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피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아테네를 떠나 피르고스로 간다. 피르고스로 가는 이유는 올림피아를 가기 위해서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올림피아를 구경하지 않고서는 고대 그리스문명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올림피아는 너무 멀다. 아테네에서 약 260KM정도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올림픽의 성화를 채화하는 올림피아가 아테네 근방에 있는 줄로 착각한다. 펠레폰네소스 반도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피르고스까지는 버스로 약 5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올림피아는 또 더 가야 한다. 아테네에서 올림피아를 하루에 다녀올 수가 없어 피르고스에서 일박을 하기로 하고 아테네를 떠났다.

 그리스 장거리버스는 좀 특이하다. 버스를 타니 옛날 우리 버스의 차장같은 사람이 돌아다니며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다. 처음에는 파는 것인줄 알았는데 조금 지나서 보니 무료로 나누어 준다. 장시간의 여정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준다. 거리는 그렇게 멀지는 않는데 우리와 달리 도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나라처럼 교통이 편리한 나라도 사실 얼마 없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늦게 피르고스에 도착하여 숙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올림피아로 기차로 30분 정도 걸려 이동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올림프스는 신화의 산이고 내가 가는 곳은 올림피아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북서쪽 그리스 엘리스 지방 크로노스의 언덕(123m) 기슭에 있으며 제우스의 신역으로 고대올림픽제전이 개최되던 신성한 곳이다. 제우스의 신역 이전부터 대지의 신의 신탁소로 알려졌다. BC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그 주변에서 발견되었으나 신역은 BC 1000년 전후로 소급된다. 출토된 종교적 봉헌물BC 800년의 것이었다.

 

 신역은 헤라클레스가 만들었다고 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속에는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제우스제단, 헤라신전, 펠롭스신전 등이 있고, 북쪽에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서 헌납한 11개의 보물창고가 늘어서 있었다. 또한 경기 우승자의 상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었다. 신역의 동쪽에는 경기장이 있고 서쪽에는 체육관, 레슬링 경기장, 숙박소 등의 여러 건축물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올림피아의 영광은 서기 393년에 막을 내린다. 기독교신앙의 열정이 가득 찬 테오도시우스 1세가 우상 숭배라 하여 제전을 금지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는 델피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그리고 426년 테오도시우스 2세가 이교 신전 파괴를 명령하여 신역의 파괴가 시작되었고, 심지어 그리스 예술의 산실인 페이디아스를 교회당으로 개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대의 탈레반이 바이만 석불을 파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종교가 가진 긍정적인 힘도 크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만행도 많다. 다시 6세기에는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철저히 파괴되고 묻혀버렸다. 1829년 프랑스인이 발굴을 시작하였고, 18741881년에 독일인이 조직적인 발굴을 하여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이라고 하는 헤르메스상과 제우스 신전의 박공 등이 출토되었다.

 

 이 올림피아의 발굴이 모범적안 것은 이곳에서 발굴되어 수습된 유물은 모두 그리스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의 베를린박물관이나 영국이나 프랑스의 박물관이 아니라 올림피아의 박물관에서 올림피아의 유물을 볼 수 있다. 192843년과 최근에도 발굴이 계속된 결과 스타디움도 발굴되고, BC 457년의 금상아제 제우스상과 그 상을 만든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및 사용한 도구 등도 출토되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올림피아의 얼굴 제우스신전

 

 

 

 

피르고스역과 올림피아역

 

 

 

 

올림피아시내의 올림픽 기념관과 승리의 조각상

 

 기차를 타고 올림피아역에 도착하니 내리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아들뿐이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조그만 우산을 가지고 다녔기에 우산을 펴고 올림피아 거리를 걸어가니 먼저 마주한 곳이 올림픽기념관이다. 문을 닫아 놓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여기가 올림픽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념관을 뒤로하고 올림피아로 향한다. 올림피아에 도달하니 관광객은 아무도 없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올림피아에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다. 그리스의 웬만한 유적지에는 그 마을의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입장권을 발권하고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참 좋은 정책이라고 느꼈다. 노인들에게도 소일거리를 주고 자기 고장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게도 하는 정책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일에 종사하기에는 젊음이 아까운 일이다. 젊은이들은 좀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든다.

 

 

 

 

올림피아 설명판과 입구

 

 

 

올림피아유적 설명도 - 상세하게 되어 있다.

 

올림피아는 거의 다 파괴되었고 옛날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건물은 몇 개 없다. 돌무더기만이 뒹굴고 있다. 단지 이곳이 올림피아라는 설명이 곳곳에 있다. 그설명을 보고 '아, 여기가 거기구나!'하고 구경할뿐이다. 먼저 보이는 유적이 온천이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며 다음 경기를 위해 관리를 하는 곳이리라.

 

 

 

 

 

 

올림피아 유적과 설명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

 

 

 

크로니온 온천 설명과 유적지

 

 

 

  

 

김나지움 유적지와 선수들이 연습하던 팔라이스트라 연습장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이 초대되어 축하를 받았던 장소, 프리타니온

 

 

 

 

 

 

 

 

 

 

 

 

 

 

 

 

 

 

 

 

올림피아의 여러 유적들

 

 

 

 

 

 

제우스신전

 

 올림피아에 있는 알티스 성역에는 장엄한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있다. 제우스 신전 뒤에는 성스러운 올리브나무가 있는데, 그 가지로 우승자를 위한 올리브관을 만들었다.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472년 지었다고 전한다. 이 신전은 그리스에서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신전중 하나로, 규모는 높이 21.79m, 너비 30.44m, 길이 73.70m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몇 개의 기둥과 기둥이 무너진 흔적만 남아 있다. 건축가는 엘리스 출신의 리본(Libon)이고 건축양식은 도리아식이다. 신전 내부에는 유명한 그리스 조각가 페디아스(Pheidias)가 만든 천지의 최고 통치자 제우스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상아와 금으로 장식된 이 조각상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으로 칭송받았다. 이 신상은 훗날 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그곳으로 옮겨졌는데, 475년에 일어난 화재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니 안타깝다.

 

 또 정면 프리즈(천장과 기둥 사이에 해당하는 곳)에는 멋진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해요. 이조각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레오니다이온 (Leonidaion) 유적

 

 이 건물은 BC 330년경 낙소스섬의 부호 레오니다스(Leonidas)가 설계하고 기증했다고 한다. 성역 남서쪽 가장자리에 있었으며 당시 일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당시엔 초대 손님이나 올림경기대회 선수들을 위한 숙박소로 사용되었다. 138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4개의 주랑이 있으며 건물 가운데에는 연못이 있는 정원이 있는 엄청난 크기의 건물이었다.

 

 

 

 

경기장 입구와 경기장

 

 제우스신전을 보고 헤라신전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으로 가면 고대 올림픽의 경기장이 나온다. 운동장 앞에는 보물창고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운동경기를 즐겼다. 그들은 전쟁을 하다가도 올림픽기간에는 휴전을 하고 경기를 즐겼다. 오늘날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연 오늘의 올림픽을 고대올림픽과 같이 순수한 평화의 제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상업주의에 물들어 참가보다 메달을 따는 것에 더 열중학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올림픽은 제우스를 기리는 종교적 행사의 일부였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모두 개인 자격이었고 어떤 국가나 집단을 대표하지는 않았다. 오늘날의 올림픽과는 좀 다른 성격이다. 선수들은 모두 남자였고 나체로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관중은 당연히 남자들뿐이었다.(다른 설로는 미혼의 여자는 구겨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오직 한 여자만이 경기를 관람했다는데 그 특권은 엘리스의 공주에게 주어졌다고 한다.(다른 설로는 기혼 여자 가운데 테메테르 여자 신관만 구경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여자들의 경기는 올림픽과는 다른 날에 헤라여신을 경배하는 '헤라리아'라는 경기를 열었다고 한다.

 

 이 경기장(스타디온)의 동서 양쪽 표석 중앙부의 거리를 재면, 올림픽 스타디움의 길이는 정확하게 192.27m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단숨에 달릴 수 있는 거리이며, 그가 큰 걸음으로 쟀기 때문에 다른 스타디움보다 길다고 한다.

경기장안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대리석으로 만든 출발선이 보인다. 관광객들은 여기에서 자기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되어 포즈를 취한다.

 

 

올림픽성화 채화의 모습

 

 

 

 

 

 

 

헤라신전

 

 

헤라신전 설명도

 

드디어 헤라신전이다. 내가 이 올림피아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다. 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방송을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번 2018평창 동계올림픽 성화채화를 볼 때도 저기를 언제 가보나 했는데 드디어 왔다. 성화채화는 헤라신전 앞에서 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 성화채화는 베를린올림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헤라신전 헤라이온(Heraion)은 재화나 예술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헤라 신전 남쪽에는 오각형으로 담장을 두른 펠롭스의 무덤이 있다. 헤라신전은 제우스신전보다 먼저 세워졌다고 한다.기원전 600년경 알티스라 불리는 이곳 성소에 세워졌다. 올림피아의 유적들이 모두 제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이나 그래도 비교적 이 올림피아에서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유적이다.

 

 올림피아를 돌아보는 동안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올림피아를 돌아보며 과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경기장에서 운동경기를 하는 모습.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 수많은 관중이 모여서 함께 즐기는 모습 등등...

 

 헤라신전을 보고 올림피아를 벗어나 이곳에게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간다. 앞에서 말했듯이 올림피아의 유물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를 여행할 때 올림피아를 와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올림피아 맞은 편에 있다. 크지 않은 박물관이다. 하지만 그 소장품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박물관 전경

 

 

 

 

올림피아에서 발굴된 청동 투구

 

 

메가라인의 보물창고의 페디먼트와 프리즈

 

 

 

 

제우스신전의 페디먼트

 - 라피타이안과 켄타우로스의 전쟁에서 평정을 잃지 않고 중심에 서 있는 아폴론 -

 

 

 

 

 

 

올림피아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

 

 

켄타우로스에게 추행을 당하는 히포다메이아. 히포다메이아의 얼굴 표정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상상이다. 어떤 사람은 체념을 누구는 열락을, 누구는 공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박물관 외부에 있는 조각상들

 

 

레스링경기 장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벽화

 

 

헤라신전에서 발굴된 올림피아박물관의 자랑인 헤르메스상이다.

완벽한 조형미로 헬레니즘 미술의 최고를 보여 주고 있다 한다.

 

 

승리의 신 니케상

 

 

 

 

 경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도기들

 

 

 

올림피아를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띄였다.

 

 

 

 

 

 올림피아와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 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올림피아를 벗어나 시내에 와서 늦게라도 점심을 먹었다. 그리스의 카페는 참 아름답게 꾸며 놓고 있다. 외양이 아름다운 카페에 들어가 양고기 꼬치와 해산물로 점심을 먹으니 후식으로 꿀을 바른 케이크 조각을 준다. 맛있게 먹었다.

 

 올림피아에서 많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이 올림피아를 건립라고 제전을 열었을까? 아마도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이 든다. 그 당시는 아직은 야만의 시대였을 것이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신에 대한 경배를 통해 질서를 얻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그리스는 결코 풍요로운 땅은 아니다. 척박한 땅에서 그들은 살아남았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 시절에 어떻게 하든지 전쟁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가 올림픽제전이 아니었을까? 신에 대한 경배를 제전이라는 형태로 승화시켜 이 제전기간은 '성스러운 휴전'이라는 묵시적 협정을 통해 평화를 추구한 것이라 생각된다.

 

 올림피아의 많은 건물들은 모두 올림픽제전을 위해 건립되었다. 하지만 지금 원형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은 없다. 폐허의 유적뿐이다. 하지만 그 유적에서 과거 올림픽의 흔적이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하다.

 

 올림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피르고스로 돌아와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고린토로 간다. 또 약 4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한다.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잊혀진 비극의 도시 테베(테바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델피를 구경하고 다음날 오디이푸스 비극의 무대인 테베(테바이)로 향했다.

 

 테베까지는 아테네에서 기차가 다니기 때문에 열차 시간만 제대로 알면 이동하기가 편리했다. 약 한시간 남짓 걸려 테베역에 도착했다. 한적한 도시였다.

 

 테베는 그리스어로는 ‘Thebai’라고 하며, 이미 BC 3000년부터 주민이 산 흔적이 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신화에서는 페니키아계의 카드모스가 이곳에 성을 쌓고 카드메이아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카드무스는 하르모니아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낳았지만 모조리 불행한 죽음을 당했다. 그 공주 중 하나인 세멜레가 제우스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가 풍요와 포도주와 주정의 신 디오니소스이다.

 

 중부 그리스의 제1도시로서 미케네 시대의 왕궁터가 남아 있고,  테베 주변의 고고학적 발굴로 이 지역이 미케네문명의 중요한 정착지였음이 밝혀졌고 그 시대의 유물도 많다.

또한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와 아이스퀼로스의 테베를 공격하는 7()’ 그리고 ‘안티오페와 그 쌍동이 아들등등 그리스 비극의 소재가 된 신화나 전설이 이곳을 무대로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그리스 초기에는 이 곳이 번영한 도시국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테바이에는 일곱 문이 있었으며,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와 그 아들들인 해당 에피고노이들은 각각 하나의 문을 맡았고, 방어를 하는 테바이도 각 문에 장수를 한 명씩 배치해 맞섰다.

 페르시아전쟁 중에는 페르시아 편을 들었고, 펠로폰네소스전쟁 뒤에는 아테네 편에 들어 스파르타와 대립하였다. 얼마간은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으나 오래 계속하지 못하고 패권을 잃었다. 그 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시가는 고대의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테바이는 위대한 영웅 헤라클레스가 탄생한 땅이며, 그로 인해 테바이 중장보병의 방패 문장에 곤봉(헤라클레스의 상징) 그림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테베(테바이)는 한적한 시골 도시이다. 그리스의 고대 도시국가가 자리 잡은 도시에는 모두 유적지를 보호하고 관광객을 끌어 모으려고 하고 있으나 테베는 버려진 유적이 황폐화되어 있고 보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저 고고학박물관이 옛날 한 때 융성한 도시의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을뿐이다.

 

 

테베고고학박물관의 도기

 

 

 

아테네에서 테베로 가는 기차와 테베 기차역

 

 기차를 내려서 역을 출발하여 유적이 있는 곳을 제대로 모르면서 시내를 하염없이 걷기로 했다. 아들과 나의 특기이자 장점을 살려 그냥 발길이 가는대로 구경을 하는 것이다. 물론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를 대강은 알고 간다. 구글 지도가 여행자에게는 구세주와 같다. 스마트폰을 켜고 구글지도만 연결하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옛날에 길을 모르면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고 해서 찾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길을 가다 보면 아름다운 모양의 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아름다운 집

 

 길을 가다 처음으로 마주친 유적이 암피온(The Amphion)이다. 조그마한 언덕이고 별다른 유적도 보이지 않는 테바이의 왕이었던 암피온과 제토스의 무덤이다. 암피온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바이의 왕이다. 쌍둥이 형제 제토스와 함께 테바이를 다스리며 일곱 성문이 달린 테바이 성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제토스와 쌍둥이 형제로 태어나자마자 키타이론산에 버려졌는데 양치기가 이들을 발견하여 길렀는데 암피온은 음악에, 제토스는 무술과 목축에 뛰어났다. 성장한 뒤 안티오페를 만나 신분에 대한 내력을 알고 어머니를 핍박하던 리코스와 그의 아내 디케르를 죽여 복수하였다. 테베의 왕이 된 형제는 성벽을 쌓아 나라를 굳건히 하였는데, 암피온이 리라를 연주하자 신묘한 음율에 돌들이 저절로 움직여 성벽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암피온은 일곱 줄로 된 리라를 본따 테베에 7개의 문을 만들었다. 테베는 이전에는 카드메이아라고 불렸으나 제토스의 아내 이름을 따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암피온은 리디아 왕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와 결혼하여 아들 딸을 각각 7명씩(또는 6명씩) 두었으나, 니오베가 자식을 많이 낳은 것을 뽐내어 레토를 모독한 벌로 레토의 유일한 아들과 딸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손에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 비탄에 빠진 니오베는 울다가 돌이 되었고 암피온은 자살하였다.

 

 

 

 

 

표지판이 없으면 아무도 알아 볼 수 없이 아무런 것이 없다.

 

 

 

 

테베 고고학박물관 전경과 고고학박물관과 연결되어 있는 테베의 옛 성곽의 일부

 

 

박물관에서 보는 테베의 시내

 

테베고고학박물관은 조그마하다. 하지만 테베의 유물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놓았다. 이 잊혀져 가는 도시에서 과거의 영광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박물관을 들어가면서 오른쪽으로 큰 석조물이 보인다. 과거 테베 성곽의 일부이다. 고고학박물관을 이 터에 지었다. 이 박물관에는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조상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무언가 아주 유명한 작품둘은 아니지만 테베의 역사적 유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외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 - 온전한 것은 없다. 철저하게 파괴된 흔적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름다움이 빛나는 두 작품

 

 

 

 

 

 

 

 

 

 

 

 

 

 

 

여러 신화가 그려져 있는 도기들

 

 

스핑크스

 

 

아마 헤라클레스인듯......

 

 

 

 

 

 

 

 

 

박물관의 전시물들 - 테베의 신화가 그려진 벽화들이 훌륭했다.

 

 

 

 

박물관에 있는 옛 성터와 테베 주변도

 

 박물관을 나와 주변의 조그마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마을의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참으로 여유로운 풍경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테베의 시가를 목적지도 없이 거닐기로 했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여러 유적을 구경했다.

 

 

이 안내판을 보면 위의 유물들이 미케네시대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황량하게 폐허의 유적지만 보이는 미케네 궁전터

 

 

 

 

 

과거 도시의 방어벽의 자취 - 표지판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모르겠다.

 

 

 

 

 

 

 

 구글지도를 바탕으로아폴로 신전을 찾아갔다. 표지판에는 아폴로신전이라고 표시해 놓았으나 아무것도 없다. 그저 돌무더기 몇 개가 남아 있을뿐이다. 테베의 여러 곳을 다녀 보니 테베의 유적은 거의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되었다. 언제 테베가 황폐해졌는지는 신화에 의하면 일곱장수의 아들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하고, 역사에 의하면 알렉산더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한다. 누가 파괴했던간에 테베는 폐허의 도시로 남아 있다.

 

 

길가의 가로스 - 오렌지 나무(그리스 각 지역에는 오렌지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미케네 석실무덤 유적지

 

 

 

 

The Fountain of DIRKE - STREAM의 발굴현장

 

 테베를 이곳 저곳 다니면서 유적지와 시가를 구경하고 나니 어느 새 저녁이 되었다. 테베에서 아테네를 다니는 기차가 많지 않아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저녁을 먹고 나도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들과 의논하여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하였다.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식당가가 보여 그 중 한곳에 들어갔다. 테베에서는 제법 유명한 집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하루의 시작을 천천히 하는 것 같다. 아침에 아들과 내가 움직일 때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시간이 오후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보인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활동을 한다. 우리와는 생활패턴이 좀 다르다. 우리가 보기에는 게으르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여유가 없다. 모든 것이 자기 위주의 생각일뿐이다고 느낀다.

 

 

 

식당의 모습 - 연인들과 가족이 많았다.

 

 

우리식의 돈까스 비슷한 음식

 

 

그리스의 명물 문어요리

 

 

새우와 해산물 요리

 

 이 세 가지의 음식과 맥주 한병을 청해서 마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테베는 왜 이렇게 황폐하게 버려두는가?부터 그리스 맥주이야기, 세상의 모든 잡다한 이야기 등등 생각나는대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들과 여행을 하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언제 아들과 이같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아들녀석이 더욱 고맙게 생각된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거리를 걸어내려가면서 길거리의 오렌지를 보고 또 한마디 한다. 저 오렌지 따 먹어도 되는지.....

 

 오후 8시에 테베를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긴 여정이었다. 더구나 테베에서는 하루 종일 걸어다니느라 좀은 피곤하게 느꼈다.

 

 

 

테베역 근방의 레스토랑 - 상당히 분위기 있게 보이는데 영업을 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신성한 땅 델피(델포이)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고대인들의 세상의 중심 델포이

 

 아테네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성한 땅으로 여기는 델피(델포이)를 다녀 왔다.

 

 어느 날, 제우스는 독수리(혹은 비둘기) 두 마리를 날려 세상의 중심을 찾았다. 서로 반대편으로 날려 보낸 독수리가 만나는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정하고 그 곳에 원추형 돌(옴팔로스)을 땅속에 묻었는데 그곳이 바로 델포이다. 현재명은 델피(Delphi). 그리스 중부 지방의 고대도시로 그리스 제2의 고봉 파르나소스 남쪽 산허리, 파이드리아데스 암벽을 배경으로 멀리 코린토스 만의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에 있는 아폴로의 성지로 옛날에는 여신 가이아(Gaia, 대지)를 모셨으며, 지금도 그 성스러운 사적이 남아 있다.

 

 아테네에서 하루만에 다녀오기는 좀 먼 거리라 일찍 서둘러서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호텔을 나왔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찾기가 좀 어려워 택시를 타려니 아들녀석이 우버택시를 타자고 한다. 자기가 유럽에서 많이 이용하여 안다고 해서 우버택시를 호출하여 타니 참 편리하다. 요금도 인터넷으로 결제되어 우리식의 바가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리오시온 버스터미널에서 델피행 버스를 타고 약 3시간 정도를 가니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내려 준다. 버스터미널도 없이 길가에 간이 정류소만 있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여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가장 신성한 땅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고대인들에게는 하늘과 지하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온세계의 중심이라 여겼던 신성한 장소이다.

 

 기원전 6세기 아폴로의 신탁을 들을 수 있는 델포이 신전(sanctuary of Delphi)은 그리스와 그 주변 국가들에게도 성소로 여겨졌던 곳이다. 그들은 신탁을 얻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하였고 신탁을 얻기 위한 제물을 바치기 위해 그들의 보물창고를 이곳에 건립해 놓았다.고대 그리스 인들은 델포이를 세상의 배꼽(navel of the world)’이라는 뜻으로 아폴로 신전 가운데 옴팔로스(omphalos)라는 돌을 세웠다.

 

 이 조그마한 마을에 고대의 수 많은 유적이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 시대에 이와 같이 거대한 건축물을 건립할 수 있었을까?하고 의문에 잠기기도 한다. 매번 생각하지만 그 시대에 이렇게 험준한 곳에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예들이나 평민들의 노고가 있었을까를 생각된다.

 

 아침 일찍 아테네를 떠났기에 먼저 가볍게 아침을 먹으려고 카페에 들어 갔다. 그런데 카페에서 보는 경치가 두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협곡위에 카페가 줄지어 서 있는데 어느 곳을 들어가도 깊은 계곡과 저 멀리에는 고린토만의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다. 참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며 신탁을 받을 수 있는 장소라고 느껴진다.

 

 

델피의 신탁인 아폴론 신전

 

 

버스에서 내려 보는 델피의 풍경 - 저 멀리 고리토만이 보인다

 

 

 

 

버스정류소에서 유적지로 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 온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드는 푸른 하늘이 머리위에서 빛나고 있다 -

 

 버스정류소에서 가까운 유적지는 델피 성역(아폴론신전 지구)이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테네프로나이아 성역에서 거슬러 올라오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12월의 그리스는 파란 하늘이 빛났다. 핀란드에서 계속 우중충한 하늘만 보다가 티없이 맑고 깨긋한 하늘을 보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더구나 미세 먼지에 찌든 한국의 하늘을 보다가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맑은 하늘을 보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그리스 여행에서 우리가 즐긴 것 가운데 하나가 맑고 푸른 하늘이다. 기온이 제법 높았다. 좀 걸으니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햇빛이 따가왔다. 한가한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아무 것도 다니지 않아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면서 걸어가니 여러 나라의 국기를 게양한 것이 보이는데 우리 태극기도 게양되어 있었다.

 

 한 20분 정도를 걸어가니 아테네 사람들이 세운 아테나여신의 신전과 성역인 아테네프로나이아 성역 (Sanctuary of Athena Pronaia)이 나타난다.  '프로나이아'란 신전앞이라는 의미로 아폴론 신전에 가기전에 아테나신전이 있다는 뜻이다. 현재도 버스로 아테네에서 3시간여가 걸리는 거리인데 고대에 이곳에 아테네의 주신인 아테나신전이 있다는 것은 도시국가 아테네가 아주 강력했음을 나타낸다.

 

 

 

델피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시

 

 

아테나프로나이아 성역 설명 표지판 

 

 

 

 아테나프로나이아 성역 전경 

- 톨로스(원형건물) 앞에 돌무더기가 새로 지은 아테나 신전이다 -

 

 

 

 

구 아테나 신전 유적

 

 

 

 

 

 

 

새로 지은 아테나 신전 유적

 

 

 

 

톨로스의 모습

 

 톨로스는 너무나 유명한 기둥이라 관광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원형건물이다.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남아 있는 세 개의 기둥만으로도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와 아마조네스의 전투장명을 묘사한 메토프(도리아 건축 양식의 프리즈에서 두 개의 트리글리프 사이에 위치한 사각형의 패널)는 델피고고학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이 톨로스가 너무 유명하고 신전은 폐허가 되어 돌무더기만 남아 있어 사람들은 이 톨로스를 신전인양 착각하기도 한다.

 

 

 톨로스 왼쪽 위에 유적이 보물창고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신에게 봉헌했던 보물들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두개 중 서쪽의 것은 '마실리아의 보물창고'이다. 지금의 프랑스 마르세유의 교역항으로 번창했던 도시국가인데, 이것으로 보아 이 당시에 얼마나 이 델피가 신탁으로 유명한 고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심지어 이집트까지 그 신탁의 유명함이 널리 퍼져 신탁을 받기 위해 이 델피에 머무러는 기간이 심지어 1년을 넘기도 했다고 한다.

 

 

 

아테네 프로나이아 성역

 

 이 아테네프로나이아 성역을 구경하고 다시 델피 마을쪽으로 조금 걸어 가면 김나지움유적지가 나온다. 젊은이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한 장소로 대부분의 도시국가에는 김나지움이 있다. 특히 이 델피의 김나지움은 4년마다 열렸던 피티아제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경연을 준비하는 곳으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간 때에 이 김나지움에 직접 내려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는 김나지움의 규모를 생각하면 지금의 올림픽경기장만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육상을 하던 직선주로는 100m도 훨씬 넘어 그 크기가 우리를 압도한다.

 

 

 

 

 

 

김나지움 표시

 

 

김나지움유적

 

 김나지움유적지로 내려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만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그 규모에 감탄하고 델피신전쪽으로 가면 카스탈리아의 샘(Kastalian Spring)이 나온다. 지금은 거의 황무지화 되어있지만 표지판과 샘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석축물이 있다. 신성하게 여겨지는 샘이다. 피티아 여사제가 신탁을 전하기 위해서나, 아폴론 신전으로 들어가기 전이나 운동선수나 사제와 순례자들이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 이 샘에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했다. 수조 위의 바위에 있는 움푹하게 파여있는 곳은 샘물의 요정 카스탈리아에게 바치는 봉헌물을 담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계곡에는 월계수가 많이 자라는데 델피의 피티아 경기의 승자에게 월계수로 만든 관을 씌어 주었다 한다.(참고로 올림픽 제전에서는 올리브관을 사용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붕괴의 위험이 있다하여 출입을 금지해 놓았다.

 

 

무엇인가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분명히 의미가 있어 찍었는데 기억이.....

 

 

 

카스텔리아의 샘

 

 이 샘을 지나 이제 델피의 신탁과 전설이 서려 있는 가장 중요한 유적인 델피성역이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는 신탁을 받기 위해 그 당시의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 신탁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테오도시우스 1세가 델피를 폐쇄할 때까지 성행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탁을 우상숭배라하여 델피를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이런 점에서는 종교의 잔인함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신탁에서 얻은 예언은 무수히 많겠지만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유명한 '오디이푸스의 비극'이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델피 신탁에서 '아들에게 살해 당한다'는 신탁을 듣고서 만들어진 비극이다. 내용은 대부분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생략한다.

 

 

 

델피성역 안내도와 입구

 

 

 

 

성역입구에서 보는 성역의 풍경

 

 

 

 

신성한 길

 

 성역 입구에서 아폴론신전을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길이다. 이 길을 '신성한 길'이라 칭한다. 신탁을 받기 위해서 온 정신을 가다듬고 경건하게 걸었을 길이다. 이 길의 주위를 보면 고대 여러 국가들의 보물창고를 볼 수 있다. 그 봉헌물이나 선물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다고 전하니 이런 보물창고도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탁을 얻기 위해 봉헌물을 보관하거나, 신탁을 빨리 얻기 위해 순서를 빠르게 받기 위해 그 당시 델피 주민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다 한다. 리디아사람들은 신탁의 순서를 빨리하기 위해 델피시민 전체에게 황금 10돈씩을 선물했다고도 한다. 얼마나 신탁의  효용이 필요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상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신탁을 얻는 것도 재물이 필요했다는 것은 오늘날이나 그 때나 돈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시프노스의 보물창고

 

 

 

 

아테네인의 보물창고 - 물론 복원한 것이지만 도시국가들의 보물창고 중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테네인의 스토아

 

 

왼쪽 앞에 보이는 기둥이 트리푸스(세발의자)를 받치는  청동기둥이다. 복원한 것인데 진품은 어디에.......

 

 

 

 

 

 

 

 

 

 

 

 

 

 

 아폴론신전의 여러 모습 - 거대하고 장엄하기까지....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아폴론신전은 델피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고대 그리스의 심장부에 있다. 이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한복판을 상징한다. 실제로 그리스인은 이 신전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었다. '옴팔로스'(배꼽)라는 이름의 돌이 그곳을 표시하고 있으며, 돌을 중심으로 잘 생기고, 남성적이고, 전능한 그리스의 신 아폴론에게 바치는 신전이 세워졌다. 이곳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널리 경배 받던 신탁이 내려지는 장소가 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하던 그리스 도시 국가의 군주들은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아폴론의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곤 했다. 

 지금은 6개의 기둥만 남아 있지만 처음에는 38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신탁의 가장 중요했던 장소는 피티아(무녀)가 신탁을 받기 위해 앉아 있던 장소인데 그 의자가 트리푸스(세발의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지의 배꼽인 옴파루스가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그런데 트리푸스(세발의자)의 발의 진품은 어디에 있는가? 위에서 본 것은 복원한 것이다. 그 궁금증은 터키에서 풀렸다. 이스탄불의 술탄아흐멧광장에 가면 이상한 청동기둥이 놓여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물이라 궁금했는데 바로 이 트리푸스의 받침대 발이었다. 그리고 이스탄불고고학박물관에서는 이 트리푸스의 뱀의 머리를 보관하고 있다.

 

 이 아폴론 신전의 비문 중에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쓰여 있었는데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이 아니라 이 벽에 쓰여진 문구를 보고 소크라테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한다. 지금은 확인할 수가 없다.

 

 아폴론신전을 한참이나 보고 즐기고 다시 발걸음을 위로 향해 가면 고대원형극장이 나온다. 피티아제전에서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보존 상태가 좋아 오늘날에도 여름에는 공연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에 신탁의 신성한 장소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리스문명을 구경하면서 각 도시의 유적마다 원형극장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술을 즐겼는지가 상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많은 유적들이 관심을 끌었지만 이 원형극장이 나의 시선을 더 끌었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내가 본 원형극장만 한번 사진으로 비교하여 보여 드리려고 한다.

 

  

 

 

 

 

 

고대원형극장

 

고대극장을 구경하고 그 길을 따라 위로 가면 스타디온(Stadion)이 나온다. 델피성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피티아제전에서 스포츠경연이 열리던 장소이다. 그런데 트랙의 길이가 장난이 아니게 길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약 200m는 될 것 간다. 내 카메라가 조금 부실하여 최대한으로 찍어 보았으나 그 전체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스타디온

 

 이 스타디온을 끝으로 델피성역을 뒤로 하고 델피성역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을 전시한 델피고고학박물관으로 간다. 델피성역에서 마을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는 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그 의미를 따지면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중 하나이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모두 델피성역과 아테나프로나이아에서 발굴된 것이다. 박물관의 입구를 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든다. 바로 델피성역의 '신성한 길'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이 박물관의 주요한 유물들을 보시기를......

 

 

델피고고학박물관 전경

 

 

 

낙소스인의 스핑크스-카클라데스제도의 큰 섬인 낙소스인이 아폴론에 봉헌한 작품

 

사자가 끄는 수레를 타고 와서 거인을 공격하는 퀴벨레 여신

 

헤라클레스가 아폴론과 세발의자를 놓고 다투는 장면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형제상

 

 

전차를 모는 청동 마부상 - 피티아제전 전차경주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바친 청동상 4마리의 말과 마부상이 한 세트라 하는데 말들은 어디에 달려 가버렸는지 알 수가 없고, 마부만 남아 있다. 생생한 표정이 압권이다.

달려간 말들은 지금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델피 도기 -까마귀 앞에 술을 붓고 있는 아폴론

 

 

여러 가지의 유물들

 

 

델피성역의 모형도

 

 

옴팔로스 - 위키백과에서 가져옴(델피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해서.....)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시간이 제법 늦었다. 마을로 돌아가서 카페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 조그마한 델피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옛날부터 이곳에 신탁이 있엇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아테네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을 돌아 보았다. 마을을 다 돌아 보아도 1시간이 걸리지 않는 마을이지만 조그마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대부분이 카페와 호텔이었다. 호텔이라고 하지만 도시의 큰 호텔이 아니라 그저 마을 집을 개조하여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시간만 많으면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에 알맞은 마을이다

 

 

 

 

아름다운 델피의 마을 모습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과 그곳에서 보는 풍경

 

 그냥 우연히 들어간 곳인데 뒤에 알고 보니 상당히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델피에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해 주는 식당으로 소박한 가정식 요리를 메뉴로 하는 전통적인 그리스 식당이다. 음식도 상당히 좋았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좋았다.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제법 거리와 카페에 보인다. 이들은 우리와 달리 아침의 시작을 상당히 늦게 한다.

 

 오후 5시경 버스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아테네에서 델피까지 왕복 6시간을 버스를 탔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여정이었다.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신들의 고장 아테네 3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그리스문명의 보물창고 - 국립고고학박물관

 

 오늘 일정은 아테네를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여정이다. 아테네에 몇 일을 머물면서 여러 곳을 보면서 즐겼지만 아테네의 십분의 일이라도 알았는지가 궁금하다. 여행자가 아무리 잘 돌아다녀도 그 도시를 다 구경하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수 십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다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하물며 타국의 다른 도시를 몇 일만에 다 이해하고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자신이 보고 싶은 곳을 보고 즐겼으면 만족하고 다음을 또 기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여행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아테네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아야 하는 것을 아들녀석이 잘 선택해서 즐겁게 돌아다녔으니 그 자체로 기쁜 일이다.

 

 오늘은 그 동안 유보해 놓았던 국립고고학박물관과 고대아고라를 중심으로 구경하고 펠레폰네소스반도로 떠나야 한다. 그 곳에서 보아야 할 곳이 너무나 많기에 아테네는 이 정도로 다음을 기약하여야 한다.

 

 아침을 호텔에서 해결하고 오모니아지구쪽으로 발길을 돌려 시내를 한가로이 구경하면서 도착한 곳이 유명한 국립고고학박물관이다.  저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아들과 나는 취향이 비슷하다. 그래서 박물관을 탐방하는 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견의 일치를 본다. 물론 내가 보는 관점과 아들이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취향이 같다는 것만해도 행복한 일이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세계 10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비잔틴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물과 조각품 및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아테네국립고고학박물관에 많이 있는 조각상을 통하여 고대 그리스인이 인간의 육체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미의 구현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또 이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둘러 보아야하는 곳이다. 그리스 각 지역에서 출토된 중요한 유물은 대개가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 고대 유적지는 황무지처럼 변해 있다. 물론 중요한 지역에는 그 지역의 박물관이 있지만 그리스문명에 대한 수집 전시품은 세계 최고로 꼽히는 곳이 이 박물관이다. 아테네에서 이 박물관을 보지 않고는 그리스문명을 말한다는 것은 소경이 코끼리를 만지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수집품의 중심은 에게문명 후기의 미케네의 출토품, 아르카이크기에서 고전기에 걸친 조각상, 묘비, 도기 등며, 중요 작품에는 아트레우스의 비보, 바페이오의 황금배, 알테미시온의 포세이돈, 안티쿠테라의 청년, 헤게소의 묘비, 말을 타는 소년상, 아포르디테와 판 등등 특히 유명하다.

 

 수 많은 작품과 유물을 보고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진으로 보여드리니 감상해 보시기를....

 

 

 박물관의 자랑 - 포세이돈(혹은 제우스라고도 함) 청동상

 

 

 

 

박물관 전경과 내부의 모습

 

 

쿠로스 - 아르카이카 시대의 전시실에 있는 청년나체상 중 하나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는 마블

 

 

 

포세이돈(혹은 제우스) 청동상

 

 

 

 

이 박물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인 '말을 타는 소년 청동상'이다. 힘차게 질주하는 말과 말위에 매달려 있는 소년의 조합이 좀 어색하게도 보이지만 힘차게 질주하는 말의 모습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내가 갔을 때 오딧세이라고 특별전을 하고 있다.

 

 

 

 

 

아테네의 두상(마블)

 

 

아프로디테와 판(양들의 신)

 

 

 

 

 

제목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흥미를 끈 작품이다.

 

 

말의 벽화인데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가 머리에 떠올랐다

 

 

 

 

 

 

 

 

 

각종 도기들

 

 

 

 

 

 

 

여러 가지의 조각상

 

 이 고고학박물관은 수십개의 전시실이 있다. 각 전시실마다 고유번호가 있어 시대순의 배열을 해 놓았다고 하나 그 번호에 억매일 필요는 없다. 그저 구경하고 즐기면 되는 것이니, 번호를 다툴 필요없이 입구에 들어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시간도 절약된다. 너무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니 주요한 유물을 중심으로 구경을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유물을 구경하는 것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방에 시간을 더 들이면서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저번에 갔으나 시간의 착오로 보지 못했던 고대아고라로 발을 돌렸다. 고대아고라로 가는 길에 또 모나스티라키광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오늘이 휴일이라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테네시민들 그리고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함께 섞여서 북적되는 광장에서 골목길로 가서 생과일 주스를 한잔 사먹어 보았다. 히모피이오(Xymopoieio)라는 가게로 광장옆 좁은 골목에 있지만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집이었다. 여러 종류의 주스가 있는데 주스를 주문하면 금방 짜주는데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여 구미를 돋우었다.

 

 

 

 

 

 

 

휴일에 북적거리는 모나스티라키광장

 

 

 

생과일 주스 가게 - 여러 종류의 과일이 보인다

 

 과일 주스를 한잔 마시고 잠시 골목을 구경하다가 고대아고라(Ancient Agora)로 발길을 돌렸다. 아테네에 아고라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이 고대아고라다. 고대아고라 바로 옆으로는 철길이 놓여 있어 수시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아테네 시내는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나온다고 하는데 고대아고라 옆의 철로 곁에도 유적지가 보였다. 고대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와 함께 서양 문명사의 첫 페이지를 연 곳이라 한다. 아크로폴리스의 북서쪽에 위치하여 아크로폴리스에서도 잘 보이는 아고라는 시장이면서도 정치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다. ‘모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아고라에서는 웅변가들의 연설도 들을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뿐만 아니라 역사가 헤로도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등등 수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열변을 토했던 아고라다. 기원전 6세기경부터 시장이 생겨났는데 당시에 시장을 보러 왔던 남자들이 물건을 사기도 하면서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던 아고라가 잡담과 토론의 장이 되었다고 한다. 아고라는 다양한 이야기와 정치적 의견이 오고 갔던 중요한 장소로 고대 그리스 국민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던 토론의 중심지였다. 이 고대아고라는 규모가 장난이 아닐 정도로 크다. 많은 유적이 있고 허물어진 유적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것은 '아틸로스의 스토아'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헤파이스토스 신전' '아그리파의 음악당' ' 아포스틀레스 교회'등이 중심되는 유적으로 우리의 눈을 끌고 있다.

 

 

북쪽출입구에서 바라보는 노천카페와 철길

 

 

 

고대아고라는 출입구가 남쪽과 북쪽 그리고 북서쪽 3군데에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북쪽출입구로 들어가서 아고라를 관람했다. 북쪽출입구의 표시와 아고라 전체의 설명판

 

 

북쪽출입구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북쪽출입구 안에서 보는 모습

 

 북쪽입구로 들어가 잠시 거닐다가 왼쪽에 있는 거대한 건물을 보고 거기로 갔다. 바로 '아탈로스의 스토아(Stoa of Attalos)'이다. 스토아란 기둥이 늘어선 복도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스토아에서 대화도 나누고, 토론도 하면서 그리스 민주정치를 만들어 나갔다 한다. 그리스의 유적 중에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어  그리스식 주랑의 모습을 이해하기가 쉽도록 보여 준다. 아탈로스의 스토아는 현재는 고대 아고라(Agora)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기원전 2세기 소아시아 페르가몬 왕국의 왕 아탈로스 2세(Attalos II)가 지어 아테네에 기부한 것이다. 기원전 159년에 착공해 21년 만에 완공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긴 건축물이었다. 이후 파괴된 것을 록펠러가문의 기부에 의해 1953~1956년 옛 양식과 형태를 그대로 살려 복원하였다고 한다. 록펠러가 부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해 주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장학재단이나 사회재단들을 설립하고는 자신들의 소유로 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행동이다고 느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나게 한다.

 

 

아탈로스의 스토아 전경

 

 

스토아 구조 설명

 

 

 

스토아(열주랑)의 모습

 

 전형적인 헬레니즘 건축물인 스토아(Stoa, 열주랑)는 2개 층으로 된 대형 시설로 아래층은 도리아식, 위층은 이오니아식 열주가 세워져 있다. 두 개 층은 건물 양 끝에 있는 계단으로 연결되고, 석회석 벽에 전면은 펜텔리(Penteli)의 대리석, 지붕은 타일로 덮여 있다. 스토아는 고대의 쇼핑몰 겸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사교 장소였다. 여름에는 태양을 가리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했다. 박물관내에는 암포라(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항아리)류, 신석기 및 미케네 시대의 도기, 무구 등 BC 17~19세기의 유물들과 기원전 7~5세기의 토기, 청동 유물, 조각품, 주화 등과 함께 비잔틴 시대와 투르크 점령기의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내부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금지해 놓아 아쉬웠다. 외부 주랑에는 아폴론 파도로스상, 데메테르상, 아프로디테상 등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다.

 

 

 

 

외부의 전시품

 

 

 

 

스토아에서 보는 아고라 광경

 

 

스토아에서 바라보는 헤파이스토스 신전

 

스토아를 구경하고 주변을 거닐다가 위로 올라가면 마주치는 건물이 '아포스틀레스 교회'이다. 이 건물은 고대 그리스의 건물이 아니라 비잔틴시대의 교회이다. 물론 복원된 건물이지만 그 형체를 온전하게 살펴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건물이다.

 

 

 

아포스틀레스 교회 전경

 

 

 

 

아포스틀레스교회에서 보는 아고라 풍경과 헤파이스토스 신전

 

 아포스틀레스교회를 돌아 여러 유적을 구경하고 거의 온전하게 원형이 보존된 건축물을 향하여 간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이전에 세워진 이 신전에는 아테네의 맹주 테세우스의 부조가 많이 있어 테세우스 신전으로 생각되어 테세이온신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발굴 도중 대장장이와 관련된 물품이 많이 나와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모신 신전으로 드러났다

 

 

톨로스(원형건축물)위 흔적

 

 

 

 

헤파이스토스 신전 전경

 

 

 

헤파이스토스 신전에서 보는 파르테논 신전

 

 

 

 

 

 

 

헤파이스토스 신전의 여러 모습

 

 헤파이스토스신전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 전쟁의 신 아레스의 신전터가 보이고 거기를 지나면 북쪽 출입구 가까이에 거대한 돌 조각 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유명한 '아그리파 음악당'이다. 로마제국의 장군 아그리파가 아테네에 기증했으며 당시 아고라에서 가장 큰 건물로 10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건물이었다. 음악당 입구에 6개의 거인상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거인상 1개와 2개의 트리톤(반인반어)이 남아 있다.  소크라테스가 즐겨 이곳을 찾아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었다고 한다. 3세기경 음악당이 파괴된 자리에 4세기경에는 체육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아그리파음악당

 

 이 음악당을 뒤로 두고 아고라를 벗어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늦었다. 아고라 북쪽출입구 맞은편의 길가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가니 북새통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고 있다. 이 아고라주변에는 노천 카페가 아주 번창하고 있었는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이 카페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 분위기를 즐겨 보았다. 그런데 그리스에는 왜 그렇게 고양이들이 많은지...... 저번 제우스신전에서도 고양이들이 돌아다녔는데 이아고라 주위에도 고양이들이 때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특히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에 고양이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어 음식물을 던져 주면 잽싸게 그 음식물을 먹고 다시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늦었지만 한가롭게 점심을 먹고 아고라 주변을 거닐다가 시내를 구경하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점심 - 왼쪽 : 야채와 고기, 오른쪽 : 각종 해산물(오징어, 새우, 멸치, 가재 등등) 멸치를 고양이에게 던져주면 고양이들이 잽싸게 다가와 주워 먹곤 했다.

 

 

 

 

 

거리에 펼쳐져 있는 여러 가게들

 

 

 고대아고라를 마지막으로 아테네관광은 끝났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곳도 많이 갔지만 어디가 어딘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워 생략했다. 그리고 거리를 걸어다니면 보았던 유명하지 않았던 여러 유적들....

 

 길거리 모두가 고대의 유적으로 꽉찬 도시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눈에 담고 마음에도 담았다. 책에서 보던 많은 사진들의 실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실감나게 하였다.

 

 호텔에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올림피아를 가기 위해 피르고스행 버스를 타러 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신들의 고장 아테네 2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시내 곳곳이 박물관과 유적지에 감탄

 

 여정은 아테네에서 잠시 델피(델포이)와 테베(테바이)를 다녀와서 아테네를 다시 돌아 보았으나 이야기의 전개상 아테네를 연속해서 전개한다.

 

 오늘은 신다그마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기로 계획을 세우고 호텔을 출발했다. 호텔을 나와 거리를 걸어가면 가로수로 오렌지를 심어 놓은 것이 자주 눈에 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리스 곳곳의 도시에는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었다. 오렌지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처음 목적지는 올림피아 제우스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이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네에게 바쳐진 것이지만 아테네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시내에는 모든 신중에서 가장 으뜸인 제우스신전이 있다. 거리를 구경하면서 처음 도착한 곳이 하드리아누스의 문이다. 올림피아 제우스신전을 완성한 하드리아누스황제를 기념하여 세우진 문으로 로마시대 구시가와 신시가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문의 위에 북서쪽 방향에는 '이곳은 아테네, 테세우스의 오래된 도시'라고 적혀 있고, 그 반대편에는 '이곳은 테세우스의 도시가 아니라 하드리아누스의 도시'라 적혀 있다고 하는데 알아 볼 수가 없다. 하드리아누스는 그리스문화에 매료되어 그리스의 영과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하드리아누스의 도서관과 이 제우스신전만으로도 그의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길가의 가로수 -오렌지

 

 

 

 

 

하드리아누스의 문

 

 

올림피아 제우스신전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제우스신전 설명

 

 

 

 

제우스신전의 전경

 

 

 

 

고고학 발굴 현장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은 고트족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84개(혹은 104개) 돌기둥 가운데 현재는높이 17m의 15개 기둥만이 남아 있는 코린트 양식의 건축물로 그리스 최대의 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가 더 크다. 제우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현재는 과거의 그 위용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많이 파괴되어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아름다움과 위용을 뽐내는 제우스 신전을 살펴보자. 이 제우스신전을 잘못 알아 펠레폰네소스반도의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신전과 혼동하는 일이 있는데 잘못 이해하지는 않기를......

 

 

제우스 신전 기둥

 

 

 

 

위풍당당한 제우스신전

 

 

제우스신전의 장식

 

 

제우스신전에서 보는 파르테논신전

 

 이 제우스신전을 뒤로하고 저번에 아크로폴리스언덕을 갔을 때 관람하지 않았던 아크로폴리스박물관으로 간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아크로폴리스의 진짜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에는 아르카이크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이 도시의 고전 보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파르테논신전에서 고작 244미터 떨어진 이 도시의 고대 신성한 바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옛날의 박물관과 구별하여 뉴 아크로폴리스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크로폴리스언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이 박물관에는 파르테논시전의 실제 크기로 전시하는 파르테논신전 갤러리가 특히나 눈길을 끈다.

 박물관의 최상층은 지금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는 파르테논 마블을 맞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유리 홀로, 홀 전체가 파르테논 신전을 거울처럼 비추도록 기울어져 있어, 파르테논 마블이 돌아온다면 옛날 신전에 걸려 있던 때와 똑같은 축으로 걸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단지 하나 기대에 어긋난 것은 사진을 일절 찍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특별히 보호해야 할 유물이나 미술품이 아닌 이상 사진 찍는 것을 막지 않았는데 이곳만은 박물관 내부 전체를 사진 촬영을 금지해 놓았다.

 

 아쉬웠다.

 

 

 

박물관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언덕

 

 

 

박물관 입구 - 고대 주택가의 모습

 

 

박물관 전경

 

 

 

 

 

박물관 주변

 

 

박물관 주변에서 보는 파르테논신전

 

 박물관을 나와 아테네의유적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가 카페에 앉아 파르테논신전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다시 아테네시내를 걸어간다. 길을 가다 보니 도시 속에 숲이 보인다. 국립정원이다. 복잡한 도심속에 넓게 형성된 정원이다. 처음에는 왕궁의 정원이었는데 지금은 아테네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있다. 다른 도시의 정원들과 별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고 조용하고 한적한 정원이라 잠간이라도 휴식을 취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정원의 모습

 

 

정원의 남쪽에 있는 자피온 - 1896년 근대올림픽의 펜싱경기장

 

 자피온을 지나 다음으로 간 곳이 비잔틴 크리스찬 박물관(미술관)이다.

기독교 성화를 중심으로 전시하는 곳으로 고대에서부터 여러 시대를 거쳐 다양한 성화를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 설립된 그리스의 그리스도교 고고학협회의 수집. 1922년 소아시아에서 온 망명자가 가져 온 전례()기구 등을 바탕으로 1930년 프랑스의 플레장스 공비(Duchesse de Plaisance)의  옛날 저택을 개조해서 개설하였다고 한다. 아테네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발견된 다수의 대리석 부조판, 이콘, 사본 등을 소장하며 아울러 수선하고 복구하는 연구소도 가지고 있다.

 

 

 

비잔틴미술관 전경

 

 

 

 

 

 

 

 

 

 

 

 

 

 

 

비잔틴미술관의 여러 성화와 전시품중에서...

 

 이 비잔틴박물관 바로 옆에 전쟁박물관(War Museum)이 있다. 사실은 주변에 소소한 박물관이 매우 많이 있지만 다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전쟁박물관은 외양만으로는 다른 예술박물관과 비슷하다.

 고대의 전쟁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에서 일어난 전쟁을 소개하고 각종 병기구들과 장신구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는 우리나라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이다. 이곳을 돌아보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기념물도 제법 많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곳에서 또 본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보는 것도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전쟁박물관 외부 표지판

 

 

 

 

 

 

 

 

 

 

각종 전시물

 

 

 

 

 

한국전쟁에 관련된 전시물

 

 

 

 

 

국회의사당과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교대식

 

 전쟁박물관에 들어갈 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비를 만나면 참 귀찮다. 우비를 입든지 우산을 펴든지 해야 하는데 행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니 불편하다. 박물관을 나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제법 많은 비가 쏟아져 어쩔수 없이 우산을 쓰고 길을 걸었다. 아테네시내를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제법 피곤하기도 했으나 우리는 또 시내를 가로지르며 숙소인 호텔로 갔다. 아들과 약속한대로 걸으면서 시내를 구경하는 것이다. 걷다보니 다다른 곳이 국회의사당과 무명용사의 무덤이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구경할 수는 없어 아름다운 외양만 보고 있으니 그리스 근위대의 교대식이 시작되고 있다. 아테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그리스정부가 자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곳에는 1950년의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기리며 KOPEA(그리스어로 한국)을 새겨 놓았다.

 

 이 무명용사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다. 오른쪽에는 '용감한 자들에게는 세상 어디라도 무덤이 될 수 있다.' 왼쪽에는 ' 무명용사를 위해 아직 비어 있는 관 하나가 오고 있다.'

 

 이 무명요사의 무덤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 왔다.

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신들의 고장 아테네 1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유럽 문명이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심장 아테네

 

 아들과 함께 여행하기로 계획하고 여정을 의논하면서 일정을 짜 보았다. 아들이 핀란드에 공부를 하고 있어 일단은 내가 핀란드로 가야하는 여정이다.

핀란드에서 몇 일을 머무르다가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서로 메일과 카톡으로 일정을 의논한 결과 고대 그리스문명을 돌아 보기로 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여행하려고 계획을 잡고 나서는 세부적인 계획은 아들이 탐구하여 나에게 알려 주었는데 대개 그리스와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세부적인 것은 아들에게 맡기고 터키의 카파도키아와 트로이는 꼭 가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아들이 이 장소를 고려하여 계획을 짰다. 아들은 대학에 가기전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을 다니는 지금도 경영학이 전공이면서 사학울 부전공으로 할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다. 이 점은 나와 취향이 같아서 관심 이야기의 주제가 비슷하여 말이 잘 통하기도 한다.

 

 아들과의 여행에 대한 추억으로 지난 2014년 여름에 둘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달을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러시아를 여행했던 기억이 새롭게 난다. 여러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한달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면서 어떻게 아버지와 성장한 아들이 한달이나 한께 여행을 하였는지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우리는 무사히 그 여행에서 서로에 대한 이헤의 폭과 깊이를 더 했고, 이번에는 다시 유럽고대문명을 같이 즐기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첫 여행지는 핀란드였지만 핀란드는 지나가는 과정에서 여정이었기에 따로 글을 작성하였고 본격적인 여정은 그리스와 터키를 중심으로 시작하였다.

 

 저번 러시아여행을 경험으로 이번에는 아들과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해 핀란드를 떠나 그리스를 가면서 둘이서 여행의 불문율을 서로 말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거스러지 않도록 서로 노력한다.

 2. 먹는 것은 전적으로 아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존중한다. 아들은 먹는 것을 중시여기는 여행철학이다.

 3. 되도록이면 시간을 아끼는 계획을 짜서 여행한다. 

 4. 저번 러시아여행과 같이 되도록 걸어다니며 스스로 여행을 즐긴다.

 5. 박물관과 미술관 등은 꼭 가보도록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불문율을 서로 지키도록 노력하면서 헬싱키에서 비행기로 아테네로 가면서 이번 여행은 시작된다.

 

 아테네공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아테네 시내에 미리 예약해 둔 호텔(Hotel Delphi)로 가서 짐을 내리고 늦은 저녁을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테네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다. 여행은 전적으로 아들이 가자는 곳을 나는 따라만 가면 되는 참 편리한 여행이다. 저번 러시아 여행에서 경험한 것 같이 아들은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전날 저녁에 나에게 이야기하는 기특한 면이 있으니 나는 그저 가자는 대로 가면 된다.

 

 호텔을 나와 걸어서 파르테논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로 가면서 시내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간다.

 

 제법 시내를 구경하면서 다다른 곳이 아크로폴리스의 한 측면인 모나스티라키광장이다.

 

 

 

시내에 서 있는 조상 - 누구의 상인지는 모르겠다.

 

 

 

 

 

아테네 시내의 모습

 

 이 광장은 아테네의 중심광장으로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과일상과 노천 카페와 온갖 물품을 파는 가게로 흥청거린다. 특히 신발이나 가방등을 파는 가게가 많은데 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누르느라 힘이 들었다. 특히나 신발은 가죽인데도 가격이 아주 저렴하여 그냥 구경만 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 시장 골목을 조금 들어가면 우리나라 벼룩시장과 같이 오래된 여러 장식품과 그림을 파는 가게도 구경할 수 있다.  이 골목길의 가게에서는 조그마한 기념품등을 사기에는 아주 편리하다. 또 여러 가지의 그림도 있었는데 여행을 마치는 시기이면 몇 점을 사고 싶었으나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물건을 사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워 눈으로만 구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참고로 이 광장의 이름은 '작은 수도원'이라는 뜻인데 광장의 모퉁이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아테네에 머무르면서 계속 이 광장을 와서 시장의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다.

 

 또 이 광장 주변에는 고대 아고라와 로만 아고라등 등 많은 유적지를 볼 수 있고, 또 이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언덕 전체를 조망하는 것도 좋은 구경이다.

 

 

 

 

광장모퉁이에 있는 수도원 - 뒷편 멀리에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 보인다.

 

 

 

 

 

 

광장의 모습

 

 

 

 

 

 

 

 

광장의 가게들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면 보이는 여러 장식품등을 파는 가게

 

 광장에서 시장의 여러 모습을 구경하면서 어디에서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생활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향해 걸어 간다. 곳곳에 고대의 유적이 즐비하게 있는데 모든 것을 다 구경하기에는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지나가기로 했다.

 

 골목길을 조금 올라 가면 처음 눈에 띄는 곳이 '하드리아누스 도서관(Hadrian Library)'이다. 서기 132년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황제시절에 지어진 가장 큰 도서관이라 한다. 아테네의 번성했던 학문과 예술의 학교이자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였던 장소이다. 명칭은 도서관이지만 교회나 그 밖의 건물이 표지판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옛자취만 남아 있을뿐이다. 이 유적지는 매우 특이하게 매표소가  유적지 안에 있으니 표를 구입할 때 조심해야 한다.

 

 

 

 

 

 

 

 

 

 

 

 

 

 

 

 

 

하드리아누스도서관의 여러 모습 - 그 당시로는 얼마나 웅장하고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을 조금 지나면 유명한 '로만 아고라(Roman Agora)'를 만난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으로, 그리스인들은 이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아고라(Agora)’라는 말은 원래 ‘시장’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아고라가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들의 일상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

 이 이름 그대로 로만 아고라(Roman Agora)는 아테네에 있는 고대 로마 시기의 유적지다. 아고라치고는 규모는 크지 않고 폐허로 변하여 유적지로의 존재만 드러내고 있지만 그 유적지안에 바람의 탑(Tower of the Winds)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곳을 둘러볼 가치가 있다. 마케도니아의 천문학자 키루스의 안드로니쿠스가 설계한 '바람의 탑'은 풍향계, 해시계, 물시계 구실을 했다. 건축 연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는 이 탑은 높이 13m에 직경 8m로 아고라 동쪽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위치하고 있다.

 탑 꼭대기에는 반인반어의 해신인 트리톤 형상을 한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끝이 뾰족한 그의 지팡이가 바람이 부는 방향을 가리킨다고 한다. 아래쪽에는 여덟 명의 바람의 신이 조각된 프리즈가 있는데, 이 신들은 각각 나침반 상의 해당하는 방향에서 오는 바람을 나타낸다고 한다.

 

 

로만 아고아 건축 설명

 

 

 

 

로만 아고라의 유적

 

 

 

 

 

바람의 탑

  

 로만 아고라를 구경하고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도중에는 조그마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곳곳에 보인다. 아테네 시내를 조망하며 한가로이 걸으면서 아들과 그리스 문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도 옛날에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좀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식은 아들놈에 비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어 되도록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듣고만 있으리라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산위에 웅장하게 보이는 파르테논신전을 향하여 한참을 걸어 드디어 아크로폴리스에 도착했다. 우리가 역사서에서만 보던 그리고 말로만 듣던 장소이다. 이 곳의 유적은 하나하나를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파르테논신전,아테네니케신전, 에레크테이온신전, 불르의 문, 디오니소스극장, 헤레도스 아티쿠스 음악당, 소크레테 감옥, 필로파포스 기념비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적이 우리의 눈을 끌고 있다. 이 곳을 제대로 돌아만 볼려고 해도 한 나절이상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 아크로폴리스의 핵심인 파르테논신전은 한창 보수공사중이라 아쉬웠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라가면서 보는 아테네 시내 - 푸른 하늘이 더 인상적이다.

 

 

 

 

멀리서 보는 아크로폴리스 - 멀리서 보는 풍경이 더 압도적이며 장엄하다.

 

 

 

아크로폴리스언덕 설명 표시판

 

   아크로폴리스언덕을 올라갈 때 가장 먼저 통과하는 문이 불르의 문이다. 3세기 중반에 헤를리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방어용 성벽의 일부로 지어진 것인데 이 지역을 발굴한 프랑스 고고학자 불르의 이름을 따서 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나의 성벽문임에도 그 크기와 장엄함이 우리를 압도한다, 이 문을 지나서 올라가면 왼편에'아그리파 기념비'가 있다. 아그리파의 기념비는 아테네 동쪽에 있는 이미토스 산에서 나오는 파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BC.178년 페르가몬 왕국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고대 아테네의 국가적 제의인 파나테나이아 제전의 전차경기에서 자신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받침대 위에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 후 BC.27년 아테네 사람들이 아테네의 후원자인 로마인 지휘관 마르코스 아그리파의 청동 기마동상으로 바꾼 후 오늘날과 같은 아그리파 기념비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동상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부터 2000년도 더 되는 그 때 이런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특히 산 중턱에 이 크고 많은 돌을 어떻게 옮겨왔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 당시 노예나 하층민들의 수고가 생생하게 떠올라 고소를 금치 못한다.

 

 

 

불르의 문(Beuie Gate)

 

 

아그리파 기념비

 

 

아그리파 기념비 설명

 

 

 

 

 불르의 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자그마한 신전이 보인다. 승리의 여신 아테네 니케 신전이다. 전쟁에서 늘 승리하기를 원하던 아테네는 여신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날개를 잘라내고 이 신전에 모셨다고 하는데 지금 아테네의 석상은 어디에 있는지....

 이곳에서 떠나 버렸다.

 

 

 아테네 니케 신전을 뒤로 하고 올라가면 파르테논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지나야 하는 관문이 나온다. '프로필라이온'이다.

 프로필라이온은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다. 그냥 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독립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파르테논 신전을 완공한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곧바로 그에 걸맞는 프로필라이온의 건설에 착수했다. 프로필라이온은 기원전 437년에 착공되었으나 기원전 432년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곧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건축물이다. 그리고 다음 해인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프로필라이온의 건축은 므네시클레스가 맡았다. 프로필라이온은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경사면에 세워졌기 때문에 계단식 건축물이다.

프로필라이온의 앞과 뒤로 각각 여섯 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졌다. 그 사이에는 여섯 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두 줄로 세워졌다. 북서쪽에는 부속건물인 회화관(파나코테케)이 자리잡았다.

 

 파르테논신전에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잠시 발길을 돌려 간 곳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다. 이 움악당은 아티쿠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여 세운 극장인데 6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이었다 한다. 현재에도 객석과 무대를 복원해 야외 언형극장으로 재탄생시켜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연극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 객석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주 호화로운 극장이라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헤로도스 아티쿠스 음악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디오니소스극장이 보인다. 오늘날 서양연극의 탄생지로 불리는 디오니소스극장은 유적으로만 남아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때 지어진 고대 아테네의 극장으로서 드라마 예술의 근원지였으며, 소실되었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 예술가이자 집정관인 리코우르고스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후에는 확장 공사를 통해 최대 17,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 상당한 규모였다.

 

 

 

디오니소스극장

 

 

티없이 맑은 아테네의 하늘 - 핀란드에서 우중충한 하늘만 보다가 푸른 하늘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드디어 그 유명한 '파르테논신전'에 다다랐다. 내가 책을 통하여 보던 그 장엄한 모습은  지금 복구공사중이라 조금 생뚱맡게 보인다. 하지만 그 전체의 규모와 자취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서양문명의 발원지인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이 신전은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서,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유네스코를 상징하는 마크로 사용될만큼 유명한 이 신전은 BC 447년에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하였다.  그 대부분의 조각은 영국의 수집가인 토마스 엘긴경이 수집하여 '엘긴마블스'라는 컬렉션으로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언제 역사적 유물이 제 자리에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다. 파르테논의 부조물과 조각상이 파르테논에는 없고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9, 20세기 제국주의의 팽배로 인한 강대국의 약탈이 오늘의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파르테논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전망대가 있다.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내가 이 곳에 왔다'라는 증명을 위해 사진을 짝기도 한다. 전망대에서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의 시가지를 조망해 보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다.

 

 

전망대의 모습

 

 파르테논을 구경하면서 쉬다가 다음으로 간 곳이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다. 소크레테스의 감옥은 파르테논에서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 곳을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 칭하고 유적지로 보존을 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가면서 구경을 한다. 창살로 막힌 동굴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었고 없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장소이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지나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올라간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서쪽 방향인 입구 쪽을 향해 건너편을 바라보면 삐죽한 기념비가 보이는 곳이다. 필로파포스는 로마 시대 때 아테네에 파견된 사람인데 아테네인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베풀었다. 아테네인들은 그가 죽자 기원전 116년에서 114년 사이에 당시 뮤즈의 언덕 정상에 추모 기념탑을 세웠다. 그 이후로 뮤즈의 언덕은 필로파포스 언덕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에 올라와 파르테논을 바라보면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찾아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다. 정작 전경을 볼 수 없는 아크로폴리스가 이곳에서는 훤히 보인다.

 

 

 

필로파포스언덕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

 

 

 

 

 

필로파포스 기념탑과 표지판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보는 아테네 시내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중심으로 이 일대를 구경하다 보니 점심 때가 벌써 지났다. 내려 오면서 길가에 많은 카페가 있어 점심을 해결하고 고대 아고라로 향했다. 그런데 무지의 소치라. 예정이 뒤틀리게 되었다. 아고라에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하고 보니 오후 3시면 아고라 입장이 끝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가볍게 그 주위에서 잠깐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시내를 구경하고 이런 저런 곳을 기웃거리다가 호텔 가까운 옷가게에 들렀다. 겨울이라고 생각하여 한국에서 두터운 옷만을 가져갔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하여 옷을 좀 바꾸어야 되었다.

 옷 가게에서 셔츠와 니트를 구입했는데 품질에 비하여 가격에 상당히 쌌다, 전체적인 물가가 우리나라에 비하여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하고 저녁을 먹자하니 아들놈이 자기가 생각한 곳이 있으니 가자고 한다. 떠나기 전부터 먹는 것에 대해서는 매 끼니는 아니더라도 한번씩은 좋은 식당에서 즐기기로 약속하였으므로 아무 말없이 따라가니 미슐랭 별이 두 개 붙은 Spondi라는 레스토랑이다.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식당이며 격식을 갖춘 웨이트들이 서빙을 하는 곳이었다.

 

 

 

 

 

레스토랑의 내부와 외부 전경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부탁하니 팁을 줄 것인지를 묻는다. 준다고 하니 계산서에 덧붙여서 나온다. 참으로 합리적신 계산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가격은 아주 비싸지는 않았다. 물론 아들녀석이 적당하게 시켰기 때문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호화로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자주 먹기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지불해야 하였다. 젊은 아들이 나이든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해 준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모든 경비를 다 된다고 해도 과연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는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2014년 아들과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러시아여행을 다녀오니 모두들 놀랐던 일이 기억난다. 아들과 아버지의 여행을 나는 또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아들에게 지금도 고맙고 감사함을 느낀다. 아들이 아니면 내가 감히 한달이상을 배낭을 메고 유럽을 돌아다닐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돌아 오면서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야기 한다. 이런 점이 우리를 좀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자기는 계획을 다 짜 가지고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의견을 묻는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북극 산타클로스의 도시 - 로바니에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산타클로스의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

 

 Rovaniemi는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주에 위치한 도시로 동경25°4405북위66°3005″에 있어 북극권에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인구는 약 60,000명 정도로 조그마한 도시이다. 하지만 산타클로스를 매개로 하여 산타클로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머물러야 하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도시다.

 

 오우나스강과 케미강이 합류하는 북극권 바로 남쪽에 위치하며, 현재는 라플란드주의 행정중심지이다.  2차세계대전 말에 독일군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르 알토가 설계한 신도시로 건설되어 핀란드 북부의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데, 간선도로는 순록의 뿔 형태와 비슷하다.

 

 

특히 동계 휴양지대로 유명하며, 라플란드 관광여행의 기점이기도 하다.

 

자그마하나 조용하며 관광객이 항상 북적거리는 도시로 살아 있다.

 

한편 시내로부터 약 8km 떨이진 곳에 있는 산타클로스 마을은 산타클로스의 사무실과 우체국 등이 조성되어 있어 매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때문에 로바니에미는 '산타클로스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가 간 12월은 겨울이라 하루 종일 해를 보기가 어려웠고, 눈으로 덮여 있었다.

밤에 자고 일어나면 항상 눈이 새로 내려 하얀 설국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로바니에미의 시내외를 구경하시기를.....

 

 

로마니에미 시내를 안내하는 지도

 

 

비행기에서 보는 하늘

 

 

 

 

 

헬싱키에서 비행기로 로마니에미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간다. 시내로 가는 교통수단이 좀 발달해 있지 않았으나, 택시를 타면 그렇게 많은 경비가 들지 않는다. 요금은 정확하게 미터기에 표시된대로 받는다.

 

 

 

 

 

 

 

 

 

 

 

 

 

 

로바니에미 시내 풍경 - 별다른 구경거리는 없고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불빛이 빛난다. 밤이 아니라 낮에도 어두워 전등 불을 밝히고 있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시내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강이 있다.

 

 

산타클로스의 전초 도시라 호텔 이름도 santa claus다

 

 

 

 

 

온 사위가 눈으로 덮여 있는 도시다. 이곳을 가도 저곳을 가도 눈이 엄청 쌓여 있다.

 

 

 

 

 

 

 

 

눈으로 덮인 시내와 강변 풍경

 

 

* 박물관 악티쿰

로마니에미 시내에 있는 박물관으로 알바르 알토의 설계로 지어졌으며 유리 터널로 되어있다.

 북극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해놓은 박물관으로 어린 아이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해소해 주기도 하는 곳이다.

 또한 사미족을 비롯, 북극권 원주민들에 관한 자료와 북극권의 자연에 대해서도 알려 주고, 로바니에미의 역사도 정리해 놓았다. 특히 오로라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오로라 발생과 현상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박물관 전경과 현관입구

 

 

 

 

 

 

 

 

 

 

오로라의 발생과 모습을 보여 주는 영상관에서....

 

 

 

 

북극의 제왕인 북극곰

 

 

 

 

북극 순록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들

 

 

 

 

 

박물관을 나와 강변에서....

 

 

 

 로바니에미는 그 자체의 아름다운 모습보다 산타클로스 빌리지를 가기 위해서 숙박을 하는 곳이다. 헬싱키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도 거의 두시간은 걸려야 하는 곳이다.

 

 내가 간 12월은 밤이 가장 긴 시기라 하루 종일 어둠이 깔려서 해를 보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에 대한 개념에 혼동이 생겨 낮인지 밤인지를 구별하기가 좀 .......

그러다 보나 하루 종일 조명을 밝히고 장식을 해 놓은 시내를 거닐며 즐길 수 있었던은 다행이었다.

 

 이곳 저곳을 눈길로 다니며 피로한 몸을 시내에서 가깝게 있는 핀란드사우나에 몸을 담구고 사우나를 즐긴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식 사우나와 달리 달구어진 돌이 사우나실 안에 있고 물을 가지고 가서 돌에 퍼 부어 증기를 만드는 곳이었다. 여행을 하시는 사람들은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물가는 우리보다 비싸지 않고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다.

헬싱키 - 야경이 아름다운 근대 도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헬싱키의 겨울은 불빛으로 빛났다.

 

 핀란드를 여행하고자 혼자서 인천 공항을 떠났다.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헬싱키 공항에 오후 9시경에 도착하니 아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들은 자기가 할 일이 있다고 나 혼자서 헬싱키 시내를 구경하라고 했다.

 

 12월의 헬싱키는 잿빛이었다.

아침에 해는 10시가 지나야 떴고, 해가 지는 것은 오후 한 2시경이었다.

 

 헬싱키의 겨울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장식을 햔 불빛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비교적 현대화된 도시로 역사적인 유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미술관과 박물관 등이 볼만한 곳이 제법 많았다.

 

 헬싱키의 도시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면서 다닌 나의 흔적이다.

 

 

헬싱키 중앙역

 

1. 우스펜스키 성당(Uspenski Cathedral)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으로 대표적으로 남아 있다. 우스펜스키라는 명칭은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붙여진 것을 보았는데 이곳에서 또 보게 되었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러시아를 한달 동안 여행하면서 너무 많은 곳을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단지 전경과 내부를 한번 둘러 보았다.

 

 

2. 광장과 헬싱키 대성당(Senate Square and Catheraul)

 

 

 

 

하얀 색으로 순수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대성당의 위풍당당한 모습

 

 

 

성당의 내부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소박했다.

크리그마스가 가까워서 구유를 만들어 놓았다.

 

 

 

성당 내부의 좌우에 100 이라는 숫자로 표시를 해 놓았다. 궁금해서 안내를 하는 젊은이에게 짧은 영어로 무슨 의미인지 물어 보니 구 소련에서 독립한지 1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표시라고 했다.(참고로 내가 간 때는 2017년 12월이다.) 뒤에 아들에게 물어 보니 독립 100주년 행사를 엄청 크게 하였다고 했다.

 

 

 

성당 앞 광장의 모습 가건물이 보이는데 우리나라식으로 임시로 만든 가게들이다.

 

 이 광장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성당 견학을 와 있었는데 인솔자가 상당히 나이가 든 할머니들이었다. 아주 귀여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물어 보니 찍지 말라고 해서 아쉬웠다.

 

 

 

 

 

성당 앞 시내 거리의 모습 : 대낮인데도 날이 흐려서 불을 상당히 밝히고 있다.

 

3. 핀란디아 홀(Finland Hall) 전경

 

 

 

 

4. 핀란드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Finland)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국립박물관은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현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인데 이 박물관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이라고는 없고 현대 미술관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입구의 표지도 자그마하여 주변을 지나면서도 길을 좀 찾기가 힘들었다..

 

 

 

국립박물관 전경

 

 

 

 

 

 

 

 

5. 아테네움미술관(Ateneum Art Museum)

 

 이 미술관은 핀란드 최대의 국립 미술관으로 1887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한자리에 전시하여, 두 가지 계통의 미술이 공존하여 전시되고 있는 곳이다. 그림과 조각, 드로잉, 인터내셔널 컬렉션 등 여러 테마로 나뉜다. 근대 미술부터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핀란드 예술의 역사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 하는데 현대의 설치예술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6. 키아스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Kisama)

 

 현대적 조형미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이다. 아테네움미술관에서 1998년 분리되어 지금의 건물로 이관했으며, 2014년 리노베이션 공사를 거쳐 2015년 3월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관하였다. 종종 유명 현대 작가들의 특별전이 열리며 홈페이지에서 오디오 투어 자료를 직접 다운받을 수 있어 미리 듣고 가는 것도 좋다.

 

 

 

 

 

키아스마미술관 전경

 

 

 

 

 

많은 작품을 감상하였으나 내 마음에 좀 더 감흥을 준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

 

 

7. 헬싱키 시내

 

 

 

 

 

 

 겨울의 헬싱키는 하루 종일 잿빛의 어둠에 쌓여 있다.

 특히 내가 헬싱키에 있었던 날은 많지도 않은 비가 내리다가 멈추고 해서 날이 더 잿빛이었다.

 아침 10시가 넘어서 해가 겨우 비추다가 오후 2시경이 되면 해가 진다. 그러니 하루 종일 전등 불빛을 밝히고 조명으로 시내를 단장하고 있다.

여름에 러시아를 여행할 때는 밤 11시가 넘어도 백야로 날이 밝아 밤인지 낮인지가 좀 어리둥절했는데, 이곳은 하루 종일 밤과 같은 날씨라 사계절이 뚜렷하게 구별되면서 낮과 밤이 확연하게 다른 우리에게는 생활의 리듬이 좀 맞지 않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