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4(05.30, 부르고스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부르고스 - 타르다호스(10.8km) -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1.8km)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8.0km)

 

 오늘은 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지 가는 22km가 안될 정도로 짧은 거리다. 부르고스에서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까지는 아르란손 강의 계곡을 따라 부드러운 산책길이 이어지며 그 뒤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지는 고원지대와 밀밭이 계속되는 전형적인 메세타고원 풍경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한반도보다 더 넓은 메세타고원은 여름에는 사막과 같은 열기와 건조함을, 겨울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시베리아 동토의 차가움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세타고원은 순례자에게 진정한 순례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메세타고원은 순례자의 육체적 정신적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몸과 마음이 순례길과 하나가 되는 순간 주위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메세타고원을 걸은 순례자는 어김없이 이 길이 주는 고독과 침묵, 평화와 여유의 기쁨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순례를 원한다면 메세타고원을 두 발로 걸을 것을 권한다. 다행히 내가 걸은 5월 말과 6월 초는 너무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펼쳐지는 고원의 평원과 너무 맑은 하늘을 즐겼다. 이것도 축복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부르고스 대성당

 

 대성당을 옆에 두고 전망대 올라가는 길로 가서 왼쪽으로 까미노 길을 따라가 페르난 곤잘레스 문을 지나서 추모탑을 지나면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엘 시드의 집이 나온다. 엘 시드의 집(Solar del Cid)18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엘 시드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의 집이 있었던 곳에 만들어졌다. 엘시드의 집을 지나면 이제 부르고스를 떠나는 문인  산 마르틴 아치(Arco de San Martin)를 지나간다. 이 문은 14~15세기에 걸쳐 건설된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의 일부였으며 왕족이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다. 무데하르 양식의 이 문을 통해 순례자들은 아름다운 부르고스와 작별한다.

 

페르난 곤잘레스 문

 

엘 시드의 집

 

산 마르틴 아치

 

 산 마르틴 아치를 통과하면 여기서부터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까지는 아르란손 강의 비옥한 농지와 버드나무 숲을 걷는 기분 좋은 길이나 까미노는 비얄비야 데 부르고스를 통과하지는 않는다. 마을을 들어가기 전 철길을 건너면 이어지는 까미노는 현대적인 보행자 육교에 도착한다. 이 육교는 고속도로가 이어지는 복잡한 분기점을 넘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순례자는 아르소비스포 다리(Puente del Arzobispo)를 통해서 아를란손 강을 건넌 후 왼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타르다호스 마을에 다다른다.

 

아일랜드 워크 설명판

 

산티아고 이정표

 

남은 까미노 길 501km 표시

 

데블리굴라 유적지 설명

 

타르다호스 입구 표시

 

타르다호스의 위치 표시

 

 부르고스에서 아침도 먹지 않고 약 11km를 걸어왔기에 시장기도 돌고 휴식도 취하기 위해 카페에 들러서 간단하게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까미노 길은 항상 일찍 떠나기에 제대로 아침을 먹고 가는 날이 없어 처음 만나는 마을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다. 카페를 떠나 거리를 걸으면 만나는 카르다호스의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13세기 고딕 양식 건축으로 바로크 양식의 조각품과 유물 컬렉션이 아름답다.

 

산타 마리아 성당

 

 타르다호스에서 다음 마을인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까지는 2km가 채 안 되는 거리로 길은 매우 평탄하며 샛길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마을을 빠져 나와 우르벨 강(Rio Urbel)을 건너면 아를란손 평야에 위치한 아름다우면서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마을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에 도착한다. 이 도시가 언제 지어졌는지에 관하여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라베(Rabe)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이곳에 유대인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랍비(Rabi; 유대교 스승)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축구 포지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리베로(Ribero; )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래된 집 사이의 도로를 따라가면 샘터가 있는 광장이 있다. 13세기에 만들어져서 여러 번 개축되었으나 아직까지 고딕 양식 현관 등이 남아있는 산타 마리나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 de Santa Marina)을 왼쪽으로 가면 공동묘지와 함께 모나스테리오 성모상을 보존하고 있는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Ermita de Nuestra Senora Monasterio)이 나타난다. 이 길가의 조그마한 성당은 순례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 성당에 들어가면 수녀님이 모든 순례자의 안전을 위해서 강복을 해 주며 기념 목걸이를 걸어준다. 수녀님이 하루 종일 계시는 것이 아니기에 수녀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다른 종사자들이 목걸이를 걸어준다. 수녀님을 만나든지 다른 종사자를 만나는 것은 자신의 그날 행운이다. 물론 너무 빨리 지나가거나 너무 늦은 시간에 지나가면 아무도 없을 수가 있다.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마을 표시

 

멀리 보이는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

 

샘터가 있는 광장

 

거리의 벽화(오른쪽 아래 글은 시편과 요한계시록이다.

 

모나스테리오 성모 성당

 

 성당에 들어가 기도초를 밝히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오면서 기념목걸이를 받았다. 하지만 이 목걸이는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크렌디시얼을 넣는 비닐 봉투안에 넣어 두었는데 크렌디시얼을 꺼내다가 어디에서 분실했는지도 모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잃어버렸다. 잠시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곧 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도 큰 얻음이었다.

 

 

 

 이곳에서 고원지대를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 메세타고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분지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오르막이 계속되고, 고원지대를 올라가면 오늘의 여정은 거의 끝난다.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가서 오래된 십자가상이 있는 도로의 교차로를 건너면 평원에 자리 잡은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이 보인다.

 

 지명이 스페인어로 탁자란 뜻의 메세타 고원(스페인어: Meseta Central, Meseta)은 이베리아반도(스페인) 한가운데 있는 고원으로서  물론 높은 곳도 있지만 610~760m의 평균 고도를 유지한다.

 전체의 크기가 한반도보다 더 크며 스페인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테이블 모양의 내륙 대지(臺地)로 북쪽에 칸타브리아 산맥, 남쪽에 시에라모레나 산맥이 있다. 중심 도시는 마드리드이며 대륙성 기후의 건조지대로 인구밀도가 낮다. 전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서쪽으로는 완만하고 다수의 수원지가 위치해 강으로 흘러들어가 포르투갈과 국경을 이룬다. 메세타의 주변은 낙차(落差)가 커서 항행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곳이 많아 이베리아의 개발을 지연시킨 큰 원인이 되었다. 메세타의 중앙에 있는 과다라마산맥은 카스티야를 남북으로 양분한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큰 대륙성 기후로 연강수량 적아서 반 건조지가 많아 전체가 건조한 목축지대라 할 수 있다.

 

고원을 올라가는 순례자들

 

고원지대의 여러 풍경

 

십자가

 

멀리 고원에서 보는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

 

나뭇 가지에 메달린 신발

 

마을 입구의 표시

 

 오르마수엘라 평원에 위치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가 이곳 강변에서 오르노(Horno; 화덕)를 발견하고 군대가 먹을 빵을 구우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이 화덕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민요에서도 있다고 한다. 9세기 이 마을에는 카스티야 지방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형 탑이 만들어졌고, 이 마을을 포르니에요스(Forniellos)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도자기 공장에 있는 작은 화덕을 의미한다.

 

 

 

 마을의 중앙에 있는 산 로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Roman)16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성당으로 성당 앞에 있는 수탉 조각의 탑이 이채롭다.

 

산 로만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Roman)

 

성당 앞에 있는 수탉 조각의 탑

 

마을의 공동묘지

 

 마을에 들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그래서 숙소인 알베르게를 찾아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고 숙소에 가서 몸을 씻고, 가볍게 빨래를 하고 난 뒤에 마을의 슈퍼에 둘러서 내일 먹을 여러 가지를 장만했다. 거의 매일 비슷하게 여러 과일과 요구르트, 빵 등을 구입하고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저녁때까지 쉬었다.

 

 저녁이 되자 우리 일행 4명과 또 좀 더 나이가 적은 젊은이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일행이 함께 모여 닭과 소고기를 안주로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즐겼다. 이 길을 걸으면서 거의 매일을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과 가볍게 와인과 맥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물론 많이 마시면 다음 날의 길에 지장이 있으므로 적당하게 조절을 한다.

 이 길을 걸으며 이렇게 평소에 알지도 못한 다방면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음식을 먹고 함께 잠을 잔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여러 생각을 이야기 한다. 이것이 까미노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