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13코스(우수영국민관광단지 - 예락마을회관 - 학상마을회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서해랑길 13코스는 우수영국민관광단지를 출발하여 높지 않은 청룡산을 올라 바다 경치를 즐기며 내려와서 명량로를 따라 걸어가면 우수영문화마을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명량대첩비가 있는 충무사가 있다. 충무사를 지나 시골 장터인 우수영 5일시장을 지나 예락마을회관을 지나 학상마을회관에 이르는 16.5km의 길이다.
13코스 안내판
이번 여정을 시작하려고 집에서 아침 일찍 떠나 광주로 오니 진도 녹진으로 가는 차표가 3시간 뒤에 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서 조금 난감했다. 그러나 오래 국내를 여행한 경험으로 진도로 가는 다른 차편을 궁리하여 목포로 가서 진도로 가는 노선을 택하여 무난히 예정한 시간에 진도 녹진정류장에 도착하여, 녹진정류장에서 진도를 떠나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 도착하여 이번 여정을 시작한다.
우수영국민관광단지에서 점심을 먹고 여정을 시작하니 바로 옆에 강강술래전수관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속이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추었다는 일화가 전하는 곳으로 강강술래에 대한 유래, 의미, 역사에 어떻게 나와있는지 등을 자세히 배워볼 수 있는 곳이다.
강강술래기념비
이 강강술래전수관을 옆에 두고 산 언덕길로 올라가면 우수영유스호스텔이 나오고 그 옆으로 높지 않은 청룡산을 올라가서 보는 바다는 고요하다.
유스호스텔
바다 갯벌
바다 옆의 명량로를 따라 걸어가니 우수영문화마을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동외리, 선두리 일대에 조성된 우수영문화마을은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으로 바다를 지켜온 곳으로,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수영마을은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활기가 넘쳤으나, 1970년대 이후 관공서와 학교 등이 이전하면서 크게 쇠퇴하였고 작은 어촌마을로 전락하였다.
이에 우수영 주민들과 문내면사무소는 침체된 우수영마을의 명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2015 마을 미술 프로젝트’에 응모하여 2015년 3월 최종 선정되었고, 4월부터 12월까지 “소~울(SOUL, 笑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마을을 정비하였다. 여기서 ‘소~울’이란 영문으로는 정신, 혼을 의미하며, 또 다른 뜻으로는 미소의 소(笑 :웃음)와 울돌목의 ‘울’을 합성하여 ‘울돌목의 미소’라 할 수 있다.
그 후 수년에 걸쳐 여러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마을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우수영문화마을은 우수영문화마을을 활성화하기 마을 주민을 마을해설사로 교육하여 관광객에게 마을을 해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곽재구 시인은 “우수영하면 이순신만 떠올리는 데,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 명 한 명의 민초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그 정신이 이어져 지금의 우수영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원래의 자리가 아닌 학동리 청룡산에 자리했던 명량대첩 승전비도 원래 있었던 우수영 문화마을(문내면 동외리)로 이전되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함께 개방되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마을 입구의 간이 슈퍼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주인장과 여러 이야기를 하고 마을길로 들어갔다.
우수영문화마을 표시
우수영문화마을의 강강술래길 표시
'점방'이 아니라 '점빵'이다.
'soul' project의 아카이브관
아카이브관 내부
마을을 계속 가면 법정스님의 도서관도 보인다. 법정스님이 이곳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법정스님 도서관
우수영문화마을 길
길을 계속 가니 명량대첩비가 나온다.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동외리 955-6) 우수영문화마을 한가운데 높다란 바위 언덕에 있는 해남 명량대첩비(海南鳴梁大捷碑)는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1688년(숙종 14)세운 비이다. 1942년 3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힌 것을 1945년 해방이 되자 우수영 주민들은 ‘충무공유적복구기성회’를 조직하고, 1945년 11월 명량대첩비를 찾아 1947년 전라남도 해남의 해안 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으로 옮겨 세웠다가 2011년 3월 17일 현재의 위치인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로 이전하였다. 옆에는 2017년 신축된 충무사가 있다.
명량대첩비는 가로로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라 적혀 있다. 12자 전액(篆額)은 김만중(金萬重)이 썼고, 문장은 이민서(李敏敍)가 쓰고, 글씨는 이정명(李正明)이 해서체로 썼다. 문장 끝에 비문을 쓴 날짜인 1685년과 세운 날짜를 각각 명기하였다.
명량대첩비
충무사
충무사에서 보는 명량대첩비각
우수영 5일 시장
조선수군재건로 표시
전라우수영을 지나 조선수군재건로 이순신길을 따라 걸어 조금 높은 산 언덕으로 올라가면 망해루가 나온다.
망해루는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을 지켜보았다고 알려진 곳으로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보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전투를 구상했던 곳이다. 망해루에서 보는 바다는 탁 트여 있다. 우수영문화마을과 멀리 진도의 진도타워까지 한눈에 보이는 일망무제의 곳이다. 여기서 잠시 바다를 보며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망해루 설명판
망해루
망해루에서 보는 바다
망해루 전경
망해루에서 내려와 해안과 마을길을 걸어 예락마을회관을 지나 증도리마을회관 가까이에서 오늘의 여정을 멈추고 길을 벗어나 숙소를 찾아갔다. 여러 번을 말했지만 숙소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숙소가 있으면 여정을 멈추고 숙박을 해야 한다. 다음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기에 미리 찾아서 거기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이 이 길을 걷는 어려움이다.
숙소 주변의 바다
숙소에서 보는 해넘이 풍경
숙소로 정한 곳이 생각보다 훨씬 큰 펜션단지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경치가 좋은 곳으로, 언덕 위에는 별장인 듯한 집들이 가득한 곳이다. 바닷가의 펜션단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혼자서 배낭을 메고 숙박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할 때 주인이 다소 퉁명하게 대하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식사를 할 곳도 없어 가지고 간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잠을 청하였다.
숙소 주변 풍경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의 예정에 맞추어 길을 떠났다. 아침의 해무가 자욱하게 낀 바다와 해무로 덮인 들판과 마을을 지나면서 갑자기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소설에 나오는 안개가 이렇게 자욱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농촌의 마을길을 계속 가니 학상마을회관이 나온다. 여기가 이 코스의 종착점이다.
해무가 자욱하게 펼쳐진 풍경
13코스는 역사의 현장인 전라우수영과 이순신장군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또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수영마을을 지나면 숙소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는 어려움이 있으니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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