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도 끝나가는 마지막 주말, 코로나는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어 함부로 나들이를 하기에는 아직 쉽지 않았지만 여름 꽃구경을 하고 싶었다. 여러 곳을 생각하다가 여름 꽃으로 이름이 나 있는 기림사를 찾아 가기로 하였다.
기림사의 아름다운 여름꽃들이 나의 눈을 즐겁게 하였고 날씨도 화창하여 개운한 나들이를 하였다.
기림사는 27대 선덕여왕 때인 643년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당시 이름은 ‘임정사’였는데 원효대사가 와서 ‘기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31대 본산의 하나로 불국사를 비롯해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거대한 사찰이었다.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지만, 비로자나 삼신불이 봉안된 대적광전(보물제 833호)과 약사전, 오백나한을 모신 응진전, 임진왜란 당시 승군들의 지휘본부로 사용된 진남루 등 귀한 유산을 품고 있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이다. 보물 415호인 대적광전은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추고 있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높이 3m쯤 되는 아담한 3층석탑이 있다. 배흘림 양식으로 세워진 탑은 처마 끝은 살짝 들리어 가뿐한 느낌을 주고, 위로 갈수록 줄어들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대적광전을 마주보고 좌측계단에 오르면 삼천불전이 있다.-
삼천개의 하얀 불상이 본존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한 눈에 들어오기 힘들만큼 웅장하다.
(경주문화관광에서 가져 옴)
기림사입구의 안내판
기림사 일주문
고요한 기림사 전경
기림사 수국을 보려는 생각을 하고 기림사 경내로 들어가니 여러 여름꽃들이 먼저 맞이한다. 사실 이름도 잘모르는 꽃들도 많아서 이름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여하간에 아름다운 여름꽃들이 고요한 산사에 피어 있는 모습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하였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여름꽃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었다.
먼저 나를 맞이한 꽃은 하얀 꽃으로 자태를 드러내는 '남천'이다. 남천(南天)은쌍떡잎식물로 매자나무과의 상록관목로 남천촉(南天燭) ·남천죽(南天竹)이라고도 한다. 중국 원산이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흔히 심거나 석회암지역에서 자생으로 무성히 자라는 상록활엽관목이다. 남부지방에서는 정원에 심으며 북부지방에서는 분재(盆栽)로 기르고 있다.
6∼7월에 흰색의 양성화가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10월에 빨갛게 익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성숙한 열매를 남천실(南天實)이라 하며 해수 ·천식 ·백일해 ·간기능 장애 등에 약제로 시용한다.
남천
이어 여름꽃 능소화가 곳곳에 피어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능소화(Chinese trumpet creeper)는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주로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지의 곳곳에서 공기뿌리가 나와 다른 물체를 붙잡고 줄기는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길이가 10m에 달한다. 꽃은 7-8월에 꽃은 새로 난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피며 노란빛이 도는 붉은색이다. 민가 주변에 관상용으로 식재하며, 꽃은 약용으로 쓴다.
능소화
금계화
이어 수국이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데 수국은 여러 종류로 다양한 모습으로 또 여러 가지 색갈을 띄며 활쩍 피어 있었다. 아래에 절간내의 곳곳에 보이는 수국이 여러 모습으로 보여드리겠다. 이 밑의 수국은 별수국이다.
별수국
아래의 아름다운 꽃은 이름은 다소 사납게 여겨지는 매발톱으로 쌍떡잎식물로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아래로 핀 꽃에서 위로 뻗은 긴 꽃뿔이 매의 발톱을 닮았다 해서 매발톱이다. 잎에는 털이 없으며, 뒷면은 분을 바른 듯 흰빛이 돈다. 높은 곳에서 자라고 하늘빛이 많이 도는 하늘매발톱도 있다.
산골짜기 양지쪽에서 자라며 꽃은 6∼7월에 피는데, 자줏빛을 띤 갈색이고 가지 끝에서 아래를 향하여 달린다. 꽃이 연한 노란색인 것을 노랑매발톱(for. pallidiflora)이라고 한다. 관상용으로 쓰며 꽃말은 ‘우둔’이다. 한국, 중국,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한다.
매발톱
기림사 오종수 설명
경내의 여러 수국
수국
내가 수국을 찍고 있을 때 나이가 지긋한 여러 사람이 수국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마 동호회인듯 하였는데 말을 걸어 보니 서울에서 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국은 부산 태종사가 좋다고 하니 자기들도 말은 들었지만 가 보지를 않았다 하여 한번 가서 보라고 권했다.
곳곳에 피어 있는 능소화와 수국
유카(Yucca gloriosa L)는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꽃이 아름다워 남부지방의 정원이나 화분에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상록 떨기나무이다. 꽃은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피는데, 높이 1m 안팎의 꽃줄기에 많이 달린다.
유카
기림사 여러 불전들
오늘은 꽃을 보러 갔기에 불전은 그냥 돌아보는 정도로 구경하였다 여러 불전들의 모습을 보여 드린다.
여러 여름 꽃들
매월당 김시습 영당
한 송이 수련
이름도 모르는 많은 꽃들을 그저 보고 마음에 담고 한 하루였다.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같아 뿌듯하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니 내가 식물이나 동물들의 이름을 정말 너무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궁금한 꽃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모야모'를 이용하여 여러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된 날이었다. 일반적인 꽃들은 알겠지만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즐긴다는 것이 좋은 하루였다.
11코스는 나아해변에서 출발하여 봉길해변의 문무대왕 대왕암을 지나 감은사지를 돌아나와 해변길을 따라 감포항까지 가는 길이다. 그런데 나아해변에서 출발하면 월성전원국가산업단지(월성원전)이 해변에 자리잡고 있어 해변으로 가지 못하고 안쪽 길을 우회하게 만들어져 있다. 더구나 이 길을 걸어서는 가지 못하고 반드시 차를 이용하여 봉길터널을 지나게 하는 코스다. 이 터널을 지나 봉길에 내리면 바로 유명한 문무대왕의 대왕암이 눈에 들어온다.
나아해변 풍경
나아리 버스 정류소
나아리에서 봉길터널을 지나기 위해서 버스정류소에서 시간표를 보니 제법 많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지나가기로 생각하고 마을 주변을 보니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 마트에 들어가 택시를 호출하려고 알아 보니 약 4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하여,그시간이면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봉길터널을 건넜다. 조금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월성원자력발전소(月城原子力發電所)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및 문무대왕면 봉길리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로, 동해안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중수로형 원전으로 건설된 1호기는 1977년 5월 2일 건설에 착공하여 1982년 8월 20일에 핵연료를 넣고 1982년 12월 31일 시험발전을 시작하였다. 월성원자력발전소(月城原子力發電所)는 고리(古里)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이어 두 번째 한국에 등장한 것으로, 캐나다에서 개발한 국내 유일한 가압관식 중수형 원자로(加壓管式重水型原子爐)를 설치했다.
이 대규모 공사에서 설계감리(設計監理) ·기계조립 ·토목공사 등은 국내 기술 ·인력이 맡아 해냈고, 원자로는 주계약자인 캐나다 제작하고, 터빈 ·발전기 계통은 영국 ·캐나다 합작의 파슨스사(社)가, 변전(變電) 설비 등은 영국의 GEC가 각각 제작, 공급하였는데, 값싼 천연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함으로써 발전 원가(原價)를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설계 수명이 30년인 월성 원자력 1호기의 운영기한은 2012년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5년 2월에 10년의 수명연장을 결정하면서 운영 종료 시점은 2022년으로 늘어났다가 2018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에서 조기 폐쇄가 결정되었다.
봉길터널을 지나 버스를 내리면 바로 문무대왕릉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하지만 문무대왕릉은 해안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냥 멀리서 눈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예전에 이 릉을 몇번이나 구경을 하였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행정구역이 문무대왕면으로 바뀌었지만, 울산의 대왕암은 공원으로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관광객을 끌어당기고 있는데 이곳은 그런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물론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런 아쉬운 자연환경도 개발을 위한 조건으로 바꿀 수 있는데..... 하나의 예로는 문무대왕릉 주위를 도는 보트 투어 같은 것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멀리 보이는 문무대왕릉
경주 문무대왕릉(慶州 文武大王陵)은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맞은 편 동해 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으로 사적 제158호로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文武王)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7 문무왕 편에 의하면 ‘7월 1일에 왕이 돌아가시므로 문무라 시호하였는데 그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석상에 장사하였다. 속전에는 왕이 용으로 화하였다하여 그 돌을 가리켜 대왕석이라고 하였다.’(김종권역)고 전한다.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는 대왕암은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하여 배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 네 방향으로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 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대석의 안치 방법과 유골의 수장 여부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 위해 200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역사연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초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바위의 조직과 바위의 내부 및 수면 아래를 조사한 결과 유골이나 부장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대왕암이 1967년에 '발견'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이미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고유섭이 발표한 <경주기행의 일절>에서도 '모름지기 경주에 가거든 동해의 대왕암을 찾아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라'고 할 정도로, 이미 대왕암이 문무왕의 유적이란 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대왕암은 문무왕의 유골함이나 부장품은 없지만, 문무왕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자 사적으로서 '해중왕릉'의 의미는 여전히 충분하다.
여기서 감은사지로 발길을 돌려 걸으면 제법 큰 하천이 나오는데 이름이 대종천이다. 그리고 그 하천을 건너는 다리 이름이 대종교이다. 왜구가 침입하여 큰 종을 약탈해 가다가 이 하천에 종을 빠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대종교에서 보는 동해 바다
감은사지 가는 길
경주 감은사지(慶州 感恩寺址)는신라를 통일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을 위하여 만들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감은사 절터로 사적 제31호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곳은 동해에서 서라벌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길을 통해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하여 문무왕이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신문왕이 그 뜻을 이어 682년에 절을 완공하여 감은사라 이름하였다. 이는 불심을 통한 호국이라는 부왕의 뜻을 이어받는 한편 부왕의 명복을 비는 효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절터는 동해에 이르기 직전의 산기슭에 있는데, 거기에는 큰 3층 석탑 2기가 동남으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을 앞에 두고 서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시기 신라인의 기상을 나타내는 큰 탑으로, 이후 만들어지는 신라 삼층석탑의 원형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멀리서부터 잘 보이는 두 개의 삼층석탑은 금당 앞으로 동과 서에 하나씩 놓여 있다.
두 개의 탑보다 이야기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금당 자리의 석축이다. 금당 아래 석축 사이로 제법 큰 공간이 비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동해 바다의 물이 드나드는 길로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오가던 길이라고 한다. 문무왕이 죽어서 묻혔다는 수중 능도 가까이 있어 그 이야기가 정말일까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곳곳에 놓인 석재에는 보통 절에서 사용하지 않는 문양인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어 이색적이다.
또한 중문의 남쪽으로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있으며, 이 석축의 바깥으로는 현재 못이 하나 남아 있다. 이를 용담이라 부르는데, 통일신라 당시 감은사가 대종천변에 세워졌고 또 동해의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못이 대종천과 연결되어 있고 또 금당의 마루 밑 공간과도 연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감은사지를 구경하고 쉬다가 발길을 재촉하여 해안으로 돌리니 조금은 이상한 공덕비들이 쭉 나열되어 서 있다.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 고고학계의 거두들의 추모비이다. 나도 한 때는 역사학도를 꿈꾸었기에 추모비의 이름을 보니 모두 아는 인물들이라 잠시 참배를 했다.
참배단
이곳에서 감포를 향해 바다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시원한 바다바람을 즐기며 경치를 완상하면 된다.
해룡일출 대관음사 - 아마 바다에 가장 가까운 관음상인 듯
여기서 해변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서 동해의 바다를 즐기다 보면 약간 곤혹스럽다. 표지는 계속 가라고 되어 있는데 길은 통행금지 구역이라고 되어 있다. 적당히 건너서 나오면 되지만 이런 사소한 점도 좀 개선하였으면 한다.
해변에서 도로로 나오는 곳 - 통행금지가 되어 있다.
만파식적 피리 모형탑
신라의 한 설화에, 문무왕이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에게 만파식적(万波息笛)이라는 피리를 주어, 문무왕이 죽은 후 바다의 용이 되었다가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나정 해안
용굴 1, 2의 다양한 모습
나정해안에서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 해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오묘한 동굴이 나온다. 이름하여 용굴이라고 붙여 놓았는데 정식으로 알려진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아마 지나는 사람들이 붙인 명칭인지 길가의 계단 난간에 매직으로 용굴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파도와 바람에 의해 깍이었는지 이쪽과 저쪽이 뻥 뚫여 있는 제법 큰 구멍이다.
감포로 가는 바다 길
동해의 시원한 바람을 맡으며 길을 계속 가니 감포항에 도착한다. 수 많이 와 본 곳이지만 오늘은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감포로 올 때는 경주에서 차를 타고 왔는데 오늘은 저 아래쪽에서 길을 다라 걸으면서 감포에 도착하였다. 모든 것이 새롭게 여겨지는 오늘이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서 마친다.
해파랑길 10코스는 경주구간의 시작이다. 울산광역시의 정자항에서 출발하여 강동화암줒상절리와 양남면 주상절리군을 구경하며 읍천항을 지나 나아해변까지의 해변길이다.
경주구간 지도
정자항(亭子港)은울산광역시의 북구 정자동에 위치한 항이다. 정자(亭子)라는 지명은 오랜 전 마을 가운데 24그루의 포구나무(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유래한 지명이다. 옛날부터 자연스레 형성된 강동동의 8개 포구 가운데 중심 어항으로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정자항을 품은 정자동에는 남정자, 북정자, 죽전(竹田)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죽전은 정자의 서쪽에 위치하는데 대밭이 많아 유래한 지명이다 정자항은 오징어, 문어, 대각미역과 정자대게, 참가자미로 유명하다. 특히 정자항은 전국 유통 참가자미의 대부분이 어획되는 곳으로 참가자미회는 찰진 데다 기름기가 많고 비린 맛이 없어 사람들이 쉽게 적응하는 횟감이다. 최근 수온 변화로 울진과 영덕의 중심 어종인 대게가 정자 앞바다에서 잡히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회유하던 곳으로 고래잡이의 전진 기지라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울산광역시에서 귀신고래 형상의 등대를 조성하였다. .
정자항과 인접하고 있는 아름다운 강동~주전 해안길을 따라 돌아가면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된 정자·당사마을이 있다. 바다사람들의 정겨운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어촌마을이다.
2011년 3월 14일 한국관광공사 추천 3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정자항이 선정 발표되었다.
정자항의 모습
항구주변의 바다에서 보는 바위(물개나 고래의 모습)
정자항 고래 등대
정자항의 고래등대는 귀신고래를 실물 크기로 만든 것으로 정자항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빨간색 등대와 하얀색 등대가 마주 보고 있다.
강동몽돌해변
정자항 고래등대를 지나 해안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비가 온다. 그래서 잠시 쉬면서 커피를 한잔하기 위해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니 비가 곧 그친다. 아마 하늘도 잠시 쉬어가라는 배려인 것 같아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길을 계속하니 강동몽돌해변에 도착한다. 크고 작은 몽돌과 검은 색의 자갈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해변이다. 이 해변 길을 계속 걸으니 끝 자락에 강동화암주상절리가 있다.
주상절리(Columnar joints, 柱狀節理)는기둥모양의 절리(節理, joint)라는 뜻으로, 절리는 지형 용어로 암석에 생기는 갈라진 틈 또는 결을 의미한다. 주로 화산 지대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화산암인 현무암에서 주상 절리가 많이 나타난다. 마그마가 흘러나와 급격히 식을 때에는 부피가 수축하여 사이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는데, 오랜 시간 동안 풍화 작용을 받게 되면 굵은 틈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절리인데, 주상 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4~6각형의 긴 기둥 모양을 이루는 절리를 말한다. 보통 단면의 크기는 수 센티미터에서 수 미터에 이르기도 하며, 기둥의 길이는 수 미터에서 긴 것은 수십·수백 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주상절리는 보통 육각형의 단면을 가지는 돌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붙어서 연속적으로 나타나, 그 독특한 형상으로 인해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많다.
제주도 중문해안에는 기둥 모양의 주상 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가 주상 절리에 해당 한다. 광주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를 이루는 주상절리는 둘레가 7m, 길이가 약 10m가 되는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연천의 재인폭포, 임진강 주상절리, 강원도 철원의 직탕폭포, 경북 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경주 읍천리 해안가 와상절리 등 여러 곳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국가지질공원 및 각종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에 있는 총석정도 유명한 주상절리에 해당하는데 가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한편 주상절리와는 달리 쪼개지는 절리의 방향이 수평으로 넓게 나타나는 절리를 판상(板狀)절리라 한다.
화암주상절리
신명표지
지나가는 길에 암석위에 돋아 있는 나무들
해안을 따라 계속해서 걸으면서 자연의 오묘함에 다시 탄복한다. 해안의 암석에 흙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다. 어떻게 저런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지 생명의 경이로움에 다시 감탄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표지
6. 25 전쟁 전적비
경주의 아름다운 해안 길을 걸으면 하서해안공원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따라 걸으면 이야기를 소재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공적으로 꾸민 여러 곳이 나타난다. 이름도 아름다운 '물빛파도소리길' '사랑해' 등의 이름이 말해주는 길을 따라가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한 석탈해와 박제상의 이야기 길이 만들어져 있다. 물론 이곳이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이야기를 끌어 당긴 것으로 느껴진다.
주상절리의 여러 모습
멀리 보이는 앙남면 주상절리 전망대
양남면 주상절리 전망대
이 전망대 올라가서 양남면 주상절리를 보니 실제로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못하다. 더구나 2층의 테라스는 바람이 조금 불어도 개방을 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내려와서 전망대 주변에서 보는 주상절리가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예전에 이 전망대가 없을 때도 주상절리를 잘 보았는데 별 쓸모도 없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전망대를 만드는데 들어간 예산도 많을 것이고 지금 유지하는 경비도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전형적인 행정의 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월성원자력발전소의 도움으로 건립되었다 하지만......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慶州 陽南 柱狀節理群)은경주시 양남면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의 해안을 따라 약 1.5km에 이르는 2012년 9월 25일에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된 주상절리이다. 신생대 제3기의 에오세(5400만 년 전)에서 마이오세(460만 년 전) 사이에 경주와 울산 해안지역 일대의 활발했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거나 수평 방향으로 발달해 있으며, 부채꼴(방사형)로 퍼져나간 것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형태가 다양한 것은 마그마가 지표면 위로 분출하지 못하고 지각 얕은 곳으로 스며들어간 상태에서 냉각과정을 거쳤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수평, 수직, 경사, 방사 형태 등 모든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모여 있고, 흔히 볼 수 없는 부채꼴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이곳 해변에는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에 걸쳐 분포해 있으며, 주름치마, 부채꼴, 꽃봉오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1.7㎞에 걸쳐 주상절리 전 구간을 산책할 수 있는 파도소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출렁다리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출렁다리는 주상절리와 읍천항, 바다 풍경을 함께 즐기면서 건너 가는 다리다.
여러 형태의 주상절리
주상절리군을 지나 해안을 따라 걸으면 벽화마을이 나타난다. 읍천항 벽화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미술관이라 불릴 정도로 길가의 집 담장에 여러 종류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어린 아이들의 동화의 세계를 소재로 한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바다와 항구 등의 다양한 종류의 벽화를 보고 지나면 석탈해의 탄생설화를 이야기하는 배가 보이는 공원을 지난다.
드디어 이 구간의 종착지인 나아해변에 도착한다. 솔발산책로와 몽돌과 자갈, 모래가 섞인 조용한 해변이다. 단지 이곳에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없었으면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한 마을인데 발전소 때문에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해파랑길 9코스는 일산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시내 길을 걸으며 현대중공업을 돌아 주전봉수대를 거쳐 주전몽동해변길을 따라 걸으면서 대게로 유명한 정자항까지 비교적 긴 19km의 길이다. 이 구간에는 현대중공업이라는 국가기간산업체가 있어 해안길을 걸을 수가 없고 현대중공업의 담장을 끼고 도시 길을 따분하게 걸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을 벗어나면 남목마성이란 다소 생소한 곳에 도달하여 봉수대 쪽으로 산길을 좀 거고 해변길로 접어들어 모래가 아니라 몽돌로 유명한 주전몽돌해변에 도착하여 해변길을 쭉 따라 정자항으로 가는 길이다.
일산해변 코스 안내도에서 왼쪽으로 제법 올라가면 동구 홈플러스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표시된 표지를 따라 현대중공업의 담장을 끼고 대로변을 쭉 따라 걷는다. 현대중공업의 담장에는 장미가 제법 예쁘게 피어 도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일산해변의 코스 안내도
현대중공업 담장의 장미
현대중공업 담장을 따라 걸으면서 정문에 도달하여 사진을 한 장 찍으려니 정문 경비원이 국가기간산업체라고 찍지 못하게 한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내부의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고 정문에서 건물을 찍는 것이 무슨 비밀인지 의문스럽지만 꼭 찍을 필요도 없어 그냥 지나쳤다.
현대중공업(Hyundai Heavy Industries Co. Ltd 現代重工業)은 현대중공업그룹 소속의 조선업체로 1973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가 분사해 현대조선중공업(주)이 설립되었다가 1978년 사명을 현대중공업(주)으로 변경하고, 현대중공업은 2019년 6월 3일 물적분할(법인분할)을 통해 신설법인으로 설립되고, 존속법인은 한국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바꾸어 한국조선해양의 100% 자회사로 편입돼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사업부문 중간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특수선, 해양·플랜트, 선박용 엔진·기계 부문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매출 비중은 조선 부문이 73% 이상을 차지한다(2018년).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는 선박 수주 및 건조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지켜온 현대중공업의 핵심 사업부로 여러 선박의 건조에서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의 모태는 1970년 3월 현대건설 내부에 만들어진 조선사업부다. 당시 정부가 제3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현대그룹에 조선소 설립을 요청하자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현대건설 내에 조선사업부를 신설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해외자금을 들여오기 위해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우리는 16세기에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소. 돈을 빌려주면 조선소를 짓고 배를 팔아 갚을 테니 돈을 빌려주시오.”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안내도를 보면서 걸으니 나무로 말의 조형을 만들어 놓은 곳에 도착했다. 바로 남목마성이라는 곳이다.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인 남목마성(南牧馬城)은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에 걸쳐 있는 성지로 현지 안내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마성(馬城)은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를 돌로 막아 쌓은 담장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기 위해 주로 해안가와 섬 등을 중심으로 200200여 개의 목장을 설치했는데, 이 곳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지역의 원래 지명은 '남목(南木)'이었는데, 목장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남목(南牧)'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경상 도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방어진에 목장이 있는데, 그 둘레가 47리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해동 제국기》(海東諸國記)에는 염포와 양정의 경계선을 따라 심천 곡을 거쳐 성골에서 강동동의 경계에까지 마성(馬城)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도가 들어 있다. 《학성지》(鶴城誌)에는 1651년에 새로운 마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성(城)이 오늘날 남아있는 이 남목 마성일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이 마성은 염포동 중리와 성내 경계지점으로부터 남목으로 넘어오는 도로 남쪽 산기슭을 지나 동쪽으로 미포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높이는 1.5m~2m 정도이고, 둘레는 1,930보(步)이다. 그리고 이 성을 쌓을 때에는 울산은 물론 멀리 문경 등지의 주민들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남목마성의 자취를 곳곳에서 소개를 하고 있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산길을 걷는다.
주전 봉수대
울산 봉수대 설명판
망양대
산길을 벗어나 해안길을 들어서서 계속 걸으면 주전몽돌해변에 도착한다.
주전몽돌해변은 울산 12경 중 하나로 울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해수욕장이다. 주전은 땅이 붉다는 뜻으로 땅 색깔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동해안을 따라 1.5km 해안에 직경 3~6cm의 새알처럼 동글동글한 까만 자갈(몽돌)이 해안에 길게 늘어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해안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 자갈과 몽돌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어 파도가 칠 때마다 작은 몽돌이나 자갈이 파도에 쓸려서 굴러다니며 서로 부딪혀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조용하면서도 다정한 자장가처럼 들린다고 한다. 주전몽돌해변의 파도 소리는 동구의 소리 9경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해변의 자갈과 몽돌은 검은색 또는 회색의 안산암이 잘게 부서져서 생긴 것으로, 화산활동으로 생긴 안산암은 흰색과 검은색의 입자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어서 전체가 하나의 색으로 보인다. 안산암이 처음에는 주상 절리와 같은 지형으로 있다가 바닷물에 깎여서 떨어져 나간 후 다시 여러 번 파도의 영향을 받아 둥글둥글해져서 반질반질하고 동글동글 귀여운 몽돌이 탄생한 것이다. 또 주변에 노랑바위, 샛돌바위 등 많은 기암괴석이 있다
주전몽돌해변의 여러 풍경
해변에 텐트를 많이 치고 있다.
자갈밭 해변에 미역을 말리는 광경
용바위를 지나면 다시 산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강동축구장 쪽이다. 왜 이렇게 울산 구간은 산 쪽으로 길이 많은지 해파랑길이 아니라 산을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강동축구장은 2002년 월드컵 때 터키국가대표팀이 전지훈련으로 사용한 구장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산길을 따라 걸으니 봄날의 뻐꾹새가 우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해안길에서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계속 듣다가 산길이라 새소리를 듣는 재미도 있다. 산길을 계속해서 가면 까치전망대가 나온다. 까치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까치전망대에서 울산의 바다를 바라보고 휴식을 좀 취하다가 다시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런데 산길을 내려오면서 '강쇠나무'와 '옹녀나무'라고 표지를 붙인 나무들을 보았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길이 강쇠와 옹녀와 무슨 연관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가. 의문을 가지고 계속 산길을 걸어 내려오니 나름대로 이름을 붙인 이유를 설명하는 설명판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무리하게 붙인 것이 아닌지 좀 의아스러웠다.
옹녀와 강쇠에 대한 여러 설명
산길을 내려와서 제전항으로 발길을 계속한다. 조그마한 항구로 간판에서 보듯이 장어숫불구이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다.
제전항을 지나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정자항으로 향했다. 도시길과 산길과 바닷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제법 긴 길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보는 풍경도 좋고, 이 길에 어떤 조그마한 이야기라도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꾸며 놓은 지자체들의 노력도 가상하게 생각이 들었다.
8코스는 염포산 입구에서 염포산을 올라가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다시 산을 내려와 방어진항으로 가서 해변 길을 따라 걸으면서 울산 대왕암공원을 보고 일산해변까지 가는 길이다. 코스의 거리는 비교적 짧은 곳이고 염포산도 그렇게 높지 않기에 다소 편안한 길이다.
염포삼거리를 지나 염포산 입구에 도달하여 이 코스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쉬다가 염포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울산광역시 동구 전하동과 북구 염포동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는 해발 203.4m인 산인 염포산(鹽浦山)은 소금을 생산하는 포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염포산은 마을 뒷동산 같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높이는 낮아도 바닷가 산의 특성 때문에 주변 조망이 매우 뛰어나서, 최근에 산림을 조성하여 규모는 작지만 편백나무 숲길도 있고 벚꽃 길이 있어 꽃이 피는 봄이 되면 꽃 축제를 즐기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하늘길이라 칭하는 염포산의 걷기 길은 울산광역시 동구 일대의 월봉사와 염포삼거리를 잇는 둘레길로, 염포산 하늘길은 염포산이 바다에서 이어져 있으므로, 염포산(鹽浦山)에 조성된 길을 걸으면 마치 하늘을 끼고 걷는 길처럼 느껴진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총길이 6㎞이며, 차선과 폭은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는 둘레길로 염포산을 중심으로 월봉사~화정산삼거리~염포삼거리를 잇는 경로다. 염포산의 길은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는 산길로 푸른 향기가 짙고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걷는 내내 흙을 밟을 수 있다.
염포산 입구 안내도
염포산 약수터
산을 따라 걸어가면 적당히 땀이 나는 지점에 약수터가 있다. 물맛이 시원하고 좋기에 한잔의 물을 들이켜고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길을 계속한다.
염포산 산길 안내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보는 울산항의 여러 모습
염포산을 돌아 내려오면 멀리서부터 보이던 울산대교전망대에 도착한다. 지상 4층에 높이 63m인 전망대는 울산대교와 울산의 3대 공업지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산업단지와 울산의 7대 산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더구나 대개의 전망대는 입장료를 받는데 이 전망대는 무료이다. 꼭 올라가서 탁 트인 광경을 보기를 바란다.
울산대교 전망대의 모습
천내봉수대
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로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여러 사항을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울산 화정 천내봉수대(蔚山 華亭 川內烽燧臺)는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에 있는 해발 120m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로 울산광역시의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가리산 봉수대에서 연락을 받아 남목(南木, 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하던 곳으로,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핵심이 되는 곳이다. 흙으로 쌓은 지름 25m의 둥근 둑 안에 돌로 대(臺)를 쌓았는데, 그 지름은 8m이고, 높이는 7.5m이다.
천내봉수대를 뒤로하고 산을 내려가면 방어진 배수지를 지나고 곧 방어진항에 도착했다
방어진은 울산 동구 방어동에 있었던 나루로 바다로 돌출한 곶의 형국을 띠고 있으므로 예로부터 해양 진출의 교두보로서 역할을 해 왔다. 방어진의 지명 유래는 이곳에서 방어(魴魚)가 많이 잡힌다는 해서 생겼으며 세종 때 삼포(三浦)가 개항되면서 이곳 염포(鹽浦)에 왜인(倭人)이 드나들게 되었다. 삼포왜란 후 염포의 왜인들이 물러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인들이 이곳을 군사기지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부근 일대가 국가 경영의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울산에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節制使營)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1917년 방어진 등대가 설치되었고, 천연적인 양항인 방어진항에는 방파제가 축조되었다. 일제 때 어업전진기지로 사용되면서 청어, 정어리, 방어, 고래 등의 수산자원을 바탕으로 크게 번성했으며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방어진항은 울산만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울산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울산시가 공업도시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개발되고 있으나 방어진 지역은 염포산(鹽浦山) 줄기가 해안까지 뻗치면서 해식애(海蝕崖)를 이루고 있는 지형적인 제약으로 대단위 임해공업단지의 조성이 어렵다. 따라서 이 지역은 자연 녹지대로 보존되면서 쾌적한 주거 공간으로 개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어진항 입구로 들어가니 증곡 천재동의 여러 흔적이 보인다. 증곡선생은 내가 제법 잘 아시던 분이라 매우 친근감이 들었다. 증곡선생을 기려서 여러 기념조형물을 조성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와서 증곡선생을 추모하리라 생각했다.
천재동(1915~2007)은 울산 출신의 동래야류 예능 보유자이자 문화예술인으로 호는 증곡(曾谷)이다.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일본아동화미술대회에서 특선하여 천재성을 드러내었다. 1939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 소묘과를 수료하고, 1943년 11월 귀국하여 울산의 방어진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하였다. 25년간 평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토우 만들기와 창작가면 전시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화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다섯 가지 전공을 토우, 동요 민속화, 연극, 탈·가면, 민속놀이라고 밝혔다.
1965년 10월 한국 최초의 창작가면전시회(제2회 천재동탈작품전)를 시작으로 1999년까지 25회의 탈 작품전을 개최하였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가면 제작) 예능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다양한 활동을 계속하던 천재동은 2007년 7월 26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생존해 계실 때 어떤 인연으로 두어 번 뵈옵었고, 그의 작품도 몇 점이 집에 있기도 해서 더욱 반갑게 와 닿았다.
방어진 횟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서 항구를 걸어 지나니 슬도에 도착한다.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슬도(瑟島)의 명칭은 갯바람과 파도가 밀려올 때 바위에서 나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 같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일설에는 섬의 모양이 옛날 중국 악기인 비파와 같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라고도 한다. 슬도는 '바다에서 보면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섬 거북이 모양 같다고 하여 구룡도, 또는 섬 전체가 오랜 세월 조개가 뚫어놓은 자그마한 구멍으로 만들어진 왕곰보 돌로 덮여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한다. 슬도에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를 일컫는 슬도명파(瑟島鳴波)는 방어진 12경 중의 하나다. 무인 섬이나 지금은 성끝마을에서 슬도까지 260m의 파제제(파도를 제어하는 둑)가 놓여 있어 쉽게 슬도를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950년대 말에 세워진 무인등대가 홀로 슬도를 지키고 있으며 이곳에는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경관이 아름다워 드라마 「욕망의 불꽃」, 「메이퀸」이 촬영되기도 하였다.
멀리 보이는 슬도 다리
고래모형과 슬도등대와 슬도 모습
슬도에서 보는 바다
슬도를 벗어나 길을 조금 가면 대왕암공원의 지역에 들어선다. 대왕암공원 영역은 매우 넓기에 여러 곳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먼저 입구에 소리체험관이라는 독특한 건물이 있다.
울산 슬도 대왕암에 위치한 소리체험관은 지상 2층 654제곱미터 규모로 '여음(소리의 잔향)의 풍경'을 컨셉으로 건축되었으며, 특별한 문화체험인 울산 '동구의 소리 9경'을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전시관이다. 참고로 ‘소리 9경’이란 1. 동축사 새벽종소리 2. 마골산 숲 사이로 흐르는 바람소리 3. 옥류천 계곡 물소리 4. 현대중공업 엔진소리 5. 신조선 출항 뱃고동소리 6. 울기등대 무산소리 구원의 소리 7. 대왕암공원 몽돌 물 흐르는 소리 8. 주전해변 몽돌 파도소리 9. 슬도명파라고 하는데 다 듣지 못하여 아쉽다.
소리체험관부터는 모두 대왕암공원 영역이라 생각하면 된다.
대왕암공원에는 신라시대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은 후 문무대왕을 따라 호국룡이 되어 울산 동해의 대암 밑으로 잠겼다는 신비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또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1만 5천 그루의 해송, 바닷가를 따라 조화를 이루는 기암괴석, 파도가 바윗 구멍을 스치면 신비한 거문고 소리를 내는 슬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울기등대는 대왕암 공원만이 가진 자랑거리입니다. (대왕암공원 홈페이지에서)
대왕암공원 홈페이지에 있는 공원 안내도
대왕암공원(大王巖公園)은 울산광역시 동구 등대로 95에 있는 동해안에 자리한 아름다운 해변공원이다. 울기공원으로 불리다가 대왕암공원으로 개칭하였다. 공원은 대왕암과 연결되며, 울기등대와 미르놀이터, 미로원, 소리체험관, 어린이 테마파크, 둘레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산해수욕장 부근의 진입로부터 펼쳐진 소나무 숲길을 따라 600m쯤 가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오래된 등대인 동해 뱃길의 길잡이가 되는 울기등대가 나온다.
또한 대왕암은 울주군 간절곶과 함께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으로 신라시대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서도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하여 바위섬 아래에 묻혔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대왕암은 ‘용추암’ 또는 ‘댕바위’라고도 불리며 육지에 있는 바위와 철교로 연결된다. 주변에는 울산대교전망대와 일산해수욕장, 주전해안, 남목마성(南木馬城) 등 관광 명소 및 맛집이 많이 있다.
대왕암공원의 여러 이야기길을 따라 걸으며 대왕암에 도착했다. 울산의 대왕암은 경주의 대왕암과는 다르다. 울산의 대왕암의 주인공은 문무와의 왕비이다. 문무왕을 따라서 죽은 뒤 나라를 지키는 호국용이 되어바위섬 아래에 잠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울산 대왕암의 여러 모습
멀리 보이는 울기등대
대왕암 주변의 풍경
멀리 보이는 공사 중인 출렁다리
일산해수욕장을 가까이 가면 지금 공사 중이라 길을 조금 솔밭 쪽으로 우회하게 하고 있다. 제법 긴 출렁다리를 놓고 있는데 완공이 되면 제법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파란 바다 위를 걷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대왕암(大王巖)과 슬도(瑟島)를 잇는 길에 소나무가 많아 바람이 불면 소나무 향이 퍼진다는 뜻에서 유래된 솔바람길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과 여가 활동을 위한 공간 활용을 목적으로 해안길을 조성하여 2012년에 준공하였다.
대왕암 솔바람길은 일산해수욕장에서 대왕암공원으로 연결된 나무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바깥막구지기부터 시작한다. 구석의 방언인 ‘구지기’와 막다른 곳 또는 남쪽의 의미가 있는 ‘막’이 합쳐진 ‘바깥막구지기’는 일산해수욕장의 남쪽 백사장 끝이라는 뜻이다. 도깨비불이 많이 날아다녔다는 전설에서 이름 붙여진 ‘헛개비’ 벼랑을 지나 안막구지기에 도착하면 바다에 섬 하나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 섬은 민둥민둥한 대머리 같은 불모의 섬이라는 뜻에서 ‘민섬’으로 불린다. 길게 읽으면 ‘미인섬’이 되는데, 보는 위치에 따라 여인이 누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해안길을 따라 대왕암 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민섬뿐 아니라 사근방, 탕건암, 할미바위, 거북바위 등 저마다 이야기를 가진 개성 있는 바위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안막구지기 근처에는 망루를 설치해 놓고 숭어 잡이 망을 보던 수루방과 소나무 아래 숨은 천연 동굴 덩덕구디도 있다. 대왕암공원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몽돌 해안인 과개안(너본개)이 펼쳐진다. 경상도 방언으로 넓게 열린 곳이란 뜻의 ‘너본개’는 1960년대까지 포경선들이 고래를 몰아 포획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 설명과는 반대로 나는 슬도에서 일산해수욕장으로 걸어왔다.
일산해수욕장
드디어 이 코스의 종착점인 일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울산 동구 일산동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방어진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대왕암공원(일산유원지) 입구에 있다. 깨끗한 모래로 된 사빈해안으로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며 반달모양의 백사장 가운데로 시내가 흘러 담수욕도 즐길 수 있고 인근 해수욕장 주변은 대왕암공원(일산유원지)의 기암절벽과 송림을 끼고 있어 신선한 솔잎 향을 맡으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주변에 대왕암공원과 울기등대·대왕암 등의 관광명소가 있고 화암추등대의 전망대에서는 울산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번 코스는 유난히도 이야기가 많은 곳이었다. 제법 큰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부는 지자체에서 개발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곳이었다.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이야기다. 그저 막연하게 경치만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이야기지만 곳곳에 서려 있는 그 지방의 이야기를 스토리 텔링으로 만들어 꾸며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고 생각한다.
해파랑길 7코스는 강가의 태화강전망대에서 출발하여 태화강을 거슬러 올라가 구 삼호교를 지나 다시 건너편 태화강길을 따라 걸어서 내려오며 태화강국가공원의 여러 풍경을 보며 즐기다가 태화강역 주변의 명촌교에서 계속 테화강을 따라 아산로 길을 걸으면서 염포삼거리를 거쳐 염포산 입구까지다. 비교적 거리는 좀 먼 코스지만 아주 평탄한 길을 걷기에 어려움은 거의 없다. 그저 강변을 따라 꾸준히 걸으면 되는 곳이다. 그중에서 태화강국가공원의 십리대밭 숲은 인공적으로 만든 숲이지만 대나무를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속세를 떠난 감정을 가지며 걷는 좋은 길이다.
7코스 출발점(태화강전망대 옆)
태화강을 날고 있는 새
구 삼호교와 삼호교에서 보는 태화강
태화강의 풍경
십리대밭 숲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이라는 이름으로 울산 12경에 속하는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 태화강의 중류인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 강변에 형성된 대나무 숲은 현재 한국에 있는 강변의 대나무 숲 중에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숲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다.
명칭은 십리대밭과 십리대숲이 혼용된다. 이름대로 10리(약 4 km) 정도 이어진 숲이다. 실제로 정말 십리에 걸쳐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대밭은 아니고, 대나무 식생 영역을 묶은 것으로 이해된다. 지금의 대숲은 일제강점기에 태화강이 자주 범람하여 많은 피해가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백사장에 대나무를 더 심어 지금의 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산책길 양 옆에 대나무로 만든 낮은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어 대밭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태화강을 따라 쭉 내려오면 태화강역 주변의 명촌교에 도착한다. 이 명촌교에서 계속 강을 따라 걸으면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와는 전혀 다른 울산공업단지가 나온다. 물론 공업단지가 이곳뿐이겠는가 마는 이곳이 초기의 공업단지이다. 과거의 현대가 울산에서 기반을 다지며 번창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현대가 건설한 아산로를 따라 계속 걸으면서 염포삼거리로 간다.
멀리 보이는 울산대교
울산대교(蔚山大橋)는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에서 동구 일산동을 잇는 1,800m의 현수교다. 2009년 11월 30일에 착공해 2015년 6월 1일에 개통했다.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인 단경간이 1,150m인 현수교로, 최장 단경간인 일본 아카시해협대교 (경간 1,991m), 중국 룬양대교 (단경간 1,400m), 장진대교 (단경간 1,300m) 등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
이 다리는 개통과 동시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보행자, 자전거 등은 통행할 수 없다. 울산대교의 개통으로 울산광역시 남구와 동구 간 이동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으며 울산대교 동쪽 진입로에 전망대를 설치해 울산광역시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아산로 표지
삼포 개항지 염포 표지석
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동에 있는 염포(鹽浦)는 조선시대의 포구로, 지명 유래는 예로부터 소금밭이 많아 ‘소금 나는 갯가’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서북쪽에 하안 평야가 있을 뿐 갯가와 산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염포는 역사적으로 울산 지역을 방어하는 군사기지로서 큰 몫을 하였다. 태화강(太和江) 하구에 위치하여 개운포(開運浦)ㆍ유포(柳浦)와 함께 울산의 좌병영을 지키는 수군의 군사기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蔚山郡)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염포진(鹽浦鎭)이 있어 수군만호가 주둔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울산군 방어진읍 염포리로 되었다가, 1962년 울산시 염포동으로 편입되었다.
1426년에 부산포(富山浦:釜山鎭) ·내이포(乃而浦:鎭海市 熊川洞)와 더불어 3포(浦)를 이루어 일본에 개방한 국제무역항이었던 염포는삼포에 왜관(倭館)을 설치할 때 일본인의 거주가 허락되었고 왜관(倭館)을 두어 도박왜인(到泊倭人)을 머물게 하고, 염포에 상륙하여 서울로 올라가는 왜인은 언양(彦陽) ·경주 ·안동 등을 거쳐 가도록 정하여 염포는 좌로(左路)의 시발지가 되었다. 삼포의 개항 당시 염포의 왜인의 수를 60명으로 한정하였는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날 당시에는 120여 명이 상주하였다. 1512년 임신약조의 체결로 염포의 왜관은 폐쇄되었다.
6코스는 구 덕하역에서 출발하여 선암호수공원과 울산대공원을 거쳐 고래전망대를 통과하여 태화강 전망대까지 가는 약 16km의 여정이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이 코스에 대한 사전에 예비 지식을 찾아보니 해파랑길이 바다는 전혀 끼지 않고 산으로만 가는 길로 표시가 되어 있어 의아했다. 그리고 중간에 점심을 먹을 식당이 아무 곳도 없으니 미리 출발 전에 끼니를 때울 음식을 준비하거나 선암호수공원 매점에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실소를 금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출발하여 정히 점심을 먹을 곳이 없으면 선암호수공원 매점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기로 생각하고 덕하역에서 출발하여 울산 시가지 길을 계속하여 걷는다.
6코스 이정표
안내 표시를 따라 울산시내 길을 가다가 산길로 들어사면 선암호수공원으로 가는 표시가 나타난다. 안내도에서 제법 난이도가 있다고 하였는데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해변가 길을 걷는 것에 비하면 제법 땀이 온몸에 배였다.
산길을 제법 걷고 드디어 선암호수공원에 도착하여 공원을 구경하면서 매점에 들어가 빵과 음료수를 사서 점심거리를 장만하고 울산대공원 쪽으로 계속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길이 조금 막혀 있었다. 해파랑길 안내 표지를 따라 걸으면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중간에 길을 막고 일방통행을 하게 만들어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공원의 모습을 보며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선암호수공원의 매점
선암호수공원의 여러 모습
선암호수공원을 벗어나 울산대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이정표를 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조금 가다가 주차장 있는 곳에서 왼쪽 산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이정표를 잘 찾아야 한다.
울산대공원 가는 길의 신선정
이정표
요즈음 걷기가 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취미에도 좋기에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신의 지방 길을 개척하여 여러 이야기를 붙여서 걷기 길을 조성해 놓았다. 시민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일일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산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잘 조성해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것이 여러 먼에서 좋은 것이다. 울산도 해파랑길의 코스에도 울산 나름의 길 이름을 붙여 또 안내도를 붙여 놓아 여러 안내도 겹쳐 나오는 경우도 많다.
울산해양경찰서 담장의 장미
울산대공원 가는 도중의 여러 풍경
해파랑길을 걷는 도중에 같은 구간의 솔마루길을 만난다. 솔마루길이란 소나무가 울창한 산등성이를 연결하는 등산로라는 의미로 솔마루길은 선암호수공원에서 시작하여 신선산, 울산대공원, 문수국제양궁장, 삼호산, 남산을 거쳐 태화강국가정원까지 연결되는 총 24km의 울산의 '도심 순환 산책로'이다, 울산 남구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고래도시임을 홍보하기 위해 솔마루길 초입부와 등산로 변에 고래모형 진입게이트와 야간에 걷는 사람들을 위해 전 구간에 돌고래 모형의 야간 등을 설치하여 놓았으니 돌고래 모형을 따라 걸으면 된다.
구간 중간에는 종합안내판이 솔마루길을 이용하는데 도움을 주고, 방향을 알리는 방향지시판이 여러 곳에 있어 산책하는 시민이 편리하게 걷도록 정비되어 있다.
솔마루정
고래전망대에서 보는 울산 태화강
고래전망대를 지나 태화강쪽로 길을 따라 가면 태화강전망대라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내가 상식으로 아는 태화강전망대가 아니라 산 위에 있는 태화강전망대이다. 하지만 강가에 있는 태화강전망대는 위락시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되고, 이 곳이 태화강을 보는 진짜 전망대 역할을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산위에서 태화강의 전체는 아니지만 막힘이 없이 펼쳐진 모습을 보는 것이 진짜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산위의 태화강전망대
산위에서 보는 강가의 채화강전망대
강가의 태화강전망대 주변
강가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 보다가 태화강전망대로 올라 갔다. 역시나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카페가 있고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태화강전망대의 카페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태화강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카페가 회전을 하고 있었다. 제법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돌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360도를 회전하므로 태화강의 여러 모습을 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관광객들의 편리를 위한 것으로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카페에 앉아 주스를 한잔 마시고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를 향한 발길을 시작했다.
5코스는 진하해변에서 출발하여 덕산대교를 지나고 청량운동장을 지나 덕하역까지의 17.6km의 비교적 거리는 멀지만 평탄한 구간이다. 진하해변에서 회야강을 따라 덕산대교까지 가는 길은 강변을 따라가면서 멀리 보이는 진하 바다를 보면서 회야강의 강바람에 깊은 숨을 모아 쉬면서 느긋하게 걸으면 되는 곳이다.
진하해수욕장은 회야강이 흘러 내려와 합치는 곳으로 어류자원이 풍부하여 많은 갈매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갈매기떼를 배경으로 한 일출의 아름다운 모습과 일몰 시의 명선교의 야경 때문에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명선교로 연결되어 있는 명선도는 예전에는 섬으로 건너가기가 편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멋진 다리(명선교)로 연결되어 언제든지 건널 수가 있다.
진하해수욕장과 명선교의 모습
명선교 위에서 보는 주변의 풍경
명선교에서 보는 회야강
회야강(回夜江)은경상남도 양산시 원효산 원효샘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울산광역시 서생면의 경계에서 동해로 유입하는 총길이는37.7km이며 유로 연장은 41km, 유역 면적은 217.93㎢로 비교적 작은 하천으로 회야는 논배미를 돌아서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이다. 서생면에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찔러 승리하여 일승강(一勝江)이라고도 부른다. 돌배미강이라고도 불리는데 돌배 미강에서 돌을 돈다는 뜻의 '돌배'가 '회(回)'로 바뀌었고 배미는 '바미'로 바뀌었다가 다시 '밤'으로 바뀌어 '야(夜)'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천성산과 대운산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 흐르다가 남창천과 합류하여 온산읍과 서생면의 경계를 이루며 동해로 흐른다.
명선교에서 회야강을 따라 올라가면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바다인지 강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강안에는 수많은 선박수리업소와 보트 대여소 강습소 등이 눈에 뜨인다. 그런데 물고기가 엄청 많은 곳으로 생각되는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는 것이 매우 의아했다.
회야강의 물새
매우 상세한 이정표
이 코스를 걷는 사람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사전에 코스를 조사하면서 보니 중간에 음식점이라고는 이 집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크고 제법 알려진 집이었다. 철판 삼겹살을 주로 하는 집이었는데 맛도 기대 이상이었고 양도 충분하였다. 이 코스를 걷는 사람들께서는 참조하시기를.....
점심을 먹고 회야강 줄기를 따라 계속해서 걷는다. 다소 따분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길가에 핀 장미
덕하역
덕하역은 동해선의 철도역으로 구 역사는 1941년 5월 10일에 신축한 것.이다. 신 역사가 청량읍 상남리 533-23번지에 신축되어 2019년 6월 17일부로 타는 곳이 이동되었으며 이 역부터 남창역까지 이설된 선로로 운행하고 있다.
구 역사에서 BBC 원작 OCN 리메이크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가 촬영되었다. 가상의 도시 인성시에 위치한 가상의 역 인성역으로 나온다.
신 역사는 전철 전용역으로 건축되어 이전과 달리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는 취급하지 않을 예정이라지만 지금은 무궁화호가 서고 있다.
덕하시장
덕하시장은 새 덕하역 을 들어가는 앞에 위치하고 있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전통 5일장으로 제법 크게 시장이 열리고 있다. 농산물과 어산물, 그리고 여러 가지 음식이 우리의 구미를 끌고 있지만 우리가 예정한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구 덕하역과 인증대
덕하역에 도착하여 다음 코스의 인증대를 찾으니 안내도에는 덕하역 오른쪽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동서남북을 다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인증대는 구 덕하역에 있다고 하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런 점이 해파랑길을 관리하는 단체에서 좀더 세심하게 안내도를 수정하거나 인터넷상의 안내에 고지하였으면 얼마나 편리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긴 길을 걷어 몸은 피곤해 있는데 찾아간 곳이 목적지가 아니라면 좀 짜증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파랑길 표지를 따라 계속해서 걸으면 다음 코스 안내도가 나오고 그 안내도 밑에 인증대의 스탬프가 있다는 것을 여러 코스를 걷고 나면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덕하와 같이 역이 바뀐 곳은 혼동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