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88 코스는 화홍초등학교 앞에서 학교를 끼고 옆으로 올라가면 산길로 접어든다. 상왕봉(상황봉)으 로 가는 길이다. 코스 안내에는 난이도가 높다고 하였으나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다. 상왕봉에서 완도 앞 바다를 조망하고 내려오면 완도수목원애 도착하고 수목원을 벗어나서 마을길을 걸어 원동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15.3km의 길이다.
88 코스 지도
88 코스 안내판
화홍초등학교 옆길
상황봉을 올라가는 길은 처음에는 임도가 계속되다가 어느 정도 올라가서는 산길로 올라가게 된다. 조금 힘들지만 그렇게 험한 길은 아니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상황봉가는 임도
남근바위
산길로 들어가서 제법 올라가면 이름도 요상한 남근바위가 나오고 그 바위를 지나면 통천문과 같이 두 바위가 맞닿아 상황봉으로 올라가는 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문의 형상을 하고 있는 두 바위
이 돌문을 지나 더 올라 가면 상황봉에 도착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산을 올라오면서 보는 모든 이정표나 안내에는 상왕봉이라 되어 있는데 자료를 조사해 보면 모든 곳에서 상황봉으로 나온다. 이름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완도군에서 착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통일을 할 필요가 있다.
완도섬의 중앙에 위치하고 완도읍과 군외면의 경계에 있는 산인 상황봉(象皇峰, 645m)은 완도의 진산으로 오봉산의 중심봉우리이다. 백운봉을 잇는 줄기가 완도 섬을 동서로 나누어 생활권의 경계를 이룬다.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 삼면으로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굵직한 산줄기가 육지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다.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한겨울의 동백꽃은 완도 팔경 중의 하나인 백운홍춘국원(白雲紅椿國苑)의 하나이다.
정상에 오르니 몇 사람들이 전망대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조망의 편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사인데 공사자재를 어떻게 가져 왔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생각이 들었다. 공사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방을 둘러보니 탁 트인 남해가 눈앞에 펼쳐지며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씻어 주었다.
상황봉 정상 봉수대
상왕봉으로 표기된 정상석
봉수대
정상에서 보는 다도해
정상에서 휴식 겸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을 올라오고 내려가는 동안 산 정상에서 공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지 않고 내려가니 완도수목원으로 향한다.
내려오는 길에서 보는 다도해
완도수목원 내려가는 길
완도수목원(莞島樹木園)은 1991년 개장한 우리나라 유일의 난대수목원으로 완도 본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50㏊의 면적에 752종의 자생 난대수종을 보유해, 국내 최대의 난대림 집단자생지이자 유일한 난대수목원이다. 완도수목원 내에는 관리용 임도가 거미줄처럼 길이 많이 나 있는데 아래쪽으로만 내려가면 수목원 입구가 나온다.
완도수목원의 여러 모습
수목원을 나와 길을 걸어가면 여러 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지나면 해안으로 간다. 원동선착장이다.
남파랑 쉼터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길이 30~50m의 6개의 석축으로 된 원동선착장은 선착장들이 흩어져 있어 항상 낚시꾼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이틀 전에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다시 이곳으로 왔다., 완도는 섬이기 때문에 섬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남파랑길 87 코스는 안도항 해조류센터 앞에서 시작하여 해변공원을 지나 다도해 일출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와서 망석항을 지나고 국립공원인 산길을 걸어 장도리 구계등으로 간다. 여기서 다시 화홍리 화홍초등학교에서 끝이 나는 18.0km의 길이다.
87 코스 지도
87 코스 안내판
점심을 맛있게 먹고 87 코스를 시작하니 엄청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완도항해조류센터다.
완도 해변공원로에 위치한 완도군 해조류센터는 2015년에 개관한 전시시설 해조류 자생의 최적지인 완도 바다환경과 해조류가 무엇이며, 다양한 종류부터 시작해서, 해조류의 가치에 대해 알려주고, 해조류 터널에서는 해조 숲을 유리 모형과 조명으로 신비하게 연출하여 해저 탐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완도항해조류센터
해조류센터에서 완도항으로 가는 길가에는 해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완도여객선터미널이 있는 바다 앞에는 주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떠 있다. 그리고 해변공원에는 관광객을 위해서 여러 가지 조형물을 만들어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만들고 있다. 또 뜻밖의 동백이 피어 눈을 즐겁게 만든다.
겨울에 핀 동백
완도항 해변공원 길
해변공원길을 지나면 제법 오르막이 나오는 다도해일출공원이 나온다. 완도여객터미널 맞은편 입구부터 다도해일출공원의 정상부에 있는 완도타워까지는 모노레일이 움직이고 있고 그 옆에는 나무 테크가 설치되어 걸어 오르게 되어 있는데 제법 힘이 드는 길이다. 걷는 동안 장미 터널과 느티나무 쉼터, 소정원 등이 차례로 나타나 걷는 피로를 풀어 준다.
다도해일출공원 표지
모노레일과 나무테크
공원의 정상부에는 완도타워가 있다. 완도 끝자락 다도해일출공원에 우뚝 솟아 있는 섬의 랜드마크인 완도타워는 76m 높이로 타워 상부에 타원형 전망대가 설치되었고, 그 위로 뾰족한 첨탑이 솟아 있어 언뜻 보기에 꼭 우주비행선이 내려와 앉은 모습이다.
완도타워
다도해일출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아 나오면 잠시 길을 찾기가 난감하다. 아스팔트의 큰 길이 펼쳐지는데 이 길이 아니다. 조그마한 오솔길도 잘 보이지 않아 잠시 길을 찾으니 왼쪽으로 아주 작은 오솔길리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가게 한다. 왼쪽으로 펼쳐지는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길을 가니 조그마한 돌문이 나오고 아름다운 길 '동망산돌탑길'이라 칭해 놓았다.
동망산돌탑길 돌문
저 멀리 보이는 양식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은 리조트
최강장군 가리포해전 대첩비
여기서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산길로 들어가게 한다. 그런데 이 길이 상당히 힘들다.두루누비 안내에는 평이하게 국립공원의 해안 풍경을 즐기며 걷는 길이라고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아주 험한 길을 아니지만 아주 좁은 길이면서 오르막이 많은 편안하지 않은 길이다. 미리 이야기하면 88 코스가 어려운 코스라 하지만 그 길은 이길에 비하면 쉬운 길이다. 길은 험하지만 경치는 국립공원이라는 명성에 맞게 아름답다. 부꾸지에서 국립공원탐방센터까지의 약 3km의 길인데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상당히 험한 산길에서 보는 풍경
다도해해상국립공원안내소 부근
여기서부터가 유명한 정도리 구계등이다. 사실 이곳은 그렇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펼쳐지는 경치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다.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에 1972년에 명승 제3호로 지정된 구계등은 신라시대 궁중에서 직접 봉한 녹원지였다. 구계등은 크고 작은 돌들이 모여 9개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4㎞에 위치한 남향의 궁형(弓形) 해안선을 말하며 해안선을 따라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갈밭이 장관이다. 더구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촤르륵' 청명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자갈돌들의 화음은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때론 경쾌하게, 때론 고요하게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 울림이 전해오는 기분이다. 자갈밭은 약 800m에 걸쳐 이어져 있으며, 해안선이 자갈밭을 양쪽에서 감싸는 모양으로 수중절벽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자갈밭의 너비는 80m 정도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약 5m의 바닷물 속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의 자갈은 갯돌(靑丸石)로 크기는 해변에 깔린 갯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 주먹처럼 앙증맞은 것부터 수박만큼 큰 돌까지 크기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깎여 있다는 점은 모두 똑같다. 자갈밭의 모양도 큰 풍파가 있을 때마다 쓸려서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다가 다시 해안으로 올라오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전개 양상도 그때마다 다르게 변하며 대소 5개종의 천연석 청환석이 9계단을 이룬다고 한다. 이 곳의 갯돌들은 수만 년 동안 파도에 씻기고 깎인 탓에 표면이 아주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형용도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다. 또한, 자연적 연마에 의한 표면의 아름다움이 있는 동시에 양이 많아 양적으로도 압도하게 한다. 특히, 저녁에는 서쪽에서 지는 해넘이가 감탄하게 하고 이른 아침의 해돋이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이라 해넘이는 제대로 보았는데 아침에는 일찍 떠나서 해돋이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갯돌 위를 걷기 편하게 나무 테크가 설치되고 중간중간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도록 벤치가 만들어져 있어 관광객들과 마을 사람들이 한가롭게 앉아 즐기고 있었다.
구계등이 아름다운 또 다른 모습은 바다 위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여러 섬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산도, 소모도, 대모도, 소안도, 보길도, 횡간도까지 두루 보이는 경치는 괜히 명승이 되고 옛날부터 녹원지로 봉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앞의 해안의 경치에 더해 해안 뒤편에 우거진 숲은 구계등을 더욱 아름답고 포근한 공간으로 만든다.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부터 참나무, 팽나무, 떡갈나무 등 40여 종의 상록수와 단풍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한여름 더위를 피하고 방풍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숲속 탐방로도 깔끔히 정비되어 있어 걷기도 편하다.
구계등 앞 바다의 섬들 안내도
정도리 구계등 안내
숙소에 짐을 내리고 해넘이 시간을 맞추어 해안으로 나갔다. 마침 해가 자갈해변 끝쪽으로 지려는 시간이었다. 한참을 해넘이를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곳곳에서 해넘이를 보았다. 보는 위치가 다 다르기에 그 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구계등의 해넘이 풍경
해넘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민박집 주인이 고맙게도 김치와 밥을 한 공기 준다. 이 주변에서는 철이 아니라 밥을 먹을 식당을 찾기도 어려워 주인에게 부탁을 하니 라면을 가지고 와서 끓여 먹으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기에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길을 떠났다.
아침에 보는 구계등
길을 떠나 정도리와 화홍리 마을을 지나니 화홍초등학교가 나온다. 여기가 87 코스의 종착점이다.
화홍초등학교
87 코스는 망석리를 지나서 구계등까지 오는 길에서는 조금 짜증이 났다. 왜 남파랑길은 길 이름에 맞지 않는 산을 많이 넘어야 하는지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그러다가 산을 넘어 구계등에 도착해서 보는 경치는 산에서 나온 짜증을 씻어주고도 남는 경치였다. 이 경치를 보게 하려고 그 고생을 시켰는지 의문이다.
남파랑길 86 코스는 해남 남창정류소를 출발하여 달도를 지나면 완도로 들어간다. 완도대교를 건너서 완도 서쪽을 해안을 따라 걸어가 불목리선착장을 지나 청해진을 구경하고 완도항 해조류센터에 도착하는 24.6km의 길이다.
86 코스 지도
이번 여정을 시작하려고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여 강진을 거쳐 남창정류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미리 저녁에 원동항까지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났기에 남창정류소를 출발하여 조금 내려가니 달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니 여기에 86 코스 시작 안내판이 있다.
달도 입구 다리
86 코스 안내판
해남군과 완도섬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 달도(達島)는 남창교와 완도대교로 두 지역을 연결하고 있으나 행정구역상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속한다. 섬에는 달도마을과 염수마을이 있다. 섬의 명칭은 풍수지리상 배의 닻과 같이 생겼다하여 닻섬이라 부르다가 완도군이 설치된 이후 달도리라 하였다고 전하며, 또 다른 설로는 이 섬이 다리 역할을 하면서 다리섬이 달도로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완도 입구
달도로 들어가니 달도테마공원이라는 간판이 여러 곳에 보이고 해안으로 가니 길이 공원을 가로 질러 가게 하였다. 달도테마공원에는 개메기(전남지방 전통 어업 방식으로 밀물에 둑을 쌓아 썰물에 가둬진 고기를 잡는 방식)체험장이 있고, 공원, 어린이 놀이터 등이 있고 역사마당으로 전진도첩사당과 호남대장군 이순신을 기리는 스토리텔링 벽과 망뫼산 약샘 등이 있다.
달도테마공원 표시
달도마을 입석
전진도첩사당 비석과 스토리텔링 벽화
개메기체험장 표시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
달도를 돌아 완도대교로 올라 대교를 걸어 완도로 간다. 완도대교(莞島大橋)는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에 위치하여 달도와 완도 사이를 잇는 왕복 4차로의 500m 길이의 다리로, 통일신라시대의 장군 장보고를 상징하는 무역선과 투구를 형상화하였으며, 1주탑 2면식 비대칭 사장교로 2012년 완공되었다.
완도대교
완도대교에서 보는 원동항
완도대교를 건너 완도로 들어서면 바로 원동항이 나타난다,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머물기로 미리 예정하였으므로 숙소를 정하고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어디에서든지 보는 해넘이는 너무 아름답다. 붉게 온누리를 비추며 사라지는 해를 보면 그 장엄함에 감탄을 하면서도 사라지는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다.
해넘이 광경
완도대교 야경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완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서 채비를 마치고 길을 떠났다.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쓰는 해상왕 장보고 후예들의 섬인 완도(莞島)는 하늘의 축복 속에 탄생된 섬이다. 63.9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끼고 있는 완도는 55개 유인도와 146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다도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완도에서는 "개가 1,000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돈 많은 고장으로 유명했다. 완도라고 하면 우리는 김과 전복을 생각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톳, 미역, 다시마, 매생이, 등등 많은 건강식 먹거리와 웰빙 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꽃이 핀 비파나무
계속 해안을 따라 걸으며 해안의 경치를 즐기다가 자갈로 된 해변에 도착했다. 두루누비의 안내에 의하면 만조시에는 우회하는 길이라 되어 있는데 다행히 내가 걷는 시간은 만조는 되지 않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만조가 되지 않은 해안
곳곳에 보이는 섬으로 가는 배 대합실
옹기와 돌로 아름다운 담을 만든 멋진 집
해안을 따라 조금 더 가니 나무 테크로 연결된 장도가 나온다. 장도는 우리에게 청해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진이란 적군의 침입이나 공격을 막기 위해 짠 군사들의 대오나 기지를 뜻한다. 청해진(淸海鎭)은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지금의 완도에 설치했던 군사 기지이자 무역항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국제도시 역할을 했다.
청해진 유적지는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이 밭으로 사용하는 등으로 땅 밑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바다에 드러난 목책(원목열)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언제든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유적지가 자리한 장도에는 당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을 비롯해 성문과 성벽, 사당 등이 고증을 통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해안으로 내려와 조금 돌아가면 유적지가 발견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목책들이 일렬로 나란히 묻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장보고(張保皐, ?~846)의 영정은 일본과 중국 산둥반도 적산법화원에서 찾을 수 있다. 9세기 서남해안의 해적을 평정하고 당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국제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는 우리 역사서보다 중국과 일본 역사서에 더 상세히 소개된 국제적인 인물이다.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중국, 일본, 우리나라 모두 전해지나 우리나라의 기록이 가장 간략한 편이다. 우리 역사상 드물게 보이는 국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장도(청해진) 일대의 유적
장도(청해진)을 지나면 장보고공원이 나오고 그 공원에 장보고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을 보려고 가니 하필 내부 수리 중이라 휴관이라는 고지가 붙어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길을 가니 장보고어린이공원이 나오고 계속 가면 완도음식특화거리(전복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86 코스는 끝이 난다.
장보고 기념관
멀리 보이는 신지대교
완도의 해변공원로 끝자락에 있는 수협어판장에서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위판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반인은 위판에 참가할 수 없지만 경매를 구경하는 것만도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수협어판장 뒤편에는 약 200m 거리에 40여 개의 음식점이 밀집한 음식특화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음식점에서 완도의 특산물인 전복을 비롯하여 싱싱한 여러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여기에 도착하니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 매생이국을 먹으려니 매생이국은 2인분 이상만 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먹지 못하고 전복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휴식을 취했다.
완도의 상징 전복 모형
여기에서 86 코스는 끝이 났다. 해안을 걸어오면서 코스를 벗어나서 창도(청해징)를 둘러 보고 온 것이 큰 소득이었다. 남파랑길은 걷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에 주변의 역사적 유적지를 돌아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조금 유의해서 코스를 정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파랑길 85 코스는 사내방조제 북쪽교차로에서 시작하여 해남으로 들어간다. 방조제를 지나 계속되는 해안과 마을길을 걸어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를 보면서 가면 제법 큰 시내가 나오고 이 길을 걸어 내려가면 남창정류소에 도착하여 끝이 나는 18.2km의 아주 편안한 길이다.
완도, 해남구간 지도
85 코스 지도
85 코스 안내판
이 코스부터 이제 남파랑길의 마지막 구간인 완도 - 해남구간이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는데 이제 마지막 구간 6 개 코스만 남았다.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니 방조제가 엄청나게 길게 보인다.
강진군 신전면 사초리와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를 연결하는 사내방조제는 1989년에 착공하여 2002년에 완공하였으며 길이는 3,260m에 이른다. 호수 건너편에는 덕룡산과 주작산의 날카롭게 솟아 있는 암릉 구간이 보인다. 주작산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녔다고 하여 붙여진 산이다. 방조제 중간에 해남군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행정구역이 해남군으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내방조제 길
방조제 중간의 해남군 표시
사내호와 간척지
방조제를 지나 해안을 따라 길을 가니 뜻밖에 고분 안내판이 있다. 해남내동리밭섬고분군은 해남군 북일면 소재지에서 내동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 해안이 나오고, 북동쪽으로 가면 밭섬이 나온다. 밭섬은 바깥 섬이라는 의미로,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다. 해남 내동리 밭섬 고분군의 안내도 설명에 의하면, 내동리 북동쪽 해안가의 밭 섬(바깥 섬을 의미함)이라고 불리는 외도(外島) 정상부(해발 22.5m)에 가장 경관이 좋은 지점에 2기의 삼국시대 고분이 있다. 2001년 9월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해안을 따라 계속 가다가 보니 어느 집에 옹기로 치장을 한 모습이 보인다. 조개껍질을 붙인 항아리들이 가득 한데, 판매용인지? 아니면 취미로 만들어 집을 장식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옹기로 장식이 된 집
늘어선 전봇대들
북평면으로 들어가 신남로를 걸어 해안길을 걸어가니 와룡리가 나온다. 마을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와룡마을에 있는 짜우락 샘은 특이하게 바다 안에 위치한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의 전설을 읽어 보면, 방치되어 있던 샘을 지나가던 노인이 누가 용의 두 눈을 가려 마을에 변고가 생긴다고 하였다. 1년 사이에 젊은 청년 7명이 급사한 마을에서는 샘을 원상태로 복원시킨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는 이 길의 종점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길을 가니 남창리로 들어서고 북평초등학교가 나온다. 북평초등학교 정문을 지나니 북평면 소재지답게 여러 편의시설들이 즐비하다.
도시의 시내와 같은 길을 다라 내려가니 남창정류소가 나오고 85 코스 종점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1 코스부터 85 코스까지 걸으면서 종점 표시는 처음이라 조금은 생소하다.
실제로는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달도 입구에서 85 코스는 끝이 낭다.
멀리 보이는 완도대교
북평초등학교
남창버스정류소
이곳에서 나는 이번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일상의 생활을 하다가 나머지 코스를 다음에 걷기로 했다. 2박 3일 동안 같이 걸은 동행은 계속 걸어 이번에 끝을 낸다고 하여 간단히 휴식을 하면서. 날씨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몸조심하라는 인사를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버스를 타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 터미널 앞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에는 숙박업소는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완도에 가야 숙박업소가 있다고 한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면 소재지 정도 되는 곳도 숙박할 곳이 없으니 얼마나 숙박할 곳을 구하기가 어려운 지를 짐작할 것이다.
84코스와 85코스는 전 구간에 상점들이 전혀 없어 출발하기 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두 코스 모두 단조로운 편으로 짧은 시간 내에 마칠 수도 있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 자연을 즐기면서 걸을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 조금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면 85 코스를 걷는 도중에 이 길을 걷는 두 사람의 여자를 보았다. 이야기를 해 보니 남파랑길을 걷는다고 하여 인사를 하고 먼저 앞서 걸었는데 우리가 한참을 앞서 걸었고 그 여자들이 우리를 추월하지도 않았는데 85 코스가 거의 끝나는 해안가의 쉼터에 도착하니 벌써 도착하여 쉬고 있었다. 나와 동행이 조금 의아하여 묻자 자랑스럽게 코스를 벗어나 지름길로 왔다고 하면서 당당해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렇게 걷는지가 의문이다. 코스를 이탈하여 지름길로 다닐 바에야 처음부터 차를 타고 가면 될 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여자들이 말하기를 80%만 걸으면 인증이 된다면서 그 인증을 받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들이 걸은 코스에 대한 신뢰도 사라졌다. 이렇게 걷고도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완주했다고 자랑을 할 것이라 생각하니 보기가 싫었다.
남파랑길 84 코스는 도암농협앞에서 출발하여 향촌리를 거쳐 농촌마을 길을 따라 걸어 신기마을을 지나서 강진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도암배수갑문이 나오고, 방조제를 지나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풍광을 즐기다 가면 사내방조제가 시작하는 북쪽교차로에서 끝이 나는 13.7kn의 잛은 거리다.
84 코스 지도
84 코스 안내판
앞에서 말한 민박 집
숙박을 할 수 있다는 도암문화회관
아침 일찍부터 길을 떠나기에 고마운 민박 집 주인에게 인사도 못하고 길을 가니 아직 해도 떠지 않았다. 조금 길을 다라 내려가 도암문화회관과 도암파출소를 지나 장촌교앞에서 좌측 길로 돌아가 항촌교를 건너니, 항촌마을 입구에 마을 보호수 사장나무가 있다.
항촌 사장나무 앞에는 정약용 남도 유배길 4코스(총거리:65.7km)중에서 1코스 주작산 휴양림길(20.2km)이라는 안내판도 있다.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곳곳에 다산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다산이 무슨 생각을 하고 갔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다산 유배 길은 우리들의 미래를 읽는 아름다운 길이라 소개한다. 해남 윤씨 세장비(世莊碑)와 사장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항촌마을을 좌측에 두고 도암천을 따라 간다.
향촌 사장나무와 그 주변
저 멀리서 아침이 밝아 온다.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해돋이를 엄청 많이 보았지만 어디에서든지 해돋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고 그 장엄한 광경에 압도당한다.
해돋이 모습
농촌 마을길을 따라 한가로이 걸어가면 신기리(新基里) 신기마을이 나오고 농로와 차도, 마을길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는 강진만 논정방조제로 나온다. 강진만 해안도로라는 안내판과 방조제 옆의 갯벌에는 그물이 처져 있는데 양식장 같다. 중간에 도암 배수갑문이 있고, 이어서 방조제는 계속된다. 30분 이상을 걸어야 되는 긴 논정방조제가 끝나면 좌측으로 강진만 해안도로는 계속된다.
도암배수갑문
해안 풍경
종점을 눈앞에 둔 소공원에는 쉼터 정자가 있고, 그 뒤로 썰물 때라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호래비섬이 보인다. 84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는 유일한 숙박업소인 ‘바다가 보이는 집이 있다. 이 코스가 끝나고 숙박을 하려면 이 집에 예약이 안 되면 강진읍으로 나가서 자고 와야 하는데 문제는 교통편이 거의 없어서 택시를 호출해서 가고 다시 와야 하는 것이다. 전라도 구간의 남파랑길에서 제일 큰 문제가 숙박과 식사라는 것이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원래는 이 집 뒤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인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를 지나 85 코스 길에도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잠시 쉬면서 가지고 간 빵으로 해결하기로 하려고 동행과 자리를 잡으려고 하니 마침 숙박업소의 주인아주머니가 나온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라면이라도 끓여 줄 수 있는지를 물으니 고맙게도 낙지를 넣은 라면과 공기밥을 준다. 너무 고마워서 여러 이여기를 하며 지나가는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마은으로 라면이라도 좀 먹을 수 있게 하면 너무 좋은 일이라고 권유를 하고 인사를 극진히 하고 길을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집'의 모습
이 집의 숙박은 민박도 되지만 숙박용 캠핑카를 운용하고 있어 색다른 낭만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낮에 지나기에 그냥 지나쳤지만 이 코스에서 밯길을 멈추는 사람은 이 집을 애용하면 편리할 것이라 생각된다.
남파랑길 83 코스는 구목리교서쪽에서 출발하여 탐진강을 따라 강진만생테공원을 옆에 끼고 내려와서 백련사와 다산초당으로 간다. 다산초당에서 산을 내려오면 석문공원이 나오고 공원의 산길을 걸어가서 내려오면 도암면 농협에서 끝이 나는 18.0km의 길이다.
83 코스 지도
83 코스 안내판
82 코스가 끝나는 구목리교는 강진읍에 있다. 그래서 조금 걸어가 강진읍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83 코스 시작점으로 와서 걷기를 시작한다.
83 코스의 시작은 82 코스와 같은 풍경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82 코스가 탐진강과 강진만생태공원을 왼쪽으로 끼고 걸어가는데 83 코스는 강을 건너 오른쪽에 끼고 길을 간다. 물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코스도 생태공원안으로 들어가 나무 테크길을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 원래의 길이지만 조류독감으로 길을 모두 봉쇄해 놓았다. 하지만 강변으로 걸어가는 길이 있어 82 코스와는 다르게 우회를 하면서 길을 걷고 두루누비에 이 사실을 알려 주니 곧 코스 수정의 공지가 나왔다.
강진만생태공원
이 길을 가면 '남도유배길'이라는 입간판을 자주 본다.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은 삼남대로의 한 갈래이다. 강진군의 다산수련원에서 시작하여 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사의재~영랑 생가~고성사~무위사~태평양 녹차밭~누릿재~천황사~월출산 자락~성풍사지 5층석탑~도갑사~왕인박사 유적지~영암 구림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55㎞에 걸쳐 펼쳐진다. 전라남도에서 새롭게 조성한 해남군 북일면~다산초당 구간을 포함하면 남도 유배길의 총 길이는 65.7㎞에 이른다. 그러니 이 길은 남파랑길가 제법 겹친다.
남도유배길 표시
겨울 철새들
강진만생태공원을 지나면 내륙으로 길을 안내한다.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
백련사 가는 길
백련사 입구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하고 백련사로 올라가니 장애인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와서 해남 땅끝까지 걷는다고 하니 감탄을 한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감탄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강진군 도암면(道岩面) 만덕리(萬德里) 만덕산에 있는 백련사(白蓮寺)의 원래 이름은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로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그 뒤 고려 희종 7년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고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렸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련사의 자랑은 많으나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서 있는 3,000여 평에 달하는 숲속은 사시사철 푸르고 두터운 잎으로 인해 대낮에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 가는 산책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과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가 있던 산은 고려시대 때부터 자생해온 이 야생 차밭이 있어서 ‘다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때문에 정약용이 이곳에 유배와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이라는 호를 지어 사용했다고 한다.
단풍이 곱게 든 백련사 뒷산
백련사 일주문
백련사 단풍
백련사 동백나무숲
다산초당 가는 길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에는 두 곳의 유명 여행지가 있는데 백련사(白蓮寺)와 다산초당(茶山草堂)이다. 두 곳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800m 정도이며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산 속 숲길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에 아주 좋다.
백련사 차밭
다산초당 가는 길에 보는 백련사
다산초당 가는 오솔길
오솔길을 지나서 내려오면 다산초당의 건물들이 보인다. 비록 현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다산의 자취를 흠모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많은 정감을 느끼는 곳이다.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문화재로 1963년에 다산초당을 포함한 관련 유적 일대가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공식 명칭은 강진 다산 정약용유적 또는 강진 정다산유적이다. 원래는 초가였지만 현재는 기와집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적지로 불리고 있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18년(1801~1818)의 유배 기간 동안 11년가량(1808~1818)을 머물며 생활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유배가 끝날 때까지 생활하며 학문에 몰두한 끝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숱한 저서들을 남겼다.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다산초당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고 다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만 나의 지식으로 이야기하기보다 백과사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산초당의 여러 모습
다산초당 안내판
다산초당을 지나 바로 밑의 찻집에서 동행과 함께 향기로운 솔순차를 마시며 휴식을 잠시하고 다시 길을 가니 남도명품길 중의 하나인 '강진바스락길'을 표시하면서 '인연의 길'로 명명된 이정표가 보인다.
‘ 강진 바스락길’은 백련사에서 시작해 해남 대흥사에 이르는 총 37.4㎞의 걷기 길로 전라남도가 ‘남도 명품길’ 조성사업의 하나로 해남 미황사 ‘달마고도’와 함께 첫 번째 사업으로 만든 전남의 대표 길이기도 하다.
이중 ‘인연의 길’ 코스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과 석문공원을 거쳐 도암면 소재지에 이르는 8㎞ 구간이다.
‘인연의 길’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은 19세기 초 이 오솔길을 통해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아름다운 우정과 배움을 나눈 인연 때문이다.
인연의 길 표시
길가의 기이하게 자란 소나무
산을 내려와 조금 가니 석문공원이 나온다.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며 강진군에 있는 석문공원은 석문산과 만덕산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의 절경이 너무 멋이 있어서 이런 별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석문(石門)이라는 이름은 북동쪽의 만덕산에서 남서쪽의 덕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에 하천 양안에 솟아 있는 암석지형은 긴 세월과 비바람이 조각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마치 돌문처럼 생겼고 멀리서 보면 큰 바위 안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석문공원에서 보는 기암괴석
석문공원을 따라 올라가면 큰 도로 위에 도로를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이름도 조금 특이한 '사랑+ 구름다리'다.
만덕산과 석문산의 단절된 등산로를 연결하는 길이 111m, 폭 1.5m로 산악현수형 출렁다리인 ‘사랑⁺ 구름다리’는 구름다리 양끝에는 하트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등산객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원래 등산로가 만덕산과 석문산이 따로 있었는데 이 사랑⁺ 구름다리를 통해 단절된 등산로가 연결이 되어 이름을 사랑+로 지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심하지는 않지만 출렁거리는 출렁다리다. 그리고 밑을 보면 차들이 지나다니는 대로가 아찔하게 보이는 곳으로 건너는데 제법 재미가 있다.
사랑+구름다리
다리를 건너니 길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산길을 가게 만들어 놓았다. 밑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은 없고 차가 다니는 길만 있어 어쩔 수 없이 산길을 가는데 하루 종일 걸었는데 저녁 마지막 길에 산길을 가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산길을 가니 바라보는 경치가 제법 솔솔했다.
구름다리를 건너 데크를 내려와서 조금 가면 세종대왕(탕건)바위가 나온다. 느닷없이 세종대왕이라니 하는 의문을 가지며 돌아보니 구름다리 주변의 암석의 경치가 그냥 지나칠 수 없이 좋았다.
세종대왕이 익선관을 쓰고 인자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의 바위 세종대왕의 가슴으로 뱀 한 마리가 생동감 있게 기어 올라가고 있다. 세종대왕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봐서 이것이 뱀이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이 아닐까 생각되는 형태이다.(안내판의 설명)
강진의 남도명품길 표시
산길을 내려와 도암면 소재지로 들어가 농협앞에서 이 길은 끝난다. 이곳은 면소재지이지만 숙박을 하는 곳이 없다. 온갖 인터넷을 뒤져서 겨우 숙소를 정했는데 이 집의 주인도 자기 집에서는 숙박을 할 수 없다고 오면 다른 집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예약을 한 곳으로 가니 다른 집으로 데려 간다. 전문적인 숙박업소가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만 숙박을 허용하는 곳인 것 같았는데 집이 아주 기풍이 있는 집이었다. 아주 고대광실은 아니었지만 정결하게 꾸며진 집으로 각 방마다 당호가 붙어 있었다. 그것도 제법 오래되어 퇴색한 당호가 있었다. 주인과 이야기를 해 보니 아마도 이 곳에서는 명망이 있는 집인 것 같았다. 뜻밖에 좋은 집에서 머무르게 되어 어제의 가우도와 같이 좋은 운이 따랐다.
숙소에 배낭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어디에 숙박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이곳에 숙박지가 없어 참 어려웠다고 하니 마을문화회관을 재단장하여 숙박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는데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하자 주인이 조금 화를 내면서 내일 면에 가서 따져야겠다고 의아해 한다.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참조하기를 바란다.
남파랑길 82 코스는 가우도입구에서 출발하여 탐진강과 강진만 생태공원을 지나 구목리교서쪽에 도착하는 14.7km의 거리다. 이 코스에는 남도이순신길 조선수군재건로와 겹치는 구간도 있고,고려시대부터 옹기를 구웠던 옹기마을로 유명한 칠량면을 지난다.
82 코스 지도
82 코스 안내판
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하루의 여정을 시작한다. 아침 일찍 가우도를 벗어나서 오늘의 코스를 시작하니 길가에 가우도 짚 트랙 종착점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니 해안으로는 갈 수 없어 작은 언덕위로 올라가게 한다.
가우도 짚 트랙
언덕 길에서 보는 바다
언덕 길을 돌아 내려와서 조금 가니 칠량면으로 들어선다. 고금도의 관문인 마량항에서 강진만까지 23번 국도가 이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그 초입이 칠량면인데 예전에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다. 그래서 강진의 별명이 청자골이다. 12세기 전성기에는 가마터가 무려 180개나 있었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가면서 보니 길 이름이 청자로이다. 청자로는 강진의 문화유산인 고려청자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으로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동성사거리와 마량면 상흥리 하분교를 연결하는 전라남도의 도로로 거의 모든 구간이 국도 23호선에 속한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길에서 만나 같이 걷는 동행과 전라도 지역을 걸으면서 원도 한도 없이 갯벌과 습지 그리고 갈대를 본다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가니 방조제가 나오고 강남배수장이 나온다.
방조제 길
방조제를 지나서 오른쪽 들판을 보니 겨울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고 있다. 길을 가면서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항상 생동감을 느끼며 사진을 찍고 싶지만 순간의 장면을 찍기가 쉬지 않다. 방조제를 지나 해안으로 길을 가려고 하나 해안 길을 통행금지해 놓았다. AI 조류 독감으로 출입을 금지해 놓은 것이다. 하는 수없이 해안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갈 수밖에 없었다.
들판의 철새들
통행금지 표시
해안을 지나면 탐진강이 나온다. 탐진강(耽津江)은 일명 납양강, 예양강(汭陽江)이라고도 불리는데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에서 시작하여 장흥군, 강진군을 흘러 남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51.5㎞ 정도의 아주 짧은 강이다. 심한 곡류를 하며 급경사를 이루는 지역이 많고, 하구에는 조수의 영향으로 하폭이 좁고 구릉지가 인접하고 있어 직류하도를 이룬다.
지명유래는 신라 문무왕 때 탐라국 고을나(高乙那)의 15대손 고후(高厚)·고청(高淸) 등의 형제가 내조할 때 구십포(九十浦)에 상륙하였다는 전설에 연유하여 탐라국의 ‘탐(耽)’자와 강진(康津)의 ‘진(津)’자를 합하여 탐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탐진강
고니(백조)모형
탐진강을 따라 올라가면 저 멀리 백조의 모형이 보이는 강진만 생태공원에 도착했다. 탐진강 하구와 강진천이 만나는 강진만은 기수지역으로, 둑이 없는 열린 하구로 자연적인 기수역이 넓게 형성되고, 하구 습지에 인접한 농경지, 산지, 소하천 등의 생태환경이 양호해 다양한 생태자원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강진군의 대표 관광지이며 남해안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강진만 생태공원은 남해안 11개 하구 평균보다 2배 많은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등 철새들이 때가 되면 찾아드는 생명의 보고이다. 동시에 다산 정약용의 유배길이었고, 남당포구, 구강포 등이 있었던 역사 유적지로의 가치도 갖고 있다. 좌우로 펼쳐진 20만평의 갈대군락지와 청정 갯벌을 자랑하며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자연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곳도 A I 조류 독감으로 생태공원의 출입을 금지하였다. GPS를 통하여 지도를 보니 우회하는 길이 없다. 길을 조금 더 가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건너는 곳이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엄청나게 긴 길을 돌아가면 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금지해 놓은 나무 테크길을 지날 수밖에 업었다. 이런 점은 두루누비와 지자제가 서로 긴밀하게 의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게 느껴졌다. 길을 가면서 '한국의 길과 문화' 두루누비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니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어 보내었다.
강진망 생태공원 갈대밭
강진만 생태공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구 목리교가 나오고 여기가 82 코스의 끝이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 도착하니 11시 정도 되었으나 동행과 이야기하여 강진읍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둘이서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했고 또 음식점을 찾기도 쉽지 않으므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길을 가기로 하였다. 강진은 한정식이 알려져 식객들이 즐겨 찾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82 코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강진만 갯벌이 왼쪽으로 펼쳐지고, 하얀 색의 고니(백조)들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고니가 우아한 모습으로 쉬는 모습은 이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다.
남파랑길 81 코스는 마량항을 출발하여 주로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백사어촌체험마을이 나오고 더 가면 고바우상록공원이 나온다. 길을 더 가 하저어촌체험마을을 지나면 가우도가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6.0km의 길이다.
81 코스 지도
81 코스 안내판
조선수군재건로 안내판
마량항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해안을 따라 길을 가면서 보니 마량항이 상당히 크다. 해안을 따라 발달되어 있는 상가는 여러 업종이 존재하고 특히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눈에 보인다. 해안을 조금 들어간 뒤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해안은 완전히 유흥지 같이 발달되어 있다.
조금 걸어가니 까막섬 안내판이 보인다. 마량항의 마스코트인 까막섬은 대표적인 우리나라 상록수림으로 문화적,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썰물 때엔 모세의 기적과 같이 육지와 연결되어 마량항에서 까막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까막섬
마량항 안쪽 마을
까막섬의 모습
썰물로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모습
넓게 펼쳐진 갯벌
계속 길을 가다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카페가 있어 동행하는 사람과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시며 경치를 즐기고 조금 더 가니 백사어촌체험마을 표지가 나타난다. 강진읍에서 남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하며, 앞바다에 흰모래가 많아 백사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 백사어촌체험마을에서는 다양한 갯벌체험을 비롯해 어장체험, 승선체험 등의 어촌문화체험을 할 수 있으며 드넓은 강진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고려 시대 청자를 수출하기도 했던 곳인 만큼 청자박물관에서 도자기체험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백사어촌체험마을
백사어촌체험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이름도 정다운 고바우상록공원이 나온다.고바우상록공원은 경치 좋은 23번 국도를 따라 가면 대구면 저두리와 사당리의 경계 해안가에 위치한 전망 좋은 곳으로 해질녘 노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지나 노을의 장관을 보지 못했다.고바우상록공원은원래의 명당자리는 도로를 내면서 그 기능을 잃었지만 다시 공원으로 조성되어 카페와 강진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아름다운 노을을 눈이 아닌 사진으로 담아갈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길을 더 가면 하저어촌체험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상당히 큰 마을로 많은 숙박시설이 있어 원래는 여기서 머물려고 하고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보니 지금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곳이 없다고 하였다. 여러 번을 말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숙박지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출발할 때 곳곳에 전화를 하여 숙박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예약을 해야만 길을 떠날 수가 있었다.
하저(下猪)라는 이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국이 돼지머리형이여서 저두산(猪豆山)이라 칭해졌으며, 마을의 명칭은 이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저두산(猪豆山)은 아라비아상인들이 서기 600년쯤에 이용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돛머리이기도 하다.
하저(下猪)마을은 이웃에 있는 상저마을과 중저마을보다 아래에 위치하여 "아랫돛머리"라고 불리었으며 그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이 되면서 하저(下猪)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청정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하여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갯벌과 바다에서 얻은 바지락. 꼬막. 석화(굴), 어패류 등등이 새로운 각광을 받는 지역이다.
하저마을을 지나 조금가면 가우도입구가 나온다. 원래는 가우도 앞의 중저마을에 있는 유일한 숙박지를 예약을 했는데 그 숙소 주인이 자기 집은 값이 비싸다고 하면서 숙소를 가우도 안에 있는 집을 소개해 주어 가우도로 들어가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이 글로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참고로 중저마을에 있는 숙박장소는 '강진바다노을예쁜민박' 집이다. 혹시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하고 강진만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도교로 연결된 가우도(駕牛島)는 면적 0.228km2, 해안선 길이 2.4km의 조그마한 섬이다. 가우도(駕牛島)라는 이름은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에에 해당된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 강진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駕牛島)는 강진 대구면을 잇는 저두출렁다리(438m)와 도암면을 잇는 망호출렁다리(716m)에 연결되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2.5km)은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전라남도의 ‘가고싶은 섬’으로 선정되었다.
가우도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예전에는 여러 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중저마을 앞에 출렁다리가 생겨 걸어서 간다. 저녁이 되면 저두출렁다리와 망호출렁다리 모두 멋진 조명 옷을 입고 불을 밝힌다. 다양하게 바뀌는 조명은 강진에서 가장 화려한 밤 조명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해가지는 노을과 어우러진 출렁다리의 풍경은 인생사진을 찍기에도 최적지이다.
가우도 입구에 도착하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조그마한 섬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나 몇 명이 찾는 곳이라 예상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는 모습을 보나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가우도로 들어가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가우도는 완전히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있었다. 두 개의 출렁다리와 모노레일, 짚트랙 등등 조그마한 섬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연에 인공을 더하여 꾸며 놓은 섬이었다.
가우도 입구의 모습
가우도로 들어가는 출렁다리 앞에 페트 병으로 만든 고기조형물이 있다. 가우도 바다에서 밀려오는 페트병 쓰레기를 한국 중국 일본의 청년 작가들이 모여서 만들었다고 하는 고기조형물이 멋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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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 병으로 만든 고기조형물
가우도는 청자다리와 다산다리 두개의 출렁다리가 가우도 섬을 육지와 이어주고 있다.
출렁다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겁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출렁다리가 아니라 바람이 불면 위험할까봐 당초의 계획을 뒤집고 튼튼한 나무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지역이라지만 군데군데 걸린 구명튜브와 스릴을 노리고 만들어 놓은 강화유리바닥 구간을 보면 더 그렇다. 출렁이는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출렁다리인지도 모른다.
이 다리는 대구면 쪽으로 연결된 저두 출렁다리(438m, 도보 10분 소요)와 도암면 쪽으로 연결된 망호 출렁다리(716m, 도보 15분 소요)로 나뉜다. 이 다리들은 사람의 보행만 가능하지 차량이 통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직은 가우도는 깨끗하게 보존이 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차가 들어오지 못하니 입구에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내려서 사람들은 걸어 들어가 관광을 하고 곧 나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유지하려는지 모르겠으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렁다리 중에서 청자다리를 건너 가우도로 들어갔다. 청자다리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두 개의 교각으로 이루어진 사장교인 출렁다리의 거리는 438m이다. 그리고 교량 폭은 보도 폭 2.2m를 포함하여 2.6m이며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보도는 나무로 되어 있다. 이 도보를 걷다보면 양쪽에 구명보트 두 개가 마주보고 있고 중간지점에 양쪽으로 조망대가 있다. 그리고 중간에 강화유리로 바닥을 깔아놓은 지점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가도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다리의 완공으로 그동안 어업에만 종사하던 주민들은 교통의 편리를 느끼고 있고, 민박을 통한 생활 안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어스름 무렵의 청자 다리
다리 건너서 보이는 가우도 표시
두꺼비 바위
가우도를 돌아가는 나무 테크길
숙소가 망호출렁다리 바로 앞에 위치하여 경치가 그만이었다. 숙소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뜻밖에 아름다운 해넘이의 장관을 구경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해넘이의 광경
망호출렁다리의 조명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하여 다시 가우도를 나오기 위해 출발하면서 보니 가우도는 완전히 인공적으로 꾸며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지금은 계절이 여름이 많이 지나서 관광객이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머물고 간다고 한다.
조명을 밝힌 조형물
강진 출신인 김영랑 조상
가우도의 아침
81 코스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가우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만나 같이 숙박을 한 일행도 가우도를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여정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하였다. 여행을 계속하다가 보면 우리가 예상하지 않은 일에도 부딪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조흥 일로 다가왔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