을 출발했다. 내가 이 코스를 끝내고 부산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남해바래길 안내센터에 전화를 하여 남해 길에 물을 구할 곳이 없다는 단점을 이야기하고 곳곳의 마을회관에서 간단히 생수를 구입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출하니 좋은 의견이라면서 참조하겠다고 하였다.
유포여촌체험마을을 지나 조금 가면 노구마을이 나온다. 노구마을에서 북쪽으로 1Km지점에 있는 '중바우' 라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 바위에서 노구 쪽을 바라보면 해안이 아홉 구비나 되고 갈대세가 하얗게 피어올라 뭉게구름이 머무는 곳 같다하여, 이에 갈대'노'와 아홉'구'자를 써서 '노구'라 부르고, 순수한 우리말로는 '갈구미' 또는 "갈기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노구마을 보호수
노구마을 해변
여기서 조금 길을 가면 중현리가 나오고 45 코스는 끝난다. 45 코스를 걷는 날은 너무 더웠다. 원래 예정이 이곳에서 오늘의 여정을 끝내는 것이기에 조금 일찍 도착했으나 여정을 끝내고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저번에 가천다랭이마을에서 부른 택시를 호출하니 빨리 와 주었다. 기사님의 호의로 버스 시간에 맞추어 공용터미널에 도착하여 부산행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남파랑길 44 코스는 평산항을 출발하여 평산마을 언덕길을 올라가면 아난티남헤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난티남해가 해안에 자리 잡고 있어 언덕길을 돌아나가면 아난티남해입구에서 임진성으로 올라간다. 임진성을 내려오면 남구마을을 지나 천황산 임도를 따라 걸어 해안으로 내려와 장항해변을 지나면 남해스포츠파크가 자리한 곳 서상항의 게스트하우스가 이 코스의 종착점이다.
남파랑길 44 코스 지도
남해바래길과 남파랑길 안내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식당이 문을 연 곳이 없기에 준비해 간 간단한 음식으로 아침을 대용하고 길을 떠났다. 길을 걷는데 가장 불편한 일이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에 해파랑길을 걸을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으므로 항상 한 두끼 정도의 음식은 준비를 하고 다닌다.
평산항에서 출발하여 평산 1리와 2리 마을을 지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아난티남헤 골프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본다.남해 앞바다를 끼고 형성된 골프장은 매우 좋게 보인다. 아난티남해 골프장을 우회하여 빙 돌아나가 아난티남해 입구에서는 임진성을 향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언덕길 위에서 보는 평산항
마을 위 길에서 보는 아난티남해 바다
남해 해성 중,고등학교 입구
아난티남해 입구
아난티남해입구에서 임진성으로 올라가는 산길입구에 편의점이 있다. 아침도 먹지 않았고 어느 곳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를 알 수가 없기에 여기서 아침을 먹고 물을 사서 준비하고 다시 임진성을 향해 올라갔다.
임진성 가는 길
얼마 올라가지 않아 임진성이 나온다. 남면 상가리 남쪽에 위치한 임진성은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지어진 1만 6,460㎡ 크기로, 내성은 주위가 300m인 석축성이고 외성은 토성으로 흔적만 남아 있다.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도 임진왜란 때 수축하여 사용된 것이나 부근에 고인돌·조개무지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초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추정하기 어렵다.
여러 시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동문터와 우물터만 남아 있다. 최근에 성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의 173m가 보수되었다.
임진성의 여러 모습
임진성을 내려와 길을 걸으면 조그마한 소류지들을 만난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물을 가두어 놓은 곳인데 가뭄으로 소류지도 물이 가득 차 있지 않고 수위가 아래로 뚝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길을 따라 남구마을을 지나면 산위의 임도로 간다. 고실치고개를 지나 천황산을 빙 돌아 나가는 임도이다. 고실치고개를 지나 걷는 천황산 임도에서 보는 남해바다는 아름다움 그대로다. 6월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난 뒤의 상쾌함은 겪어 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남구마을은 아주 오래된 마을로 신라 신문왕때에 덕(德)이 성(盛)하고 마을이 울창하다는 뜻으로 상가, 덕월을 합하여 덕울촌이라 불러오다가 조선 태종 때 면내에서 지주층이 많고 마을형태와 방위가 오향(午向)이며, 개(浦)위의 촌마을이므로 상가화포리라 하였다. 조선 인조 때에는 임진산성에서 병화(兵火)로써 왜군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상가회리로 불렀다고 하며 속칭으로는 상동 또는 상더울개라 하였다. 조선 고종때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상가(上加)라는 마을 이름이 확정되었으며, 1943년 남구와 북구로 분동되었다.
조선 정조, 순조 연간에 발간된 南海顯邑誌에 따르면 상가와 덕월을 합하여 가화포리라 하고 덕월은 아랫마을이라 하여 下加火浦里라 했는데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앞의 두자만 따서 상가(上加)라 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남구마을 형성 및 유래비
고실치고개 이정표
천황산 둘레 임도와 임도에서 보는 풍경
산을 돌아 내려가면 장항해변으로 나간다.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장한해수욕장을 지나면 몽돌로 해안을 채우고 있는 사상항이 나온다. 서상항은 해넘이가 아름다운 항구로 조용하고 아늑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다 건너 여수가 훤히 보이는 서상항 주변에 남해 스포츠파크가 자리하고, 최근 젊은이들에게 남해군 필수 방문지로 손꼽히는 장항숲이 위치하고 있다.
장항해변
서상항
해변을 돌아나가면 스포츠파크를 마주한다. 서면 서상리에 위치한 남해스포츠파크는 총면적 30만㎡로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4년 완공된 남해스포츠파크에는 사계절 잔디구장과 인조잔디구장, 대한야구캠프의 야구장, 풋살경기장, 테니스장, 실내수영장, 향토역사관, 메디컬센터를 비롯한 각종시설이 갖추어져 프로축구, 프로야구, 각종 학교팀들의 동계 전지훈련장으로 각광받는 스포츠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최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하여 어린이 놀이동산과 더불어 남해대교를 옮겨놓은 듯한 현수교를 설치하여 찾는 이의 눈길을 끌고 있다.
남해스포츠파크의 여러 모습
여기에서 44 코스는 끝이 난다.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어 잠시 쉬다가 마을 쪽으로 길을 가기로 하였다. 점심때가 되었기에 밥을 먹을 곳을 탐색해 보니 조금 가면 마을이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고 하기에 믿고 길을 떠났다.
남파랑길 43 코스는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아름다운 해안을 눈으로 보고 즐기며 걷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향촌조약돌, 선구몽돌, 사촌해변 등등의 여러 해변을 지나고 유구방파제를 지나서 언덕을 넘어가면 조그마한 평산항이 나온다. 평산항에는 뜻하지 않게 조그마한 미술관이 있다. 그리고 이 미술관 앞에서 43 코스는 끝난다.
남파랑길 43 코스 지도
남해바래길 11 코스 안내판(남파랑길 안내판은 없다.)
아침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남해에 도착하니 바로 가천가는 버스가 있어 편리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천다랭이마을에 도착하여 걷기를 시작하기 위해 43 코스 시작점으로 내려가려고 관광안내소입구에서 내려다보니 다랭이논이 눈에 가득 들어찬다. 하지만 내가 보는 논은 다랭이마을의 계단식 논의 형태만 보일 뿐이었다. 다랭이논이 관광상품이 되었는데 논에는 벼가 심어져 있지 않고 황무지처럼 버려져 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랭이논에서 자라는 벼를 통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을 보려는 것이지 다랭이논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를 보려는 것이 아닌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 군에서 노력과 경비가 들어도 논에 벼를 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랭이논의 모습
다랭이마을 풍경
다랭이마을을 출발하여길을 따라 걸으며 남해의 바다를 즐기면서 가면 펜션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서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도록 한다. 여러 모양의 아름다운 펜션들을 지나 길을 따라 가니 사유지인지 길에 담장을 두르고 막아 놓았다. 옆으로 갈 길이 있는지를 찾아보니 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담장을 넘어 갔는데 영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는 다랭이마을
바다 풍경과 다랭이마을 표지석
펜션들과 바다 풍경
길을 막은 놓은 담장
산길에서 보는 바다 풍경
산길을 돌아 나오는 길에 '빛담촌'이라는 펜션이 집중되어 있는 곳을 지난다. ‘빛을 담은 마을’이라는 뜻의 빛담촌은 선구리 항촌마을에 조성한 펜션 단지로,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건물과 쪽빛 바다, 피어있는 꽃나무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이 한국의 지중해라 할 만큼 바다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빛담촌은 오목조목 펜션뿐만 아니라 걷기 여행을 하기에도 좋은 곳으로 마을 앞으로는 남해 바래길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이 지나고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걷기에 일품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바다일출과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빛담촌' 표시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서울의 코리아둘레길을 관장하는 '두루누비'에 전화를 하여 이 길이 담장으로 막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코스가 폐쇄된 길, 사유지로 막아 놓은 길, 공사중이라 폐쇄된 길 등등을 볼 때마다 코스의 안전을 위하여 '두루누비'에 알려 준다. 이 행동이 다음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해안으로 내려가 해변을 걷는다. 모래로 해변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갈돌(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계속 나온다. 유명한 향촌조약돌해변과 선구몽돌해변이다. 길을 가다 보니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내가 꽃구경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계절에는 수국이 예쁘게 피는 곳이 있으면 꼭 가보아야 직성이 풀려 여러 곳의 수국을 구경하는데 무리를 지어 핀 수국이 아니지만 너무 예쁘다.
남해 바래길 다랭이지겟길에 속하는 선구몽돌해변은 남면 선구마을 앞에 자리한다. 선구 몽돌해변은 옆 마을인 향촌마을의 몽돌해변과 이어져 해변 길이는 약 1km다. 이 해변의 몽돌이 남해의 다른 몽돌해변에 비해 유난히 둥글고 예쁜 몽돌은 소리 또한 맑고 좋아,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몽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마을 전체로 퍼질 정도라고 한다. 몽돌이 특히 둥글고 예쁘기로 소문나서 사람들이 주워가기에 가져가지 마라는 경고 표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봄이면 마을과 해변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는 유채꽃과 벚꽃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고 곳곳에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이 길을 걷는 때는 6월의 하순이다.
예쁜 수국
선구마을 당산나무(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한다.)
해안을 벗어나 산언덕을 돌아 나오면 고운 모래로 해변을 수놓은 해수욕장이 나온다. 사촌해수욕장이다. 사촌해수욕장(沙村海水浴場)은 나비 모양으로 생긴 섬인 남해(南海)의 남부, 나비의 왼쪽 날개 아랫부분 남면 사촌리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해수욕장이다. 야트막한 야산들이 해안을 둘러싸고 있어 경치가 뛰어나며, 백사장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 있고, 백사장 뒤로 300여 년 전에 심은 해송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사촌해수욕장
사촌해수욕장을 지나 산언덕 길로 다시 올라간다. 남해의 바다를 걷는 길은 해안보다도 산언덕길이 더 많은 것 같다. 해안과 해안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해안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이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다. 끊임없이 오르막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이 수 없이 반복한다.
산길에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
산길을 돌아 나오면 유구항과 마을이 나온다. 백사장이 잘 발달되어 있는 유구해수욕장에는 여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올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길을 가면 다시 산언덕이 나타난다. 이 산언덕을 지나면 나타나는 항구가 평산항이다.
평산항 가는 길
평산항의 전경
남해 평산항은 화려함보다는 조그마하고 소소한 멋이 있는 항구다. 낙조가 아름다우며 바래길 작은미술관도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평산1리 마을 인근에 있는 어항으로 임진왜란때 전라좌수영 휘하에 수군 지휘관 조만호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성을 축조하고 평산포(平山浦)라 불렀다.
이곳에 바래길작은미술관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어 미술관을 찾으니 간판도 없이 남파랑길 44 코스 안내판 옆에 작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유월의 땡볕 길을 오래 걸었기에 더위도 피할 겸 미술관을 구경하러 들어가니 손님은 아무도 없고 자원봉사를 하는 여인이 반겨주며 에어컨을 틀어준다. 작품을 둘러보고 잠시 의자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남해의 인구가 오만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길을 걸으면서 빈집들이 많이 보이던데 사는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소에 전화를 하여 앞에서 이야기한 길을 봉쇄해 놓은 것을 이야기하니 자신들도 안다고 하면서 지금 방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래의 도로를 걷는 것이 더 안전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참조하겠다고 하였다.
바래길작은미술관과 전시 작품
이곳에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원래의 계획이 여기서 숙박을 하는 것이어서 숙박할 곳을 찾으니 민박을 하는 곳이 하나밖에 없다. 횟집을 겸하고 있기에 저녁을 먹고 주변의 편의점을 물으니 편의점이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횟집 주인에게 이야기하여 맥주 한 병과 생수 두 병과 음료수를 하나 구입하여 숙소로 가서 하는 일없이 TV만 보다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남파랑길 42 코스는 남해바래길 안내센터에서 출발하여 그림같이 고요한 앵강만을 끼고 만들어진 앵강다숲길을 걸어 두곡해변을 지나고 유명한 가천 다랭이마을에 도착하는 17.7km의 길이다 그런데 해안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해안의산과 언덕을 넘어가는 길로 생각보다는 힘이 드는 길이다.
남파랑길 42 코스 지도
남해바래길 안내판(남파랑길은 없다.)
신전숲 안내판
원천마을의 파도 소리는 꼭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한다. 바다와 새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지만 두 개의 소리가 비슷한 덕분에, 뭍으로 움푹 파인 이 바다의 이름은 앵강만이 되었다. 동해를 닮은 절벽과 서해를 닮은 갯벌, 남해의 몽돌해변을 모두 품고 있는 우리나라 해안선의 특징을 모두 품고 있는 남해 앵강만은 다채로운 바다의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의 또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쉬고 싶으면 바닷가 마을마다 방풍림으로 형성된 해안 숲 그늘에서 쉬면 된다.
길을 조금 가면 화계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 바다에 목단 꽃 같은 섬이 있어 ‘화계’란 이름이 붙었다는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600살쯤 된 마을의 보호수인 느티나무다. 예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새순으로 한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새잎이 한꺼번에 같이 피면 모내기를 한 번에 끝내 풍년이 들고, 위아래로 나누어 피면 적기에 비가 오지 않아 여러 번에 걸쳐 모내기를 해서 풍년이 안 된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잎이 바다 쪽 가지에 먼저 피면 풍어, 육지 쪽에 먼저 피면 풍년이란 말도 있다고 하는데 어느 쪽으로 피든지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올해는 어떤 모양의 잎이 어느 쪽에 먼저 났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무는 길을 걷는 여행객에게도 고마운 존재로 시원한 쉼터가 되어 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화계마을 보호수(느티나무)
멀리 보이는 호구산
조그마한 다랭이논
호구산을 바라보면서 호구산군립공원쪽으로 걸음을 옮겨산을 등지고 내려서면 아래로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보인다. 미국 문화와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는 미국마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파랑길은 독일마을과 같이 미국마을을 직접 거쳐 가는 길이 아니라 돌아나가는 길이다. 남해군은 차별화된 시책을 모색하던 중 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직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게 미국마을을 추진하였다.
겨울에도 따뜻하고 전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이동면 용소리 일원에 약30억 원을 투입하여 약 24,790㎡(약7,500평)규모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주택의 경우에는 모두 목재구조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특색 있는 주택을 건설하여 마치 미국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용소 미국마을로 옮겨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미국의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각 주택에서는 민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문화 및 전통주택 체험을 할 수 있다.
미국마을의 모습
미국마을 뒷편의 산길
도로가 길에 그려진 남해 바래여인의 모습
두곡 월포해수욕장
두곡과 월포, 두 마을에 걸친 해변이어서 하나의 이름인 두곡ㆍ월포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이 원래 이름은 활처럼 휘어진 모양을 본 따 붙여진 순월개로이다.
이곳을 지나 홍현 해변을 걸어가면 바다에 돌무더기가 보인다. 석방렴이다.
석방렴(石防簾)은 해안가에 돌로 담을 쌓아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는 원시적 어로시설로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하는데, ‘독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달라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독장’ 또는 ‘쑤기담’, 제주도에서는 ‘원담’이라 부른다.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연안에서 여러 작은 잡어를 잡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간석지의 경사가 약간 급한 곳을 골라 반원형이나 ㄷ자형의 돌담을 쌓아 만들었다.
밀물 때에 돌담 안으로 고기들이 들어오면, 썰물 때에 돌담의 밑부분에 구멍을 뚫고 밀어 넣어두었던 통발을 들어내어 그 속에 든 고기를 잡았다. 통발을 밀어 넣지 않는 석방렴도 있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석방렴 안의 조수가 절반 이상 줄었을 때 그 속에 갇힌 고기를 자루가 달린 그물로 떠올렸다.
석방렴
홍현 황토휴양촌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앵강다숲길에서 원시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숲이 우거진 해안 오솔길이 가천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진다. 2.5㎞ 해안숲길 안내판에서 약 1시간이면 가천다랭이마을에 들어간다. 오늘 따라 예전과 달리 몸이 피로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랭이마을까지는 가야 하기에 마지막 힘을 짜내어 등산로 같은 숲길을 나선다.
다랭이마을 가는 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쉬어 가면서 길을 가니 멀리 다랭이논이 보인다. 가천마을에 거의 다 온 것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앞으로 보이는 바다는 가파른 절벽이다.
홍현리 가천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계단을 이룬 논이 언덕 위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졌다. 다랭이(다랑이)논이다. 다랑이는 ‘좁고 긴 논’을 뜻하는데 사투리로 다랭이, 달뱅이로 불린다. 45도 이상의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계단, 3평밖에 안 되는 작은 논부터 300평짜리 논까지 크기가 다양한 680여 개의 논이 있다고 한다. 길도, 집도, 논도 산허리를 따라 구불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다랑이촌인 경남 남해군 ‘가천다랭이마을’은 2005년 1월3일 대한민국 명승 제15호에 지정됐다. 설흘산(482m) 산비탈의 가천마을은 해안 절벽으로 인해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댈 곳이 없어 고기잡이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은 가파른 산비탈에다 계단식 석축을 쌓고 그 안에다 흙을 채워 논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만든 집과 논은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제비집을 보는 듯 위태로웠다.
가천다랭이마을은 척박한 땅을 한 뼘이라도 더 개간해 손바닥만 한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던 섬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잘 보여준다. 힘겹게 농사를 짓던 다랭이마을은 이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 각광받는다. 선조의 땀이 밴 한 뼘의 역사가 큰 희망이 된 셈이다.
다랭이마을의 주변 풍경
정자에서 좀 쉬다가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이 코스의 종착점이자 다음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그런데 남해바래길 안내판만 있고 남파랑길 안내판은 없다. 조금 살펴보다가 위로 올라가 다랭이 맛집으로 들어간다. 원래는 한 코스를 더 걸을 생각이었으나 몸이 피로함을 느껴 오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내기로 생각했다. 늦었지만 점심을 먹으려고 밥을 시켰으나 밥맛도 없었다.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며 빨리 돌아가 휴식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식당에 이야기를 해서 택시를 호출하여 남해공용터미널로 가기로 하였다. 오랜 길을 걷다 보니 컨디션이 좀 떨어지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은 스스로 조심을 해야 한다.
택시를 타려고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소로 올라가니 그 곳에서 아래를 보는 경치가 더 좋다. 가까이서 보아 좋은 것도 있고, 멀리서 보아 좋은 것도 있는데 이 마을은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관광안내소에서 보는 풍경
호출한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말을 걸어오기에 이야기를 하니 부산가는 버스시간을 보고 그 시간에 맞추어 터미널에 도착하겠다며 길을 재촉한다. 기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터미널에 도착하니 5분이 남았다. 그래서 차표를 끊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햇다. 기사가 아니었으면 다음 차까지 한 시간도 더 기다려야했데.....
남파랑길 41 코스는 천하몽돌해변 입구에서 시작하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상주은모래비치를 지나고 두모체험마을을 지나면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알려진 노도를 눈앞에 둔 벽련마을이 나온다. 벽련항에서 남해대로를 따라 앵강만을 끼고 돌아 나가면 원천항이 나오고 계속 앵강다숲길을 따라 걸으면 남해바래길 안내소에 도착하여 끝이 나는 15.4km의 길이다.
남파랑길 41 코스 지도
남해바래길 안내판(남파랑길과 같은 코스지만 남파랑길 41 코스 안내판이 없다)
천하몽돌해수욕장 풍경
천하몽돌해변에서 상주은모래비치까지 오늘의 여정을 계획하고 걸음을 옮기며 남해의 해안 풍경을 즐긴다.
멀리서 보는 천하몽돌해수욕장
상주은모래비치로 가는 길의 풍경
길가에 핀 치자꽃
길을 가면서 향기가 나서 옆을 보니 고운 치자꽃이 피어 있다. 아. 이제 여름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꽃이다. 치자꽃 향기를 맡으며 길을 계속 가서 언덕을 돌아가니 멀리서 고운 모래가 펼쳐진 것이 보인다. 상주은모래비치라 일컫는 상주해수욕장이다. 좋은 해수욕장이란 모래와 숲과 맑은 바다를 가져야 하는데 상주은모래비치는 은빛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넓은 백사장과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과 더불어 청정 바다로 이루어진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간직한 해수욕장이다. 뒤로는 금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앞에는 조그마한 섬들이 바다에 떠 있어 파도를 막아 준다. 해수욕장이라기보다 호수라고 착각하게 할 만큼 수면은 언제나 잔잔하고 젊은 처자의 곱게 웃는 미소처럼 조용하다.
상주은모래비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이지만 이제는 겨울에는 전지훈련을 오는 운동선수들로 백사장이 붐비고 있으며 봄, 가을에도 수련활동을 갖는 대학생들과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4계절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상주은모래비치 해수욕장
해수욕장 옆의 다리
여기에 도착하니 아직은 해가 하늘에 떠 있으나 원래 오늘 예정이 여기까지였기에 이르지만 휴식을 하고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아직 본격적인 피서철이 되지 않아 숙박소는 거의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 아주 헐한 가격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정할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이르지만 저녁을 먹고 쉬다가 창문을 열고 보니 바다물이 들어와 다리 밑을 가득 채우고 불을 밝혀 뜻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만조의 풍경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걷기를 시작했다. 작년 해파랑길을 걸으면서도 항상 일찍부터 걷고 저녁에는 빨리 일정을 마치는 것으로 여행을 하였으므로 오늘도 일찍 나왔다. 그래도 하지가 가까워지니 벌써 해가 떠 있었다. 밤에 보던 풍경과 아침에 보는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밤에는 만조가 되어 물이 차 있었는데 아침에는 물이 다 빠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아침 해변 풍경
길가의 호박꽃
대량마을을 지나 해안으로 내려가면 그림같은 해변이 나온다. 두모체험마을이다.
두모마을은 자연생태우수마을 및 자연생태복원우수마을로 지정되어 친환경 농법으로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으며, 마을 앞 푸른 바다에서는 여러 해조류와 제철 고기를 잡아볼 수 있는 곳으로, 때 묻지 않은 고향 시골의 인심과 다양한 체험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를 가슴에 담아 갈 수 있는 마을이다.
옛날 도사(道士)가 길을 지나다가 두모(豆毛)라고 부르면 부귀할 것이라 하였다 하여 두모라고 불렸으며, 산의 자태가 수려하고 마을의 형태가 콩의 생태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두모라 부른다고 한다. 마을의 구성은 특색이 있어 4계촌(村) 마을로 마을회관이 중심이 되어 동쪽은 박촌(朴村), 서쪽은 손촌(孫村), 음지편 송림 동쪽은 김촌(金村), 남쪽은 정촌(鄭村)으로 씨족간 집단마을로 형성되어 반농반어민이 대대로 순박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는 마을이다.
두모마을의 해변
두모마을에 도착하니 시장기가 돌아 미리 준비해서 가져간 아침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아침을 먹으며 보는 두모의 앞바다(앵강만)은 너무 그림 같았다.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마을이었다. 쉬다가 다시 길을 재촉하니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바다와 합쳐지는 곳에 다리가 놓여 있으며 여기서부터 구운몽길이라는 안내 표지가 있다.
구운몽길 표시
해안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 많아 해안가의 언덕을 넘어가는 일이 제법 번거롭다. 평탄한 실이 아니라 거의 산길과 같은 곳을 하루에 몇 곳을 지나니 몸도 제법 피로하였다. 산길을 넘어 가니 벽련마을이 나온다. 서포 김만중이 귀양 와 있었던 노도가 눈에 보인다.
벽련마을은 전형적인 농어촌으로 마을 앞은 바다로서 서포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인 노도와 앵강만을 안고 있고 뒷산은 금산 서북 능선의 끝자락이다. 마을 형상이 연꽃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연화(蓮花)라고 불렀고 또한 마을 앞 노도가 마치 연꽃처럼 물위에 떠있는 모양이라서 연화라고 불렀다.
노도(櫓島)는 상주면 양아리 앵강만에 있는 유인도로 벽련마을에서 훤히 보이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이다. 예전에 배[船]에서 쓰는 노(櫓)를 많이 만들던 곳으로 노도(櫓島)라 하였다는 설이 전해오고, 또는 섬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았다 하여 ‘삿갓섬’이라고도 불리는 노도(櫓島)의 한적한 경치와 어울려 석양이 질 때가 되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특히 유채와 메밀꽃이 피고 질 때가 되면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낸다고 하는데 나는 두 가지 모두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선착장에 배를 대면 서포 김만중의 넋을 기리는 비가 서있다. 섬에는 김만중이 직접 팠다고 전해지는 우물과 시신을 잠시 묻었던 허묘(墟墓), 초옥이 있던 터가 남아 있으며, 서포김만중선생유허비와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포는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를 썼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에 부산의 부경대학교에서 남해문학탐방을 한 일이 있다. 부경대학교 실습선에 탑승해서 남해안의 여러 문학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여기에 초청을 받아 이 노도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 때 산을 올라가서 서포의 유적지를 보았을 때는 거의 폐허였는데 이제는 남해군이 관광지의 모티브로 잘 가꾸어 놓았다고 한다.
벽련항에서 보는 노도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던 마을 노인이 노도로 가는 배가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 왔다. 그래서 노도를 가지 않는다고 말하며 예전에 노도를 간 일이 있다고 하니 지금 노도는 그 때보다 주민이 줄어들어 약 25명 정도만 살고 있다고 하였다. 농어촌의 어느 곳이나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식당 이름이 서포밥상이다.
벽련마을과 노도
서포 김만중 유허지를 가리키는 표석
벽련마을을 지나 남해대로를 따라 걸으면 속초항이 나오고 계속 길을 가면 원천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여기에 한려해상국립공원 표지와 남파랑길 42 코스 시작 표지가 있다. 하지만 남파랑길 42 코스는 이곳이 시작점이 아니다. 시작점이 바뀌었는데 아직 표지 안내판은 그대로다. 이런 곳이 여러 곳 있기에 코리아둘레길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면 자기들도 알지만 아직 교체를 못했으니 모든 길을 GPS가 가리키는 길이 가장 정확한 안내라고 하니 참조하시기를 바란다.
원천항 입구의 남파랑길 42 코스 안내판
원천항으로 들어가면 앵강만이 돌아가는 길이다. 앞의 벽련마을도 앵강만을 접해 있지만 원천마을부터는 완전히 앵강만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원천마을 어판장의 경매 모습
원천마을을 지나 앵강만을 끼고 걷는 길을 앵강다숲길이라 칭하고 있다. 이 길을 조금 걸어가면 41 코스의 종착점에 도착한다. 여기에는 남해바래길 안내센터가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남해바래길 안내센터
남해바래길안내 센터에 들어가 무엇이 있는가를 살피니 담당직원이 친절하게 여러 가지 물음에 답을 해 주면 차를 한잔 마시고 가라고 권한다. 그래서 잠시 휴식도 할 겸해서 커피를 한잔 얻어 마시고 남해의 길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음 코스의 길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