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3(05.19,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오늘의 길 : 론세스바예스 - 부르게테 - 헤렌디안인 - 에로고개 - 수비리

 

 오늘은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약 22km의 길을 걸어야 한다. 아침 5시 경에 잠이 깨어 일어나니 바깥에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걷는 도중에 비를 만나는 것은 썩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자연의 현상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랴! 그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길을 걸어야 한다. 비가 온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 많은 비가 오는 것은 아니고 가랑비 정도라서 판초를 둘러 쓴 사람도 있고 비옷을 입은 사람도 있으나 나는 가볍게 파커 잠바를 걸치고 길을 떠났다.

 

아침에 다시 길을 떠나는 순례자들은 이 길에서 피레네 산맥의 정상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부드러운 평원의 단조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는 구간이다. 길옆의 나무는 초록의 계절을 맞아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마치 터널을 지나는 느낌을 주며, 이런 풍경은 수비리를 향해 내려가는 동안 계속 이어진다. 아르가 강을 향해 내려가는 이 길 중간에는 메스키리츠 고개와 에로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들에게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길이 아니다.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알베르게 경내에 있는 까미노 표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오래 된 성당이 보인다. 산타 마리아 왕립성당 남쪽, 산티아고 소성당 옆에 있는 샤를마뉴의 헛간(Silo de Carlomagno)으로도 불리는 성령의 소성당(Capilla del Sancti Spiritus)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론세스바예스에서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롤랑이 두란다르테(Durandarte)로 내려친 바위 위에 지었다고 한다. 17세기 초반에 반원 아치의 현관문이 추가되었고 론세스바예스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중간에 있는 건물이 성령의 소성당 (Capilla del Sancti Spiritus)

 

호스텔과 바, 레스토랑 건물

 

까미노 구간(수비리까지) 안내도

 

숲길을 지나면서 보는 풍경

 

 알베르게를 떠나 약 한 시간 정도를 걸으면 론세스바예스의 오래된 마을 부르게테가 나타난다. 부르게테에 도착한 순례자는 대부분 아침을 이곳에서 해결 한다. 모두들 아침도 먹지 않고 길을 떠났기에 첫 번째 마주치는 마을의 바에서 커피나 주스 그리고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여기서 무엇이라도 먹어야 길을 가기에 편한 이유다.

 

부르게테 마을 길

 

부르게테 마을의 바와 아침

 

바 주변에 있는 마을 안내도

 

16세기에 지은 부르게테 마을의 바리의 성 니콜라스 성당 (Iglesia de San Nicolás de Bari)

- 바로크 양삭의 정문이 아름답다.-

 

 부르게테는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조용한 마을이다. 실제로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머물렀던 유명한 작가들의 많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Gustavo Adolfo Bécker),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헤밍웨이는 팜플로나의 번잡함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부르게테는 작은 마을이지만 휴가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설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한다. 또한 부르게테의 거리에서 보는 오래된 집들의 현관문과 대문을 보고 있노라면 중세로 시간이동을 하는 것 같다.

 부르게테는 롤랑의 전설과 론세스바예스 전투가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며, 이베리아 반도와 현재의 프랑스가 연결되는 나바라의 역사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한다.

 

  또 프랑스의 여러 영웅들이 스페인 원정 중 부르게떼를 거쳐 갔다. 또한 보르도(Burdeos)에서 아스토르가(Astorga)로 이르는 로마 가도, 나폴레옹의 길, 전설적인 묵시록의 길이 모두 부르게테를 지나간다.

 

  부르게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순례자들은 다음 마을인 에스피날로 가기 위해서 까미노 길 표시를 따라가면 두 개의 조그만 시내를 지나고 넓은 농장 길을 지나게 된다. 에스피날은 피레네 산맥의 전형적인 마을로 1269년 나바라의 왕인 떼오발도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에스피날을 가리키는 이정표

 

세요를 찍는다고 표시된 카페

 

멀리 보이는 에스피날 마을

 

 에스피날 마을을 옆에 두고 들르지 않고 옆으로 난 길을 계속 간다. 아침부터 오던 비는 계속 그쳤다가 오기를 반복하기에 우의 대신으로 입은 파커를 벗을 수가 없어 계속 입고 간다. 우리 일행 모두는 비가 오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무리를 지으면 길을 걷는다. 아직은 피곤함보다는 설렘에 더 기쁜 모양이다.

 

곳곳에 보이는 공동묘지

 

 에스피날을 지나고 비 오는 길을 계속 걸어 비스카렛 마을을 멀리 지나고  이름도 이상하게 들리는 에로계곡의 린소아인을 지나서 에로고개를 넘으면 수비리에 가깝게 다가선다.

 

 소로가인(Sorogain) 자연공원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비스카렛(Biscarret)은 과거에는 상당히 큰 마을이었으나 론세스바예스에 숙박 시설이 많이 생기고 나서는 순례자길로서의 역할이 줄어들고 인구도 점차 감소했다고 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비스카렛의 어원은 바스크어로 등이라는 뜻인 비스카르(Bizcar)에서 나온 것으로, 에스피날 언덕의 산등허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린소아인은 에로 계곡 중앙에 위치하는 작은 마을이다. 린소아인은 아직도 목동들이 그들의 풍습을 지켜나가며 살고 있다고 하는데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중세에는 에로 계곡 위에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있었다고 하며. 에로 골짜기에는 숟가락과 구두 틀을 만드는 마지막 장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린소아인은 론세스바예스 전투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에로 골짜기에서 롤랑의 발자국(Huella de Roldán)’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까미노 길 표시

 

에로 고개(4.3km)와 수비리(6.9km)를 가리키는 이정표

 

까미노 순례자의 추모판

 

푸드 트럭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

 

옛날의 집터

 

 100년은 넘어 보이는 소나무와 떡갈나무, 자작나무가 우거진 에로 고개에서 중세시대 순례자를 위협하는 도둑들의 보금자리였을 숲을 지나 언덕에서 포장도로를 가로지르면 벤타 델 푸에르토(Venta del Puerto)로 향하는 길로 접어든다. 이후 포르티요 데 아고레타 계곡의 뒤로 내리막은 심해지고 숲의 끝에 수비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내리막은 비가 많이 오면 엄청난 진창길로도 변하므로 피곤한 순례자에게 주의를 필요로 한다.

 

너덜지대의 내리막

 

수비리 마을 안내도

 

 드디어 수비리에 도착한다. 마을의 입구에는 우리나라의 큰 하천보다 작은 아르가 강(Río Arga)이 흐르고 있다. 수비리 입구에 까미노와의 경계에 있는 라 라비아(La Rabia)라는 중세 시대의 다리를 건너 마을의 알베르게에 가니 여주인이 아주 명랑하게 맞이한다. 이름이 마리아라는 여인은 한국인들을 아주 많이 접했는지 한국인들에게 아주 친절했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 걸었기에 수비리 숙소 부근의 냇가에 가서 신발을 씻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발의 열기를 식혔다.

 

 

수비리의 강인지 냇물인지?

 

수비리 마을 풍경

 

 수비리는 에스테리바르 계곡(Valle de Esteríbar)의 주요 도시로 나바라를 지나는 까미노 길에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수비리는 바스크어로 다리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이 도시가 아르가 강(Río Arga)을 끼고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다리가 많아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수비리 입구에는 까미노와의 경계에 라 라비아(La Rabia)라는 중세 시대의 다리가 있고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된 교구 성당이 있다. 또 수비리는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 하비에르 수비리(Xabier Zubiri)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는 수비리 마을 풍경

 

 수비리 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가니 인솔자가 추천한 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었다.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니 알베르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식당이 있어 내가 짧은 스페인어로 물으니 저녁 8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나와 함께 움직이는 4명은 수비리 마을을 한 바퀴 빙 돌면서 구경을 하고 그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같이 맥주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폭우가 쏟아졌다. 숙소가 가까이 있었으나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여러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한 50이 되어 보이는 여인과 우리 일행이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일본인이라고 하면서 이름은 니코라고 하였다. 아주 순하게 생겼고 웃는 모습이 순수한 그 여인은 일행 중에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어 주로 그와 이야기하고 우리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 여인과 일행 중 한 사람만 남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까미노에서 온갖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로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