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20코스는 청계면복합센터를 출발하여 조석간만의 차로 넓게 모래벌판이 펼쳐지는 톱머리해변을 지나면 유명한 무안낙지를 파는 직매장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무안국제공항을 두고 길을 따라 가서 용동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는 19.7km의 길이다.
20코스 안내판
여기에 도착하니 정오 무렵이 되었다. 시간이 조금 이른 느낌이 있지만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발하였기에 휴식을 취할 겸하여 빠른 점심을 먹기로 작정하고 식당에 들어가 육개장 한 그릇을 먹었다. 무안까지 와서 유명한 낙지를 먹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여행의 목적이 식도락이 아니기에 맛집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이 도보여행에서는 어디서든지 식당만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걷는 일에 조금 번거로운 일이다.
청계면 사무소 전경
청계면사무소 옆으로 돌아가서 아스팔트 도로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산 언덕 길과 해안길을 따라 걸어가면 톱머리 해변이 나온다.
멀리 보이는 바다
이정표
유명한 무안 양파
톱머리헤수욕장 주차장
톱머리 해수욕장은 무안읍에서 서쪽으로 8㎞ 정도 떨어진 망운면 피서리에 위치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간조 때 펼쳐지는 넓은 갯벌이 장관이며, 끝없이 넓은 백사장과 보호림으로 지정된 해송 숲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백사장 길이는 약 2㎞이고 폭은 100m 정도이다. 가족 단위 피서객이 많이 찾으며, 호젓하면서도 빼어난 경관과 인근 해안에는 돔, 숭어 등 어족이 풍부하여 낚시와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한 캔 사서 마시고 잠시 휴식을 한 후에 해안을 다라 걸어가면 펼쳐지는 넓은 백사장에 잠깐 놀란다. 내가 걷는 시간에 물이 나갔는지 저 멀리까지 갯벌이 보이고 백사장도 넓게 보였다.
톱머리 입구
톱머리 해수욕장 풍경
해안을 걸어가니 바다를 앞에 두고 많은 리조트 건물이 보인다. 간단하게 숙박을 하는 그런 숙박지가 아니라 휴양을 하도록 만들어 놓은 리조트다. 우리나라 곳곳을 걸어가면서 보면 많은 리조트가 보인다. 내가 젊었던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으로 그만큼 우리나라가 발전했다는 증거물이다.
계속 해안을 걸어가니 카페가 눈에 뜨이었다. 들어가니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고 주인장만 혼자서 그냥 앉아 있다가 손님을 맞이한다. 아직 피서철이 되지 않아서 손님이 없는 것이리라. 호젓하게 혼자 앉아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냉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리조트 건물들
톱머리 해변의 모습
톱머리 해변을 벗어나면 무안국제공항이 눈에 펼쳐진다. 무안국제공항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해서 길을 걷는다. 그런데 이 길이 대단히 불편했다. 무안군에서 가로수를 옮겨 심는 모양인데 인도길이 거의 다 파헤쳐 도로변으로 걸어야 했다. 조금 신경을 기울여 보행자들의 편의도 고려하면 좋을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이 길을 걷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불편했다.
파헤쳐 놓은 인도
무안군 망운면 피서리에 위치한 무안국제공항(務安國際空港, 영어: Muan International Airport, IATA: MWX, ICAO: RKJB)은 광주공항과 목포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라도에서 유일한 국제공항이지만 2014년까지는 국제공항 중에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한국공항공사의 애물단지였다. 2015년부터는 지방공항 육성책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하여 정기노선 취항이 속속들이 이루어지면서 기능을 회복하였다.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경쟁력이 있는 공항이지만, 국내선이 없는 국제선 전용 공항인데 활주로 길이가 2,800m로 짧은 편이라서 장거리 국제선 비행이 가능한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
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제법 많은 비행기들이 이륙과 착륙을 하고 있어 텅빈 공항이라는 선입견이 사라졌다.
무안국제공항 전경
무안국제공항의 경계를 지나서 길을 따라 가면 용동마을 회관 앞에 도착하여 이 코스는 끝난다.
용동마을회관
이곳에 도착하니 오후 5시경이 되었다. 오늘은 이곳까지 예정을 하였기에 이제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미리 인터넷을 뒤져 이곳에서 좀 떨어진 망운면에 숙소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망운면으로 가여 한다. 하지만 버스 시간도 모르고 하여 미리 생각한대로 택시를 호출하여 망운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숙소로 향한다.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어디서든 택시를 호출하여 갈 수 있으니 편리해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해랑길 18코스는 목포해양수산청 앞을 출발하여 해안을 걸어 갓바위를 구경하고 목포 시내로 들어가 목포의 여러 역사적인 유적과 현장을 지나 유달산으로 올라가서 유달산둘레길을 빙 돌아서 나와 유방산을 넘어 용해동주민센터에 도착하는 18.0km의 길이다. 이 코스에는 많은 명소가 있어 차분하게 소개하겠다.
서해랑길 18코스 안내판
목포의 바다 풍경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바닷가로 걸어가 목포의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여러 풍경을 즐기면서 가니 갓바위가 나타난다.
우리는 갓바위라고 하면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갓바위가 먼저 떠올린다.그러나 목포의 영산강 하구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용해동 산86-24에2009년4월27일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된 목포의 갓바위가 있다.목포의 갓바위는 해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풍화혈로서 마치 삿갓을 쓴 사람의 형상으로 보인다 하여 갓바위라 불리는데,원래 이곳은 예전부터 입암반조라 하여 목포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었다.
불교와 관계 깊은 팔공산 갓바위와 달리 목포의 갓바위는 갓 모양의 바위2개가 있다.
이 갓바위에는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은 전설로 전한다.옛날 청년이 살았는데 아버지 병환 때문에 소금팔이,머슴살이 등으로 힘들게 일해야 했다.어느 날 청년이 품삯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후였다.청년은 아버지를 간호하지도,임종을 지켜보지도 못 했다는 죄책감에 하늘을 보기 부끄러워 갓을 쓰고 통곡하다가 그대로 바위가 되었는데 큰 바위를 아버지 바위,작은 바위를 아들 바위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도 있는데,모든 번뇌를 끊고 부처님의 도를 깨달은 불교 성자가 영산강을 건너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그는 깜빡하고 삿갓을 놓고 갔는데 그 삿갓이 그대로 바위가 되었는데 중바위(스님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산 위에 있는 팔공산 갓바위와 달리 이 쪽은 해안절벽에 있어 바다와 함께 보면 절경이다.
이외에도 또 다른 전설도 있다고 한다.
갓바위 표지
갓바위 설명판
바다 테크 길에서 보는 갓바위의 여러 모습
반대편의 표지
갓바위를 구경하고 해안을 따라 걸으니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나온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목포시와 태안군에 있는 문화재청 소속 책임운영기관이다. 원래 국립문화재연구원 소속으로 해양문화재 발굴과 연구를 담당하던 기관이었으나 별도 기관으로 독립하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해양문화재 연구 기관으로, 옛날의 난파선들과 대한민국 해저에 있는 여러 해양문화재를 발굴하고 연구한다.
1980년 신안해저인양유물의 과학적 보존과 복원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기로 하여 1981년 문화재연구소 부설 목포보존처리장으로 탄생했다. 1990년 목포해양유물보존처리소가 되었고, 1994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개편되었다가 2009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되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경
이곳에서 육교를 건너 건너편 적은 언덕길로 가니 목포문화예술회관이 나오고 그 주변에 여러 조그마한 박물관과 전시 공간과 남도의 예술을 보여 주는 공간들이 나온다.
입암산을 병풍으로 삼고 앞으로는 영산강과 이어져 넓게 펼쳐진 목포 앞바다가 있어 건물의 풍광에서부터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목포문화예술회관은 목포시민의 예술수준 향상과 함께 문화예술의 전당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기위해 1997년 7월에 개관하였다.
목포시 용해동에 있는 목포문화예술회관 주변에는 자연사 박물관을 비롯하여 남농기념관,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중요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이 위치하여 다방면으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목포문화예술회관 주변의 여러 모습
목포문화예술회관을 지나서 길을 따라 걸으니 유명한 삼학도가 나온다.
삼학도(三鶴島)는바다가 끝나고 강이 시작되는 곳에 아담한 봉우리 셋을 푸른 새처럼 앉혀 놓았던 섬으로 2003년부터 '삼학도 복원화 공원 조성사업'을 진행하였다.
삼학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갖고 있다.
옛날 옛적에 유달산에서 한 젊은 장수가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 늠름한 모습에 반하여 마을의 세 처녀가 그 젊은이를 찾아가자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처자들을 거부했다. 세 처녀는 젊은이를 그리워하다 상사병에 걸려 식음을 거부한 채 죽게 된다. 그 처녀들의 혼이 학이 되어 유달산 주위를 날며 슬피 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모르는 무사는 무예 수련 중 세 마리 학을 향해 활을 쏘아 명중시켰고, 세 마리의 학은 모두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게 되었다. 그 후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오르니 사람들은 그 섬을 세 마리 학의 영혼이 어린 섬이란 뜻으로 ‘삼학도’라 부르게 되었다.
삼학도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혼이 솟아난 섬인 셈이다. 소통이 안 된 젊은 여인들의 한이 섬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삼학도에 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그 내역을 적어두면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사랑을 이루고 싶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는 각자의 몫이다.
삼학도 표석
이곳이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목포시 산정동 1455에 있는 삼학도공원은 1968년부터 5년에 걸친 간척공사로 육지가 된 곳으로 봄에는 튤립,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 겨울에는 동백이 피어 광광객들을 맞아 준다. 기다란 수로 주변에 뻗어있는 한적한 길을 걸어가면 수로를 따라 놓여있는 작은 다리가 운치 있게 느껴진다. 공원 내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과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 카누체험캠프도 있어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오기 좋은 곳이다.
삼학도공원 주변에 있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기념관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후세들에게 알리기 위한 곳으로 교육의 장으로 중요한 곳이다.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삼학도공원의 여러 풍경
삼학도공원을 나와 목포의 해안을 걸어가면 목포의 구시가지라 할 수 았는 곳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종합수산시장 앞에 있는 추억의 보리밥골목으로 들어가기 전에 카페가 눈에 보인다. 날이 너무 더워서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한잔 청하여 마시면서 주인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났다.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조그마한 인연을 맺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보리밥돌목 입구 표지
카페를 나와 골목길을 지나면 옛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집들이 보이고 목포진이 보인다.
목포진은 1439년 4월 설치돼 전라수영의 4개 만호진 중 하나로 서해안을 적으로부터 지킨 수군기지로 수군 주둔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돼 1501년 수군진성이 축성됐다.
목포진은 1895년 폐지되었지만, 목포라는 이름은 남았다. 성벽과 관청 건물이 모두 사라지고 일대에는 민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는데 1991년 복원 필요성이 제기되어 발굴 조사 등을 거쳐2014년 목포진 역사공원으로 만들면서 객사와 일부 유적을 복원하였다.
목포진의 전경
이 목포진 주변은 목포진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거리를 걸어가면 과거의 건물에 현대의 카페가 장식된 건물들이 곳곳에 보이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목포 중심 유달동과 대성동에 있는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은 옛 건물과 골목, 거리 등이 모두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넓은 공간이 통째로 문화재(등록문화제 제718호)로 지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사례다. 이곳을 걸어가명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 정도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100년 된 옛 건물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고, 대한제국 시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목포는 1897년 개항했는데 부산, 인천 등이 외세에 의한 개항이었다면 목포항은 대한제국의 주도하에 우리 정부 스스로가 개항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의 여러 모습
이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목포근대역사관이 있다.목포에서 가장 유명한 옛 건축물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근대역사관은 개항 초기에 일본이 노적봉 아래 개항장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목포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형태로 영사관을 지은 건물이다. 1900년에 완공된 일본영사관은 여러 역사적 현실에 따라 사용되다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해방될 때까지는 목포부청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2014년부터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목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가장 높은 건물이었는데 오사카에서 가져온 벽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내부에는 방마다 영국산 타일과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장식된 벽난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역사관 앞의 소녀상
근대역사관 전경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지역을 걸으면서 구경하고 유달산으로 올라간다. 유달산으로 올라가니 입구에서 노적봉이 먼저 반긴다. 유달동 대의동 2가에 있는 거석 봉우리인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노적봉을 짚과 섶으로 둘러 군량미가 산더미같이 쌓인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고 바위를 둘러싸고 사람들도 돌아다니게 해서 군인이 있는 척 해서 적을 공략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노적봉
노적봉에서 유달산으로 올라간다. '유달산에 오르지 않고 목포에 가봤다고 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 만큼 유달산을 빼놓고는 목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유달산은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고도 불렀다.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한 유달산은 높이 228.3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인 산이다. 목포에 올 때마다 유달산에 오른다. 유달산에서 보는 목포 앞 바다의 다도해는 참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에서 남도의 예술혼이 키워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유달산의 여러 모습
유달산을 올라서 계속 길을 보니 둘레길을 걷게 하였다. 유달산 둘레길은 험한 바위산인 유달산을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게 만든 길이다. 다도해의 경관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약 6km의 길로 부드러운 흙길이다. 한말의 대학자인 정만조 선생이 1907년에 세운 목포시사, 달성사의 애틋한 철거탑, 국내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낙조대에서 고하도 목포대교 부근을 빨갛게 물들이는 해넘이와 그 사이를 오고 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아름답다.
둘레길 주변을 걸으니 제법 먼 길임에도 서해랑길 표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걸으며 이와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의아했다. 그래서 두루누비에 문의를 하니 그들도 답답하다고 하였다. 리본을 달고 표지를 붙여 놓으면 누군가가 이 것을 떼어 버린다고 한다. 너무 몰지각한 행동이다. 길의 리본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표시인데 지역 주민이 무엇이 불만이기에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지가 의문이다.
유달산 둘레길 안내판
둘레길을 가니 뜻밖에 폭포가 보이고 시원하게 물이 흘러내린다. 잠시 구경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부부가 이 폭포는 인공폭포라고 하면서 방금까지 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는데 지금 물이 흘러내린다고 하면서 그들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런 조그마한 일도 여행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인공폭포의 모습
인공폭포의 설명
둘레길에서 보는 목포 앞 바다 풍경
유달산 둘레길을 돌아 내려오면 목포 시가지가 펼쳐진다. 이 시가지를 걸어가며 유달산 쪽을 바라보니 목포해상케이블카가 다니고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을 걸으면서 여러 곳에서 케이블카를 보았다. 환경론자들은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문제에 조심하면서 더 많은 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목포해상케이블카의 모습
목포시내를 제법 걸어가서 유방산의 작은 산길로 들어선다. 하루 종일 걸었기에 조금은 피로하였으나 마지막 남은 길이라 힘을 내어서 걸어가니 옥녀봉이라는 표지의 설명판이 보였다. 하루의 마지막이라 제법 힘들여 산을 넘어간다.
옥녀봉 표지
옥녀봉을 내려와 조금 가니 오늘의 종착지인 용해동행벙복지센터가 나온다. 제법 번화한 곳이라 이곳에 숙박을 할 수 있는가를 찾으니 근처에는 없다. 하는 수없이 처음 예정했던 숙박소를 제법 걸어 찾아가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목포라는 도시라 부근에서 숙박지를 찾아 오늘을 마무리 한다.
서해랑길 17코스는 세한대학교 영암캠퍼스 앞을 출발하여 영산강이 흘러 들어오는 영산호를 보면서 걸어가면 만나는 쌀문화테마공원과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을 지나면 삼호대교가 나오고 그 다리를 건너면 목포로 들어간다. 목포로 들어가면 바로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이 나오고 여기서 끝이 나는 11.0km의 아주 짧은 길이다.
17코스 안내판
17코스 안내판에 있는 인증용 QR코드를 짝으니 위치의 불일치라 하면서 인증이 안 된다. 몇 번을 계속해도 같은 말만 계속 나와서 두루누비가 아닌 다른 QR코드 인식으로 찍어 보니 서해랑길 39코스라는 코드명이 나온다. 두루누비에 연락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길을 떠났다.
바로 옆길로 가니 영산강을 막아 놓은 영산호가 나오고 그 옆을 따라 걷는다.
영산강 지구 종합개발 계획 2단계 핵심 사업의 일환으로 1981년 준공된 영산강 하굿둑으로 인해 조성된 인공 호수인 영산호(榮山湖)는 목포시와 영암군, 무안군에 둘러싸여 있는 담수호이다.
원래 영산강 유역은 홍수 위험성이 매우 높았고, 밀물 때는 바닷물이 나주까지 올라와서 염해의 피해를 항상 겪었던 지역이다. 그래서 영산강 하구에 둑을 쌓아서 자연재해를 벗어나도록 하였다.
영산호 주변 둑길
영산호로 흘러 들어오는 영산강은 예전에는 길이 115.5km로 담양군 용면(龍面) 용추봉(龍湫峰:560m)에서 발원한다고 알려졌으나, 정부 발행 <한국하천일람>에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屛風山. 822m) 북쪽 용흥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성군, 광주광역시, 나주시, 영암군 등을 지나 영산강 하구둑에서 서해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본류의 총 길이는 약 150㎞, 유역 면적이 전라남도 총면적의 약 29%를 차지한다.
남한에서 5번째로 길고 넓은 강으로, 사실 강 길이 자체는 섬진강이 영산강보다 90km 가까이 길지만 섬진강 유역이 대부분이 산골인 데다 수량도 매우 적은 편이라 주로 영산강을 4대강으로 꼽는다. 그래서 4대강 정비 사업에도 섬진강이 아닌 영산강이 선정되었다.
멀리 보이는 농업박물관
영산호 둑을 따라 가다가 왼쪽으로 길을 돌아가면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특징을 나타내는 특이한 박물관들이 나온다, 쌀문화테마공원과, 쌀박물관 그리고 여러 가지의 농사를 일반인에게 알려주려고 만든 전라남도농업박물관 등이 나타난다.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은 전라남도 1993년 9월 24일 농업과 농경문화를 전시하는 농업 전문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사라져가는 전통 농경문화 유산을 모으고 전시하여 후손들에게 전승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운 연건평은 1,193㎡이고, 총 소장품은 600점이다. 제1·2·3전시실과 현대농업관·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각종 농경 민속자료와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국가 및 도지정 민속자료인 돌장승을 비롯하여 아주 다양한 민속품들이 있다.
전라남도농업박묵관의 여러 모습
솟대들
장승
전라남도농업박물관 입구 표지
농업박물관을 가로 질러 나오니 입구가 나타난다. 서해랑길을 입구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돌아 나오는 길이다. 입구 주변에 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기로 작정하고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니 바로 목포로 넘어가는 삼호대교가 나온다.
삼호대교(三湖大橋)는 영암군에서 목포로 이어지는 국도 제2호선의 다리로 영산강 하구둑을 지나는 도로를 확장할 때 수문이 있는 남쪽의 확장이 어려워 이 구간만을 약간 동쪽으로 피하여 건설하였다는 도로이다.
삼호대교에서 보는 풍경
영산호 표지
목포를 나타내는 표지
삼호대교를 건너서 조금 가면 바로 이 코스가 끝남다.
17코스는 아주 짧은 구간이며 길도 너무 편안한 길이다. 무난하게 이 코스를 끝내고 다음 코스로 바로 길을 떠났다.
서해랑길 16코스는 달도교차로를 출발하여 영암호 주변을 한가로이 걸어 영암호를 가로지르는 솔라시도대교를 건너 세한대학교 영암캠프스 입구까지 가는 16.2km의 길이다. 이 길은 너무 편안하게 길을 걷는 코스라서 조금은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코스다.
16코스 안내판
16코스를 시작하는 달도교차로의 안내판에서 길을 따라가니 길이 없다. 아무리 따라가기 앱을 참조해도 잡초가 우거져 있고 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왼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서 옆으로 빠져 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가니 영암금호방조제가 나온다. 여기서 따라가기를 보니 이 방조조제로 가는 길이 아니라 영암호 주변을 걷는 코스다. 그래서 가드레일을 넘어 잡초지로 내려가서 조금 가니 제대로 된 길이 나온다. 이 주변의 길 안내를 조금 더 세심하게 해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영암금호방조제
영암금호방조제(靈巖錦湖防潮堤)는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와 해남군 화원면 별암리 사이에 있는 영암금호방조제는 방조제가 지나는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 금호도(錦湖島)에서 이름을 따 왔는데 길이는 영암~금호~별암방조제 합산하여 약 7㎞이다.
영암금호방조제 옆으로 내려가니 영암호가 펼쳐진다. 서해랑길 16코스는 이 영암호가를 한가로이 걷는 길이다. 아침 안개가 제법 자욱하게 끼여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서 걷는 여유로움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영암호(靈巖湖)는 1985년에 착공하여 영암금호방조제가 1996년 11월 준공되면서 만들어진 영암군 삼호읍·미암면,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담수호이다.
방조제를 사이로 담수와 해수가 갈려 담수어와 해수어 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암호는 담수호 규모에 비해 유역이 좁고, 영암호로 흘러드는 계곡천, 옥천천은 작은 하천이어서 제염을 위해 영산호 물을 공급받는다. 그렇지만 영산호의 물이 부영양화가 심하여 영암호의 물도 부영양화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멀리 보이는 솔라시도대교
영암호가를 한가로이 걸으면 영암호를 가로지르는 솔라시도대교에 도착한다. 이 다리가 없을 때는 영암호를 한 바퀴 돌아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제 이 다리로 인해 교통편이 너무 편안해졌다.
영암과 해남을 아울러 조성한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솔라시도'라고 부르는데, 이 도시에 진입하는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영암 과 해남을 잇는 솔라시도대교가 생겨 목포에서 해남까지 거리가 30분으로 단축되었다.
솔라시도대교는 솔라시도의 동쪽의 진입과 출입을 위한 광역교통망을 개선하고자 하는 대책의 일환으로 급격히 증가가 예상되는 물동량 대비에 따른 교통소통과 기업도시 및 영암호의 관광자원 활성화, 지역주민 편의 증대를 목적으로 지어졌다.
공사기간은 2015년 12월 09일~2022년 12월 08일 (84개월)이고, 진입도로의 총연장은 12.19km, 양방향 4차로이고, 양방향 2차로인 솔라시도대교는 길이 2,606m, 폭 14.10m이다.
솔라시도대교는 차가 다니는 도로로 보행자가 걷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리 아래에 따로 보행자들을 위해 걷거나 자전거로 통과할 수 있는 보행자전용도로가 있어 서해 바다를 조망하며 천천히 걷기에도 좋다. 차만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보행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아주 좋은 설계라고 생각이 되었다.
솔라시도대교에서 보는 영암호
솔라시도대교의 보행자 길
솔라시도대교를 건너서 보이는 모습
솔라시도대교를 건너 길을 조금 가다가 반대편에서 걸어 내려오는 두 여인을 만났다. 걸음을 멈추고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니 그들은 길을 가다가 만난 사이로 서해랑길을 나와는 반대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 길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좋은 여행을 하라고 격려하고 길을 떠났다.
태양광발전소
솔라시도대교를 건너면 영산호와 영암호를 잇는 하천이 나오고 이 하천을 따라 걷는다. 한가로이 하천을 따라 걸으면 공도1교와 공도 2교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 다시 하천가를 따라 걷다가 대불교차로에서 육교를 건너가면 세한대학교 영암캠퍼스에 도착한다.
서해랑길 15코스는 당포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농촌 길을 걸어가 마천마을을 지나서 계속 농촌 길을 걸으면 별암선착장에 도착한다. 이 선착장에서 방조제를 건너면 금호도에 도착하고, 금호도 해안을 즐기면서 금호 제2방조제를 지나서 달도교차로에 도착하는 13.6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15코스 안내판
당포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아무런 특징이 없는 농촌 길을 한가롭게 걸어가니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처량하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제법 명랑하게 들린다. 뻐꾸기는 자신이 울던 소리를 항상 같이 내는데 그 소리를 듣고 처량하다고 느끼거나 구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으리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듣는 소리가 명랑하게 들리는 것은 내가 길을 걷는 지금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리라 생각을 하였다.
농촌 길의 여러 모습
바다의 모습
길을 계속 가니 별암선착장이 나오고 큰 방조제가 나온다. 금호 제 1방조제다. 방조제 옆에 보니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아마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 편의 시설을 갖춘 마을인 듯하였다. 주변을 둘러 보니 식당이 있어 들어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이 길을 걸으면서 어디서든지 식당이 보이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거의 불문율이다. 해남의 우수영마을 지나고 나서 밥을 먹을 식당이 없어 만 하루를 가지고 간 음식물로 배를 채웠는데 식당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 식사를 주문하여 배불리 밥을 먹고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방조제를 지나 금호도로 들어간다.
방조제
해남 산이면 금호도(錦湖島)는 원래는 섬이었어나 화원반도와 해남반도를 거대한 금호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호수로 만들어져 육지가 되었다.
금호방조제는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 제3단계 공사의 일환으로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 확보를 위해 건립되었다. 별암선착장에서 금호도로 이어지는 제 1방조제와 금호도에서 달도로 이어지는 제 2방조제가 있다.
방조제로 인하여 교통의 편리함으로 지역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하였으나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한다. 방조제로 인하여 사라져 버린 갯벌의 가치와 개발의 문제점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5월의 여왕 장미가 피어 있는 담장
금호도 중간 해안 길에 있는 주유소와 식당
여기에서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지만 오늘의 여정을 멈추기로 하였다. 내가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숙소를 검색해 보니 이곳에 펜션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의 머물 곳은 너무 멀었다. 그래서 내일은 좀 많이 걷기로 생각하고 오늘은 일찍 쉬기로 하였다. 마침 식당이 있었으나 영업은 하지 않았지만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도 있었다.
숙소는 머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주인도 나에게 숙박할 곳만 알려주고 집을 비워 제법 큰 펜션에 나 혼자만이 조용하게 지내게 되었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 바깥으로 나가니 해가 산위로 져서 별로 볼 폼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해넘이의 광경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에 이제 왠만한 풍경은 눈에 차지도 않는 간사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여튼 하루를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나머지 길을 가기로 한다.
숙소
숙소에서 보는 해넘이 풍경
다음 날 아침에 길을 떠나니 해무가 자욱하게 깔렸다. 금호도에서 달도로 이어지는 금호 제 2방조제를 지나 달도교차로에 도착하여 이 코스를 끝낸다.
금호 제 2방조제
이 코스도 별다른 특징이 없는 길이다. 그저 목포로 가는 길을 걷는다는 의미밖에 없다.
이길을 걸을 사람은 반드시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준비에 유의해야 한다. 식수를 구할 곳도 음식을 구할 곳도 힘든 곳이나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
서해랑길 14코스는 학상마을회관을 출발하여 아름다운 해변인 오시아노관광단지를 지나서 농촌 길을 걸어 당포버스정류장까지 가는 18.2km의 길이다.
14코스 안내판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하여 해무가 자욱한 길을 따라 14코스 시작점에 도착하여 길을 떠났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농촌의 길을 걸어가니 누렇게 익은 보리와 청보리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자라고 있다. 한가로이 길을 걸으니 멀리서 닭우는 소리도 들리고 개짓는 소리도 들린다.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길을 걸으면 항상 듣는다. 이 소리를 듣는 것도 조그마한 즐거움이다.
들판의 모습
이정표
멀리 보이는 바다
길을 따라 가니 왼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오시아노해변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조성하는 해남군 화원면 주광리에 있는 전체 면적이 500만㎡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오시아노관광단지는 화원반도를 서남해 거점 관광단지로 조성하여 개발하기 위하여 1992년에 지정되었다. 2002년 12월부터 기반 조성 공사를 진행하여 2009년 8월 기반 조성 및 골프장 조성을 완료하고 2010년 오픈하였다.
오시아노(Oceano)란 이탈리아어로 ‘해양’을 뜻하는데, 그 이름처럼 바다 위에 점점이 수놓아진 크고 작은 섬들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다.
여러 편의시설과 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적인 캠핑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캠핑장 그리고 관광객들이 분수와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 데크가 있다.
특히, 해가 질 무렵에 오시아노의 진가가 더욱 빛을 발하며, 밤에는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수만 개의 별빛과 함께 여유로움을 만끽해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곳을 제주 중문, 경주 보문에 이어 국내 3대 관광단지로 조성 중이다.
캠핑장
오시아노관광단지
엄청난 크기의 오시아노관광단지는 아직 개발 중이라 공사장을 드나드는 트럭이 빈번하게 다니고 있었다. 캠핑장은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요즈음 유행인 캠핑카들이 많이 눈에 보인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와는 다른 문화의 변화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변화는 빠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시아노해변을 벗어나 다시 농촌 길을 걷는다.
이팝나무 가로수
별 특징이 없는 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 새 종착점인 당포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이 코스는 오시아노해변을 조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길이다. 그저 정해진 해안과 농촌 길을 걸으며 한가로움을 즐기는 길이다.
서해랑길 13코스는 우수영국민관광단지를 출발하여 높지 않은 청룡산을 올라 바다 경치를 즐기며 내려와서 명량로를 따라 걸어가면 우수영문화마을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명량대첩비가 있는 충무사가 있다. 충무사를 지나 시골 장터인 우수영 5일시장을 지나 예락마을회관을 지나 학상마을회관에 이르는 16.5km의 길이다.
13코스 안내판
이번 여정을 시작하려고 집에서 아침 일찍 떠나 광주로 오니 진도 녹진으로 가는 차표가 3시간 뒤에 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서 조금 난감했다. 그러나 오래 국내를 여행한 경험으로 진도로 가는 다른 차편을 궁리하여 목포로 가서 진도로 가는 노선을 택하여 무난히 예정한 시간에 진도 녹진정류장에 도착하여, 녹진정류장에서 진도를 떠나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 도착하여 이번 여정을 시작한다.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서 점심을 먹고 여정을 시작하니 바로 옆에 강강술래전수관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속이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추었다는 일화가 전하는 곳으로 강강술래에 대한 유래, 의미, 역사에 어떻게 나와있는지 등을 자세히 배워볼 수 있는 곳이다.
강강술래기념비
이 강강술래전수관을 옆에 두고 산 언덕길로 올라가면 우수영유스호스텔이 나오고 그 옆으로 높지 않은 청룡산을 올라가서 보는 바다는 고요하다.
유스호스텔
바다 갯벌
바다 옆의 명량로를 따라 걸어가니 우수영문화마을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동외리, 선두리 일대에 조성된 우수영문화마을은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으로 바다를 지켜온 곳으로,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수영마을은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활기가 넘쳤으나, 1970년대 이후 관공서와 학교 등이 이전하면서 크게 쇠퇴하였고 작은 어촌마을로 전락하였다.
이에 우수영 주민들과 문내면사무소는 침체된 우수영마을의 명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2015 마을 미술 프로젝트’에 응모하여 2015년 3월 최종 선정되었고, 4월부터 12월까지 “소~울(SOUL, 笑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마을을 정비하였다. 여기서 ‘소~울’이란 영문으로는 정신, 혼을 의미하며, 또 다른 뜻으로는 미소의 소(笑 :웃음)와 울돌목의 ‘울’을 합성하여 ‘울돌목의 미소’라 할 수 있다.
그 후 수년에 걸쳐 여러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마을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우수영문화마을은 우수영문화마을을 활성화하기 마을 주민을 마을해설사로 교육하여 관광객에게 마을을 해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곽재구 시인은 “우수영하면 이순신만 떠올리는 데,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 명 한 명의 민초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그 정신이 이어져 지금의 우수영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원래의 자리가 아닌 학동리 청룡산에 자리했던 명량대첩 승전비도 원래 있었던 우수영 문화마을(문내면 동외리)로 이전되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함께 개방되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마을 입구의 간이 슈퍼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주인장과 여러 이야기를 하고 마을길로 들어갔다.
우수영문화마을 표시
우수영문화마을의 강강술래길 표시
'점방'이 아니라 '점빵'이다.
'soul' project의 아카이브관
아카이브관 내부
마을을 계속 가면 법정스님의 도서관도 보인다. 법정스님이 이곳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법정스님 도서관
우수영문화마을 길
길을 계속 가니 명량대첩비가 나온다.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동외리 955-6) 우수영문화마을 한가운데 높다란 바위 언덕에 있는 해남 명량대첩비(海南鳴梁大捷碑)는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1688년(숙종 14)세운 비이다. 1942년 3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힌 것을 1945년 해방이 되자 우수영 주민들은 ‘충무공유적복구기성회’를 조직하고, 1945년 11월 명량대첩비를 찾아 1947년 전라남도 해남의 해안 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으로 옮겨 세웠다가 2011년 3월 17일 현재의 위치인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로 이전하였다. 옆에는 2017년 신축된 충무사가 있다.
명량대첩비는 가로로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라 적혀 있다. 12자 전액(篆額)은 김만중(金萬重)이 썼고, 문장은 이민서(李敏敍)가 쓰고, 글씨는 이정명(李正明)이 해서체로 썼다. 문장 끝에 비문을 쓴 날짜인 1685년과 세운 날짜를 각각 명기하였다.
명량대첩비
충무사
충무사에서 보는 명량대첩비각
우수영 5일 시장
조선수군재건로 표시
전라우수영을 지나 조선수군재건로 이순신길을 따라 걸어 조금 높은 산 언덕으로 올라가면 망해루가 나온다.
망해루는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을 지켜보았다고 알려진 곳으로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보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전투를 구상했던 곳이다. 망해루에서 보는 바다는 탁 트여 있다. 우수영문화마을과 멀리 진도의 진도타워까지 한눈에 보이는 일망무제의 곳이다. 여기서 잠시 바다를 보며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망해루 설명판
망해루
망해루에서 보는 바다
망해루 전경
망해루에서 내려와 해안과 마을길을 걸어 예락마을회관을 지나 증도리마을회관 가까이에서 오늘의 여정을 멈추고 길을 벗어나 숙소를 찾아갔다. 여러 번을 말했지만 숙소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숙소가 있으면 여정을 멈추고 숙박을 해야 한다. 다음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기에 미리 찾아서 거기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이 이 길을 걷는 어려움이다.
숙소 주변의 바다
숙소에서 보는 해넘이 풍경
숙소로 정한 곳이 생각보다 훨씬 큰 펜션단지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경치가 좋은 곳으로, 언덕 위에는 별장인 듯한 집들이 가득한 곳이다. 바닷가의 펜션단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혼자서 배낭을 메고 숙박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할 때 주인이 다소 퉁명하게 대하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식사를 할 곳도 없어 가지고 간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잠을 청하였다.
숙소 주변 풍경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의 예정에 맞추어 길을 떠났다. 아침의 해무가 자욱하게 낀 바다와 해무로 덮인 들판과 마을을 지나면서 갑자기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소설에 나오는 안개가 이렇게 자욱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농촌의 마을길을 계속 가니 학상마을회관이 나온다. 여기가 이 코스의 종착점이다.
해무가 자욱하게 펼쳐진 풍경
13코스는 역사의 현장인 전라우수영과 이순신장군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또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수영마을을 지나면 숙소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는 어려움이 있으니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