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1(05.27,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 벨로라도)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늘의 길 :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 그라뇽(7km) - 레데시알 데 카미노(4km) - 빌로리아 데 라 리오하(4km) - 비야 마요르 델 리오(3.4km) - 벨로라도(5.5km)
오늘은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를 출발하여 벨로라도까지 약 22km의 비교적 짧은 길이다. 처음 출발하여 그라뇽까지 가는 제법 긴 길은 휴식할 곳도 없지만 그 뒤에는 한 시간의 거리마다 마을이 있기에 걷기에 편리한 길이다.
이제는 익숙한 걷기라 정해진 시간만 되면 길 걷기를 준비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난다.
마요르 거리를 따라 걷는 순례자는 대성당을 오른쪽으로 두고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 사이를 통과하여 오하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면 까미노 길은 순례자에게 악마의 유혹과도 같은 쭉 뻗은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이어져 있다.
5km 정도의 이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나 트럭의 소음이 심하고 과속하는 트럭이 많으니 안전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속도로와 나란히 걷다보면 자동차 도로와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이 그라뇽과 가깝지만 이 도로를 피해서 좌측으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농지를 따라 3km 정도를 걷는 것이 안전하다.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용감한 자들의 십자가’라 불리는 단순한 디자인의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역사적으로 비옥한 그라뇽의 땅은 늘 다툼의 대상이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세기 초반에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와 그라뇽 두 마을 사이에 위치한 데에사 밭을 두고 싸운 것이었다. 마을에서 대표로 한 명씩을 뽑아서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해서 이긴 쪽 마을이 땅을 차지하기로 정했는데,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라뇽의 마르띤 가르시아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결투를 ‘용감한 자들의 십자가’(Cruz de los Valientes)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결투가 일어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라뇽에는 마르띤 가르시아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으며 마을의 주일미사에서는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풍습이 남아있다.
산토도밍고 데 칼사다의 마요로 거리
지역 트레일 네트워크(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안내판
용감한 자들의 십자가
이제 라 리오하주의 조용하고 오래된 마을인 그라뇽에 도착하게 된다. 비옥한 토지에 둘러싸여 있는 이 마을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지나는 라 리오하 주의 마지막 마을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인접해 마리벨 언덕 위에 알폰소 3세가 세운 중세에 호황을 누렸던 마을이었다. 특히 여름 몇 달 동안은 순례자들로 인해 마을은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고 한다.
마을의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 순례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여러 벽화가 나와 이 마을이 순례자들에게 얼마나 친근한 지를 보여준다. 이 마을의 카페에 앉아 주스와 빵을 시켜 아침을 먹으며 보는 카페의 벽에 개미들의 행진하는 모양이 붙어 있다. 이 개미들이 늘어서 가고 있는 모양이 순례자기 묵묵히 길을 걷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마을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산 후안 바우티스따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은 15세기와 16세기에 건축된 건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 본당, 노회,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된 팔각의 성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라뇽에서 8월의 마지막 주에 열리는 감사의 축제(Fiesta de Gracias)엔 ‘까라스께도 성당 후원회’(Amigos de la Ermita de Carrasquedo)의 주관으로 산 후안 바우티스따 성당에서 빛과 소리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라뇽 역사의 주요 에피소드를 연극으로 보여주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며 마지막으로 빛과 소리가 어우러져 주제단화를 비추면서 마무리된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그라뇽 마을
그라뇽의 순례자 벽화
그라뇽의 카페 벽
그라뇽의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
포도밭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라 리오하의 마지막 마을 그라뇽을 떠나는 순례자는 마을 중심의 마요르 거리를 따라 성당 옆을 지나 마을을 빠져 나간다. 이제 오늘의 두 번째 마을인 레데시아 델 까미노까지는 1시간의 거리다. 도로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고속도로와 평행하는 길을 30분 정도 걸어가면 부르고스 주의 경계를 만난다.
생장에서 시작한 순례 길은 나바라와 라 리오하를 거쳐 드디어 부르고스에 들어가는 것이다.
부르고스주는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을 구성하는 9개 주 가운데 하나로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 북동부에 위치하며 주도는 부르고스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취락지가 발견되었고, 로마 시대에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의 수도였다. 현재의 코루냐 델 콘데(Coruna del Conde)에는 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시대의 극장이 있다. 또 이곳은 10세기 중반부터 존재했던 카스티야 왕국의 탄생지이며 카스티야어로 쓴 첫 번째 서사시인 유명한 ‘엘 시드의 노래’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부르고스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카스티야의 머리'라 불릴 만큼 번성했으며, 1833년 베르무데스 총리의 지방 행정 개편 과정에서 부르고스주가 처음 형성되었다. 주에 모두 371개의 도시가 있으며 그중 큰 도시 몇 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인구가 수백 명에 불과한 소도시이다. 주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 정도가 부르고스에 몰려 있다. 주 남부를 관류하는 두에로 강 연안에는 스페인에서도 품질 좋기로 유명한 포도 산지인 방대한 포도원이 있다.
부르고스 출신인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순례자들을 위해 다리를 건설하고 길을 뚫었다. 로마네스크 영향이 가득한 이 지방에서 여러 아름다운 수도원을 만나게 되며, 또한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부르고스 대성당,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 등등을 볼 수 있다.
이제부터 푸른 포도밭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카스티야의 들판이 펼쳐진다. 부르고스의 첫 마을 레데시아 델 까미노는 까미노 때문에 발달한 전형적인 마을로 마요르 거리에는 마을의 문장이 장식된 시골 풍 벽돌집이 늘어서 있다.
부르고스 지방의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도
카스티야 레온의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도
레데시아 데 카미노 마을의 광장
마을의 까미노의 성모 성당(Iglesia de Nuestra Senora del Camino)은 11세기에 만들어 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17~18세기에 재건축되어 로코코 양식의 제단화와 가구 그리고 스페인 로마네스크 미술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11세기 작품으로 아름다운 세례반으로 유명하다. 비잔틴, 모사라베 양식의 영향을 받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도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 세례반은 스페인 로마네스크 미술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섯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기단부와 세례반 둘레에는 도시 모양이 장식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하느님의 도시인 천상의 예루살렘이 요새 같은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반원형 탑과 삼각형으로 튀어나온 휘장으로 덮여있는 전망대 등도 천상의 예루살렘을 표현한 것이다.
과거부터 이곳은 중세 프랑크 왕국의 중요한 점령지여서 많은 순례 객들로 항상 붐볐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두 개나 있었다고 한다.
레데시아 델 까미노의 문장
레데시아 델 까미노 까미노의 성모 성당 (Iglesia de Nuestra Senora del Camino)의 세례반 설명
레데시아 델 까미노의 까미노의 성모 성당
길을 가다가 이정표를 보니 무슨 글귀가 쓰여 있다. 궁금해서 보니 '대부분의 경우 당신이 답변을 얻지 못할 때, 그것은 당신이 좋은 질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글귀였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무엇인가를 받으려고만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다가 무엇을 얻지 못하면 자신의 잘못보다 상대에게 원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면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표의 글귀
레데시아 델 까미노를 지나 30분 정도 가면 비옥한 땅과 산 훌리안 강가에 자리 잡은 화려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작고 조그마한 마을인 가스틸델가도에 도착한다. 캄포 성당과 궁전은 이곳에서 태어난 역사적인 인물들을 떠올려주며, 순례자의 병원은 몇 백 년 동안 이곳을 지나간 순례자들의 고난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 마을의 이름은 원래 비야푼(Villapun)이었는데, 16세기에 베르베라나 백작 가문이 여기서 시작되어 루고와 하엔의 주교였던 돈 곤살로 힐 델가도(Don Gonzalo Gil Delgado)를 기리면서 마을의 이름을 가스틸델가도로 바꾸었다.
이 마을의 산타 마리아 라 레알 델 캄포 소성당(Ermita Santa Maria la Real del Campo)은 중세에 순례자를 위한 병원에 딸려있던 부속 성당으로 18세기의 현관이 아름답다.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은 16세기에 만들어진 후기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아름다운 봉헌화와 조각, 유화 등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성모 마리아가 무릎에 예수를 앉힌 13세기 성모상이 돋보인다. 성당에는 돈 프란시스코 델가도의 무덤이 있다.
오카계곡과 티란계곡 사이의 까스틸델가도 안내도
산 페드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산타 마리아 라 레알 델 캄포 소성당(Ermita Santa Maria la Real del Campo)
가스틸델가도를 떠나 30분 정도 걸으면 어느새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빌로리아 데 리오하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길을 사랑하는 순례자라면 꼭 들러야 할 마을인 빌로리아 데 리오하는, 조그마한 마을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백 명이 안 되는 마을 주민은 모든 순례자들에게 친절하다. 또 스페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가 태어난 곳이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는 1019년 5월 12일 이곳에서 태어나 1109년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서 90세에 사망했다. 그는 까미노에 다리를 축조하고 길을 닦고, 병원을 설립하는 등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를 위해 평생을 살았다.
성인이 세례를 받았다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반을 보관하고 있는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성모 승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이 순례자를 맞아준다. 순례자라면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의 생가 유적과 그가 세례 받은 세례반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5월 12일 마을에서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빌로리아 데 리오하 이정표
빌로리아 데 라 리오하의 표지
성모 승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
성모 승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 앞의 도밍고 가르시아 상
산토 도밍고 탄생 천년 기념
빌로리아 데 라 리오하를 떠나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한 시간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비야마요르 델 리오는, 벨로라도와 같은 마을이었다가 18세기에 분리되었다. 바쁘게 걷는 순례자들이 벨로라도의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여유를 가다듬기에 최상의 장소로 도시의 긴장감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비야마요르 델 리오 마을을 지나 벨로라도를 향해 가는 길에서 보는 평원과 저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은 너무 평화롭다. 5월의 신록은 우리 마음에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이 까미노를 걸으며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욕심에서 벗어나 나를 잊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진정한 이 길의 의미가 아닐까?
비야 마요르 델 리오 마을을 지나면 까미노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순례자는 다시 부드러운 내리막길을 따라 벨로라도의 공장지대가 나타날 때까지 고속도로를 오른쪽으로 두고 나란히 걷는다. 이제 순례자는 벨로라도에 들어서면, 마요르 광장에서 아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과 산 페드로 성당을 볼 것이다.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자치지방 부르고스주에 있는 자치시 벨로라도는, 티론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벨로라도라는 이름의 어원은 ‘belle(아름다움)’이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한다. 벨로라도의 까미노 길이 지나가는 도중에 보는 모든 건물은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중세 왕국들이 치열하게 얻고자 했던 이 도시는 과거에는 레온과 카스티야 왕국의 영토였다. 1,000년경에 하늘에서 불이 비처럼 쏟아져 온 도시를 휩쓸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후 이 도시는 마치 불사조처럼 살아나 활력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벨로라도와 세레소 데 리오티론에는 두 마을의 수호성인인 비토레스 성인에 관한 전설이 전해온다. 성인은 사라센 인들에게 참수당해 머리가 땅에 떨어져서도 3일 동안 살아 있어서 이 광경을 본 사라센인들이 감복하여 개종했다고 전해진다.
벨로라도 입구 표지
길을 걷는 순례자들
멀리 보이는 벨로라도 성
벨로라도 안내도
벨로라도에 도착하니 너무나 빠른 시간이다. 성당을 지나가려고 하니 그 앞에서 어제 길을 걷는 도중에 만났던 연주 중인 방랑하는 음악인이 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허울만 순례자가 아니라 진짜 경건하게 순례를 하는 것 같았다. 매일 길가에서 연주를 하며 길손들의 기부를 받아 그 돈으로 순례의 경비를 충당하는 것 같았다. 항상 거리의 음악인의 연주를 들으면 적당한 액수를 기부하여 그의 음악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어디에서든지 여행할 때 그들을 만나면 소액을 기부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마찬 가지다. 그래서 2유로를 기부하니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내가 더 고마운 일이었다. 조그마하지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마을 입구에 있는 산따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과 순례자 산티아고, 이슬람인들을 죽이는 산티아고상이 보존되어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 설명 안내도
산타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산타 마리아 성당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서 만나는 산 페드로 성당 (Iglesia de San Pedro)은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17세기 성당이다.
산 페드로 성당 (Iglesia de San Pedro)
마을을 계속 가면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고 그 앞에 클라라회 수녀들이 있는 16세기의 건축된 브레토네라 성모 수도원 (Convento Nuestra Senora Bretonera)이 보인다.
브레토네라 성모 수도원 (Convento Nuestra Senora Bretonera)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샤워를 한 후에 빨래를 간단히 하고 마을로 나가니 우리의 5일장과 비슷한 장이 서 있었다. 그래서 구경을 하면서 빵과 과일 등을 구입하고 돌아와서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먹었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이 순례자 메뉴는 너무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알맞은 메뉴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잠시 쉬다가 마을 뒤에 있는 요새(성)로 올라갔다. 가는 길을 몰라 요새가 보이는 쪽으로 길을 가니 10대로 보이는 마을의 젊은 여자애들이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짧은 스페인어로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어 성으로 올라갔다.
벨로라도 성은 언제 건설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알폰스 3세의 10세기 전반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성은 거의 폐허가 되어 있지만 벨로라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으로 여기에서 보는 풍경이 가슴을 환하게 펼쳐 준다. 사방을 둘러보면 왜 이곳에 성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사위가 트이어 사방에서 오는 적군을 감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벨로라도가 상당히 큰 도시임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그저 마을 하나만을 보고 벨로라도를 다 보았던 것 같은 착각에 빠졌음을 알게 해 주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이 모두가 아니라는 진실을 다시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벨로라도성 전망대 설명(중세시대에는 벨로라도 주변에 많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티론 강 계곡을 바라보고 위에서 벨로라도를 보세요.'라는 안내도
벨로라도성 설명
성에서 보는 벨로라도 도시
성에서의 필자
마을의 벽화
성을 내려와 알베르게에 가니 한국의 젊은이가 보였다. 몇 일전부터 보였던 젊은이라 이야기를 하여 보니 강원도 태백에 살고 있으며, 군대를 막 제대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무엇인가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생각하여 이 까미노 길을 걷는다고 하였다. 상당히 긍정적이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젊은이라 여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빨래를 늘어놓은 알베르게의 옥상에 올라가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소파가 있었다. 한가하게 소파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다가 저녁때가 되어 내려와 가볍게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답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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