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경주 동방역(폐역) 능소화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여름이 되기 시작하면 길가의 담장에 예쁜 꽃들이 많이 피기 시작한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꽃이 많이 있지만 이 계절에는 능소화가 마음에 드는 꽃이다. 능소화가 피는 곳은 많이 있지만 주변 환경과 어울려 예쁘게 피는 능소화를 보러 동방역 폐역으로 갔다.

 동방역(東方驛)은 동해남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불국사역과 경주역 사이에 있다. 1918111일 무배치간이역(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77년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 코레일(Korail) 대구본부 소속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에 있다.

 

동방역의 모습

 

 능소화는 동방역에 피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역 건물에서 걸어내려오면 큰 길이 나온다. 거기에서 왼족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바로 능소화가 핀 담장을 볼 수 있다.

 

 능소화(Chinese trumpet creeper)의 꽃말은 명예, 자랑, 영광, 기다림이며,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주로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지의 곳곳에서 공기뿌리가 나와 다른 물체를 붙잡고 줄기는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길이가 10m에 달한다. 꽃은 7-8월에 꽃은 새로 난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피며 노란빛이 도는 붉은색이다. 민가 주변에 관상용으로 식재하며, 꽃은 약용으로 쓴다.

 

 능소화를 구중궁궐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능소화에 대한 가슴아픈 전설 때문인 것 같다.

 

 옛날에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소화는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에 빈의 자리에 앉아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임금은 그 이후에 빈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았다. 소화는 궁궐 여인들의 시샘과 음모로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하게 되었는데 소화는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너머를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임금을 기다리다 세상을 뜨게 되었다.

 초상조차도 제대로 치루지 못한 채 담장 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고 유언한 그녀의 뜻대로 시녀들은 소화를 담장에 묻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라고 한다.

 

 한 여인이 왕이 아닌 지아비를 그리는 마음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전설이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능소화

 

 능소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이 있지만 이 동방역 폐역의 능소화는 무언가 소박한 정감을 주는 곳이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나무 판장의 담장이 너무 잘 어울린다. 과유불급이라고 하는데 너무 무리를 지어 피어 있으면 좀 추하게 보아고 너무 적은 수의 꽃이 피어 있으면 좀 초라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 곳의 능소화는 너무 알맞게 피어 있는 듯하였다. 더구나 시멘트 담장이나 그냥 흙 언덕에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판의 담장에 피어 있는 것이 너무 조화를 잘 이루어 아름답게 보였다.

 

 담장 너머로 나를 찾아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며 혹시나 오시나하고 바라 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형상화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