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1(06.06,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 레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4.5km) - 푸엔테 비야렌테(1.5km) - 아르카우에하(4.5km) - 푸엔테 카스트로(5.5km) - 레온(2.0km)

 

오늘은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를 출발하여 유명한 레온까지 가는 길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대부분의 순례자는 레온에서 하루를 더 쉰다. 제법 오래 길을 걸었기에 피로도 쌓이어서 피로도 풀 겸 레온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만큼 레온에서는 보아야 할 곳이 많다.

 

 아침 해도 솟아오르지 않은 시간에 길을 떠나니 주위가 아직 어둠에 덮여 있다. 꼭 이렇게 일찍부터 길을 걸어야 하는지가 의문이었으나 모두가 그 시간에 길을 걸으니 어쩔 수 없이 보조를 맞추어 길을 간다.

 

어둠이 짙은 거리

 

성 안내문

 

 오늘은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레온에 이르기까지 약 19km의 거리로 길은 대부분 평탄하여 걷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오늘의 길을 나누어 보면 먼저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를 나와 푸엔테 비야렌테에 이르는 약 6km로 길로, 이 길에서 순례자는 에슬라 강을 지나서 넓은 경작지와 포르마 강에 이르는 상쾌한 구간이다. 다음은 포르티요 언덕을 시작하기 전까지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 나란하게 걷게 되어 다소 지루하다. 마지막으로 포르티요 언덕을 넘어 레온 시가지에 이르는 길로, 특히 레온에 들어서기 전의 시가지 외곽의 초입은 순례자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를 나오기 위해 먼저 마을 끝을 지나는 에슬라 강 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로마시대의 유적지가 남아있는 마을인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까지 도로와 평행하게 이동한다. 처음 아스토르가에 작지만 강건한 야모로스 데 만시야라고 불리는 마을이 세워졌는데 이후 로마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회색담과 벽돌로 만들어진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로 바뀌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 바나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아 카페의 탁자에 앉아 가지고 있는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으로 대용하고 길을 떠난다.

 

길 안내도 - 우회하지 말고 직진해야 된다.

 

레온 주의 여러 다리 설명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에서 다음 마을인 푸엔테 비야렌테까지는 약 1.5km의 짧은 거리다. 마을 중심의 프로세시오네스 거리를 지나면 자동차도로가 나오며 옆으로 길이 이어지며, 눈앞에 있는 포르마 강 위의 다리만 건너면 된다. 마을로 들어가는 이 다리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가장 훌륭한 다리 중 하나지만 독특하게 휘어진 모양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푸엔테 데 비야렌테는 포르마 강변에 위치한 마을로, 오래된 병원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위중한 환자들을 오늘날의 앰블렌스와 같이 노새로 레온으로 실어 날랐다 한다.

 비야렌테 다리(Puente de Villarente)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다리 중에서 가장 훌륭한 토목 공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독특하게 휘어진 모양과 다리 길이가 눈에 띈다. 무려 20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러 번의 보수와 개축으로 각각의 모양이 다르다.

 

포르마 강을 건너는 비야렌테 다리(Puente de Villarente)

 

푸엔테 비야렌테 표시

 

푸엔테 데 비야렌테 거리

 

 포르마 강변에 위치한 마을의 출구를 나와서 도로를 지나쳐서 계속 걸으면 잠시 후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게 되며 이 언덕을 다 오르면 아르카우에하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순례자에게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마을 끝에 있는 공동묘지를 지나쳐 순례자는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진 길을 지루함을 느끼며 계속 길을 따라가면 다소 복잡한 공장지대가 나오고, 이 공장지대를 통과하면 포르티요 언덕의 정상이다.

 

아르카우에라 표시

 

 

 이제 레온이 어렴풋이 보이나 아직도 두 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내리막을 내려와 푸엔테 카스트로에 도착한 순례자는 이미 레온에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다. 푸엔테 카스트로를 지나면 까미노 표시는 토리오 강의 다리를 지나 알칼데 미구엘 카스타뇨 거리를 따라 가면 레온 시가지로 들어간다. 레온 구시가지에 들어가면 먼저 만나는 것이 성벽이다. 이 성벽을 지나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면 레온 대성당이 나타난다.

 

발데라푸엔테 표시

 

멀리 보이는 레온

 

푸엔테 카스트로 표시

 

레온의 시작

 

 푸엔타 카스트로로 들어가니 레온이라는 표시가 곳곳에 보인다. 길을 가다가 성당과 같은 곳이 보여 들어가 보니 성당이 아니고 관광안내소 같은 곳이다. 레온의 역사와 관광명소를 안내하는 곳으로 레온의 지도와 관광안내도를 얻고 잠시 쉬다가 길을 가니 길가에 자원봉사자인지 공무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물도 주고 사탕을 주면서 뷰엔 까미노하면서 인사를 한다. 뜻밖의 환대에 답례를 하니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으며 반가워한다. 지나는 한국인에게 유독 더 친절한 느낌을 받으니 아마 한국 사람이 동양인의 절대 다수라 환대를 하는 것 같았다.

 

성당 같은 관광안내소 - 첨탑 위에 황새의 둥지

 

 레온(León)은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 북서부 끝에 위치한 레온 주()의 중앙부 평균 고도 838m의 메세타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레온 주의 주도로, A.D. 1세기경 로마 인들이 건설한 도시이며 당시의 원탑(합계39)을 갖춘 성벽이 아직도 남아 있다. 레온이라는 도시의 이름도 레기온(Legion:군단)이라는 말에서 유래하듯이 68년 이 지역에 있던 로마 군대의 주둔지가 도시로 발전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인 무어 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서(西)고트족이 무어 족을 몰아내고 아스투리아 왕국을 건설하고 레온을 수도로 삼았다. 10세기에 들어서는 레온 왕국(914~1230)의 수도로 번성했으며, 카스티야 왕국과 병합하였다. 스페인의 초기 주교령이었고, 또 레온 왕국의 수도이자 종교회의가 열렸으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의 주된 이정표가 된 도시이기도 했다. 역사적 사건이 넘쳐나는 레온은 풍성한 문화와 예술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역사적 건축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16세기 후반에 완성된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ón), 산 이시도로 바실리카(Basilica de San Isidoro), 구스마네스 궁전(Palacio de los Guzmanes), 콘데 루나 궁전(Palacio del Conde Luna) 등이 있고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보티네스(Casa Botines)가 유명하다. 시내 서북부에 산 마르코스 구()수도원의 성당이 있다.

 

 현재 레온은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의 경제의 중심지이며, 스페인 최고의 식도락을 전해주는 도시다. 또 레온에서는 일 년 내내 전통 축제와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의 대부분은 레온의 풍요로운 매력에 흠뻑 빠져 하루 이상을 머물러 휴식도 하고 관광도 한다. 중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우메도 지구(Barrio Humedo)의 거리와 광장을 느긋하게 거닐면 포도주와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바와 선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레온 시내 초입 부분

 

 레온 구 시가지로 들어가니 먼저 로마 시대의 성벽이 보인다. 성벽은 원래 이 구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지금 내가 보는 좌우의 성벽만으로도 그 규모가 엄청나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설명

 

레온 성벽

 

 

 

 성벽을 지나니 아름다운 성당이 나타난다. 그 성당에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고 대성당을 찾아서 길을 가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우메도 지구(Barrio Humedo)라는 거리가 나온다. 구시가지의 우메도 지구(Barrio Humedo)는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레온 구시가의 중심지다. 낭만적인 거리와 광장을 산책하기에 좋고, 포도주와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바와 선술집이 가득하다.

 

이름을 모르겠는 성당

 

레온 대성당으로 가는 거리

 

 드디어 거대한 성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성당 앞의 광장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성당 사진을 찍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며 떠들고 있다. 모두들 성당의 위용에 감탄을 하는 것이다. 성당을 자세히 보려면 가까이 가야 하지만 전경을 보려면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성당의 전경이 보인다. 사람들의 시각은 자신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레온 대성당은 아주 장엄하게 위용을 자랑하지만 화려함에서는 부르고스 대성당이 더 아름답다고 나는 느꼈다

 

 13~6세기에 걸쳐 지어진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as León)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프랑스식 고딕 양식의 걸작이다. 늘씬한 탑과 우아한 이중 아치는 고딕 시대 거장의 대담함을 보여주고, 중앙 파사드에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석조 조각과 유사한 화려한 조각이 있다. 레온 대성당의 장관 중 하나는 성당 벽의 황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내는 장면으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차지하는 넓이는 무려 1700에 달하며, 석양이 질 무렵 화려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장관은 유럽 예술의 최고점을 보여준다고 한다.

대성당 내부에는 아름다운 레온에서 가장 좋은 성상들이 소장된 대성당 박물관이 있다.

 

 대성당의 외양이나 내부의 여러 유물에 대해서는 백과사전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대성당의 전경

 

대성당 광장에 있는 동판

 

레온 대성당 문 위의 장식

 

요금표(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성당 내부를 구경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니 내부 한쪽의 조그마한 성전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뜻하지 아니한 미사를 보고 참석하여 영성체를 하고 다시 성당 내부를 구경하니 그 화려함은 계속 경탄을 하게 만들었다.

 

희망의 성모 설명

 

대성당 내부의 여러 모습

 

대성당의 회랑과 뜰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내부의 뜰이 있는 곳으로 가니 박물관이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지 박물관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나의 여행 철학에 따라 박물관으로 들어가려니 성당의 입장료와는 별개로 또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동행하던 일행은 모두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들어가니 상상 이상으로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여러 가지 종교적인 유물뿐만 아니라 현대의 그림들도 제법 보였다.

 대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박물관을 보기를 권한다.

 

박물관의 전시물

 

박물관 전경

 

 레온 대성당 앞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경이었는데 성당을 나오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오늘은 레온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일 하루 쉬기로 하였기에 레온의 나머지 구경거리는 내일 다시 와서 보기로 마음먹고 오늘은 편히 지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약 20일의 대부분을 스페인식 음식을 먹었기에 좀 입맛에 맞는 음식을 편안하게 먹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보편적으로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중국식 음식점을 추천받아서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의존하여 식당을 찾아가는 도중에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며칠을 보이지 않았던 태백의 젊은이도 있어 이야기를 하여 보니 중간에 걷지 않고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고 하였다. 이 길을 걷는 것은 남에게 보이고 자랑하려고 걷는 것이 아니니 자신의 건강상태를 철저히 살피고 거기에 맞추어 걸어야 한다. 태백의 젊은이 외에도 안면이 있는 젊은이들이 제법 보이기에 이야기를 하니 그들도 우리가 찾아가는 식당을 간다고 하였다.

레온 시내를 제법 걸어가면서 신시가지를 구경하고 식당에 도착해서 보니 중국 음식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뷔페와 똑 같은 식당이었다. 뜻밖의 뷔페에 우리는 만족하고 들어가서 보니 진열해 놓은 음식이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완전히 우리나라의 뷔페와 같았고 생고기와 해산물은 쟁반에 담아가면 직접 구워주는 곳이었다. 우리 일행은 만족하면서 그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한을 풀듯이 떠들며 즐겁게 배불리 먹었다. 배불리 먹고 후식을 보니 아이스크림과 과일이 너무 좋았다. 특히 아이스크림은 스페인에서는 엄청 비싸서 아이스크림 하나가 와인 한 병 값이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가게에서 열쇠를 채워 놓은 곳이 많았다. 그런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혹시 레온에 가는 사람은 이 집을 찾아가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가격에 비하여 엄청 좋은 음식들이다. 우리 표현으로 가성비가 엄청 좋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25,000원 정도이고 위치는 아래 사진에서 보여 드리는 곳으로 레온 프라자를 찾아가면 2층에 있고, 식당 이름은 Wok Hui Feng이다.

 

 배불리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일어서니 두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레온에서 쉬기에 호텔에 숙소를 정하였기에 숙소를 찾아가니 약간은 외곽에 있는 호텔이지만 시설은 아주 좋았다. 처음으로 알베르게가 아닌 곳이기에 욕탕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쌓인 피로를 풀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레온 시내의 여러 모습

 

뷔페 식당 wok

 

뷔페가 있는 레온 프라자

 

 

새로 지은 것 같은 호텔은 시설은 좋았으나 부대시설이 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불편했다. 하지만 호텔이라 편안하게 휴식하면서 지나온 피로를 풀었다. 또 내일은 레온 시내를 구경할 것이라 마음도 여유로웠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0(06.05,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 만시아 데 라스물라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 엘 부르고 라네로(7.6km) - 렐리에고스(13.0km)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6.2km)

 

 오늘은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에서 만시아 데 라스 물라스까지 가는 약 27km의 길로 대부분이 메세타 고원의 자동차 도로 옆으로 난 평탄한 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은 어두운 시간이나 알베르게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거의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나간다. 함께 길을 걷는 우리 일행도 준비를 마치고 뜰에 나가니 아직 어둠이 개이지 않은 시간이다. 뜰의 탁자에 앉아 가볍게 아침을 과일과 커피로 먹고 알베르게를 나와 오늘의 걷기를 시작한다.

 

어둠의 알베르게

 

해가 떠오르는 모습

 

 알베르게에서 작은 마을을 지나 마을 출구에서 순례자는 앞쪽으로 작은 나무가 있는 길로 직진하면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 렐리에고스를 지나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 가는 길로, ‘레알 까미노 프란세스’(Real Camino Frances)라고 까를로스 3세는 이 길을 명명하면서 순례자들에게 이용을 독려했다고 한다.

 

 이 길은 엘 부르고 라네로까지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이어지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편안한 길이지만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걷는 것은 정신적으로 자연의 오솔길을 걷는 것보다 인내를 필요로 하여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 머리 위에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송전선이 지나고 길을 가며 오래된 십자가상까지 지나치면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한다. 엘 부르고 라네로는 인구가 300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마을이나 순례자에게는 편리한 각종 시설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십자가 하단의 글은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세라니 호세, 바노스 로자노'이다(무엇을 기억?)

 

엘 부르고 라네로 표시

 

 마을의 이름은 라네로(Ranero; 언덕이 있는 땅)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과 이 지역을 지나면서 많이 볼 수 있는 라나(Rana; 개구리)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설이 존재한다.

 

 엘 부르고 라네로의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은 수수한 모습으로 예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는데 현재는 레온의 대성당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전통적인 까미노 프란세스로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의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의 왼쪽으로 이어지며 매우 평탄하지만 상당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의 모습이다. 단조롭게 간격을 맞춰 심어져 있는 나무와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마을의 밖으로 빠져 나오려면 마요르 거리 끝에 위치한 성 페드로 성당을 오른쪽으로 두고 걸어 나가면 된다. 다음 마을인 렐레이고스까지는 13km 정도로 지나온 길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지나는 길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순례자 쉼터와 샘터가 종종 있다.

 

자동차 도로 옆의 길

 

쉼터

 

 

 파랗게 빛나는 하늘은 계속 보지만 지겨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단조로운 길을 걸으며 들판을 보면 유채와 비슷한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본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에 이름이 궁금해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이 제대로 되는 곳에서 꽃 이름을 물어보니 '탑시아 빌로사'라고 답이 왔다. 그래서 이 이름을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탑시아 빌로사라는 이름의 꽃

 

목장

 

보호색으로 위장한 도마뱀

 

순례자들이 만든 길 표시

 

 단조로운 길을 걸어 도착하는 인구가 채 2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렐리에고스는 로마 시대의 가도가 지나가던 곳이었다. 이 지역에는 포도주 저장고로 사람들이 파놓은 굴이 많이 남아있는데, 오늘날에는 이 지역에서 포도주를 생산하지 않아 거의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마을 안에서는 목재 골조에 벽돌과 흙으로 지어 아랍식 지붕을 얹은 오래된 전통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렐리에고스 마을의 카페에서 이르지만 간단히 점심을 먹고 쉬다가 나오니 너른 밀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 지평선 너머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높은 탑이 희미하게 보인다.

 

렐리에고스 표시

 

 

 계속 걷다보면 송전탑 밑으로 지나는 길이 끝나고, 도로 위를 지나는 보행자 다리를 건너면 마을의 구시가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며 순례자를 반기는 동상이 있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는 포르마 평원과 에슬라 평원 사이의 드넓은 포도밭과 온갖 종류의 과수원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도시로 맛있는 토마토 요리와 재미있는 전설이 이어진 곳이다. 순례자는 며칠 동안 걸어온 불모지 같은 길의 단조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이 도시는 레온 왕국과 까스띠야 왕국 사이에 있다는 점 때문에 중세 시대까지는 방어 도시의 역할을 했었다. 또한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사이에서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과거의 유산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돌로 포장된 거리와 중세풍의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는 집은 당시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또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는 8월의 마지막 주에는 산 페르민 축제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토마토 축제’(Feria del Tomate)가 열린다. 이미 세계인에 널리 알려진 토마토 축제’(La Tomatina)는 팔렌시아의 작은 마을인 부뇰(Bunol)이 유명하지만,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토마토 축제에서도 토마토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으며 토마토 싸움을 즐길 수 있다.

 

만시아 데 라스 물라스 표시

 

십자가의 순례자상

 

 마을에 들어가 알베르게를 찾아가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이 길을 걸으면서 점심과 저녁을 먹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하루의 걷기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시간에 따라 풍성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저녁을 먹기도 한다. 물론 한 끼를 잘 먹으면 다른 끼니는 간단하게 반드시 먹는다.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니는 우리 4명은 알베르게를 나와 시내를 구경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잘 가는 음식점을 찾아가기로 하고 구글 지도를 펼쳐 음식점을 찾아가는 도중에 성당과 같은 건물이 보여서 가니, 성당이 아니라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수호성인인 감사의 성모상이 보관되어 있는 18세기에 만들어진 그라시아 성모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Gracia)였다.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나와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식당을 찾아가니 현지인들이 여럿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이 우리를 그들과는 좀 떨어진 안으로 안내를 하여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하여 즐겁게 맛있고 풍부한 양의 식사를 마치니 주인이 인터넷에 자기 집의 평을 잘 해주기를 요청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음식이 맛있다고 하면서 좋은 평을 하겠다고 한참 이야기하니 주인이 특별한 서비스를 주었다. 와인을 한 병 더 주고 아주 특이한 술을 주는데 많이 주지는 않고 우리 소주잔의 반만큼을 주었다. 마셔 보니 올리브 맛이 나면서 알콜이 제법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모두 한 잔을 더 청하니 주인이 줄 수 없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그냥 나왔다.

 나중에 이 음료가 무엇인지를 대강 알았는데, 아주 특이한 술로 소중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일도 여행 중에 경험하는 소중한 추억이라고 할 것이다.

 

그라시아 성모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Gracia)

 

성모 성소 설명

 

 그라시아의 성모 성소 설명에 의하면 '이미 18세기에 산 로렌초의 옛 마을에 위치한 암자가 언급되었다. 현재 건물은 벽돌 띠와 벽돌로 지어진 것으로 나중에 지어진 것이다. 만시아와 그 지역에서 높이 존경받는 은총의 성모라는 제목의 조각은 라 롤다나(la Roldana)로 알려진 조각가가 엄청난 아름다움을 조각한 것이다. 19세기 말에 발생한 화재 후에 조각가 빅토르 데 로스 리오스(Victor de los Rios)가 복원하였다. 만시아의 수호성인인 그라시아 성모 성소는 만시아 사람들과 이 지역 사람들의 높은 방문과 사랑을 받는 신앙의 중심지이다.'라고 되어 있다.

 

성모상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쉬다가 20시에 열리는 마을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 일행 4명 중에 천주교 신자는 나뿐이었지만 모두가 저녁의 무료함도 달래고 세요도 찍기 위해서 성당으로 갔다.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교구 성당은(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은 아름다운 첨탑이 있는 18세기의 건물로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제단화가 보존되어 있다.

 천주교의 미사는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예식이기에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따라 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성당에서 거의 매일 미사를 보았는데 아주 작은 성당이 아니면 사제가 한명이 아니라 2명이나 3명이 미사를 집전하였다. 대충 진행하는 과정을 보니 연세가 많아 보이는 사제가 보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은퇴한 원로 사제가 젊은 사제들을 도와주는 것 같아 보여 상당히 좋게 여겨졌다. 미사가 끝난 후 사제에게 세요를 청하니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사제복을 벗고 성당 입구의 조그마한 방으로 가서 사제가 직접 세요를 찍어준다. 바깥에 있는 일행들을 모두 불러 세요를 받고 성당을 구경하고 마을을 돌아보았다.

 

산타 마리아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

 

산타 마리아 성당 설명

 

성당 설명은 '현재 건물은 18세기에 12세기의 원 교회 위에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시의회가 열리고, 현관에서는 형이 선고되었다. 내부에는 옛 교회의 흥미로운 여러 예술작품이 있다. 주요 제단은 복원된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성당 내부의 모습

 

여성들을 위로하는 십자가를 진 예수

 

미사 전의 성당 내부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슈퍼에 가서 콜라를 한 캔 사서 마시고 여유롭게 거닐어 보았다. 마을을 돌아보니 이 마을 곳곳에 성벽이 보이고 동서남북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성문도 보여 이 마을이 상당히 큰 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마을의 모습을 보고 시간이 되면 어디에서든지 마을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성벽과 성문

 

 마을을 돌아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제법 시간이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평소 생활이라면 아직 초저녁이고 활동할 시간이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평소에 생활했던 시간과 다르다. 내일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길을 떠나야 하기에 조금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9(06.04,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 -  모라티노스(3.3km) -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2.5km) - 사아군(7.2km)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5.7km)

 

 오늘은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까지 가는 약 19km의 짧은 거리로 팔렌시아를 지나 레온으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다.

 

 아침 일찍부터 한국인이든 서양인이든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아침 5시만 되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어나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은 빠르면 6시 전에 늦어도 7시 전에는 걷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빨리 일어나서 길을 가기에 대부분은 아침을 먹지 않고 떠나 중간에 있는 카페나 바를 이용한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기에 거의 대부분 길을 걸으면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다. 물론 서쪽을 향해 가기에 해는 등 뒤에 떠오른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에서 사아군에 이르기까지 도로를 따라 이동할 수도 있으나 모라티노스와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를 거치는 길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이 길이 지나는 마을은 상당수의 건물들이 무너진 것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진흙과 짚을 섞어서 만든 소박한 벽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양식의 건축법은 무데하르 양식(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의 영향으로 추측할 수 있고, 사아군에 남아있는 성당 건축물에서 무데하르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들은 저녁 해질 무렵에는 붉은색이 하나가 되어 우리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이미 955년 역사에 등장하는 모라티노스는 다른 지역에서는 돌과 벽돌을 섞어서 건물을 지었지만 이 마을에서는 성당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오로지 벽돌로만 지었다는 작은 마을이다.

 

 티에라 데 캄포스 지역 주민 대부분은 중세 시대에 스페인 북부나 다른 유럽 왕국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발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옮겨와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삶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모라티노스 마을 주민들은 이베리아 반도 남쪽의 이슬람 왕국에 살던 기독교도였다. 이들은 이주와 함께 자신들의 고유한 건축 방식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이 모라티노스만이 벽돌을 많이 쓰는 특이한 건축방식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을 지나가면 마을 중심의 조그만 광장에 16세기의 건물로 교구 성당 역할을 하는 산 토마스 성당 (Iglesia de San Tomas)이 있다.

 

모나티노스 표시

 

산 토마스 성당

 

마을에 달아 놓은 깃발

 

모라티노스 서비스 시설 표시

 

 별로 특징이 없고 순례자들을 위한 서비스 시설도 없어 그냥 통과하여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표시되어 있는 까미노 표시를 따라 삼십 분 정도만 걸으면 팔렌시아 지방의 마지막 마을인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1183년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세에는 이곳은 산티아고를 향해 계속 갈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된 순례자와 나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사아군까지는 아직 7km 이상이 남았기에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에 들러 이제 습관이 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보니 카페가 알베르게를 겸하면서 제법 오래 된 건물이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카페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표시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쉬다가 마을로 들어가니 산 니콜라스 주교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Obispo)이 나타난다. 이 성당은 무데하르 양식의 벽돌로 지어졌으며 성당의 내부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과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다. 석양이 질 무렵에 성당을 바라보게 되면 특유의 붉은 색을 띤 벽돌의 색깔이 감동적이라 하는데 나는 아침에 이 곳을 지난다. 곳곳에서 제대로 볼 것을 못보고 지나가는 마음에는 항상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을 걷는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산 니콜라스 주교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Obispo)

 

 마을의 출구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세킬료 강을 건너 사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오래된 까미노 길을 따라가면 팔렌시아와 레온의 경계를 이루는 카라스코 언덕의 정상을 오르게 되고, 좁은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팔렌시아와 레온을 거치는 발데라두에이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멀리 사아군의 성당 탑들이 보이며 이제 팔렌시아를 지나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으로 들어간다.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은 스페인 북부 지방에 있는 주로 주도(州都)는 레온(León)이다. 알폰소 10세가 그의 연대기에 레온의 첫 번째 왕이었던 돈 펠라요 왕과 함께라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카스티야보다 레온이 먼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레온 주의 많은 아름다운 도시는 오래된 역사만큼 예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켈트의 옛 성터, 로마 시대 광산, 아스토르가에 있는 로마의 흔적, 산 미겔 데 에스칼라다 수도원의 모사라베 양식의 보물, ‘로마네스크의 시스티나라고 할 수 있는 레온 산 이시도로 성당의 소성당, 독특한 양식의 사아군 성당들,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르네상스 양식인 산 마르코스 병원, 그리고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인 아스토르가의 주교궁과 레온의 카사 보티네스 등등 셀 수가 없다. 그러나 레온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역사, 예술, 전통뿐만이 아니라 자연으로 북부는 칸타브리아산맥, 남부는 두에로강()의 지류 연변에 전개된 평지가 펼쳐져 있다. 이 밖에 산지에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밤나무 등의 임산자원이 많고, , 당나귀, 양의 사육도 많이 한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는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 사아군에 도착하기 약 3km 전에 있는 푸엔테 성모성당에 도착하기 전까지 까미노 길은 포장된 길로 걸어간다. 성당을 지나면서 다시 부드러운 흙길로 변하고, 자동차 전용도로의 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어느새 사아군에 도착한다. 사아군 기차역을 돌아가는 길을 따라서 철길을 옆으로 끼고 걷게 되면 사아군의 오래된 구시가지에 도달하게 된다.

 

 사아군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13세기 무데하르 양식의 푸엔테 성모 성당(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에는 성모상이 있는데 여러 번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중 사아군에서 악당으로 악명 높은 히네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서 히네스는 깊이 회개하고 성모에게 도움을 청하자 기적이 일어나 살아났다. 히네스는 이후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한 뒤, 사아군에 남아서 많은 순례자를 도와주며 살았다고 한다.

 

푸엔테 성모 성당(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

 

 푸엔테 성모 성당을 지나 조금 가니 들판에 아치 같은 것이 서 있고 그 사이를 산티아고 데 카미노로 가는 길임을 표시해 놓고 있다. 이 아치가 언제 제작되어 이곳에 서 있는 것인지를 아무리 찾아도 자료가 없다. 아마 옛날의 것이 아니고 최근의 건축물인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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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치를 지나 조금 가면 사아군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카스티야주를 지난 뒤 레온주에서 만나는 첫 도시로, 11세기 알폰소 6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사아군(Sahagún)은 자치단체로 티에라 데 사아군 지방의 중심지이다. 사아군이라는 지명은 성 파쿤두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성 파쿤두스는 서기300년에 세아 강변에서 참수형에 처해져 세아 강에 버려졌다. 기독교도들이 유해를 수습해 304년에 지금의 사아군 자리에 매장하고 순교자로 숭배했다. 이 무덤은 상크투스 파쿤두스(Sanctus Facundus)’로 불렸는데 이 말이 차츰 축약되어 산파군(San Fagun)’사파군(Safa-gun)’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사아군이 되었다고 한다. 사아군은 중세 스페인의 클뤼니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산 베니토 수도원이 위치했던 곳으로 관광업이 경제의 주축을 이룬다. 사아군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무데하르 양식의 유적들로 가득 차있다.

 

순례자의 여러 모습을 그린 벽화

 

사아군 표시

 

사아군의 철길

 

사아군 안내도

 

 중세 스페인 수도원 건축물은 후기 고딕양식이 주를 이루지만 13~16세기 스페인에서는 이슬람 양식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 특유의 무데하르(Mudejar) 양식이라는 건축 양식이 발달했는데, 사아군은 가장 초기에 속하는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이 여러 개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 독특한 모습 때문에 사아군의 무데하르 건축유적은 관광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하학적 형태의 목재천정과 채색타일 등이 특징인 무데하르양식으로 대표적인 건축물은 산 티르소 성당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16~18세기 사이에 여러 번 개축되었다. 12세기 무데하르 양식의 탑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다. 13세기에 건축한 산 로렌소 교회(Iglesia de San Lorenzo), 16세기에 건축한 트리니다드 교회(Iglesia de la Trinidad), 17세기에 건축한 산 베니토 아치문(Arco de San Benito)을 비롯한 역사적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다.

 

 사아군 시내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 까미노 길을 걸으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주스는 생 오렌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짜서 주는데 대략 한 잔의 주스를 만들기 위해 4개 정도의 오렌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선하고 맛도 있어 매일 마신 것이다.

 

 

 사아군 시내를 통과하니 여러 성당이 보였으나 그냥 지나치고 가니 순례자의 표주박을 나타내는 상이 보인다. 그 주위를 둘러보니 산 베니토 아치 (Arco de San Benito)와 알폰스 6세의 거주지라는 설명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산 베니토 아치(Arco de San Benito)17세기 산 베니토 데 사아군 수도원에서 만든 건축물로, 수도원은 동전을 주조할 만큼 부유했었으며 성 베니토는 훗날 스페인의 클뤼니로 불렸다.

 

 서고트시대에 앞에서 사아군의 이름 유래에서 이야기한 파쿤두스의 무덤 자리에 도모스 산토스 수도원이 세워졌다. 이 수도원은 무슬림들에 의해 여러 차례 파괴되었으나, 매번 재건되었다가 알폰소 6세 때 마지막으로 재건되었다. 알폰소 6세는 수도원 개혁을 지지하여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시작된 클뤼니 개혁운동(교회가 부패되어 가던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본연의 영적생활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스페인에 확산시키기 위해 도모스 산토스 수도원 자리에 산 베니토 수도원을 세우고 여러 특혜를 주었다. 산 베니토 수도원은 중세 말기에 스페인의 클뤼니로 불릴 정도로 발전했으나, 현재는 시계탑만 남아있는 수도원 유적과 도시 입구의 커다란 아치만이 남아있다.

 

산 베니토 아치 (Arco de San Benito)

 

알폰스 6세의 거주지 안내판

 

순례자의 표주박 조형물앞에서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로 가는 길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으나 지난 며칠간의 길보다 많은 아스팔트길을 걸으니 자칫 다리에 무리를 줄 수도 있고, 도로 주위의 나무들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으므로 휴식을 할 곳이 거의 없다.

 

 사아군에서 먼저 마을 출구의 세아 강 위를 지나는 칸토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산타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다리가 나타나나 다리를 건널 필요도 없다. 약 한 시간 반 가량을 계속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끝없는 평원 위로 이어져 있고 걷기에 매우 좋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는 카스티야 지방의 전원 건축을 구경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점토와 짚을 섞어 햇볕에 말린 가벼운 벽돌로 지은 집, 흙으로 만든 담, 바위를 파서 만든 저장고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옛날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저장고에 포도주와 돼지로 만든 전통 음식이 보관되어 있었다.

 마을 이름의 기원은 마을의 첫 거주자가 엘 비에르소(El Bierzo) 출신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를 지나가는 길 주위에는 저수지와 작은 연못들이 많은데 여름철에는 무더위 때문에 물이 모두 증발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이 길은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카미노 알트란티보 표시

 

길가의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표시


.작은 연못을 지나면 이윽고 오래된 페랄레스 성모 성당이 나타나고, 성당을 지나서 조금 가면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을 들어가는 입구에 알베르게가 나타나고 오늘은 여기서 멈춘다. 페랄레스의 성모 성당
(Ermita de la Virgen de Perales)은 마을에 진입하기 전 순례자의 쉼터에 있는 성당으로 내부에는 라 페랄라’(La Perala)라고 부르는 성모상이 있어서 항상 마을 사람들이 와서 경배를 드리는 곳이다.

 

페랄레스의 성모 암자 표시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

 

알베르게에 걸려 있는 지도

 

알베르게 마당에 피어 있는 꽃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반이었다. 숙소는 아마 최근에 건축한 것으로 짐작되는 현대식 건물에 시설도 현대적이어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마을과는 상당히 떨어진 마을 입구에 있어 식당이나 슈퍼 등을 주변에서  찾을 수 없어 알베르게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점심을 먼저 먹고 몸을 씻고 세탁을 하고 알베르게의 넓은 마당에 따갑게 비치는 햇빛 아래에 빨래를 늘어놓고 망중한을 즐기다 보니 또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본능을 충실하게 한다. 먹고, 자고 걷는 것이 하루의 일과다. 그러니 또 시간이 되어 밥을 먹는 일은 무언가 의무적으로 하는 행동 같은 생각이 든다.

 

 저녁을 먹고 또 마당의 탁자에 무리를 지어 앉아 맥주와 와인을 시켜서 마시면서 온갖 잡담을 한다. 살아온 세월과 과정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길을 걷기에 화제는 항상 풍부하다. 하지만 얼마나 서로가 공감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8(06.03,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17.0km) - 레디고스(6.4km) -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3.2km)

 

 오늘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를 출발하여 이름도 긴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까지 약 27km를 걷는 길이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까지 27km는 평탄한 길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광활한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은 한 마음으로 단조로움에 홀로 된 것 같은 외로움을 호소한다.

 

 아침 일찍부터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의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시내를 가로 질러 올라가니 어제의 축제의 열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인적이 없는 적막함만이 감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을 지나 산티아고 성당으로 가는 시내는 어제 몇 번이고 지나갔던 길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 입구 장식

 

시청 광장

 

산티아고 성당

 

 시내를 지나 도시를 흐르는 카리온 강을 넘으면 카리온 데 콘데스의 출구로 이어진다. 오래된 돌다리를 넘으면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 Zoilo)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회랑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이 있는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을 16, 17, 18세기에 걸쳐서 수차례 증 개축하였고, 현재는 고급 호텔로 개조하여 관광객들을 유혹하지만 숙박비가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카리온 강

 

여러 문장의 모양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 Zoilo)

 

 도로를 가로질러 계속 이어지는 포장길을 따라 약 4.5킬로미터 정도 이어지는 이 구간은 자동차가 거의 없어 걷기에 편하다. 또 드넓게 펼쳐진 밀밭 사이로 드문드문 나무들이 보이고 길은 그 나무들을 이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까지 17km의 길 중간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을이나 쉴 수 있는 그늘이나 샘터도 없어 까미노 프란세스 중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가장 먼 길이다. 그러므로 길을 걷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음식과 음료수를 준비해야 한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둥글거나 네모난 형태의 조그만 벽돌집은 이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로 비둘기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약 10km 정도를 가니 반가운 푸드 트럭이 있다. 제법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은 대부분이 이 푸드 트럭에 앉아 쉬면서 커피나 음료를 곁들여 약간의 음식을 먹고 떠난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이 푸드 트럭은 스페인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운영하는 것이 보이는데 누가 운영하든지 길손들에게는 소중한 쉼터가 된다.

 

푸드 트력

 

 이제 이 길을 걷는 순례자의 앞길은 피곤함과 지루함 외로움이 함께하는 구간이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보이고, 순례자는 포장도로를 지나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밀밭을 지루하게 보면서 외롭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기 앞에서 걷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만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길을 갈 뿐이다.

 

산티아고 400km 표지석

 

끊임없이 계속되는 밀밭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는 아담한 마을로 위치가 분지 아래에 있어서 멀리서 보면 지평선과 혼동하여 지나쳐 버리기 쉽다. 아주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더 지루하고 피곤한 길이 될 수 있다.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라는  마을 안에는 벽돌로 지은 아담한 집들이 있고, 마을의 소박한 산 마르틴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Martin)의 내부에는 푸안 데 푸니 화파가 그린 16세기의 봉헌화가 있다.

 

멀리 보이는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 표시

 

쿠에사 강 표시

 

길가에 피어 있는 스페니쉬 블룸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를 지나기 위해서는 마을 중앙의 마요로 거리를 지나 마을의 왼쪽으로 도로를 지난다. 마을에서 다리를 통해 쿠에사 강을 건너면 여기에서 레디고스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로 나뉜다. 옛길과 새길이 있는데 주저 없이 옛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새길은 우회하는 길이다. 레디고스에는 순례자를 위한 특별한 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순례자는 그냥 통과하지만 시내를 구경하기를 권한다.

 

 레디고스는 1028년에 도냐 우라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주교 영지로 이 마을을 기부했다. 당시 기부에는 비둘기 집과 함께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을 비롯해서 현재에도 당시의 전통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레디고스 마을 전경

 

 

 레디고스를 떠난 순례자는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도로의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것이 좋다. 쿠에사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붉은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들이 길게 자리 잡은 12세기에 설립된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던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에 도착한다. 현재 마을에는 기사단과 관련된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마을의 이름에 끌린 많은 순례자들이 마을을 찾는다. 이 마을에는 황금 알을 낳는 닭이 묻힌 자리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이 전설은 템플 기사단과 관련이 있어, 이 전설을 믿는 중세의 연금술사들과 보물 사냥꾼들이 끊이지 않고 이 마을을 찾아 왔다고 한다.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 표시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에 도착하여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세탁을 하고난 뒤 알베르게 뜰에 앉아 일행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 왔다. 우루과이에서 왔다는 젊은이와 스페인 사람이라는 50대 정도의 남자. 그리고 40대로 보이는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제법 했다고 해도 루마니아를 가 본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루마니아를 일주일 정도 여행을 했기에 내가 여행을 한 곳들을 이야기하니 루마니아 여자는 아주 기뻐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며 쉬면서 보니 같이 길을 걸었던 한국의 모녀도 보이고, 태백의 젊은이도 보인다. 아마 이 마을에 알베르게가 없어 모두들 이곳에서 숙박을 하는 것 같았다. 제법 오랜만에 만나기에 반갑게 인사들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 같은 일이 이 길을 걸으면서 항상 겪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동류의식을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이다.

 

 한참을 쉬다가 저녁을 먹고 마을 구경을 나갔다. 오후 8시 경이었는데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이곳은 낮이 길어서 오후 10시 경이 되어야 해가 떨어진다. 마을에는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이라는 소박한 성당이 있는데 마을의 주민이 적어서인지 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마을에 있는 산티아고 길 표시

 

템플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알베르게

 

 조그마한 마을이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마을의 성당과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함께 간 일행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며 숙소로 돌아오니 9시가 되었다. 또 다시 가장 원초적인 행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잠자리에 든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7(06.02, 프로미스타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프로미스타 -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3.5km) - 레벵가 데 캄포스(2.4km) -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2.1km) - 비얄 카사르 데 시르가(4.1km)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5.8km)

 

 오늘은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까지 가는 아주 평이한 18km 정도의 아주 짧은 길이다. 오늘의 길은 오랜 기간의 까미노에서 잠시 쉬어가듯이 너그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걷는 길이다.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가려면 자동차 도로와 나란히 이어져있는 편안하지만 지루하고 햇빛을 피하기 어려운 메세타 지역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이 길에는 갈림길이 없이 길게 뻗어있는 길이 있을 뿐이니 혼자서 생각에 잠기기에 좋다. 그러나 20km도 안 되는 짧은 길이기 때문에 잠시 쉬어가는 여정으로 생각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프로미스타와 비야카사르 데 시르가에 있는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충분히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이 길에는 카페와 작은 바들이 많아 순례자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길이 단조로워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에서 마을 오른쪽의 출구로 나와서 레벵가 데 캄포스를 우회하여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로 가는 길을 택하면 된다. 잠시나마 도로를 따라 걷는 지루함에서 벗어나 작고 아름다운 마을인 비요비에꼬를 들릴 수 있으며, 까리온 데 콘데스로 향하는 여정의 마지막 마을인 비야카사르 데 시르가에 들러 템플 기사단이 만들었다는 블랑카 성모성당을 방문할 수도 있다.

 

 아침 일찍 프로미스타를 떠나면서 보는  산 마르틴 성당(Iglesia de San Martin)은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좋은 성당으로, 늘씬한 탑과 문, 아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당나귀, 음악가, 곡예사, 여러 얼굴 등 각각 다른 장식이 되어 있는 주두와 300개가 넘는 추녀 받침이 독특하다. 또한 성당 내부의 후진 등이 완벽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품을 구성한다. 성당 내부에는 식물, 동물, 복잡한 장식이 새겨진 주두가 있으며 13세기의 십자가상과 조각상들이 있다.

 성당 내부의 주두에 새겨진 인물들은 중세 석공들의 비밀결사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후손들에게 은밀한 장소를 알려주는 힌트라고 한다.

 

 

산 마르틴 성당

 

프로미스타를 떠나는 안내도

 

 프로미스타를 나오는 길은 간단하다. 도로를 넘어 약 500미터 정도를 걷다 보면 버스 승차장과 안내소가 있고 성 마르틴 성당이 있는 넓은 마을 광장이 나온다. 성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오늘 길의 첫 번째 마을인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평탄한 길이라 거침이 없으나 햇빛을 피할 그늘이 없는 메세타고원 지역이므로 해가 내리쬐지 않는 아침 시간에 속도를 좀 높이는 것이 좋다.

 

순례자 모형

 

해가 떠오른다.

 

거침없는 평원 길

 

 프로미스타를 출발하여 단조로운 메세타고원의 평원 길을 가면 연이어 마을들이 나타난다. 이름도 비슷한 무슨 캄포스라는 세 마을을 지나면 비얄 카사르 델 시르가에 도착한다.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 표시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에 들어서기 직전 순례자는 왼쪽에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순례자 쉼터인 산 미겔 성당을 만난다.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는 1410년 알폰소 7세에 의해 예루살렘 성 요한 기사단에 기부되어 성 요한 기사단의 영지로 전해지고 있다.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가 있는 언덕 위에는 성당이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막달레나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la Magdalena)에는 16세기의 아름다운 봉헌화가 있다.

 

지붕의 첨탑만 보이는 막달레나 교구 성당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 마을의 출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선택하면 우시에사 강을 건너 12세기에 만들어진 레벵가 데 캄포스를 거쳐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까지는 그늘 한 점 없는 자동차 도로 옆길을 약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어야 한다.

 

 다음에 나오는 레벵가 데 캄포스는 순례자의 십자가, 프랑스 길이라는 거리가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이다. 16~17세기의 오래된 집과 스페인 역사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태어난 곳이다.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로렌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Lorenzo) 옆에 있는 작은 기념물은 이 마을에서 태어난 바르톨로메 아모르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는 독립전쟁 때 침략자들과의 전쟁에서 팔렌시아를 지켜낸 인물이다.

 

레뱅가 데 캄포스 표시

 

산 로렌소 교구 성당

 

야고브 상

 

 

 다음에 나타나는 비야멘테로 데 캄포스는 아담한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로 성 마르틴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까미노 마을이라고는 해도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마을 출구의 크고 우람한 소나무가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그늘을 제공하며 소나무 숲 밑에 자리 잡은 순례자를 위한 쉼터가 반갑다. 이 마을의 산 마르틴 데 투르 성당(Iglesia de San Martin de Tours)은 아비뇽에서 사라진 산 마르틴 데 투르의 유해를 실은 노새가 이곳에 나타나자 성당의 종이 저절로 울렸다고 전해지는 성당으로 성당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돌과 벽돌, 목재 들보로 지은 소박한 16세기 건축물이다.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 표시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 마르틴 데 투르 성당

 

소나무 쉼터

 

 이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도로의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비얄카사르 데 시르가로 이동한다. 4km 정도 떨어진 비얄카사르 데 시르가로 가는 길에서 보는 하늘은 너무 맑다. 새파란 하늘은 항상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힘이 있다. 마을은 카리온 데 콘데스로 향하는 도로의 왼쪽에 위치하며 인구가 약 25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지만 순례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는 마을이다. 맛있는 음식과 중세 스페인 템플 기사단의 본거지였기에 순례자는 여기서 발길을 잠시 멈춘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방문해봐야 할 마을 중에 하나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의 왼쪽으로는 현대식으로 지은 호스텔이 보이고 조금 올라가면 블랑카 성모 성당이 나타난다.

 

 

 

 마을에 올라가 성당외부를 보고 내부를 보려고 하니 문을 잠가 놓았다. 그리고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11시에 성당 문을 연다고 되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10시여서 같이 길을 걷는 안산의 채선생과 의논하여 여기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기다려 보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가 치킨을 시켜서 천천히 먹고 있으니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에게 11시에 성당이 문을 연다고 알려주고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성당 주변을 구경하였다.

 

 블랑카 성모 성당은 블랑카의 성모 템플 기사단이 세운 성당 중에서 아주 중요한 곳으로, 블랑카 성모에게 봉헌되었고 기적이 일어나는 부조 조각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질 뿐만 아니라, 성당 신랑에 있는 우물은 기사단의 비밀 은신처로 가는 비밀 통로라고 전해진다.내부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희망의 성모상은 마치 임신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블랑카 성모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가장 유명한 기적은 성당 건축 중 일어났다.

성당을 짓던 중 건축용 석재가 도난당하자 한 순례자가 범인으로 몰렸다. 그가 교수형을 당하려는 순간 성모 마리아가 그의 발밑에 건축용 돌을 놓아주며 무죄를 입증했다고 한다.

 

블랑카 성모 성당 외부

 

 새롭게 정비된 듯 굉장히 깨끗한 성당 앞에 있는 마을 광장에는 식탁에 앉아 성당을 느긋이 쳐다보는 순례자의 동상이 있다. 오랜 길을 걸은 순례자는 이곳에 앉아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까? 아니면 앞으로 더 가야만 하는 길에 대한 걱정일까? 그런데 순례자의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평화롭고 여유롭게 보인다. 현대에 이 길을 걷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행이 목적이지 종교적인 순례가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이 종교적인 깨우침을 얻고자 이 순례길을 걸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으면서 이 순례자는 무엇인지 평화를 얻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얼굴이다.

 이 순례자 상 곁에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순례길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다.

 

순례자 상

 

산타 마리아 블랑카 성당

 

 11시가 다 되어가니 한 여인이 광장을 질러오고 있었다. 아마도 성당의 관리인 같아 따라가니 성당 문을 연다. 정확히 11시다. 시간을 엄청나게 잘 지킨다고 성당을 구경하려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하면서 내부로 들어갔다.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으로도 불리는 블랑카 성모 성당(Iglesia de la Virgen Blanca)13세기 템플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성당은 팔렌시아의 고딕 양식 보물로 14세기의 산티아고 소성당이 추가되었다. 고딕 양식의 성상이 있는 박물관이 있고 거대한 석조 블랑카 성모상, 섬세한 고딕 양식 십자가의 길 조각이 있다.

 

 블랑카 성모 성당 안에는 고딕양식의 무덤이 세 개 있다. 템플 기사단 기사의 무덤, 알폰소 10세의 동생 돈 펠리페, 그리고 그의 두 번째 부인의 무덤이다. 이 성당에 있는 산티아고 상은 두통을 가라앉히는 효험이 있다는데, 두통이 있을 때 손수건을 성인상의 이마에 댔다가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블랑카 성모 성당(Iglesia de la Virgen Blanca) 내부

 

 이제 오늘의 종착지인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다.

 

 비얄카사르 데 시르카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향하는 길은 도로의 오른쪽을 따라 약 3km 지난 지점에서 만나는 조그만 언덕을 오르면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이 길을 가는 도중에 보는 하늘과 땅은 너무 평화롭고 여유롭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은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여 이 길을 걸으면서 순례자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즐거워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사람에게 풍요를 주는 들판

 

 팔렌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까미노의 심장으로 불리는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는 카스티야 및 레온 자치지역에 위치한 팔렌시아 지방의 티에라 데 캄포스 지역에 있는 자치단체로 팔렌시아시에서 40km 떨어져 카리온 강가에 있으며, 로마시대 이전에도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다수 발굴되어 오래 전부터 도시 기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원래는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이 건설한 도시였으나 9세기 초에 기독교도에게 넘어갔다. 중세 초기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는 기독교 왕국들 사이에서 중요한 도시로 법정과 종교회의가 열렸고,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라는 마을 명칭은 1552년에 알돈사 만리케의 유서에 처음 등장한다.

 중세에 이미 12개의 크고 작은 성당 건축물과 병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유서 깊은 도시답게 곳곳에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남아 있는데, 특히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역사적 건축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12세기의 산 소일로 수도원(Monasterio de San Zoilo), 13세기의 산티아고 교회(Iglesia de Santiago), 14세기의 산타 클라라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Clara) 등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l Camimo)에는 이슬람 왕들에게 조공으로 바쳐지는 카리온 처녀들을 황소들이 구해냈다는 전설이 묘사된 그림이 있다. 특히 중세의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에서는 카리온 데 꼰데스를 찾아오는 순례자에게 커다란 빵을 주고, 성직자에게는 빵과 계란, 포도주와 돈을 줄 정도로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1894년 도시로 승격했고, 대륙성 지중해 기후로 겨울이 춥고 서리가 잦으며 여름은 건조하고 온난하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표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도착하니 이제 오후 1시다. 시내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의자에 앉아 조금 휴식을 하면서 주변을 보니 이 알베르게가 일반적인 숙소가 아니었다. 옛날에 산타 클라라 왕립 수도원 (Real Monasterio de Santa Clara)이었던 이곳은 현재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로 사용되고 있고, 옆에는 옛 성당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그레고리오 페르난데스의 피에타가 있으며 16세기부터의 다양한 작품들이 많다고 하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들어가지를 못했다.

 

수도원 뜰의 조형물

 

수도원 알베르게 표시

 

옛 성당

 

산타 클라라 수도원 설명

 

성당과 수도원 전경

 

 이 수도원 벽에 '내 이름을 위해 집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녀나 재산을 바치는 사람은 백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다.'는 내용의 동판이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은 종교적인 헌신을 말하는 것이니 범인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깨닫기는 어렵지만 무엇인가를 생각은 하게 해 준다. 

 

벽에 붙어 있는 동판

 

 알베르게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나가서 조금 가니 길을 꽃으로 장식해 놓고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사진을 찍으며 꽃으로 장식된 길을 구경했는데 꽃길이 길게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꽃길을 따라가니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고 큰 축제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종교적인 축제같이 어린 아이들과 성인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화려한 옷을 입고 행렬에 참가하고 있고, 심지어 밴드와 큰 장식을 한 수레까지 동원되고 있었다. 이 축제가 무슨 의미인지 뜻도 모르고 그 축제의 행렬을 따라가며 같이 걸으며 사진도 찍으면서 동행을 하니 시내를 거의 일주하는 듯했다.

 

우리에게는 이런 축제가 없기에 의아했지만 뒤에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포스터를 보고 이 축제가 무슨 축제인지를 알았다. 이 축제는 바로 Corpus Christi(성체축일, 聖體祝日)다.

 

 라틴어로 Corpus Christi라 일컫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Solemnity of Corpus Christi)은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제2주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기념하고 그 신비를 묵상하는 날로 기독교의 축일의 하나로 전 세계에서 축일 행사를 하는 도시가 많다.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1264년에 시작된 성체의 축일은 우르바노 4세에 의해서 모든 교회를 위해서 거론되고, 요한 22세에 의해서 1317년 결정되었다. 삼위일체제가 든 주의 목요일에 성체행렬 등에 의해서 성대하게 축하되었는데, 오늘날에는 다음의 일요일에 축하하는 지방이 많다. 이 축일의 미사와 성무일에 관한 전례문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축제에서 마을을 통과하는 성체경로의 꽃 카펫에 사용하는 꽃은 들판에 있는 꽃들과 가족의 정원에서 키운 꽃들을 사용한다고 하며, 이 축제를 위해 며칠 동안 꽃과 나뭇잎을 준비하고, 길에 도형을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온 시내를 장식한다. 다른 도시에서의 이 축제를 보지 못해서 잘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축제는 규모나 질적으로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이 시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마을에서도 참가하여 모두가 즐기는 엄청난 축제에 내가 우연히도 참석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축제 포스터(2024. 06. 02)

 

길 장식

 

축제의 행렬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축제를 함께 즐기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우리 무리 4명이 같이 나가 식당을 찾으니 시내의 식당 전체가 만원이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가족을 대동하고 무리를 지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마 주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곳에 모인 것 같았다. 어렵게 큰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니 너무 손님이 많아서 주문이 어려웠다. 여태까지 먹어왔던 순례자 메뉴를 시키지 않고 단품으로 여러 가지를 시켜 먹고 계산서를 요청하니 생각보다 많은 액수가 나왔다. 하지만 크게 우려할만한 액수는 아니라 모두 웃으면서 밖으로 나와 산타 마리아 성당의 주변을 조금 구경하고 시내를 따라 올라가며 구경을 했다.

 

 도시의 입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까미노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l Camimo)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현관에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파사드에는 이슬람교도에게 바쳐진 100명의 처녀의 전설에 관한 황소의 머리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카리온에서 이슬람교도들에게 처녀 백 명을 바쳐야 했다. 그 중 네 처녀가 성모 마리아에게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청했고 그들을 동정한 성모가 황소 네 마리를 나타나게 해서 이슬람교도들을 쫓아내서 처녀들이 풀려났다고 한다. 이밖에 성당 내부에는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승리의 성모와 도움의 그리스도가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del Camimo) 전경과 순례자상

 

산타 마리아 (Iglesia de Santa Maria del Camimo) 성당 설명

 

산타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del Camimo) 입구

 

 산타 마리아 광장을 통과하여 위로 올라가면 12세기의 로마네스크 건물로 파사드에는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가 있는 산티아고 성당(Iglesia de Santiago)이 나온다. 이 성당 광장 입구의 아치에는 24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각이 숨겨져 있다.

 

산티아고 성당(Iglesia de Santiago) 광장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알베르게로 가면서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고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쉬다가 산타 마리아성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하여 성당 내부를 구경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수녀님에게 이 성당에 얽힌 전설에 관한 황소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니 잘 모르고 계셨다.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답을 얻을 수 없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산타 마리아 성당의 내부

 

 오늘의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은 우연히 행운이 마주친 날이었다. 언제 우리가 유럽의 축제에 참가해서 함께 즐기며 볼 수 있으랴!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6(06.01, 카스트로헤리스 - 프로미스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카스트로헤리스 -  이테로 델 카스티요(9.3km) - 이테로 데 라베가(1.8km) - 보아딜랴 델 까미노(8.2km) - 프로미스타(5.7km)

 

 오늘 여정의 시작인 카스트로헤리스의 출구는 오르막길 모스텔라레스 언덕으로 이어진다. 이 언덕은 카스트로헤리스에서 멀지만 눈앞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피레네 산맥도 넘은 순례자가 아닌가? 이 오르막길만 지나면 오늘의 종착지인 프로미스타까지는 평탄한 길이라 26km의 거리도 큰 무리를 주지는 않는다. 또 이 코스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까미노와 카스티야의 운하가 합쳐지는 곳이며 부르고스에서 팔렌시아로 넘어가는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길을 걷기 시작하려고 떠나기 전에 어제 저녁에 미리 아침을 주문하였기에 오랜만에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니 아직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아직은 어두운 길을 제법 걸어서 카스트로헤리스를 출발하니 어제 보았던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이 나오고 곧 마을의 공동묘지가 나온다.

 

하늘에 떠 있는 달

 

알베르게에 붙어 있는 까미노 길 안내도

 

아침에 보는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

 

공동묘지

 

 이곳을 지나 모스텔라레스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넓은 평원이고, 이 평원을 지날 때 이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니 하늘에 해가 떠올라 비추는 모습이 아름답다. 언덕을 향해 가는 길에 펼쳐지는 평원은 너무 고요하여 평화롭게 느껴진다.

 

파일럿 프로그램 200(자속 가능한 농촌 개발 프로그램) 설명판

 

 해발 940m의 모스테라레스 언덕 정상은 나무가 거의 없는 메세타 지역이다. 500미터 정도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십자가상이 보이며 조금 더 가면 순례자의 피로를 씻겨줄 삐오호 샘을 만나게 된다. 샘터에서 휴식을 가진 뒤 오른쪽으로 돌아 약 1km 정도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푸엔테 피테로로 가는 길이 보인다.

 

길가의 십자가와 탑(무슨 탑인지?)

 

모스텔라레스 언덕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풍경

 

이테로 델 카스티요 안내판

 

대량학살을 중지하라는 문구

 

길가의 들꽃들

 

산티아고 455km 표지석

 

 모스텔라레스 언덕을 내려 가 부르고스와 팔렌시아를 구분하는 피수에르가 강 주위의 푸엔테 피테로에 가기 전에 성 니콜라스 성당이 나온다. 이곳에는 성 야고보 형제회가 있는데 이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세시대의 전통을 지켜가며 순례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접대한다. 산 니꼴라스 성당(Ermita de San Nicolas)은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이떼로 델 가스띠요라고도 불리는 13세기의 건물로 이테로 다리를 건너기 전에 까미노의 왼쪽에 있다. 현재는 페루자의 성 야고보회에서 운영하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로 쓰인다.

 

산 니콜라스 푸엔테 티테로(순례자의 병원) 표지판

 

 

 

 성 야고보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성 니꼴라스 성당을 지나면 시작하는 사람들의 다리라고도 알려진 돌다리를 넘게 된다. 중세 연금술사들은 이 다리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가톨릭 사상에 위배되는 자신이 죽고 새로 태어나는 곳이라고 믿었다. 까미노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알폰소 6세가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의 결합을 기리며 건축한 이테로 다리(Puente de Itero)는 열한 개의 아치와 부벽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순례자는 팔렌시아를 걷는다.

 

 팔렌시아주(provincia de palencia)는 스페인 북부 카스티야와 레온 자치지역에 있는 주()로 주도는 같은 이름의 팔렌시아시(). 팔렌시아주는 191개의 자치시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절반 이상은 인구 200명 미만의 소규모 마을이다. 팔렌시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여행가 다빌리에 남작은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경로에 포함이 안 되어 있을뿐더러 감춰진 보물들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이 있다. 팔렌시아는 그런 지방 중 하나다.”라고 팔렌시아를 평했다.

대륙에 변화된 지중해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10°C를 넘지 않으며 강우량은 많은 편이다. 1208년 알폰소 8세에 의해 스페인 최초의 대학이자 세계 최초의 대학인 팔렌시아 대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이 대학은 나중에 남쪽 바야돌리드로 옮겼다.

 

 푸엔테 피테로(Puente Fitero)라고도 불리는 작고 오래된 마을인 이테로 델 카스티요는 피수에르가 강이 굽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를 곁들인 간식을 먹고 있으니 우리보다 조금 늦게 떠난 일행이 들어온다. 잠시 수다를 떨다가 다시 길을 걷는다.

 

마을 입구의 이테로 다리(Puente de Itero)

 

 이테르 델 카스티요를 떠나서 약 2km 정도 떨어진 이테로 데 라 베가까지 가면서 만나는 거대한 밀밭의 평원은 외로움과 호젓함이 동시에 느끼게 한다. 또 이테로 데 라 베가에서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8km가 넘게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지평선을 감상 할 수 있다.

 

팔렌시아 지방 안내도

 

팔렌시아 지방 표시 입석

 

레온 주의 까미노 안내도

 

넓은 평원에 물을 뿌리는 살수기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아름다운 버드나무 숲 사이에 13세기의 단순한 고딕 양식인 자비의 성모 소성당(Ermita de Nuestra Senora de la Piedad)이 있고,  마을 광장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심판의 기둥(Rollo Juridiscional)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1966년에 스페인 문화자산으로 선정되었다.

 

이테로 데 라 베가 마을 표시 

 

심판의 기둥 (Rollo Juridiscional)

 

 

 

 피수에르가 강변의 기름진 평야의 작은 마을인 이떼로 데 라 베가를 떠나면 이제 눈앞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밀밭이 펼쳐진다. 순례자는 인적 없는 조그만 마을인 폼페드라사를 지나 피수에르가 운하를 만나게 된다. 운하를 지나면 멀리 보아디야 델 까미노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13세기에는 3개의 성당과 2개의 병원이 있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마을인 보아디야 델 까미노는 현재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성모 승천 성당과 같은 시대 플랑드르 양식을 보여주는 심판의 기둥으로 불리는 원주탑이 유명하다. 마을을 나서면 길게 뻗어있는 까스띠야 운하를 따라 걷게 된다. 이 길은 검정 버드나무가 아름다우며 5km 정도 걷다보면 시원한 수문을 만나며 오늘의 목적지인 프로미스따에 도착한 것이다.

 

피수에르가운하 표지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까미노 안내

 

 

 

 이 운하 근방을 지나가려니 길 중간을 공사 중이라 길을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사전에 이 정보를 미리 들었고 그냥 통과해도 된다고 하였기에 우리는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길을 가니 공사 구간은 아주 짧아 옆으로 지나가 거리를 많이 단축하고 운하의 아름다운 모습을 즐겼다.

 

공사 중인 운하 입구

 

칸타브리아 지방 까미노 안내도

 

운하 주변의 공사 구간

 

운하를 운행하는 유람선

 

운하 유람선 정류장

 

 프로미스타에는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스페인 역사에서 근대에 이루어진 토목공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카스티야 운하(El Canal de Castilla)가 있다. 카스티야 운하는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 중앙부를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조성한 대규모 운하로 카리온 강과 피수에르가 강의 물을 티에라 데 캄포스 평원에 고루 분배한다.

 총 길이가 207km에 달하는 대운하는 모두 46개 도시를 통과하며 부르고스주(Provincia de Burgos), 팔렌시아주(Provincia de Palencia), 바야돌리드주(Provincia de Valladolid) 3개 주에 걸쳐 뻗어 있다. 18세기 후반기에 건설 공사를 시작해 19세기 전반기에 완성했다.

 예전에는 카스티야 내륙 지방과 칸타브리아 해안 사이의 물류 이동을 담당했고, 이후엔 관개수가 흐르는 운하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엔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이동한다든가 말을 타고 운하를 따라 달리는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로미스타로 들어가는 입구의 카스티야 운하

 

프로미스타 표시

 

 프로미스타는 매력적인 중세의 유적들과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살아있는 도시로 티에라 데 캄포스(Tierra de Campos)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마을이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밀밭으로 중세부터 농경의 중심지였으며 도시의 이름도 곡식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있고, 카스티야 운하와 돌에 새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메시지, 파문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카스티야의 밀밭에서 태어나 뱃사람들의 수호자가 된 성인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프로미스타에는 11세기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빛나는 건축물인 성 마르틴 성당이 가장 두드러진다. 또한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고딕양식의 성당인 성 페드로 성당 광장에서 많은 순례자들의 느긋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산 페드르 성당 외부 모습

 

오늘의 숙소 알베르게의 모습

 

길가의 고양이

 

 프로미스타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라 알베르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광장에 무료하게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주변을 돌아다니니 시간이 되어 알베르게가 문을 연다.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하고 쉬다가 저녁을 먹기 전에 산 페드로 성당을 구경하러 갔다.

 

 산 페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15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성당으로 아름다운 현관과 봉헌화, 패널화 등이 있다. 성당 안엔 패널에 스페인 플랑드르 양식으로 그린 종교화 29점이 소장된 작은 미술관이 있다.

 

산 페드로 성당 안내 - 내부와 미술관의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성당 앞에 있는 안내문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15세기의 르네상스식 출입구를 가지고 있으며, 주요 제단은 1636년 프란시스코 토레도가 디자인하였고 호세 인판테와 니콜라스 델 베가가 제작하였다.내부의 미술관에는 플랑드르 양식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동정녀와 그리스도의 삶의 장면들이며 구약성서의 일부 에피소드다. 이 그림들은 페르난도 살레고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이다.

 

성당의 입구

 

 성당에 들어가 제단을 보고 주변을 보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일반적인 파이프 오르간과는 다른 모습의 이층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이다. 그 오르간을 자세히 보려고 이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올라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놓았다. 어쩔 수없이 성당 안에 있는 작은 미술관으로 들어가니 상상 이상의 화려한 여러 장식품과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그림들이 시선을 끌었다.

 

2층의 파이프 오르간의 모습

 

미술관의 여러 소장품

 

미술관을 나와 성당 내부를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고 나가려니 아쉬운 마음이 너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미술관 앞에서 관람객에게 미술관 입장을 안내하는 여인에게 오르간을 좀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손짓을 하며 짧은 의사소통을 하였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다가 내가 여러 번 이야기하자 그 여자 분이 올라가도록 허락을 하면서 차단해 놓은 끈을 풀어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올라가서 보는 파이프 오르간은 너무 특이했다. 그리고 2층에서 보는 성당의 전경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정성이 통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결과여서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성당 내부의 모습

 

2층의 파이프 오르간과 그 주변의 모습

 

 아무도 올라가지 못한 2층을 올라가 파이프 오르간을 구경하고 만족하면서 성당을 나오니 일행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지고 한다. 오늘의 저녁은 이 프로미스타에서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폭립을 먹기로 하고 그 식당이 문을 열기를 기다린 것이다. 크지 않은 식당은 문을 열자마자 곧 손님으로 가득 찼다. 미리 예약을 하였기에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가져온다. 그런데 그 고기의 양이 아주 풍부하였다. 그래서 내가 다 먹지 않고 옆 사람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 여러 사람이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제법 늦게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식당

 

저녁식사인 폭립

 

 오늘은 길도 운하를 보면서 적당하게 걷고, 성당에서 특이한 파이프 오르간을 구경하고, 성당 미술관에서 여러 작품들을 보고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도 먹은 즐거운 하루였다. 이 즐거움을 간직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마감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5(05.31,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카스트로헤리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산볼(5.6km) - 온타나스(4.9km) -  콘벤토 데 산 안톤(5.6km) - 카스트로헤리스(3.6km)

 

 오늘은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출발하여 카스트로헤리스까지 20km도 안 되는 길을 가는 아주 짧은 여정이다. 오늘은 출발하기 전에 일행과 함께 가볍게 아침을 먹고 떠나기로 하여 아침을 먹고 나니 조금 늦었다. 하지만 오늘 걸을 거리가 짧기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산 로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Roman)과 수탉 탑

 

 오늘의 여정은 고원의 오르막을 제외하면 어려운 구간은 없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걷다보면 처음에는 아름다운 경치에 즐거워하다가 계속되는 단순한 풍경에 지겨움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특히 이 길에서는 10km나 떨어진 온타나스 이외에는 순례자를 위한 카페나 바가 없으므로 출발 전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여정에서는 카스티야 메세타의 전형을 볼 수 있고, 특히 온타나스와 산 안톤의 허물어진 성벽을 지날 때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출발하여 오르막길을 오르면 메세타고원이 나타난다. 좌우로 펼쳐지는 들판을 따라 약 한 시간 반 정도 길을 오르면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지 않는 아로요(Arroyo; 시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의 마을인 아로요 마을 어귀의 십자가상이 보인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전염병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주민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곳이라서 유대인 추방 이후 남은 주민이 없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1503년 아요로 산볼은 주민들에 의해 마을이 버려졌다고 전해지는데 기록상으로는 1352년 나환자를 위한 병원이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원지대로 올라가는 오르막

 



좌우로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십자가

 

오르가 파수에르가 지역 성당터 표시

 

벌판에 활짝 핀 관상용 양귀비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알베르게

 

카스트로헤리스의 알베르게 선전

 

양귀비와 들꽃

 

 바위 위로 나있는 길을 지나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게 되고 멀리 온타나스가 보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메세타의 평원을 즐기면서 언덕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면,  밀밭에 둘러싸인 중세풍의 아름다운 마을 온타나스 입구에 시원하고 깨끗한 샘물이 있고, 또 주위에 소박한 바와 관광객을 위한 안내소가 보이며 이 길은 마을의 끝으로 이어진다. 마을에는 샘이 도처에 많은데, 마을의 이름 온타나스(Hontanas; )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온타나스의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과 벽돌을 넣어 지은 목재 건물 사이로 까미노 길이 이어진다.

 

온타나스 표시

 

온타나스 마을 전경

 

온타나스 마을 소개

 

 온타나스 마을 입구에 돌로 만들어진 아주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처음에는 설명이 없어 무엇인지를 몰랐으나 그 돌집 안에 있는 성녀상은 아주 자애롭다. 나와서 주변을 보니 이 암자와 샘에 대한 설명 판이 있다. 성 브리기다의 암자와 샘으로 이 외딴 곳에 암자와 샘이 있으니 아마 예전에는 제법 큰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 브리기다의 암자와 성 브리기다 상

 

온타나스 마을

 

성 브리기다의 암자와 샘 표시

 

산타 브리지다 알베르게 선전판

 

 온타나스에 도착하여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쉬고 마을의 대표적인 성당인 콘셉시온 성모 성당(Iglesia de Nuestra Senora Concepcion)으로 갔다. 성당은 신고전주의 양식이며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아름답다. 이 성당은 특이하게 십자가상 위에 많은 사람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기도초를 밝히게 마련해 놓았다. 국가와 종교,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위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중 대표적으로 알 수 있는 얼굴은 마더 테레사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이들의 초상을 그려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이들에 대한 공경일까? 더 낮은 곳으로 임하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일까? 여러 생각을 하지만 생각은 각자의 자유다.

 

 그들 앞에 기도초를 밝히고 잠시 묵상을 하였다. 이제는 성당에 들어가면 기도초를 밝히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이 길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 다짐하기를 종교적인 의미는 배제하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거기에서서만 미사에 참여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 길을 걸으면서 그 다짐은 벌써 무색해졌다.

 

콘셉시온 성모 성당(Iglesia de Nuestra Senora Concepcion)

 

 

 

 

 또 특이하게 이 성당에는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비치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한글 성경도 보인다. 아마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작은 배려라고 생각되어 고맙게 느껴졌다.

 

여러 국가의 성경

 

 

 

 온타나스에서 카스트로헤리스까지 약 10km의 구간에서 도보 순례자는 도로를 넘어 도로와 나란히 지나가는 완만한 언덕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한적한 좁은 길을 따라 까미노를 걷다 보면 산 비센테 수도원의 폐허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3~4km 정도 지나다 보면 14세기의 아름다운 산 안톤 수도원을 만날 수 있다.

 

 온타나스 마을을 떠나 카스트로헤리스로 향하는 언덕 기슭 까미노의 오른쪽으로 비석 같은 것이 보인다. 호기심에 그 위로 올라가니 비석이 아니라 건물의 흔적이다. 모든 건물이 다 사라지고 기둥 하나만 남아 있는 이곳은 산 비센테 성당(Ermita de San Vicente)으로 현재는 모퉁이의 벽체만 남은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폐허가 된 유적을 볼 때마다 세월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산 비센테 성당(Ermita de San Vicente) 유적

 

 오늘의 목적지인 카스트로헤리스로 가는 길에 산 안톤 수도회의 오래된 병원과 수도원 건물의 폐허가 있는 산 안톤 수도원을 지난다. 지금은 13~14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들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수도원 건물과 성당 건물을 좌우로 연결하고 있는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아치가 돋보인다. 과거 이 아치는 수도원의 문 구실을 했으며 밤에 이곳에 도착하거나 문밖에서 밤을 지세는 순례자를 위해 아치의 왼쪽 선반에 음식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산 안톤 수도원을 만든 성 안토니오파의 수도회는 1095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이 수도회는 하느님과 우주에 관한 독창적인 믿음과 순례자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수도원은 과거 유럽의 대 재앙이었던 산 안톤의 불이라고 불렸던 피부병을 치료하고 돌봐준 곳으로 잘 알려져, 병을 치료하는 능력 덕택에 유럽 전체에 약 400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산 안톤 병원은 안토니오회 수사들이 운영하면서 중세의 순례자들이 병으로 고생한 산 안톤의 불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곳이었다. ‘산 안톤의 불은 몸속에 불이 나는 것 같은 고통과 손발의 끝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라고 전해지는데, 산 안톤 수도회는 이 병자들을 극진히 돌보았고, 병에 걸리지 않은 순례자들에게도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였다.

 현대에 산 안톤의 불은 라이보리에 기생하는 곰팡이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 밝혀졌다. 북유럽에서는 주식이 라이보리였기 때문에 이 병이 널리 퍼졌는데, 병자들은 이 길을 순례하면서 라이보리를 먹지 못해 자연스레 증상이 완화되어 산티아고에 도착할 즈음이면 완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도 야고보와 안토니오회 수사들의 도움으로 산 안톤의 불이 낫는다고 믿게 되었다고 전한다.

 

14세기 산 안톤 수도원 유적

 

산 안톤 아치(Arco de San Antón)

 

순례자병원 표시

 

기부함

 

산 안톤 수도원의 여러 모습

 

 산 안톤 수도원에서 여러 곳을 돌아보고 쉬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것은 말은 쉽게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면서 타인을 도우는 것은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이나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이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산 안톤 수도원에서 카스트로헤리스에 이르는 길은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길을 지나는 자동차들은 도보 순례자들에게 엄청나게 친절하다. 유럽의 길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사람 우선의 문화다.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가 아닌 길에서는 항상 자동차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사람이 보이면 자동차는 항상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게 한다. 심지어는 건널목에 붉은 불이 있어도 차는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길을 가다보면 멀리 지평선 끝에 언덕 위 카스트로헤리스의 성이 보인다. 카스트로헤리스로 마을에 들어가서 알베르게로 가기 위해서는 다소 가파른 언덕에 길쭉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의 거의 끝부분까지 이동해야 한다.

 

멀리 보이는 카스트로헤리스의 성

 

카스트로헤리스 표시

 

 메세타고원의 언덕에 자리 잡은 카스트로헤리스는 중세 성곽의 흔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시는 산티아고 길을 따라서 길게 뻗어있다. 성벽 안의 마을에는 오래된 유적과 수도원, 성당, 병원, 집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고 마을은 순례자를 위한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만사노 부속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l Manzano)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13세기의 현관, 15세기의 유리 세공품, 13세기의 돌로 만든 석공의 수호자로 일컫는 만사노의 채색 성모상 등이 남아 있다.

 

 만사노의 성모상은, 전설에 따르면 산티아고 성인이 백마를 타고 카스트로헤리스 성에서 나와 길을 가던 중, 사과나무 둥치의 구멍에서 성모상을 발견했다. 후에 이 성모상을 카스트로헤리스 입구의 만사노 부속 성당에 모셨다. 이 성모상은 알폰소 10세가 지은 산타 마리아의 노래’(Cantigas de Santa Maria)의 주인공이 되었고,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만사노 부속 성당을 짓는 공사를 하던 중 여러 사고가 생겼는데 그때마다 성모가 나타나 이들을 구해주었다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델 만사노 부속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l Manzano)

 

 

 

 카스트로헤리스에 도착하니 너무 빨리 와서 알베르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을 좀 돌아보고 알베르게로 가니 이곳에 한국인 주인이 있어 한국식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음식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니라서 현지 음식도 잘 먹었지만 오랜만에 우리 입맛을 돋우는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마을 위의 언덕에 있는 성으로 올라갔다. 성으로 올라가는 도로로 가지 않고 옆의 산길로 올라가니 상당히 가파른 길이었다.

 

카스트로헤리스의 역사적 유산에 관한 기록 표시

 

 이 성에 대한 기록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성에 있는 설명판을 참조하여 재구성해 본다.

 

 이 성은 9세기나 10세기 경에 고대 로마의 탑을 토대로 건설되었으며 중세시대에는 권력의 중심지가 되어 당시 수많은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13세기부터 여러 세기에 걸쳐 성벽이 강화되었고 카톨릭의 군주들과 함께 찬란한 시대를 보냈다.16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1755년 리스본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결국은 버려졌다. 지금 탑과 성문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성에 올라가 여러 곳을 구경하면서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는 카스트로헤리스의 광활한 사방의 풍경은 왜 여기에 성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위가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일망무제와 같다. 이러니 이곳에서는 사방에서 오는 적을 빨리 볼 수 있고 준비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의 구조에 대한 설명

 

성의 탑에 대한 설명

 

성 위에서 보는 사방의 풍경

 

성의 전경

 

성의 복원도 및 공격과 방어에 대한 설명

 

성에 대한 설명

 

 

성에서 도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서 마을의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성을 내려오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에서는 13세기부터의 세공품과 회화, 조각 작품 그리고 16세기의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감상할 수 있다.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

 

 조금 옆에  1990년 스페인 문화 자산으로 선정된 산 후안 성당(Iglesia de San Juan)13세기의 고딕 양식 건물로 회랑은 15세기 양식을 띄고 있다. 부벽을 두 겹으로 세운 독특한 건축법은 성당보다는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 후안 성당 설명

 

산 후안 성당(Iglesia de San Juan)

 

카스트로헤리스의 까미노 산티아고 표시

 

 

 

 성을 올라갔다가 와서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휴식을 한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니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에 들어온 사람이 아닌 사람이 아닌 다른 알베르게의 한국인도 상당히 눈에 띈다. 아마도 오랜 길에서 한국의 음식이 그리웠는가 보였다 .미리 주문한 한국식 비빔밥으로 먹고 가볍게 사람들과 모여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순례가 아니라 술례를 하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지만 나는 답을 해 준다. 이 길에서 위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에 계시고 아래에는 실제로 피곤한 우리를 기쁘게 하는 주()님이 계시니, 길을 걸을 때는 위의 주님을 경배하고 길을 걷기를 마치고 휴식을 할 때는 아래의 주님을 즐긴다고 궤변을 늘어 놓는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이 길을 걸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와 존경을 보내며 하루를 마친다.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4(05.30, 부르고스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부르고스 - 타르다호스(10.8km) -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1.8km)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8.0km)

 

 오늘은 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지 가는 22km가 안될 정도로 짧은 거리다. 부르고스에서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까지는 아르란손 강의 계곡을 따라 부드러운 산책길이 이어지며 그 뒤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지는 고원지대와 밀밭이 계속되는 전형적인 메세타고원 풍경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한반도보다 더 넓은 메세타고원은 여름에는 사막과 같은 열기와 건조함을, 겨울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시베리아 동토의 차가움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세타고원은 순례자에게 진정한 순례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메세타고원은 순례자의 육체적 정신적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몸과 마음이 순례길과 하나가 되는 순간 주위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메세타고원을 걸은 순례자는 어김없이 이 길이 주는 고독과 침묵, 평화와 여유의 기쁨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순례를 원한다면 메세타고원을 두 발로 걸을 것을 권한다. 다행히 내가 걸은 5월 말과 6월 초는 너무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펼쳐지는 고원의 평원과 너무 맑은 하늘을 즐겼다. 이것도 축복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부르고스 대성당

 

 대성당을 옆에 두고 전망대 올라가는 길로 가서 왼쪽으로 까미노 길을 따라가 페르난 곤잘레스 문을 지나서 추모탑을 지나면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엘 시드의 집이 나온다. 엘 시드의 집(Solar del Cid)18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엘 시드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의 집이 있었던 곳에 만들어졌다. 엘시드의 집을 지나면 이제 부르고스를 떠나는 문인  산 마르틴 아치(Arco de San Martin)를 지나간다. 이 문은 14~15세기에 걸쳐 건설된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의 일부였으며 왕족이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다. 무데하르 양식의 이 문을 통해 순례자들은 아름다운 부르고스와 작별한다.

 

페르난 곤잘레스 문

 

엘 시드의 집

 

산 마르틴 아치

 

 산 마르틴 아치를 통과하면 여기서부터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까지는 아르란손 강의 비옥한 농지와 버드나무 숲을 걷는 기분 좋은 길이나 까미노는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를 통과하지는 않는다. 마을을 들어가기 전 철길을 건너면 이어지는 까미노는 현대적인 보행자 육교에 도착한다. 이 육교는 고속도로가 이어지는 복잡한 분기점을 넘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순례자는 아르소비스포 다리(Puente del Arzobispo)를 통해서 아를란손 강을 건넌 후 왼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타르다호스 마을에 다다른다.

 

아일랜드 워크 설명판

 

산티아고 이정표

 

남은 까미노 길 501km 표시

 

데블리굴라 유적지 설명

 

타르다호스 입구 표시

 

타르다호스의 위치 표시

 

 부르고스에서 아침도 먹지 않고 약 11km를 걸어왔기에 시장기도 돌고 휴식도 취하기 위해 카페에 들러서 간단하게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까미노 길은 항상 일찍 떠나기에 제대로 아침을 먹고 가는 날이 없어 처음 만나는 마을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다. 카페를 떠나 거리를 걸으면 만나는 카르다호스의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13세기 고딕 양식 건축으로 바로크 양식의 조각품과 유물 컬렉션이 아름답다.

 

산타 마리아 성당

 

 타르다호스에서 다음 마을인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까지는 2km가 채 안 되는 거리로 길은 매우 평탄하며 샛길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마을을 빠져 나와 우르벨 강(Rio Urbel)을 건너면 아를란손 평야에 위치한 아름다우면서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마을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에 도착한다. 이 도시가 언제 지어졌는지에 관하여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라베(Rabe)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이곳에 유대인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랍비(Rabi; 유대교 스승)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축구 포지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리베로(Ribero; )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래된 집 사이의 도로를 따라가면 샘터가 있는 광장이 있다. 13세기에 만들어져서 여러 번 개축되었으나 아직까지 고딕 양식 현관 등이 남아있는 산타 마리나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 de Santa Marina)을 왼쪽으로 가면 공동묘지와 함께 모나스테리오 성모상을 보존하고 있는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Ermita de Nuestra Senora Monasterio)이 나타난다. 이 길가의 조그마한 성당은 순례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 성당에 들어가면 수녀님이 모든 순례자의 안전을 위해서 강복을 해 주며 기념 목걸이를 걸어준다. 수녀님이 하루 종일 계시는 것이 아니기에 수녀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다른 종사자들이 목걸이를 걸어준다. 수녀님을 만나든지 다른 종사자를 만나는 것은 자신의 그날 행운이다. 물론 너무 빨리 지나가거나 너무 늦은 시간에 지나가면 아무도 없을 수가 있다.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마을 표시

 

멀리 보이는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

 

샘터가 있는 광장

 

거리의 벽화(오른쪽 아래 글은 시편과 요한계시록이다.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

 

 성당에 들어가 기도초를 밝히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오면서 기념목걸이를 받았다. 하지만 이 목걸이는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크렌디시얼을 넣는 비닐 봉투안에 넣어 두었는데 크렌디시얼을 꺼내다가 어디에서 분실했는지도 모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잃어버렸다. 잠시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곧 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도 큰 얻음이었다.

 

 

 

 이곳에서 고원지대를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 메세타고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분지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오르막이 계속되고, 고원지대를 올라가면 오늘의 여정은 거의 끝난다.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가서 오래된 십자가상이 있는 도로의 교차로를 건너면 평원에 자리 잡은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이 보인다.

 

 지명이 스페인어로 탁자란 뜻의 메세타 고원(스페인어: Meseta Central, Meseta)은 이베리아반도(스페인) 한가운데 있는 고원으로서  물론 높은 곳도 있지만 610~760m의 평균 고도를 유지한다.

 전체의 크기가 한반도보다 더 크며 스페인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테이블 모양의 내륙 대지(臺地)로 북쪽에 칸타브리아 산맥, 남쪽에 시에라모레나 산맥이 있다. 중심 도시는 마드리드이며 대륙성 기후의 건조지대로 인구밀도가 낮다. 전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서쪽으로는 완만하고 다수의 수원지가 위치해 강으로 흘러들어가 포르투갈과 국경을 이룬다. 메세타의 주변은 낙차(落差)가 커서 항행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곳이 많아 이베리아의 개발을 지연시킨 큰 원인이 되었다. 메세타의 중앙에 있는 과다라마산맥은 카스티야를 남북으로 양분한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큰 대륙성 기후로 연강수량 적아서 반 건조지가 많아 전체가 건조한 목축지대라 할 수 있다.

 

고원을 올라가는 순례자들

 

고원지대의 여러 풍경

 

십자가

 

멀리 고원에서 보는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

 

나뭇 가지에 메달린 신발

 

마을 입구의 표시

 

 오르마수엘라 평원에 위치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가 이곳 강변에서 오르노(Horno; 화덕)를 발견하고 군대가 먹을 빵을 구우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이 화덕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민요에서도 있다고 한다. 9세기 이 마을에는 카스티야 지방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형 탑이 만들어졌고, 이 마을을 포르니에요스(Forniellos)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도자기 공장에 있는 작은 화덕을 의미한다.

 

 

 

 마을의 중앙에 있는 산 로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Roman)16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성당으로 성당 앞에 있는 수탉 조각의 탑이 이채롭다.

 

산 로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Roman)

 

성당 앞에 있는 수탉 조각의 탑

 

마을의 공동묘지

 

 마을에 들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그래서 숙소인 알베르게를 찾아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고 숙소에 가서 몸을 씻고, 가볍게 빨래를 하고 난 뒤에 마을의 슈퍼에 둘러서 내일 먹을 여러 가지를 장만했다. 거의 매일 비슷하게 여러 과일과 요구르트, 빵 등을 구입하고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저녁때까지 쉬었다.

 

 저녁이 되자 우리 일행 4명과 또 좀 더 나이가 적은 젊은이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일행이 함께 모여 닭과 소고기를 안주로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즐겼다. 이 길을 걸으면서 거의 매일을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과 가볍게 와인과 맥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물론 많이 마시면 다음 날의 길에 지장이 있으므로 적당하게 조절을 한다.

 이 길을 걸으며 이렇게 평소에 알지도 못한 다방면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음식을 먹고 함께 잠을 잔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여러 생각을 이야기 한다. 이것이 까미노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