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 후예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역사적 건물들이 흩어져 있는 후에(Thành Phố Huế/ 城舖化)는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트어티엔후에성(Thừa Thiên-Huế / 承天-化)의 성도로 1802년부터 1945년까지는 베트남(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인구는 약 삼십만으로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위치하고, 얕고 넓은 흐엉(香)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남제국의 왕궁 다이노이가 있는데 후에(阮)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南越)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년경에는 참족(族)이 지배하였다. 이후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구엔가(家)의 수도가 되었으며,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구엔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 뒤 현대 베트남 역사에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1949년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이 수도를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으로 정하면서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공습으로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 도서관, 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 후 재건사업을 추진하여 일부가 복구되고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전통을 간직한 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에에는 왕릉이 여러 곳이 있는데 한 곳만 둘러 보기로 하고 민망황제릉으로 갔다.
민망황제릉은 중국문화를 선호했던 민망황제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는데, 황제릉은 내 외부 장식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입구에 들어서면 납작 돌을 깐 정원과 묘 앞의 초승달 모양의 인공 호수 등이 중국식 건축미를 자랑한다. 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 아래쪽에 문무석 및 동물 모양의 석상들이 늘어서 있다. 후에 왕릉 가운데서 특히 손꼽히는 곳이다.
민망황제릉 입구
황제릉 안내도
입구를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연못
황제릉 내부 - 능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큰 정원과 같다.
실제 능이 있는 곳은 출입금지
황제릉을 뒤로 하고 유명한 티엔무사원으로 갔다.
티엔무 사원(베트남어: Chùa Thiên Mụ)은 강을 따라 도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이 도시의 공식 상징이기도 하다. 높이 약 21m인 칠층 팔각 탑에는 각 층마다 불상을 모셨고, 옆에는 시내까지 소리가 울린다는 범종이 있다. 탑의 양 옆으로는 두 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큰 거북의 등 위에 세워진 비석이 다른 하나에는 2톤이 넘는 거대한 종이 자리잡고 있다. 뒤뜰에 있는 자동차는 불교 탄압에 저항해서 분신자살을 기도 했을 때 이 절의 주지승 타고 있었던 차이다.
티엔무사원 안내도
티엔무사원의 유명한 칠층 팔각탑
티엔무사원의 여러 모습
흐엉 강 유람 보트
베트남의 도시에는 '씨클로'라고 부르는 관광객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인력거와 비슷한 자전거로 운행하는 택시 같은 것이 있다.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없지만,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가지 요금을 피하기 위해 탑승하기 전 요금을 흥정하는 것이 좋다. 하노이에서 이와 같은 것을 타고 난 뒤에 요금으로 시비가 붙은 일이 생각났다. 이 씨클로를 타고 후예 거리를 완상하면서 황궁으로 갔다.
씨클로를 타고 있는 관광객들과 씨클로
씨클로를 타고 들어 가는 왕궁
씨클로를 타고 보는 시내와 황궁
가장 뛰어난 관광지이자 볼거리는 후에 황궁(베트남어: Kinh thành Huế, Imperial City, Huế)으로서 인근에 황제가 머물던 궁과 묘가 있다. 후에 전체를 통틀어 흐엉강의 북쪽 지역인 구 시가지에 대부분의 유적이 자리한다. 응우옌 왕조의 황제는 성 안에서 머물렀는데 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성 안쪽의 왕궁은 금지된 도시였고, 오직 황제들과 첩들 그리고 측근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사형을 당하였다. 후에의 역사 관광지로서 유지하기 위하여 재건축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오늘날 금지된 영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쳐 이어진 응우옌 왕조의 왕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이자 궁전이다. 이곳의 뜰은 가로 세로 각각 2킬로미터, 높이 5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성벽은 다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해자에 담을 물은 후에를 관통하여 흐르는 흐엉강에서 끌어왔다. 이러한 구조물을 시터들(citadel)이라고 한다. 시터들 안에는 거의 2.5킬로미터의 방어선을 구축한 왕궁이 있다. 관광객이 입장하는 왕궁의 정문인 남문 누각에 오르면 왕궁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남문 정면에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지은 디엔타이호아(베트남어: Điện Thái Hoà)가 있으며 디엔타이호아의 왼쪽에 각 왕의 위패가 모셔진 사원인 현임각이 있다.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 중국의 자금성에서 명칭을 딴 황제를 위한 인클로져(enclosure)인 자금성(베트남어: Tử Cấm thành, the Pu)이 있다. 이름만을 본 딴 것이 아니어서, 자금성에는 수많은 궁전과 문, 궁정들이 있다. 자금성은 응우옌 왕조의 황족들을 위한 곳이었다.
후에의 상징적 존재인 플래그타워 - 베트남 국기가 팔럭인다.
후에 황궁은 정해진 시간에 안내인을 따라서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관광회사에서 무리를 모으고 정해진 시간에 베트남 해설자를 따라 들어갔다. 관광객들은 동서남북의 4개의 문 중에서 남문인 응오문을 통하여 들어간다. 중국의 건물을 본따 만든 곳인데 이곳에서 1945년 베트남왕조의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응오문
왕궁의 중심에 있는 태화전 - 돌바닥에 관직을 표시하는표지가 있다.
후에황궁 안내도
태화전 앞 뜰과 내부
태화전은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모방한 궁전으로 응오문 정면에 있다. 1803년 초대 황제 기륭제때 창건하였고, 이곳에서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을 환영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중앙의 대좌 위에는 황제가 앉은 금박의 옥좌가 있다. 태화전 앞에 있는 연못의 다리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다고 한다,
태화전 앞 뜰
황궁 내부이동에 이용하는 전동차
현임각 - 비록 색은 바랬지만 후에 건축을 대표하는 사원
현임각 설명판
현임각을 외부 벽면과 기둥의 그림들 - 퇴색했지만 아름답다.
현암각의 앞 뜰에 놓여 있는 역대 황제를 상징하는 세발 솥
황궁의 문
후에 황궁을 돌아보고 난 뒤에 짧은 베트남 중부지방 여정을 마치기로 했다. 무료한 시간에 잠시지만은 베트남 중부를 주마간산식으로라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않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다음 기회에 준비를 하고 차분하게 다시 올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며 저녁을 먹고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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