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5(05.31,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카스트로헤리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산볼(5.6km) - 온타나스(4.9km) -  콘벤토 데 산 안톤(5.6km) - 카스트로헤리스(3.6km)

 

 오늘은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출발하여 카스트로헤리스까지 20km도 안 되는 길을 가는 아주 짧은 여정이다. 오늘은 출발하기 전에 일행과 함께 가볍게 아침을 먹고 떠나기로 하여 아침을 먹고 나니 조금 늦었다. 하지만 오늘 걸을 거리가 짧기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산 로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Roman)과 수탉 탑

 

 오늘의 여정은 고원의 오르막을 제외하면 어려운 구간은 없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걷다보면 처음에는 아름다운 경치에 즐거워하다가 계속되는 단순한 풍경에 지겨움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특히 이 길에서는 10km나 떨어진 온타나스 이외에는 순례자를 위한 카페나 바가 없으므로 출발 전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여정에서는 카스티야 메세타의 전형을 볼 수 있고, 특히 온타나스와 산 안톤의 허물어진 성벽을 지날 때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출발하여 오르막길을 오르면 메세타고원이 나타난다. 좌우로 펼쳐지는 들판을 따라 약 한 시간 반 정도 길을 오르면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지 않는 아로요(Arroyo; 시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의 마을인 아로요 마을 어귀의 십자가상이 보인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전염병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주민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곳이라서 유대인 추방 이후 남은 주민이 없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1503년 아요로 산볼은 주민들에 의해 마을이 버려졌다고 전해지는데 기록상으로는 1352년 나환자를 위한 병원이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원지대로 올라가는 오르막

 



좌우로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십자가

 

오르가 파수에르가 지역 성당터 표시

 

벌판에 활짝 핀 관상용 양귀비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알베르게

 

카스트로헤리스의 알베르게 선전

 

양귀비와 들꽃

 

 바위 위로 나있는 길을 지나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게 되고 멀리 온타나스가 보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메세타의 평원을 즐기면서 언덕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면,  밀밭에 둘러싸인 중세풍의 아름다운 마을 온타나스 입구에 시원하고 깨끗한 샘물이 있고, 또 주위에 소박한 바와 관광객을 위한 안내소가 보이며 이 길은 마을의 끝으로 이어진다. 마을에는 샘이 도처에 많은데, 마을의 이름 온타나스(Hontanas; )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온타나스의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과 벽돌을 넣어 지은 목재 건물 사이로 까미노 길이 이어진다.

 

온타나스 표시

 

온타나스 마을 전경

 

온타나스 마을 소개

 

 온타나스 마을 입구에 돌로 만들어진 아주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처음에는 설명이 없어 무엇인지를 몰랐으나 그 돌집 안에 있는 성녀상은 아주 자애롭다. 나와서 주변을 보니 이 암자와 샘에 대한 설명 판이 있다. 성 브리기다의 암자와 샘으로 이 외딴 곳에 암자와 샘이 있으니 아마 예전에는 제법 큰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 브리기다의 암자와 성 브리기다 상

 

온타나스 마을

 

성 브리기다의 암자와 샘 표시

 

산타 브리지다 알베르게 선전판

 

 온타나스에 도착하여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쉬고 마을의 대표적인 성당인 콘셉시온 성모 성당(Iglesia de Nuestra Senora Concepcion)으로 갔다. 성당은 신고전주의 양식이며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아름답다. 이 성당은 특이하게 십자가상 위에 많은 사람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기도초를 밝히게 마련해 놓았다. 국가와 종교,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위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중 대표적으로 알 수 있는 얼굴은 마더 테레사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이들의 초상을 그려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이들에 대한 공경일까? 더 낮은 곳으로 임하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일까? 여러 생각을 하지만 생각은 각자의 자유다.

 

 그들 앞에 기도초를 밝히고 잠시 묵상을 하였다. 이제는 성당에 들어가면 기도초를 밝히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이 길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 다짐하기를 종교적인 의미는 배제하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거기에서서만 미사에 참여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 길을 걸으면서 그 다짐은 벌써 무색해졌다.

 

콘셉시온 성모 성당(Iglesia de Nuestra Senora Concepcion)

 

 

 

 

 또 특이하게 이 성당에는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비치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한글 성경도 보인다. 아마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작은 배려라고 생각되어 고맙게 느껴졌다.

 

여러 국가의 성경

 

 

 

 온타나스에서 카스트로헤리스까지 약 10km의 구간에서 도보 순례자는 도로를 넘어 도로와 나란히 지나가는 완만한 언덕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한적한 좁은 길을 따라 까미노를 걷다 보면 산 비센테 수도원의 폐허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3~4km 정도 지나다 보면 14세기의 아름다운 산 안톤 수도원을 만날 수 있다.

 

 온타나스 마을을 떠나 카스트로헤리스로 향하는 언덕 기슭 까미노의 오른쪽으로 비석 같은 것이 보인다. 호기심에 그 위로 올라가니 비석이 아니라 건물의 흔적이다. 모든 건물이 다 사라지고 기둥 하나만 남아 있는 이곳은 산 비센테 성당(Ermita de San Vicente)으로 현재는 모퉁이의 벽체만 남은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폐허가 된 유적을 볼 때마다 세월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산 비센테 성당(Ermita de San Vicente) 유적

 

 오늘의 목적지인 카스트로헤리스로 가는 길에 산 안톤 수도회의 오래된 병원과 수도원 건물의 폐허가 있는 산 안톤 수도원을 지난다. 지금은 13~14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들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수도원 건물과 성당 건물을 좌우로 연결하고 있는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아치가 돋보인다. 과거 이 아치는 수도원의 문 구실을 했으며 밤에 이곳에 도착하거나 문밖에서 밤을 지세는 순례자를 위해 아치의 왼쪽 선반에 음식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산 안톤 수도원을 만든 성 안토니오파의 수도회는 1095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이 수도회는 하느님과 우주에 관한 독창적인 믿음과 순례자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수도원은 과거 유럽의 대 재앙이었던 산 안톤의 불이라고 불렸던 피부병을 치료하고 돌봐준 곳으로 잘 알려져, 병을 치료하는 능력 덕택에 유럽 전체에 약 400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산 안톤 병원은 안토니오회 수사들이 운영하면서 중세의 순례자들이 병으로 고생한 산 안톤의 불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곳이었다. ‘산 안톤의 불은 몸속에 불이 나는 것 같은 고통과 손발의 끝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라고 전해지는데, 산 안톤 수도회는 이 병자들을 극진히 돌보았고, 병에 걸리지 않은 순례자들에게도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였다.

 현대에 산 안톤의 불은 라이보리에 기생하는 곰팡이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 밝혀졌다. 북유럽에서는 주식이 라이보리였기 때문에 이 병이 널리 퍼졌는데, 병자들은 이 길을 순례하면서 라이보리를 먹지 못해 자연스레 증상이 완화되어 산티아고에 도착할 즈음이면 완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도 야고보와 안토니오회 수사들의 도움으로 산 안톤의 불이 낫는다고 믿게 되었다고 전한다.

 

14세기 산 안톤 수도원 유적

 

산 안톤 아치(Arco de San Antón)

 

순례자병원 표시

 

기부함

 

산 안톤 수도원의 여러 모습

 

 산 안톤 수도원에서 여러 곳을 돌아보고 쉬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것은 말은 쉽게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면서 타인을 도우는 것은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이나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이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산 안톤 수도원에서 카스트로헤리스에 이르는 길은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길을 지나는 자동차들은 도보 순례자들에게 엄청나게 친절하다. 유럽의 길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사람 우선의 문화다.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가 아닌 길에서는 항상 자동차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사람이 보이면 자동차는 항상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게 한다. 심지어는 건널목에 붉은 불이 있어도 차는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길을 가다보면 멀리 지평선 끝에 언덕 위 카스트로헤리스의 성이 보인다. 카스트로헤리스로 마을에 들어가서 알베르게로 가기 위해서는 다소 가파른 언덕에 길쭉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의 거의 끝부분까지 이동해야 한다.

 

멀리 보이는 카스트로헤리스의 성

 

카스트로헤리스 표시

 

 메세타고원의 언덕에 자리 잡은 카스트로헤리스는 중세 성곽의 흔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시는 산티아고 길을 따라서 길게 뻗어있다. 성벽 안의 마을에는 오래된 유적과 수도원, 성당, 병원, 집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고 마을은 순례자를 위한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만사노 부속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l Manzano)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13세기의 현관, 15세기의 유리 세공품, 13세기의 돌로 만든 석공의 수호자로 일컫는 만사노의 채색 성모상 등이 남아 있다.

 

 만사노의 성모상은, 전설에 따르면 산티아고 성인이 백마를 타고 카스트로헤리스 성에서 나와 길을 가던 중, 사과나무 둥치의 구멍에서 성모상을 발견했다. 후에 이 성모상을 카스트로헤리스 입구의 만사노 부속 성당에 모셨다. 이 성모상은 알폰소 10세가 지은 산타 마리아의 노래’(Cantigas de Santa Maria)의 주인공이 되었고,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만사노 부속 성당을 짓는 공사를 하던 중 여러 사고가 생겼는데 그때마다 성모가 나타나 이들을 구해주었다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델 만사노 부속 성당(Colegiata de Santa Maria del Manzano)

 

 

 

 카스트로헤리스에 도착하니 너무 빨리 와서 알베르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을 좀 돌아보고 알베르게로 가니 이곳에 한국인 주인이 있어 한국식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음식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니라서 현지 음식도 잘 먹었지만 오랜만에 우리 입맛을 돋우는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마을 위의 언덕에 있는 성으로 올라갔다. 성으로 올라가는 도로로 가지 않고 옆의 산길로 올라가니 상당히 가파른 길이었다.

 

카스트로헤리스의 역사적 유산에 관한 기록 표시

 

 이 성에 대한 기록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성에 있는 설명판을 참조하여 재구성해 본다.

 

 이 성은 9세기나 10세기 경에 고대 로마의 탑을 토대로 건설되었으며 중세시대에는 권력의 중심지가 되어 당시 수많은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13세기부터 여러 세기에 걸쳐 성벽이 강화되었고 카톨릭의 군주들과 함께 찬란한 시대를 보냈다.16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1755년 리스본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결국은 버려졌다. 지금 탑과 성문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성에 올라가 여러 곳을 구경하면서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는 카스트로헤리스의 광활한 사방의 풍경은 왜 여기에 성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위가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일망무제와 같다. 이러니 이곳에서는 사방에서 오는 적을 빨리 볼 수 있고 준비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의 구조에 대한 설명

 

성의 탑에 대한 설명

 

성 위에서 보는 사방의 풍경

 

성의 전경

 

성의 복원도 및 공격과 방어에 대한 설명

 

성에 대한 설명

 

 

성에서 도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서 마을의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성을 내려오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에서는 13세기부터의 세공품과 회화, 조각 작품 그리고 16세기의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감상할 수 있다.

 

산토 도밍고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

 

 조금 옆에  1990년 스페인 문화 자산으로 선정된 산 후안 성당(Iglesia de San Juan)13세기의 고딕 양식 건물로 회랑은 15세기 양식을 띄고 있다. 부벽을 두 겹으로 세운 독특한 건축법은 성당보다는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 후안 성당 설명

 

산 후안 성당(Iglesia de San Juan)

 

카스트로헤리스의 까미노 산티아고 표시

 

 

 

 성을 올라갔다가 와서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휴식을 한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니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에 들어온 사람이 아닌 사람이 아닌 다른 알베르게의 한국인도 상당히 눈에 띈다. 아마도 오랜 길에서 한국의 음식이 그리웠는가 보였다 .미리 주문한 한국식 비빔밥으로 먹고 가볍게 사람들과 모여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순례가 아니라 술례를 하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지만 나는 답을 해 준다. 이 길에서 위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에 계시고 아래에는 실제로 피곤한 우리를 기쁘게 하는 주()님이 계시니, 길을 걸을 때는 위의 주님을 경배하고 길을 걷기를 마치고 휴식을 할 때는 아래의 주님을 즐긴다고 궤변을 늘어 놓는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이 길을 걸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와 존경을 보내며 하루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