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20(06.05,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 만시아 데 라스물라스)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오늘의 걷기 길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 - 엘 부르고 라네로(7.6km) - 렐리에고스(13.0km)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6.2km)
오늘은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에서 만시아 데 라스 물라스까지 가는 약 27km의 길로 대부분이 메세타 고원의 자동차 도로 옆으로 난 평탄한 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은 어두운 시간이나 알베르게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거의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나간다. 함께 길을 걷는 우리 일행도 준비를 마치고 뜰에 나가니 아직 어둠이 개이지 않은 시간이다. 뜰의 탁자에 앉아 가볍게 아침을 과일과 커피로 먹고 알베르게를 나와 오늘의 걷기를 시작한다.
어둠의 알베르게
해가 떠오르는 모습
알베르게에서 작은 마을을 지나 마을 출구에서 순례자는 앞쪽으로 작은 나무가 있는 길로 직진하면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 렐리에고스를 지나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 가는 길로, ‘레알 까미노 프란세스’(Real Camino Frances)라고 까를로스 3세는 이 길을 명명하면서 순례자들에게 이용을 독려했다고 한다.
이 길은 엘 부르고 라네로까지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이어지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편안한 길이지만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걷는 것은 정신적으로 자연의 오솔길을 걷는 것보다 인내를 필요로 하여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 머리 위에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송전선이 지나고 길을 가며 오래된 십자가상까지 지나치면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한다. 엘 부르고 라네로는 인구가 300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마을이나 순례자에게는 편리한 각종 시설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십자가 하단의 글은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세라니 호세, 바노스 로자노'이다(무엇을 기억?)
엘 부르고 라네로 표시
마을의 이름은 라네로(Ranero; 언덕이 있는 땅)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과 이 지역을 지나면서 많이 볼 수 있는 라나(Rana; 개구리)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설이 존재한다.
엘 부르고 라네로의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은 수수한 모습으로 예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는데 현재는 레온의 대성당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산 페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전통적인 까미노 프란세스로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의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의 왼쪽으로 이어지며 매우 평탄하지만 상당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의 모습이다. 단조롭게 간격을 맞춰 심어져 있는 나무와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마을의 밖으로 빠져 나오려면 마요르 거리 끝에 위치한 성 페드로 성당을 오른쪽으로 두고 걸어 나가면 된다. 다음 마을인 렐레이고스까지는 13km 정도로 지나온 길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지나는 길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순례자 쉼터와 샘터가 종종 있다.
자동차 도로 옆의 길
쉼터
파랗게 빛나는 하늘은 계속 보지만 지겨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단조로운 길을 걸으며 들판을 보면 유채와 비슷한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본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에 이름이 궁금해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이 제대로 되는 곳에서 꽃 이름을 물어보니 '탑시아 빌로사'라고 답이 왔다. 그래서 이 이름을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탑시아 빌로사라는 이름의 꽃
목장
보호색으로 위장한 도마뱀
순례자들이 만든 길 표시
단조로운 길을 걸어 도착하는 인구가 채 2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렐리에고스는 로마 시대의 가도가 지나가던 곳이었다. 이 지역에는 포도주 저장고로 사람들이 파놓은 굴이 많이 남아있는데, 오늘날에는 이 지역에서 포도주를 생산하지 않아 거의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마을 안에서는 목재 골조에 벽돌과 흙으로 지어 아랍식 지붕을 얹은 오래된 전통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렐리에고스 마을의 카페에서 이르지만 간단히 점심을 먹고 쉬다가 나오니 너른 밀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 지평선 너머로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높은 탑이 희미하게 보인다.
렐리에고스 표시
계속 걷다보면 송전탑 밑으로 지나는 길이 끝나고, 도로 위를 지나는 보행자 다리를 건너면 마을의 구시가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며 순례자를 반기는 동상이 있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는 포르마 평원과 에슬라 평원 사이의 드넓은 포도밭과 온갖 종류의 과수원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도시로 맛있는 토마토 요리와 재미있는 전설이 이어진 곳이다. 순례자는 며칠 동안 걸어온 불모지 같은 길의 단조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이 도시는 레온 왕국과 까스띠야 왕국 사이에 있다는 점 때문에 중세 시대까지는 방어 도시의 역할을 했었다. 또한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사이에서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과거의 유산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돌로 포장된 거리와 중세풍의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는 집은 당시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또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는 8월의 마지막 주에는 산 페르민 축제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토마토 축제’(Feria del Tomate)가 열린다. 이미 세계인에 널리 알려진 ‘토마토 축제’(La Tomatina)는 팔렌시아의 작은 마을인 부뇰(Bunol)이 유명하지만,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토마토 축제에서도 토마토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으며 토마토 싸움을 즐길 수 있다.
만시아 데 라스 물라스 표시
십자가의 순례자상
마을에 들어가 알베르게를 찾아가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이 길을 걸으면서 점심과 저녁을 먹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하루의 걷기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시간에 따라 풍성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저녁을 먹기도 한다. 물론 한 끼를 잘 먹으면 다른 끼니는 간단하게 반드시 먹는다.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니는 우리 4명은 알베르게를 나와 시내를 구경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잘 가는 음식점을 찾아가기로 하고 구글 지도를 펼쳐 음식점을 찾아가는 도중에 성당과 같은 건물이 보여서 가니, 성당이 아니라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의 수호성인인 감사의 성모상이 보관되어 있는 18세기에 만들어진 그라시아 성모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Gracia)였다.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나와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식당을 찾아가니 현지인들이 여럿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이 우리를 그들과는 좀 떨어진 안으로 안내를 하여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하여 즐겁게 맛있고 풍부한 양의 식사를 마치니 주인이 인터넷에 자기 집의 평을 잘 해주기를 요청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음식이 맛있다고 하면서 좋은 평을 하겠다고 한참 이야기하니 주인이 특별한 서비스를 주었다. 와인을 한 병 더 주고 아주 특이한 술을 주는데 많이 주지는 않고 우리 소주잔의 반만큼을 주었다. 마셔 보니 올리브 맛이 나면서 알콜이 제법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모두 한 잔을 더 청하니 주인이 줄 수 없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그냥 나왔다.
나중에 이 음료가 무엇인지를 대강 알았는데, 아주 특이한 술로 소중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일도 여행 중에 경험하는 소중한 추억이라고 할 것이다.
그라시아 성모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Gracia)
성모 성소 설명
그라시아의 성모 성소 설명에 의하면 '이미 18세기에 산 로렌초의 옛 마을에 위치한 암자가 언급되었다. 현재 건물은 벽돌 띠와 벽돌로 지어진 것으로 나중에 지어진 것이다. 만시아와 그 지역에서 높이 존경받는 은총의 성모라는 제목의 조각은 라 롤다나(la Roldana)로 알려진 조각가가 엄청난 아름다움을 조각한 것이다. 19세기 말에 발생한 화재 후에 조각가 빅토르 데 로스 리오스(Victor de los Rios)가 복원하였다. 만시아의 수호성인인 그라시아 성모 성소는 만시아 사람들과 이 지역 사람들의 높은 방문과 사랑을 받는 신앙의 중심지이다.'라고 되어 있다.
성모상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쉬다가 20시에 열리는 마을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 일행 4명 중에 천주교 신자는 나뿐이었지만 모두가 저녁의 무료함도 달래고 세요도 찍기 위해서 성당으로 갔다.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교구 성당은(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은 아름다운 첨탑이 있는 18세기의 건물로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제단화가 보존되어 있다.
천주교의 미사는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예식이기에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따라 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성당에서 거의 매일 미사를 보았는데 아주 작은 성당이 아니면 사제가 한명이 아니라 2명이나 3명이 미사를 집전하였다. 대충 진행하는 과정을 보니 연세가 많아 보이는 사제가 보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은퇴한 원로 사제가 젊은 사제들을 도와주는 것 같아 보여 상당히 좋게 여겨졌다. 미사가 끝난 후 사제에게 세요를 청하니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사제복을 벗고 성당 입구의 조그마한 방으로 가서 사제가 직접 세요를 찍어준다. 바깥에 있는 일행들을 모두 불러 세요를 받고 성당을 구경하고 마을을 돌아보았다.
산타 마리아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
산타 마리아 성당 설명
성당 설명은 '현재 건물은 18세기에 12세기의 원 교회 위에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시의회가 열리고, 현관에서는 형이 선고되었다. 내부에는 옛 교회의 흥미로운 여러 예술작품이 있다. 주요 제단은 복원된 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성당 내부의 모습
여성들을 위로하는 십자가를 진 예수
미사 전의 성당 내부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슈퍼에 가서 콜라를 한 캔 사서 마시고 여유롭게 거닐어 보았다. 마을을 돌아보니 이 마을 곳곳에 성벽이 보이고 동서남북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성문도 보여 이 마을이 상당히 큰 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마을의 모습을 보고 시간이 되면 어디에서든지 마을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성벽과 성문
마을을 돌아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제법 시간이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평소 생활이라면 아직 초저녁이고 활동할 시간이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평소에 생활했던 시간과 다르다. 내일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길을 떠나야 하기에 조금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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