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남파랑길 9 코스(진해드림로드입구 - 창원해양경찰서 - 마산항입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9 코스는 진해드림로드입구에서 시작하여 마진터널 위의 장복산을 걸어 내려와 마산항입구까지의 16.6km의 길이다. 미리 말하면 이 코스는 상당히 잘못 만들어진 코스인 것 같다.

 

9 코스 지도

 

 8 코스가 끝나는 지점이 진해드림로드의 기점이다. 그런데 이곳은 교통편의 접근이 용이한 곳이 아니라 상당히 곤란한 곳이다. 물론 나는 8코스와 9코스를 이어서 걸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기보다 차가 다니는 길이다.

 

남파랑길 9 코스 안내도

 

 아스팔트 길을 따라 제법 걸어 마진터널 입구에 가니 뜻밖에 순직비가 나온다. 무슨 순직비인가 궁금해서 다가가니 해군 순직비다. 1979년 수해 때 터널 붕괴를 막으려다 순직한 8명의 해군 헌병을 추모하는 추모비다.

 

해군 순직비

 

 여기서 마진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장복산 산길로 올라가게 한다..

 

 장복산(長福山)은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에 있는 높이 582m의 산으로 삼한시대에 장복(長福)이라는 장군이 이곳에서 말 타기와 무예를 익혔다하여 '장복산'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혹은 장복산의 '()'이 중심을 뜻하는 ', '을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중심산이라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한편, 창원에 전해지는 전설로는 산이 벽처럼 솟아 있어 장벽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민고개를 지나 동쪽으로 웅산과 이어지며, 서쪽은 산성산과 이어진다. 산 일대의 넓은 녹지대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마진터널 입구에서 15분 가량 오르면 산의 주능선 안부에 이르고, 정상에 오르면 남해바다의 거제도·잠도·저도·삼섬·가덕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이 코스가 잘못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드는 길이다. 별다른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주 좁은 산길을 걸어 간다. 9 코스 안내도를 보면 위험구간이라고 표시된 곳이 있는데 정말로 장난이 아니게 위험하다. 아주 좁은 산길인데 한쪽으로는 아주 비탈진 경사지로 이루어져 만약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생사가 위험할 수 있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왜 이 길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코리아둘레길을 만든 의도는 걷기를 통해 힐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걷는 사람의 안전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데 이 길은 그런 점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길을 낸 것 같았다. 물론 마진터널을 걸어서 통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장복산의 숲

 

 산을 내려와 양곡천쪽으로 걸어가니 하천 옆에 노란 산수유가 제법 많이 우거져 있다. 봄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을 보면서 계속 걸어가서 양곡천의 양곡중학교를 지나니 하천변에 노란 개나리가 제법 울창하게 피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계속해서 길을 가니 양지 바른 곳에서는 벚꽃도 피어 있고 목련도 황짝 피어 길을 걷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양곡천 주변의 봄꽃들

 

 이곳을 지나 봉암교를 건너는 길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봉암교를 지나서 마산항입구로 가는 길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어 건널목을 건너 갔던 길을 또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내려와서 봉암교를 건너게 한다. 약 2km가 넘는 거리를 아무런 목적없이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걸어야 한다.  봉암교 가까이에서 보니 다리 아래 하천변으로 길을 개척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파랑길을 아직 많이 걷지 않았지만 지난 해 걸은 해파랑길에 비해 무엇인가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마산항입구의 모습

 마산항(馬山港)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항구로 러시아가 남하정책에 의하여 군항으로 개발하려는 것을 영국과 일본이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18985월 개항되었다. 그러나 1913년 일본은 식민지 통치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개항장을 폐쇄시켰는데, 19496월 다시 개항장으로 지정되어 국제항으로의 기능이 활발해졌다. 1970년에는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이 설치되어 국제항으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마산항을 돌아 옛날 마산시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걸어가면 교방천을 정비하여 도심하천으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간다. 길을 따라가면 예전의 마산 거리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아주 번창했던 거리나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비껴난 것 같이 발전이 더딘 곳으로 예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산 아구찜 거리

 

 마산아구찜거리는1960년대 초 마산시내 중심가 오동동에서 갯장어식당을 하던 일명 혹부리할머니가 어부들이 잡아온 아귀에 된장, 고추장, 콩나물, 미나리, 파 등을 섞어 쪄서 만든 음식이 맵고 화끈, 쫄깃하면서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 마산항 어부들을 중심으로 한 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오동동 일대 약 20개 아구찜 음식거리가 형성되었다.

 

 

교방천 거리 안내도

 

 교방천(校坊川)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무학산에서 발원하여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에서 회원천으로 합류하여 마산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다. 교방천이 발원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校坊洞)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교방동은 조선 시대 합포현 지역으로 회원현의 향교가 있었으므로 교방이라 하였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진짜 걷는 목적에 맞는 길이 나온다. 임항선 그린웨이 길이다.

 

 임항선 그린웨이는 경상남도 마산에 위치한 '임항선' 폐 철길을 활용하여 2015년에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임항선은 1905년 개통하여 80년대까지만 해도 마산항 부두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던 노선으로 경전선 마산역에서, 북마산역, 신마산역, 마산항역을 잇는 역할을 하다가 20112월 폐지되었다. 이에 창원시에서는 구 마산세관에서 석전사거리 개나리아파트까지의 4.6km 폐 철길 구간을 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철길 안쪽은 시멘트로 메운 평평한 산책로다. 레일 바깥쪽으로 낡은 침목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길이 잘 정비가 되어 있어 걷기 좋고 곳곳에 시화와 벽화 그리고 철도 역무원 조형물이 있다.

 

임항선 그린웨이의 여러 모습

 

 이 길에 사족을 붙이면 '왜 이 임항선 그린웨의 철길을 아스팔트로 포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철길을 그대로 살려서 걷게 해도 좋겠고, 아니면 철길에 레일 바이크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이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으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철길 주변에는 걷기 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느낀 생각이다.

 

 이 그린웨이를 따라 걸으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기념탑을 만난다. 3.15 의거 기념탑(三一五義擧記念塔)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있는 3·15 의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세운 기념탑은 19603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독재 정권은 장기 집권을 꾀하기 위해 부정 선거 자행하였다. 이에 분개한 마산 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항거해 싸웠는데, 이를 3·15 의거라 한다. 3·15 의거 기념탑은 이를 기리고자 1962920일에 세운 기념탑이다. 반도 건축 기술 연구소 조각가 김찬식의 작품이다.

 

 탑의 전면 하단부에는 이광석 시인이 쓴 다음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3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빗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노라 1962710일 마산 3·15 의거 기념 사업 촉성회

 

 

3.15의거 기념탑

 

 기념탑 옆에는 몽고정이라는 우물이 있다.

 

 몽고정은 고려 충렬왕 7(1281)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실패로 돌아간 후 환주산(環珠山)(현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일대)에 둔진(屯鎭)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屯鎭軍)이 용수(用水)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 생활용수이자, 물맛이 좋아 간장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직경 1.4m가량의 원방형(圓方形)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車輪)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곁의 석비에 몽고정(蒙古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보존회(일본인 고적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멀리서 보는 몽고정

 

임항선 그린웨이의 옛 철로

 

 

 임항선 그린웨이를 벗어나 길을 조금 가면 큰 대로가 나타난다. 그 대로 가에 이 구간이 끝나고 남파랑길 10 코스가 시작되는 표지가 있다.

 

 이 표지에 도착하니 앞의 마산항입구에서부터 보았던  걷기를 하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인 듯한 일행을 만났다. 분명히 내가 앞서 걸었는데 나보다 먼저 와 있는 것이다. 말을 걸어 보니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서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다. 한 번에 다 걷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여, 내가 한 60일이 걸릴 것이라 하니 아무런 말이 없다. 이야기를 해 보니 오늘 아침에 송정공원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하루에 4개의 코스를 지나 왔다는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아마 대부분의 구간을 차를 타고 지나온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걷는 것은 걸으면서 자연의 풍경도 보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보는 것인데......  왜 이런 걷기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남파랑길을 완주했다는 자기도취에 빠져 제대로 걷지는 않고 허명만 추구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모두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이니 내가 무어라 참견할 필요는 없지만......

남파랑길 8 코스(장천동상리마을입구 - 안인마루기점 - 진해드림로드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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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8 코스는 상리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서 장복산의 둘레를 돌아나가는 길이다. 이 길을 총칭하여 천자봉해오름길이라 명칭을 붙여 놓은 길로 산위의 임도를 따라 걷는 비교적 평안한 길이다. 중간에 벚꽃으로 유명한 안민고개를 지나서 다시 산길을 따라 걸으면 진해드림로드의 시작점에 도착한다. 

 

남파랑길 8 코스 지도

 

상리마을입구의 8 코스 안내판

 

상리마을에 버스를 내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올라가면 임도가 나오는데 걷기에는 너무 편한 길이다. 산길을 걸으면서 바다쪽으로 눈을 돌리면 진해만의 모습이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걷으며 사진을 찍으니 카메라에서 경고 메시지가 나온다. 무언가 하고 보니 메모리카드가 없다는 메시지다. 이럴 수가 있나 하며 생각하니 컴퓨터에 사진을 옮기며 메모리 카드를 그냥 컴퓨터에 꼽아 놓은 것이다. 이런 실수가...... 사진을 찍지 않으면 내가 걷는 흔적을 제대로 알 수가 없는데 생각하니 큰일이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이번 일정에는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휴대폰이라도 있으니 최악의 처지는 벗어난 것이다.

 

멀리 보이는 진해 바다

 

봄기운이 완연한 나무들

 

이정표

 

해병테마등산로

 

시루봉의 유래와 전설 설명판

 

봄의 전령인 진달래

 

임도를 따라 계속가면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제법 긴 구간에 편백나무가 울창하다.

 

편백나무숲

 

진해 바다

 

 길을 계속 걸어가니 진해드림로드라는 간판이 보인다. 진해드림로드는 장복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에 조성한 총 27.4km 길로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나무 군락지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진해드림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4개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진해 시가지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길은  장복산조각공원에서 출발해 안민휴게소까지 닿는 ‘장복하늘마루길’이고, 오랜 시간 편히 걷을 수 있는 길이 안민휴게소에서 대발령 쉼터로 통하는 ‘천자봉해오름길’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바로 '천자봉해오름길'이다.

진해드림로드는 한국관광공사가 관광지의 혼잡도, 교통량, 방역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긴 ‘비대면지수’에서 별점 5점 만점에 5점을 받은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길이다.

 

진해드림로드중 '천자봉해오름길' 안내

 

 길을 계속해서 걸어서 안민고개에 도착했다. 안민고개는 만날재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진해에서 창원으로 시집간 부녀자들이 명절 사흘째 되는 날에 고갯마루에서 가족들을 만난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안민고개는 장복산(長福山)의 산허리에 있는 길이 약 9의 고갯길로, 창원시 진해구 태백동과 성산구 안민동을 이어주는 고개로, 웅산, 시루봉, 천자봉 등의 산줄기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경치가 뛰어나다. 특히 일출과 일몰 풍경 그리고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장복산과 시루봉의 등산 기점이 된다.

 진해 쪽 약 5.6구간 왕복2차선 도로 양쪽으로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벚꽃이 필 때면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이루어 상춘객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하지만 아직 벚꽃이 필 시기가 안되어 한적하였지만 때가 가까워서 길가를 보니 3월 25일부터 안민고개에 차량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문도 보였다. 그 때부터가 벚꽃철인 것이다. 아직은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벚나무들을 보니 꽃망울이 맺혀 금방이라도 망울을 터뜨릴 것같아 보였다. 왜 꽃망울이 붉게 보이는 것일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하며 안민고개를 내려 왔다.

 

안민도로기점 표지

 

안민고개

 

진해 바다의 여러 모습

 

 안민고개를 내려와서 다시 임도 길을 따라 걸으니 여러 가지의 이정표가 나온다. 이 한길과 만나는 여러 길이 있어 모두를 표시해 놓았다.

 

봄기운이 완연한 임도 길

 

길가의 드림로드 간판

 

진해드림로드 시작점 표시

 

 진해드림로드 기점에서 남파랑길 8 코스는 끝난다. 8 코스는 다른 길이나 경치는 보는 것이 없이 그냥 장복산 둘레를 돌면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길을 걷는 것이다. 여유롭게 걸으며 진해 바다의 여러 풍경을 구경하며 임도를 벗어나 아스팔트 길로 내려와서 끝이 났다.

 

남파랑길 7 코스(제덕사거리 - 수치마을 - 장천동상리마을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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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파랑길 7 코스는 제덕사거리를 출발하여 진해 앞 바다를 구경하면서 해안 길을 걷다가 약간의 언덕 길을 올라가서 장천동상리마을입구에 도착하는 비교적 짧은 11.0km의 길이다.

 

제덕사거리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발걸음을 시작했다.

 

7 코스 지도

 

 

제법 길을 가니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나온다. 처음에는 노래비가 있다는 표시를 보고 예전에 소설로 일고 영화를 본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생각하였는데, 황석영의 '삼포'는 일종의 이상향을 말하는 것이란 것을 생각하고 삼포라는 지명이 가진 의미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이끌렸다.

 

 '삼포로 가는 길'은 1970년대 후반 고등학생이었던 이혜민이 진해구 웅천동의 산길을 걷다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드넓은 바다를 향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삼포마을의 풍경을 마주하고, 가사를 구상하여 작사와 작곡을 하고, 강은철이 노래하여 대중가요가 되었다.

 2008년 경남 진해의 삼포 마을에는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한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들어섰다.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노래비는 남녀가 마주보고 선 것 같은 형상을 띠는데, 여기서 <삼포로 가는 길> 노래가 흘러나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아련한 어릴 적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앞에는 노래의 가사를 새겼으며, 누구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음향 장치를 해 놓았다.

 

 참고로 '삼포로 가는 길' 가사를 실어 본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 보면/ 한 발 두 발 한숨만 나오네/ 아 뜬 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 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저 산마루 쉬어 가는 길손아/ 내 사연 전해 듣겠소/ 정든 고향 떠난 지 오래고/ 내님은 소식도 몰라요/ 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 주렴/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삼포마을의 전경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삼포마을을 빙 돌아서 경치를 즐기며 길을 가면 창원해양공원이 보이고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으며 조그마한 죽곡항을 만난다. 죽곡항은 2003327일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된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있는 조그마한 어항이다.

 

죽곡항 표지

 

 여기서부터는 K 조선소가 자리잡고 있어 조선소 옆의 길을 따라 제법 걸어야 한다. 아무런 경치나 볼 것도 없이 그냥 아스팔트 길가를 걸어 간다.

 

 

 조선소를 돌아 길을 가면 멀리 진해만이 보인다. 아름다운 진해만을 끼고 도는 길을 '진해바다 70리 길'이라 명하고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진해의 옛 철길을 그대로 두고 그 옆을 걷게 한다. 제법 운치가 있는 길이다.

 

진해바다 70리 길 표지와 진해만

 

 진해바다 70리 길은 진해수협 ~ 속천항 ~ 행암항 ~ 합포승전비 ~ STX조선소 ~ 해양공원 ~ 삼포항 ~ 제덕항 ~ 흰돌메공원 ~ 영길만 ~ 안골포 굴강까지 29.2km의 길이 7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어 누구든지 자기가 편하게 생각하는 곳에서부터 걷으면 된다. 길을 걷는 도중에는 합포승전비, 삼포노래비, 웅포해전비, 흰돌메공원, 황포돛대노래비, 무궁화공원, 안골포굴강 등을 만날 수 있으니 주변을 구경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진해바다 70리길은 도심인 듯, 바다인 듯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행암항 표지

 

 이곳을 지나니 진해항 표시가 나온다.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진해항은 일찍이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동양함대의 근거지를 일본군이 점령한 이래 군항으로 발달하여 왔다. 마산항과 부산항의 중간에 위치하여 상항(商港)으로서보다는 군항 및 어항으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하여 우리에게는 해군사령부로 더 잘 인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해항은 지금 구항과 신항으로 나뉘는데, 구항은 어항으로, 신항은 제4비료공장을 배경으로 한 공업항으로 이용되고 있다. 진해항은 외해(外海)와 차단된 항만으로 항내는 광활하고 풍파가 없어 천혜의 양항(良港)을 이룬다.

 

 

진해항을 벗어나 진해드림로드 표지를 따라 산쪽으로 걸음을 옮겨서 제법 올라가면 큰 도로가 나온다. 진해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이 장천동 상리마을 입구이다. 

 

 

 장천동 상리마을 입구에서 7 코스는 끝났다. 여기에서 부산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니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해시외버스정류소로 가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이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용원으로 가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이다. 오래 길을 걸은 경험으로 이제 길 찾기에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그래서 용원으로 가서 부산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시내 버스를 타고 용원으로 간다.

 

남파랑길 6 코스(송정공원 - 흰돌메공원 - 제덕사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6 코스부터 창원 구간의 시작이다.

 

 창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옛 창원시와 마산시 진해시가 합쳐져 거대한 도시로 변모하였다. 그래서 창원은 옛날의 도시 모습과 현대화된 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6 코스는 옛날 진해시(현재 진해구)의 용원사거리에 있는 송정공원에서 시작하여 용원과 진해의 해안길을 걸어 제덕사거리에 이르는 14.8km의 길이다

 

용원동(龍院洞)은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으로 원래는 웅천군(熊川郡) 동면(東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리(院里용재리(龍在里가동리 등의 일부를 합하여 의창군(義昌郡) 웅동면 용원리가 되었다. 여러 번의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2010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이 되었다.

 

 예전에는 부산시내에서 이곳까지 바다 바람도 느끼고 싱싱한 생선회를 먹으려고 많이 오곤 했던 곳이다.

 

 

 남파랑길 6 코스의 출발점은 용원사거리 옆에 있는 송정공원이다. 남파랑길 안내서에는 부산 하단에서 버스를 타고 용원사거리에 내리라고 되어 있으나, 한 가지 팁을 드리면 부산 서부시외버스정류소(사상)에서 용원가는 버스를 타고 용원사거리에서 내리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물론 부산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용원사거리에서 걸어가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이 용원수산물센터이다. 진해 앞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성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지만, 이곳을 지나는 목적이 회를 먹으려는 것이 아니기에 눈으로 보고 길을 재촉한다.

 

용원수산물센터 풍경

 

 이곳을 지나 용원교를 건너면 바다물이 들어오는 소류지 주변의 아파트 옆의 산책로를 한참 걸어가면 웅천안골왜성으로 올라가는 표지가 보인다.

 

바다물이 들어오는 소류지의 모습

 

 제법 언덕 길을 올라가면서 왼쪽으로 안골왜성 표지가 보인다. 관광안내도를 길가에 만들어 놓았지만 별로 볼 만하게 보이지 않는 성이다.

 

 웅천 안골왜성(熊川安骨倭城)은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일본식 성으로 1998년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75호로 지정되었다.

 안골포(安骨浦)는 동쪽의 부산과 다도해 방면을 연결하는 가덕수도(加德水道) 첫머리에 있는 삼면이 바다인 육망산(陸望山)에 의지하여, 앞은 절벽이고 뒤는 안골만으로 이어져, 천험과 지리를 고루 갖춘 곳이다. 성은 해발 100m의 산 위에 위치하는데 가덕도(加德島)의 왜성과 약 4거리이다. 성의 출입은 육지쪽을 막고 바닷길을 이용하기 위하여 바닷가에 이르도록 굴호(掘壕)를 파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제포진(薺浦鎭)에 소속된 안골포영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수군의 진영(鎭營)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고쳐 쌓아 본성(本城)으로 삼고, 그 외에도 많은 지성(支城)을 쌓아 이곳과 웅천·제포를 연결하여 다도해쪽으로 진출하려는 왜수군의 본거지로 삼았다. 1592(선조 25) 성 앞 안골포에서는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대첩의 여세를 몰아 왜군을 크게 무찌른 안골포해전이 벌어졌다.

 

안골왜성

 

 안골왜성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 안골포가 나타난다. 이제부터 안골포를 빙 돌아 나가는 길이다.

 

 이름이 독특한 안골포(安骨浦)는 바다에서 보았을 때 안쪽이 깊은 산골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창원시 진해구 웅동동에 있는 포구로 수군(水軍)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안골포는 완벽한 원형으로 쑥 들어온 만을 지칭하는 코브(cove)라는 용어가 어울리는 해안으로, 만의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원형으로 안에서는 파도가 거의 없이 매우 잔잔하여 과거부터 천혜의 해상 기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1592(선조 25) 7월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한산도에서 왜선을 격파한 뒤 그들을 구원하러 오는 원군을 이곳에서 격퇴한 안골포해전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안골포 지역은 공업화로 여러 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도시화로 많은 건물이 들어선 가운데, 과거 안골포진으로 추정되는 지역에는 여전히 포구가 존재하고 있고, 웅동만을 중심으로 동쪽에 안골동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웅동만의 서쪽은 남산에 웅천왜성이 남아 잇고 그 남쪽으로 신항만 건설을 위한 매립공사가 진행 중이며, 남쪽으로는 부산신항만이 건설되고 있어 안골대교와 웅천대교가 가로놓인 좁은 수로가 되어 있다.

외양이 아름다운 카페

 

안골포의 전경

 

 해안 길을 걷는 도중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복장을 보니 주변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75살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은 분으로 말하기를 내가 걷는 것이 너무 반듯하고 씩씩하게 보여 말을 건넨다고 하였다. 작년(2021년)에 해파랑길을 걸을 때도 울진에서 어느 노인이 똑 같은 말을 하면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말을 걸어 왔는데 또 똑같은 말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안골포의 오리들

 

남파랑길 표지 - 창원구간에는 표지가 잘 되어 있다.

 

안골포 풍경

 

 제법 길을 걸어가면 유명한 대중가요인 '황포돛대'의 노래비를 만난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노래비다.

 

 황포돛대 노래비는 해안관광도로의 중간지점인 영길만에 세워져 있다. 대중가요로서 널리 알려진 노래 '황포돛대'는 이 고장 출신인 작사가 이 용일(일윤)이 경기도 연천의 부대에서 근무할 때 고향 바다인 영길만을 회상하며 노래말을 만들었고 1967년 백영호 작곡, 이미자의 노래로 발표하게 되어 국민 애창곡으로 널리 불려지게 되었다. 1991년 창원시는 그 유래를 담아 이 곳 영길만 도로변에 황포돛대 노래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가로 5m, 세로 6m, 높이 7m 규모로 화강석과 청동을 재료로 하여 제작된 노래비 전면에는 노래가사가, 뒷면은 작품설명이 세겨져 있고 일정시간 단위로 "황포돛대" 노래가 흘러나와 작품과 노래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황포돛대 노래비

 

 계속 해안을 돌아 걸으니 흰돌메공원이라는 이름도 아름다운 곳이 나타난다.

 

 예로부터 흰돌이 많아 백석산이라 불리던 창원시 진해구 남영로 280에 흰돌메 공원이 조성되었다. 흰돌메 공원은 아름다운 숲속공원으로 크기가 73에 달한다. 흰돌메공원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외국의 어느 도시의 밤 풍경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흰돌메공원 표지

 

 흰돌메공원이 나오지만 남파랑길은 공원을 올라가지 않고 공원 표지 아래에 난 해안으로 발길을 옮기게 한다.. 계속 해안길을 돌아 나가는 코스다.

 

흰돌메공원 아래 해안길

 

 이곳을 벗어나면 남문지구 동천변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큰 교회 건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주기철목사 기념관이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은 진해가 고향인 항일 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참배에 반대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인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으며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창원시는 주기철 목사 기념관부터 시작하는 주기철 목사 성지 순례길 코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종교와 역사를 동시에 돌아보며 걸을 수 있다.

 

주기철목사 기념관

 

 주기철목사 기념관을 돌아나가니 웅천읍성이 보인다. 멀리서 보는 모양이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는 자그마한 읍성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잘 알려진 읍성으로는 고창이나 순천의 낙안 읍성 등이 있는데,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있는 웅천 읍성은 북쪽의 봉동산과 자마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으로는 남산에 의해 가려진 분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남북방향으로 긴 직사각형의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143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1407년 항구를 열어 일본과의 관계유지를 위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읍성을 쌓고 그리고 성벽의 외곽으로는 해자를 둘러 방어했다.

 1510(중종 5) 삼포왜란 때 왜구에게 일시 함락되었고 임진왜란 때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머물기도 하였다.

 

창원 웅천읍성

 

 웅천읍성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제덕사거리가 나온다. 여기가 남파랑길 6 코스 끝이다

제덕사거리

 

 이곳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때가 되었다. 휴식도 할 겸 점심을 먹을 곳을 찾으니 마침 사거리에 식당이 있다. 한가롭게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푸하고 다음 코스의 길을 간다.

 

남파랑길 5 코스(신평동교차로 - 송정공원)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5 코스는 신평동교차로에서 낙동강 하구를 따라 올라가서 낙동강하구둑을 지나 을숙도를 가로질러 명지해안을 돌아 나간다. 여기서 계속 해안을 따라 신호해안과 녹산 해변을 걸어 부산 신항만을 끼고돌아 송정공원에 이르는 21.9km의 길이다.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 낙동강하구 을숙도를 가로질러 사계절에 사색의 갈대 빛나는 명지 갯벌에 날아오는 겨울철새의 군무를 국내 그 어떤 곳보다도 가까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지만 아파트 길이 아니라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서 신호대교를 건너면 낙동강 하구의 여러 모래톱이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채 우리를 반긴다. 눈을 돌려 멀리를 바라보면 저 멀리 뒤편에는 가덕도의 풍광이 뛰어나 머물고 싶을 정도다. 저 멀리 보이는 가덕도를 보면서 길을 재촉하면 웅장한 부산신항이 마주한다. 부산신항에서 가덕으로 가지 않고 진해 방면으로 가서 용원사거리에서 끝난다. 이 코스는 부산의 갈맷길과 거의 겹치는 구간으로 2020년에 갈맷길을 완주하면서 대부분은 걸은 곳으로 별다른 특징이 없이 다시 걷는다.

 

 이 코스를 걷는 날은 미세 먼지가 자욱하게 끼여 뿌옇게 날이 흐려 별로 좋지 않은 날이었지만 계획을 하였기에 그냥 걷기로 하였다. 

 

 이 코스는 하구길을 조금 올라가면 낙동강하구둑을 만나서 건넌다.

 

 낙동강하구둑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 사이를 잇는 낙동강의 하구를 가로막은 둑으로 19839월에 착공하여 198711월에 준공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길이는 2,400m, 높이는 18.7m이다. 공사 시작 전부터 야기된 환경 공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낙동강 하구둑으로 인해 안정적 용수 공급과 매립지 활용 등 경제적 효과를 내세우면서 환경 파괴가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낙동강 하구의 철새 도래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기수역이 교란되어 많은 생물종이 사라졌다고 주장이 또한 크다.

 

 둑 위에는 도로가 만들어져 과거에는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던 경남 남쪽 지역과의 거리가 상당히 단축되었고, 둑의 중심에 있는 을숙도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철새들의 번식 및 월동지로서 기후가 알맞아 하류 일대가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이다. 사계절 동안 수백 종에 달하는 철새가 찾아 들고 있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섬의 이름에서부터 사람들보다 철새들에게 먼저 알려져 있는, 매년 겨울이면 뉴스에서 철새와 함께 이름이 종종 오르내리는 을숙도(乙淑島)’는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하중도(河中島)1916년경 진우도, 대마등 등과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태백 황지에서 시작하여 기나긴 물길을 흘러온 낙동강은 강 하구에 이르러 삼각주(모래톱)를 만든다. 이 삼각주는 먼 거리를 내려오면서 영양가 넘치는 풍부한 퇴적물로 만들어진 비옥한 땅으로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가 대표적인 삼각주에 속하며, 을숙도도 비옥한 토양에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이니 어패류도 다양하여 넉넉한 공간에 먹이까지 풍부하니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이 쉬어가기 좋은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1950년대까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덕분에 을숙도 일대는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섬이 공원화되기 시작하여 새들의 휴식처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뀌어갔다. 낙동강하구둑 상단 일응도와 하단 을숙도가 하나로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다가 한때는 부산의 쓰레기 매립지이자 파밭으로 채워졌던 을숙도 하단은 2005년에 5년간의 복원공사를 통해 을숙도철새공원으로 태어나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바뀌어졌다.

 

하구둑은 수로를 완전히 막은 것이 아니라 조그마하지만 어로를 마련해서 바다의 어류들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옛날의 낙동강 하류 기수역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만은 사실이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구둑 수문을 잠시 열어 강물이 흐르게 하였는데 낙동강의 생태계가 기대 이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자연의 흐름을 막은 인간의 몽매함을 꾸짖어야 하는지…… 아니면 인간의 좀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도 바꾸어야 하는지…… 내가 판단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낙동강 하구의 남파랑길 표지

 

낙동강 하구둑

 

을숙도 표지석

 

부산현대미술관

 

명지 앞 바다 풍경

 

 이곳에는 갈미조개란 이름의 조개를 팔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지 앞바다에서만 나는 조개라 하는데 맛이 기가 막힌다. 예전에는 조개를 삶아서 초장이나 양념장 같은 것에 찍어 먹거나 탕으로 끓여서 먹곤 했는데, 요즈음은 이곳도 요리가 발전하여 육고기와 섞어서 새롭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또 이곳의 해산물은 싱싱하고 가격도 적당하여 예전에는 많이 이용하던 곳이다. 지나가면서 예전의 맛을 생각하고 입맛을 다시지만 아직 밥을 먹을 때가 아니라 아쉽지만 그냥 지나갔다.

 

신호대교

 

멀리 보이는 가덕대교

 명지동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법정동으로 북쪽의 대저와 거의 붙어있어서 체감은 거의 안 되지만 원래는 섬이었던 명지도에 해당하며, 지금의 명지동은 부산에 편입되기 전에는 김해군 명지면 동리·일대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논밭과 염전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명지오션시티명지국제신도시 등의 신도시가 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단지들이 여럿 들어서게 되면서 강서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동네가 되었다.

 

 명지 앞바다의 진우도 등의 모래톱은 철새도래지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있다. 파가 전국적인 특산물로 명지 대파라는 이름이 유명했는데 명지국제신도시로 개발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그 명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신호포구의 여러 모습

 

 

 삼성자동차 앞에서 바다가 롤 발길을 돌려 부산신항쪽을 향해 걸으면 갯벌이 많이 나타난다. 어촌에 사는 아낙네들이 조개를 캐는지 물이 나간 갯벌에서 작업을 하는 광경도 간혹 보이고 김과 굴을 키우는 양식장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예전에는 이 명지, 신호에서 나오는 김이 아주 맛있었는데 이제는 전라도에서 대량 생산되는 김에 밀려 경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부산신항의 모습

 

 부산신항(釜山新港)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항만으로 포화상태인 부산 북항을 대체하여 새롭게 건설된 컨테이너항만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물동량이 제일 많은 항만이다. 부산항은 1876(고종 13) 2월 인천항, 원산항에 앞서 최초의 근대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그 뒤 1898년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및 확장 공사, 6.25전쟁, 경제개발 등으로 부산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물동량의 증가로 인하여 만성적 적체와 시설 낙후로 대대적인 시설 개선이 필요했지만 부산항은 원도심에 있어 시설 확충을 위한 부지 확보가 불가능하였다. 이에 부산항과 인접한 강서구 가덕도 일원에 부산 신항을 건립하여 대규모 컨테이너 터미널을 구축함으로써 만성적 화물 적체를 해소하고, 21세기를 대비한 동북아시아 국제 물류·비즈니스 중심 항만 조성을 목적으로 부산 신항이 건립되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전진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부산신항 근처인 여기서 부산의 갈맷길과 남해안 길을 걷는 남파랑길과 헤어진다. 오륙도에서 시작되는 남파랑길과 갈맷길이 중복되어 있었는데 갈맷길은 가덕으로 향하고 남파랑길은 진해 용원으로 재촉한다.

 

남파랑길 5 코스 끝 부분

 

 이 코스는 상당히 긴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모든 길이 평지를 걷기에 별로 힘이 들지는 않는 구간이다. 특히 아스팔트 위를 걷는 구간은 얼마 되지 않고 거의가 해안을 따라 걷기에 걸으면서 변하는 바다의 풍경에 시간이 흐르는지도 몸이 피로한지도 모르는 구간이다.

 

 진해 용원사거리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편이 그렇게 좋지 않다. 하단역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다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로 부산 구간을 끝내고 다음부터는 창원 구간을 걸어야 한다.

남파랑길 4 코스(감천사거리 - 다대포해변 - 신평동교차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4 코스는 감천사거리에서 출발하여 두송반도 해안길을 돌아 다대포 항구의 시장을 지나 몰운대를 한 바퀴 돌고 나오면 광활하게 펼쳐지는 다대포 해변이 눈에 확 뜨인다. 여기서 해변을 거닐다가 도로를 건너 낙동강하구를 조망하는 아미산으로 올라간다. 아미산을 내려와서 장림포구로 다가가 포구길을 걸어서 해변으로 나가 낙동강 하구를 걸어 신평동교차로까지 걷는 21.7km의 길이다.

 

 아침에 집을 출발하여 버스를 타고 감천사거리에 도착하여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감천사거리에서 두송반도 가는 길은 도시의 아스팔트 옆을 걸어야 한다.

 

 감천사거리에서 걸으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이 감천화력발전소다. 부산 도심에 아직 화력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곳을 지나면 감천항이 나타난다. 감천항은 예로부터 입항하는 선박들이 물을 받아가던 소중한 마을이었으며, 지리적으로 부산포와 가깝고 다대포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 주둔지, 한국전쟁 때는 영국군,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가 주둔했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지금은 주로 수산물 수입의 항구로 사용되고 있다.

 

감천화력발전소

 

담벽의 담쟁이

 

감천항 입구

 

 감천항을 지나 언덕길로 가면 두송반도를 가리키는 표지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제법 가면 두송반도가 나온다.

두송반도 가는 길

 

두송반도 안내판

 

 부산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두송반도(頭松半島)는 감천만과 다대만 사이에 돌출한 지형으로 공룡의 전성시대였던 백악기말의 부산지역의 옛 환경을 보여주는 명소이며, 길이는 약 3폭은 평균 0.7로 반도의 끝자락에 두송산(頭松山)이 자리하고 있어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가파른 사면과 암석 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봉화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다대포의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하여 다대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자연 표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두송반도 주변에는 몰운도, 쥐섬, 모자섬, 망사섬, 아들섬, 거북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두송 반도는 산지와 해안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두송만취(頭松晩翠, 두송산 위에 걸린 비취빛 저녁 하늘의 아름다움을 뜻함)라 하여 예로부터 다대 팔경(多大八景)의 하나로 칭해졌다.

 

부산 갈맷길 사업의 일환으로 200911월에 조성된 두송반도해안산책로(頭松半島海岸散策路)는 다대 여객 부두에서 시작하여 두송반도의 해안을 둘러싸는 순환 산책로로 길이는 7이다.

 

두송반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산책로로는 그만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맛도 있지만 흙길을 걸으며 여유를 즐기는 맛도 쏠쏠하다. 거리도 적당하고 완만한 경사로 아무 무리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남파랑길은 두송반도 끝까지는 가지 않고 중간에 내려가는 코스로 만들어 놓았다.

 

두송반도 가는 길

 

두송반도 중간에서 내려가는 길 표시

 

두송반도 길을 돌아 나오면 보이는 표지

 

 두송반도를 내려와서 아스팔트길을 좀 걸으면 낫개라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정다운 조그마한 항구가 나온다. 아기자기한 낫개 항구를 지나 언덕을 올라가서 조금 걸으면 다대포수산시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낫개 항구

 

 다대수산시장은 부산의 수산물시장 중의 하나로 신선한 수산물을 값이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교통편이 좀 불편하여 사람들에게 거리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하철 1호선이 다대포까지 연결되어 교통편도 편리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산물을 구입하러 오는 곳이다

 

다대포 수산시장

 

다대포항

 

 다대포항을 지나면 바로 몰운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봄의 특미인 도다리 쑥국을 한 그릇 먹으니 다시 걸을 힘이 난다. 몰운대로 향한다. 몰운대는 너무나 자주 온 곳이지만 또 다시 새롭게 길을 따라간다. 

 

 몰운대(沒雲臺)는 원래는 몰운반도(沒雲半島)였다. 몰운반도는 사빈으로 된 중앙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되어 있고 특히 선단에는 수직에 가까운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몰운반도는 웅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가 다대만과 낙동강 하구 만입 사이에 돌출하여 형성된 반도로, 선단에는 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인 몰운섬(몰운대)이 있다. 16세기까지 몰운대는 섬이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밀려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면서 육지가 되었다.

 

 조선전기 무신 정운과 관련이 있는 명승지인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으로, 부산 중심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다대포와 인접하고 있으며 그 넓이는 14만 평에 이른다. 이 일대는 지형상의 여건으로 인하여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몰운대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때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李舜臣)의 선봉장이었던 정운(鄭運)도 이 앞바다에서 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정운은 이곳의 지명을 몰운대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와 자기 이름의 ()’자가 같은 음이라는 점에서,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정운을 위한 사당이 세워졌다고 하며 지금은 그의 순절(殉節)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

 

 몰운대를 한 바퀴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아름다운 해안 경치를 즐기며 사진이라도 좀 찍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유롭게 돌아보면서 몰운대 구석구석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자. 부산 사람도 몰운대를 자주 오지만 몰운대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나 화손대에서 보는 해변의 풍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맞으면 볼 수 있는 다대포의 낙조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몰운대 일주를 하며 보는 풍경을 보시기를……

 

 정운장군 순의비 쪽은 군이 주둔하여 있는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찾아가서 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몰운대를 일주하는 방법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몰운대 입구 안내도

 

몰운대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의 여러 풍경

 

 몰운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사진 자료는 나의 블로그 아래 주소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lhg5412.tistory.com/165

 

부산 몰운대 - 조용히 거닐 수 있는 산책길

 아름다운 부산의 서쪽 바다.  부산 근처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많이 있다.  그러나 부산하면 우리는 흔히 해운대를 생각하지만 해운대는 단지 부산 바다 중의 한 곳일 뿐이다.  낙동강이 흘러

lhg5412.tistory.com

 

 다대진 동헌을 벗어나서 남파랑길은 조금 찾아가기가 어려우니 조심해야 한다. 아무런 길 표시가 없어 GPS를 보니 왼쪽으로 가라는 표시가 뜬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길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찾아보니 왼쪽으로 아주 조그마한 오솔길이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상당히 가파른 길이니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대포해수욕장 뒤편의 바다 위로 나무 테크를 설치해 놓은 길을 만난다. 나는 이곳의 경치를 좋아해서 자주 오는 곳인데도 바닷길 테크에서 몰운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 길은 솔직히 길이라기보다 그냥 산으로 올라가는 통로이다. 조금 다듬고 길 표시를 했으면 한다.

 

내려가는 길

 

다대포해수욕장 뒤편의 나무테크 해안

 

다대포해수욕장

 

 다대포해수욕장(多大浦海水浴場)은 부산시내에서 서남쪽에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으며, 낙동강 상류에서 실려 온 양질의 모래로 만들어진 완만한 경사인 백사장 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1970년대에 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이래 넓은 백사장으로 부산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다가 환경파손으로 한 때는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하여 폐쇄되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을 정화하고 해변공원으로 잘 가꾸고 여러 시설을 설치하여 이제는 옛날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서 물때에 따라 해수욕장의 크기가 엄청 다르다. 간조 때 해수욕장 모래밭에는 바다 게를 잡거나 조개를 캐는 즐거운 체험을 하려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광객이 해수욕객보다 더 많이 찾고, 바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부근에는 옛날에는 섬이었지만 낙동강 상류에서 밀려온 모래로 육지와 이어진 몰운대(沒雲臺)가 있고 다대포패총과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등의 문화유적지와 관광명소가 많다.

 특히 일몰시에 보는 다대포의 낙조는 가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이라고 할만하다.

 

 다대포 해변공원은 엄청난 투자로 사람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각종 편의시설과 인공적인 작은 운하를 만들어 바닷물이 드나들게 만들었고 넓은 부지에 쉼터를 만들었고, 낙조 분수도 만들어 관광객을 끌고 있다.

 

 여기에 다대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뒤편 공원 쪽에 바다 물이 들어오도록 조그마한 운하 비슷한 통로를 만들어 백사장을 빙 돌아가게 하였다. 이 운하를 따라가는 길의 이름이 '해솔길'이다. 물이 밀려들어오면 제법 수위가 높아지는 곳을 산책로로 알맞은 곳이다.

 

해솔길 풍경

 

 해솔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해변을 보면 갈대가 우거진 곳을 본다. 다대포 갯벌이다. 한 때는 이곳이 생태가가 완전히 파괴된 곳이었는데 지금은 생태계가 거의 복원되어 '고우니 생태길'이라는 갯벌 위에 나무 테크를 설치하여 경치를 즐기게 한다. 이곳에는 여러 바다 생물이 살고 있고 새들도 제법 많이 눈에 보인다.

 

고우니생태길에서 보는 풍경

 

 고우니생태길을 벗어나 아미산으로 가는 길에 조그마한 정자를 만난다. 이름이 '노을정'이다. 이곳에서 보는 저녁의 해넘이는 정말 장관이다. 내가 여러 곳에서 해넘이를 보고 즐겼지만 이 '노을정'에서 보는 해넘이도 어느 곳 못지 않게 뛰어나다. 시간을 맞추어 구경을 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인데 지금은 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지나갈 뿐이다.

 

노을정

 

 여기에서 길을 건너 아미산을 향해 간다. 아미산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어야 하기에 아름다운 낙동강하구도 보고 즐기기 위해서 아미산으로 향한다.

 

아미산 올라가면서 보는 낙동강 하구 모래톱

 

몰운대성당 - 여기서 보는 풍경이 아주 좋다.

 

아미산 등산로 표시

 아미산(峨眉山)은 부산시 서구 아미동 일대와 사하구 장림동의 구릉성 산지로 해발 163m의 작은 산으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정상에 전망대가 있어 낙동강 삼각주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아미산이라는 명칭은 본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아미골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속설에 의하면 아미골은 움막집이란 의미의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식 아미(峨眉)’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이 산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과 같다 하여 아미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아미산 둘레길 표시

 

 아미산전망대에서 아미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서 장림으로 내려온다. 장림(長林)은 마을의 형태와 관련한 지명으로 지형적으로 아미산 둘레에 길게 늘어선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장림동 일대의 강변 구릉지에 1세기경의 패총이 있고, 신라 때의 토기 편이 발견되기도 해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원래는 아미산 기슭까지 하천 유역이었으나 현재는 매립으로 피혁 위주의 공단 지역이 조성되어 있다. 공장이 많이 있을 때니 이곳을 지나갈 때 피혁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지금은 많이 옮겨가서 예전과 같지는 않다.

 

여기서 장림천을 따라 내려가면 장림포구가 나온다. 

 

 장림포구는 장림포구 명소화 사업을 통하여 어항을 정비함과 동시에 해양보호구역 홍보관, 문화촌, 놀이촌, 맛술촌, 도시숲 등 관광객 이용시설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장림포구 모습, 특히 수면에 떠있는 배와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섬과 닮았다 하여 부산의 베네치아, '부네치아'로 불리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장림포구의 모습

장림포구안내도(사하구청에서)

 

 장림포구입구의 장림항에서 길을 건너면 낙동강 하구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하구길을 따라 걸어 신평교차로에서 이 코스는 끝난다.

 

멀리 보이는 을숙도대교

 

멀리 보이는 낙동강 하구둑

 

낙동강 하구길

 

 신평교차로에 도착하여 오늘의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 신평역에 도착하니 이 부근에 있는 지인이 생각났다. 그래서 전화를 하니 반갑게 맞이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미진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만나 하기로 남겨두고 집으로 향한다.

남파랑길 3 코스(영도대교입구 - 암남공원 - 감천사거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3 코스는 영도대교입구에서 부산의 중심지인 광복동, 남포동의 용두산공원을 지나 부산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평동시장,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을 지나고 충무동시장을 지나 송도해변을 통과한다. 송도해수욕장을 지나서 암남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감천항을 옆에 끼고 암남공원로를 걸어가서 감천사거리에서 끝나는 14.9km의 길이다.

 

 2 코스 걷기를 끝내니 점심 때가 되었다. 영도대교 입구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3 코스의 길을 따라 간다. 이 길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와 본 길이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으나 남파랑길을 따라 가려니 골목길을 찾아가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롯데백화점 앞의 지하도를 건너 광복동 길이 아니라 대청동쪽 골목길로 가서 용두산공원으로 올라간다.

 

 용두산공원은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서 옛날에는 '우남공원'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4.19혁명이 일어나고 명칭이 바뀌었다. 용두산(49m)은 부산시내에 있는 작은 구릉으로 옛날에는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불리다가 그 후 산세가 흡사 용 모양이라고 하여 용두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제식민지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신사(神社)를 세웠던 산이며, 지금은 척화비, 충혼탑, 4 ·19의거기념탑, 이충무공 동상 등이 있고, 부산탑이 세워졌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지었는데 2차에 걸친 대화재로 모두 타버리고 민둥산이 되었으나, 그 후 나무를 심고 가꾸어 지금은 나무가 울창하여 관광객들을 끌어당기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했다. 부산항과 영도가 내려다보이는 경승지이며, 특히 부산탑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아름다운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지 공원이다.

 

 용두산공원에서 옛날 기억을 되살리니, 내가 어릴 때는 이승만대통령의 흉상이 있었다는 생각이 나서 관광해설사에게 "이승만대통령 흉상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런 것이 있었느냐고 반문을 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적게 보이니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문화해설사라면 그런 것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용두산공원 올라가는 계단

 

부산타워

 

용두산공원의 여러 모습

 

 용두산공원을 돌아 대청동쪽으로 내려오면 먼저 마주치는 건물이 옛날 미국 문화원 건물이다. 지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만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의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을 지나 발길을 옮겨 도착하는 곳이 바로 유명한 보수동 책방 골목이다. 옛날에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제법 많이 이용한 곳이었는데 한 때는 쇠퇴하다가 언론에 의해 부각되면서 유명세를 타서 지금은 헌책을 사고파는 기능보다 관광지의 한 측면이 더 크게 부각되는 곳이다.

 

과거 미국 문화원 건물

 

보수동 책방 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을 나와 길을 건너면 부평동시장으로 들어간다. 참으로 특이하게도 이 시장의 이름은 '부평동 깡통시장'이다. 부평동 시장(富平洞市場)의 전신은 19106월 부평정에 일한시장(日韓市場)이라는 명칭으로 개설된 개인 시장이었다가 191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주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시설 등을 개선하여 부산부가 경영하는 공설 시장으로 재편하였다. 일제 강점기 부평동 시장은 현재 깡통 시장의 기원이 되는 시장이다. 당시 부평 공설 시장의 위치는 현재의 깡통 시장이 아니라 부근의 부평 아파트이다. 여러 번의 확장과 개편을 그치다가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통조림 등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캔 제품들을 주로 이곳에서 갖다 팔기 시작하면서 '깡통시장'이란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20131029일 전국 최초로 상설 야시장을 개장하여 18시경부터 자정까지 운영하는데, 좁은 길목 양옆과 가운데에 수십 개의 포장마차 형태의 상점들이 들어서 온갖 군것질거리를 많이 판다. 특이한 점은 외국인들이 직접 파는 해외 음식들도 많이 있다. 이 야시장이 부산 지역 특급 호텔의 투어 패키지에도 들어갈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자, 다른 지자체의 재래시장에도 이를 벤치마킹한 야시장들이 개설되고 있다.

 이 부평동시장의 먹거리는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겠지만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먹거리가 뛰어나다.

 

부평동시장의 여러 모습

 

부평동시장을 나와 남포동 방면으로 걸어가면 유명한 족잘 거리가 나온다. 한 때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곳으로 지금도 많은 미식가들이 이 곳에서 소주 한잔과 족발을 먹기 위해 밤에는 찾아오는 곳이다

 

족발거리

 

Biff 광장

 

 용두산공원을 내려와서 광복동, 남포동 거리를 지나 국제시장 부평동시장 등을 보면서 biff광장을 지나 자갈치로 들어선다.

 

 자갈치시장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름을 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갈치 아지매로 상징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산물시장으로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부산 시민들이 회를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을 즐기는 곳이다. 시장의 형성이라든지 유래 등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자길치시장 풍경

 

 자갈치시장을 지나면 이어서 충무동시장이 연결된다. 외지인들은 잘 모르지만 부산 사람들에게는 자갈치시장만큼이나 친근한 시장이다.

 

충무동시장

 

 이 충무동시장을 지나서 시내 길을 제법 걸어가면 케이블카가 운행 중인 광경이 보인다. 송도해상 케이블카이다. 송도해수욕장을 가로지르며 제법 먼 거리를 운행하는 케이블카이니 한번쯤은 타보면 해상 위를 운행하며 즐기는 맛이 있다.

 

송도해상케이블카 아래쪽 정류장

 

운행중인 해상케이블카

 

 이곳을 지나면 송도해수욕장의 권역으로 들어간다.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있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에 개장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이다. 1987년과 2003년에 태풍 셀마매미로 인해 다이빙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여 해수욕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기도 하였으나 부산시 서구는 2013년에 해수욕장 개장 100주년을 기념하여 4계절 다양한 연령층이 찾을 수 있는 해양관광휴양기능을 구축하기 위해서 복합해양휴양지로 조성하여 연간 수백만 명의 피서객이 찾는 명소로 발전시켰다. 수중방파제에는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해수욕장에 세워진 아름다운 분수와 녹지공간, 넓어진 모래사장 등으로 해수욕장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해수욕장 동쪽의 송도공원에서 서쪽의 암남공원까지 이어지는 1.67구간의 송도 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송도해수욕장 전경은 물론 암남공원과 지질공원, 부산항 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해수욕장 동쪽에 설치된 다이빙대는 국내 유일의 해상다이빙대이며, 어미거북이(5m)와 아기거북이(3m)를 형상화해 만들었다. 거북섬 인근에는 바다위로만 이어지는 길이 365m, 2.3m에 달하는 송도구름산책로가 20166월에 개설되었으며, 일부 구간은 9.3m 아래의 바다가 보이는 투명 강화유리 바닥으로 조성되었다. 구름산책로 입구에는 거북섬을 스토리텔링화한 젊은 어부와 용왕의 딸 인룡(人龍)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청동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이 거북섬 조그마한 곳에 육지에서 연결되는 출렁다리가 있어 연인들이 이 다리를 건너며 장난을 치던 곳이다. 그리고 섬 안에는 팔각지붕의 횟집도 있어 밤에는 젊은이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낭만을 즐기던 곳이다. 지금은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관광객들을 위해 여러 시설을 해 놓았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송도해수욕장의 여러 모습

 

 송도해수욕장을 벗어나 암남공원으로 가는 길가에 뉴질랜드 한국전쟁 참전 기념석이 있다. 먼 이국에서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그들을 기리는 기념석인데 너무 초라하게 여겨지는 것은 나의 마음일까?

 

뉴질랜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길을 따라 걸으면 암남공원에 도착한다.

 

 암남공원(岩南公園)은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있는 자연공원으로 동편에 남항, 서편에 감천항, 남쪽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연결되며 앞쪽에 동물검역소와 인접하여 있다. 1972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군사보호구역 내에 묶여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645일 개방되었다. 이후 전망대, 구름다리, 산책로, 광장, 야외공연무대 등을 조성하였다. 역설적으로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자연상태가 잘 보존되어 해양성 수목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있어 푸른 바다와 함께 절경을 이룬다. 입구에서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산길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삼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구름다리를 타고 오르는 정상에는 전망 좋은 정자가 서 있다. 인근에 있는 동도를 연결하는 구름다리(용궁구름다리)를 설치하여 또 하나의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구름다리가 처음에는 무료였는데 지금은 통행료(1,000)을 받고 있다. 꼭 받아야 하는지?

 

용궁구름다리

 

 

 암남공원을 돌아서 나오면 감천항 길로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단조로운 길이다. 하지만 시내 도로를 걸어가지 않게 노선을 만들어 놓았다 암남공원로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걷게 한다. 별다른 특징은 없이 그냥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길을 걸어 내려오면 오래된 노거수를 만난다. 아마도 예전에는 당산으로 인식되었을 나무이나 지금은 보호수로 되어 있다. 여기서 아스팔트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이 코스의 마지막인 감천사거리에 도착한다.

 

암남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보는 풍경

 

노거수

 

 하루에 2 코스와 3 코스를 완주하였다. 걷기에는 다소 소질이 있고, 또 많은 길을 걸어 본 경험이 있기에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예정을 하고 걸으면 대개는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오늘도 아침 9시 정도에 부산역을 출발하여 약 30km를 걸어 감천사거리에 예정한 시간에 도착하였다. 아직은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남파랑길 2 코스(부산역 - 태종대 - 영도대교 입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남파랑길 2 코스는 부산역 광장에서 시작한다. 시작점이 어디인지를 알수는 없고 그냥 코리아둘레길에 접속하여 GPS에 의존해야만 한다. 부산역 광장에서  바닷가로 펼쳐지는 도심지의 뒷길을 걸어 부산 도심지를 지나서 부산대교에 도착한다. 부산대교를 건너 영도 청학동 길을 올라가서 봉래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서  절영해안 산책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나와서 영도 해안길을 따라 걸어 영도대교(일명 영도다리)에 도착하는 14.5km의 길이다.

 

이 날은 걷기에는 비교적 좋지 않은 날이었다. 미세 먼지가 심하게 끼어 사진을 찍어도 뿌옇게 나오는 그런 날이라 조금 망설여졌으니 계획을 한대로 걷기로 하고 아침에 부산역광장으로 갔다.

 

부산역광장에서 부산대교로 가는 길은 도심 뒤편의 길을 걷는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먼저 만나는 건물이 부산 세관이다. 한때는 항만의 번창함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나 지금은 부산항의 기능이 다른 항구로 옮겨감에 따라 예전만은 못한 위상이다.

 

부산세관 건물

 

길가 담장의 조선통신사행렬도

 

부산항만공사 - 부산항여객선 터미널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도착한 다리가 부산대교이다. 부산대교(釜山大橋)는 개항 100주년을 맞아 1980년 완공된 한국의 관문인 부산항 발전의 상징으로 영도구 봉래동과 중구 대교동을 연결하는 길이 841m의 다리로 4차선의 차도와 양쪽에 너비 2m의 인도가 갖추어져 있다. 부산시민의 정()6.25 동란 중 피난민의 애수가 담긴 선개교인 영도대교와 평행하게 그 동쪽에 100 m 가량의 간격을 두고 가설된 다리이다. 1934년 준공된 영도대교가 영도(影島)와 시내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로서 영도지역의 교통량을 소화하는 데에 있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 상황에서, 항만물동량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영도지구의 개발을 촉진시켜주는 효과를 주고 있다.

그 구조가 재래의 교량에 비해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순수한 우리기술에 의해 완공하였음에 그 의의가 크다.

 

 

 부산대교를 건너 영도로 들어서서 조금 걸으면 갈맷길과는 다른 길이 나온다. 영도의 주산을 한 바퀴 돌아나오는 봉래산둘레길이다.

 봉래산(蓬萊山) 둘레길은 영도의 중심에 있는 신선들이 살았다는 봉래산(395m)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7.3의 순환 길로 본래 옛 등산로의 노후된 길을 정비하고 하늘 전망대, 삼림욕장, 안내 푯말 등을 만들어 트레킹 코스를 조성하였다. 봉래산 산행의 80%로 원뿔꼴의 봉래산을 나선형으로 돌면서 조성되어 있다.

시계 방향으로 봉래산으로 들어선 이후에 복천사와 봉래 체육공원, 편백 숲을 지나 장사 바위까지 이르면 본격적인 산행 길이다. 이 지역 에는 편백 군락지가 심심찮게 보인다.

 

봉래산둘레길의 오래된 팻말

 

해돋이전망대 -미세 먼지가 자욱하여 제대로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보이는 암석지대

 

 

 봉래산 둘레길을 돌아 나와서 중리 해변으로 나가면 절영해안산책로가 나온다. 갈맷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가게 설정해 놓았다. 같은 길이지만 정반대 방향에서 걷는 길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갈맷길은 남항 외항을 끼고 태종대까지 해안길과 산길로 이어져있으나 남파랑길은 반대로 중리해안에서 출발하여 남항대교쪽으로 가게 한다. 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 선박들의 모습과 해안의 기암절벽이 절경을 어우러져 해양 수도 부산만의 독특한 풍광을 자랑한다. 모자이크벽화 타일, 피아노계단, 출렁다리, 맑은 날이면 대마도를 볼 수 있는 대마도 전망대 등 여러 볼거리가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아 지역 주민들과 많은 도보 여행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길이다. 대마도전망대에서는 날씨가 맑으면 대마도를 볼 수 있는데 해무가 자욱하게 끼여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절영해안 산책로에서 보는 여러 풍경

 

흰여울해안터널

 

배 모양으로 지은 절영해안산책로 안내 건물

 

 절영해안산책로 위에 있는 마을이 흰여울문화마을이다. 영도구 흰여울길 379에 있는 흰여울문화마을은 피난민들의 애잔한 삶이 시작된 곳이자 현재는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문화마을공동체로 자리한 곳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흰여울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 수많은 작품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거리는 201112,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하면서 현재는 영도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요즈음에는 카페톤이 형성되어 옛날의 집을 개조하여 한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부산 앞 바다를 즐기는 망중한의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흰여울문화마을 풍경

 

 이 곳을 통과하여 영도 해안길을 걸으며 남항대교 밑을 지나면 부산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영도 수리조선소단지가 나온다. 옛날 수리조선이 한참 융성할 때는 강아지도 만원권을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흥청되던 곳이었다. 지금은 다소 옛날의 흥성함이 많이 쇠퇴하였으나 아직도 수리조선이 곳곳에서 진행도고 있는 곳인 여기가 요즈음 알려진 이유는 독특한 이름을 붙인 예술마을이 형성되고 난 뒤이다. 이름하여 '깡깡이 예술마을'이다.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깡깡이 예술마을은 자갈치시장 건너편, 영도대교와 남항대교가 맞닿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리조선마을이다. 두 군데의 물양장에는 배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십여 곳에 달하는 수리조선소가 여전히 운영 중에 있다. ‘깡깡이’라는 이름은 수리조선소에서 배 표면을 망치로 두드릴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하여 생겨난 말이다. 중소 선박수리업체가 밀집한 이 동네를 예전엔 깡깡이 마을이라 불렀다.

 선박부품업체 벽면에는 어선 그림, 마을 전봇대마다 웹툰 작품으로 채워졌다. 버스정류장 벤치는 선박의 닻과 톱니바퀴 엔진, 배를 형상화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곳은 19세기 후반 최초로 발동기가 장착된 배를 만든 '다나카조선철공소' 세워졌던 장소로 이후 매축공사가 진행되며 다양한 선박부품 가게들이 대평동에 집중적으로 들어서게 되어 선박조선업과 수리조선업으로 명성을 떨쳐 대평동에선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도 공업사와 선박 부품업체가 마을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조선산업의 발전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2015년 부산 예술상상마을 공모에 대평동이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부산시에서는 수리조선마을인 대평동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깡깡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마을로의 재생사업을 진행하였다.

 

 마을 곳곳에는 대부분의 건물은 여전히 옛 대평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시간이 과거에 멈춰있는 듯한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깡깡이 예술마을

 

 깡깡이 예술마을 돌아 나가면 유명한 영도대교를 만난다. 부산 사람들은 영도대교라고 칭하지 않고 영도다리가 더 친근하다. 부산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시대를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애환이 서린 다리인 영도대교는 부산시 중구와 영도구를 잇는 동양 최초, 국내 유일의 대규모 도개교이다. 영도다리는 우리나라 대중예술의 소재로 매우 많이 사용되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내가 어릴 때는 도개교여서 영도다리를 드는 시간에 맞추어 구경을 가곤 했는데 196691일에 도개를 멈추었다. 그러다가 다리를 다시 수리하고 확장을 하면서 2013년부터 하루에 한번 정오에 다시 다리를 들고 있어 이 시간에 맞추어 구경을 오는 타지 사람들이 매우 많다.

 

영도대교의 모습

 

 영도다리 입구에는 현인의 유명한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비가 있다. 현인은 부산 출생으로 본관은 본명은 현동주(玄東柱)로 광복이후 대중가수로 활동하여 한국전쟁의 애환을 소재로 하는 많은 노래를 불러 대중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중 한국전쟁의 참상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많은 인기를 끈 곡이다.

 

현인노래비

 

영도다리에서 보는 풍경

 

 영도다리를 건너 롯데백화점 앞에서 2 코스는 끝난다. 종착점의 표시가 없으니 어디가 종착지인지를 모르겠고 GPS가 종착지라고 가리키니 종착지인지 알고 다음 코스로 길을 가야 한다. 조금 신경을 써서 종착지 정도는 알려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