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부산 갈맷길 5코스 1구간(낙동강하구둑 - 천가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갈맷길 5코스 지도

 

 5코스 1구간은 낙동강하구둑에서 천가교까지다.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 낙동강하구 을숙도를 가로질러 사계절에 사색의 갈대 빛나는 명지 갯벌에 날아오는 겨울철새의 군무를 국내 그 어떤 곳보다도 가까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지만 아파트길이 아니라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서 신호대교를 건너면 낙동강 하구의 여러 모래톱이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채 우리를 반긴다. 눈을 돌려 멀리를 바라보면 저멀리 뒤편에는 가덕도의 풍광이 뛰어나 머물고 싶을 정도다. 저 멀리 보이는 가덕도를 보면서 길을 재촉하면 웅장한 부산신항이 마주한다. 부산신항을 한 바퀴 돌아 눌차교를 건너면 가덕도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어 오기가 쉽지만 20여년전만 해도 섬으로 들어오기가 쉬운 곳이 아니었다.

 

 이 구간은 낙동강하구둑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동강하구둑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 사이를 잇는 낙동강의 하구를 가로막은 둑으로 19839월에 착공하여 198711월에 준공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길이는 2,400m, 높이는 18.7m이다. 공사 시작 전부터 야기된 환경 공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낙동강 하구둑으로 인해 안정적 용수 공급과 매립지 활용 등 경제적 효과를 내세우면서 환경 파괴가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낙동강 하구의 철새 도래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기수역이 교란되어 많은 생물종이 사라졌다고 주장이 또한 크다.

 둑 위에는 도로가 만들어져 과거에는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던 경남 남쪽 지역과의 거리가 상당히 단축되었고, 둑의 중심에 있는 을숙도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철새들의 번식 및 월동지로서 기후가 알맞아 하류일대가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이다. 사계절 동안 수백 종에 달하는 철새가 찾아 들고 있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낙동강하구둑 수문

 

멀리 보이는 을숙도대교와 하단쪽 아파트

 

하구둑 위에서 보는 낙동강 하구와 명지쪽 아파트

 

을숙도 표지석

 

 섬의 이름에서부터 사람들보다 철새들에게 먼저 알려져 있는, 매년 겨울이면 뉴스에서 철새와 함께 이름이 종종 오르내리는  을숙도(乙淑島)’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하중도(河中島)1916년경 진우도, 대마등 등과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태백 황지에서 시작하여 기나긴 물길을 흘러온 낙동강은 강 하구에 이르러 삼각주(모래톱)를 만든다. 이 삼각주는 먼 거리를 내려오면서 영양가 넘치는 풍부한 퇴적물로 만들어진 비옥한 땅으로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가 대표적인 삼각주에 속하며, 을숙도도 비옥한 토양에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바다물과 강물이 뒤섞이니 어패류도 다양하여 넉넉한 공간에 먹이까지 풍부하니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이 쉬어가기 좋은 조건이되었을 것이다. 1950년대까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덕분에 을숙도 일대는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섬이 공원화되기 시작하여 새들의 휴식처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뀌어갔다. 낙동강하구둑 상단 일응도와 하단 을숙도가 하나로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다가 한때는 부산의 쓰레기 매립지이자 파밭으로 채워졌던 을숙도 하단은 2005년에 5년간의 복원공사를 통해 을숙도철새공원으로 태어나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바뀌어졌다.

 

하구둑의 어로

 

 하구둑은 수로를 완전히 막은 것이 아니라 조그마하지만 어로를 마련해서 바다의 어류들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옛날의 낙동강 하류 기수역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만은 사실이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구둑 수문을 하나만 열어 조사를 했는데도 낙동강의 생태계가 기대 이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자연의 흐름을 막은 인간의 몽매함을 꾸짖어야 하는지..... 아니면 인간의 좀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도 바꾸어야 하는지..... 내가 판단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을숙도공원의 낙동강문화관

 

을숙도공원으로 넘어가는 육교

 

을숙도철새도래지 표지석과 철새 모형

 

낙동강 철새이야기 건물 -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

 

낙동강하구둑에서 보는 풍경

 

명지와 연결되는 하구둑

 

갈맷길 안내도

 

 이곳에는 갈미조개란 이름의 조개를 팔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지 앞 바다에서만 나는 조개라 하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 예전에는 조개를 삶아서 초장이나 양념장같은 것에 찍어 먹거나 탕으로 끓여서 먹곤 했는데, 요즈음은 이 곳도 요리가 발전하여 육고기와 섞어서 새롭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또 이곳의 해산물은 싱싱하고 가격도 적당하여 예전에는 많이 이용하던 곳이다. 지나가면서 예전의 맛을 생각하고 입맛을 다시지만 아직 밥을 먹을 때가 아니라 아쉽지만 그냥 지나갔다.

 

명지 앞 바다

 

 명지동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법정동으로 북쪽의 대저와 거의 붙어있어서 체감은 거의 안 되지만 원래는 섬이었던 명지도에 해당하며, 지금의 명지동은 부산에 편입되기 전에는 김해군 명지면 동리·일대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논밭과 염전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명지오션시티, 명지국제신도시 등의 신도시가 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단지들이 여럿 들어서게 되면서 강서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동네가 되었다.

 명지 앞 바다의 진우도 등의 모래톱은 철새도래지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있다. 파가 전국적인 특산물로 명지 대파라는 이름이 유명했는데 명지국제신도시로 개발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그 명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명지를 계속 걸으면서 보는 바다

 

멀리 보이는 신호대교

 

먹이를 찾고 있는 새

 

신호대교

 

신호대교에서 보는 앞 바다

 

삼성자동차

 

 삼성자동차 앞에서 바다가롤 발길을 돌려 가덕도를 향해 걸으면 갯벌이 많이 나타난다. 어촌에 사는 아낙네들이 조개를 캐는지 물이 나간 갯벌에서 작업을 하는 광경도 간혹 보이고 김과 굴을 키우는 양식장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예전에는 이 명지, 신호에서 나오는 김이 아주 맛있었는데 이제는 전라도에서 대량 생산되는 김에 밀려 경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갯벌의 모습

 

멀리 보이는 가덕교로 가는 다리

 

신호포구의 모습

 

중간 도보인증대

 

양식장의 모습

 

멀리 보이는 부산신항

 

 부산 신항(釜山新港)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항만으로 포화상태인 부산 북항을 대체하여 새롭게 건설된 컨테이너 항만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물동량이 제일 많은 항만이다. 부산항은 1876(고종 13) 2월 인천항, 원산항에 앞서 최초의 근대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그 뒤 1898년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및 확장 공사, 6.25전쟁, 경제개발 등으로 부산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물동량의 증가로 인하여 만성적 적체와 시설 낙후로 대대적인 시설 개선이 필요했지만 부산항은 원도심에 있어 시설 확충을 위한 부지 확보가 불가능하였다. 이에 부산항과 인접한 강서구 가덕도 일원에 부산 신항을 건립하여 대규모 컨테이너 터미널을 구축함으로써 만성적 화물 적체를 해소하고, 21세기를 대비한 동북아시아 국제 물류·비즈니스 중심 항만 조성을 목적으로 부산 신항이 건립되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전진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가덕도로 들어가는 다리

 

 이곳에서 부산신항을 빙 돌아서 아스팔트 길을 좀 걸으면서 눌차교를 지나니 드디어 가덕도에 도착한다. 예전에 섬이었던 곳이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어 걸어서 가덕도로 들어 왔다. 멀지 않았던 옛날에는 배를 타고 들어오던 곳이었는데 참으로 시대가 바뀌고 변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5-1구간의 끝이자 5-2구간의 시작점 안내도

 

구간 안내 표지판 주변의 바다 풍경

 

 이 구간은 상당히 긴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거의 평지를 걷기에 별로 힘이 들지는 않는 구간이다. 특히 아스팔트위를 걷는 구간은 얼마 되지 않고 거의가 해안을 따라 걷기에 걸으면서 변하는 바다의 풍경에 시간이 흐르는지도 몸이 피로한지도 모르는 구간이다.

 부산 신랑 근처에서 남해안 길을 걷는 남파랑길과 헤어진다. 오륙도에서 시작되는 남파랑길과 갈맷길이 중복되어 있었는데 갈맷길은 가덕으로 향하고 남파랑길은 진해 용원으로 재촉한다. 언젠가 이 남파랑길도 걸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며 가덕으로 들어 왔다.

부산 갈맷길 4코스 3구간(몰운대 - 낙동강 하구둑)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4코스 3구간은 몰운대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다.

 

 몰운대와 다대포는 인접해 있어 경계를 나누기가 힘들지만 몰운대공원를 한바퀴 돌고 나오면 보이는 해수욕장이 다대포해수욕장이다. 해안지형의 백화점이라는 다대포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으로 한해가 다르게 보이지 않던 모래톱이  어느 새 만들어져 바다의 지형을 바꾸어 놓는다. 새롭게 생긴 모래톱을 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적으로 이 바다가 매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아미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려 걸으면서 다대포 일대의 풍경을 즐기면서 장림으로 내려간다. 부산시 전역에 산재해 있던 피혁 관련 산업의 공장들을 한 곳에 집중시킨 장림피혁공단의 거리를 지나가며 낙동강하구둑을 향해서 낙동강하구길을 걸어 을숙도 입구에 도착한다.

 

 다대포해수욕장(多大浦海水浴場)은 부산시내에서 서남쪽에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으며, 낙동강 상류에서 실려 온 양질의 모래로 만들어진 완만한 경사인 백사장 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1970년대에 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이래 넓은 백사장으로 부산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다가 환경파손으로 한 때는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하여 폐쇄되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을 정화하고 해변공원으로 잘 가꾸고 여러 시설을 설치하여 이제는 옛날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서 물때에 따라 해수욕장의 크기가 엄청 다르다. 간조 때 해수욕장 모래밭에는 바다 게를 잡거나 조개를 캐는 즐거운 체험을 하려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광객이 해수욕객보다 더 많이 찾고, 바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부근에는 옛날에는 섬이었지만 낙동강 상류에서 밀려온 모래로 육지와 이어진 몰운대(沒雲臺)가 있고 다대포패총과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등의 문화유적지와 관광명소가 많다.

 

 특히 일몰시에 보는 다대포의 낙조는 가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이라고 할만하다.

 

 이날은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 파도가 평소보다 더 세게 치고 있고 특히 시간대가 바다물이 밀려 들어오는 때라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도 장관이었다.

 

다대포 해수욕장 풍경 - 바다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해수욕장에서 왼쪽 방향으로 계속 가면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다대포의 숨겨진 풍경이 있다. 지금은 테크를 만들어 놓아 쉽게 가지만 예전에는 물이 빠지면 모래바닥을 건너 가던 곳이다.

 

다대포 왼쪽 끝에서 보는 풍경 -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명지 신도시다.

 

 다대포 해변공원은 엄청난 투자로 사람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각종 편의시설과 인공적인 작은 운하를 만들어 바다물이 드나들게 만들었고 넓은 부지에 쉼터를 만들있고, 낙조 분수도 만들어 관광객을 끌고 있다.

 

다대포 해변공원

 

 다대포해수욕장을 벗어나 1호선 다대포역을 1번 출구로 가서 아미산을 향해 간다.

 

아미산 노을 마루길 전망대에서 보는 다대포해수욕장

 

아름다운 모래톱의 모습

 

아미산 전망대 앞 몰운대성당 - 다대포 일대를 조망하기에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있다.

 

낙동강 하구 아미산 전망대

 

아미산 전망대에서 보는 낙동강 하구 모래톱

 

다대포 일대의 모습

 

 이제 아미산으로 올라가 응봉봉수대로 향해 간다.

 

 아미산(峨眉山)은 부산시 서구 아미동 일대와 사하구 장림동의 구릉성 산지로 해발 163m의 작은 산으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정상에 전망대가 있어 낙동강 삼각주등을 관찰 할 수 있다.

 아미산이라는 명칭은 본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아미골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속설에 의하면 아미골은 움막집이란 의미의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식 아미(峨眉)’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이 산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과 같다 하여 아미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아미산 등산로 안내도

 

산길 임도를 따라 걸으며 보는 여름 나리, 수국 등의 꽃

 

아미산전망대에서 보는 다대포 일대

 

 아미산전망대에서 왼편으로 약 500m 정도 산길을 올라가몀 응봉봉수대가 있다.

 

 응봉 봉수대(鷹峯烽燧臺)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31-2번지 다대포진성(多大浦鎭城)이 있는 다대포 동북쪽 두송산(아미산)의 해발 178.5m 지점에 위치한다. 1481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없으나, 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는 응봉 봉수대의 기록이 최초로 확인되어 그 사이에 응봉 봉수가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응봉 봉수대는 임진왜란 시기를 포함하여 줄곧 이용되었으며, 갑신정변 이후 1896(고종 35)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응봉 봉수의 위치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23에는 동쪽으로 오해야항에 응하고, 서쪽으로 김해의 성화례산과 응한다.”라고 적혀 있으며, 동래부지(東萊府志)에는 응봉은 동래부 남 50리에 있으며 다대진 북쪽 두송산이다.”라고 적혀 있다.

 지금의 봉수대는 197610월에 복원 공사를 하여 벽돌 모양의 화강석으로 지름 20m의 석축을 쌓아 봉수대를 만들었고, 중앙에는 지름 1.5m, 깊이 0.4m의 연조(煙竈)가 복원되어 있다. 201011일에는 사하구청이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봉수대 모형을 석축 위에 설치하였다. 복원된 응봉 봉수대는 기단, 화구, 봉수 5[직경 3.4~2.8m, 높이 3.5m]로 구성되어 있다.

 

응봉봉수대 입정표 -주변에 수국이 아름답게 피었다.

 

응봉봉수대의 모습

 

응봉봉수대 설명판

 

응봉봉수대에서 보는 다대포 일대 조망 설명판

 

 응봉봉수대에서 아미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서 장림으로 내려 온다. 장림(長林)은 마을의 형태와 관련한 지명으로 지형적으로 아미산 둘레에 길게 늘어선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장림동 일대의 강변 구릉지에 1세기경의 패총이 있고, 신라 때의 토기 편이 발견되기도 해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원래는 아미산 기슭까지 하천 유역이었으나 현재는 매립으로 피혁 위주의 공단 지역이 조성되어 있다. 공장이 많이 있을 때니 이곳을 지나갈 때 피혁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지금은 많이 옮겨가서 예전과 같지는 않다.

 

 

 아미산 둘레길을 벗어나 장림 일대의 길을 걷다가 낙동강하구둑을 향해 강을 따라 이어지는 하구길로 들러서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연의 모습을 완상하면서 길을 걸어 도착하는 곳이 낙동강하구둑이다.

 

멀리 보이는 을숙도대교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낙동강하구둑

 

중간 휴식 장소

 

4-3 구간 종점 낙동강하구둑

 

낙동강하구둑 주변에서 보는 구포쪽의 강

 

 낙동강하구둑에서 4-3 구간은 끝난다. 여기는 갈맷길 5구간과 6구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시간이 좀 일찍 끝나서 을숙도를 한번 돌아 보려고 하다가 주 목적이 갈맷길 완주이고 을숙도는 엄청 자주 가기도 하였기에 발길을 멈추기로 하였다. 또 5-1구간이 평지 길을 걷는 구간이지만 만만치 않게 긴 구간이라 오늘은 여기에서 만족하고 다음날을 위해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우리 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강 하류의 모래톱을 보고 즐기는 것만해도 큰 즐거움이었다. 1970년대에 요산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읽으면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새롯새롯하게 나는 하루였다.

부산 갈맷길 4코스 2구간(감천항 - 몰운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4코스 2구간은 감천항에서 시작하여 몰운대까지다.

 

 감천항은 예로부터 입항하는 선박들이 물을 받아가던 소중한 마을이었으며, 지리적으로 부산포와 가깝고 다대포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 주둔지, 한국전쟁 때는 영국군,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가 주둔했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지금은 주로 수산물 수입의 항구로 사용되고 있다.  계속 길을 걸어 솔숲 두송반도를 일주하고 해안을 즐기며 걸으면 해안지형의 백화점인 다대포에 도달한다. 여기서 몰운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다대포를 만난다.

 

 이 길을 걷는 전날에 비가 제법 많이 왔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래서 해안길을 걸으면서 보는 바다는 파도가 제법 세차게 쳤치만 그 광경이 멋있었다. 특히 몰운대에서 보는 파도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뿌듯하였다.

 

길가에 핀 무궁화

 

두송반도로 가는 이정표

 

두송반도 입구 안내판

 

 부산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두송 반도(頭松半島)는 감천만과 다대만 사이에 돌출한 지형으로 공룡의 전성시대였던 백악기말의 부산지역의 옛 환경을 보여주는 명소이며, 길이는 약 3폭은 평균 0.7로 반도의 끝자락에 두송산(頭松山)이 자리하고 있어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가파른 사면과 암석 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봉화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다대포의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하여 다대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자연 표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두송 반도 주변에는 몰운도, 쥐섬, 모자섬, 망사섬, 아들섬, 거북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두송 반도는 산지와 해안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두송만취(頭松晩翠, 두송산 위에 걸린 비취빛 저녁 하늘의 아름다움을 뜻함)라 하여 예로부터 다대 팔경(多大八景)의 하나로 칭해졌다.

 

 부산 갈맷길 사업의 일환으로 200911월에 조성된 두송 반도 해안 산책로(頭松半島海岸散策路)는 다대 여객 부두에서 시작하여 두송 반도의 해안을 둘러싸는 순환 산책로로 길이는 7이다.

 

두송반도를 돌아 보는 길

 

두송반도 전망대 입구

 

두송반도전망대에서보는 다대앞 바다

 

두송반도를 돌면서 보는 풍경

 

 

두송반도를 돌아 나오면 만나는 부산국가지질공원

 

 두송반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산책로로는 그만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맛도 있지만 흙길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는 맛도 솔솔하다. 거리도 적당하고 완만한 경사로 아무 무리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송반도를 걸어보시기를 바라며....

 

두송반도를 내려와서는 아스팔트 길을 좀 걷는다. 몰운대로 향해 가는 길이다.

 

길가에 무리를 지어 있는 비둘기들

 

몰운대 가는 도중의 다대수산시장

 

 다대수산시장은 부산의 수산물시장 중의 하나로 신선한 수산물을 값이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교통편이 좀 불편하여 사람들에게 거리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하철 1호선이 다애포까지 연결되어 교통편도 편리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산물을 구입하러 오는 곳이다. 그리고 수산물을 구입하고 몰운대, 다대포의 아름다운 경치를즐기면 더 좋을 것이다.

 

 다대수산시장을 지나 시가지 길을 좀 걸어가면 몰운대에 다다른다.

 

 몰운대(沒雲臺)는 원래는 몰운 반도(沒雲半島)였다. 몰운 반도는 사빈으로 된 중앙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되어 있고 특히 선단에는 수직에 가까운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몰운 반도는 웅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가 다대만과 낙동강 하구 만입 사이에 돌출하여 형성된 반도로, 선단에는 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인 몰운섬(몰운대)이 있다. 16세기까지 몰운대는 섬이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밀려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면서 육지가 되었다.

 

 조선전기 무신 정운과 관련이 있는 명승지인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으로, 부산 중심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다대포와 인접하고 있으며 그 넓이는 14만평에 이른다. 이 일대는 지형상의 여건으로 인하여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몰운대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때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장이었던 정운(鄭運)도 이 앞바다에서 500여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정운은 이곳의 지명을 몰운대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와 자기 이름의 ()’자가 같은 음이라는 점에서,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정운을 위한 사당이 세워졌다고 하며 지금은 그의 순절(殉節)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

 

몰운대 표지석

 

몰운대 입구의 갈맷길 안내도

 

 몰운대를 한 바퀴 돌아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아름다운 해안 경치를 즐기며 사진이라도 좀 찍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유롭게 돌아 보면서 몰운대 구석구석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자. 부산 사람도 몰운대를 자주 오지만 몰운대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나 회손대에서 보는 해변의 풍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맞으면 볼 수 있는 다대포의 낙조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몰운대 일주를 하며 보는 풍경을 보시기를......

 

몰운대 입구에서 보는 다대포

 

몰운데사바

 

다대포객사

 

정운장군 순의비

 

 정운장군 순의비쪽은 군이 주둔하여 았는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하다. 그래도 한번쯤은 찾아가서 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몰운대를 일주하는 방법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몰운대전망대에 치는 파도 동영상

 

몰운대전망대에서 보는 바다 - 바람이 불어 파도가 거세게 쳤다.

 

화손대

 

입구에서 화손대가는 이정표

 

몰운대에서 보는 다대포

 

 

 이 길에서 만나는 두송반도와 몰운대는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축복이다. 갈맷길 어느 한 구간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두송반도는 부산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몰운대 구석구석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차를 타고 다니면 보지 못하는 풍경을 길을 걸으면 볼 수 있다. 이것이 길을 걷는 행복이다.

부산 갈맸길 4코스 1구간(남항대교 - 감천항)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4코스 1구간은 남항대교에서 감천항까지다.

 

4구간 지도

 

 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남항대교를 건너면서 멀리 보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가까운 남항에서 마주 보고 있는 붉은등대와 하얀등대 안쪽 부산의 원도심과 자갈치 인근의 근경은 남항대교를 걸을 때 얻는 즐거움이다. 남항대교를 건너면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으로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송도해수욕장이 나온다. 한때 한국 최고의 피서지였다가 잠시 명성을 잃었으나 지금은 또 다시 옛 명성을 회복하고 있는 곳으로 피서객들을 위한 여러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해수욕장을 이웃한 암남공원까지는 바닷물이 출령이는 해안 산책로를 통해 혈청소가 있는 모지포까지 연결되며 감천사거리를 지나 감천항에 다다르면 이 구간은 끝난다.

 

4-1 구간의 시작 안내판(3-3구간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 조금 가면 남항대교가 나타난다. 처음에 길에서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길을 따라 가서 올라가려고 하니  무언가 이상했다. 그래서 주변 주민에게 물어보니 해안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간다고 해서 다시 돌아와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남항대교 중간 바다 구간만 보행자들이 건너 가게 보행자 인도를 만들어 놓았다. 

 

 남항대교(南港大橋)는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연결하는 다리로 총 길이 1,925m, 25.6m의 왕복 6차로이다. 부산 신항과 북항 간의 물동량을 수송하기 위하여 199710월 착공되어 2008630일 개통되었다. 명지대교~남항대교~부산항대교~광안대교~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부산 해안순환도로의 한 축을 이룬다. 다리에 너비 3m의 산책로를 1,250m에 걸쳐 설치하여 시민들이 걸으면서 남항 일대의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면 보이는 1,250m 표시

 

남항대교

 

남항대교에서 보는 송도쪽 풍경

 

남항대교에서 보는 원도심쪽 풍경

 

남항대교 송도쪽 끝부분

 

갈맷길 서구 안내판

 

 남항대교를 내려가면 바로 송도해수욕장과 만난다.예전에는 영도에서 송도해수욕장까지 가려면 길을 삥 돌아 엄청나게 거리도 멀었고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이제는 다리만 건너면 바로 송도해수욕장이다.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있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에 개장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이다. 1987년과 2003년에 태풍 셀마매미로 인해 다이빙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여 해수욕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기도 하였으나 부산시 서구는 2013년에 해수욕장 개장 100주년을 기념하여 4계절 다양한 연령층이 찾을 수 있는 해양관광휴양기능을 구축하기 위해서 복합해양휴양지로 조성하여 연간 550만 명의 피서객이 찾는 명소로 발전시켰다. 수중방파제에는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해수욕장에 세워진 아름다운 분수와 녹지공간, 넓어진 모래사장 등으로 해수욕장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해수욕장 동쪽의 송도공원에서 서쪽의 암남공원까지 이어지는 1.67구간의 송도 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송도해수욕장 전경은 물론 암남공원과 지질공원, 부산항 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해수욕장 동쪽에 설치된 다이빙대는 국내 유일의 해상다이빙대이며, 어미거북이(5m)와 아기거북이(3m)를 형상화해 만들었다. 거북섬 인근에는 바다위로만 이어지는 길이 365m, 2.3m에 달하는 송도구름산책로가 20166월에 개설되었으며, 일부 구간은 9.3m 아래의 바다가 보이는 투명 강화유리 바닥으로 조성되었다. 구름산책로 입구에는 거북섬을 스토리텔링화한 젊은 어부와 용왕의 딸 인룡(人龍)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청동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송도 케이블카의 모습

 

거북섬 압구의 모습

 

 예전에는 이 거북섬 조그마한 곳에 육지에서 연결되는 출렁다리가 있어 연인들이 이 다리를 건너며 장난을 치곤 하던 곳아더. 그리고 섬안에는 팔각지붕의 횟집도 있어 밤에는 젊은이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낭만을 즐기던 곳이다. 지금은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관광객들을 위해 여러 시설을 해 놓았다.

 

어부와 인용상

 

거북섬에 설치되어 있는 구름다리

 

거북섬에서 보는 풍경

 

365m 송도 구름산책로

 

바다위의 다이빙대

 

1913년 개장 표시 기둥

 

송도해수욕장의 여러 모습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옛날 송도의 모습

 

 여기서부터 암남공원까지는 해안길이 테크로 되어 있다. 테크를 따라 걸으면서 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암남공원 가는 해안길이 여러 풍경

 

 암남공원(岩南公園)은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있는 자연공원으로 동편에 남항, 서편에 감천항, 남쪽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연결되며 앞쪽에 동물검역소와 인접하여 있다. 1972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군사보호구역 내에 묶여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645일 개방되었다. 이후 전망대, 구름다리, 산책로, 광장,

야외공연무대 등을 조성하였다. 역설적으로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자연상태가 잘 보존되어 해양성 수목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있어 푸른 바다와 함께 절경을 이룬다. 입구에서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산길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삼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구름다리를 타고 오르는 정상에는 전망 좋은 정자가 서 있다. 인근에 있는 동도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설치하여 또 하나의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송도 용궁 구름다리

 

용궁구름다리를 건너 동섬에서 보는 풍경

 

 그런데 이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현재는 무료인데..... 요금을 받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냥 무료로 개방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하면 될터인데..... 왜 꼭 돈을 받으려고 하는지?????

 

 

 여기서부터 암남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보는 풍경을 보시기를....

 

암남공원의 끝자락 두도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암남공원을 돌아나오니 멀리 감천항이 보인다. 산위로 길을 잡아 멀리서 바다를 보면서 걷다가 내려와 도심지 길을 따라 걸으니 이 구간의 마지막 종점에 도착한다.

 

갈맷길 4-1구간 종점인 동시에 4-2구간 시작점

 

 아침에 시작하여 천천히 경치를 완상하면서 걸으며 시장기가 돌 무렵에는 식당에서 시원한 물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먹고 쉬다가 다시 걸어 종점에 도착하니 시간이 좀 어중중하다. 길을 재촉하여 걸으면 다음 구간을 오늘 다 걸을 수 있겠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도 오고 더구나 바쁜 일이라곤 없는 처지라 함께 걷는 친구와 상의하여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고 다음에 4-2 구간을 걷기로 하였다.

 

항상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부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부산 갈맷길 3코스 3구간(남항대교 - 동삼혁신지구 아미르공원 입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갈맷길 3코스 3구간은 남항대교에서 동삼혁신지구의  아미르공원 입구까지다.

 이 구간은 주로 해안 길을 걷는 곳인데, 해안을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굽이치는 파도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태종대가 나온다. 태종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와 바다를 매립한 동삼 혁신지구에서 아미르공원에 도착하면 이 구간은 끝이 난다.

 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 선박들의 모습과 해안의 기암절벽이 절경을 어우러져 해양 수도 부산만의 독특한 풍광을 자랑한다. 모자이크벽화 타일, 피아노계단, 출렁다리, 맑은 날이면 대마도를 볼 수 있는 대마도 전망대 등 여러 볼거리가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아 지역 주민들과 많은 도보 여행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길이다.

 

절영해안산책로 안내도

 

절영해안산책로에서의 풍경

 

해안터널

 

절영해안산책로에서 보는 부산항

 

이정표

 

대마도전망대

날씨가 맑으면 대마도를 볼 수 있는데 해무가 자욱하게 끼여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절영해안산책로에서 보는 절경들

 

도중에 만나는 출렁다리

 

절영해안산책로가 끝나는 중리해변

 

영도해녀문화전시관

 

 여기서 태종대입구를 향해가는 산길이 있는데 지금은 공사중이라 통행금지를 하였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차도로 나와 차도를 따라 걸으며 태종대로 계속 걸었다.

 

멀리 보이는 국립해양대학교

 

태종대입구

 

태종대를 한바퀴 돌면서 보는 풍경

 

 태종대의 백미는 무어라해도 등대를 내려가 해안절벽의 풍경을 즐기는 것이지만 너무나 많이 와 보았기에 이번에는 등대로 내려가지는 않고 일주만 하기로 하였다. 태종대를 삥 돌아나오면 태종사가 있다. 6월말, 7월초에 이곳의 수국이 만개하면 꽃구경이 장난이 아니다. 온 천지가 수국으로 가득한 광경은 너무 좋은데..... 아직은 수국이 피지 않아 안타깝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어쩌랴. 내 블로그에도 태종대의 여러 모습과 태종사의 아름다운 수국도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기를....... 

 

태종대의 이정표

 

 태종대를 벗어나 동삼동매립지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동삼동 패총지와 전시관이 나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고고학쪽에 관심이 많아 동삼동 패총에 와서 땅을 파던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이곳이 패총지라는 표지도 없고 관시밌는 사람들만이 알던 때였다. 벌써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무심히 흘러가 버린다.

 

동삼동 패총지와 전시관

 

 동삼동패총에서 잠시 추억에 잠기다가 다시 매립지를 따라 걸으면 해사고등학교가 나오고 계속 길을 재촉하니 이 구간의 마지막인 아미르공원이 나온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아미르공원

 

 부산의 해안은 굉장히 아름답다. 그런데 부산에 살면서도 이 아름다운 해안을 제대로 보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자기가 살고 있는 가까이에 있으면 그렇게 소중한지를 모르는 것이고, 또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가기 때문이다. 나도 이번 갈맷길 전 구간을 걷기로 하면서 다시 부산의 아름다운 해안에 감탄을 하곤 한다. 이제 3구간을 끝내고 다음부터는 4구간을 시작하여야 한다.

 

 외국의 어느 풍경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이는 나의 고향 부산의 모습이다.

 

부산 갈맷길 3코스 2구간(부산진시장 - 남항대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갈맷길 3코스 2구간은 부산진시장에서 남항대교까지다.

 

 이 구간은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영화 '친구'로 유명한 범일동에서 진시장, 정공단, 증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배놓을 수 없는 곳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적인 학교인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지나 만세운동 거리를 지나면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산복도로를 만날 수 있다. 산복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서민들의 생활을 엿보면서 길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맛을 보여 준다. 산복도로를 벗어나 부산역으로 내려서면 옛 부산의 추억이 아련한 차이나타운과 상해거리가 나온다. 영선고개를 넘어 피난시절의 애환이 서린 40계단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대청로를 건너면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를 기리는 백산기념관과 용두산 타워가 있고, 용두산공원을 내려와 광복동, 남포동 거리를 지나면 골목골목에 없는 것이 없다는 국제시장과 일명 깡통시장으로 알려진 부평시장이 나온다. 지금은 piff광장인 옛 남포동 극장가를 넘어서면 억센 부산 사투리가 다정하게 들리는 좌판을 펼친 자갈치 아지메들의 정감어린 목소리가 가득 넘쳐나는 자갈치시장을 지나면 6.25 전쟁때 피난민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도개교이며 연육교인 영도대교를 만날 수 있다. 영도다리를 건너 해안을 따라 걸으면 남항대교에 다다르고 이 구간은 끝이 난다.

 

부산진시장의 모습

 

 부산진시장은 조선시대에 개설되었던 부산장의 명맥을 이은 유서 깊은 시장이다. 개항 이후 부산의 중심 시장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한복과 포목, 폐백 등 혼수 전문 시장으로 특화되어 전국 3대 혼수 전문 시장으로 손꼽힌다.

 

 부산진시장을 벗어나면서 좌천동가구 길을 지나 좌천동 뒷편으로 들어서면 먼저 마주치는 곳이 정공단이다. 정공단은 좌천동에 있는 석단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부산첨사 정발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배향하는 곳이다.

 

정공단의 여러 모습

 

 정공단에서 불과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좌천 동굴이 있다.

 부산에서 오래 살은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일제시대에 판 동굴인데 해방이 되고난 뒤 이 동굴에 조그마한 간이음식점이 들어서서 막걸리와 파전 등을 팔던 주막이었다. 부산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주던 장소이다. 나도 대학을 다닐 때 이곳을 제법 드나들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발길이 잘 가지 않았다. 중간에 간이 주점을 운영하지 않다가 뒤에 또 운영을 하곤 했는데 동굴이 눈에 뜨이어 너무 반가왔다. 동굴로 가니 지금은 장사는 하지 않고 기념이 되는 장소로 광광객들에게 옛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무 반가왔다.

 

좌천동굴의 내부와 외부

 

부산진교회 -부산 최초의 기독교 교회

 

부산진일신여학교(지금의 동래여고의 전신)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일신은  ‘날마다 새롭게[Daily New]’라는 뜻이로 호주 장로교 선교회가 선교 활동의 하나인 교육 사업으로 1895년에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3년의 소학과 과정으로 시작하여, 1909년 8월에 사립 학교의 인가를 받고, 3년 과정의 고등과도 병설하였는데, 이 고등과는 후에 동래학원으로 이어져 현재의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3월 11일과 4월 8일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는 부산 지역 3·1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1925년에는 동래구 복천동에 신축 이전하고 동래일신여학교라고 교명을 바꾸었다. 1940년에는 동래 지역의 유지들이 재단법인 구산학원[현 동래학원]을 만들어 경영권을 인수하고, 교명을 동래고등여학교로 변경하였다.

 현재의 동래학원이 되었다.

 

만세거리의 모습

 

 이 곳은 부산이 오늘날의 대도시로 형성되기 이전에 조선말부터 부산포로 개항의 중심지로 부산의 원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20세기 초의 여러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 들어올 때의 모습과 식민지시대의 아픔을 나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만세거리는 식민지시대의 독립운동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로 교육의 한 장소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 거리를 지나 산복도로를 향해 올라가면 부산항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부산항의 모습

 

증산공원

 

증산공원에서 보는 부산의 모습

 

증산둘레길

 

산복도로를 따라 걸으면 만나는 풍경

 

 산복도로에서 내려가면 부산역을 만난다. 대륙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어야 하는 역인데 우리의 현싷이 아직은 그렇게 되지 못하여 안타깝다.

 

부산역 전경

 

부산역 근방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상해거리

 

 부산역에서 큰 대로를 따라 걷다가 중앙동 뒷길로 들어선다. 여러 가지로 우리 역사의 현장인 곳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세대에게는 이 거리는 삶의 애환이 서린 곳으로 대표적난 40계단이 있다. 이 40계단을 지나면 백산 안희제선생의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동 뒷길 거리

 

40계단과 그 주변 조형물

 

백산기념관

 

 백산 안희제는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백산무역주식회사를 통해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분에 대한 설명은 내가 구차하게 할 수가 없으니 생략한다. 단 기념관에 있는 안내인에게 물으니 유해는 의령에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아주 어릴 때(국민학교) 읽은 기억이 있어서 '임정 36호'에 대해 물으니 안내인이 깜짝 놀란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자기들도 몰랐는데 몇 년전에 누가 이 이야기를 해서 보수동 책방을 샅샅이 뒤져서 그 책을 찾았다며 보여준다. 나도 아득한 옛날에 읽었는데.... 이 소설책은 아니고 어디에서 읽었는지도 모른다. 벌써 6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 일이다.

 

 백산기념관을 나와 길을 걸으면 부산의 대표적인 용두산공원에 도착한다. 용두산공원은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서 옛날에는 '우남공원'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4.19혁명이 일어나고 명칭이 바뀌었다. 용두산(49m)은 부산시내에 있는 작은 구릉으로 옛날에는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하였다가 그후 산세가 흡사 용 모양이어서  용두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제식민지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신사(神社)를 세웠던 산이며, 지금은 척화비, 충혼탑, 4 ·19의거기념탑, 이충무공 동상 등이 있고, 부산탑이 세워졌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지었는데 2차에 걸친 대화재로 모두 타버리고 민둥산이 되었으나, 그 후 나무를 심고 가꾸어 지금은 나무가 울창하여 관광객들을 끌어 당기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했다. 부산항과 영도가 내려다보이는 경승지이며, 특히 부산탑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아름다운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지 공원이다.

 

용두산공원의 여러 모습

 

 용두산공원에서 옛날 기억을 되살리니, 내가 어릴 때는 이승만대통령의 흉상이 있었다는 생각이 나서 관광해설사에게 "이승만대통령 흉상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런게 있었느냐고 반문을 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적게 보이니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문화해설사라면 그런 것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용두산공원을 내려와서 광복동, 남포동 거리를 지나 국제시장 부평동시장 등을 보면서 piff광장을 지나 자갈치로 들어선다.

 

piff광장

 

 자갈치시장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름을 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갈치 아지매로 상징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산물시장으로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부산 시민들이 회를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을 즐기는 곳이다. 시장의 형성이라든지 유래 등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에서보는 영도대교

 

자갈치시장에서 보는 영도와 유람선

 

 자갈치를 벗어나 이제 영도대교를 건너 영도로 들어간다.

 

이정표

 

영도대교 - 영도다리가 더 친근한 이름이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영도다리로 더 친근하게 불리는 영도대교는 부산시 중구와 영도구를 잇는 동양 최초, 국내 유일의 대규모 도개교이다. 영도다리는 우리나라 대중예술의 소재로 매우 많이 사용되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내가 어릴 때는 도개교여서 영도다리를 드는 시간에 맞추어 구경을 가곤 했는데 1966년 9월 1일에 도개를 멈추었다. 그러다가 다리를 다시 수리하고 확장을 하면서 2013년부터 하루에 한번 정오에 다시 다리를 들고 있어 이 시간에 맞추어 구경을 오는 타지 사람들이 매우 많다.

 

영도다리 위에서보는 풍경

 

현인의 '굳세아라 금순아' 노래비 - 영도다리 건너 영도경찰서 옆에 있다.

 

영도다리에서 남항대교 가는 해안길

 

절영해안길 안내도

 

 영도다리를 지나 남항대교쪽으로 가면 절영해안산책로 안내도가 나온다. 여기가 3-2 구간의 끝이며, 3-3 구간의 시작점이다.

 

 3-2 구간은 부산의 원도심 구간으로 부산 근대화의 산 증인이며, 우리나라의 최고의 수난기였던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던 피난민들의 삶의 장소였던 여러 시장들, 그들이 집을 짓고 거주하던 산복도로변의 거주지,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갔다왔다하던 영도다리 등등은 우리나라의 슬픈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잘 볼 수 있는 모습이 이 구간에서 잘 나타난다.

부산 갈맷길 3코스 1구간(오륙도 유람선 선착장 - 부산진시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3코스 1구간은 오륙도 유람선선착장에서  부산진시장까지다.

 

3구간 지도

 

 오륙도를 벗어나서 아파트단지 앞에 난 길을 걸어 백운포를 지나면 신선이 노닐던 신선대가 과거의 웅장한 부산항의 모습을 보여 준다.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한 때는 우리나라 수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신선대마루를 올라가는 길은 1796년 이곳을 방문했던 영국 함정 '프로비던스'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앤드루왕자길을 따라서 시가지쪽으로 내려서면 세계에서 하나 뿐인 UN기념공원이 있다. 바로 밑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의 부산을 일람할 수 있는 부산박물관이 있지만 실제 현장은 부산문화회관을 통과하여 우암동 장고개를 넘어 영화 '친구'로 유명한 문현동 곱창골목에서 부산진시장에서 이 구간은 끝난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육교 위에서 보는 오륙도

 

 계속 길을 따라 걸으면 백운포가 나타난다. 백운포 마을(白雲浦)은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던 자연 마을.로 동쪽 해안 절경지의 바다에 흰 구름[白雲]이 피어오르는 모습에서 백운포(白雲浦)라 불렀다고 한다.

 백운포는 매립되면서 논밭 둘레에 있던 차돌이 공사용으로 없어지면서 파도와 바람을 막기 어려워져 점차 논밭이 없어지고 인가도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는 매립되어 백운포 체육공원이 조성되었고, 지금은 대한민국 해군작전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다.

 

백운포 체육공원

 

갈맷길 표지 이정표

 

 이 이정표는 양쪽에서 볼 수 있는데 앞면에서 가리키는 방향이나 뒷면에서 가리키는 방향이 같게 표시되었다. 당연히 반대 방향인데..... 이런 사소한 점에도 더 신경을 기울려 걷는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걸을 수 있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뒤에 다시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걷는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가 무언가 부족함이 많이 보였다.

 

백운포 체육공원 전경

 

 여기에서 신선대로 향해 가는데, 아뿔사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었단다. 아침에 충전을 하고 출발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나왔더니 하루를 버티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 걷기는 다 끝나가는 시점이라 다행스럽다. 할수없이 휴대폰을 동원하여 부족한 사진을 메꾸었다.

 신선대(神仙臺)는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해변의 좌안에 황령산에서 뻗어나온 우암반도의 남단에 해당하며, 용당동 해변 좌안의 바닷가 절벽과 산정(山頂)을 총칭한다. 신선대 주변의 산세는 못을 둘러싼 용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이 일대를 용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는 신선이 연관된 여러 가지 전설이 서려 있다. 또 신선대라는 명칭도 산봉우리에 있는 무제등이라는 큰 바위에서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옛날에는 이곳에 가까이 가면 신선들이 노는 풍악소리가 들려왔다고도 한다. 산에 올라서서 앞을 바라보면 부산만 너머로 조도(朝島)가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오륙도와 흑석도 등 수려한 바다의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신선대 부두의 모습

 신선대를 벗어나 언덕 길을 계속 걸어 도착한 곳이 유엔기념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이다.

 부산광역시에 있는 유엔군 묘지로 195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기념묘지로 지명한 세계 유일의 묘지로서,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협력정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적 의미가 큰 곳이다.

유엔기념공원(UNMCK)1951년 유엔군 사령부가 6·25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되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하여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조성한 유엔군 묘지이다처음에는 참전국 전사자 11,000위가 봉안되었으나 많은 유해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약 2,300여기가 남아 있다.

 그밖에 한국에서 전사하였으나 무덤이 없는 영국연방군 386명의 용사를 추모하는 기념탑과 UN군 참전기념탑이 있다. 묘지 내의 초목은 대부분 각국 정부, 각 기관과 개인이 기증한 것이다. 무덤마다 고인의 기록을 담은 묘비가 놓여 있다.

 

유엔기념공원 전경

 

 유엔기념공운 바로 밑에는 부산시립박물관이 위치하고 옆에는 부산문화회관이 있다. 갈맷길은 부산문화회관을 돌아서 나가는 길이다.

 

부신시립박물관 전경

 

유엔기념탑

 

부산문화회관

 

 

 여기에서 구 부산외국어대학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려 감만부두와 우암동 부두를 보면서 길을 가면 유명한 문현동 곱창골목을 통과하게 된다.

 

유명한 부산의 내호냉면집

 

문현동 곱창골목 - 영화 친구의 촬영지다.

 

 문현동을 벗어나 시가지 길을 다라 걸으면 자성대에 도착한다. 자성대(子城臺)는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있는 조선 시대 부산진성의 지성이자 장대로 부산진성을 모성(母城)으로 하고, 그에 상대하여 자식의 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임진왜란 때 지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만세덕(萬世德)이 주둔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공대(萬公臺)라고도 한다.

 이 성은 오늘날의 증산에 있었던 부산진성의 내성인 본성과 함께 1593(선조 26) 경상도 군정의 책임자였던 모리 히데모토[毛利輝元] 부자(父子)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자성대 일대는 바다였는데 자성대 일대는 남쪽 바다는 매축되고, 북쪽은 도로와 시가지가 들어섰으며, 동쪽은 매축되어 주거지와 선창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내가 어렸을 대는 이곳을 매축지라고 불렀다.

 

자성대 일대 안내도

 

조선통신사와 연관이 있는 영가대

 

자성대 정상의 진남대

 

자성대 안에 있는 최영장군 사당

 

 자성대를 돌아 나오면 부산진 시장이 보이고 이 구간의 마지막 장소인 범일 2동 주민센터 장소다.

 

부산진시장의 모습

 

 조금은 부산의 낙후된 곳으로 인식되는 감만동 우암동을 거쳐 벙일동 지역으로 들어왔다. 과거의 부산이라면 이곳이 부산항의 전초기지였던 곳이다 물론 아득한 옛날이었지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라는 말과 같이 지금은 서면이나 해운대지역이 번성을 누리지만 부산의 원도심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음 구간이 원래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 벅찬 희망을 가지고 부산의 골목골목을 걷는 상상을 하며 다음 구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산 갈맷길 2코스 2구간(민락교 -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갈맷길 2코스 2구간은 민락교에서 오륙도 유럼선 선착장까지다.

 

 이 구간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국내 최대해수욕장중 하나인 청춘의 바다 광안리해수욕장과 이웃하고 있다. 광안리해수욕장이 끝나는 곳 분포를 넘어서면 지금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남천동을 지나 새로운 바다가 열리고 모퉁이를 돌면 해안절경 이기대가 반긴다. 치마바위의 호탕함과 박골새 사이로 몰려오는 파도, 그리고 농바위에서 보는 오륙도 쪽 풍경은 이기대의 진수다. 사태골을 넘어서면 명승 제24호 오륙도가 수평선을 배경으로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오륙도는 뭍으로부터 방패섬-솔섬-수리섬-송곳섬-굴섬-등대섬(밭섬)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방패섬과 솔섬이 물때에 따라 썰물이면 하나로 밀물이면 두 개로 분리되는 현상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꺼꾸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 바다의 분기점이다

 

시원하게 뻗은 광안대교를 보면서 민락교에서 이번 구간을 시작한다.민락교를 지나 민락해안수변로를 따라 걸으면 민락회센터를 지나면 젊은이들의 바다 광안리해수욕장에 도착한다.

 

광안대교의 위용

 

민락교

 

민락수변로에서 보는 바다

 

 민락수변로를 지나서 광안리해수욕장을 벗어나 이기대 입구 동생말까지 가는 길에는, 갈맷길 안내 표시가 좀 명확하지 않다. 보통 갈맷길 안내 리본을 전신주에나 나무에 매어 놓았는데 이 구간은 특이하게 길에 노란색 페인트로 표시해 놓았다. 그런데 페인트가 퇴색하여 주의하지 않으면 보기가 꽤 불편하다. 걸으면서 길바닥을 주시한다는 것이 좀...... 그냥 다른 곳과 같이 전신주나 나무에 리본을 달아 놓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 뒤에 걷는 구간에서도 이정표의 표시가 좀은 이상한 것이 여러 곳에 보엿다.

 

광안리해수욕장의 여러 모습

 

동생말까지 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동생말에서 보는 풍경

 

 동생말에서 이제 부산의 비경중 하나인 이기대를 걷는 구간이다. 아름다운 해안이 눈앞에 펼쳐지고 짙은 숲과 푸른 바다가 계속된다. 이 구간을 걸으면 우리나라의 해안이 이렇게 아름다웠는가? 하는 경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기대(二妓臺)는 장산봉 동쪽 산자락에 바다와 면하여 있는 공원이다. 해안 일대에 약 2에 걸쳐 기기묘묘한 바위로 이루어진 암반들이 바다와 접해 있어 낚시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유명한 낚시터로 꼽힌다. 1993년 시민들에게 개방되기 전까지 군사작전지역으로 통제되었던 곳이라 희귀한 식물과 곤충이 서식하는 등 자연보존 상태가 좋다. 동생말.- 이기대 - 어울마당 - 농바위 - 오륙도 순서로 걷는(물론 역순으로 주파해도 무방) 길이 절경이라 일일이 사진을 찍고 쉬엄쉬엄 가면 4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199910월경 바닷가 바위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면서 부산 남구청에서 이 일대를 정비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태종대, 오륙도 등과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기대의 정식명칭은 이기대도시자연공원이다.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1850년 좌수사 이형하(李亨夏)가 편찬한 동래영지(東萊營誌)에 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의 유래는 진주 촉석루의 논개 이야기와 비슷하다. 임진왜란때 수영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이 경치 좋은 이 곳에서 술판을 벌였는데 기생 두 명이 왜장을 술에 취하게 한 후 끌어안고 절벽 아래 바다에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기대가 아니라 의기대(義妓臺)가 올바른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이밖에 경상좌수사가 두 명의 기생을 데리고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이기대 입구에서 보는 해운대 - 해무가 끼어 있는 모습

 

이기대의 절경과 구름다리(구름다리가 모두 5개가 있다.)

 

이기대 해안의 풍경

 

일제시대에 구리광산 표시

 

세계 각지의 이정표

 

이기대 안내판

 

이기대 이름의 유래 표지

 

영화 '해운대' 촬영 표지

 

 걷다 보면 중간 정도에 매점이 딸린 어울마당이라는 너른 자갈마당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영화 해운대를 촬영했으며 촬영장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영화 해운대에서 최형식(이민기)가 김희미(강예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야경을 보러 데려간 곳이다.

 

넓게 펼쳐져 있는 치마바위

 

해안 바위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강태공들 - 완전 신선놀음같다.

 

'농바위' 안내판

 

농바위의 모습

 

 이 농바위는 마치 농(가구)을 쌓아 놓은 듯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남구의 민속과 문화'에는 마치 아이를 안고 있는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돌부처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이기대자연공워을 벗어나면 아파트단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오륙도다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龍湖洞)에 딸린 오륙도는 섬의 크기는 면적 0.02인 작은 섬으로 200710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24호로 지정되었다. 최고점은 굴섬으로 68m이다. 옛날부터 부산의 상징물로 영도의 조도(朝島)와 마주보며,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로부터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다.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나누어진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하였으나,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고 한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다.

 섬 이름은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산천조(山川條)에 따르면,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방패섬과 솔섬의 아랫부분이 거의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1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2개의 섬으로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은 19세기에 일본 사람이 잘못 기록한 내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보이는 오륙도

 

이곳이 '해파랑길' '남파랑길'의 시작점임을 알리는 안내도

 

주변에서 보는 여러 풍경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보는 풍경

 

오륙도와 안내판

 

 여기까지로 2-2구간의 걷기를 끝낸다.

 

 앞으로 걸을 구간이 많이 있고 더 아름다운 경치를 볼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기대의 아름다운 풍광은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서 오래 동안 살아오면서도 이기대해안길을 제대로 걸어 본적이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주변에 두고 쓸데없이 먼 곳에서만 즐기려 한 나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보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 이제 3-1구간으로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