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위양지(밀양) - 이팝나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2020년의 봄은 너무나 가혹했다. 

 

 아름다운 꽃들은 때를 잊어버리지 않고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우리 인간은 그 모양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우리 삶이 모두 파괴되어 버린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도 어느 새 조금 진정이 되고 이 봄의 마지막이라도 구경하기 위해서 골라 밀양의 위양지로 행했다. 위양지의 이팝나무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이팝나무에 활짝 핀 이팝의 하얀 자태는 요즈음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지만 위양지 완재정을 둘러싸고 있는 이팝꽃이 그래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이팝을 구경하고 왔다. 오는 길에 밀양댐 고례로 이팝길을 드라이버하면서 하얀 이팝을 즐긴 것은 덤이리라......

 

 위양못(위양지)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동쪽에 있는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67호인 62,790㎡ 규모의 저수지이다. 옛날에 비하여 규모가 많이 줄어든 저수지로 제방 위에는 안동(安東) 권씨(權氏) 일문의 완재정(宛在亭)이 있다. 본래 못 가운데 다섯 개의 섬이 있었으며, 이 저수지의 물로 아래쪽에 있는 넓은 들판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짓고, 제방 위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풍치(風致)를 가꾼 명소(名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위양지를 한 바퀴 천천히 거닐면서 여유로움을 즐겨 본다.

 

위양지 전경

 

위양지 곳곳에 보이는 수선화

 

멀리 보이는 완재정의 이팝나무

 

완재정이 마주 보이는 곳에서 보는 풍경

 

위양지 전경

 

위양지 둘레에 있는 고목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의 남부 지방을 비롯해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낙엽성 교목으로,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인데, 이는 하얀 눈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팝나무는 대개 높이가 약 20M 의 거목으로 향기로운 백색 꽃이 20여 일간 잎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 전체에 피어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이 잘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전국에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8주를 포함하여 200~500년 된 20여 주의 노거수가 현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은 봄 이팝나무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피었을 때, 이를 멀리서 바라보면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팝나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전해지는데, 이 꽃이 여름이 들어서는 입하(入夏)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入夏木)이라 불리다가 입하가 연음되면서 '이파', '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팝나무 꽃잎이 떨어져 저수지를 하얗게 덮고 있는 모습

 

완재정 주변의 이팝나무꽃

 

 완재정(宛在亭)1900년에 조성된 안동 권씨의 재실로, 위양지에 조성된 섬의 중앙에 정자를 설치하고 배로 출입하도록 한 특별한 구성으로 경남지방 및 조선 후기의 조원의 사례로서 대표적인 모범이 될 만한 구성이다. 건축적인 특성도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2017330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633호로 지정되었다.

 

 몇 년전에 방영된 '보보경심 려'라는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완재정의 여러 모습

 

 

 위양지를 한가하게 거닐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위양지에서 조금 떨어진 '미당'이란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이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밀양댐 고례로로 행선지를 잡고 차를 돌렸다.

 

 미당의 음식은 다음을 기약해 본다.

베트남 여행 - 후예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역사적 건물들이 흩어져 있는 후에(Thành Phố Huế/ 城舖化)는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트어티엔후에성(Thừa Thiên-Huế / 承天-)의 성도로 1802년부터 1945년까지는 베트남(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인구는 약 삼십만으로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위치하고, 얕고 넓은 흐엉()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남제국의 왕궁 다이노이가 있는데 후에()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南越)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년경에는 참족()이 지배하였다. 이후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구엔가()의 수도가 되었으며,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구엔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 뒤 현대 베트남 역사에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1949년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이 수도를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으로 정하면서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공습으로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 도서관, 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 후 재건사업을 추진하여 일부가 복구되고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전통을 간직한 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에에는 왕릉이 여러 곳이 있는데 한 곳만 둘러 보기로 하고 민망황제릉으로 갔다.

민망황제릉은 중국문화를 선호했던 민망황제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는데, 황제릉은 내 외부 장식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입구에 들어서면 납작 돌을 깐 정원과 묘 앞의 초승달 모양의 인공 호수 등이 중국식 건축미를 자랑한다. 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 아래쪽에 문무석 및 동물 모양의 석상들이 늘어서 있다. 후에 왕릉 가운데서 특히 손꼽히는 곳이다.

 

민망황제릉 입구

 

황제릉 안내도

 

입구를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연못

 

황제릉 내부 - 능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큰 정원과 같다.

 

실제 능이 있는 곳은 출입금지

 

 

 황제릉을 뒤로 하고 유명한 티엔무사원으로 갔다.

 

 티엔무 사원(베트남어: Chùa Thiên Mụ)은 강을 따라 도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이 도시의 공식 상징이기도 하다. 높이 약 21m인 칠층 팔각 탑에는 각 층마다 불상을 모셨고, 옆에는 시내까지 소리가 울린다는 범종이 있다. 탑의 양 옆으로는 두 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큰 거북의 등 위에 세워진 비석이 다른 하나에는 2톤이 넘는 거대한 종이 자리잡고 있다. 뒤뜰에 있는 자동차는 불교 탄압에 저항해서 분신자살을 기도 했을 때 이 절의 주지승 타고 있었던 차이다.

 

티엔무사원 안내도

 

티엔무사원의 유명한 칠층 팔각탑

 

티엔무사원의 여러 모습

 

흐엉 강 유람 보트

 

 베트남의 도시에는 '씨클로'라고 부르는 관광객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인력거와 비슷한 자전거로 운행하는 택시 같은 것이 있다.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없지만,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가지 요금을 피하기 위해 탑승하기 전 요금을 흥정하는 것이 좋다. 하노이에서 이와 같은 것을 타고 난 뒤에 요금으로 시비가 붙은 일이 생각났다. 이 씨클로를 타고 후예 거리를 완상하면서 황궁으로 갔다.

 

씨클로를 타고 있는 관광객들과 씨클로

 

씨클로를 타고 들어 가는 왕궁

 

씨클로를 타고 보는 시내와 황궁

 

 가장 뛰어난 관광지이자 볼거리는 후에 황궁(베트남어: Kinh thành Huế, Imperial City, Huế)으로서 인근에 황제가 머물던 궁과 묘가 있다. 후에 전체를 통틀어 흐엉강의 북쪽 지역인 구 시가지에 대부분의 유적이 자리한다. 응우옌 왕조의 황제는 성 안에서 머물렀는데 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성 안쪽의 왕궁은 금지된 도시였고, 오직 황제들과 첩들 그리고 측근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사형을 당하였다. 후에의 역사 관광지로서 유지하기 위하여 재건축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오늘날 금지된 영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쳐 이어진 응우옌 왕조의 왕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이자 궁전이다. 이곳의 뜰은 가로 세로 각각 2킬로미터, 높이 5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성벽은 다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해자에 담을 물은 후에를 관통하여 흐르는 흐엉강에서 끌어왔다. 이러한 구조물을 시터들(citadel)이라고 한다. 시터들 안에는 거의 2.5킬로미터의 방어선을 구축한 왕궁이 있다. 관광객이 입장하는 왕궁의 정문인 남문 누각에 오르면 왕궁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남문 정면에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지은 디엔타이호아(베트남어: Điện Thái Hoà)가 있으며 디엔타이호아의 왼쪽에 각 왕의 위패가 모셔진 사원인 현임각이 있다.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 중국의 자금성에서 명칭을 딴 황제를 위한 인클로져(enclosure)인 자금성(베트남어: Tử Cấm thành, the Pu)이 있다. 이름만을 본 딴 것이 아니어서, 자금성에는 수많은 궁전과 문, 궁정들이 있다. 자금성은 응우옌 왕조의 황족들을 위한 곳이었다.

 

후에의 상징적 존재인 플래그타워 - 베트남 국기가 팔럭인다.

 

 후에 황궁은 정해진 시간에 안내인을 따라서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관광회사에서 무리를 모으고 정해진 시간에 베트남 해설자를 따라 들어갔다. 관광객들은 동서남북의 4개의 문 중에서 남문인 응오문을 통하여 들어간다. 중국의 건물을 본따 만든 곳인데 이곳에서 1945년 베트남왕조의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응오문

 

 

왕궁의 중심에 있는 태화전 - 돌바닥에 관직을 표시하는표지가 있다.

 

후에황궁 안내도

 

태화전 앞 뜰과 내부

 

 태화전은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모방한 궁전으로 응오문 정면에 있다. 1803년 초대 황제 기륭제때 창건하였고, 이곳에서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을 환영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중앙의 대좌 위에는 황제가 앉은 금박의 옥좌가 있다. 태화전 앞에 있는 연못의 다리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다고 한다,

 

태화전 앞 뜰

 

황궁 내부이동에 이용하는 전동차

 

현임각 - 비록 색은 바랬지만 후에 건축을 대표하는 사원

 

현임각 설명판

 

현임각을 외부 벽면과 기둥의 그림들 - 퇴색했지만 아름답다.

 

현암각의 앞 뜰에 놓여 있는 역대 황제를 상징하는 세발 솥

황궁의 문

 

 후에 황궁을 돌아보고 난 뒤에 짧은 베트남 중부지방 여정을 마치기로 했다. 무료한 시간에 잠시지만은 베트남 중부를 주마간산식으로라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않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다음 기회에 준비를 하고 차분하게 다시 올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며 저녁을 먹고 귀국하였다.

 

베트남 여행 - 호이안 2(투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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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이안 구시가지를 정처없이 거닐며 한 나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오후도 늦은 시간이 되었다. 호이안은 도시를 흐르는 투본강을 관광지로 개발하여 여러 가지 투어가 있다. 그 중에서 광주리 배 타기와 투본강 보트 투어에 참가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가 호이안 시장의 야경을 즐기러 간다.

 

 먼저 광주리배를 타러 갔다. 광주리 배를 타는 곳은 투본 강의 조그만 어촌이다. 원래 광주리 배는 투본 강에서의 생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교통수단이고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을 때도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야자수 사이를 누비는 '광주리 배 체험'으로 이용된다. 대나무를 쪼개 엮어 사이사이에 소똥을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콜 타르를 바른다고 한다. 광주리 배에 탑승 인원은 2명이다. 사공이 기다란 작대기로 노를 젓는다. 서로 경쟁을 하듯이 수많은 광주리 배가 강 위를 달린다. 조금은 위험해 보이지만 절대 전복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강의 수심이 깊지 않아 위험하지 않다고 하였다.

어느 자점에 도착하자 한국 음악을 틀어놓고 사공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마치 신들린듯 흔드는 동작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팁을 1달러 정도로 준다. 그들의 생계 수단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통 음악과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아가씨가 배를 젓는다면 노을빛 물결에 유유히 흘러가는 광주리 배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북부 지방의 탐꼭에서 발로 노를 젓는 삼판을 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광주리 배를 타는 모습

 

수 많은 관광객들이 배를 탄다.

 

출발은 좁은 곳에서 점점 넓은 강으로 나간다.

 

광주리 배에서 춤추는 베트남 젊은이

 

일정한 위치에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춘다.

 

 

강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

 

광주리배 하선장

 

 광주리배를 타고 난 뒤에 투본 강 보트 투어를 타러 갔다. 16-17세기 동양 최고의 무역항인 호이안 투본강 투어는 목선을 타고 해질 무렵의 시원한 강 바람을 쐬면서 강안의 풍경을 즐기는 것이다. 보트 투어를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이 도자기마을이란다. 곳곳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 보이고 도자기가 늘어 서 있는 것도 보인다. 투본 강(베트남어: Sông Thu Bồn)은 베트남 중부 꽝남성 근처를 흐르는 강이다. 꽝남성과 꽝응아이성의 경계에서 발원되어 북서쪽을 흘러가다 북동쪽으로 흐름을 틀어 다이록 현과 주이쑤옌 현 사이에 경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계속 흘러내려가 호이안에서 남중국해로 빠져나간다. 투본 강 계곡은 700년부터 1471년 베트남의 정복 때까지 참파 문화의 중심지였다. 꾸어다이치엠은 호이안에 있는 강의 어귀에 위치한 참파의 항구였다. 오늘날에는 보트로 강의 상류로 올라가 미선 유적으로 여행을 하는 호이안 관광의 인기 관광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도자기 마을의 풍경

 

보트를 타는 선착장 주변

 

보트를 타면서 보는 투본 강

 

 보트를 내려서 걸어가면 유명한 호이안 야시장이 나온다. 어느 도시든지 낮에 보는 풍경도 멋있지만 밤에 보는 야경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곳도 많다. 호이안도 그 중의 하나다. 물론 각자의 느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호이안 야시장의 풍경

 

 호이안 야시장 그냥 걸어다니며 이곳 저곳을 구경하였다. 생각보다 훨씬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베트남의 크기로 보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큰 규모였다. 또 식당가는 따로 형성되어 나그네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시장끼가 들어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베트남식의 밥을 먹고 야경을 즐기다가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베트남 여행 - 호이안 1(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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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낭을 주마간산식으로라도 돌아보고 난 뒤에 호이안으로 향했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투본강() 어귀의 남중국해 연안에 위치하는 호이안은 지리적 여건으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넓게 보면 15세기부터 19세기 무렵까지) 베트남의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중요한 국제 무역 항구로, 화교와 일본인, 네덜란드인, 프랑스인. 포르투갈인 등 서구 상인 그리고 인도인들이 드나들며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하였던 곳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풍경이 자리 잡기 있다. 화교를 중심으로 한 무역이 번성하던 시절에는 이 마을을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베트남어로 하이포(Hai Pho)라고 불렀다. 원래 하이포는 "일본 다리"를 가로질러 마을이 나뉘었는데, 당시에 거래된 물품으로는 도자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일본인 마을이 생겨날 정도로 일본과 교역이 활발하였다. 전성기에는 천 명 이상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마을이 쇠퇴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인 마을의 흔적으로는 내원교라는 돌다리뿐이고 현재 호이안의 복고적인 마을은 그 뒤에 이주한 화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호이안은 복고적인 도시의 분위기 때문에 최근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오래된 가옥을 개조하여 멋드러진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일본교로 불리는 내원교와 풍흥고가(古家), 쩐가사당, 꾸언탕가() 등이 있으며 중국인들의 회합장소로 사용된 복건회관, 무역도자기 박물관,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이 있다.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국부페 식당

 

구시가지를 감싸고 흐르는 강

 

구시가지 입구 풍경

 

베트남에서 유명한 'cong' 카페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기념품 가게들

 

내원교입구

 

풍흥고가 표지

 

 내원교 근처에 있는 풍흥고가는 베트남, 중국, 일본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가옥으로 1780년 무역상이 자신의 상점으로 지은 2층의 목조건물로 호이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현재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풍흥 고가의 내부와 외양

 

내원교

 

 로이안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내원교는 1953년에 일본인들이 돌다리 위에 나무 가둥과 기와지붕을 얹어 일본풍으로 세웠다는 다리로 당시에 호이안에 정착한 일본인과 중국인의 거주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다리이다. 다리의 왼쪽에 중국인이 거주했고, 오른족에 일본이들이 거주했다고 하며, 개와 원숭이의 조각상이 다리 양쪽을 지키고 있다.

 

 

 내원교를 지나 바로 옆에 있는 광조회괸으로 갔다. 광조회관은 1786년에 광둥성 출신자들을 위한 집회소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조각으로 꾸민 입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광조회관 입구

 

 완연하게 중국풍이 느껴지는 광조회관

 

관운장사원

 

 관운장사원을 나와 쩐푸 거리를 따라 잠시 배회하면서 길가의 풍경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서양인)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걸어다니는 풍경을 보다가 떤키고가로 발길을 돌렸다.

 

 

거리의 풍경

 

 떤키 고가는 약 200여년 전에 지어졌다고 하는 운치있는 저택으로 내부는 좁고 긴 구조로 되어 있는 호이나의 전통적안 가옥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1층에 차양을 만든 2층의 가옥으로중국풍의 조각과 일본풍의 기둥을 볼 수 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문패같이 붙어 있는 명패

 

떤키 고가의 모습

 

구시가지의 여러 모습

 

날씨가 제법 더워 콩카페에서 냉커피 한잔

 

호이안 구시가는 중국 어느 마을의 축소판을 연상케 한다. 호이안은 매력과 역사가 남아 있는 마을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 가면서 호이안은 어느 새 역사의 현장에서 잊혀 진 마을이 되었고, 그 덕에 아이러니하게 20세기 베트남의 많은 전쟁의 파괴에서 빗겨나 건축물들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고요한 강가의 전형적인 관광 마을이 되었다. 현대와는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분위기에서 호이안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낮은 기와지붕의 집과 옛 모습 그대로인 도로 등에서 거리를 여유롭게 거닐어 보는 재미가 있다. 거리를 따라 걸으면서 여러 곳을 구경하였지만 중국의 따리나 리장의 고성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작다. 하지만 중국의 거대한 고성마을과는 또 다르게 사람이 살아가는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물론 관광지로 꾸며져서 상업적인 냄새도 나지만 그래도 무언가 따뜻한 정감이 진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사람들이 자그마한 가게를 열어 놓고 관광객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여린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른다. 건물들은 이 지역과 외국의 영향이 독특하게 혼재된 모습을 보여준다. 호이안 구시가의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쉴 새 없이 카메라에 손이 간다. 오래된 집은 물론이고,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수많은 그림 가게, 기념품 가게, 옷 가게들도 마을 안에 존재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카메라에 손이 간다.

 

 주변의 기념품가게에 둘러 보니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파는 가게가 있어 조그마한 그림을 두장 사서 기념품으로 가져 왔다.

베트남 여행 - 다낭 2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은 다낭시내를 그냥 배회하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시장도 구경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항상 말하지만 여행의 재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호흡하면서 보는 것이다. 모두가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살아가는 풍경이 다른 것도 본다. 우리와 다르다고 그들이 잘못되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살아온 방식이며 그들의 삶이다. 그래서 여행하면서 그냥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시장에 둘러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시장을 보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호텔 앞의 아침 풍경 -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까오다이교 사원

 

 다낭에 있는 까오다이교 사원은 베트남의 까오다이교 사원중에 두번 째로 크다고 한다. 정문 외에 좌우로 각각 문이 있는데 왼쪽은 여성, 오름쪽은 남성의 전용 출입구라 한다. 외형은 다른 사원과 비슷하지만 내부에 천안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푸른 공이 있고,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까오다이 교의 기본 이념에 따라 마호멧, 부처, 예수, 공자 등의 성인들이 다 같이 서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오토바이의 천국 베트남거리

 

 이 사람들의 교통수단은 대부분이 오토바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리의 신호등도 무시하고 질주를 한다. 그래도 그들 나름의 규칙이 있는지 사고는 크게 나지 않는 듯하였다. 택시나 버스보다도 오토바이가 우선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백사장(논눅비치와 미케비치)

 

해변의 풍경

 

 해변의 풍경을 즐기다가 다낭대성당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커피 집이다. 베트남 커피가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카페가 많이 들어서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베트남도 이제 시장경제의 원칙에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가는 도중에 한글로 사랑채라고 쓰여 있는 가게도 보았다.

 

멀리 보이는 용다리

 

다낭대성당 가는 길의 시장

 

성당벽에 줄지어 서 있는 오토바이

 

 1923년 프랑스인이 세운 천주교 성당인 다낭 대성당(Chính Tòa Đà Nẵng)은 풍향계가 돌아가는 특이한 뾰족지붕 때문에 현지인들은 "닭 성당"이라는 뜻을 가진 '찐또아 꽁 가'라 부른다고 한다. 성당 지붕위의 닭은 유럽 성당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수탉은 베드로의 회개를 뜻한다고 한다. 연분홍의 외관이 매우 인상적인 다낭 건축물의 상징적인 곳이다. 일요일에만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특히 중세 유럽풍의 외부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당 뜰에는 특이한 피에타상이 있으니 꼭 구경하시기를...

 

다낭대성당의 전경

 

다낭대성당의 여러 모습

 

다낭대성당의 피에타상(하필 주변이 공사중이라......)

 

다낭대성당 주변의 마켓

 

멀리 보이는 용다리

 

 다낭시를 흐르는 한강에 2013년 3월 29일 다낭 개방 기념일에 개통한 신명소이다. "드래곤 브릿지"는 불을 뿜는 용의 형태를 한 다리로, 주말에는 불이나 물을 분출한다고 한다.

 

어느 가게에서 주는 베트남 과일

 

 다낭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발길이 간 곳이 링엄사(영응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낭을 소개하는 글(블로그, 카페 등등....)에 보면 대부분이 '영흥사'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잘못된 이름이다. 영응사가 맞다. 사원 대문격인 문에 한자로 '영응사(靈應寺)'로 적혀 있다. 영응사는 영혼들이 응답하는 곳이란 뜻이다. 링엄사(영응사)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65m(어딘가는 67m라고도 한다.)의 해수관음상이 있고 비밀스러운 소원을 빌고 그것을 글로 써 몸에 간직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염험한 기운이 있는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간직한 절로 바다에 빠져죽은 넋들을 기리기 위해 일반인이 돈을모아 절을 지어 헌납한 거라고 한다. 링엄사 경내에 있는 부자들이 기부한 분재화분의(분재라고 하기엔 엄청 큰 것도 있지만) 잘 다듬어진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비밀의정원도 둘러보면 좋고, 링엄사에서 바라보는 미케비치와 다낭시내의 모습은 황혼에 바라보면 환상적이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곳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들을 조심해야 된다. 손에 쥔 휴대폰이나 선글라스 등을 채가기도 하고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고 한다.

 

 

링엄사주차장에서 보는 탑

 

링엄사 안내도

 

링엄사 본전의 모습

 

늘어서 있는 불상과 분재들

 

우리나라 절의 일주문과 같은 문(영응사라고 적혀 있다.)

 

해수관음상 : 낙산사 해수관음상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미케비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인데 운이 좋아 날도 맑았고 더구나 해질 무렵이라 바라다 보는 다낭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자연스레 힐링되는 기분도 들고 좋은 사진도 많이 찍을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낙조의 미케비치와 다낭 시내

 

어둠에 덮여가는 본전의 모습

 

조금 옆에 있는 누워있는 불상

 

거리에서 보이는 원숭이

 

 하루를 바쁘게도 다낭 시내의 이곳 저곳을 두서없이 왔다갔다 하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내가 사는 고향도 아니고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숙소로 가기 전에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가서 잠시 쉬다가 호텔 밖에 나서니 맥주를 파는 곳이 호텔 뜰에 있었다. 멀리 나가기도 좀 그렇고 해서 노천 바에 앉아서 베트남 생산의 맥주를 꼬치 안주와 가볍게 먹고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베트남 여행 - 다낭 1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베트남 북쪽 지역을 여행하고 남쪽지방을 여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중부지방인 다낭을 중심으로 호이안과 후예를 주마간산식으로라도 돌아 보기로 하였다.

 

 다낭 공항에 도착하니 밤늦은 시간이었다.

 요즈음 다낭에는 한국여행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니 온통 한글로 여행객들을 찾는 표지를 들고 있는 베트남인 가이드들이 공항을 뒤덥고 있었다. 지금 반일 감정으로 인하여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 하더니만 대부분이 다낭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의 다섯 개의 직할시 중 하나인 다낭은 역사적으로는 참파왕국의 중요한 거점지역이었고, 주요항구 도시로 오래전부터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해 온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이다. 다낭의 이름은 참어의 Da Nak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도심을 흐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선짜반도와 시가지로 구분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에는 여러 아름다운 다리들이 놓여 밤에는 화려한 불빛으로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미국의 군사기지로 사용되었고, 또 우리나라 청룡부대가 주둔한 곳이다. 부근에는 참파왕국의 유적인 미선유적지가 있고 시내에는 참파의 유물을 보존하는 참박물관과 함께 석조물 300여점이 남아 있다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는 다낭은 60km의 백색의 부드러운 모래 해변과 아름다운 리조트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녹눅 비치는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중의 하나로 20킬로미터에 이르는 백사장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차이나 비치(China Beach)라고도 하는데, 이는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해변은 북쪽에 있는 미케 해변과 함께 빼어난 리조트와 서핑, 위락 시설이 있는 곳이다.

 

숙소인 무영탄 호텔과 앞 거리

 

간 날이 12월 하순이라 호텔내부에 과자로 만든 트리가 있다.

 

 먼저 오행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낭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다낭 시내와 호이안 사이에 위치한 응우하인선(五行山 오행산)은 다낭을 대표하는 산이다. 5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목썬(MocSon, 나무), 호아썬(HoaSon, ), 터썬(ThoSon, ), 낌썬(KimSon, 금 또는 쇠), 투이썬(ThuySon, )으로 오행을 관장하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영어로는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한다. 응우하인선 중에는 물을 관장한다는 투이썬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제일 큰 산의 동굴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미군의 폭탄이 떨어져 생긴 구멍으로 동굴안을 비추는 빛이 매우 신비롭게 보인다. 엘리베이트가 있지만 유료이고 계단으로 가는 것도 힘들지 않다.

 

오행산 전경 - 멀리 보이는 것이 엘리베이트

 

투이썬으로 들어가는 입구

 

투이썬 입구 주변

 

입구를 들어가면 설명판이 보인다.

 

아득히 높은 곳에 구멍이 보인다.

 

위에 뚫린 구멍으로 햇빛이 비친다.

 

입구의 12지신상

 

동굴설명판

 

 바나산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길이가 5043m인 케이블카를 갖춘 산악 리조트로 해발 1487m의 바나봉까지 운행한다. 케이블카를 오르며 내려다 보는 원시림의 자태가 아름답고 이국적인 생태공원이며, 정상에는 놀이공원을 갖추고 있다. 150년전 베트남이 프랑스를 지배를 받던 시절 무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인이 휴양지로 개발한 곳 중 하나이다.

 높은 산위에 있기에 맑은 날을 보기가 쉽지 않다.

 

리조트 광장에서 보는 바나산 - 비구름으로 덮여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

 

신혼부부의 웨딩촬영

 

케이블카 도착지에 있는 사람손으로 지탱하는 다리

 

케이블카 도착지의 내부

 

 정상부로 올라 가면 놀이공원이 있는데 한번 돌아 볼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등을 구경한 사람들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곳은 아니다. 그저 이국의 놀이공원이라 생각하고 우리에게는 없는 것 정도를 구경한다고 마음 편하게 즐기면 된다.

 

놀이공원안에 있는 성당

 

놀이공원에 있는 영주영사의 여러 모습

 

웨딩사진을찍고 있는 신혼부부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보는 풍경

 

리조트 광장에서 보는 풍경

 

 다낭에서의 여행은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냥 이국적인 경치와 우리와는 다른 모슴을 보면서 즐길뿐이다. 우리나라의 화려한 유원지 모습을 상상하면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놀이공원 실내에 마련된 여러 놀이 시설이나 게임기등은 우리에게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인식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풍경과 사람들을 보는 것만도 즐겁고 감사다고 생각하며 계속 다낭을 돌아보기로 한다.

베트남 여행 - 땀꼭 3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계속해서 땀꼭 응오동 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드린다.

 

 베트남 여인이 발로 노를 젓는 삼판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원 위치로 내려오면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른 멋이 있다. 올라가면서 통과하였던 세개의 동굴을 이번에는 꺼꾸로 다시 통과한다. 똑 같은 경치이지만 보는 각도가 180도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풍경같이 느껴진다.

 

 강이 그렇게 깊지 않기에 현지인들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류를 채취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아마도 강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듯한 현지인

 

올라갈 때 통과한 두번째 동굴

 

숲의 터널을 통과하는 삼판들

 

유유히 흐르는 응오동강의 풍경

 

강안의 기묘하게 깍인 암석 풍경

 

곳곳에서 보이는 물새와 그물들

 

삼판을 타고 경치를 즐기는 관광객들

 

올라올 때 첫째 동굴을 통과하는 삼판들

 

응오동강의 아름다운 암석들

 

응오동강의 여러 풍경

 

 응오동강의 유람을 마치고 다시 하노이로 돌라와 시내를 배회하면서 거리의 낭만을 즐겼다.

 

 내가 항상 생각하는 여행이란 아름다운 경치를보는 것, 옛날의 문명의 흔적을 보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러면 어디에서든지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이 여행에서 얻는 즐거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한다.

베트남 여행 - 땀꼭 2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앞에 이어서 땀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드린다.

 

 응오동강은 천천히 흐른다.

 베트남 여인들이 발로 노를 젓는 삼판에 몸을 맡기고, 흘러 가는 물결이 만든 아름다운 절경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수 많은 삼판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모두들 즐겁게 희희낙낙하면서. 모두들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인사를 나눈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으면 서로가 인사를 하면서 자기가 온 고국을 이야기 한다. 지나가던 삼판의 젊은이가 묻기에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k - pop을 부르며 웃고 있다.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리라.

 

 제법 시간이 지나자 첫번째 동굴에 다다른다. 우리가 아는 그런 동굴이 아니라 큰 산의 능선 밑으로 강이 흐르며 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그 동굴을 삼판이 통과를 한다.

 

 

첫째 동굴밑으로 들어가는 삼판들

 

첫째 동굴의 내부

 

 첫째 동굴을 벗어난 삼판은 계속 강의 상류로 올라간다. 강의 폭이 아주 넓은 것은 아니어서 강 양안의 경치를 즐기기도 하고 강 중간의 여러 모습을 완상하면서 여유를 가진다. 강에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절벽의 모양

 

삼판을 타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삼판을 타고 즐기다 보니 어느 새 두 번째 동굴에 다달았다. 첫째 동굴보다는 길이가 좀 짧아 짧은 시간에 통과하였다.

 

두 번째 동굴로 들어가는 삼판들

 

두 번째 동굴의 내부와 출구의 모양

 두 번째 동굴을 벗어난 삼판은 계속 상류를 향하여 올라 간다.

 

응오동강의 여러 풍경

 

 다시 세 번째 동굴이 다가와 삼판들은 동굴로 들어간다.

 

세 번째 동굴의 내부 모습

 세 번째 동굴을 통과하고는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다가 이제 출발지로 돌아가기 위해서 선수를  돌린다.

 

선수를 돌려 들어온 세 번째 동굴

 

강 한가운데 있는 암석

 

유유히 흐르는 응오동강

 

 흐르는 강물에 유유히 떠 가는 조각배에 몸을 맡기고 경치를 즐기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다.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일까? 하지만 이 삼판을 발로 노젓는 베트남 여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다. 이들은 아주 작은 임금으로 생계 유지하기 위해서 힘들여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계속 경치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