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다 - 까미노란?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까미노를 가기 전에
내가 까미노에 관심을 가지고 내 여행의 버킷 리스트에 올린 지는 벌써 오래 되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실행을 하려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사항을 알아가고 있을 때 느닷없이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끝나고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차일피일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2024년에는 꼭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2023년부터 마음의 준비와 여러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까미노란 과연 무엇이고, 사람들은 왜 그 길을 걷고, 무엇을 얻는 것일까? 까미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잠시 고찰해 보고 나의 까미노 여정을 이어가기로 한다.
인간은 누구나 길을 떠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짐을 꾸린 뒤 세상사를 모두 잊고 훌쩍 떠나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상상을 누구든지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걷는 길이 많이 개척되고, 좋은 코스도 많아 사람들은 국내의 길을 많이 걷는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길인 ‘까미노’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용기다. 프랑스의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고 나바라와 라 리오하 지방, 메세타, 칸타브리아 산맥을 돌아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약 800km, 약 40일간의 길이다. 그런데 까미노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는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저 막연하게 남이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는다고 하니 ‘나도 까미노 길을 걸어야지.’하는 동경을 가지고 떠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칭하는 곳으로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를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라는 뜻으로 Compostela라는 단어는 라틴어 Campus Stellae의 변형으로, 이 이름은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별빛이 비추는 들판을 따라 걸어 야고보의 시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가 이베리아 반도에 와서 선교하였고, 그의 시신이 스페인으로 다시 옮겨져 매장되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예수의 12제자 중에서 야고보가 가장 존경을 받고 있다.그래서 지금도 그가 묻혔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종교적인 성지로 칭송받고 있다.
까미노의 여러 루트를 보여 주는 지도
까미노는 원래 종교적인 의미로 순례자의 길이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코스가 있고 지금도 많은 코스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유럽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떠나는 그 길을 하나의 코스로 인식한다고도 한다. 그 수많은 코스 가운데 순례자의 약 70%가 선택하는 길은 프랑스 길이라고 한다. 보통 많은 순례자들이 프랑스 루트 즉,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es)를 걷는다. 그리고 까미노 프란세스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프랑스의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걷는 것을 까미노 프란세스를 완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순례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에서 무시아(Muxía)와 피스떼라(Fisterra)까지 연장해서 대서양의 노을을 바라보면 앞으로 인생의 까미노를 다시 계획하기도 한다. 또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면 그 길을 레온에서 시작해 사리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115km 구간을 걷는 방법도 있으며 그 과정을 걸어도 인증을 해 준다고도 한다. 그래서 사리아부터는 순례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기도 한다.
크렌디시알에 표시된 까미노 프란세스 노선도
두번째 크렌디시알에 표시된 노선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목적지로 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9세기경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야고보의 길을 따라 걸으려는 순례자들이 생겨났었다. 그러다가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했는데 교황의 칙령에 따라 성스러운 해(산티아고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간 지은 죄를 모두 속죄 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산티아고 순례 길은 그리스도교 순례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까미노 프란세스는 국가와 교회의 지지가 줄어들면서 그 중요성을 상실하고 사람들에게 잊혀 갔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산티아고 가는 길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걷기를 동경하는 길로 널리 알려져 옛날의 까미노가 속속 복구되었다.
까미노를 떠나기 전에 간단히 알고는 있어야 하는 사항들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첫째는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껍질 표시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껍질은 순례자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는 고마운 존재로 이 표시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조금도 없다. 길이 약간 애매한 곳은 순례자들이 직접 돌을 모아 화살표를 만들어 두기도 하여, 모두 한마음으로 같은 길을 걷는 심리적 버팀목이 되기도 하다. 또 수많은 표지석이 있으니 길을 잃은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길을 가리키는 각종 표시와 표석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만들어 놓은 돌무더기의 안내
도시의 길 바닥 표시 - 도시에는 조가비의 표시도 있다.
둘째는 순례자 여권인 크렌디시알이다. 크렌디시알은 프랑스 길의 시작점인 생장 피에드포르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여권과 신청서를 제출하고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발급을 받는다. 이 때 가리비 껍질도 함께 받는다. 크렌디시알을 가지고 있으면 순례자 숙소(알베르게)에 머무를 수 있고, 자신이 걷는 길에서 지나치는 레스토랑, 성당 등의 장소에서 세요라고 일컫는 스탬프를 받고, 숙소에서도 스탬프를 받아 본인이 그 길을 걸은 순례자임을 증명하는데, 이렇게 스탬프를 받은 순례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 순례 완주 증서를 받을 수 있다. 이 크렌디시알은 스탬프를 찍다 보면 더 찍을 공간이 없는 경우도 생기는데 중간에 있는 성당에서 구입할 수 있다.
또 자신이 순례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배낭에 가리비 껍질을 달고 여정을 시작한다.
왼쪽이 생장에서 처음 받은 크렌디시알, 오른쪽은 성당에서 두번째 구입한 크렌디시알
나의 크렌디시알에 찍힌 도장의 일부(전체는 약 130개 정도를 찍었다.)
생장에서 받은 가리비 - 배낭에 매고 끝까지 함께 했다.
셋째로는 걷기에 알맞은 시기는 언제일까? 약 40일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기에 각자의 사정에 맞추어야 하지만, 순례자가 끊이지 않는 까미노에서 걷기에 좋은 시기는 4~6월과 9~11월이라고 할 것이다. 겨울과 이른 봄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려 걷기 쉽지 않고, 6월이 넘어가면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으로 걷기에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 시기를 택하여 걷기에 분잡함을 피하려면 다른 시기를 택해도 좋다.
넷째로는 숙소다. 일반적인 순례자의 숙소는 알베르게(Albergue)다. 마을마다 있는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잠자리를 해결해 주고 또 많은 알베르게는 취사를 해결할 수도 있어 유럽의 비싼 물가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유스호스텔 같은 개방된 구조로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이 함께 머문다. 공립 알베르게는 도착순으로 침상을 배정하기에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배낭을 입구에 놓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사립 알베르게는 조금 비싸지만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침상이 비어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숙소는 대체적으로 충분한 편이다.
길이 끝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완주증명서가 선물로 주어진다. 모두들 이 증서를 받으면 감격한다. '내가 그 먼 길을 정말 완주했는가?'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면서 고이고이 그 증서를 간직한다. 하지만 그 길의 완주가 끝났을 때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800km를 걸어가 산티아고 대성당의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함께 기뻐하는 자신을 돌이켜 보아라. 광장의 천 년 된 돌기둥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당신을 찾을 수도 있다. 지나온 삶에 대해 기쁨과 감사에 가득 찬 그 순간을 느끼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을 것이다. 물론 얼마니 오래 간직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완주증명서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허물없이 친구 이상이 된다. 다리를 절고 있는 사람에게는 파스를 붙여주고,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나눠주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건네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준다. 냄새나는 발바닥의 물집을 따주며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따뜻한 사람들을 길을 걸으면서 여기저기에서 만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지나가며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하며 지나가면서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답한다. 당신도 금방 친절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 기쁨과 베푸는 행복을 체험한다. 그러면서 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닫히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현실의 아픈 기억들은 정화되고 추억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쌓여간다.
이것이 까미노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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