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19(06.04,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걷기 길 :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 -  모라티노스(3.3km) -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2.5km) - 사아군(7.2km)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5.7km)

 

 오늘은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까지 가는 약 19km의 짧은 거리로 팔렌시아를 지나 레온으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다.

 

 아침 일찍부터 한국인이든 서양인이든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아침 5시만 되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어나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은 빠르면 6시 전에 늦어도 7시 전에는 걷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빨리 일어나서 길을 가기에 대부분은 아침을 먹지 않고 떠나 중간에 있는 카페나 바를 이용한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기에 거의 대부분 길을 걸으면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다. 물론 서쪽을 향해 가기에 해는 등 뒤에 떠오른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

 

 테라디요스 데 라 템플라리오스에서 사아군에 이르기까지 도로를 따라 이동할 수도 있으나 모라티노스와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를 거치는 길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이 길이 지나는 마을은 상당수의 건물들이 무너진 것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진흙과 짚을 섞어서 만든 소박한 벽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양식의 건축법은 무데하르 양식(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의 영향으로 추측할 수 있고, 사아군에 남아있는 성당 건축물에서 무데하르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들은 저녁 해질 무렵에는 붉은색이 하나가 되어 우리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이미 955년 역사에 등장하는 모라티노스는 다른 지역에서는 돌과 벽돌을 섞어서 건물을 지었지만 이 마을에서는 성당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오로지 벽돌로만 지었다는 작은 마을이다.

 

 티에라 데 캄포스 지역 주민 대부분은 중세 시대에 스페인 북부나 다른 유럽 왕국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발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옮겨와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삶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모라티노스 마을 주민들은 이베리아 반도 남쪽의 이슬람 왕국에 살던 기독교도였다. 이들은 이주와 함께 자신들의 고유한 건축 방식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이 모라티노스만이 벽돌을 많이 쓰는 특이한 건축방식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을 지나가면 마을 중심의 조그만 광장에 16세기의 건물로 교구 성당 역할을 하는 산 토마스 성당 (Iglesia de San Tomas)이 있다.

 

모나티노스 표시

 

산 토마스 성당

 

마을에 달아 놓은 깃발

 

모라티노스 서비스 시설 표시

 

 별로 특징이 없고 순례자들을 위한 서비스 시설도 없어 그냥 통과하여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표시되어 있는 까미노 표시를 따라 삼십 분 정도만 걸으면 팔렌시아 지방의 마지막 마을인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1183년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세에는 이곳은 산티아고를 향해 계속 갈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된 순례자와 나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사아군까지는 아직 7km 이상이 남았기에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에 들러 이제 습관이 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보니 카페가 알베르게를 겸하면서 제법 오래 된 건물이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카페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표시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쉬다가 마을로 들어가니 산 니콜라스 주교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Obispo)이 나타난다. 이 성당은 무데하르 양식의 벽돌로 지어졌으며 성당의 내부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과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다. 석양이 질 무렵에 성당을 바라보게 되면 특유의 붉은 색을 띤 벽돌의 색깔이 감동적이라 하는데 나는 아침에 이 곳을 지난다. 곳곳에서 제대로 볼 것을 못보고 지나가는 마음에는 항상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을 걷는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산 니콜라스 주교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Obispo)

 

 마을의 출구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세킬료 강을 건너 사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오래된 까미노 길을 따라가면 팔렌시아와 레온의 경계를 이루는 카라스코 언덕의 정상을 오르게 되고, 좁은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팔렌시아와 레온을 거치는 발데라두에이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멀리 사아군의 성당 탑들이 보이며 이제 팔렌시아를 지나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으로 들어간다.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Comunidad Autónoma de Castilla y León)은 스페인 북부 지방에 있는 주로 주도(州都)는 레온(León)이다. 알폰소 10세가 그의 연대기에 레온의 첫 번째 왕이었던 돈 펠라요 왕과 함께라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카스티야보다 레온이 먼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레온 주의 많은 아름다운 도시는 오래된 역사만큼 예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켈트의 옛 성터, 로마 시대 광산, 아스토르가에 있는 로마의 흔적, 산 미겔 데 에스칼라다 수도원의 모사라베 양식의 보물, ‘로마네스크의 시스티나라고 할 수 있는 레온 산 이시도로 성당의 소성당, 독특한 양식의 사아군 성당들,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르네상스 양식인 산 마르코스 병원, 그리고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인 아스토르가의 주교궁과 레온의 카사 보티네스 등등 셀 수가 없다. 그러나 레온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역사, 예술, 전통뿐만이 아니라 자연으로 북부는 칸타브리아산맥, 남부는 두에로강()의 지류 연변에 전개된 평지가 펼쳐져 있다. 이 밖에 산지에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밤나무 등의 임산자원이 많고, , 당나귀, 양의 사육도 많이 한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는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 사아군에 도착하기 약 3km 전에 있는 푸엔테 성모성당에 도착하기 전까지 까미노 길은 포장된 길로 걸어간다. 성당을 지나면서 다시 부드러운 흙길로 변하고, 자동차 전용도로의 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어느새 사아군에 도착한다. 사아군 기차역을 돌아가는 길을 따라서 철길을 옆으로 끼고 걷게 되면 사아군의 오래된 구시가지에 도달하게 된다.

 

 사아군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13세기 무데하르 양식의 푸엔테 성모 성당(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에는 성모상이 있는데 여러 번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중 사아군에서 악당으로 악명 높은 히네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서 히네스는 깊이 회개하고 성모에게 도움을 청하자 기적이 일어나 살아났다. 히네스는 이후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한 뒤, 사아군에 남아서 많은 순례자를 도와주며 살았다고 한다.

 

푸엔테 성모 성당(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

 

 푸엔테 성모 성당을 지나 조금 가니 들판에 아치 같은 것이 서 있고 그 사이를 산티아고 데 카미노로 가는 길임을 표시해 놓고 있다. 이 아치가 언제 제작되어 이곳에 서 있는 것인지를 아무리 찾아도 자료가 없다. 아마 옛날의 것이 아니고 최근의 건축물인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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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치를 지나 조금 가면 사아군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카스티야주를 지난 뒤 레온주에서 만나는 첫 도시로, 11세기 알폰소 6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사아군(Sahagún)은 자치단체로 티에라 데 사아군 지방의 중심지이다. 사아군이라는 지명은 성 파쿤두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성 파쿤두스는 서기300년에 세아 강변에서 참수형에 처해져 세아 강에 버려졌다. 기독교도들이 유해를 수습해 304년에 지금의 사아군 자리에 매장하고 순교자로 숭배했다. 이 무덤은 상크투스 파쿤두스(Sanctus Facundus)’로 불렸는데 이 말이 차츰 축약되어 산파군(San Fagun)’사파군(Safa-gun)’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사아군이 되었다고 한다. 사아군은 중세 스페인의 클뤼니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산 베니토 수도원이 위치했던 곳으로 관광업이 경제의 주축을 이룬다. 사아군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무데하르 양식의 유적들로 가득 차있다.

 

순례자의 여러 모습을 그린 벽화

 

사아군 표시

 

사아군의 철길

 

사아군 안내도

 

 중세 스페인 수도원 건축물은 후기 고딕양식이 주를 이루지만 13~16세기 스페인에서는 이슬람 양식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 특유의 무데하르(Mudejar) 양식이라는 건축 양식이 발달했는데, 사아군은 가장 초기에 속하는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이 여러 개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 독특한 모습 때문에 사아군의 무데하르 건축유적은 관광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하학적 형태의 목재천정과 채색타일 등이 특징인 무데하르양식으로 대표적인 건축물은 산 티르소 성당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16~18세기 사이에 여러 번 개축되었다. 12세기 무데하르 양식의 탑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다. 13세기에 건축한 산 로렌소 교회(Iglesia de San Lorenzo), 16세기에 건축한 트리니다드 교회(Iglesia de la Trinidad), 17세기에 건축한 산 베니토 아치문(Arco de San Benito)을 비롯한 역사적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다.

 

 사아군 시내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 까미노 길을 걸으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주스는 생 오렌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짜서 주는데 대략 한 잔의 주스를 만들기 위해 4개 정도의 오렌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선하고 맛도 있어 매일 마신 것이다.

 

 

 사아군 시내를 통과하니 여러 성당이 보였으나 그냥 지나치고 가니 순례자의 표주박을 나타내는 상이 보인다. 그 주위를 둘러보니 산 베니토 아치 (Arco de San Benito)와 알폰스 6세의 거주지라는 설명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산 베니토 아치(Arco de San Benito)17세기 산 베니토 데 사아군 수도원에서 만든 건축물로, 수도원은 동전을 주조할 만큼 부유했었으며 성 베니토는 훗날 스페인의 클뤼니로 불렸다.

 

 서고트시대에 앞에서 사아군의 이름 유래에서 이야기한 파쿤두스의 무덤 자리에 도모스 산토스 수도원이 세워졌다. 이 수도원은 무슬림들에 의해 여러 차례 파괴되었으나, 매번 재건되었다가 알폰소 6세 때 마지막으로 재건되었다. 알폰소 6세는 수도원 개혁을 지지하여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시작된 클뤼니 개혁운동(교회가 부패되어 가던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본연의 영적생활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스페인에 확산시키기 위해 도모스 산토스 수도원 자리에 산 베니토 수도원을 세우고 여러 특혜를 주었다. 산 베니토 수도원은 중세 말기에 스페인의 클뤼니로 불릴 정도로 발전했으나, 현재는 시계탑만 남아있는 수도원 유적과 도시 입구의 커다란 아치만이 남아있다.

 

산 베니토 아치 (Arco de San Benito)

 

알폰스 6세의 거주지 안내판

 

순례자의 표주박 조형물앞에서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로 가는 길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으나 지난 며칠간의 길보다 많은 아스팔트길을 걸으니 자칫 다리에 무리를 줄 수도 있고, 도로 주위의 나무들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으므로 휴식을 할 곳이 거의 없다.

 

 사아군에서 먼저 마을 출구의 세아 강 위를 지나는 칸토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산타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다리가 나타나나 다리를 건널 필요도 없다. 약 한 시간 반 가량을 계속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끝없는 평원 위로 이어져 있고 걷기에 매우 좋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는 카스티야 지방의 전원 건축을 구경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점토와 짚을 섞어 햇볕에 말린 가벼운 벽돌로 지은 집, 흙으로 만든 담, 바위를 파서 만든 저장고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옛날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저장고에 포도주와 돼지로 만든 전통 음식이 보관되어 있었다.

 마을 이름의 기원은 마을의 첫 거주자가 엘 비에르소(El Bierzo) 출신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를 지나가는 길 주위에는 저수지와 작은 연못들이 많은데 여름철에는 무더위 때문에 물이 모두 증발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이 길은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카미노 알트란티보 표시

 

길가의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표시


.작은 연못을 지나면 이윽고 오래된 페랄레스 성모 성당이 나타나고, 성당을 지나서 조금 가면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을 들어가는 입구에 알베르게가 나타나고 오늘은 여기서 멈춘다. 페랄레스의 성모 성당
(Ermita de la Virgen de Perales)은 마을에 진입하기 전 순례자의 쉼터에 있는 성당으로 내부에는 라 페랄라’(La Perala)라고 부르는 성모상이 있어서 항상 마을 사람들이 와서 경배를 드리는 곳이다.

 

페랄레스의 성모 암자 표시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

 

알베르게에 걸려 있는 지도

 

알베르게 마당에 피어 있는 꽃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반이었다. 숙소는 아마 최근에 건축한 것으로 짐작되는 현대식 건물에 시설도 현대적이어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마을과는 상당히 떨어진 마을 입구에 있어 식당이나 슈퍼 등을 주변에서  찾을 수 없어 알베르게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점심을 먼저 먹고 몸을 씻고 세탁을 하고 알베르게의 넓은 마당에 따갑게 비치는 햇빛 아래에 빨래를 늘어놓고 망중한을 즐기다 보니 또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본능을 충실하게 한다. 먹고, 자고 걷는 것이 하루의 일과다. 그러니 또 시간이 되어 밥을 먹는 일은 무언가 의무적으로 하는 행동 같은 생각이 든다.

 

 저녁을 먹고 또 마당의 탁자에 무리를 지어 앉아 맥주와 와인을 시켜서 마시면서 온갖 잡담을 한다. 살아온 세월과 과정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길을 걷기에 화제는 항상 풍부하다. 하지만 얼마나 서로가 공감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