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황매산(黃梅山) -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해마다 가을이 깊어갈 때면 햇빛에 은빛 물결로 반짝이는 억새가 보고 싶어진다.

 

 우리나라에 억새로 유명한 곳이 많아 다 가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좋다는 곳은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지난 해는 간월산을 올랐고, 그 전 래는 민둥산을 올랐는데 올해는 어디에 갈까? 하고 있는 중에 합천에 일이 생겨서 가게 되었다. 그래서 황매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황매산은 봄의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가을의 억새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다워 우리 눈길을 그는 곳이다.

 

 황매산(黃梅山)은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大幷面가회면(佳會面)과 산청군 차황면(車黃面)의 경계에 있는 소백산맥에 속하는 고봉으로 최고봉의 높이는 1,113m이다.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마지막 준봉인 황매산은 고려시대 호국선사 무학대사가 수도를 행한 장소로서 경남 산청군 차황면의 황매봉을 비롯하여 동남쪽으로는 기암절벽으로 형성되어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울만큼 아름답다.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마치 매화꽃 속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 부른다.

 

 정상은 700900m의 고위평탄면 위에 높이 약 300m의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주봉우리는 크게 하봉·중봉·상봉으로 나뉜다. 삼라만상을 전시해 놓은 듯한 모산재(767m)의 바위산이 절경이며 봄에는 북서쪽 능선을 타고 펼쳐지는 황매평전의 철쭉군락이 절경이며, 가을이 잩어지면 물드는 단풍에 앞서 평원에 펼쳐지는 억새가 우리 눈을 끈다.

산 정상에는 성지가 있고,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에는 삼현(三賢)이 탄생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왔다. 이곳 사람들은 무학대사, 조식,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삼현이라 하는데(믿거나 말거나.....), 그들이 황매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여긴다.

 

 황매산에 오르기 전에 먼저 오토 캠핑장을 올라가는 부근에 가서 황매산의 원경을 보았다.

 

멀리서 보는 황매산과 주변의 모습

 

 합천에서의 일정이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 합천댐을 보기로 하고 차를 합천댐쪽으로 돌리니 어느새 가을이 제법 물들어 단풍이 제법 눈길을 끌었다.

 

 

합천댐의 모습

 

 합천호(陜川湖)는 낙동강 지류인 황강(黃江)을 막아 합천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대병면에 있는 면적 25.95, 만수위 176m, 저수량 79000t의 인공호수로 높이 96m, 길이 472m인 합천댐은 연간 23400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호수에는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살아 천혜의 낚시터로 꼽히며, 호수와 산허리를 끼고 달리는 호반도로는 자동차 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인근에 황매산군립공원, 하금계곡, 황계폭포, 용문정, 해인사 등 관광지가 많다.

 

합천호 표지석

 

합천호 기념탑

 

합천호와 그 주변의 모습

 

 합천호를 구경하고 합천에 오게 된 주 목적인 영암사를 찾았다. 영암사는 오래 된 고찰이라고 하지만 옛 흔적은 사지만 남아 있고 지금은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만 주변의 풍경과는 좀 어울리지 않게 지어져 있다.(물론 나의 주관적인 시각이다.)

 

 영암사지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강원도 양양에 있는 사림사홍각선사비(沙林寺弘覺禪師碑)’ 조각에 새겨진 글자에 영암사수정누월(靈巖寺修定累月)’이라고 기록된 것이 유일한 관련 기록이다. 그러나 고려 때인 1014년에 적연선사가 83세로 입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절터 일부를 발굴, 조사하여 사찰의 규모가 부분적으로 밝혀졌다.

 

영암사와 그 주변의 풍경

 

 영암사에서 일을 마치고 억새를 보려고 황매산으로 향했다. 황매산은 거의 정상부까지 차가 올라 가도록 길을 만들어 놓았고 거의 정상부에 오토캠핑장이 있고 주차장이 있어 봉에 철쭉을 구경하든지 가을에 억새를 구경하든지 모두 편리하다 주차장에서 바로 억새평원까지 50m도 안 걸린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을 구경하며 함께 호흡하기에는 그만이다.

 

정상주차장에 있는 황매산군립공원안내도

 

 주자창에서 바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억새가 눈에 보인다. 오후의 가을 햇빛이 억새를 비추어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장관이다.

 

 억새는 외떡잎식물로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12m, 뿌리줄기는 모여나고 굵으며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줄 모양이며 길이 4070cm, 너비 12cm이다.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가장자리는 까칠까칠하다. 꽃은 9월에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차례로 달리며 작은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근경은 옆으로 뻗고, 잎은 너비 1, 2로 선형이며, 가장자리의 톱니가 딱딱하기 때문에 톱날같이 작용한다. 꽃은 길이 20-309월에 피며, 전초는 지붕 덮는 데 이용하고 뿌리는 이뇨제로 사용한다.

 

하얀 꽃이 핀듯이 아름답게 빛나는 억새

 

 해발 850m, 자동차로 가는 최고 높이의 캠핑장 입구에 차를 세우자 억새 물결 너머 산자락이 너울대며 펼쳐지는 황매평원이 펼쳐진다. 땀 한 방울 흘리는 수고도 하지 않고 바라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값진 것이라 황송할 지경이다. 주차장에서 황매산 정상 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하얗게 빛나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매산이 자랑하는 억새군락지가 주차장 코앞에 펼쳐져 있다. 주차장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도 10분이면 닿는 거리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 표시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를 구경하면서 황매산 정상으로 발길을 재촉하니 산청과 합천의 경계임을 나타내는 표지가 많이 보인다. 황매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테크가 설치되어 있어 별로 어렵지 않으나 정상부 부근에는 조금 힘이 들었다.

 

산청의 황매산 등산 안내도

 

맑고 푸른 가을 하늘

 

멀리 쭉 뻗어 있는 능선길이 정겹다.

 

정상 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황매산 정상 표지석

 

최정상부는 위험해서 오르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보는 풍경

 

영화 촬영을 위해 만들어 놓은 산성

 

 

 정상에서 내려와서 억새평원을 한 바퀴 빙 돌아 내려오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 오고 있다. 깜깜해지기 전에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걸음을 빨리 했다. 산에서 어둠은 잠깐 사이에 물밀듯이 밀려 오기에 걸음을 빨리 해서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늘계단

 

황매산 철쭉제 제단

 

어둠에 덮이는 황매산

 

 올해의 억새는 황매산에서 즐겼다. 생각보다 더 좋은 풍경이 눈에 펼쳐져 호사를 하였다. 간월산이나 민둥산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즐거운 하루였다. 황매산 억새평원을 구경하며 천천히 정상까지 올라 갔다 오는데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모산재를 갔다와야 하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어야 또 다시 찾아 올것이기에 불만은 없다. 다음 봄날 철쭉을 보러 아서 모산재에 갔다와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성주 성밖숲 - 왕버들과 맥문동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부산 갈맷길을 걷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중단을 하였다. 그리고 여름이면 꼭 가 보아야겠다고 항상 생각만 하였던 성주 성밖숲의 왕버들과 맥문동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장마가 지난 뒤의 여름 날씨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며 이마를 계속 훔쳐야만 하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성밖숲을 가기에는 다소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참고로 이동 경로를 이야기하면 내가 부산에 살기에 구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왜관역에 하차하여 한 700m 정도를 걸어 왜관 복부터미널에서 성주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성주터미널에 내려 한 500m 정도를 걸어 이천변 성밖숲에 도착하였다. 왜관에서 성주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니 이점만 고려하면 별로 어려움은 없다. 

 참고로 왜관 북부터미널에서 성주가는 버스 시간표를 사진으로 알려 드린다.

 

 성밖숲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성(星州邑城) 밖에 조성된 왕버들숲으로 성주읍의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마을숲이다.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이 숲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왕버들 59주가 심어져 있고, 이 숲에는 가장 높은 나무는 14m에 이르고 있다.

 성밖숲은 거대한 왕버들로 이루어진 단순림으로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생활터이다. 전통적 마을 비보림(裨補林)으로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성된 수해방비림으로 수령이 약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나무가 4-5월이면 연두빛으로 물들이고, 8월이면 야생화 맥문동이 왕버들 아래에서 보랏빛으로 장관을 이루는 등 유수한 생태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의 옛 읍지인 경산지(京山志) 및 성산지(星山志) 등에 수록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 중기 성밖마을에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일이 빈번하였는데, 한 지관이 말하기를 "마을에 있는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발생하니, 재앙을 막기 위해 두 바위의 중간지점인 이곳에 밤나무 숲을 조성하여야 한다."고 하여 숲을 조성했더니 우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 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고 한다.

 

 성밖숲의 전경

 

왜관북부 버스 시간표

 

 성주에서 버스를 내려 성밖숲으로 가는데 한 60정도 되어 보이며 격에 맞지 않는 큰 카메라를 든 남자가 길거리의 아낙에게 맥문동이 어디냐고 길을 묻는다. 내가 짐작하니 내가 가는 곳을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성밖숲이라고 이야기해 주자 맥문동이라면 알 것이라 물었다 한다. 지명이 아니라 꽃이름을 물어 어떻게 할는지????? 아마 어디에서 맥문동이 좋다는 말을 듣고 격에 맞지 않는 카메라를 과시용으로 들고 온 것이라.....

 

 여름 뙤약볕아래 길을 걸어 성밖숲에 도착했다.

 

백년설 노래비

 

국채보상운동 기념비

 

성밖숲 주변의 배롱나무

 

 

 성밖숲의 원 주인은 왕버들이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이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일본, 대만, 중국에도 서식한다.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며 높이는 약 20m, 지름 1m로 자라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새로 나올 때 붉은빛이 돌며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 왕버들을 볼 수 있으나 주왕산 주산지와 함평 자연생태공원 호수에 서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물 속에서도 썩지 않고 살 수 있다. 줄기가 굵고 몸집이 커서 마을의 정자나무로 많이 심었다.

 

 이곳에서도 큰 키의 왕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왕버들나무 아래의 그늘진 곳에는 맥문동(Broadleaf Liriope, 麥門冬)이 많이 피어 있었다. 맥문동은 산기슭이나 숲 속 그늘에서 자라는 늘푸른여러해살이풀로,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맥문동(麥門冬)이라는 명칭은 뿌리에 겉보리 낱알같이 생긴 덩이뿌리가 매달려 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덩이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데 이는 마른기침과 만성기관지염, 입안 건조, 배뇨장애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맥문동은 한겨울에도 잎이 누렇게 시들지 않아 겨우살이풀이라고 불리며,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아파트나 빌딩의 그늘진 정원에 많이 심어져 있다.

 한국·일본·중국·타이완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폭넓게 분포하며 보랏빛의 꽃은 78월에 피어 사람의 눈길을 끌며 가을이 되면 까만색을 띤 동그란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다.

 

왕버들과 맥문동

 

성밖숲 이천

 

성밖숲 왕버들과 맥문동

 

 성밖숲공원의 크게 자란 왕버들과 그 아래에 보라색의 자태를 자랑하는 맥문동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또 곳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마련해 놓은 것도 좋은 점이다. 하지만 관광객을 끌기에는 좀 더 관리에 신경을 기울였으면 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바람일까? 맥문동이 피는 한여름의 날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구경꾼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한가로이 앉아서 꽃구경을 할 수 있는 그늘막같은 것도 찾기가 어려웠다. 성주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방 사람들을 끌기 위해서는 이런 면에 좀더 신경을 기울여 조성해 주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부산 갈맷길 5코스 2구간(천가교 ~ 연대봉 ~ 천가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5코스 2구간은 천가교에서 연대봉을 돌아 가덕을 일주하고 다시 천가교로 돌아오는 길이다.

 

 장마가 오래 계속되어 가덕 연대봉을 오르지 못하다가 드디어 장마가 끝나고 습기가 가득한 여름 더위를 불구하고 가덕으로 향했다.

 

 녹산 해안길을 따라 위풍당당한 부산신항을 보면서 가덕으로 들어서면 정겨운 고향같이 우리를 반긴다. 고향마을 길같은 골목길을 따라 선창을 지나 천가동으로 들어서면 대원군척화비가 있는 천가초등학교가 있다.  천가초등학교를 지나 연대봉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힘들지 않은 오르막길이다.연대봉에 올라서면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지척으로 보이고 만경창파 남해 바다가 펼쳐지며 거제도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바다를 즐기다 산을 내려오면 육수장망 숭어잡이로 유명한 대항에서 외양포쪽으로는 가덕등대와 일본군 포부대가 온전히 남아 있다. 대항에서 새바지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해안 숲길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으면 누릉령, 어음포의 아름다운 풍경과 동선새바지가 나온다. 동선새바지를 지나 동선방조제를 돌아 석화밭 위로 도요물떼새들이 비상하는 눌차 정거생태마을을 돌아나와서 다시 천가교로 돌아 나온다.

 

 가덕도는 면적 20.78, 해안선길이가 약 36이며 형태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으로, 해안은 동쪽과 남쪽이 단조로운 반면 서쪽은 소규모의 곶()과 만()이 연이어져 드나듦이 심하고, 북쪽 해안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파른 해식애를 이룬다.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섬으로 영도 면적의 약 1.5배이며 부속도서로는 눌차도가 있다. 최고점은 연대봉(烟臺峰:459m)이다. 남쪽 끝의 동두말(東頭末)에 있는 가덕도 등대는 남해의 관광명소로 꼽히며, 문화재로 천성진성(天城鎭城), 가덕도 척화비, 연대 봉수대, 가덕도 자생동백군 등이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그 증거로 패총(조개무덤)이 남아 있다. 가덕도동 성북마을 인근에는 7~8세기의 가야시대 고분이 확인되며, 한반도의 동남단에 자리잡아 해상교류 및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조선 중종 39(1544)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이 설치되었고, 임진왜란 때는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했던 곳이다.

 가덕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적한 어촌 섬마을이었으나, 부산 신항만 남측부두가 들어서고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상교통이 예전보다 활발해졌다. 또한 관문공항인 동남권 신공항 예정지로 지목되면서 각종 개발계획이 세워지며 앞으로의 풍경이 많이 달라질 곳이다.

 

 

천가교의 5-2 구간 시작 표지

 

등선방조제 풍경

 

선창마을 안내 표지

 

 무더운 여름 습기가 많아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이마를 흘러 내린다. 연신 땀을 닦아가면서 연대봉쪽으로 길을 재촉하니 천가초등학교와 덕문중·고등학교가 나란히 붙어 있다. 이 가덕에는 학교가 하나밖에 없으니 섬주민들 모두가 동문이라고 같이 간 친구와 농담을 하면서 학교 옆을 돌아 연대봉을 향해 갔다.

 

멀리 보이는 가덕 입구 동선방조제 풍경

 

이정표

 

가덕도 국군묘지 - 25기가 모셔져 있다.

 

연대봉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명지쪽 바다

 

산길에서 보는 남해 바다 풍경

 

 

 땀을 뻘뻘 흘리면서 8월의 더위에 목욕을 하고 드디어 연대봉에 올랐다.

 

 가덕도의 중앙부에 있는 해발 고도 459m의 최고봉 연대봉(煙臺峰)은 봉수대와 관련된 이름으로 봉홧불과 그 연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시설(대라고 불리는)이 있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동쪽 면은 급경사를 이루며, 서쪽 면은 동쪽에 비하여 완경사를 이루어 해안가 구릉을 따라 농경지가 조성되어 취락이 발달해 있다. 연대봉 정상부에서 보면 남동쪽으로는 일본의 대마도가 육안으로 확인되며, 서쪽으로는 거제도가, 북서쪽으로는 진해만의 여러 섬들과 마산 방향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웅천의 시루봉, 거제의 옥녀봉과 함께 조선 시대에 봉화를 올리던 산이었던 가덕도 연대봉에는 명당 파손 실패의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해 왜군이 외양포(外洋浦)를 통해 침범하여 연대봉에 이르렀는데, 연대봉이 명산임을 알고 명혈을 끊으려고 했다. 연대봉 바위에 쇠말뚝을 박으려고 하는 순간 그 바위에서 까치 한 마리가 날아갔다. 왜군이 놀라서 결국 바위를 파괴하지 못했다. 날아간 까치가 바로 산신이라고 한다.

 

 

 연대봉 봉수대(煙臺峰烽燧臺) 가덕도 연대봉 정상에 위치한 고려 시대의 봉수대다.

 

 봉수는 횃불을 뜻하는 봉()과 연기를 뜻하는 수()를 말하는데, 대략 수십 리 간격으로 산꼭대기 요지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피워 급보를 알리던 통신 방법이다. 연대봉 봉수대는 주로 대마도(對馬島) 방면에서 출몰하는 왜구를 감시하였다. 고려 시대 왜구의 침입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감시하기 가장 좋은 위치로 주목받아 고려 의종(毅宗) 대를 전후하여 설치되었으며, 1894(고종 31) 전국의 봉수대가 폐지되면서 함께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봉수대는 1996426일 강서구청에서 복원하여 만든 모형이다.

 

연대봉 봉수대 설명 

 

 

연대봉에서 보는 사방 풍경 - 멀리 거가대교가 웅장하게 보인다.

 

연대봉에서 사위를 찍은 동영상

 

주변 풍경

 

 이제 연대봉을 내려가 대항쪽으로 간다.

 

곳곳에 있는 이정표(지양곡) - 갈맷길 중 가장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듯하다.

 

 중간 인증대가 있는 지양곡문화관광안내소로 내려오니 8월의 무더위를 식힐 간이 찻집이 있다. 폐 버스를 개조하여 등산객들에게 음료를 팔고 있어 시원한 냉커피를 한잔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대항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백재혁 호국영웅 추모쉼터

 

대항가는 길의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대항마을 풍경

 

대항에서 유명한 소희네집

 

 소희네집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는 곳이다. 자주 가던 곳이라 옛정이 새록새록하여 들어가 보니 역시 인산인해다. 그냥 발길을 돌려 나오며 가격표를 보니 10년전 가격 그대로다. 같이 간 친구와 저 가격으로 계속하면서도 옛날과 같이 사람들이 바글거리니 참 좋은 곳이다고 하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항구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가덕도 일주 길을 나서 먼저 대항새바지쪽으로 향해 갔다.

 

대항새바지마을 풍경과 새바지설명판

 

 대항새바지에서 동선방조제를 향하여 바닷길과 산길을 계속 걸어간다.

 

장마가 계속되어 바다물이 낙동강물을 받아 누렇다.

 

희망정

 

누릉능쪽으로 가는 이정표

 

 산길을 계속 걸어가며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도 모르지만 수건을 지어 짜니 땀으로 젖은 수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이런 짓을 몇 번이나 하며 계속 산길을 걸어가니 물이 흐르는 조그마한 계곡을 만났다.

 

 어음포다.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연대봉쪽에서 흘러오는 물인데  상류쪽에 농사를 짓는 곳도 없고 오염이 될 원천은 아무 것도 없는 물이라 너무 깨끗하여 먹을 수도 있을 것같았다. 배낭을 벗어놓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하면서 땀을 식히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어음포설명판

 

어음포위에 있는 예전의 집터

 

누릉능설명 - 바다의 여가 누렇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곳에서 계속 바다가를 따라 동선방조제로 향했다.중간에 기도원을 지나 바다를 구경하면서 동선방조제에 도착했다.

 

바다의 여러 풍경

 

동선방조제

 

가덕대구 설명

 

동선방조제의 여러 모습

 

동선방조제에서 보는 부산신항

 

 방조제 입구의 마을에 도달하니 빙수를 파는 가게가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하루 종일 얼마나 습기가 많은 무더위에 시달렸는지 생각하니 얼른 얼음 빙수를 먹고 싶었다. 시원한 청량음료수부터 한 캔을 마시고 얼음 빙수를 한그릇 마주하니 온 몸이 시원하여 날아 갈 것만 같았다. 빙수를 한 그릇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길을 걸어 간다.

 

 정거생태마을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아침에 왔던 천가교로 발길을 돌렸다.

 

 

 너무나 더운 날이었다. 계속되는 장마로 가덕을 도는 날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날이 맑아 길을 나섰는데 기온이 높기도 하지만 습도가 높아 상당히 고생을 하였다. 예전에 산을 다닐 대도 한여름에 이만큼 땀을 흘리지 않았는데 습도가 너무 높아 조금만 걸어도 온몸아 땀으로 목욕을 한듯했다. 하지만 가덕도를 일주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사우나에 들러 온몸을 씻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르 끝냈다.

수능엄사 - 바다를 앞에 둔 작은 절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향기로운 절집, 수능엄사...

 부산갈맷길을 걸어야 하는데 장마비가 계속되어 길을 걸을 수가 없고 시간도 맞지 않아 잠시 시간을 때우려고 벌써부터 생각해 두었던 수능엄사를 가보기로 랬다. 

 

 수능엄사는 부산 하단 낙동강 하구언에서 철새도래지인 을숙도를 지나 녹산 수문 쪽으로 다리를 건널 즈음에 조그마한 바위언덕 노적봉을 돌아가면 남해를 바라보며 고즈넉이 앉아있는 절집이다. 옛날에는 바위산을 돌아서는 작은 길 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간신히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길이 절 앞마당까지 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절은 조선조 말엽에 창건된 사찰로 향림 스님이 1970년대에 주석하며 오늘의 도량을 만들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절에는 절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듯이 이 절도 한일합섬 창립자 김한수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한수가 어린 시절 그의 모친이 이곳 바다에서 조개를 열심히 줍다가 밀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고립되어 죽었구나 했는데 눈을 떠보니 현재 능엄사 자리에 떠밀려 와있어, 이곳이 생명을 다시 살려준 것이라 여겨 불심이 강한 그의 어머님은 노적봉을 보고 저 산의 높이만큼 돈을 쌓아두고 사는 부자가 되어 이곳에 절을 세워 부처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한다. 이후 김한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포목점에서 일하다가 1944년 그 때 돈 5천원을 가지고 귀국하여 경남모직을 설립했고, 한일합섬을 만들었다. 어머님의 축원대로 부자가 된 김한수는 대처승이 이절을 매입하여 조계종에 시주하고, 계속하여 불사를 하였다고 한다.

 

 능엄사가 자리해 있는 이곳 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남해대전 때 볏가리를 쌓아놓고 조석으로 하얀 횟가루를 뿌려 군사가 많이 주둔한 것으로 위장하여 왜군이 침범을 하지 못하게 한 역사가 있는 곳이다.

 

 능엄사는 한 여름에는 옛날 과거 장원 급제자에게 내리던 어사화에 쓰이던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이 능소화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탐방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올해 여름에는 흐드러진 능소화를 보기가 어려웠다. 왜 그런지 궁금해 했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비구니 도량으로 깔끔하게 가꾸어 많은 종류의 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지하철 하단역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능엄사입구에 내리면 녹산 수문 공원이 먼저 반긴다.

 

녹산수문과 자그마한 수문공원

 

녹산수문 주변

 

수능엄사입구

 

작은 바위언덕 - 노적봉

 

주차장에서 보는 녹산 앞바다

 

능엄사 표지석

 

꽃으로 치장된 법문

 

수능엄사의 여러 모습 - 여러 꽃들이 피어 있다.

 

언덕 위의 능소화

 

언덕 위의 산나리와 능소화

 

 

 올해 유난하게 능소화가 보고 싶었다. 길가를 가다 보면 능소화가 제법 예쁘게 핀 것이 눈에 보이곤 했지만 수능엄사 능소화를 보고 싶어 갔는데..... 올해 수능엄사에는 능소화를 보는 것이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자연의 이치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기에 예쁜 절집을 구경하는 것으로 발길을 돌려 나오다가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점심 때가 되어 시장기가 돌았는데 절입구에 외따로 떨어진 곳에 국수전문집이 있었다. 사람도 다니는 곳이 아니고 마을이 있는 곳도 아닌데 왠 국수집이지....하고 들어가 냉콩국수 한 그릇을 시켜 먹었는데 뜻박에 좋은 집이었다. 이 수능엄사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국수 한 그릇을 먹어 보시기를....

 

국수집 '그집'

 

 

 뜻밖의 이 국수집은 손님이 많았다. 아마도 제법 알려진 집인가 보다 생각을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런 좋은 집을 만나는 것도 큰 행운이었다.

 

부산 갈맷길 6코스 1 구간(낙동강 하구둑 - 구포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원래는 5코스 2구간을 먼저 걸었으야 하는데 장마가 져서 비가 계속 오기에 가덕도 연대봉 산을 오르기가 좀 어려워서 평지 길인 6-1구간을 먼저 걷기로 했다. 비가 좀 오지만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것도 또 언제 할 수 있는 일이겠느냐고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갈맷길 6구간 지도

 

 6코스 1구간은 낙동강 하구둑에서 부산 지하철 3호선 구포역까지다.

 

 낙동강하구둑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단, 엄궁포구를 지나 감전, 삼락 갈대밭 사이를 걷는 비포장 들길이다. 이 구간은 낙동강 철새들의 보금자리며, 삼락생태공원에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상태를 보여 준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어느 계절을 걸어도 운치가 있는데, 오후 엷은 햇살이 낙동강 갈대에 비치어 사방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을이 더욱 좋을 수 있다.

 

 낙동강(洛東江)은 영남지방 전역의  중앙 저지대를 통과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유로연장이 길고 유역면적이 약 2만 4000인 매우 길고 큰 강이다. 발원지에 관해서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연못, 태백시 함백산 계곡의 너덜샘, 너덜샘 아래쪽의 용소(龍沼), 태백산 장군봉 아래의 용정(龍井)이라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태백시는 황지연못만이 발원지라고 주장한다. 동국여지승람등의 옛 문헌에는 황지연못이 발원지라고 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태백산 황지와 경상북도 문경의 초점(草岾), 순흥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했다. 나는 이 발원지를 모두 가 보았는데 우리가 어느 한곳만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강의 상류에서는 여러 하천이 합치면서 서쪽으로 굽어 흐르다가 함창(咸昌)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乃城川영강(嶺江) 등 여러 하천과 합쳐지고,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상주(尙州)에서 위천(渭川), 선산(善山)에서 감천(甘川), 대구(大邱)에서 금호강(琴湖江), 남지(南旨)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부산에서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洛東)'이라는 지명은 가락(伽洛-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공검면 일대가 옛 고령가야(古寧伽倻)의 땅이다. 고려 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다. 그러다가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하며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장마비가 많이 와서 하구둑 수문을 모두 열었다.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낙동강 철새 도래지 표지판

 

엄궁항 표지 - 지금은 항이라기에는 좀.....

 

비에 젖은 낙동강 길 - 제법 비가 왔다.

 

 강가를 계속 걸어 삼락생태공원으로 들어간다. 삼락강변공원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자연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곳이다.

 

 삼락강변공원(三樂江邊公園)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에서 진입하는 낙동대교 아래의 낙동강 둔치 좌우측으로 펼쳐진 광활한 강변공원으로 면적이 4722,000에 이른다.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을 갖춘 체육공원으로 날이 좋을 때는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동호인들을 볼 수 있다. 또 잔디광장, 야생화단지 및 연꽃단지, 자연학습장, 사계절꽃동산, 자연초지 및 습지가 있는 자연공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천천히 걸으면서·산책을 즐길 수 있는 코스와 콘서터 및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문화마당 등으로 꾸며져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낙동강 제방 위에 조성한 조깅코스는 약 5km이고, 면적 약 6의 광활한 사계절 꽃 단지에서는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야생화단지에는 수십종의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삼락강변공원 옆의 부지 221,614에는 2008년 조성이 완료된 삼락습지생태원이 있다. 삼락습지생태원은 연꽃단지 2곳과 낙동강의 자랑인 갈대체험장, 논체험장, 소규모 야생화원, 물억새군락지 등이 있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과 대형 주차장이 갖추어져 있어 시민들이 이용하게 쉽게 만들었으며, 시내에 가까워 접근성도 편리하다.

 

삼락생태공원 표지판

 

감전 야생화 단지 표지

 

 

연꽃단지

 

 7월부터 우리나라 곳곳에 연꽃이 아름답게 핀다. 이곳 삼락공원에도 연꽃이 거의 만개해 있었다. 종류에 따라 꽃이 지는 것도 있었고, 이제 꽃망울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도 있고, 활짝 피어 아름다운 자테를 자랑하는 꽃들도 있었다. 연꽃은 진흙속에서 맑고 밝은 자태를 피우는데 꽃말이  "꽃은 꺽지 말아야 한다"라는 교훈을 주는 뜻으로  '저의 고통을 덜어주세요'라는데 이 꽃말에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 신화가 있다. 어느 날 아주 사이좋은 자매 두 사람은 제단에 바칠 꽃을 따러 나가 물가에 피어있는 연꽃을 발견하고 언니인 도리오페가 이 꽃을 따자 꺾인 줄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 꽃은 이 들판에 살고 있는 요정이 싫어하는 남자가 자주 따라오자 잠시 꽃으로 모양을 바꾸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도리오페는 이 요정을 대신하여 연꽃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다리는 뿌리로 변하여 땅속으로 들어갔으며 팔은 잎이 되고, 머리는 꽃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꽃은 전부 여신의 그 모습을 변하여 된 것이니까 이젠 꽃을 따지 말라"라고 동생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며 연꽃으로 변해 버렸다는 신화이다.

 ​연꽃단지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위쪽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길가에는 낙동강의 명물인 갈대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먹이가 풍부하고 사람들이 잡지 않으니 참새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다.

 

생태공원 설명 표지

 

 

곳곳에 보이는 수로와 체함을 하는 논

 

연꽃단지

 

갈대와 참새들

 

멀리 보이는 낙동대교

 

곳곳에 보이는 수로와 늪지

 

삼락의 유래 설명판

 

구포역 가까이의 벚꽃터널 - 벚꽃이 피는 봄에는 경치가 말할 수 없다.

 

지하철 구포역

 

 여름의 장마가 일정을 바꾸었다.

 

 자연의 섭리를 우리 인간이 바꿀 수 없기에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움직이는 방법을 택하여 이 구간을 먼저 걸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부산은 낙동강의 둔치 일대를 자연 그대로 살려서 보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주 현명한 방법이다. 단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을 이용한 여러 시설이 아직 부산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조금 더 노력하여 잘 알렸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부산에는 바다가 있기에 바다만이 모든 것인양 인식되고 있는데 바닷가가 아닌 강가도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좀 더 알려주었으면 한다.

부산 갈맷길 5코스 1구간(낙동강하구둑 - 천가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갈맷길 5코스 지도

 

 5코스 1구간은 낙동강하구둑에서 천가교까지다.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 낙동강하구 을숙도를 가로질러 사계절에 사색의 갈대 빛나는 명지 갯벌에 날아오는 겨울철새의 군무를 국내 그 어떤 곳보다도 가까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지만 아파트길이 아니라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서 신호대교를 건너면 낙동강 하구의 여러 모래톱이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채 우리를 반긴다. 눈을 돌려 멀리를 바라보면 저멀리 뒤편에는 가덕도의 풍광이 뛰어나 머물고 싶을 정도다. 저 멀리 보이는 가덕도를 보면서 길을 재촉하면 웅장한 부산신항이 마주한다. 부산신항을 한 바퀴 돌아 눌차교를 건너면 가덕도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어 오기가 쉽지만 20여년전만 해도 섬으로 들어오기가 쉬운 곳이 아니었다.

 

 이 구간은 낙동강하구둑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동강하구둑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 사이를 잇는 낙동강의 하구를 가로막은 둑으로 19839월에 착공하여 198711월에 준공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길이는 2,400m, 높이는 18.7m이다. 공사 시작 전부터 야기된 환경 공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낙동강 하구둑으로 인해 안정적 용수 공급과 매립지 활용 등 경제적 효과를 내세우면서 환경 파괴가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낙동강 하구의 철새 도래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기수역이 교란되어 많은 생물종이 사라졌다고 주장이 또한 크다.

 둑 위에는 도로가 만들어져 과거에는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던 경남 남쪽 지역과의 거리가 상당히 단축되었고, 둑의 중심에 있는 을숙도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철새들의 번식 및 월동지로서 기후가 알맞아 하류일대가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이다. 사계절 동안 수백 종에 달하는 철새가 찾아 들고 있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낙동강하구둑 수문

 

멀리 보이는 을숙도대교와 하단쪽 아파트

 

하구둑 위에서 보는 낙동강 하구와 명지쪽 아파트

 

을숙도 표지석

 

 섬의 이름에서부터 사람들보다 철새들에게 먼저 알려져 있는, 매년 겨울이면 뉴스에서 철새와 함께 이름이 종종 오르내리는  을숙도(乙淑島)’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하중도(河中島)1916년경 진우도, 대마등 등과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태백 황지에서 시작하여 기나긴 물길을 흘러온 낙동강은 강 하구에 이르러 삼각주(모래톱)를 만든다. 이 삼각주는 먼 거리를 내려오면서 영양가 넘치는 풍부한 퇴적물로 만들어진 비옥한 땅으로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가 대표적인 삼각주에 속하며, 을숙도도 비옥한 토양에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바다물과 강물이 뒤섞이니 어패류도 다양하여 넉넉한 공간에 먹이까지 풍부하니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이 쉬어가기 좋은 조건이되었을 것이다. 1950년대까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덕분에 을숙도 일대는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섬이 공원화되기 시작하여 새들의 휴식처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뀌어갔다. 낙동강하구둑 상단 일응도와 하단 을숙도가 하나로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다가 한때는 부산의 쓰레기 매립지이자 파밭으로 채워졌던 을숙도 하단은 2005년에 5년간의 복원공사를 통해 을숙도철새공원으로 태어나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바뀌어졌다.

 

하구둑의 어로

 

 하구둑은 수로를 완전히 막은 것이 아니라 조그마하지만 어로를 마련해서 바다의 어류들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옛날의 낙동강 하류 기수역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만은 사실이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구둑 수문을 하나만 열어 조사를 했는데도 낙동강의 생태계가 기대 이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자연의 흐름을 막은 인간의 몽매함을 꾸짖어야 하는지..... 아니면 인간의 좀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도 바꾸어야 하는지..... 내가 판단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을숙도공원의 낙동강문화관

 

을숙도공원으로 넘어가는 육교

 

을숙도철새도래지 표지석과 철새 모형

 

낙동강 철새이야기 건물 -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

 

낙동강하구둑에서 보는 풍경

 

명지와 연결되는 하구둑

 

갈맷길 안내도

 

 이곳에는 갈미조개란 이름의 조개를 팔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지 앞 바다에서만 나는 조개라 하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 예전에는 조개를 삶아서 초장이나 양념장같은 것에 찍어 먹거나 탕으로 끓여서 먹곤 했는데, 요즈음은 이 곳도 요리가 발전하여 육고기와 섞어서 새롭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또 이곳의 해산물은 싱싱하고 가격도 적당하여 예전에는 많이 이용하던 곳이다. 지나가면서 예전의 맛을 생각하고 입맛을 다시지만 아직 밥을 먹을 때가 아니라 아쉽지만 그냥 지나갔다.

 

명지 앞 바다

 

 명지동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법정동으로 북쪽의 대저와 거의 붙어있어서 체감은 거의 안 되지만 원래는 섬이었던 명지도에 해당하며, 지금의 명지동은 부산에 편입되기 전에는 김해군 명지면 동리·일대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논밭과 염전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명지오션시티, 명지국제신도시 등의 신도시가 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단지들이 여럿 들어서게 되면서 강서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동네가 되었다.

 명지 앞 바다의 진우도 등의 모래톱은 철새도래지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있다. 파가 전국적인 특산물로 명지 대파라는 이름이 유명했는데 명지국제신도시로 개발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그 명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명지를 계속 걸으면서 보는 바다

 

멀리 보이는 신호대교

 

먹이를 찾고 있는 새

 

신호대교

 

신호대교에서 보는 앞 바다

 

삼성자동차

 

 삼성자동차 앞에서 바다가롤 발길을 돌려 가덕도를 향해 걸으면 갯벌이 많이 나타난다. 어촌에 사는 아낙네들이 조개를 캐는지 물이 나간 갯벌에서 작업을 하는 광경도 간혹 보이고 김과 굴을 키우는 양식장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예전에는 이 명지, 신호에서 나오는 김이 아주 맛있었는데 이제는 전라도에서 대량 생산되는 김에 밀려 경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갯벌의 모습

 

멀리 보이는 가덕교로 가는 다리

 

신호포구의 모습

 

중간 도보인증대

 

양식장의 모습

 

멀리 보이는 부산신항

 

 부산 신항(釜山新港)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항만으로 포화상태인 부산 북항을 대체하여 새롭게 건설된 컨테이너 항만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물동량이 제일 많은 항만이다. 부산항은 1876(고종 13) 2월 인천항, 원산항에 앞서 최초의 근대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그 뒤 1898년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및 확장 공사, 6.25전쟁, 경제개발 등으로 부산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물동량의 증가로 인하여 만성적 적체와 시설 낙후로 대대적인 시설 개선이 필요했지만 부산항은 원도심에 있어 시설 확충을 위한 부지 확보가 불가능하였다. 이에 부산항과 인접한 강서구 가덕도 일원에 부산 신항을 건립하여 대규모 컨테이너 터미널을 구축함으로써 만성적 화물 적체를 해소하고, 21세기를 대비한 동북아시아 국제 물류·비즈니스 중심 항만 조성을 목적으로 부산 신항이 건립되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전진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가덕도로 들어가는 다리

 

 이곳에서 부산신항을 빙 돌아서 아스팔트 길을 좀 걸으면서 눌차교를 지나니 드디어 가덕도에 도착한다. 예전에 섬이었던 곳이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어 걸어서 가덕도로 들어 왔다. 멀지 않았던 옛날에는 배를 타고 들어오던 곳이었는데 참으로 시대가 바뀌고 변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5-1구간의 끝이자 5-2구간의 시작점 안내도

 

구간 안내 표지판 주변의 바다 풍경

 

 이 구간은 상당히 긴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거의 평지를 걷기에 별로 힘이 들지는 않는 구간이다. 특히 아스팔트위를 걷는 구간은 얼마 되지 않고 거의가 해안을 따라 걷기에 걸으면서 변하는 바다의 풍경에 시간이 흐르는지도 몸이 피로한지도 모르는 구간이다.

 부산 신랑 근처에서 남해안 길을 걷는 남파랑길과 헤어진다. 오륙도에서 시작되는 남파랑길과 갈맷길이 중복되어 있었는데 갈맷길은 가덕으로 향하고 남파랑길은 진해 용원으로 재촉한다. 언젠가 이 남파랑길도 걸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며 가덕으로 들어 왔다.

부산 갈맷길 4코스 3구간(몰운대 - 낙동강 하구둑)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4코스 3구간은 몰운대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다.

 

 몰운대와 다대포는 인접해 있어 경계를 나누기가 힘들지만 몰운대공원를 한바퀴 돌고 나오면 보이는 해수욕장이 다대포해수욕장이다. 해안지형의 백화점이라는 다대포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으로 한해가 다르게 보이지 않던 모래톱이  어느 새 만들어져 바다의 지형을 바꾸어 놓는다. 새롭게 생긴 모래톱을 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적으로 이 바다가 매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아미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려 걸으면서 다대포 일대의 풍경을 즐기면서 장림으로 내려간다. 부산시 전역에 산재해 있던 피혁 관련 산업의 공장들을 한 곳에 집중시킨 장림피혁공단의 거리를 지나가며 낙동강하구둑을 향해서 낙동강하구길을 걸어 을숙도 입구에 도착한다.

 

 다대포해수욕장(多大浦海水浴場)은 부산시내에서 서남쪽에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으며, 낙동강 상류에서 실려 온 양질의 모래로 만들어진 완만한 경사인 백사장 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1970년대에 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이래 넓은 백사장으로 부산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다가 환경파손으로 한 때는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하여 폐쇄되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을 정화하고 해변공원으로 잘 가꾸고 여러 시설을 설치하여 이제는 옛날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서 물때에 따라 해수욕장의 크기가 엄청 다르다. 간조 때 해수욕장 모래밭에는 바다 게를 잡거나 조개를 캐는 즐거운 체험을 하려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광객이 해수욕객보다 더 많이 찾고, 바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부근에는 옛날에는 섬이었지만 낙동강 상류에서 밀려온 모래로 육지와 이어진 몰운대(沒雲臺)가 있고 다대포패총과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등의 문화유적지와 관광명소가 많다.

 

 특히 일몰시에 보는 다대포의 낙조는 가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이라고 할만하다.

 

 이날은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 파도가 평소보다 더 세게 치고 있고 특히 시간대가 바다물이 밀려 들어오는 때라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도 장관이었다.

 

다대포 해수욕장 풍경 - 바다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해수욕장에서 왼쪽 방향으로 계속 가면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다대포의 숨겨진 풍경이 있다. 지금은 테크를 만들어 놓아 쉽게 가지만 예전에는 물이 빠지면 모래바닥을 건너 가던 곳이다.

 

다대포 왼쪽 끝에서 보는 풍경 -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명지 신도시다.

 

 다대포 해변공원은 엄청난 투자로 사람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각종 편의시설과 인공적인 작은 운하를 만들어 바다물이 드나들게 만들었고 넓은 부지에 쉼터를 만들있고, 낙조 분수도 만들어 관광객을 끌고 있다.

 

다대포 해변공원

 

 다대포해수욕장을 벗어나 1호선 다대포역을 1번 출구로 가서 아미산을 향해 간다.

 

아미산 노을 마루길 전망대에서 보는 다대포해수욕장

 

아름다운 모래톱의 모습

 

아미산 전망대 앞 몰운대성당 - 다대포 일대를 조망하기에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있다.

 

낙동강 하구 아미산 전망대

 

아미산 전망대에서 보는 낙동강 하구 모래톱

 

다대포 일대의 모습

 

 이제 아미산으로 올라가 응봉봉수대로 향해 간다.

 

 아미산(峨眉山)은 부산시 서구 아미동 일대와 사하구 장림동의 구릉성 산지로 해발 163m의 작은 산으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정상에 전망대가 있어 낙동강 삼각주등을 관찰 할 수 있다.

 아미산이라는 명칭은 본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아미골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속설에 의하면 아미골은 움막집이란 의미의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식 아미(峨眉)’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이 산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과 같다 하여 아미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아미산 등산로 안내도

 

산길 임도를 따라 걸으며 보는 여름 나리, 수국 등의 꽃

 

아미산전망대에서 보는 다대포 일대

 

 아미산전망대에서 왼편으로 약 500m 정도 산길을 올라가몀 응봉봉수대가 있다.

 

 응봉 봉수대(鷹峯烽燧臺)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31-2번지 다대포진성(多大浦鎭城)이 있는 다대포 동북쪽 두송산(아미산)의 해발 178.5m 지점에 위치한다. 1481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없으나, 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는 응봉 봉수대의 기록이 최초로 확인되어 그 사이에 응봉 봉수가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응봉 봉수대는 임진왜란 시기를 포함하여 줄곧 이용되었으며, 갑신정변 이후 1896(고종 35)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응봉 봉수의 위치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23에는 동쪽으로 오해야항에 응하고, 서쪽으로 김해의 성화례산과 응한다.”라고 적혀 있으며, 동래부지(東萊府志)에는 응봉은 동래부 남 50리에 있으며 다대진 북쪽 두송산이다.”라고 적혀 있다.

 지금의 봉수대는 197610월에 복원 공사를 하여 벽돌 모양의 화강석으로 지름 20m의 석축을 쌓아 봉수대를 만들었고, 중앙에는 지름 1.5m, 깊이 0.4m의 연조(煙竈)가 복원되어 있다. 201011일에는 사하구청이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봉수대 모형을 석축 위에 설치하였다. 복원된 응봉 봉수대는 기단, 화구, 봉수 5[직경 3.4~2.8m, 높이 3.5m]로 구성되어 있다.

 

응봉봉수대 입정표 -주변에 수국이 아름답게 피었다.

 

응봉봉수대의 모습

 

응봉봉수대 설명판

 

응봉봉수대에서 보는 다대포 일대 조망 설명판

 

 응봉봉수대에서 아미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서 장림으로 내려 온다. 장림(長林)은 마을의 형태와 관련한 지명으로 지형적으로 아미산 둘레에 길게 늘어선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장림동 일대의 강변 구릉지에 1세기경의 패총이 있고, 신라 때의 토기 편이 발견되기도 해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원래는 아미산 기슭까지 하천 유역이었으나 현재는 매립으로 피혁 위주의 공단 지역이 조성되어 있다. 공장이 많이 있을 때니 이곳을 지나갈 때 피혁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지금은 많이 옮겨가서 예전과 같지는 않다.

 

 

 아미산 둘레길을 벗어나 장림 일대의 길을 걷다가 낙동강하구둑을 향해 강을 따라 이어지는 하구길로 들러서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연의 모습을 완상하면서 길을 걸어 도착하는 곳이 낙동강하구둑이다.

 

멀리 보이는 을숙도대교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낙동강하구둑

 

중간 휴식 장소

 

4-3 구간 종점 낙동강하구둑

 

낙동강하구둑 주변에서 보는 구포쪽의 강

 

 낙동강하구둑에서 4-3 구간은 끝난다. 여기는 갈맷길 5구간과 6구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시간이 좀 일찍 끝나서 을숙도를 한번 돌아 보려고 하다가 주 목적이 갈맷길 완주이고 을숙도는 엄청 자주 가기도 하였기에 발길을 멈추기로 하였다. 또 5-1구간이 평지 길을 걷는 구간이지만 만만치 않게 긴 구간이라 오늘은 여기에서 만족하고 다음날을 위해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우리 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강 하류의 모래톱을 보고 즐기는 것만해도 큰 즐거움이었다. 1970년대에 요산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읽으면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새롯새롯하게 나는 하루였다.

부산 갈맷길 4코스 2구간(감천항 - 몰운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4코스 2구간은 감천항에서 시작하여 몰운대까지다.

 

 감천항은 예로부터 입항하는 선박들이 물을 받아가던 소중한 마을이었으며, 지리적으로 부산포와 가깝고 다대포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 주둔지, 한국전쟁 때는 영국군,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가 주둔했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지금은 주로 수산물 수입의 항구로 사용되고 있다.  계속 길을 걸어 솔숲 두송반도를 일주하고 해안을 즐기며 걸으면 해안지형의 백화점인 다대포에 도달한다. 여기서 몰운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다대포를 만난다.

 

 이 길을 걷는 전날에 비가 제법 많이 왔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래서 해안길을 걸으면서 보는 바다는 파도가 제법 세차게 쳤치만 그 광경이 멋있었다. 특히 몰운대에서 보는 파도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뿌듯하였다.

 

길가에 핀 무궁화

 

두송반도로 가는 이정표

 

두송반도 입구 안내판

 

 부산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두송 반도(頭松半島)는 감천만과 다대만 사이에 돌출한 지형으로 공룡의 전성시대였던 백악기말의 부산지역의 옛 환경을 보여주는 명소이며, 길이는 약 3폭은 평균 0.7로 반도의 끝자락에 두송산(頭松山)이 자리하고 있어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가파른 사면과 암석 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봉화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다대포의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하여 다대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자연 표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두송 반도 주변에는 몰운도, 쥐섬, 모자섬, 망사섬, 아들섬, 거북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두송 반도는 산지와 해안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두송만취(頭松晩翠, 두송산 위에 걸린 비취빛 저녁 하늘의 아름다움을 뜻함)라 하여 예로부터 다대 팔경(多大八景)의 하나로 칭해졌다.

 

 부산 갈맷길 사업의 일환으로 200911월에 조성된 두송 반도 해안 산책로(頭松半島海岸散策路)는 다대 여객 부두에서 시작하여 두송 반도의 해안을 둘러싸는 순환 산책로로 길이는 7이다.

 

두송반도를 돌아 보는 길

 

두송반도 전망대 입구

 

두송반도전망대에서보는 다대앞 바다

 

두송반도를 돌면서 보는 풍경

 

 

두송반도를 돌아 나오면 만나는 부산국가지질공원

 

 두송반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산책로로는 그만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맛도 있지만 흙길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는 맛도 솔솔하다. 거리도 적당하고 완만한 경사로 아무 무리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송반도를 걸어보시기를 바라며....

 

두송반도를 내려와서는 아스팔트 길을 좀 걷는다. 몰운대로 향해 가는 길이다.

 

길가에 무리를 지어 있는 비둘기들

 

몰운대 가는 도중의 다대수산시장

 

 다대수산시장은 부산의 수산물시장 중의 하나로 신선한 수산물을 값이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교통편이 좀 불편하여 사람들에게 거리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하철 1호선이 다애포까지 연결되어 교통편도 편리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산물을 구입하러 오는 곳이다. 그리고 수산물을 구입하고 몰운대, 다대포의 아름다운 경치를즐기면 더 좋을 것이다.

 

 다대수산시장을 지나 시가지 길을 좀 걸어가면 몰운대에 다다른다.

 

 몰운대(沒雲臺)는 원래는 몰운 반도(沒雲半島)였다. 몰운 반도는 사빈으로 된 중앙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되어 있고 특히 선단에는 수직에 가까운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몰운 반도는 웅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가 다대만과 낙동강 하구 만입 사이에 돌출하여 형성된 반도로, 선단에는 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인 몰운섬(몰운대)이 있다. 16세기까지 몰운대는 섬이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밀려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면서 육지가 되었다.

 

 조선전기 무신 정운과 관련이 있는 명승지인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으로, 부산 중심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다대포와 인접하고 있으며 그 넓이는 14만평에 이른다. 이 일대는 지형상의 여건으로 인하여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몰운대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때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장이었던 정운(鄭運)도 이 앞바다에서 500여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정운은 이곳의 지명을 몰운대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와 자기 이름의 ()’자가 같은 음이라는 점에서,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정운을 위한 사당이 세워졌다고 하며 지금은 그의 순절(殉節)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

 

몰운대 표지석

 

몰운대 입구의 갈맷길 안내도

 

 몰운대를 한 바퀴 돌아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아름다운 해안 경치를 즐기며 사진이라도 좀 찍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유롭게 돌아 보면서 몰운대 구석구석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자. 부산 사람도 몰운대를 자주 오지만 몰운대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나 회손대에서 보는 해변의 풍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맞으면 볼 수 있는 다대포의 낙조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몰운대 일주를 하며 보는 풍경을 보시기를......

 

몰운대 입구에서 보는 다대포

 

몰운데사바

 

다대포객사

 

정운장군 순의비

 

 정운장군 순의비쪽은 군이 주둔하여 았는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하다. 그래도 한번쯤은 찾아가서 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몰운대를 일주하는 방법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몰운대전망대에 치는 파도 동영상

 

몰운대전망대에서 보는 바다 - 바람이 불어 파도가 거세게 쳤다.

 

화손대

 

입구에서 화손대가는 이정표

 

몰운대에서 보는 다대포

 

 

 이 길에서 만나는 두송반도와 몰운대는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축복이다. 갈맷길 어느 한 구간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두송반도는 부산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몰운대 구석구석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차를 타고 다니면 보지 못하는 풍경을 길을 걸으면 볼 수 있다. 이것이 길을 걷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